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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녤옹

  

 

 

 

 

 

 

 

 

 

 

살갗의 수심

비누

 

 

 

 

 

 

 

 

 

봤어?

 

그게 아마 옹성우가 태어나서 가장 많이 들은 말 중에 하나일 것이다.

 

, 봤어? 얼굴 봤어? 방금 지나간 저 사람? 대박, 미친 거 아냐?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생기지? 눈 봤어? 코 봤어? 입술 봤어? 피부 봤어? 마른 거 봤어? 비율 봤어? 핏 봤어? 웃는 거 봤어? 인상 쓰는 거 봤어? 봤어? 봤어? 봤어?

 

봤다.

다니엘도 봤다.

 

연기과 1차 실기고사 날이었다. 합격 정원이 서른일곱 명인 시험에 오천 명이 넘게 몰렸다. 대형 입시학원들에서는 전세버스로 아이들을 실어 날랐다. 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들은 벌써 연기과 학생인 것처럼, 아니면 숫제 연예인인 것처럼 등판에 학원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힌 검은 롱패딩을 맞춰 입고 있었다. 11월인데, 아직 롱패딩 입을 날씨도 아니구만, 떼거지로 몰려 거들먹거리기는……. 다니엘은 입을 삐죽거리며 커다란 몸을 웅크리고 접수 확인을 하기 위해 아이들의 틈바구니로 비집고 들어갔다. 어제 막 부산에서 상경해 목동 사는 외삼촌네 집에서 하루 묵고 나온 참이었다. 연기 입시를 강경하게 반대하는 아버지 탓에 연기학원이라고는 근처도 못 가보고 시험을 치러 왔으므로 학원 다닌 아이들 앞에서 공연히 기가 죽고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접수처에서 수험번호와 이름이 적힌 명찰을 받아 목에 걸고 지정된 대기실로 향했다. 콘크리트 벽면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 세련된 것 같기도 황량한 것 같기도 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교사는 그 자체로 상당한 위압감을 주었다. 복도 여기저기에 교내외 전시, 공연, 상영회 등의 포스터가 어지럽게 붙어 있었다. 입시학원 패딩을 입은 아이들은 그런 포스터들 앞에 멈춰 서서 이거 무슨무슨 배우라느니, 연출이라느니, 우리 학원 선생님이라느니 떠들어댔다. 다니엘은 일직선으로 대기실로 갔다. 누구한테 배웠다고 해서 내가 그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지 않나, 속내로 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들어선 대기실 안은 실로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했다. 여기서도 아이들은 출신 학원 별로 삼삼오오 모여 있었는데, 저마다 학원에서 배웠음직한 몸 풀기, 발성과 발음 연습, 지정대사 연습에 여념이 없었다. 남녀 할 것 없이 키가 크고 비쩍 마르고 얼굴이 희고 조막만한 애들이 벽을 보고, 바닥에 누워서, 서로를 향해서 겅중겅중 뛰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별안간 웃거나 울거나 하는 모습은 딴 데서 보기 힘든 진풍경이었다. 다들 치열하구나, 다니엘은 왠지 남의 일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구석의 간이 의자에 가서 큰 몸을 구기고 앉아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막 음악을 재생하려던 그때였다. 문이 열리고 한 소년이 들어왔다. 대기실에는 계속 아이들이 드나들고 있었으므로 처음에는 아무도 그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다니엘도 마찬가지였다. 들어온 줄도 몰랐다.

 

안녕하십니까! 옹성우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가 또랑또랑한 하이 톤의 목소리로 외치며 허리를 구십 도 숙일 때까지는 말이다.

 

…….”

 

시끌벅적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될 정도의 난리 통이던 대기실이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우렁찬 인사를 던진 소년은 고개를 들고 대기실의 상황을 확인하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

…….”

교수님이…… 안 계시네…….”

 

문간에 앉아있던 진행요원 여학생이 민망함을 참는 얼굴로 나지막이 말했다.

 

여기는 대기실이에요.”

.”

그냥 들어오셔서 아무데나 앉으시면 돼요.”

, . 감사합니다.”

 

소년은 마르고 뾰족한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가방을 추켜 메며 허둥지둥 신발을 벗었다. 진행요원이 신발을 신고 들어와도 된다고 다시 알려주자 아, 아하, 좀 바보 같은 소리를 내더니 반쯤 벗은 신발에 도로 발을 꿰어 넣느라 끙끙거렸다. 아이들 사이에서 기어이 웃음이 터졌다. 다니엘도 이건 좀 실례라고 생각하면서도 참지 못하고 웃고 말았다. 아이들의 웃음을 뒤집어쓴 소년은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굽실거리면서 다니엘의 반대편 구석에 가서 앉았다.

 

그때 다니엘의 옆에 앉아있던 남학생들의 수군거림이 들렸다. 봤어? . 진짜 잘생겼다. 빙구 같은데 존나 잘생겼네. 연예인 아냐? 이름 뭐라고 했냐? 오성우? 홍성우라고 하지 않았어? 찾아봐. 그런 배우는 없는데. 아이돌 아냐? 아이돌이 여기 치면 이미 기사 쫙 깔렸지. 근데 저런 애가 오는구나. 난 망했다. 왜 그러냐? 얼굴만 생겼을 수도 있는 거야. 보통 저렇게 잘생긴 새끼들이 연기 존나 못해…….

 

주변의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것들에 익숙한 것인지, 성씨는 불분명하나 성우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은 가지런히 모은 무릎 위에 지정대사가 인쇄돼 있을 것으로 유추되는 꼬깃꼬깃한 종이를 올려놓고 입술을 작게 움직이며 중얼중얼 읽고만 있었다. 다니엘은 재개된 아이들의 소란 너머로 성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잘생겼다. 잘생겼다는 단순무식한 평이 감히 천박하게 느껴질 정도의 외모다. 별다른 멋을 내지 않았음에도 숱이 풍성하고 반사광이 적은 짙은 흑발.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멀끔한 이마. 깎아놓은 듯 반듯하고 힘이 있는 굵기의 눈썹. 고개를 살짝 숙이면 우수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는 깊이 있는 안와. 홑꺼풀임에도 눈동자가 또렷하게 보이는 크기의 눈. 메이크업을 얹은 것처럼 희미한 붉은 빛으로 물들어 있는 눈초리. 눈 밑의 통통한 애교살.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크기로 매끈하게 뻗은 콧날. 다소 얄팍해서 소녀 같은 연홍색 입술. 웃고 있지 않아도 미소가 담긴 듯 살짝 당겨져 올라간 입매. 미남이라기보다는 미인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남자가 가질 수 있는 성적 매력에 국한되지 않고 사람으로서 어떤 기준치를 훌쩍 뛰어넘은 것 같아서다. 보편적이면서도 독창적이다. 그 누가 보더라도 인정할 수 있을 만큼 보편적으로 아름답지만 그 누구도 섣불리 대체할 수 없을 만큼 독창적으로 아름답단 말이다.

 

다니엘은 누군가의 얼굴을 이렇게 오랜 시간 뜯어보는 게 난생 처음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누군가를 그토록 길게 쳐다보고 있으면 그 사람도 시선을 느껴 자신을 마주보게 되어있는 법이라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 대사를 읽는 데에만 몰두하던 성우가 문득 이름을 불린 사람처럼 고개를 들어, 딱히 눈을 이리저리로 굴리지도 않고 정확하게 다니엘을 보았다.

 

그리고 웃었다.

 

실로 진부한 표현이 되지만 그때 다니엘은 자신의 심장이 내려앉아서 쨍그랑 소리를 내며 깨어졌다고 느꼈다.

 

사람이 저렇게 예쁜 건 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

 

 

 

사람이 저렇게 예쁜 건 좀 말도 안 되는 일인데, 어쨌든 옹성우가(그는 입학 후 한동안 자신의 성씨를 학교 사람들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데에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을 소비해야 했지만, 그것이 그에게는 익숙한 일이었던 듯 전혀 힘든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사람이기는 사람이었으므로, 그의 아름다움은 자연히 주위 사람들을 사람 이하의 것으로 격하시키는 성질을 띠었다. 그의 옆에 있으면 남자고 여자고 할 것 없이 모두 그의 조연, 엑스트라, 심지어는 배경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그건 눈에 띄고 싶어서, 유명해지고 싶어서, 관심 받고 사랑 받고 싶어서 안달이 난 아이들의 집단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연기과에서 별로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 일에 성우의 의지는 전혀 개입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성우의 잘못이 됐다. 그냥 그렇게 됐다.

 

, 너는 애가 정말 예쁘구나.”

 

교수가 수업시간에 한 마디 하면 그날로 성우가 그 교수의 편애를 받는다는 소문이 연기과 전체에 화르르 일었다. 봤어? 어깨 쓰다듬는 거. 봤어? 얼마 전에 학식에서 둘이서만 마주앉아서 밥 먹는 거. 봤어? 쌤 요새 결혼반지 안 끼고 다니시는 거…….

 

다니엘은 이런 근거 없고 불쾌한 소문들에 끼지 않으려 하다가 아이들 사이에서 약간 겉돌게 되고 말았다. 학생 수가 적고 교수와 학생의 관계가 친밀한 이 학교에서 교수가 학생의 어깨 정도를 의도 없이 쓰다듬거나 면담을 겸해 학식을 같이 먹는 일이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교수가 결혼반지를 안 끼고 다니게 된 건 이혼 소송 중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성우의 일이라고 그런 식으로 숙덕거리는 꼬락서니가 아주 추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더 추한 건 성우였다. 성우에게 추하다는 형용사가 어울릴 수나 있었나 싶지만 정말 그랬다. 아이들이 노골적으로 수군거리고 있었으므로 성우도 귀가 있는 이상 자기에 대한 뜬소문과 악담들을 듣지 못하고 지나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성우는 사태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사람처럼 행동했다. 총회부터 각종 과 모임에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가했고 굳이 1학년이 하지 않아도 되는 학과의 잡일들도 도맡아 했다. 3월에는 술자리가 거의 매일 있다시피 했는데 그때마다 반드시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주는 술잔을 마다하기는커녕 받을 때마다 꺾지도 않고 원샷했다. 주량이 셌다. 쉴 새 없이 수다를 떨었고 남의 수다를 잘 받아쳤다. 농담과 유머의 귀재였다. 성우를 마뜩찮게 보던 대다수의 사람들조차, 낄낄거리며 소문을 나르던 사람들조차 그 순간만큼은 성우를 좋아했다. 명랑하고 쾌활한 성우. 생긴 거랑은 다르게 붙임성 좋은 성우. 핵인싸 옹성우.

 

그게 추하단 거다.

 

아니, 뭘 그렇게 갖은 애를 쓰나. 갖은 애를 쓰고 있는 게 다니엘 눈에는 보였다. 나 같으면 확 자퇴한다. 저만하면 어딜 가서건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 아닌가. 왜 굳이 이딴 학교에 목을 매나. 여기서 핵인싸 돼서 뭐할 건데. 소위 명문이라서? 어려운 입시를 통과해서 들어왔으니까? 여기 오려고 재수까지 했으니까? 명문이고 나발이고 구성원이 좆같으면 그건 좆같은 곳이다. 성우 정도 되면 두 팔 벌려 반기는 데는 많을 거다. 당장 매체 오디션만 마음먹고 몇 개 뚫으려 하면 저 얼굴로 안 뚫리는 데가 있겠나. 홍대나 신촌이나 명동이나 가로수길에서 30분만 걸어 다니면 길거리 캐스팅 명함으로 탑을 쌓겠다. 애초에 아직 연예인 안 하고 있는 게 이상한 얼굴이다. 어느 아이돌 그룹에 꽂아놔도 비주얼 센터고 어느 잡지 표지에 박아놔도 완판이다.

 

그리고 연기나 발연기면 말을 안 한다. 수업에서 보는 한 연기도 곧잘 한단 말이다. 다니엘과 마찬가지로 대형 입시학원을 거치지 않고 들어온 동기라 동병상련의 정이 가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1학년 서른일곱 명을 연기로 줄 세우기 해봐도 다니엘의 기준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실력도 없으면서 입만 산, 와꾸 빻았는데 인성까지 빻은 새끼들보다는 백 배 천 배 낫다.

 

그런 사람이 자존심도 없나. 배알도 없나. 속도 없나. 자기 욕하는 거 빤히 아는 사람들의 비위를 어떻게 저렇게 잘 맞추나. 실실 쪼개나. 뭐가 아쉬워서. 뭐가 필요해서. 뭘 원해서.

 

형은 학교 왜 다녀요?”

 

이처럼 하도 자주 그리고 깊게 성우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그 말이 튀어나온 것은 거의 무의식중의 일이었다. 조명이 침침하고 비좁아터진 체련실에서 트레드밀을 뛰고 있던 성우의 마른 등판에 대고 그렇게 물었다. 질문을 받은 성우는 뒤를 돌아보려다가 그대로 발이 꼬여 휘청거렸다.

 

, , 어엇!”

으아악!”

 

다니엘은 화들짝 놀라 들고 있던 덤벨을 내던지고 벤치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트레드밀이 성우를 뱉어내는 것이 한 발 빨랐다. 성우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그대로 트레드밀 뒤쪽에 깔려 있던 매트리스에 나가떨어졌다. 그거라도 아니었으면 하마터면 크게 다칠 수도 있는 사고였다. 다니엘은 내심 가슴을 쓸어내리고 손을 내밀었다.

 

조심 좀 해요.”

으응.”

 

성우는 다니엘이 내민 손을 잡고 일어섰다.

 

안 다쳤어요?”

괜찮은 거 같아.”

발목 돌려봐요.”

…….”

앉았다 일어났다 해봐요.”

…….”

안 다쳤네.”

 

다니엘이 시키는 대로 따른 뒤 성우는 벤치에 걸터앉아 자신의 물병 뚜껑을 열고 목을 축였다. 성우가 고개를 젖히고 물을 마시면 가늘고 하얀 목에서 목울대가 위아래로 울렁거린다. 돌출된 흉쇄유돌근을 따라 주륵, 땀방울이 한 줄기 흘러내린다. 다니엘은 그것을 오래 쳐다보고 있을 수 없다.

 

학교 왜 다니냐고?”

 

물병에서 입을 뗀 성우가 숨을 한 번 몰아쉬고 물었다. 다니엘은 괜한 질문을 했나 싶어 침묵했다. 성우는 평온한, 거의 다정하다고 착각할 수도 있을 만큼 온화한 어조를 지키고 있었다.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물어봐도 돼?”

…….”

 

그러나 핵심을 찔러 온다. 이런 부분이 있는 사람인 것이다. 마냥 헤실헤실 속없이 웃고 다니는 바보는 아니다. 수업을 몇 번만 같이 들어보면, 연기하는 걸 보면, 함께 에쮸드(etude)를 하다 보면 금세 안다. 옹성우가 어떤 연기자인지. 어떤 연기자가 되고 싶어 하는지. 관찰력과 통찰력 양면에서 탁월하다. 그래서 초보 연기자들이 빠지기 쉬운 감정 과잉의 함정을 유려하게 빗겨간다. 아주 담담하게 말하고 행동하면서도 인물과 사건의 본질을 예민하게 파악하고 있다. 이런 사람이 자신을 둘러싼 그 모든 시선과 소문들에 무지할 리가 없단 말이다. 다니엘은 에둘러 말하기를 그만두었다.

 

형 정도 생겼으면 이깟 학교 안 다녀도 금방 연예인 될 수 있지 않아요?”

…….”

아니, 그렇잖아요. 솔직히 이 학교 애들 다 마음속 한 구석에서는 자기들도 김고은 이제훈 되고 싶어서 다니는 거 아니에요. 아니면 뭐 누구더라? 아무튼 아이돌도 있고. 근데 형은 굳이 그걸 학교에서 얻을 필요 없지 않냐는 거죠. 잘생겼어, 연기도 그만하면 곧잘 해, 춤 노래도 되잖아요, 형은. 기획사나 소속사 같은 데에 캐스팅 안 당해 봤어요? 매체 오디션을 뚫을 생각이라든가, 아니면 뭐 서바이벌 프로를 나간다든가, 방법은 널렸는데. 뭘 해도 잘 될 거 같은데…….”

 

다니엘의 퉁명스러운 주절거림을 끝까지 듣지 않고 성우는 피식 웃음 지었다. 말이 너무 거칠었나 싶어 입을 다물었다. 매번 이 조동아리가 말썽이다. 침묵을 깨기로 마음먹으면 속에서만 끓어야 할 생각까지 거침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성우는 과히 기분 상하지 않은 듯 태연한, 어쩌면 초연하기까지 한, 그래서 그를 더더욱 인외의 존재로 올려놓는 늠름하고 정갈한 표정을 하고, 다니엘의 눈을 자신의 눈으로 똑바로 응시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배우가 되고 싶어.”

 

그때 성우의 입에서 나온 배우, 라는 말의 울림을 똑똑히 기억한다.

 

무대에 서는 배우.”

 

무대, 라는 말을 목구멍 밖으로 밀어낼 때의 호흡의 떨림을.

 

연극이 하고 싶으니까.”

 

연극, 이라는 말로 피워낸 일종의 압도적인 환영을.

 

 

 

*

 

 

 

 

둘 다 교직에 있던 성우의 양친은 엄격한 분들이었다고 한다. 다니엘의 아버지 못잖게. 말 잘 듣고 공부도 괜찮게 하는 아들을 곁길로 새게 만들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고 한다. 주변에서 일찌감치 미색을 알아보고 아역 모델이니 배우니 시켜 보라는 얘기가 없지는 않았다지만, 부모는 물론이거니와 성우 본인도 크게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괴성을 지르고 옷을 더럽히며 펄쩍펄쩍 뛰어 놀기 좋아하는 평범한 소년으로 컸다고 한다.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낼 뿐 별다른 꿈이나 목표는 없었다고 한다. 학과 중에는 국어를 제일 좋아했기 때문에 장래희망에는 국어 선생님이라고 적어 내곤 했다고 한다. 그대로 갈피를 잘 잡고 한눈 파는 일 없이 걸어왔다고 한다. 모의고사와 비슷한 수준의 성적표를 수능에서도 받아냈고 결과적으로 경희대 국문과에 붙었다고 한다. 부모는 흡족해 했다고 한다. 스스로도 꽤 기뻤다고 한다.

 

얼마 후 한 연극 작품을 만나기 전까지.

 

이방인이었어.

 

성우는 그 작품의 이름을 말한 것뿐이었는데, 다니엘에게는 어쩐지 고해성사처럼 들렸다. 나는 이방인이었어, 라고.

 

까뮈의 이방인. 소설 원작. 각색한 거. 산울림에서 봤어. 단관으로. 웃기지? 보통 수능 끝나고 가는 단관은 대학로 로코극 같은 걸 텐데. 우리 옆 반은 연애의 정석 보러 가는데 왜 우리는 그거 아니냐고 애들이 투덜거리고 그랬어. 우리 담임쌤이 국어였어서, 문학 좋아하셔서 아마 결정하신 거겠지. 산울림소극장 가봤어? 약간 홍대라기에도 신촌이라기에도 애매한 곳에 있어. 되게, 이런 데에 극장이 있나? 싶은 곳이야. 인적도 적은 편이고. 카페들이랑 화랑들이 있는 골목인데. 오래된 극장이지, 지하로 내려가는 층계참에 산울림에서 공연했던 배우와 창작자들의 사진이 꼴라주로 붙어 있어. 흑백으로. 묘해. 묘했어. 공연이 끝나면 사람들은 서둘러 극장을 떠나는데 어떤 것은 이런 형태로 남는구나. 박제된 시간을 만지는 기분이 들었어. 만져졌어. 그 공기. 어두컴컴한 극장을 채운 공기의 질감을 만질 수 있었어. 까슬까슬하기도 하고, 포슬포슬하기도 하고, 부드러운 듯 매캐하고……. 영화관이 아닌 극장이라는 곳에 들어가 보는 게 그게 처음이었으니까. 옆에 애들은 아, 자야지, 코 골면 깨워라, 이러고 농담 치고 있는데 나는 웃지도 못하겠더라. 어쩐지 엄청 긴장이 되더라고. 내가 연기하는 것도 아닌데 말야. 숨을 못 쉬고 있었던 것 같이 느껴져. 공연 시작되기까지 한 십오 분 정도를. 스탭이 나와서 핸드폰 꺼달라고 하고 곧 하우스가 소등되고 무대에 불이 들어왔어.

 

무대 위에 배우 한 명이 서 있었어. 검은 양복을 흐트러진 매무새로 입고. 서 있다기보다는 거기에 그냥 덩그러니 떨궈진 거 같은 모양이었어. 딱히 거기 있으려고 해서 있는 것도 아닌 느낌. 의지도 소망도 없는 느낌. 존재하지 않는 느낌. 존재하지 않는 느낌으로 존재하고 있는 그야말로 이방인. 첫 대사가 이거였어. 아나? 유명한 첫 문장인데.

 

오늘 엄마가 돌아가셨다. 아니, 어제였을지도.

 

그때 뭔가 덜컥 겁이 났어.

 

알 수 있는 거지, 인생의 거대한 전환점을 맞닥뜨리는 순간이 오면. 피부로 뼈로 느끼는 거지. 어떤 운명 같은 거. 약간, , 망했구나, 싶은 그런 거. 아 망했구나, 이거였구나, 여태껏 이것이 없이 살아왔기에 그토록 평탄하고 그토록 안전할 수 있었구나. 그렇지만 이제 만났구나. 그러니까 망했구나, 앞으로 내 삶에 평탄도 안전도 없겠구나. 전쟁 같은 치열함뿐이겠구나. 나는 경희대 국문과는 못 가겠다. 국어 선생님은 못 되겠다.

 

이방인에서 뫼르소는 태양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고 법정에서 진술해. 강렬한 햇빛이 살인의 동기였다고. 말도 안 되지. 부조리하지. 논리도 뭣도 없지. 근데 그냥 납득이 되더라. 내가 이방인을 오독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좀 더 깊은, 실존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까뮈 철학이 거기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때 그냥 수긍을 했어. 그래, 사람은 때로 태양 때문에 살인을 저지를 수도 있다. 이따금 그런 일이 일어나고 만다. 인간의 이성이나 지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압도적인 무언가에 사로잡히면, 그것이 알제 바닷가의 태양이든 극장의 조명이든, 어떤 강렬한 빛을 마주한 사람은, 결코 이전까지의 그와 같을 수 없다.

 

나는 오늘 이 순간까지 이방인이 아니었으나, 지금부터 이방인이다.

나는 오늘 이 순간까지 이방인이었으나, 지금부터 이방인이 아니다.

 

……그런 생각을 했어.

 

라고 맺으며 수줍게 웃었다. 그래서 경희대 입학을 포기하고 부모를 간신히 설득해 연극배우의 길을 걷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것은 성우의 삶에서 최초로 발생한 꿈 혹은 목표 혹은 열정이었으므로 부모든 또는 무엇이 됐든 막아낼 수 있는 종류의 추동력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성우는 재수를 했고, 이 학교에 붙었고, 소문이란 소문 욕이란 욕을 죄다 감내하면서 꾸역꾸역 여길 다니고 있다. 연예인이 아니라 배우가 되고 싶고, 그 중에서도 매체 배우가 아니라 무대 배우가 되고 싶으니까. 그것을 배우기 위해 여기가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하니까.

 

다니엘은?”

 

성우가 멋쩍음을 불식하려는 듯 손부채질을 하며 질문의 화살을 다니엘에게 돌렸다. 다니엘은 얼빠진 상태로 예? 되물었다.

 

왜 연기가 하고 싶어?”

…….”

 

다니엘은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성우가 사람을 함부로 한심하게 여길 사람이 아니라고 알고 있으면서도, 지금의 대화의 맥락에서 자신의 까닭을 꺼내는 것이 무척 부끄럽게 느껴졌다. 성우의 까닭이 고귀하고 자신의 까닭은 세속적인 것만 같았다.

 

저는……영화 좋아해서요.”

아하.”

 

성우는 그 뒤로 다니엘이 좋아하는 영화와 영화배우, 영화감독에 대해 물었다. 다니엘은 이 이름 저 이름을 주워섬겼다. 성우는 성심성의껏 들어주었고 반응해주었다. 나도 그 감독 좋아, 그 작품 명작이지, , 그 대사는 정말 못 잊을 거야, 나도 펑펑 울었어……. 그러니까 다니엘이 대화 내내 감지한 어떤 어색함이나 낯 설음, 거리감 같은 것들은 절대 성우의 문제는 아니었다. 초라함이나 창피함도. 박탈감과 열등감도. 결코 성우의 잘못은 아니었다.

 

그의 잘못이 아닌데 그의 잘못이 되는 것을 성우는 많이 가지고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것은 아름다운 사람의 업일까, 라고…….

 

그렇구나.

나 이 사람을 정말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구나.

 

……라고도.

 

 

 

*

 

 

 

성우는 고지식할 정도로 연극배우만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학내에서는 예외로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다니엘이 말하듯 매체로 진출할 마음들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학교는 학생들의 연기 활동에 대해 이런저런 제약을 걸어 두었다. 1학년 동안에는 학내 공연을 포함한 모든 공연에 출연하는 것을 금지했고, 2학년부터는 학내 공연은 가능하나 외부 공연 및 매체 출연이 여전히 불가능했다. 본격적으로 소속사 등에 적을 두고 활동할 수 있게 되는 것은 3학년부터라고 정해져 있었다. 이 학칙은 제법 엄격하게 시행되고 있어, 3학년이 되기 전에 연예인으로 활동할 가닥을 잡은 사람들은 흔히 자퇴를 하고 학교를 떠났다. 그게 성공의 척도로 여겨지는 분위기도 적잖이 있었다. 적어도 20대 초중반에 인지도를 높이지 않으면 스타가 되기는 어려운 업계인 게 사실이었으니까.

 

그러므로 성우가 입학한 지 고작 두 달이 지난 5, SBS에서 토요일 8시에 방영하는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폭발적인 대중의 반응을 얻어냈을 때, 사람들은 그가 망설임 없이 학교를 떠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 프로에 나온 것도 성우의 선택은 아니었다. 성우에 관해서는 늘 이런 식이다. 원치 않았던 것, 선택하지 않았던 것, 의도하지 않았던 것들이 성우의 잘못이 된다. 성우는 그날 다니엘을 비롯한 동기들과 술 한 잔을 가볍게 걸치고 실컷 떠들다가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참이었다. 다니엘은 기숙사생이었기 때문에 지하철역 입구에서 헤어졌다. 약수역 플랫폼에 성우가 탄 지하철이 정거했다. 거기는 성우가 내리는 역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하철이 멈추고 문이 열렸을 때, 성우의 귀를 잡아채는 날카로운 여자 비명이 들렸다. 하지 마세요, 왜 이러세요! 깜빡깜빡 졸고 있던 성우는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플랫폼에서 젊은 여자가 덩치 큰 남자 둘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남자들은 딱 봐도 취한 듯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남자 하나가 여자의 손목을 잡아챘다. 여자가 거세게 저항했다. 지하철이 정거하고, 문이 열리고, 성우가 그 광경을 본 것은 고작 몇 초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몇 초 사이에 성우는 움직였다. 성우에게 비슷한 나이대의 누나가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성우의 영혼에 새겨진 선함 같은 것 때문일까. 바닷가의 태양을 본 것처럼 성우는 지체 없이 행동했다. 가방을 둘러메고 지하철에서 달려 나가 자신보다 훨씬 체구가 큰 남자의 어깨를 붙잡고 나지막이 외쳤다. 싫어하시잖아요. 남자는 있는 대로 인상을 쓰며 눈을 부라렸다. , 새끼야? 성우는 작은 주먹을 부르쥐고, 얻어맞을 수도 있겠다고 각오하고, 어금니를 꽉 물었다가 용기를 내어 말했다. 여자 분이 싫어하시잖아요. 보내주세요. 그러자 남자가 성우의 멱살을 쥐고 비아냥거렸다. 보내주세요? 지금 보내주세요라고 했냐? ……보내주세요? 보내주세요. , 박수 보내주세요!

 

……유치찬란하기 짝이 없는 몰카 예능이다. 미국에서 몇 년 전에 유행했던 What Would You Do의 포맷을 베껴온 것이다. 숨어있던 카메라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와 성우를 에워쌌다. 열연한 배우들이 성우에게 박수를 보냈고, 마이크를 든 유재석이 나타나 성우를 크게 칭찬하며 인터뷰를 했다. 정말로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원래 플랫폼으로 내려오는 사람을 기대했는데 지하철에서 누가 뛰어내려서 구하러 와줄 줄은 몰랐다, 원래 이 역에 내리는 게 아니었냐, 이름은 뭐고 직업은 뭐냐, 용감하고 착한 것뿐만 아니라 너무 잘생기셨다, 성이 옹씨냐, 그것도 특이하다, 학생이면 전공이 뭐냐, 연기, 미래의 배우구나, 학교가 어디냐, , 그 학교, 김고은 이제훈, 그리고 무슨무슨 아이돌의 후배시구나, 2의 이제훈을 우리가 보고 있는 것 같다, 방송을 시청하고 계신 방송국 관계자님들, 연예기획사 관계자님들께 어필을 한 번 해라…….

 

그래서 성우가 카메라를 보고 계면쩍은 웃음과 함께 그냥 한 마디 했다.

 

,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그 앞에 성우가 한 다섯 번쯤은 손사래를 저어가며 저는 아직 저학년이라 학칙상 방송에 출연해서 그런 걸 어필하면 안 된다고 난색으로 사양에 사양을 거듭했다는 사실은, 다니엘도 뒤늦게 성우에게 들어 안 것으로, 방송에는 깔끔하게 편집되어 송출되지 않았다.

 

방송 이튿날 연기과 조교실 전화에 불이 붙었다. 옹성우 학생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기획사들의 문의 전화였다. 이는 학생의 진로와 직결되는 문제였으므로 조교실에서는 순순히 성우의 번호를 넘겼다. 따라서 성우의 전화에도 불이 붙었다. 수업을 못 들을 지경이라서 성우는 아예 휴대전화를 방해 금지 모드로 설정해놔야 했다. 한 시간 그러고 나면 부재중이 삼십 통이었다. 성우는 쉬는 시간마다 일일이 그 번호들에 전화를 다시 걸었다. 아직 학생이라……외부 활동은……죄송합니다……생각이 없습니다……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 또 자기 잘못이 없는 일에 대해 굽실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관심을 보이는 것은 방송국이나 기획사뿐이 아니었다. 방송된 영상이 각종 SNS로 퍼 날라졌다. 공유된 횟수가 상상을 초월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친구 신청 알림 때문에 배터리가 방전됐다. 성우는 어플을 지워버렸다. 별 소용은 없었다. 도대체 어떤 경로로 번호를 알아낸 것인지 외간 사람들이 성우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성우가 기획사인 줄 알고 받거나 다시 전화를 걸면 , 혹시 옹성우예요? TV에서 봤어요! 오빠 대박 잘생겼어요! 저 완전 팬이에요!’ 난리가 났다. 성우는 소름이 끼쳐 그 뒤로는 부재중 통화에 대응하지 않았다.

 

그래도 소란은 계속되었다. 네이버와 다음에 팬 카페가 생겼다……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사진이 공개되었다……과거썰들이 풀리기 시작했다……어떤 것들은 사실이었고 어떤 것들은 헛소리였지만 사람들은 진실 여부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어떤 사람들은……학교로 찾아오기 시작했다……커다란 카메라를 들고……그들은 아무래도 성우의 수업 시간표를 입수한 것 같았다…….

 

민폐야.

 

라고 누가 먼저 말했을까.

 

수업 분위기도 안 잡히고 사생들 진상이고…… 그냥 빨리 소속사 들어가서 자퇴해줬으면.

 

이라고 누가 먼저.

 

나무랑 싸이더스랑, 맞다, 호두에서도 연락 왔다며. 어떻게 거길 다 까? 혹시 아이돌 할 생각 있는 거 아냐? 걔 노래도 춤도 곧잘 하잖아. 근데 진짜 웃기긴 웃긴다. 연기 1도 안 했는데 공중파에 얼굴 팔린 것만으로 슈스 됐어. 옹성운데 뭐. 우리도 가끔 보면서 현실감 안 들잖냐. 저런 애들이 매체로 가야지. 아이돌을 하든 뭘 하든. , 나 소식 들었는데 삼사에서도 컨택 있었대. 아이돌 삼사. 진심? 그것도 깠대? 쟤 진짜 뭐하자는 거냐? 이쯤 되면 몸값 올리려고 괜히 버티고 있는 거 아닌가 몰라. 1학년이 우연이라도 방송 카메라에 잡혔으면 몸을 좀 사리든가 뻔뻔하게 지 배우 하고 싶다고 어필한 거 보면 매체 욕심이 없는 것도 아니더만…….

 

성우는 혼자가 됐다. 연극을 하기 위해 이 공동체에 녹아들고자 온갖 추태란 추태는 다 부렸는데 결국 다 허사가 됐다. 연기실습 수업 마지막 에쮸드 발표의 짝을 정하는 시간에 성우는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 공책을 구겨 들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다니엘의 옆으로 왔다. 혼나러 오는 어린애처럼. 다니엘은 자기 옆에 두었던 가방을 치워 성우가 앉을 자리를 내주었다. 성우는 무너지듯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니엘과 눈을 맞추지 못하고 있었다.

 

…….”

…….”

 

잘못한 것도 없는데 죄 지은 얼굴 좀 하지 마라, 속에서 천불난다.

라고 말하고 싶었다. 기왕이면 연기자 한답시고 입에서 싹 씻어낸 줄 알았던 고향 말씨로 그렇게 지껄여버리고 싶었다.

 

떳떳하게 대가리 치켜들고 다니라. 연극할라믄 쌍판에 그 정도 철판은 깔아야제.

라고 화를 내고 싶었다.

 

햄이 뭘 잘못했노. 햄이 이쁘고 잘난 게 햄 잘못이가.

라고 어깨를 붙잡고 흔들어주고 싶었다.

 

세상 사람들이 다 햄더러 뭐라 해도 내는 햄이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내는…….

이라고, 무엇인가, 전하고 싶었던 것 같았지만.

 

……어는 거 할까.”

 

교수가 나눠준 에쮸드 예문에 코를 박고 그렇게 말하는 게 고작이었다. 1) 비 오는 아침, 사랑하는 사람이 지금 공항에서 뉴욕으로 떠나려 한다.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질 않는다. 그 사람을 꼭 찾아야하는데 그는 이미 떠나고 없다. 2) 극장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 같이 영화를 보기로 약속했는데 상대는 아직 오지 않고 있다. 영화 시작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데. 이때 전화가 온다. 왜 아직 안 오냐고 벌컥 화를 냈는데 친구는 오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한다. 3) 삼수를 하고 있는 수험생이다. 집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담배가 너무 피우고 싶다…….

 

에쮸드 예문들은 이처럼 상황 설정이 명확하고 논리가 명료하며 맥락이 명백하다.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대략의 정답이 정해져 있다. 그래서 더욱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실제 삶에서 이렇게 명확하고 명료하고 명백한 일들이 있는가. 정답이 정해져 있어 그대로 행하면 해결되는 문제들이 있는가. 지금 다니엘은 눈앞의 성우에게 한 마디 쓸 만한 위로도 건네지 못하고 있는데.

 

 

 

*

 

 

 

 

ㅇㅅㅇ 불려갔음

 

 

고백한다. 연기과 18학번에는 서른여섯 명이 참여하는 단톡방이 있다. 성우가 전파를 타고 사흘 뒤에 만들어졌다. 연기과 18학번 서른일곱 명 가운데 딱 한 명을 빼놓은 단톡방이다. 처음부터 그 수는 아니었지만 만든 지 하루 만에 서른여섯 명이 다 모였다. 다니엘도 있는 그 방에 이렇게 메시지가 올라온 것은 오후 7시쯤으로, 다니엘은 학교 후문의 칼국수 집에서 혼자 저녁을 먹던 중이었다. 요새는 누구를 만나도 성우의 화제로밖에 이야기하지 않아, 넌덜머리가 나는 통에 동기들을 약간 피해 다녔다. 이 음습한 단톡방도 씨발 그냥 나와 버릴까 싶다가도, 더 좆 같은 얘기가 오가기 시작하면 캡처라도 떠놔야지 하는 마음으로 버티고 있었다.

 

 

불려갔음? 누구한테

연규쌤

불려간 거 맞아? 지가 간 거 아니고?

ㅁㅈ 자퇴서 내러 간 거 아님?

ㄴㄴ 불려간 거 맞음 아까 연규쌤 방 앞에서 마주쳤는데 쌤이 불러서 왔다 했음

대박이네

ㅇㅅㅇ 짤리는 거?

원래 단발성이어도 짤려?

지나가다 뉴스 인터뷰 이런 게 아니니까

이미 얼굴 이름 학교 다 팔렸고

ㄹㅇ.. 지 캐스팅해달라고 카메라에다 지랄했잖아

뭐가 됐든 빨리 끝났음 좋겠다 씨발

학교 분위기 개씹창남

ㅇㅈ

18 떼로 욕먹게 생김

ㅁㅈㅁㅈ

누군 못해서 지처럼 안하는 줄

너 못해서 안하는 거잖아ㅋㅋㅋㅋㅋ

씹새끼 팩폭 오짐ㅋㅋㅋㅋ

ㅋㅋㅋㅋㅋ시발 연기고 나발이고 돈 모아서 공사나 해야지

ㅇㅅㅇ 공사한 거?

그게 설마 자연산이겠냐 그럼

 

 

 

다니엘은 더 읽지 않고 휴대전화를 덮었다. 다 먹은 칼국수 국물을 후루룩 삼키고, 목구멍에서 뱃속까지 뜨끈해지는 것을 느끼며 밥값을 계산했다. 뜨거운 것을 급하게 먹어 이마에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이제는 밤에도 별로 필요 없어진 겉옷을 옆구리에 끼고 서둘러 학교로 걸음을 옮겼다.

 

한연규 교수는 연기과 학과장이자 성우를 편애한다고 소문이 났던 바로 그 교수였다. 학교에서는 성우의 이후 거취 문제를 판단할 권한이 가장 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한연규가 성우를 왜 불렀을까. 다니엘은 성우 개인의 문제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스스로의 궁금증을 이길 수 없었다. 헐떡이며 당도한 한연규의 사무실 문은 조금 열려 있었다.

 

기회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 아니야?”

 

한연규의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생각해 봐, 성우야. 딴 애들은 못 잡아서 안달인 기회를 너는 제 발로 걷어차 버리는 걸지도 모른다고.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언제까지 사람들이 너한테 관심 있겠니? 인기 그거 진짜 반짝이다. 순간이야. 근데 그렇기 때문에 쓸모없는 게 아니야.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붙잡아야 되는 거지. 너도 그걸 알아서 방송에서 그런 거 아니었겠어? 본능적으로라도 말이야.”

…….”

물론 학교에서 연기를 차근차근 배우고 싶다는 네 마음 존중하고, 학생으로서 아주 좋은 마음가짐이지. 근데 연기를 왜 배우는데? 연기자 되려고 배우는 거 아니야? 연기만 배웠다고 다 유명한 배우가 되는 거 아닌 거는 알잖아. 다 때가 있고 운이 있어. 운이 없으면, 때가 안 오면 암만 연기 잘 해도 아무 짝에도 소용없어. 그리고 너한테는 지금이 그 때이고 운인 거 같아, 내 생각엔. 이거는 내가 교수로서가 아니라 같은 연기자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다.”

…….”

학교에서 배우는 거 소속사에서 다 시켜준다, 성우야. 연기레슨, 특히 매체연기. 탄탄한 데 골라서 들어가면 돼. 그럼 드라마도 영화도 금방이다, 너 정도 마스크면 특히. 대중이 인정해준 거 아니냐, 브라운관에서 스크린에서 더 보고 싶은 얼굴이라고.”

…….”

 

저 머저리. 순 바보 천치. 혓바닥 놔뒀다 국 끓여먹을 셈인지 왜 한 마디를 반박을 못하나. 방송에서 일부러 그런 거 아니라고, 사양했는데 편집됐다고, 유명해질 생각 없다고, 매체 연기 싫다고, 무대에 서고 싶은 거라고, 학교 그만두기 싫다고, 여기서 공연하다가 밖에서 나가서 공연하고 싶고 죽을 때까지 공연하고 싶다고, 아무도 안 믿을지 몰라도 난 연극배우라고 말을 하란 말이다. 산울림소극장에 대해서 말하란 말이다. 이방인에 대해서 말하란 말이다. 태양에 대해서 말하란 말이다. 널 사로잡았던 그 망할 놈의 부조리한 운명에 대해서 입을 열어서 말을 하란 말이다.

 

제가 이 상태로 계속 학교를 다니면 다른 학생들한테 방해인가요, 선생님.”

 

그딴 추한 소리 말고.

 

원래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은 빨리 올라가주는 게 뒷사람을 위하는 일이야.”

 

그딴 추한 소리 듣지도 말고.

 

태양을 본 이방인처럼 모두 찔러 죽여 버려라.

왜냐하면 너는 고귀하고 아름다운 사람이니까.

 

다음 순간 성우가 하도 갑자기 문을 열고 사무실을 나오는 바람에 다니엘은 몸을 숨길 겨를이 없었다. 문간에서 성우와 그대로 맞닥뜨렸다. 성우의 굳은 얼굴을 보았다. 커다랗게 뜬 눈 안에 눈물을 그렁그렁 머금은, 눈꼬리가 새빨갛게 물든, 얇은 입술을 살짝 벌린, 그 아름다운 얼굴을 멍하니 보았다.

 

그러니까 또 아무 말을 못해 준 것이다.

그래서 성우가 웃었다.

 

뭘 빤히 봐?”

 

웃는 것이든 우는 것이든 안면근육을 찌그러뜨리는 일이기는 매한가지였기에, 그것으로 양쪽 눈에 넘치기 일보직전으로 고여 있던 눈물방울들이 후두둑 흩어졌다.

 

그렇게 예쁘냐?”

 

그에게서 상상해본 일 없는 조롱조로 쏴붙이고서, 성우는 다니엘의 어깨 옆을 스쳐 지나가버렸다.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뚜벅뚜벅, 그 가냘픈 몸으로 저다지도 다부지게 걸을 수 있었나 신기할 정도로 성큼성큼, 콘크리트 벽면으로 둘러싸이고 형광등 불빛이 침침한 복도의 소실점을 향해 멀어져갔다. 너는 마지막 기회를 놓쳤다, 나는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듯이.

 

 

*

 

 

봤어?

 

옹성우는 여전히 그 말을 들으면서 산다. 이제는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 봤어? 옹성우 찍은 광고 봤어? 화보 봤어? 기사 봤어? 인스타 봤어? 촬영장 비하인드 봤어? 인터뷰 봤어? 드라마 봤어? 예능 봤어? 영화 봤어? 시사회에서 봤어? 팬미팅에서 봤어? 방송국에서 봤어? 봤어? 봤어? 봤어?

 

보지 않았다.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다.

 

그래도 이 나라에 살고 있으므로 가끔은 어쩔 수 없이 보게 된다. 길을 걷다가, TV를 보다가, 잡지책을 뒤적이다가, 영화를 보다가, 그보다 더 빈번하게 회상에서나 꿈속에서 피할 도리 없이 그를 본다.

 

볼 때마다, 가능한 한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여전히 예쁘다.

 

너는 여전히 예쁘고.

나는 여전히 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