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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녤옹

 

 

 

 

너네 진짜 친한 것 같애. 소꿉친구야?”

 

소꿉친구겠냐? 얘네 처음에 어색했어. 내가 더 친했으면 친했지. 솔직히 말해. 너네 사귀지?”

 

아니?”

 

 

가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난감한 마음을 숨길 길이 없어 머리를 긁적이다 다니엘을 쳐다본다. 다니엘은 진짜 오래 알고 지낸 소꿉친구도 있다. 괜히 나라고 하니까 이상한 마음이었다. 다니엘 역시 같은 마음인지 역시 머리를 긁적인다. 그러다가 눈이라도 마주치면 재미있다. 우리는 둘 다 같은 방향의 손을 머리 위에 올리고 있으니까.

 

 

 

 

 

우리의 세계

신폥 씀

 

 

 

 

 

3이 되었어도 새로운 친구들과 만난다는 설렘은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12년 동안 항상 이맘때는 두근거렸다. 교실에 아는 얼굴이 있나 살피는 모습부터가 다들 나와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이전과는 다르게 1년 후면 각자 다른 세계에 살면서 흩어지게 될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1년은 누구보다 평화롭게 지내고 싶어서 나도 주변을 돌아봤다.

 

, 방금 눈이 마주친 것 같은데.

 

내 눈과 높이가 비슷한 시선이 느껴졌다. 시선을 따라가니 창가 자리에 앉아 엎드려 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보이는 건 머리꼭지와 덩치뿐이었는데 바로 알 수 있었다. 오늘도 처음봤던 그 때처럼 그는 빛가루를 받고 있었다. , 얘도 같은 반이구나.

 

17. 그 때 나는 이미 다니엘을 알고 있었다. 입학하고 가입한 동아리가 선도부라 조를 정해 격주로 번갈아가며 아침시간에 일찍 와서 서 있던 날 중 하루였다. 빛이 가루처럼 머리에 떨어져 반짝이던 그를 멍하게 쳐다봤던 기억이 있다. 웃으며 친구들과 우르르 지나가던 그에게 시선이 박힌 채 움직이지 못한 건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을 거다.

 

그의 이름은 다니엘이다. 이름이 특이해 우연히 알게 된 이후 머리속에 콕-하고 각인됐다. 이전부터 신경이 쓰였다. 딱히 좋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지나가면서 웃는 모습만 봐도 밝고 해맑은 것이 주변 사람을 기분좋게 해주는 느낌이었다. 귀에 작은 귀걸이가 항상 걸려 있었는데 선도부인 다른 선배가 예전부터 잡지 않기에 그 부분은 특별히 신경쓰지 않았다. 그 외 교복길이, 명찰, 외투, 머리색 모두 걸리는 게 없어서 아침시간에 지나가면서 단 한 번도 말을 건네본 적이 없었다. 동갑인 건 알고 있었는데 말을 건넬 일도 없었고 그가 지나가면 그냥 힐끔 보며 의식하는 정도?

 

그냥 같은 반이 되어서 신기하다. 말은 한 번 건네 보겠네, 생각하며 웃었던 것 같다. 그 때는.

 

 

 

 

 

 

그 이후 사귀냐는 우스갯소리를 들을 정도로 이렇게 친하게 될 줄 몰랐다. 출석번호가 앞뒤 번호라서 친해진 애가 다니엘이랑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관계로 다같이 점심 먹는 사이가 되었고, 그 그룹 안에서 얘기를 하다가 다니엘이랑 내가 말이 잘 통한다는 것을 알았다. 보기에는 되게 밝고 착해보이면서도 막상 더 친해지려면 사람을 가리는 타입일 것 같았는데 아니었다. 다른 애들은 둘만 남았을 때 어색할 때가 있는데 다니엘은 아니었다.

 

 

, 샀어?”

 

. 아줌마가 내 돈을 제일 먼저 받으셔가지궁..”

 

 

특히 먹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는 매점갈 때 항상 같이 다녔는데 키 큰 애 둘이서 매점 문을 열고 목소리 큰 나와 덩치 큰 다니엘이 그 많은 애들 사이를 둘이 딱 붙어서 지나가면 딱이었다. 가끔 무리들과 얘기하면서 힘주고 개그하면서 재밌다는 얘기를 듣는것보다 별 거 안하도 다니엘이 그냥 웃어주는 모습을 보는 게 더 좋을 때가 있다. 잘 웃어주기도 하고.

 

그래서 둘이 있는 것도 편하다.

 

 

슈크림빵. 질리지도 않아?”

 

, 안 질려. 맛있어.”

 

나 그럼 딴 거 줘.”

 

 

식성도 비슷하다. 빵을 좋아한다는 건 같은데 그 안에서 취향을 나누자면 또 은근 달라서 같이 나눠먹기도 편하다. 빵뿐만 아니라 다니엘은 나처럼 햄버거도 좋아하고 떡볶이도 좋아한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피자라는 것도 같다.

 

학교 끝나고 같이 분식집 앞을 지날 때면 적당한 공복감에 흘러들어오는 떡볶이 냄새가 뱃속으로 퍼져 떡볶이가 먹고 싶어질 때도 있다.

 

 

.”

 

?”

 

떡볶이 먹고 가자. 내 먹고 싶다.”

 

? 나도 먹고 싶었는데?”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떡볶이를 먹자고 얘기해서 학교 앞 떡볶이집을 1, 2학년 합쳤을 때보다 더 자주 간다. 다니엘과 가면 떡볶이에 순대, 튀김, 오뎅까지 한꺼번에 다양한 메뉴를 같이 먹을 수 있어 좋았다.

 

 

 

 

 

실은 다니엘에게는 진짜 친한 소꿉친구가 있다. 황민현이라고 엄마들끼리 조리원 동기라서 아기때부터 알던 사이라고 했다. 사는 동네도 같고 부산에서 인천으로 중간에 이사를 왔는데 이사도 거의 동시에 와서 어린이집, 유치원 모두 같은 곳이었다고. 그 덕분에 민현이 초등학교 입학할 즈음에 1살 어린 다니엘이 쟤랑 같이 가야된다고 떼를 써서 1년 먼저 입학했다는 얘기를 해줬다. 그 친구를 따라 1년 먼저 입학한 거다. 오래된 친구구나. 진짜 친한 친구.

 

같이 돌아다니는 건 반이 다를 때 지나가면서 자주 보지는 못했는데 같은 반이 되서 보니 친목이 있다. 가끔 쉬는 시간에 반으로 찾아오기도 했고 다니엘이 자리에 안보인다 싶으면 그 친구네 반에 놀러가거나 체육복을 빌리러 가는 식으로.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지금처럼.

 

 

안냥?”

 

, 다니엘 친구구나. 안녕? 다니엘 있어?”

 

 

그 친구랑 둘이서만 대화를 해보는 건 처음이다. 다니엘과 같이 다니면서 마주치며 얼굴은 익힌 사이이긴 하다. 굳이 인사를 하기에는 어색한 사이. 하지만 다니엘도 없고 그나마 그를 자주 본 사람은 나라고 생각해 인사를 해봤다. 다니엘은 아직도 부산 사투리를 쓰는데 이 친구는 이미 다 고쳤다. 서울 사람이라도 믿겠다 싶을 정도로 깔끔한 표준어다.

 

그리고 다니엘처럼 키도 크고 잘생겼다.

 

 

다니엘 지금 없는데. 뭐 필요한 거 있어?”

 

나 오늘 체육복을 안 가져와가지고.”

 

 

우리반의 체육 시간은 내일 2교시라 다니엘의 사물함에 가서 체육복을 꺼냈다. 다니엘의 허락을 따로 받진 않았지만 아마 그가 있었어도 똑같이 했을 거라 생각해서 바로 꺼내서 대충 개켜 그에게 건네주었다.

 

 

이거. 다니엘 꺼.”

 

고마워.”

 

. 대신 다음에 나도 필요하면 빌려줘.”

 

 

남의 걸로 생색내는 느낌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니엘의 소꿉친구라고 하니 나도 친해지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하루는 체육복이 있는데 내꺼가 더러워졌다는 이유로 황민현한테 체육복을 빌리러도 갔다. 물론 다니엘은 알고 있기도 하고 친구니까 따라왔다. 별로 내키지는 않는 표정이었다만.

 

 

안녕? 나 체육복 빌려줘.”

 

그래. 그 때 다니엘꺼 빌려줬으니까. 나도 빌려줄게.”

 

 

민현의 체육복에서는 섬유유연제향이 솔솔 났다. 다림질을 한 것 같지 않은데 반듯하게 펴져있기도 했고. 사물함에 아무렇게나 넣어둬서 쭈글쭈글한 다니엘의 체육복이랑은 달랐다.

 

 

고마워. 빨아서 돌려줄게.”

 

옹성우라고 했지? 하하하. 다음주 화요일 전에만 가져오면 돼.”

 

황제민현, 나 간다.”

 

, . , 그리고 엄마가 한 번 놀러오래. 너 요즘 왜 안 놀러오냐는데?”

 

봐서.”

 

 

다니엘이 어깨를 두드리며 몸을 돌리기에 그의 장단에 맞춰 뒤돌았다. 교실로 이동하는 동안 빌린 체육복에서 섬유유연제 향기가 솔솔나서 양손으로 잡고 코에 대봤다. 체육 끝나고 바로 빨아두나보다. 아니면 체육복이 여러 벌 있거나. 부지런하네. 나는 이렇게 부지런하지 못하다. 다니엘도 그렇고.

 

 

너 사이즈 안 맞잖아. 왜 걔한테 빌렸어. 그 반에 너 친구도 있으면서.”

 

 

그 반에 친구가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을까. 알려준 적은 없었는데.

 

 

내 맘. 그래두 길이는 맞아.”

 

너 지금.”

 

지금 뭐..”

 

아니다 됐다.”

 

 

안 지 오래된 친구사이라 둘은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할 때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없는 것에서도 둘은 친하게 대화할 수도 있을 거고. 그 때마다 멍하니 뒤에 서있고 싶지는 않았다. 다니엘의 친구라 그런지 나도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었다. 몇 번의 교류 끝에 민현과 나는 친구가 됐다. 친구라고 해봤자 번호 교환하고 가끔 지나가면서 보면 인사하고 정도. 단 둘이서 다니엘이랑 나처럼 엄청 붙어다니고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적당한 관계로. 그렇게 인사하고 볼 때면 항상 다니엘이 있었고.

 

 

 

 

 

3이니까 공부도 같이 했는데 학업의지를 불태우기 위해 대학교 도서관도 같이 다녀보고 동네 독서실도 같은 곳으로 끊었다. 특히 수학이 어려워 과외도 같이 했는데 그룹과외로 성적별로 듣는거라 신경이 쓰였다. 문과임에도 수학은 곧잘 하는 나와는 다르게 다니엘은 수포자까지는 아니었지만 수열 같은 건 어려워했다. 그래서 그룹이 달랐다. 가끔 내가 속한 그룹이 늦게 끝날 때도 있고 다니엘 그룹이 늦게 끝날 때도 있는데 그래도 우리는 집에 같이 갔다.

 

기다릴 때 그 그룹에는 내 그룹와 달리 여자가 있어서 남자 2명 여자 2명인데 그 중 한 명 남자애가 같은 그룹 여자애랑 썸을 타는 건지 공부방 거실에서 기다릴 때면 떠들썩한 것이. 다니엘 목소리도 들리고. 분위기가 좋아 보였다. 그래서 궁금했다.

 

과외가 끝나는 날에 같이 버스를 타고 갈 때도 핸드폰도 꺼내서 검색만 하는 애가 엄지손가락을 움직이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을 때면 뭐하는건지 약간 궁금한데 물어볼 때마다.

 

 

다니엘, 뭐해?”

 

아 걔네들 웃겨서. 우리 이번 중간고사 끝나고 같이 놀이동산가재.”

 

3이 무슨 놀이동산이야.”

 

그치? 그래서 거절하는 중.”

 

 

대답을 듣고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는 느낌이 든다면 이건 왜일까.

 

 

다음에 갈래?”

 

?”

 

나 다음에 얘네들이랑 말고 너랑만 갈까 싶어.”

 

그래.”

 

 

과외는 같이 버스를 타고 움직였다. 과외가 없는 날은 야자가 끝나면 학교랑 집이 가까운 다니엘이 버스정류장까지 날 데려다줬다. 그 때 다니엘이 딴짓을 하면 되려 말을 걸어서 나에게 집중하게 했다. 버스가 올 때까지 반복된 얘기 반복을 하고. 같이 겪기도 하는 학교 얘기고 별 거 아닌데 다니엘의 입으로 말이 나오면 새롭고 재밌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날 위해 자신이 입고 있는 기모후드집업을 벗어 걸쳐주기도 했다. 자긴 열이 많다면서. 그러면서 가을에 웬 기모야. 물론 다니엘이 가지고 오는 계절의 늦은 가을부터는 다니엘의 기모후드집업은 오롯이 내 차지였다. 학교에서건 밖에서건.

 

 

 

 

 

 

 

다니엘은 댄스부라 팬도 많았다. 후배들이 교실 앞으로 찾아와서 선물도 주고 가끔 수줍다는 듯 다니엘을 불러달라는 얘기도 많이 한다. 남자학교인데도 인기가 많았다. 그 때마다 난 모르는 척 지나가면서

 

 

이거 먹어도 돼?”

 

 

물었고.

 

 

먹어도 돼요!”

 

 

후배들의 먹어도 돼요를 꼭 듣고 씩 다니엘을 보고 웃으며 그가 받는 선물 귀퉁이를 잡는다. 허락을 받았으니 반 정도는 내게 소유권이 있다는 듯이 행동해본다.

 

 

고마워, 잘 먹을게.”

 

 

다니엘은 후배들 앞에서 멋진 선배인 척 한다. 사투리도 안 쓰고 허스키한 목소리를 낮게 깔아 무게있는 느낌을 낸다. 문 앞으로 오는 후배 중에 잘생긴 애도 있었고 하얗고 귀엽게 생긴 애도 있었다. 나는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친다.

 

 

, 왜 자꾸 내 꺼 뺏어먹어.”

 

나도 팬 있어. 우리 선도부 후배님들.”

 

 

먹을 거 말고 학용품을 줘서 그렇지. 나는 선도부라 후배들도 모범적이었다. 3이라고 핫팩, 끊기지 않고 잉크가 잘 나온다는 일제 볼펜, 노트 같은 것들을 선물로 받았다. 나눌 수 없는 것들. 만약 먹을 것이었으면 다니엘도 나처럼 나눠 먹겠다고 미리 후배들한테 말을 했을 거다.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보면서.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 너 괜찮아?”

 

. 괜찮아.”

 

너 얼굴이 하얘.”

 

아침을 못 먹어서.”

 

 

아침에 저혈당이라 아침밥을 꼭 먹고 나오는데 지각할까봐 그냥 나온 날이었다. 결국 그 날 지각했지만 바로 아침조회에 1교시 수업시작이라 매점을 못 갔다. 1교시 끝나고 다니엘이랑 매점가려 했는데.

 

수업은 시작됐고 배가 고픈 느낌에 책상 위에 고개를 대고 엎드렸다. 볼펜뚜껑 여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아무래도 배가 고파서 신경도 몸도 예민해진 느낌이라 손을 들고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다고 허락을 받았다. 주머니에 돈을 넣고 매점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어서서 책상을 등진 순간 교실 뒷문 앞에 있는 사물함이 핑하고 돌았다.

 

 

성우야!”

 

옹성우!!”

 

 

순간 기억이 없었다. 눈을 뜨니 나는 교실 바닥에 누워있었다. 넘어진 건가 쓰러진 건가. 아무튼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한테 둘러 쌓였다. 선생님도 놀라셨는지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쓰러진 것 같으니까 갑갑하지 않게 단추랑 허리 벨트 푸르고.”

 

제가 할게요.”

 

 

다니엘은 묵묵히 손을 움직였다. 내 목을 갑갑하게 감싸던 단추 세 개를 풀고 허리벨트를 푼다. 정신없는 와중에 벨트의 쇳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불규칙하게 오르락내리락하며 숨쉬는 다니엘이 보인다. 달려나왔구나.

 

 

선생님 제가 양호실 데려다줄게요.”

 

, 그래. 다니엘 좀 부탁할게. 선생님이 양호실에는 말해놓을게.”

 

 

영화나 만화에서 보던 공주님 안기같은 건 아니었고 단순 부축이었다. 몸의 대부분을 다니엘에게 기댄 채 원래 그의 걸음에 비해 한참 늦은 속도로 걸었다. 걸음 속도 맞추느라 힘들었을 테고 기댄 몸이 꽤 무거울텐데 용케도 지지하는 몸이 흔들리지 않는다.

 

 

쓰러졌다고?”

 

.”

 

지금은?”

 

지금은 괜찮아요.”

 

오늘 조퇴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부모님 모셔와. 저혈당같은데 병원가서 링겔 좀 맞고. 힘들면 잠깐 누워있어.”

 

 

저혈당인데 아무것도 먹지 않아 그런 것 같았다. 배고픔은 해결되지 않았다. 이러다가 또 쓰러지겠는데. 주린 배를 잡고 일단 양호실 침대에 누우려는데 들리는 똑똑소리.

 

 

선생님, 안녕하세요. !!”

 

?”

 

이거 먹어.”

 

 

그가 건넨 건 슈크림빵, 초코빵, 팥빵, 그리고 우유 2. 손을 내밀자 우유 한 팩의 뚜껑을 열고 빨대를 꽂아서 내게 건넨다. 그가 준 우유를 마시자 껍질을 벗긴 슈크림빵이 반대손에 쥐어졌다. 살 것 같았다.

 

 

 

 

 

 

 

우리는 서로 다른 학교에서 수능시험을 봤다. 시험이 끝나고 많이 울었다. 가채점을 하고 보니 생각보다 점수가 안 나와서. 밖은 정말 추웠는데 아무도 없는 얼음공기를 맞으며 공원을 뛰었다. 바람을 정면으로 맞고 뛸 때마다 다니엘 생각이 났다.

 

그리고 연락을 했다. 수능시작할 때 꺼둔 핸드폰을 이제야 켰다. 다니엘의 전화는 꺼져 있었다. 연락이 안됐다. 나랑 같은 상황인 건가. 궁금하고 목소리도 듣고 싶고 보고 싶은데. 그때 생각했다. 나는 다니엘을 좋아하는구나. 이렇게 힘들 때 밖에 나와서 연락을 하며 집에 기다리고 있을 가족보다도 더 의지하고 싶을 만큼.

 

 

깨달은 순간 마음정리를 해야했다. 아마도 진작에 알고 있던 마음이고 깨달은 게 지금이었을 뿐이겠지만 우습게도 차곡차곡 무릎을 꿇고 마음을 접었다. 우리는 곧 졸업을 할 테니까.

 

 

다음날 학교를 가니 연락이 되지 않던 다니엘은 얼굴과 눈이 퉁퉁 부어서 왔다.

 

 

시험 망했다 아이가.”

 

, 나도.”

 

우리 이런 것까지 같으면 어쩌노.”

 

 

사이언스 사이언스를 외쳤지만 우리 둘의 과학탐구 점수는 특히 좋지 않았다. 평소에 봤던 모의고사만큼의 점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전형에 잘 맞춰서 잘 본 과목만 반영하면 괜찮은 과를 갈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래서 학교에서 단체로 방문하는 대학교 설명회 말고도 따로 입시설명회도 신청해서 다니고 같이 입시박람회도 신청했다. 서로 성적을 공개한 우리 둘만.

 

 

박람회 마지막 날 저녁으로 스파게티를 먹었다. 날은 아직도 추웠고 입고 있는 코트 사이로 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추위도 타는 게 왜 코트 입었어.”

 

성적때문에 쭈굴거릴까봐 차려입고 가서 당당하고 싶어서.”

 

속에 뭐라도 더 걸치고 오지.”

 

내복 입었어.”

 

 

패딩을 입은 다니엘이 지퍼를 열고 품 안을 양보했다. 안그래도 열이 많은 다니엘의 품 안은 굉장히 따뜻했다. 스킨십은 원래 하는 편이라 주변 시선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일단 추웠으니까. 품에 파고든 나를 내려다보는 그의 시선이, 그의 올라간 입꼬리가 행복해 보였다. 요즘 고민이 많은 건지 살이 빠져 드러나는 턱라인도 멋있었다. 얼굴이 가까웠다. 뽀뽀하고 싶었다. 아니면 뽀뽀를 해줬으면 했다. 오늘같은 날은 내가 하든 그가 하든 누구도 거부하지 않았을 거라는 걸 나는 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선을 넘어선 안된다. 우리는 이제 졸업을 해야했고 각자의 성적에 맞춰 입학을 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하고 곧 깨어질 어설픈 유사연애 관계보다는 여태껏 그래왔듯 완벽한 친구 사이로 자리를 잡는 게 더 좋을 거라 생각했다.

 

 

 

 

 

 

 

겨울방학 때 원서를 넣었고 다니엘과는 방학하고 한 두 번 연락을 했다. 방학 중간에 예비번호 꽤 앞순위였던 대학교의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래서 아직 합격통보가 오지 않은듯한 다니엘에게 더더욱 연락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졸업식을 했고 다니엘과 나는 다음날 친했던 같은 반 애들이랑 다같이 술을 마셨다. 처음 마시는 술이었다. 입학이 확정된 나와 다른 친구들, 연락이 오지 않아 재수를 결정한 다니엘, 그 외 중국으로 유학가는 친구, 취직하는 친구... 다 이렇게 흩어진다. 다니엘도 이렇게 흩어지는 친구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술때문인지 모를 입이 쓰다.

 

끝나고 술에 취했는지 횡설수설하면서 상태가 안좋은 애들은 모두 보내고 다니엘과 나는 공원을 한바퀴 돌기로 했다. 아직 추워서 오늘의 나는 패딩을 입었다. 목도리도 했고.

 

 

재수하면 핸드폰 없애?”

 

.”

 

그래? 그럼 다시 핸드폰 살릴 때 말해줘. 연락할게.”

 

 

다니엘이 걸음을 멈췄다.

 

 

나 너 좋아하나봐.”

 

?”

 

 

친구로 친하게 지내려는 내게 뜬금없는 소리가 들린다. 그를 쳐다보려고 몸을 돌리며 내 걸음도 멈춘다.

 

난 결론내기까지 오래 걸렸는데, 끝까지 말하지 않았는데 다니엘은 달랐다.

 

 

겨울방학 때 우리 연락 많이 못했잖아.”

 

, 그렇지.”

 

너랑 그렇게 점점 연락이 안될 거라 생각하니 뭐하는지 궁금하고 답답하고 그래.”

 

“...”

 

나 너 좋아하나봐. 실은 전부터 생각했어.”

 

 

나도 그런 때가 있었다. 특히 박람회 마지막 날. 그래서 더 일부러 방학 때 연락을 하지 않았고 마음은 타들어가고 궁금했지만 잠깐이면 될 거라 생각했다. 우리는 친구니까.

 

 

다니엘, 시간이 지나면 아마 변할 거야. 금방 익숙해질거야.”

 

아니라니까 나름 열심히 생각했다니까.”

 

나도 예전엔 그랬어. 너 정말 좋아했어. 생각해보니 작년 한해는 너가 나의 전부였어. 미리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

 

예전엔? 왜 과거형이야? 그리고 언제? 왜 그 땐 말 안했어?”

 

 

나도 그 때는 몰랐으니까. 차마 이 말은 하지 못했다. 나도 늦게 깨달았다고 말하기에는 마음정리하는 데에 한참 걸렸고 실은 다 다듬어지지도 않았다.

 

결국 다시 헤집어 엎은 건 다니엘이다.

 

 

그럼, 내가 시간이 지나도 너만 바라본다는 걸 증명하면 돼?”

 

모르겠어. 마음을 어떻게 증명해.”

 

그리고 너는 그럼 나를 좋아하는 마음이 다 사라졌어?”

 

 

그럼 우리 이제 어떡해야 할까.

 

이렇게 계속 좋아하게 되서 사귀면 나중에 헤어지고 연락못하는 시간들이 그리울텐데 괜찮은 걸까. 우리 나중에 달라지면 어떡하지? 지금도 좋은 친구 사인데 그냥 이대로 쭉 가는 건 어떨까.

 

고민을 하는 동안 시간은 간다. 지금은 12분 남짓의 시간이 갈 뿐이지만 나중에는 1개월, 1, 혹은 10년이 될 수도 있다. 기껏 정리한 마음으로 만들어놓은 친구 사이가 소원해져서 더 섭섭해면 나중에 나는 후회할까?

 

어떤 것을 택해야 할 지 모르겠다. 실은.

 

하지만 하나는 알 수 있다.

 

 

아니.”

 

 

다니엘을 좋아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렇게 멀어질 거라 생각하니 더 커지기만 했다.

 

 

그럼 우리...”

 

 

다니엘의 목에 팔을 감았다. 발끝이 살짝 들린다. 위에서 폭 끌어 안아주고 싶었지만 오히려 다니엘이 내 허리를 양 팔로 감싸며 안아주는 형태가 되었다.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우리는 서로를 생각하고 챙기는 게 버릇이 되고 습관이 되어버린 걸. 지금 무슨 생각하는 지도 얼추 알 것 같았다. 무조건 다 안다는 말은 거짓이겠지만 우리의 오늘 대화는 알 수 없는 미래에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는 시작이 될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작은 습관 하나하나를 내 세계가 네 세계이듯, 네 세계가 내 세계이듯 공유하고 알고 있는 사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