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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녤옹

 

 

 

 

겨우내 겻다

 

 

 

 

 

 

 

 

한동안 비어있던 옆집에, 한 남자가 이사를 왔다. 다섯 식구가 터져 나가기 직전까지 생활하다 이사를 나가던 날에는 복도가 온통 소란스러웠다. 그러나 그 남자가 이사를 오던 날은, 복도 타일 위를 굴러가는 캐리어 바퀴 소리 딱 한 번, 그뿐이었다.

다니엘은 그 남자를 본 적이 있었다. 간식을 사러 나갈 겸 트레이닝복에 대강 팔다리를 끼워 넣고 문을 열었을 때, 오래된 복도식 맨션의 저쪽 끝에 남자가 서있었다. 다니엘은 귀신인 줄 알고 그 넓은 어깨를 구겨 접으며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민망한 소리를 내었다. 남자는 당연히 귀신이 아니었다. 하지만 남자는 제법, 귀신처럼 보였다. 타고난 피부가 하얀 것이 아닌데도, 복도 끝 어둠 속에 떠있는 남자의 얼굴은 희끄무레하게 질려 있었다.

 

하얀 니트에 검은 코트를 입은 남자는 몸이 길쭉하고 말라 위태롭게 보였다. 다니엘은 저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가 어쩐지 황망한 걸음으로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점점 다가올수록 남자의 얼굴이 연한 수채화에서 짙은 유화처럼 뚜렷해져, 다니엘은 부지불식간에 감탄하는 소리를 내었다. 제 한 손으로 뺨을 감아쥘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얼굴에 깊이깊이 팬 눈동자가 까맣게 빛나고 있었다. 꼭 그루밍을 잘한 까만 고양이 같다는, 그런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다니엘을 지나쳐 갔다. 다니엘은 남자가 옆집 문을 열고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입을 헤 벌렸다. 남자는 고작, 회색 캐리어 하나와 제 자신만을 추슬러 이곳으로 온 것 같았다.

 

남자는 일주일 간 코빼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다니엘은 남자가 집안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어떤 소리가 없는 남자의 집에서, 다니엘은 저와 벽 하나를 면하고 있는 남자의 침실을 알았다. 그들이 사는 맨션은 다니엘의 나이보다 오래되어 희한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각 집이 등을 맞대고 있는 터에 다니엘은 제 머리맡에 그 역시 머리를 대고 있다는 것을 능히 짐작했다.

 

우는 소리가 났다. 엉엉 울지도 못하고, 입을 틀어막아 어깨를 들썩이며 울음을 삼키는 소리였다. 다니엘이 본 그의 얼굴은 차갑고 단단해 보여서, 그가 그렇게 우는 모습이 상상되지 않았다. 감정 한 번 토해내지 못하고, 누군가를 원망하지도 못하고, 그저 섧게 우는 것밖에 할 수 없는, 버려진 어린아이 같은 울음이었다.

 

와 저리 서럽게 우노.”

 

품 안에 안긴 루니가 야옹 하고 울었다.

 

다니엘이 남자를 다시 만난 것은 이주 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어제까지로 남자가 이사 온지 한 달. 다니엘은 총 열 다섯 번 남자를 볼 수 있었다.

이 맨션이 낡아빠진 외관에도 아직까지 매물이 나오면 심심찮게 매매가 되는 이유는, 오로지 맨션 앞의 바다 덕분이었다. 까만 겨울의 고목들이 하늘의 액자처럼 죽죽 뻗어 해변을 감싸고 있는 하얀 모래 가득한 바다. 겨울의 바다는 흐르는 것보다는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 같았다. 아득한 수평선을 벽으로 삼아 느리고 묵직하게 출렁이는 청회색의 우울.

 

남자는 한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백사장에 앉아 있었다.

 

바다 위로 눈이 내렸다. 무겁게 출렁이는 청회색의 겨울 바다. 그 위로 소복소복 내리는 눈은 수면에 닿자마자 순식간에 녹아내려 아지랑이처럼 사라졌다. 물비늘조차 머무르지 않는, 하얗고 묵직하게 얼어붙은 창백한 하늘 아래 외롭게 출렁이는 바다. 겨울이면 바닷바람이 매서워 사람들이 찾지 않는 그 황량한 해변. 다니엘은 짝다리를 짚은 채 남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남자는, 모래 위에 앉아 있었다. 검은 코트에 모래가 엉겨 붙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목까지 올라오는 하얀 니트 속에 조그마한 얼굴을 파묻은 채 남자는 까만 눈동자로 겨울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남자의 작은 얼굴 속에는 깊은 눈매와 반듯한 콧날, 자그마한 입매가 가득 들어차 어딘지 모르게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다니엘은 주머니에 두 손을 깊이 쑤셔 넣고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자신이 아침에 집을 나설 때부터 그곳에 앉아 있었다. 겨울의 바닷바람은 매서워, 남자의 귓바퀴가 빨갛게 얼어 있었다. 남자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한없이 바다의 어느 부분을 바라보았다. 소년은 남자가 보는 것이 수평선인지, 출렁이는 부표인지, 하얗게 포말이 이는 파도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가족들을 캐나다에 두고 온 다니엘은 방학 때에는 퍽 무료해졌다. 루니와 피터와 실컷 놀아주고 나면 매정한 고양이들은 주인의 체력이 아직 한참 남았음에도 하품을 하며 캣 타워 안에 동그랗게 몸을 말곤 했다. 루니야, 피터야- 더 놀자고 오뎅 꼬치를 흔들며 꼬셔도 꼼짝도 하지 않는 제 동반자들에 훌쩍이며, 다니엘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오늘도 그곳에 있었다. 옷이 사람을 입은 듯 품이 큰 점퍼를 어깨 위로 걸쳐, 남자의 모습은 실제보다 훨씬 자그마하게 보였다. 두꺼운 겨울 점퍼 위로 밤톨 같은 머리가 조그맣게 나와 있는 뒷모습이 묘하게 귀여워, 다니엘은 턱을 괴고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울음소리는 이주일 전에 멎었지만, 이제 남자는 바다를 보는 것을 제 일과로 삼은 모양이었다. 그림 같은 바다를 바라보는 그림 같은 남자. 다니엘은 한 폭의 그림 같은 그 광경에 어쩐지 모르게 슬퍼졌다. 흐린 겨울의 하늘과, 묵직하게 출렁이는 바다 때문이었으리라.

 

 

 

 

다니엘은 아침부터 루니와 피터를 동물병원에 데려갔다 오는 길이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굳센 책임감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 다니엘은 오늘 아침 두 고양이의 정기검진일이라는 것을 알자마자 이불을 박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손에 하나씩 이동용 가방을 들고, 다니엘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도로 위를 걸어갔다. 여름인 마냥 얇은 트레이닝 복 반바지를 입은 그에게 행인들의 수상쩍은 시선이 닿았다 떨어졌다.

 

바다 좀 보다 가까.”

 

이동용 케이지를 놓자 야옹 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니엘은 슬리퍼를 신은 채 모래사장 위로 폴짝 내려섰다. 말랑말랑한 슬리퍼 안쪽으로 모래알이 좌륵 들어왔다. 하얀 발을 꼼지락거리며 다니엘은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구부정하게 다니던 어깨를 폈다.

겨울바람이 다니엘의 앞머리를 푸슬푸슬하게 쓸어 넘겼다. 겨울의 바람에는 날카로운 손끝이 달려 있는 것 같았다. 쫌 춥네. 훤히 드러난 종아리에 닿는 서늘한 바람을 느끼며 다니엘이 코를 훌쩍였다.

 

뭐꼬. 나가고 싶나. 별 일이네.”

 

케이지 입구를 박박 긁는 소리에 다니엘이 허리를 숙여 지퍼를 살짝 열어주었다. 멀리 가면 안 된다. 으름장 놓는 소리에 언제나 그렇듯 반응 하나 보이지 않고, 두 고양이의 말랑한 발이 모래밭을 밟았다. 다니엘은 주위를 살펴보았다. 바닷바람 때문인지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아, 다니엘은 적잖이 마음을 놓았다.

아니다. 하나, 보였다. 다니엘은 루니와 피터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모래밭에 푹푹 빠지는 슬리퍼 때문에 속도가 나지 않아, 긴 다리를 쭉 뻗어 겅중겅중 달렸다. 아마 저 앞에 앉아 있는 남자가 뒤를 돌아본다면, 제 꼴을 보고 웃어버릴 것이라 예상할 만한 모습이었다. 다니엘이 루니와 피터를 거의 따라잡았을 때, 루니와 피터 역시 남자에게 근접했다.

 

안녕.”

 

다니엘을 완전히 멈추게 한 것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예상한 것보다 높고, 예상한 만큼 또렷하고,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우울하게 들렸다. 본래는 그러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지금보다 훨씬 밝고, 훨씬 명랑하고, 훨씬 기쁘게 들렸으리라. 남자는 제 옆에서 꼬리를 세우고 한 발을 든 채 저를 갸우뚱 기운 머리로 바라보는 고양이들을 향해 엷게 웃어 보였다. 남자의 얼굴은 처음 보았을 때보다는 그래도, 어느 정도 혈색이 돌아 있었다.

 

어디서 왔니?”

 

가늘고 긴 검지가 조심히 뻗어져 고양이들의 바로 앞에서 멈추었다. 조금 더 자세히 고양이를 보려는 요량으로 고개를 돌리던 남자는 뒤쪽에 우두커니 서 있는 커다란 다니엘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 다니엘은 제가 낸 소리가 조금은, 멍하게 들렸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감탄사를 뱉지 않고는 견디기 힘들었다.

 

가까이서 다시 본 남자의 얼굴은, 다니엘이 처음 보았을 때보다 훨씬 더 선명했다. 무채색의 겨울 하늘과 겨울 바다 사이 색이 있는 것은 오로지 남자인 것처럼 보이는, 저만의 채도가 높은 사람.

그러면서도 표정과 태도에서 묻어나오는 분위기 때문에, 남자는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보였다. 무겁게 떨어지는 하늘과 묵직하게 버티고 선 바다 사이에서, 물안개처럼 흩어질 것처럼.

 

. 내 고양이라가꼬요.”

 

키도 훌쩍 크고 다리도 긴 그 남자가 올려다보는 모습이, 어쩐지 작은 동물 같아서 다니엘은 까만 눈동자를 향해 웃어 보였다. 억수로 잘생겼고, 억수로 귀엽네.

루니와 피터가 기어이 모래 구덩이를 만들며 우다다 달렸다가 다시 돌아와 뒹굴었다. 아이고, 미칫따. 언제 다 씻을라고 그라노! 다니엘의 말에 두 마리의 고양이가 동시에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 똑같은 태도가 귀여워 다니엘이 헤벌죽 웃었다.

 

남자는 그런 다니엘을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올려다보다가 픽 미소를 지었다. 힘없이 흘려내는 미소라, 겨울바다의 눈처럼 아스라이 사라졌지만 다니엘은 빠르게 그 표정을 읽어내었다. 담담한 침묵이 두 사람의 어깨에 쌓였다. 다니엘이 털어내는 것처럼 넓은 어깨를 꿈틀거렸을 때, 남자가 다시 작게 말했다.

 

안 추워요?”

서울말 쓰네요.”

 

남자는 그게 중요하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아주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인천 말인데요. 그 맥 빠진 대답에 다니엘이 킥 웃었다. 남자는 그들을 향해 달려오는 고양이들의 몰골을 보고 푸스스 웃었다. 아주 얇게 표면에 끼어 있던, 살얼음이 잘게 부스러지는 것 같은 웃음이었다.

 

내는 강, 다니엘이라고 하는데. 이름이 뭐예요?”

 

다니엘의 어투를 따라하듯, 그가 말했다.

 

저는 옹, 성우인데요.”

 

다니엘은 짧게 생각했다. 예쁘고, 잘생기고, 괜찮은 사람인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울었을까.

 

 

 

* * *

 

 

 

다니엘의 무료한 일상에 일과가 하나 끼어들었다. 느지막하게 일어나 루니와 피터의 밥을 챙겨주고, 침대에서 뒤척거리다가 고양이들이 낮잠까지 늘어지게 자고 나면 집 밖으로 나섰다. 루니와 피터를 데리고 나갈 때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니엘 혼자 나가는 것이 빈번해졌다.

 

성우는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 다니엘은 이곳 출신인 자신보다 더, 그가 이곳에 오래 있던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꼭 그렇게 조각상이라도 될 것처럼 그곳에 앉아 있었다. 다니엘을 마주칠 때마다 그는 놀란 듯 불편한 듯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을 보며 커다란 두 손으로 손뼉을 치는 다니엘을 올려다보았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파도가 일그러뜨리고 가는 모래를 응시했다. 다니엘은 그런 그의 옆에 앉았다. 뽀송뽀송한 점퍼를 입고 있는 다니엘의 물 빠진 금회색 머리가 푸슬푸슬 날렸다.

 

큰 의미는 없었다. 다니엘은 본디 살갑고 다정한 사람이었고. 결정적으로 다니엘에게는 여유시간이 너무 많았다. 다니엘은 성우가 제게 반응을 보이지 않아도 별로 개의치 않고 앉아 있었다. 처음에는 루니와 피터가 드물게도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신기해서, 지금은 홀로 앉아 있는 그 뒷모습이 어쩐지 혼자 둘 수 없어서. 다니엘은 매일 하루만큼의 핑계를 만들어 성우의 옆에 앉아 있었다.

 

내는 바다 좋아하는데, 바다 좋아해요?”

아니요.”

 

성우가 작게 대답했다. 온몸으로 대화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표현하고 있었지만, 다니엘은 그저 빙그레 웃었다. 잘 모르겠지만, 어쩐지 도움을 청하는 표정을 하고 있어서. 어쩐지 자신을 발견해달라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것 같아서. 다니엘은 성우가 꼭, 루니와 피터 같다고 생각했다. 탯줄도 채 떼지 못한 채 종이 상자에 버려져 있던, 누군가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죽어버릴 것 같은 연약한 생명들. 다니엘은 자신이 시선을 떼면, 성우가 바다로 걸어들어갈 것만 같아 그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

어쩌면 루니와 피터에게 미소를 보여줘서, 그 미소를 한 번쯤은 더, 볼 수 있을지도 몰라서.

 

안 추워요? 코트 얇은 거 같은데.”

 

루니와 피터를 데리고 온 날, 다니엘은 제 길쭉한 다리 아래를 빙글빙글 도는 루니와 피터의 꼬리로 장난을 치며 말했다. 대개의 경우 다니엘의 말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 성우는, 고양이들에게는 꽤 관대했다. 다니엘은 성우가 제게 머리를 톡톡 두드려 오는 루니를 보며 옅게 웃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귓바퀴와 코끝이 발그레한 것을 보니 꽤 추운 모양이었다. 바닷가의 겨울은 비밀스런 구석이 있었다. 바다 위를 날아 지표면으로 부는 바람이 뺨에 닿아서야, 바다의 겨울이 왔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조금요.”

 

성우가 작게 대답했다. 다니엘은 주머니에 손을 쑥 넣었다가 동그란 모양의 손난로를 꺼냈다. 이거 usb 충전인데. 얼떨결에 손난로를 받아든 성우는 손난로의 둥근 표면에 쓰여진 강 다 니 엘 커다란 글자를 보고 풋 웃었다. 다니엘은 민망한 표정으로 모래를 뒤적이다가 제게 두 발을 얹은 루니를 들어올려 뽀뽀를 퍼부었다. 단어로 형언할 수 없는 괴악한 소리를 내며 루니에게 뽀뽀하는 다니엘을 멍하게 바라보다가, 성우가 기어이 웃어버렸다.

 

우와. 웃는 거 와 이리 예쁘노.”

 

단박에 성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자 다니엘은 속으로 제 머리를 쥐어박았다. 입이 방정이다 니가. 입이. 성우는 다시 눈을 내리깔았다. 다니엘은 성우의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루니를 내려놓았다. 성우는 손난로를 양손에 쥐고 엄지로 표면을 만지작거리며 눈을 깜박였다. 그 옆모습이, 캔버스 위에 목탄으로 슥슥 그은 듯했다. 뿌연 하늘 위로 우울한 노을이 질 즈음, 다니엘은 졸린지 제게 치대기 시작하는 루니와 피터를 이동장에 넣었다. 오늘의 다니엘은 조금 풀죽어 있었다. 다니엘이 옷에 묻은 모래를 조심히 털고는 케이지를 한 손에 하나씩 들어 올렸을 때였다.

 

아주 가끔은, 누구나 예뻐하는 동물이 되었으면 좋겠어.”

 

다니엘은 눈을 둥그렇게 떴다. 처음으로, 그가 먼저 이야기했다. 처음으로, 무언가를 내려놓은 말투로.

 

그러면, 아무 것도 모른 채 사랑받을 수 있을 텐데.”

 

겨울바다가, 파도소리로 답했다.

 

 

 

 

내는 잘 모르겠다. 루니야.”

 

잠자는 피터 대신 야식을 만드는 다니엘의 말동무를 해주며 루니가 야옹 울었다.

 

엄청 잘생깄는데, 와 그리 금방 사라질 것처럼 보이노.”

 

재료를 모조리 프라이팬에 투하한 다니엘은 주걱으로 밥을 꾹꾹 눌러 펼치며 고개를 갸웃했다.

 

표정이 꼭 너네 같아서, 가만히 둘 수가 없는 거 있쟤.”

 

재료가 알맞게 익으며 고소한 냄새가 났다. 다니엘은 주걱으로 프라이팬 안을 휘적이며 눈을 깜박였다. 그래. 안 챙겨줄 수가 없다. , 너네 같다이가.

 

?”

같이 먹자고요.”

 

직경 삼십센치에 육박하는 프라이팬 가득 담긴 김치볶음밥을 내려다보며, 성우는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다니엘은 자신도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에 민망함을 느꼈지만, 짐짓 당당하게 어깨를 폈다. 현관을 꽉 채운 그 엄청난 체격에 질렸는지 성우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성우의 집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정말로, 아무 것도. 금방이라도 떠날 것처럼 보이는 그 방안은 다니엘의 방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온기가 가득한 다니엘의 방과 똑같은 구조로, 전혀 다르게 차갑게 가라앉은 방. 다니엘은 성우가 이 차가운 공간 탓에 매일 밤 흐느낀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다.

 

맛있지요?”

 

김치볶음밥을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은 성우의 눈썹이 꿈틀거리자, 다니엘이 박수를 치며 웃었다. 성우는 잠시 다니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다니엘은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성우에게는 그런 순간이 있었다. 동작을 멈추고, 다니엘을 바라보는 순간. 다니엘은 성우의 평소 행동이 의외로 느릿하고 나른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행동의 여유롭고 차분한 연속성을 끊어버리고 굳는 순간. 그러고 나면 어김없이, 성우는 덜컥 겁이 난 표정으로 다니엘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 내 특제 레시핀데.”

 

잔뜩 풀이 죽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성우가 서서히 표정을 풀고 옅게 웃었다. 맛있다며, 한쪽 볼을 동그랗게 부풀리고 오물오물 말하는 것에 다니엘이 입 동굴을 내보이며 커다랗게 웃었다. 성우는 잠시, 그런 다니엘을 슬프게 바라보았던 것 같다.

 

그 뒤로 다니엘은 계속해서 살갑게 성우에게 다가갔다. 낯을 조금 가리기는 했지만 본래가 유쾌하고 다정한 성정인 듯, 성우는 다니엘이 다가올 때마다 조금씩 자리를 내주었다. 우스운 표현이었지만, 정성을 다하는 보람이 있는 사람이었다. 꼭 고양이처럼, 꼭 인간에게 익숙해지는 새끼 짐승처럼, 다가가는 만큼 익숙해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다니엘은 성우가 생각보다 잘 웃고, 생각보다 실없는 소리를 많이 하고, 생각보다 훨씬 더 귀여운 성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 *

 

 

 

눈이 펑펑 오는 날이었다. 싸락눈처럼 흩날리는 것이 함박눈이 되어, 바다 근처의 도시로서는 드물게도 눈이 소복소복 쌓였다. 루니와 피터는 추운 날씨를 싫어하는지라 일찌감치 침대 속에서 잠들었고, 다니엘은 펑펑 내리는 눈을 내다보고 있었다. 문득, 다니엘은 성우를 생각했다.

 

그래도 최근에는 꽤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성우는 바닷가에 앉아 있는 대신, 가끔 다니엘에게 얼굴을 내밀었다. 다니엘은 성우가 손에 들고 있는 과일바구니를 보고 눈을 둥그렇게 떴다. 성우는 귓바퀴를 붉게 물들인 채 뭐가 좋을지 몰라서, 하고 오물거리며 말했다. 다니엘은 커다랗게 웃음을 터뜨리며 성우의 손을 덥썩 잡아 자신의 방으로 이끌었다.

 

다른 사람에게 낯을 가리는 루니와 피터도 성우에게는 살가웠다. 성우는 고양이를 기르는 친구가 없었다며, 고양이들과 놀아주다가 이따금 고롱고롱 잠들곤 했다. 샤워를 하고 나온 다니엘은 두 마리와 한 명이 침대 위에 똑같은 자세로 엎드려 졸고 있는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순간이 있었다.

성우가 다니엘을,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바라보는 순간이.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이 즐거우면서도 두려운 듯한, 그런 순간이.

 

눈이 펑펑 내렸다. 녹으면 난리날낀데. 다니엘은 양반다리를 한 채 두 손으로 발목을 감싸쥐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얀 하늘에서 형체를 육안으로 판별하기 힘든 눈이 내렸다. 다니엘은 천천히 시선을 내려 바다를 바라보았다. 청회색의 대륙이 출렁거리며 눈을 삼키는 것 같았다. 하얗게 쌓여버린 해변의 눈이 파도의 물결 그대로 녹아 모래밭을 드러내었다.

 

오늘은 성우가 없었다. 다행이었다. 이런 날씨에 앉아 있었다면, 다니엘은 비명을 지르며 이불을 들고 가 성우를 둘둘 말아 따뜻한 침대 안으로 밀어 넣었을 것이었다.

뭐가 두렵고, 뭐가 슬픈 걸까. 다니엘은 성우와의 시간이 유쾌했고 즐거웠다. 그렇기에 다니엘은 성우가 이따금 보여주는 딱딱한 표정들이 궁금하고 걱정스러웠다.

 

이상하쟤. 너무 신경이 쓰인다.”

 

기분이 간질간질했다. 다니엘은 성우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 예쁜 얼굴도, 호리호리한 몸도, 웃을 때면 패이는 볼우물도, 예쁘게 접히는 눈매도. 그가 풍겨내는 분위기도, 그가 있으면 변화하는 주변의 공기도, 성우가 제 곁에 있을 때 자신은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은데, 정작 성우 자신은 차갑게 얼어가 침잠하는 겨울바다 같아, 다니엘은 그가 언제나 안타까웠다.

 

그래서 다니엘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을 때 환청이라도 들은 듯했다. 너무 성우에 대해 생각하느라, 그가 찾아오는 소리를 들은 것은 아닌지. 결국 문 밖의 성우가 울먹이는 소리를 내었을 때, 다니엘은 몹시 당황한 채 문을 열었다.

 

뭐꼬. 성우 형.”

 

성우가 저보다 나이가 한 살 더 많다는 것을 알고 나서 다니엘의 호칭은 변화했다. 성우 역시 보다 편하게 다니엘에게 말을 걸었다. 다니엘은 코 끝에 훅 끼치는 술 냄새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혼자서 얼마나 마신 것인지, 성우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로 다니엘의 현관을 들어왔다. 두 어 번 발을 헛디디자 다니엘은 당황한 채로 성우의 허리를 감아 안았다. 두 팔 안의 허리가 생각보다 무척이나, 가늘었다.

 

다니엘.”

술 마셨나. 성우 형.”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이 낯설었다. 눈가가 조금 젖어 있는 것 같아, 다니엘은 마음이 좋지 않았다. 누군가의 낯선 모습을 보는 일은 다니엘에게는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다. 누군가를 조금 더 잘 알게 되는, 몰랐던 면모까지 알게 되는 그런 순간이라서. 그러나 성우의 모습을 앞에 두고, 다니엘은 복잡한 기분을 느꼈다. 내가 다가갈 때마다 멀어졌던 그가, 혹시나 이런 자신의 모습을 내게 숨기고 싶어한 거라면, 지금 그를 안아주는 것이 옳은 일인지.

 

성우는 무너져 내리듯 다니엘의 품으로 쓰러졌다. 눈을 잔뜩 맞은 것처럼 머리칼과 어깨가 온통 젖어 있었다. 그 상태로 다시 한참이나 추운 곳을 돌아다닌 듯, 성우의 어깨는 벌벌 떨리고 있었다. 다니엘은 여전히 당황스러운 채로 성우를 집 안에 들였다. 숨이 흘러나올 때마다 알콜향이 섞였다. 다니엘은 성우를 간신히 침대에 앉혀두고 얼른 부엌으로 갔다.

따뜻하게 데운 꿀물을 내밀었지만 성우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다니엘을 바라보았다. 다니엘은 매만지면 색이 묻어나올 것 같은 그 아름다운 얼굴 속에서, 그가 오랫동안 바라보던 바다 같은 슬픔을 발견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뚝 흘러내릴 것 같은, 차갑고 무거운 겨울 바다.

 

나는 사랑 같은 거, 정말 싫어.”

 

성우의 말에 다니엘이 눈을 커다랗게 떴다. 정말로 사랑 같은 거, 질색이야. 두 번 째로 말하는 성우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사랑을 불꽃에 비유하는 이들은 얼마나, 그 감정의 본질에 정확하였는지. 제 자신의 삶을, 제 자신의 가치관을, 자기자신을 소모해가며 다른 이를 은애하고, 그 감정이 다하면 남는 것은 초라한 잿더미 뿐인 것을.

그렇게 좋아했던, 그렇게 사랑을 속삭였던 관계가 남긴 건은 끝간 데 없이 소진되어 버린 자기 자신이었다. 닳고 닳아버린 마음은 모서리가 온통 갈려 어느 누구에게도 멈춰설 수 없는 원형이 되어 굴러간다.

 

나는 정말로, 사랑 같은 건 싫어.”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나를 사랑한다고 믿기도 했던 사람이었다. 어느 날 도로에서 처음 보는 사람과 손을 잡고 웃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일생의 연인인 줄 알았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고, 사람은 허나 쉽게 변한다. 그토록 깊었던 애정이 다른 것으로 변질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변해버린 감정이 내 안쪽에서 자라나는 가시가 되어 나를 찔러댈 것도 알지 못했다.

관계의 종언은 그것이었다. 차라리 그가 잘못을 빌었더라면 달랐을까. 그가 너무도 당당한 얼굴로, 나는 너에 대한 마음이 사라졌다고. 너무 오래, 너무 많이 써서 고갈되었다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태어날 때부터 고아였던 자신이, 처음으로 무한한 애정을 쏟았던 상대가 그렇게 말했다. 나는 네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 마음이 모두 걸어 나가버려서, 너에 대해 남는 게 없어.

성우는 그날 자신의 마음이, 자신에게 있어 그 무엇보다 소중한 그것이, 그토록 초라할 수 있음을 알았다. 나에게 있어 사무치도록 소중하고 슬프고 기쁜 그것이, 다른 이에게는 거추장스럽고 저열하고 우스워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마음이 진창에 구른다. 구겨진 종잇조각 같은 마음이 골목 안쪽의 구정물 위에 뒹굴고 있었다. 악취가 나는 질척한 오물이 묻어, 좋았던 기억에마저 얼룩이 번져간다.

 

나는, 사랑 같은 거, 정말 싫어.”

 

그 말이 왜 그리도 사랑해달라고, 저만을 오래도록 사랑해달라고 애원하는 것처럼 들리는지 모를 일이었다. 다니엘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성우를 바라보았다. 성우가 손을 뻗었다. 다니엘은 그 느린 움직임이 지독히도 외롭고, 초라하고, 예쁘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성우의 두 팔이 다니엘의 목을 감았다. 얼굴을 묻고, 가느다란 몸으로 간신히 끌어안고 새끼 짐승 같은 울음소리를 내었다. 가장 야비한 폭력을 당한, 가장 연약한 생명체처럼.

 

신경, 신경 쓰이게 하지 마.”

 

죽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남들은 쉽게 극복한다는 상처가, 도저히 치유되지가 않았다. 상처가 곪아가 주변의 삶이 괴사했다. 파낼 수조차 없어 끙끙 앓으며 안고 가는 제가, 그토록 초라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바다가 있는 곳으로 떠내려오듯 도망쳐왔다. 매일 바다를 보며, 매일 제가 죽을 시간을 생각했다. 오늘은 날씨가 좋으니까. 오늘은 눈이 오니까. 오늘은 죽기엔 내가 너무 슬프니까.

 

우스운 이유들 사이로, 초라한 그 이유들 사이로, 무엇인가가 스며들었다.

 

오늘은 고양이들을 봤으니까, 오늘은 누군가가 내 옆에 앉아 있었으니까, 오늘은 그와, 식사를 같이 했으니까.

 

신경 쓰이게 하지 마.”

 

성우가 엉엉 울었다.

 

혹시나, 사랑이면 어떡해.”

 

다니엘은 숨이 콱 막히는 표정을 지었다. 신경 쓰이게 하지 말아요. 혹여 사랑이면 어떡해요. 다니엘은 성우에 대해 몰랐다. 어쩌면 다니엘은 성우에 대한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 어쩌면, 그들의 감정은 이제야 움트는 새싹 같은 것이라 겨울의 눈발 사이에서는 형체를 짐작하기 어려운, 그런 옅은 연초록의 작은 줄기일지도 몰랐다.

성우는 그것이 두려운 것이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 알지 못했지만 다니엘은 성우가 제게 싹트는 감정을 한없이 두려워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거, 아나. .”

 

겨울은, 머무른다는 뜻의 겻다 라는 단어에서 나온 말이래.

성우가 고개를 들었다. 젖은 얼굴이 지나치게 예뻐, 다니엘은 가슴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다니엘은 감정의 변화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지 않는 성정이었다. 미래의 내가 어떻게 될 지는 누구도 알 수 없으니, 현재를 온 힘을 다해 사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그래서 다니엘은, 지금의 성우를 빤히 바라보았다.

 

무서우면, 아직은 사랑하지 말자.”

 

대신에, 옆에 있을게. 감정에 짓눌러 바닷속으로 가라앉을 것만 같은 당신의 옆에.

 

성우는 젖은 얼굴로 말끄러미 다니엘을 올려다보았다. 햇살처럼, 무해하고 그리하여 피할 수 없는 웃음.

혹여, 사랑이면. 그러면.

 

겨울 동안, 있어줘.”

 

그 말에 다니엘이 예쁘게 웃었다. 성우는 제가, 진창 속에 빠뜨리고 잊어버렸던 제 감정을 스스로의 손으로 다시 헤집어 찾아낼 것을 알았다. 그것을, 깨끗하게 씻고 다시 갈고 닦아 다니엘에게 내밀 것도, 알았다.

 

겨울이 끝나면.

 

겨울이

끝나면.

 

그때는, 혹여 사랑이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