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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녤옹

 

 

 

 

 

 

 

꼬리는 꼬리를 물고

옹상이몽

 

 

 

 

 

 

 

 

 

 

이태원 구석에 있는 칵테일바 이름은 Kangtail bar였다. 잘못 읽어야 칵테일바로 읽히는, 그곳의 이름은 캉테일바로 읽어야 맞았다. 왜 캉테일바냐고 묻는다면 그저 오너의 이름이 강다니엘이였기 때문에. 외국에서 매번 캉이라고 불렸으니까. 혹은 유머코드가 이상한 그 오너가 강다니엘이라서. 이유야 어찌되었든 그곳의 오너는 강다니엘이었고 솜씨가 좋은 바텐더 출신이었다.

 

외국에서 유학하던 시기에 칵테일에 빠졌고 바에서 일을 하면서 실력을 키웠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돈을 더 모아 자그마한 칵테일바를 연지도 3년 째. 근근이 찾아오는 단골들 덕에 굶지는 않고 지내고 있는 정도였다.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지만 메인 바텐더이자 사장님이 잘생기고 칵테일을 잘 만든다는 입소문이 도는 정도.

자그마한 바라고는 하지만 분위기는 거의 조용한 펍에 가까웠다. 손님들은 자주 놀러와 술을 마시며 바텐더와 인생 얘기를 하는 걸 즐겨했다. 어려보이는 사장이 의외로 진중한 면도 있고 예쁜 말을 많이 해주곤 했으니까. 어느 날부터는 수습을 뽑아 꾸려야 할 정도로 손님이 많아졌다. 다니엘은 꽤 잘 풀려가는 이 일이 제법 맘에 들었다.

 

어느 날, 초면의 손님이 찾아왔다. 월요일 밤인지라 한적하던 열시 반. 울적한 얼굴로 들어선 남자는 바에 앉아 메뉴판을 받고는 축 쳐진 채로 뒤적거리고 있었다. 새로 뽑은 수습 바텐더는 말솜씨가 딱히 좋은 편이 아닌지라 안절부절못하며 그 앞에 서 있을 정도로 분위기가 안 좋았다. 다니엘은 수습을 물리고 남자의 맞은편에 선 채 작게 웃어보였다.

 

"추천해드릴까요?"

"...압생트 주세요."

 

힘이 다 빠진 목소리였다. 좀 더 달달한 것으로 추천해주고 싶었는데. 딱히 자신과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아 다니엘은 아무 말 없이 압생트를 따라낸 뒤 그 위에 불붙인 설탕을 올려냈다. 불이 다 꺼지면 드세요. 덧붙이면 그는 다시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일렁이는 불을 보고 있었다. 불이 다 꺼지면 말리기도 전에 한 입에 털어넣더니 켈록대기 시작했다. 다니엘은 물을 한잔 따라내 앞에 두며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이거, 맛이 원래 이래요?"

"엄청 취향 타는 술이기야 한데... 좀 단 거 찾으세요?"

"...아니. 그게 아니구... 고흐가 좋아했다 길래... 얼마나 맛있으면 그렇게 쌔빠지게 살면서도 챙겨 마시는 술일까 싶어서 시켰는데... 이건 뭐예요?"

 

남자가 가리킨 새 칵테일의 이름은 독일인의 죽음이었다. 픽부터가 우울함의 일련이다. 다니엘은 뒷목을 긁적이다가 조금 달달한 리큐르들을 꺼내오며 흘러가듯 답했다.

 

"샷칵테일이라 독한데. 집 가까워요?"

"독한 칵테일은 맛없죠? 그럼 앨리스인 원더랜드?"

"그것도 한 샷에 원더랜드로 보내버릴 텐데."

"...취하고 싶긴 한데."

 

말을 잇지 않으며 웅얼거리는 남자는 딱히 바에 피해를 주고 싶어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취하고는 싶은데 책임질 사람은 없는 건가. 바를 연지는 3년이지만 해외에서 일했던 경력까지 합치면 6년이었다. 손님이 말하는 것을 귀신같이 알아들을 수 있었던 다니엘은 곧장 피치 리큐어와 크렌베리 주스를 꺼내왔다.

 

"일단 입가심으로 한 잔 서비스 줄게요. 쫌만 더 생각해 봐요."

 

남자는 울상의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그 모습이 귀여워 보여 다니엘은 다시 씩 웃어보였다. 만들어진 것은 피치크러쉬였다. 적당히 달고 새콤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맛. 잔을 내밀면 그가 홀짝이다 맘에 든 것인지 쭉 들이키기 시작했다. 거의 냉수를 들이키듯 마시고는 잔을 탁 내려놓으며 입을 닦는 모습이 과장스러웠지만 마치 애교가 몸에 밴 사람 마냥 자연스러워 보였다.

 

"여기 바텐더도 같이 얘기해줘요?"

"하고 싶은 얘기 있어요?"

"이름부터 물어봐요, 빨리."

"이름이 뭐예요?"

 

남자는 잔을 두 손으로 꾹 쥔 채 고개를 푹 숙였다가 망설이듯 입술을 질근질근 물며 꾸물거렸다. 다니엘은 마른 수건으로 멀쩡한 잔을 닦는 척 하며 기다려주었다. 남자는 잔뜩 울 것 같은 얼굴로 바라보며 말했다.

 

"옹성우예요. 내 이름."

"옹씨?"

"단번에 알아 듣네. 신기하게... 이제 나 뭐 하는 사람인지 물어봐요."

"직업이 뭐예요?"

 

자신을 옹성우라 밝힌 남자는 금세 동이 난 잔을 바라보다 메뉴판을 끌어왔다. 한참을 리스트를 바라보다 흘러가듯 내뱉었다. 저기 앞에 게이 바에서 춤추는 사람. 다니엘은 잔을 닦다 내려놓고는 그를 쳐다보았다. 다니엘의 성적취향은 바이였고 그가 말했던 게이 바에도 한 번 가본 적이 있었다. 허나 댄서 같은 건 보이지 않았었는데. 단번에 그게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티를 내진 않았다.

 

"미도리사워 어때요."

"미도리가 샤워한다고 칵테일까지 만들어요?"

"그 샤워가 아니라 사워. 시단 말인데..."

 

남자는 다시 울상으로 시선을 내렸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도리는 초록색이란 뜻이에요. 미도리사워에 가니쉬까지 놓지 않는 편이지만 다니엘은 수습에게 눈짓해 멜론을 손질해 오라고 시켰다. 몰래 둘을 구경하던 수습은 후다닥 주방으로 향했다.

 

"어디 나라 말인데요?"

"일본이요."

"그렇구나..."

 

수습은 빠르게도 과일을 손질해왔고 눈치를 살피고 있기에 잠깐 들어가서 쉬라고 일러두었다. 다니엘은 재료를 적당량 넣어 흔들고 따라낸 뒤 멜론 가니쉬를 올려 그에게 내밀었다.

 

"무슨 일 있어요?"

"그쪽은 무슨 일 같은 거 없어요?"

"내는 딱히 없는데."

"나도 딱히 없는데... 아주 아주 옛날에 있었던 일 때문에 아직도 괴로워요."

 

잔을 또 홀작이기 시작한 그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귓불은 잔뜩 빨개져서는. 누가 보면 데킬라라도 몇 잔 들이킨 사람 같았겠지만 그가 마신 건 그저 피치크러쉬와 미도리사워뿐, 한 입 이후로 비우지도 못한 압생트까지가 전부였다. 다니엘은 멀뚱히 그를 쳐다보았다.

 

"사람 일 인가보네."

"혹시 점 봐요?"

 

비슷한 메커니즘이었다. 제대로 점보는 법은 모르지만 일종의 사기꾼들이 본다는 점은 철학보다도 화술에 관련된 일이었으니까. 적당히 가능성이 있는 것들을 툭툭 건드려보면 정답인 경우가 많았다. 애초에 사람에게 있어 걱정거리는 사람 문제 아니면 돈 문제가 전부였으니까. 맛이 괜찮은지 성급하게 잔을 비우는 성우를 보며 다니엘은 조금 걱정스러운 눈길을 했지만 그가 시선을 들면 모른척했다.

 

"내가 낯을 좀 가려가지구우. 지금 당장 말하긴 너무 민망한데... 여튼, 그래요... 사람 문제야, ..."

 

투명하다 못해 창백하다. 다니엘은 경우의 수를 떠올렸다. 오래 전 일로 아직까지 괴로우며, 이렇게 청승 떨며 바에서 칵테일을 마실 일이란 건 대체로 전애인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일 것이다. 다니엘은 작게 헛웃음을 내뱉고는 제 앞 탁자에 손을 짚은 채 고개를 기울여 눈을 마주쳤다.

 

"차라리 새 연애를 하는 게 어때요? 내 너무 어림짐작인가?"

".... 어떻게 알았어요?"

 

쌍꺼풀 없이 날카롭게 잘 떨어진 눈이 금세 둥글게 변했다. 다시 봐도 이 어설픈 손님은 잘 생긴 편이었다. 그가 거짓말에 소질만 있었어도 게이 바에서 춤춘다고 했을 때 믿었을 지도 모르겠다. 얼굴값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오래전 사랑 이야기로 절절 매고 있으니 좀 더 눈길이 갈 수 밖에 없었다. 다니엘은 조금 홀리듯 치즈를 가져와 썰어다가 그의 앞에 두었다. 단골들이 보면 아예 퍼준다고 욕을 할지도 모르겠다.

 

"사람 인생이 뭐, 그렇죠."

"그쪽도 그래본 적 있어요?"

"글쎄요."

 

보통 바에 와서 자신에 대해 묻는 사람들은 일종의 호감을 담은 경우가 많았다. 그게 아니라면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바빴고. 허나 플러팅을 하는 것도 아닌데 아이처럼 그저 궁금함에 자신에 대해 묻는 그가 귀여웠다.

 

"내는 처음 본 사람한테 연애사 말 안한다."

"...내일 오면 말해줘요?"

"그럴 지도요."

 

남자는 피치크러쉬를 한 잔 더 주문했다. 잠시 뚱하니 입을 다문 채 잔만 홀짝이다가 다 비우고 나면 지폐만 여러 장 올려두었다. 남은 건 팁이에요. 그렇게 말하는 입에 왜 심술이 올라 있는 것인지. 다니엘은 그 자리에서 터지듯 웃어버릴 뻔 했지만 겨우 참았다. 잘 가요. 인사를 하는데 그는 답하지도 않고 쪼로록 사라져버렸다.

 

화요일 밤 역시 그렇게 사람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다들 다음날 출근할 생각 때문에라도 그리 거하게 마시는 편은 아니었고. 있던 사람들조차 금세 자리를 비우곤 했다. 딱 열 번째 손님이 들어왔을 때. 어제의 그 남자가 따라 쪼르르 들어왔다. 옹성우라고 했었지. 주변을 둘러보다 다니엘을 발견한 성우는 이번엔 바에 가 앉지 않고 테이블을 찾아 앉았다. 말끔하게 머리를 자른 탓에 더 잘 보이는 귓바퀴가 발갛게 올라 있었다. 다니엘은 수습에게 먼저 온 손님을 맡기고 그에게로 다가가 메뉴판을 내밀었다.

 

"오늘은 기분 괜찮아요?"

"...별로."

 

꿍얼거리며 말하는데 약간의 술 냄새가 퍼졌다. 벌써 술을 마시고 온 건가? 어쩐지 들어오는 품새가 약간 느릿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원래 그런 사람 인줄로만 알았다. 다니엘은 풀린 그의 눈앞에 손가락을 튕겨 소리를 내고는 메뉴판의 일정부분을 가리켰다.

 

"그쪽 업고 갈사람 없으면 여기서 시켜요."

"..."

 

성우는 입을 쭉 내밀었다가 메뉴판을 가져와 제 얼굴을 가렸다. 다니엘은 바람 빠지듯 웃고는 바 쪽으로 가 괜스레 재료들을 만지작거렸다. 한참을 메뉴판에 코를 박은 채 자는 것인지 꼼짝도 안하던 그가 바쪽으로 쪼르르 걸어왔다. 이내 메뉴판을 놓고는 비장한 얼굴로 말하는 것이다.

 

"..., 섹스 온 더 비치요."

 

안에 있던 다른 손님과 수습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대강 감이 왔다. 말하기 부끄러운 칵테일들이 몇 개 있기야 하지. 다니엘은 모른 척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서 기다리라고 말했다. 피치 리큐어에 크랜베리 주스에 오렌지 주스까지. 다 만들어 전해주고 나면 그는 딱히 다른 말을 하진 않았다. 얌전히 혼자 앉아 홀짝이다가 잔을 비우면 또 메뉴판을 들고 쪼르르 다가왔다.

 

"거기서 시켜도 되는데."

"...오르가즘이요."

 

다니엘은 멀뚱히 그를 쳐다보았다. 술을 마신지 얼마 안 된 것일까? 슬슬 술기운이 계속 오르는 것인지 발간 얼굴을 한 그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묘한 기분에 고개를 끄덕이고 아마레또를 꺼냈다. 다시 제 자리로 가 앉은 채 손끝을 만지작거리는 그에게로 시선이 계속 붙었다. 그렇다고 실수할 수는 없으니 겨우 한 잔을 만들어내면 다니엘은 그 잔을 들고 그에게 가 놓아주었다.

 

"술 많이 마셨제?"

"...? 어떻게 알았어요? 진짜 신기하다아..."

 

다니엘은 어이가 없어 풋 웃었다가 맞은편에 앉았다.

 

"지금 내한테 작업 걸어요?"

"왜요. 안 돼요?"

 

다시 뚱한 얼굴로 저를 쳐다보는 얼굴이 새침해졌다. 다니엘은 글쎄요, 라며 또 거리를 두곤 탁자에 팔을 괸 채 그를 쳐다보았다. 눈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당신한테 얼마나 관심이 있는 지 알 텐데. 이 눈치가 1도 없는 맹탕은 괜스레 뚱한 얼굴로 잔을 만지작거렸다.

 

"나 오늘 두 번째 왔는데..."

"그래서요?"

 

무슨 말인지 알고 있었다. 어제 빠꾸 당한 연애사에 대해 알려 달라 이 말이겠지. 허나 밀고 당기기 랭크만 트리플 에스에 빛나는 강다니엘이 쉽게 제 이야기를 할 리 없었다. 그렇게 받아치니 할 말이 없어진 듯 성우는 잔을 홀짝대기 시작했다. 커피 먹었으니까 이제 잠 못 자겠다.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던 그가 제 보물마냥 끼고 있던 메뉴판을 다시 손으로 짚어가기 시작했다.

 

"나 다음 잔은, 이거요."

"이거 뭐요."

 

글씨를 읽었지만 모른 척 했다. 애초에 취기가 확실하게 올랐는지 자신이 그리 말하면 정말 모른다고 생각한 것인지 그의 얼굴이 울상으로 변했다. 이내 기어가는 목소리로 읽어냈다.

 

"...블로우잡."

"이거 어떻게 먹는지 알아요?"

 

성우는 고개를 저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나 놀리는 건가. 딱 얼굴이 그렇게 말해왔으나 다니엘은 모른 척 아직 남아있는 그의 잔을 빼앗아 원샷했다. 전부 다 마셔버리면 진짜 바닥에 뻗을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다니엘은 일어서 바로 향했다. 오르가즘을 만드느라 꺼내놓은 아마레또와 베일리스를 따라내고 그 위에 휘핑한 생크림을 올렸다. 한 잔을 가져와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그가 손을 뻗자 다니엘은 마주 손을 뻗어 막았다.

 

"블로우잡은 손을 안 쓰고 마셔야 되는데."

 

먼저 왔던 손님이 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수습이 재고 정리를 하러 들어가는 소리가 이어 들려왔다. 무슨 소리냐는 듯 저를 둥글게 쳐다보는 그를 바라보다 씩 웃어보였다. 유리잔을 입으로 물고 고개를 들어 마셔야 한다고. 알려주자 그는 잔과 다니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다니엘은 눈썹을 들어 올려 뭐가 문제냐는 듯 바라보았다.

 

"그게..."

"빼줄까요?"

", 뭘요?"

"잔이요."

 

눈에 띄게 당황한 그가 입술을 잘근잘근 물다가 시선을 이리저리 굴렸다. 게이 바에서 춤을 추는 사람이라니. 그가 자신 있게 거짓말했던 부분과 상반된 이미지에 다니엘은 계속 웃음이 입가에 올랐다. 있는 척, 허세를 부리면서도 결국 콩알만 하게 변하는 저 모습이 귀엽다. 결국 결심한 듯 고개를 내려 잔을 입에 문 그가 시선을 올려 저를 쳐다보았다. 다니엘은 조금 묘한 기분에 미간을 찌푸리며 웃었다가 그가 잔을 문 채 고개를 들면 훤하게 드러나는 하얀 목을 쳐다보았다. 예상대로, 하얀 생크림이 볼을 타고 흘렀다. 잔을 내려놓으며 제 눈치를 살피는 그의 모습에, 잠시 무언가 뚝 끊어지는 듯해 손을 뻗었다가 다른 인기척에 멈췄다.

 

"사장님. 그레나딘 시럽 새로 들여야 할 거 같은데요?"

 

다니엘은 손을 거두고는 벌떡 일어섰다. 휴지를 가져와 성우의 앞에 여러 장 놓고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수습을 바라보았다. 그래야겠네. 주문해둬라. 그는 알겠다며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고 상황을 모르는 듯 성우는 휴지로 제 볼을 닦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거 먹기 힘드네에..."

 

 

결국 머리끝까지 취해버린 옹성우는 말했다. 오래 사귄 애인이 있었는데 1년 전에 헤어졌었다고. 근데 아직까지도 생각나는 자기가 너무 구질구질해서, 애인을 잊고도 괜스레 화가 난다고. 나는요, 좀 멋있어지고 싶거든요? 늘어지는 나른한 목소리에 다니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꾸 미끄러지는 팔을 괴겠다고 꼼지락거리던 그가 눈을 마주치며 씩 웃어보였다.

 

"사장님은 지인짜, 간지난다... 맨날 간지 나는 하루 살죠? , 차이지두 않고... 이런 칵테일바도 막 하구우..."

 

다니엘은 어느 새 말아온 제 럼콕을 흔들거리다 원샷하고는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시계를 보아하니 새벽 세시. 오늘도 장사는 끝인 것인지 더 이상 손님은 없었다. 얌전히 놀고 있는 수습에게 눈짓하면 그는 눈에 띄게 기뻐하며 짐을 챙겨 퇴근하기 바빴다.

 

"내도 스타일 망가지는 날이 있어요. 뭐 사람이 맨날 간지나나."

"언제 제일 스타일이 망가졌는데요."

"연애할 때.“

다시 물어봐도 안 알려줄 거죠?”

 

성우는 반쯤 감기는 눈을 겨우 떠 다니엘을 쳐다보았다. 다니엘은 퇴근하는 수습에게 손을 흔들어주곤 이내 자신을 쳐다보는 눈길에 눈을 마주쳤다. 성우는 씩 웃어보였다.

 

그거 알아요?”

뭘요.”

꼬리가 길면 잡혀요.”

 

다니엘은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내 꼬리가 그리 길어 보이나. 성우는 부스스 웃어 보이더니 고개를 쑥 내밀었다.

 

"나랑 자고 싶죠?"

 

말갛게 웃어 보이는 얼굴에 부끄럼이 하나도 없었다. 취하긴 엄청 취했나보구나. 섹스 온 더 비치를 부끄럽게 주문하던 초반을 생각해보면 더 그랬다. 다니엘은 고민했다. 술 깨고 나면 아무 것도 기억 못하겠지. 손을 뻗어 그의 뺨을 감쌌다. 엄지로 하얀 피부를 문지르면 말랑거렸다.

 

"내일 일어나서, 내한테 한 말 생각나면 다시 와요."

"..."

"맨 정신으로 그 말할 수 있으면. 잡시다, 우리.”

 

 

바를 정리하고 문을 닫고. 집에 가기 싫다는 그의 지갑을 뒤져 주소를 알아낸 뒤 같이 택시를 탔다. 결국 심술이 잔뜩 오른 얼굴로 집에 들어가는 뒷모습까지 보고나서야 집으로 돌아온 다니엘은 그날 하루 내내 푹 잤다. 저녁이 다 되어서야 일어나 수습에게 연락을 해보면 이미 바는 열려 있었다. 미적미적 씻고 준비를 해 출근하고. 재고를 살피다가 밖으로 나오면 수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꽤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러다 금요일이 되면 자리가 꽉 차지.

다니엘은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떠들고 웃었다. 새로운 레시피를 만들어 돌리면 꽤 반응도 좋았다. 수습의 실력이 꽤 많이 늘어 실수도 줄었다. 이제 제법 익숙하게 손님과 이야기하는 것을 바라보다 시계를 바라보았다. 거의 11시면 오던 그가 보이지 않았다. 그가 이곳에 출석한지도 이제 3일째밖에 안 됐는데. 그를 기다리고 있던 자신을 발견하면 가히 기분이 좋진 않았다.

 

새벽 3. 바가 비고 수습을 퇴근 시켰다. 가만히 리큐어를 정리하며 근 다섯 시까지 버티다가 바 문을 닫고 그 앞에서 얼쩡거렸다. 그 어디에도 그는 보이지 않았다. 혹여 라도 또 고주망태가 되어 주변에 있을까봐 산책이라는 변명 하에 주변을 돌아다녔지만 역시나였다. 다니엘은 곧장 집으로 향해 씻지도 않고 잠에 들었다. 점심 즈음 일어나면 꼴이 말이 아니었다. 말끔하게 씻고 나면 다시 저녁이었고 여느 때보다 더 빡세게 머리를 올린 채 출근을 했다.

 

목요일마저 지나고 금요일이 되면 손님이 들어차는 속도가 남달랐다. 주문량도 꽤 많았던 터라 정신없이 손을 놀리다보면 근 새벽 1시쯤에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간간히 빈자리가 보이면 그제야 의자를 끌어 앉았는데, 새 손님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면 여전히 뚱한 표정의 옹성우가 서 있었다. 다니엘은 저도 모르게 바람 빠지듯 웃고는 일어서 쳐다보았다. 허나 눈길이 마주치기도 전에 익숙한 단골이 다니엘을 찾기 시작했다. 다니엘은 다시 성우의 쪽을 쳐다보았다가 별 수 없이 단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수습에게 손짓해 성우 쪽으로 보낸 뒤 모른 척 단골이 주문한 잔을 만들어냈다.

오늘 따라 삶이 힘들다며 자신을 붙잡은 단골은 그날따라 말에 끝이 보이질 않았다. 옆에서 분명 그의 시선이 느껴지는데, 뭐 어떻게 쳐다볼 수도 없었다. 새 잔을 주문하기에 이때다 싶어 슬쩍 쳐다보면 뚱하다 못해 쳐진 얼굴로 잔을 만지작거리는 그가 있었다. 단골의 새 잔을 만들어낸 뒤 그 쪽으로 귀를 기울이는데 마침 수습이 새 잔을 받고 있었다.

 

"뭘로 드릴까요?"

"Adios, motherfucker."

 

다니엘은 저도 모르게 풋하고 웃음을 내뱉었다. 저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단골에게 당황해 손을 젓다가 죄송하다고 말한 뒤 금방이라도 자리를 떠날 것처럼 짐을 꾸리는 성우에게로 자리를 옮겼다. 수습은 자연스럽게 단골을 떠맡았다. 월급이라도 올려주던가 해야지. 느릿하게 자신을 올려다보는 성우를 바라보며 다니엘은 씩 웃어보였다.

 

"벌써 작별인사에요? 게다가 그거 독한 술인데. 먹지도 몬할 거면서."

"...놀려요?"

 

입이 댓발 나와 저를 째려보는 통에 다니엘은 그저 헤실헤실 웃어보였다. 그러게 왜 오랜만에 와서. 다니엘은 크렘 드 카시스를 꺼내며 자연스럽게 앞에 있던 그의 휴대폰을 가져와 뒤 찬장에 넣었다. 인질이었다. 그가 조금 당황한 얼굴로 저를 쳐다보면 어깨를 으쓱해보이곤 말리부를 찾아 들었다.

 

"그 때 생각나요?"

"...안 나요."

"나면 오라고 했잖아요. 아님, 내랑 잘 생각 없나."

 

다니엘은 잔을 완성한 뒤 그에게로 내밀고는 팔을 괸 채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는 우물쭈물 거리다가 잔을 받아들곤 시선을 이리저리 굴렸다.

 

"카시스 프라페 알아요?"

"뭔데요."

"키스할 때 마시는 칵테일."

 

성우는 잔의 허리를 만지작거리다가 힐끔 얼굴을 들어 다니엘을 쳐다보았다. 이내 떼구르르 다시 구르는 시선이 귀여웠다. 다니엘은 마른 수건으로 제 손을 닦고는 잔과 성우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내 오늘 한 시간 일찍 끝낼 거거든요?"

"...근데요?"

"아침에 하는 섹스 좋아해요?"

 

잔을 쥔 손이 꾹 말아지는 것이 눈앞에 보이면 웃음이 절로 흘렀다. 다니엘은 고개를 숙여 속삭이듯 덧붙였다. 해 떠서 온통 환하고. 잠은 오는데 기분이 좋고 잘 수 없어서 몽롱하고. 난 진짜 노골적인 거 좋아해요. 그 누구도 듣지 못할 데시벨이었지만 유일하게 모든 이야기를 들어버린 성우의 얼굴은 카시스 프라페의 색이었다.

 

"...진짜 그쪽, 신경 쓰이네요."

"앞으로 더 쓰이게 만들 텐데. 뭐 어쩌겠노."

 

2월의 어느 밤이었다. 날은 추워서 잔뜩 술이 도는 겨울. 그거 마시면 내랑 연애해요. 여느 영화에서 본 그대로, 카시스 프라페를 가리키며 그렇게 말하면 옹성우는 곧장 눈을 마주치며 잔을 들어 원샷했다. 그 때 그 여자주인공이 이렇게 예뻤던가? 다니엘은 당장 손님들을 쫓아내고 문을 닫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아야 했다.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를 그 토요일 새벽. 다니엘은 마지막 손님과 수습을 내보내고 난 뒤 잔 위에 있던 체리를 가지고 놀고 있던 성우의 턱을 쥐었다. 그에게서 체리를 빼앗아 입 안에 넣어주고 난 뒤, 입을 겹쳤다. 놀란 그가 여전히 둥근 눈으로 저를 쳐다보다가 스륵 눈을 감았다.

 

혹여 사랑이면 어떡하지, 하고 고민할 새도 없이 사랑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