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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녤옹

 

 

 

 

 

 

송곳니 무덤

쥬이씨 

 

 

 

 

 

 

 

송곳니가 뽑힐 때는 언제였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토록 남의 살점을 물어뜯기 위해 싸우고 다퉜으면서 서로 송곳니를 드러내지 못해 안달이 났던 어리고 어렸던 우리였는데.

 

갑자기 철이라도 들었던 것인지, 잘못을 뉘우치기라도 했던 것인지.

 

 

아니면 본래의 목적을 상실 했다던지.

 

 

 

어떠한 이유든지 이제 나는 아무런 감정 없이 그곳을 바라볼 수 있다.

 

나의 어렸을 적 송곳니도 함께 뒤섞인 탁하고 모난 둔덕.

 

 

송곳니 무덤

 

 

 

 

 

 

 

 

 

 

 

 

 

 

'다시는 내 눈에 띄지마.'

 

 

 

 

 

이상한 말이었다. 얼마 전까지 가지 말라던 입이 이번에는 정반대의 말을 꺼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입의 악취만 가득한 반 아이들이 싫었다. 문턱이 닳도록 오고가는 교실이 싫었다. 학생주임이 마이를 챙겨 입어라 소리치던 교문이 싫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와야만 하는 학교가 싫었다. 모든 게 나를 압박하는 족쇄였고 나는 그것들에게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 말을 핑계 삼아 5일 동안 학교를 가지 않았더니 그제야 내 부모라는 사람은 강제적으로 나를 학교에 보냈다.

 

차에서 내린 뒤 내 손에 들려있는 음료수 상자를 흔들어보니 툭, 툭 가벼운 무언가가 두꺼운 상자 안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가운데를 지그시 눌러 열어보니 하얀 봉투 하나가 들어있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우리 아버지."

 

 

 

햇빛에 비추어보니 숫자가 적힌 상품권 여럿이 보인다. 동시에 내 미간을 구겨진다. 눈이 부셔서 구겨진 건 아니다.

 

 

 

담임은 입을 가리며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라고 나름 엄하게 꾸짖고 나를 밖으로 내보냈다. 입이 귀에 걸린 채로 혼내는 걸 보자니 우스운 꼴이었다. 담임의 책상 위에 있던 출석부가 눈에 들어와서 느릿하게 여러 장을 넘겼다. 조소가 절로 입가에 머물렀다.

 

출석부 내 학급번호 옆에 적혀있는 단어는 '병결' 뿐이었다. 이렇게 컨디션이 좋은 적도 흔치 않은데 말이다.

 

웨엑. 나는 혀를 내두르며 교무실 밖을 나섰다.

 

 

 

"야 강다-니엘-"

 

", 뭐고."

 

"이 새끼 완전 양아치네-? 며칠 만에 오셨세요?"

 

"5! 5일뿐이 안됐다!"

 

 

 

친구놈의 뒷통수를 두어번 때리고는 반으로 향했다. 그 사이에 A는 쉬지않고 떠들어댔다.

 

담임이 첫날에는 너 존나 씹다가 어제는 자연스러운거라고 감싸주더라. 존나 웃겨.

 

어제 8반에서 싸움 났는데 한명 코뼈 부러졌대.

 

형들이 너 없다고 나 존나 갈궜어 씹새야.

 

방금 옹성우랑 돼지새끼 시비트던데.

 

오늘 급식 개노맛.

 

 

 

"뭐라꼬? 니 방금 한 말 다시 해봐라."

 

"오늘 급식 노맛이라고."

 

"아니, 그 전에."

 

"뭐라고 했지."

 

 

 

A가 교실 뒷문을 열며 어깨를 으쓱이자마자 큰 파열음이 들려왔다. 소리가 난 곳으로 향한 내 눈에는 이미 몇 대 얻어맞은 것인지 양 볼이 퉁퉁 부은 옹성우와 씩씩거리며 소매를 걷어부치는 D가 보였다. 걷어붙인 소매는 터질 듯이 팽팽해졌다. 녀석의 덩치가 큰 탓이다.

 

하지만 옹성우는 그 녀석에 비해 반밖에 안 되는 실루엣을 보여준다.

 

 

 

"그만해라 둘이."

 

"허억-, 너 언제..."

 

"인마는 뭐 몸만 둔한 게 아니라 눈치도 없구로."

 

 

 

몸이 커서 그런지 숨소리도 크다. 거칠게 씩씩거리던 D는 이내 자존심이 퍽 상했는지 교실 밖으로 나간다. 곧 터질듯이 위태로운 교복셔츠를 따라보다 이내 눈을 돌린다. 방금과는 다른 헐렁해진 교복셔츠. 접히는 부분에 묘하게 얼룩이 져있다. 세 번째 단추는 아예 없기까지. 이내 무언가 급하게 덮여지는 마이에 의해 헤진 셔츠가 가려진다. 역시나 옹성우의 사이즈는 한참 넘은 것 같은 마이를 살펴보는데 앞통수가 영 따갑다.

 

, 눈 마주쳤다.

 

 

 

"... ..."

 

"성우야 내 뚫리겠다."

 

"양아치 새끼."

 

 

 

마이를 걸쳐 입은 옹성우가 한마디 톡 쏘아붙이고는 제 자리로 가서 앉는다. 헐렁한 마이도 굽은 등을 감추지는 못 한다. 나는 옹성우의 송곳니가 스치고 간 언저리를 문지른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아릿한 통증. 입가에는 미소가 번진다.

앞문을 열고 들어온 담임은 모두들 제자리에 앉으라며 교실 전체를 둘러본다. 그리고는 공지사항을 말하고 안내장을 나눠주기 시작한다. 눈깔이 삐었나보다. 척 봐도 이상한 학생이 한명 있는데.

 

옹성우의 굽은 등은 이내 책상에 무게를 싣고 얼굴을 감춘다. 벌겋게 부어올랐던 볼이 떠올라 나는 막대사탕 하나를 꺼내 문다. 괜히 내 볼이 쓰린 것 같다.

 

담임이 나간 뒤에 교실은 다시 시끄러워진다. 왁자지껄한 공간 속에서 나는 다급해진다.

 

일어난 뒤, 걸어간다. 작게 오무린 옹성우는 얼굴 한줌 보여주지 않는다. 저러다가 흉질텐데.

 

 

 

". 니 인나봐라."

 

"... ..."

 

"내 말 들리는 거 다 안다. 얼른 인나라."

 

 

 

어깨를 툭툭 건드리니 벌떡 일어난다. 눈에 가득 차있는 독기. 나는 이 앙칼진 독기에 중독이라도 된 것인지 계속 찌르르 떨려오는 손을 애써 뒤로 감추고 옹성우의 부어오른 볼을 턱짓한다. 옹성우는 눈을 치켜뜨더니 벌떡 일어나서 내 어깨를 가볍게 밀어낸다.

 

 

 

"동정하지마."

 

"?"

 

"동정하지마라고. 역겨우니까."

 

 

 

이를 아득 갈며 뱉어낸 뒤 내 옆을 지나친다. 나는 허 하고 웃음이 터진다.

 

욕해도 예쁜 건 반칙 아인가.

 

 

 

 

 

-

 

 

 

 

 

"열 마리."

 

 

 

양호실 문 앞에서 기어가는 개미 한 마리를 운동화 앞코로 짓이긴다. 벌써 1교시의 반을 지나간 시간. 왜 이렇게 늦는 건지. 범생이가 수업을 놓칠 리는 없을 텐데. 나는 결국 양호실의 문을 조용히 밀고 고개를 집어넣는다. 철이 부딪치는 소리가 간간히 들리다 코 먹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다시 고개를 밖으로 빼고 문을 조용히 닫는다. 방금 걸렸으면 진짜 뼈도 못 추릴 뻔 했다.

 

 

 

"열한 마리."

 

 

 

결국 다시 개미잡기에 집중한다.

 

 

 

스무마리를 넘어서니 그제야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때마침 울리는 종소리에 나는 멀찌감치 뛰어갔다가 다시 양호실을 향해 걸어온다. 내가 다 와갈 때쯤 양호실의 문이 열리고 동그란 정수리가 눈에 들어온다.

 

 

 

"D가 나 없을 때 계속 괴롭혔나. 상처가 이거뿐이 아이네."

 

"... ..."

 

"나 없는 동안 더 귀여워졌네. 니 머리 도토리 같은 건 아나."

 

". 너는 씨발 눈치가 없어?"

 

 

 

옹성우는 말의 발음이 너무 정확해서 조금만 기분이 나빠도 티가 나는 편이다.

 

굳이 저런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내 눈치가 빨라서인 것도 있지만.

 

 

 

"내가 뭘?"

 

"난 너랑 엮이기 싫거든? 말도 섞기 싫고 옷깃 스치는 것도 싫어!"

 

"내는 좋은데."

 

 

 

결국 내 얼굴이 반대편으로 꺾인다. 아파라. 왼쪽 볼을 혀로 밀어내며 옹성우를 힐끔 쳐다본다. 잔뜩 성이 난 듯 마른 어깨가 오르락내리락 격하게 들썩인다. 오른쪽 주먹은 잘못 친 듯 피부가 쓸려있다.

 

검도하는 애가 주먹질을 잘 못할 리는 없을 텐데. 괜히 나에게 미련만 남기는 옹성우.

 

 

 

"그러시겠지. 씨발놈."

 

"... ..."

 

"근데 나는 니가 너무 싫거든."

 

"니 설마 내가 검도 이긴 것 때문에 이러는기가."

 

 

 

뒤돌아 가려던 걸음이 잠시 멈추다니 코웃음을 치며 돌아본다.

 

 

 

". 내가 누구한테 진 것도 짜증나는데."

 

"... ..."

 

"그게 강다니엘 너라는 게 더 싫어."

 

 

 

말끝이 떨린다. 어지간히도 분한가보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옹성우의 손을 잡는다.

 

 

 

"근데 성우야 내 진짜 싫나."

 

", 새끼야."

 

"기억 안 나는 건 아니제."

 

"씨발 놓으라고!!"

 

 

 

내가 묵묵히 옹성우의 송곳니가 내 살을 할퀴는 걸 보고 있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

 

이미 내가 낸 상처가 옹성우의 목에 남아있기 때문에.

 

 

 

"우리 키스도 한 사이인데."

 

 

 

. 옹성우가 올려붙인 뺨이 화끈거렸다. 옹성우는 판판함 가슴팍을 들썩이며 나를 노려봤다. 누가 봐도 잘생긴 얼굴이 나때문에 구겨지는 걸 보니 참 기분이 묘하다. 내가 뭐라고 너는 흔들리냐. 다른 애들한테는, 심지어 니 몸뚱아리의 두배는 되는 D에게는 맞붙었잖아. 옹성우가 왜 나 같은 거 때문에 흔들리는 걸까. 나를 미워하면서, 싫어하고 싶으면서. 나와 하는 작은 대화에도 그 속에 있는 작은 파편에도 생채기가 나는 옹성우.

 

아무래도 너와 나의 송곳니는 여전히 서로의 살점을 꿰뚫고 있지.

 

 

 

"양아치 새끼-... "

 

"옹성우."

 

"너는 내가 쉽지? 그냥 막 가지고 놀아도 될 것 같지?"

 

 

 

얇은 입술이 움직여 가시 같은 말들을 쏘아붙인다. 비수같이 말 한마디 한마디는 내 볼을 스치고 내 팔을 스쳐지나간다. 가죽만 겨우 붙어있는 옹성우의 팔에 핏줄이 세워진다. 한대 더 맞아 줘야하나. 나는 옹성우의 얼굴 하나 하나를 뜯어본다. 산이 세워진 눈썹이나 움푹 들어간 윤곽이나 설치류처럼 제각기 자리를 잡은 치열들을 응시하며 나는 옹성우의 말을 흘려보낸다. 또 마음에도 없는 말이라.

 

옹성우는 애초에 나와 다르게 정직한 사람이라 거짓말을 잘 하지 못한다. 눈과 입이 서로 다른 말을 뱉으면 금세 티가 난다. 아침에 나에게 말하던 담임의 모습이 떠오른다. 거짓말이 익은 사람은 속내를 재주 좋게 포장해 드러내고는 한다.

모순적이던 담임. 그리고 정직한 옹성우. 나에 대한 악담을 퍼부으면서도 나를 믿고 싶어 하고 또 상처를 받을까 두려워하는 옹성우.

옹성우.

 

 

 

"너는 내가-!"

 

내 애정방식인데.”

 

?”

 

내 애정방식이라고 성우야. 처음에 너한테 키스했을 때부터 지금 하는 말 다.”

 

 

 

옹성우의 고개가 앞으로 꺾인다. 그래봤자 키가 비등비등해서 정수리와 동그란 콧망울이 함께 보일 뿐인데. 콧망울이 빨갛게 익기 시작한다. 울음을 참으려는지 꽉 쥔 주먹은 가느다란 뼈대가 불거져있다.

 

 

 

솔직히 무작정 키스했는데 받아준 거면 내랑 좀 맞을 줄 알았는데.”

 

“... ...”

 

내를 그렇게 쉽게 버린다 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동시에 2교시를 알리는 종이 친다. 옹성우는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를 들은 달리기 선수마냥 뒤돌아 달리기 시작한다. 마른 다리가 급하게 바닥을 딛는다.

 

아마 나는 옹성우에게 혼란스러운 감정의 타래, 파도, 사태.

 

내가 미울 게 분명하다. 오랜 시간 준비한 기회를 필요도 없는 놈이 날려버린 셈이니 옹성우 그 높은 자존심에는 아마 내가 때려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겠지. 이해할 수 있다. 나도 옹성우가 나를 버릴 수 있다고 했을 때 많이 미워했으니까.

 

그러니 기다릴 수 있다. 옹성우가 나의 송곳니를 이해 할 때까지. 다시 돌아올 때까지.

 

만약 다시 돌아온다면 안아줘야지. 입을 맞춰야지. 정말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해야지.

 

이 아득바득 물기위해 발버둥치는 쓸모없는 송곳니따위, 뽑아버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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