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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녤옹

 

 

 

 

 

 

[그의 인생은 늘 나락을 뒹굴었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지하 단칸방에 자리를 깔고 누워 언젠간 문이 열리길 기다리며 그렇게 기약 없는 기다림 속을 헤매었다. 온기조차 허락되지 않은 그 방 안에서 그는 홀로 남몰래 사랑을 꿈꿔왔다.

 

 ㅡ사랑을 할 거야. 이 차갑도록 시린 방 안에서, 울며 자신과 함께 가 달라고 내 손을 붙잡고 애원해 주는 사람과.ㅡ]

 


“학생, 여기서 자면 감기 들어.”

 


다니엘의 코 끝으로 알싸한 담배 냄새가 스쳤다. 고개를 들어 흐릿하게 보이는 인영을 눈으로 확인하자, 자신과 눈 높이를 맞출 요량인지, 다리를 굽혀 눈을 맞춰오는 검은 동공이 보였다. 다니엘은 그 깊고 검은 눈동자를 보며 아주 잠깐, 자신이 자주 밥을 챙겨주던 길 고양이 루니가 생각났다. 축축하게 젖은 머리에 이미 감기에 들 것이라 예상을 하고는 있었지만, 사람을 고양이와 착각하는 것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다니엘은 눈을 꿈뻑이며 가만히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남자를 주의 깊게 바라봤다.

 


“저기, 학생. 나 문 열어야 되는데…”

 


다니엘은 그제서야 본인이 등을 기대고 있는 것이 벽이 아닌 문인 것을 알아챘다. 아- 다니엘의 입에서 멍청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다니엘의 앞에 쭈구리고 앉아 있는 남자는 그런 다니엘의 행동에 조소를 흘려보냈다. 이제 그만, 나와줄래? 나른한 음성이 다시금 다니엘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입술을 꾹 다문 다니엘은 주머니 속에서 낡은 수첩 하나를 꺼내 남자에게 건냈다. 남자는 다니엘의 손에 들린 작은 수첩을 유심히 주시하다 수첩을 손에 쥐었다. 찰나에 스친 다니엘의 손은, 얼음장을 방불케 했다. 아직 초여름을 달리는 계절에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체온인가, 남자는 티나지 않을 정도로 놀라며 받은 수첩의 첫 장을 넘겼다.

 


[ 200X년 8월 10일 날씨 비

아빠가 세상을 떠났다. ]

 

[ 200X년 8월 28일 날씨 흐림

요즘 날 보는 엄마의 눈빛이 불안하다. ]

 

[ 200X년 9월 2일 날씨 흐림

엄마가 이상하다. ]

 

[ 200X년 9월 12일 날씨 흐림

엄마가 날 피하는 것 같다. ]

 

[ 200X년 10월 25일

엄마가 운다. ]

 

[ 200X년 11월 3일

엄마가 낯선 남자와 함께 있다.
행복해 보인다.
아빠가 죽고나선
나한테 저렇게 안 웃어줬는데. ]

 

[ 200X년 12월 10일

엄마가 사라졌다. ]

 

[ 200X년 12월 15일

편지와 함께 거액의 돈 봉투가 왔다.
죽은 듯이 살아달라는. ]

 

 


수첩속 내용은 가관이었다. 남자는 한참을 마지막 장에 머문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종잇장을 구겨쥐었다. 아, 안타깝다. 동정심이 얕게 일었다. 잔잔한 파도가 치고 있었다. 고개를 드니 발견하지 못했던 깊은 눈이 목을 죄었다. 고작 종이 몇 장에 적힌 다니엘의 인생을 본인이 다 이해라도 한 것처럼 마음이 아렸다. 오늘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게 올바른 판단일까. 남자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학생. 일어나요.”

 


춥다, 들어가자. 남자는 생각을 지우기로 마음 먹었다. 뭐가 되었든, 자신이 오늘 한 선택이 독이든 복이든 일단 사람 하나는 살리고 보자고.

 

 

 

 

 


물감
w. 커튼

 

 

 

 

 

 


“작가님.”

 


우편물, 왔어요.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온 다니엘이 손에 쥔 우편물을 성우의 책상 위에 가지런히 올려두었다. 저 오늘, 늦을 것 같아요. 다니엘의 낮은 음성에 줄곧 노트북에만 시선을 두던 성우의 검은 동공이 그제야 고개를 돌려 다니엘의 눈과 마주했다. 성우의 시선에 다니엘은 애꿎은 손톱만 뜯으며 성우의 말을 기다렸다. 무슨, 말이라도 좀 해요.

 


“그래,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

“…네.”

 


잘 다녀와. 다시 시선을 거둔 성우가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성우의 대답에 입술을 잘근 깨문 다니엘이 고개를 숙여 가볍게 인사하곤 뒤를 돌아 문으로 향했다. 매번, 이런 식이야. 주먹을 쥔 다니엘의 손엔 생채기에 피가 고이기 시작했다. 다니엘이 문고리를 돌리고 나가려는 순간, 나른한 음성이 다니엘을 잡았다.

 


“손, 치료하고 나가.”

 


쾅 소리가 나게 문을 닫은 다니엘은 닫힌 문을 등 뒤에 두고 추락했다. 주저 앉은 바닥은 오 년 전, 자신이 앉아있던 이 집의 현관문 앞과 같은 느낌이었다.


성우는 오 년 전, 다니엘을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다니엘의 사정은 보다 더 복잡하고, 안타까웠다. 단란한 가정 속에서 살아왔지만, 어머님은 외도 사실을 숨기고 있었고, 아버지는 암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서로 다른 비밀 속에서 다니엘은 그저 묵묵히 모든 사실들을 묵살했다. 덕분에 다니엘의 아버지가 세상을 뜬 후 어머님은 다른 남자의 품으로 떠났고, 다니엘을 버렸다. 죽은 듯이 살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성우는 그 모든 이야기를 듣고 다니엘이 잠든 새벽 홀로 눈물을 흘렸다. 고작 열 여덟이라는 나이에 세상을 다 알아버린 다니엘이 안타까워, 대신 눈물을 흘렸다.


그 날을 기점으로, 성우는 다니엘의 보호자가 되기를 자처했다.


종종 다니엘은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찾으며 잠꼬대를 했다. 그럴 때마다 성우는 다니엘의 머리를 만져주며 다독였다. 성우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였다.

 


“다녀오겠습니다.”

 


닫혀있는 서재를 보며 다니엘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자신이 나가면 분명 저 꽉 닫힌 문이 열리고 그 검은 동공으로 한참동안 현관문을 주시할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늦는다고 말을 했을 때, 혀를 씹으며 한참을 고민했을 성우를, 다니엘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열 여덟과 스물 다섯, 스물 셋과 서른. 강다니엘과 옹성우. 둘 사이의 벽을, 서로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다니엘이 현관문을 나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서재의 문이 열렸다. 고개를 내밀고 현관문을 주시하던 성우가 막혀있던 숨을 내뱉듯 깊게 내쉬었다. 턱 막힌 듯한 목에 부엌으로 향해 물을 찾았다.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테이블 위에는 절반정도 채워진 물컵이 존재를 알렸다. 항상 가득 채워주면 꼭 절반만 마시는 성우를 다니엘은 알고 있었다.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 테이블 위에 올려둔 성우가 마른세수를 했다.

 


“…널 어쩌면 좋을까.”

 

 

 


***

 

 

 


“작가님이라고 불러.”

 


다니엘이 머리 위로 물음표를 그렸다. 이름도 있고, 형이라는 호칭도 있는데 굳이요? 다니엘의 물음에 성우는 조소를 흘렸다. 내가 왜 네 형이야, 보호자지. 성우의 말에 다니엘은 서운한 듯 입술을 툭 내빼었다. 입 집어넣어. 제 마음이에요. 다니엘이 성우의 집으로 들어오고 2년이 지나 성인이 되었을 때, 성우는 서로의 호칭을 정정했다.

 


“일단 작가는 맞잖아.”

“멀어 보이잖아요.”

 


언젠 가까웠니? 헛웃음을 지으며 성우가 느릿하게 서재 안으로 들어섰다. 다니엘은 학교를 관두고 성우의 집에서 살며 성우에게 공부와 글을 배웠다. 정확히는, 독서와 감상문. 성우는 자신이 가르치면 가르치는대로 따라오는 다니엘이 기특했다. 작가인 저를 따라, 다니엘 역시 글을 쓰길 바랐던 성우였다. 성우의 바람대로 다니엘은 검정고시를 합격해 모 대학의 문창과생이 될 수 있었다.

 


“저 대학도 붙었는데, 선물 없어요?”

 


뻔뻔한 다니엘의 태도에 성우는 웃으며 다음 날 노트북을 선물해 줬다. 아니, 이런 걸 원한 게 아닌데… 다니엘은 자신의 장난을 진담으로 받아들이는 성우가 싫지 않았다. 둘은 그렇게, 묘한 관계 속에서 서로 남모르게 감정을 키워내고 있었다.


사건이 터진 건, 1년 전 다니엘의 술주정 때문이었다.

 


“내는… 작가님이 좋아요.”

 


곧은 눈으로, 그 진지한 얼굴로 단조롭게 고백을 이어가는 다니엘에 성우는 넋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성우의 대답은 들을 마음도 없었는지 다니엘은 고백을 끝냄과 동시에 푸스스 웃으며 거실 바닥에 쓰러져 잠에 들었다. 성우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정리하지 못하고 그 새벽을 홀로 지새웠다. 어쩌지, 나는 저 아이의 보호자인데. 쓸데없는 생각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와 가득 채웠다. 너도 다니엘을 좋아하잖아. 감정들은 서로 쥐어 뜯으며 속 안에서 싸움을 일으켰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성우에게로 가해졌다. 그 이후로 성우는 다니엘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었고, 다니엘 역시 본인의 고백을 후회하진 않았지만, 성우의 그런 행동들을 이해하기로 했다.


보호자와 아이로 시작해, 어쩌면 작가와 제자. 그리고… 성우는 머릿속을 비웠다. 애감정이라는 게 주변을 맴돌았다. 사랑은, 아닐 거야. 언젠가 자신이 다니엘에게 하지 말라고 했던 버릇들을 이제는 성우 본인이 하고 있음을 인지했을 땐 정말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가벼운 연애를 선호하는 편도 아닐 뿐더러, 본인이 남자를 좋아하는 건가 아니 일단, 저런 어린 아이를 내가… 도둑놈 새끼. 성우는 끝내 본인을 질책하며 머리를 쥐어 뜯기까지 했다. 어찌되었든, 성우는 자기 자신과 다니엘은 죽어도 안 될 거라고, 죽어도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다니엘, 19살 생일 축하해.”

“다니엘, 20살 생일 축하해.”

“다니엘, 21살 생일 축하해. 너도 늙어가네.”

“다니엘… 생일 축하해.”

 

 

성우와는 총 네 번의 생일을 함께했다. 성우의 생일 역시, 올해를 제외한 총 네 번의 생일을 함께했다. 자신의 고백과 함께 급격히 어색해진 사이에 생일을 챙기기란, 쉽지 않았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성우는 다니엘의 생일을 챙겨주었다. 다니엘은 그런 성우가 미우면서도 좋았다. 차라리 까먹은 척이라도 하지, 미워할 틈을 줘야 내가 안 좋아할 거 아냐. 다니엘은 다니엘대로 고민이었다. 자신의 마음을 뻔히 알면서도 피하는 옹성우가 미웠고, 본인 역시 저에게 마음이 없진 않은 것을 다 아는데도 모르는 척하는 게 미웠다.
 

새벽 늦게 귀가를 해 먼저 잠든 성우의 이마나 별자리가 박힌 볼에 몰래 입을 맞추고 도망가는 것을, 성우는 알고 있었다. 가끔은 자는 척까지 하며 다니엘의 입맞춤을 기다리는 날도 종종 있었다. 그런 성우는, 밉다기보단 귀여웠다. 그럴 거면, 피하지나 말지. 눈을 뜨면 자신을 피하는 성우를 보며 다니엘은 차라리 성우가 평생 눈만 감고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까지 했다.


술자리가 깊어질수록 다니엘은 성우가 보고 싶었다. 분명 성우와 함께 있는 공간이 불편해 집을 나온 것인데, 어째 술자리가 더 불편하게 느껴졌다. 마치, 본인과 성우의 사이에 있는 벽과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벽을 허무는 방법은, 다니엘도 성우도 잘 알고 있었다. 한 사람의 일방적인 두려움과 겁으로 인해 누구도 실행하지 않고 있을 뿐 그 누구도 뭐라하지 못했다.

 


“피할 거면… 욕심라도 못 내게 하지.”

 


당사자에게는 전하지 못할 투정을 다니엘은 술잔에 대고 웅얼거렸다.

 

 

 


***

 

 

 


“물감….”

 


중얼거리듯 내뱉은 소리에 성우가 다니엘의 곁으로 다가갔다. 뭐에 홀리기라도 한 사람처럼, 책을 손에 쥐고는 가만히 있는 다니엘에 성우가 고개를 갸웃하며 다니엘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다. 여기서 뭐 해? 기척 없이 다가온 성우에 다니엘이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아, 작가님. 놀랐잖아요.

 


“내 책 들고 뭐 해.”

“그냥… 내용이 예뻐서요.”

 


이거 작가님 첫 작품이죠. 물감. 다니엘의 손에 들린 파스텔 톤의 책이 팔랑거렸다. 야, 책 구겨져. 성우의 첫 작품, 물감. 성우가 열 일곱 살일 무렵 처음 글에 손을 대고, 긴 시간을 들여 완성했던 작품. 청소년 문학 공모전에 제출해 당당히 대상을 손에 쥐고 청소년들의 필독 도서에 한 획을 그었던, 성우의 단편 소설.

 

 

“열 일곱이 이런 글을 써요? 우리 작가님, 알고는 있었지만 진짜 천재다 천재.”

“알았으니까 책 다시 넣어놔.”

 

 

조금만 더 볼게요. 저 이 소설 완전 팬이다. 다니엘, 존댓말을 쓰든 반말을 쓰든 하나만 해 줄래? 이왕이면 존댓말. 내 맴인데요. 투닥거리면서도 다니엘은 손에 들린 책에서 눈을 뗄 줄을 몰랐다. 한참을 그렇게 책을 쥐고 읽는 다니엘을 성우는 핸드폰을 꺼내 들어 카메라에 담았다. 찰칵,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들어 자신을 바라보는 다니엘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날리고는 유유히 책상으로 가 노트북을 열었다. 아, 진짜 알다가도 모를 옹성우. 중얼거리며 도촬을 당해놓고 싫기는 커녕 오히려 좋아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는 다니엘이었다.

 

 


[나의 텅 빈 벽화에 그는 하나의 작품을 그려주었다. 무채색인 나의 세상에 그는 물감을 잔뜩 가져와 다채로운 세상을 선물해 주었다. 색이 하나 둘 채워질 때마다 나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고, 그런 나를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ㅡ색이 다 채워져서… 네가 더이상 칠할 곳이 사라지면, 날 떠날지도 모르잖아.ㅡ

 

나의 말에 그는 늘 웃으며 내 손을 잡아주었고, 몇달 후 그는 새하얀 그림을 나에게 선물했다. 늘 나에게 다채로운 색감을 선물해 주었던 그가, 갑작스레 내게 하얀색만 가득한 그림을 선물했을 때 나는 기어코 울고 말았다. 우는 나의 손을 맞잡은 그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ㅡ나는 평생 이 그림을 채우지 않을 생각이야. 그러니, 우리의 세상은 영원히 채워질 수 없어.ㅡ]


명작이네. 다니엘은 중얼거렸다. 책을 덮으며 다니엘은 자신이 이 소설속 주인공이길 바랐다. 그렇다면 자신의 상대는, 자신의 물감은 꼭 성우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다녀왔습니다.”

 


텅 빈 거실과 무섭도록 조용한 정적이 다니엘을 반겼다. 주무시나, 오늘은 정말 자는 건가. 신발을 벗으며 조금 알딸딸하게 올라오는 술기운에 다니엘은 지체하지 않고 성우의 방으로 향했다. 꽉 닫힌 문이 마치 자신을 경계하는 듯한 성우의 마음으로 보여 다니엘은 쓴웃음을 꾸역꾸역 목 뒤로 삼켜냈다. 문고리를 잡아 돌리자 꽉 닫힌 겉과는 달리 쉽게 열리는 문에 다니엘은 헛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무방비할 거면, 꽉 닫힌 척도 하지 말든가. 문을 열자 훅 다가오는 성우의 향에 취기가 더 올라오는 것 같았다. 침대에 누워 잠에 든 건지 새근새근 숨을 고르며 자고 있는 성우에 다니엘은 다가가 침대 끄트머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우리 작가님은… 욕심도 많다.”

 


이미 반짝반짝한데, 뭐 아쉬워가 이래 얼굴에 별까지 품었노. 성우의 뺨에 수놓은 듯 새겨진 점들을 조심스레 만지며 다니엘이 중얼거렸다. 이래 욕심도 많고, 조심성도 없어가… 내가, 힘들잖아요. 입술을 깨문 덕분에 흐느끼듯 새어나온 목소리가 꼭 물기를 머금은 것만 같았다. 한참을 성우의 얼굴을 들여다 보던 다니엘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문고리를 잡고,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것 역시 잊지 않고.

 

다니엘이 나서자 절대 떠질 것 같지 않던 성우의 눈이 조심스레 떠졌다. 몇 번 깜빡이던 눈동자는 이내 촉촉하게 젖어들어 눈물을 흘려보냈다. 손으로 얼굴을 감싼 성우는 그렇게 그 날의 새벽도 홀로 지새웠다.

 

“남의 속도 모르고…”

 

 

 


***

 

 

 


“이제 그만 내보내.”

 


민현의 말에 성우는 머금고 있던 소주를 내뱉을 뻔했다. …뭐라고?

 


“언제까지 붙잡을 거야. 성우야, 그거 희망고문이야.”

 


민현의 말에 멍해진 정신을 겨우 붙잡은 성우가 다시 술잔을 채워 원샷했다. 걔만 고문이야? 나도 고문이야. 성우의 말에 민현은 고개를 저었다. 답답한 놈들. 성우와 다니엘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건 민현이었다. 물론, 둘의 마음 역시 누구보다 잘 아는 것도 민현이었다. 그랬기에 당연히 민현의 시점에선 둘의 상황이 답답하기도, 어이가 없기도 했다. 본인이 키워온 자식 같은 아이라서, 앞길을 망치고 싶지 않다는 이유 하나로 성우는 본인의 마음을 숨겼다. 나는… 불완전한 존재야. 성우는 말버릇처럼 자신이 불완전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술에 취하면 더더욱 자신을 질책했다. 내가, 그 아이를 지켜줘야 돼. 잡아줘야 돼.

 

그래서… 그러니까… 사랑할 수 없어. 나는 그 아이를… 그 여린 마음을 받아줘선 안 돼. 이미 반쯤 혀가 꼬여서는 하소연을 하는 성우를 보며 민현은 혀를 찼다. 이건 뭐 취중 고백도 아니고. 할 거면 너네 집 애새끼한테 가서 해라 제발. 몇 번이고 울려대는 벨소리를 기어코 무시하며 성우는 비워진 잔을 또 다시 채웠다.

 

 

 

 


***

 

 

 


“니엘아-”

“저 듣고 있어요. 형, 어디예요. 제가 거기로 갈게요.”

 


너 나 좋아하면 안 돼… 우리, 안 돼 니엘아… 성우의 목소리에 다니엘은 무너지는 심장을 겨우 붙잡고 일어섰다. 우리 햄, 마이 취하셨는갑다. 저 지금 그짝으로 가요. 딱, 기다리요. 알았죠? 떨림에 표준어인지 사투리인지도 모를 문장들이 입 밖으로 튀어나가 다니엘은 손톱을 물었다. 아, 작가님이 물지 말라고 했는데. 그 잠깐의 버릇마저도 다니엘은 성우를 생각했다. 아직 끊기지 않은 전화를 귀에 붙이곤 다니엘은 신발을 신었다.

 

 

“니엘아….”

“네, 형. 저 듣고 있어요.”

“너무 힘들어….”

“….”

 


우리는… 안 돼 니엘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너라도 날 좀 잡아줘. 제발. 성우의 문장을 끝으로 전화는 끊겼다. 열 아홉, 다니엘은 열병과도 같은 자신의 사랑을 무려 상대에게 들키고 말았다. 그리고, 고백 한번 제대로 전하지도 못한 채 상대에게 거절을 당했다. 성우는 처절했고, 그런 성우를 다니엘은 이해하지 못했다. 왜, 왜 우리는 안 될까. 다니엘의 사랑은, 본인의 바람대로 순탄치 못했다.

 

그리고 다니엘은 성우 역시 저와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알아채고야 말았다. 그렇게도 성우가 숨기고 싶어했고, 숨겨서야만 했던 성우 자신의 마음을, 그 날 성우의 주정으로 인하여 결국 다니엘이 알아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다니엘은 그 사실을 성우에게 말하지 않았다. 대신 날마다 기도를 했다. 언젠간, 언젠간 자신과 똑같은 열병과도 같은 사랑에 지쳐 자신에게 마음을 내어주길 바라면서.

 

 

 


***

 

 

 


“작가님, 작가님.”

 


자신을 흔들어 깨우는 손길에 성우는 느릿하게 눈을 뜨며 상대를 확인했다. 살며시 눈을 뜨며 자신을 확인하는 성우에 다니엘이 얕은 미소를 지었다. 작가님, 일어나셔야죠. 언제 다니엘에게 연락을 한 것인지, 민현은 이미 자리를 뜬 지 오래인 듯 싶었다.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고개를 든 성우가 앓는 소리를 내었다. 얼마나 마신 거야 도대체… 여전히 취기가 올라오는 중이었지만 이미 한 번 쓰러진 후인지라 정신이 조금씩 들어오는 것 같아 성우는 지체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성우를 다니엘이 부축하며 가게를 나섰다. 언제 왔어. 음… 이십 분 전이요. 근데 왜 안 깨웠어? 너무 곤히 주무시길래요. 단조로운 대화를 나누며 둘은 골목을 지났다.

 


“그냥 깨워서 가지…”

“어떻게 그래요. 근래 좀 못 주무셨잖아요.”

 


그게 다 누구 때문인데… 성우는 목 끝까지 차오르는 말을 애써 삼켜내고 묵묵히 길을 걸었다. 바닥이 자꾸만 지진을 일으키는 것 같아 속이 울렁거렸다. 집에 도착하면, 잠부터 잘래. 성우의 말에 다니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좀 주무세요. 다니엘 역시 성우의 불면은 본인의 탓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을 뿐, 다니엘은 모든 사실을 숨겼다. 자신이 사랑하는 성우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작가님, 옷은 갈아입고 주무셔야죠.”

 


다니엘의 목소리에도 꿈쩍도 하지 않고 이불에 몸을 뉘운 성우가 설렁설렁 팔을 저었다. 다니엘은 그런 성우의 모습을 뒤로하고 부엌으로 향해 물잔을 채웠다. 평소대로 절반을 채운 물잔을 들고 성우의 방으로 들어서자 성우는 어느새 침대를 벗어나 책상 서랍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작가님?”

“다니엘, 잠깐 이리 좀 와 볼래?”

 


성우의 부름에 다니엘은 성큼성큼 성우의 곁으로 다가섰다. 자신의 곁으로 다가온 다니엘을 침대 끄트머리에 앉힌 성우가 의자를 끌어 다니엘의 앞에 앉았다. 마주치는 시선에 다니엘은 침을 삼켰다. 검은 동공이, 성우의 시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니엘은 알 수가 없었다. 한참을 시선만 주고받다 성우가 고개를 내려 다니엘의 손을 바라봤다. 성우의 시선이 자신의 손에 닿자 다엘은 버릇처럼 손톱을 물었다. 그런 다니엘의 행동에 성우는 손톱을 문 다니엘의 손을 잡아 빼었다. 의미 모를 성우의 행동에 다니엘의 시선이 흔들렸다. 작가님? 다니엘의 물음에도 성우는 맞잡은 다니엘의 손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작가님, 손 좀…”

 


다니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성우는 다른 한 손에서 밴드와 연고를 꺼내보였다. 잡은 한 손을 고정한 상태로 성우는 생채기가 가득한 다니엘의 손에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이기 시작했다. 성우의 손이 스칠 때마다 다니엘은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자신의 속도 모르고 성우의 터치 한 번에도 떨리는 심장이 오늘만큼 원망스러운 날이 없었다.

 


“…다니엘.”

 


성우의 부름에 다니엘은 고개를 들어 성우를 주시했다. 다정한 손길과는 다르게, 저 고운 입이 무슨 말을 내뱉을지 모르니, 다니엘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을 하고 있었다. 다니엘을 부른 뒤 성우는 한참을 치료에만 집중하며 침묵했다. 다니엘 역시 성우를 재촉하지 않고 가만히 성우의 말을 기다렸다.

 


“신경쓰이게 하지 마.”

“….”

“…이게 사랑이면 어떡해.”

 


성우의 말에 다니엘은 회로를 정지시켰다. 성우는 치료를 마무리하고 아무런 말이 없는 다니엘에 고개를 들었다. 사랑…. 성우의 입에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다니엘은 자신의 손을 놓으려는 성우의 손을 다시 힘을 주어 잡았다. 말 없이 자신의 손을 꽉 잡은 다니엘에 성우는 말 없이 다니엘을 기다려주었다. 내 말, 이해했을까. 애초에 겁이 많던 사람이다. 애초에,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던 사람이다. 다니엘은 초조히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성우를 주시하다 이내 미소를 지었다.

 


“작가님.”

“….”

“형.”

“….”

“성우야.”

 


너 반말… 성우의 목소리는 자연스레 다니엘의 입술로 먹혀 들어갔다. 다니엘은 조심스럽게 성우의 입술을 물어 아주 소중한 것을 다루듯 입을 맞추었다. 순식간에 맞닿은 입술에 눈을 감지 못한 성우는 놀란 눈으로 다니엘의 감긴 눈을 주시했다. 살며시 눈을 뜬 다니엘의 눈과 놀란 성우의 눈이 마주쳤다. 다니엘은 웃으며 손을 들어 성우의 눈 위로 올렸다. 그제서야 감긴 성우의 눈을 확인한 다니엘이 성우의 뺨을 감쌌다. 그렇게 둘의 첫 입맞춤이 이어졌다.

 


맞닿은 입술이 떨어지고 성우는 한참동안 눈을 뜨지 못했다. 다니엘은 그런 성우를 보며 몰래 웃었다. 아, 진짜 귀여워. 말로 내뱉으면 분명 그 예쁜 눈으로 자신을 째려볼 성우를 알아 입밖으론 꺼내지 못했다. 다니엘은 한참 후에야 눈을 뜬 성우의 검은 동공을 마주할 수 있었다.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는 다니엘의 얼굴에 성우는 붉어진 귀를 애써 무시하며 눈동자를 굴렸다.

 


“작가님.”

“….”

“계속 신경써 주세요.”

“….”

“계속 그렇게 저한테 투정도 부려주세요.”

“….”

“이건 사랑이에요.”

 


다니엘의 마지막 문장에 맺힌 떨림이 그대로 성우에게 전달되었다. 참았던 감정을 쏟아내듯, 성우는 울음을 터트렸다. 성우의 눈물에 다니엘은 적잖게 당황하며 급히 성우를 자신의 품에 안았다. 작가님, 작가님. 울지 말아요. 괜찮아요. 다니엘의 다정한 음성에 성우는 보답이라도 하듯, 다니엘의 어깨를 끌어 안았다. 그런 성우의 작은 행동에도 다니엘은 행복하다는 미소를 지으며 성우를 안은 팔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이제 우리 둘이, 사랑만 해요. 작가님.

 

나는 하얀색의 도화지가 되어 작가님에게 영감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될게요.

 

그러니 작가님만의 색깔로, 저를 채워주세요.

 

나는 도화지, 작가님은 물감.

 

우리는 누구보다 예쁜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저를 사랑해 주세요 작가님.

 

사랑해, 옹성우.

 

 

 


***

 

 

 


[그의 인생은 늘 나락을 뒹굴었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지하 단칸방에 자리를 깔고 누워 언젠간 문이 열리길 기다리며 그렇게 기약 없는 기다림 속을 헤매었다. 온기조차 허락되지 않은 그 방 안에서 그는 홀로 남몰래 사랑을 꿈꿔왔다.

 

 ㅡ사랑을 할 거야. 이 차갑도록 시린 방 안에서, 울며 자신과 함께 가 달라고 내 손을 붙잡고 애원해 주는 사람과.ㅡ

 

그런 그에게 찾아온 사람은 고작 나락을 뒹구는 단칸방 신세인 자신과는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이었다. 비가 내리는 날 일부러 비를 맞는 그에게 감기가 들면 어쩌냐며 우산을 건내고 자신은 멍청하게도 그 빗속을 뛰어가던 사람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어쩌면 저 사람이, 나의 구원이 될지도 모른다고.

 

그 사람은 그림을 좋아했다. 늘 비어있는 벽화며, 도화지며 가만히 두는 날이 없었다. 그런 사람을 그는 사랑했다. 자신이 도화지가 되고 싶고, 비어있는 벽화가 되고 싶었다. 지저분한 자신을 어쩌면 저 사람이 다른 색으로 채워줄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작은 대를 품었다. 그래서 그는 그 사람에게 날마다 새로운 도화지를 선물로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선물한 도화지는 채워질 생각을 못했다.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둘의 사이가 연인이 되었을 때 역시 그는 자신이 선물한 도화지를 다시 돌려받지 못했다. 덕분에 그의 불안감은 증폭되어, 끝내 눈물까지 보이고야 말았다.

울며 나의 도화지는 왜 채워지지 않는 거냐며 묻는 그에게 그 사람은 대답했다.

 

ㅡ채움의 끝은 결국 끝이야. 내가 모든 도화지를 채우는 순간, 나의 채움은 끝이 나. 나는, 너와의 끝이 두려워. 너의 도화지를 채우지 않는 이유도 같은 이유야.ㅡ

 

나의 색칠을 끝내고 싶지 않아.]

 

강다니엘 단편 소설 도화지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