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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녤옹

 

 

 

 

 

 

M의 이야기

몽룡

 

 

 

 

 

 

 

 

 

 그러니까, M의 모든 기억은 그날의 연구소에서부터 시작했다.

 

 아직도 연구소의 구조가 생각난다. 본인의 랩lab의 모습이 더욱 생생히. 어린 나이에 큰 프로젝트 팀의 팀장을 맡았고, 그랬기에 개인 랩이 꽤 넓었으며, 또한 그것이 더 분할되어 두 개의 방으로 나뉘어졌다는 것을 기억한다. 기억 속의 M 자신이 서 있는 둥근 돔 형태의 방은 사방이 흰 색이었다. 더러운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과, 언젠가부터 가슴 깊숙이 자리한 본인의 죄의식 때문에 결백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무의식과 의식 그 중간에 있는 생각 따위가 합쳐져서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온통 흰 색의 방은 편안함보다는 두려움과 불편함을 주었다. 그럼에도 흰 색 벽을 쳐낼 수 없었던 것이다.

 

 인간들은 각자 살아가면서 죄를 짓는다. 여기서 얘기하는 죄란, 흔히 말하는 법도에 어긋나는 행동 뿐만이 아니라 가슴 한켠에 품고 살아가는 쓰라림 같은 것들이다. 되짚어볼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혀왔던 터라 M은 이십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입 밖으로 기억을 뱉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본인이 사건의 중심에 서 있다고 생각했다. 이십 년이 지나 사십 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현재, M은 본인이 있던 연구소에서 빠져나와 외국의 작은 제약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런 M이 기억을 되짚기 시작한 건 어떤 연유에서였는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였다.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말에 삼류 기자 한 명이 M을 찾아왔다. 기사로 써도 좋고, 쓰지 않아도 좋으나, 기사로 쓸 때는 여전히 사회적 비난이 두려운 본인을 위해 본명이 아닌 M이라고 써줄 것. M은 기자에게 얘기를 하다 몸을 웅크렸다.

 

 그래도 그들은 서로 사랑했음을. 이러한 제목을 단 기사는 M이 현재 거주하는 유럽 전역을 조용히 맴돌다 서서히 잊혀졌다.

 

 내가 기사를 접한 건 잡지가 발간되고 세 달이 넘은 한국에서였다. 유럽의 유명하지 않은 잡지 사모으기, 같은 괴상한 취미를 가진 나는 잡지 한 권 한 권이 모여 집 안의 책장을 이룰 때마다 이유 모를 쾌감을 느꼈다. 이 기사를 접하게 된 것도 나의 괴짜 같은 취미 생활 때문이었으며, 기사를 접하자마자 나는 기자의 이메일을 통해 M을 찾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글솜씨가 뛰어나거나 문장이 흡인력이 있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집 앞 카페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기사를 읽는 동안 눈을 뗄 수가 없었던 것이다.

 

 M을 만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고, 겨우 연락이 닿은 M에게서 퇴짜를 맞기도 다섯 번이었다. 결국 내가 유럽 속 작은 도시의 작은 노천 카페에서 M을 만났을 때 M은 왜 본인을 만나고 싶어했냐고 물었다. 기사 속에 숨겨진 거대한 사건의 전말을, 한 사람의 입장에서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얘기하면서, 그때 연구소에서 쉬쉬하던 비밀스럽고 거대한 프로젝트의 다큐를 제작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사실 M은 본인의, 혹은 그때 연구소의 이야기가 밖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원치 않는 눈치였으나, 껄끄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한참 후 주문한 커피가 나올 때 즈음 이야기를 뜬금 없이 시작했다.

 

 M의 이야기는 M 본인이 주인공이 아니었다. 다른 두 존재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 * *

 

 

 

 

 

 

 

 

 

 

 

  눈 떠.”

  끝났어요?”

 

 

 . 짧지만 다정한 말투에 성우가 비척비척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술대 위에 켜두었던 조명은 M의 손길에 얼마 안 있어 툭 꺼졌다. M이 차마 잠그지 못한 옷을 느릿하게 깨달은 성우가 수술대 위에 걸터 앉은 채로 옷을 여몄다. 좀 춥나? 혼잣말처럼 넌지시 던지는 M의 말에 성우가 음, 하는 소리를 냈다. 처음에는 생각하는 행동이라고 여겼으나 음, 짧은 음절을 뱉은 후 성우는 대부분 대답을 하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하며 혀끝까지 말을 올렸다가 이내 삼키는 모양이었다. M은 수술대가 없는 다른 방으로 들어가서 본인의 책상에 널려 있는 담요를 들고 돌아왔다. 그동안 맨발을 까닥거리던 성우는 담요를 덮어주는 M의 손길을 느끼고 온 몸을 웅크렸다. 어색해하는 것이다.

 

 뭐 좀 먹을래? 수술대 위에 성우를 올려놓긴 했으나 기나긴 수술을 한 건 아니었다. M은 본인의 연구복을 벗고 퇴근을 위한 사복으로 환복하며 물었다. 혼자 던져놓는 말은 눈치껏 성우가 주워가 대답하거나 대답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성우가 고개를 내저었다. 배 안 고파요. 그러면서 본인의 팔뚝에 남은 주삿바늘 자국을 가리킨다. 아까 전 포도당 수액을 맞혔다는 걸 깜빡하고 있었다. M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있으면 지성이 형 올 거야. 그때까지 조금 자두면 좋을 거야.”

  벌써 퇴근해요?”

  내일 금방 올게.”

 

 

 성우가 수술대에서 내려와 신발을 신었다. 얼마 전 큰 프로젝트가 겨우 끝났다. 이제 안정기에 접어들었기에 M은 당분간은 일찍 퇴근해서 쉬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신발을 대충 구겨신고 직직 끌며 벽에 붙어있는 소파로 다가간 성우가 풀썩 그 위로 엎어졌다. 몸 상하면 안 돼. M이 습관처럼 하는 말에 고개를 소파 위에 박은 채로 네, 한숨처럼 대답을 흘렸다. M은 외투를 껴입으며 본인의 반쯤 성공적인 실험 결과물을 내려다보았다.

 

 

  팀장님.”

  .”

  니엘이는요?”

 

 

 이럴 때마다 금방이라도 불에 덴 것처럼 심장이 뜨끔한 건 M이었다. 성우는 여전히 소파에 얼굴을 박은 채로 소리만 웅얼거리고 있었다. 방음 처리가 거의 완벽한 연구실 밖으로 혹시라도 소리가 빠져나갈까 주위를 살펴보던 M이 연구소 복도가 훤히 내다보이는 복도 쪽으로 난 창문의 블라인드를 재빠르게 내려버렸다.

 

 

  아마 훈련 끝나는 대로 올 거야.”

  니엘이 안 아프죠, 오늘은.”

  …….”

  다니엘 보고 싶어요. 아침에 봤는데또 보고 싶네.”

 

 

 아니에요, 사실 안 보고 싶은 때가 없어요. 밥 먹을 때도 맛있는 거 먹으면 보고 싶고, 수술대 위에 누워도 예전에 같이 마주보고 누워서 검사 받던 때가 생각나고. 팀장님 혹시 나 만들 때 니엘이 기억도 심어놓은 거예요?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M은 두통이 다시 시작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반쯤성공적인 실험 결과물은, 외관상 완벽했으나 치명적인 오류를 출력해낸다. 들키면 안 된다. M은 오류를 발견했을 때부터 필사적으로 버텼다.

 

 랩 안이 그리 춥지도 않았는데 M은 괜스레 성우의 마른 등을 보고 온도를 올렸다. 내일 아침 일찍 올게. 그 말에 대답 않는 성우는 이미 잠이 든 모양이었다. 색색거리는 작은 숨소리에 M은 조용히 랩을 나섰다.

 

 도보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는 집으로 가는 동안 줄담배를 피웠다.

 

 본인이 반쯤 성공한 큰 프로젝트의 전반적인 주제는 안드로이드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인공 인간,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존재, 그러나 인간이 아니어야 하는. 이맘때 즈음 인접한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로봇 산업에 뛰어들던 차였다. 로봇 산업 이면에 숨겨진 또 다른 사업은, 모든 국가들이 쉬쉬하는 사업인 안드로이드 개발이었다.

 

 어릴 적 IQ 174 세기의 천재로 이름을 떨치던 M은 유복한 집안 환경 덕에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열다섯의 나이에 학위를 따고, 이유 모를 향수병에 고향인 한국으로 돌아왔으며, 이 또한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국가 기관 산하의 비밀스러운 연구소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니까 들어온 그 해부터 지금껏, 거의 팔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M 본인이 팀장직을 맡아 한 프로젝트를 했다. 결과가 거의 가까워진 올해, 한 달 전쯤인가 M은 성우를 만들어냈다.

 

 옹성우, 설정 나이는 만 22, 원래 이름은 A-501. , 진짜 인간 같아요, 팀장님. 아직 성우가 의식을 차리기 전 성우의 외관을 본 지성이 감탄했다. 성우가 의식을 차릴 즈음 M은 욕심을 부려 또 다른 안드로이드를 만들어냈다. 상부의 지시이기도 했다. 만들어낸 안드로이드의 신체 능력을 알고 싶다는 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다니엘이 태어났다. 강다니엘, 설정 나이 만 21, 본명 A-502.

 

 그들에게 있는 치명적인 오류란, 감정을 가지는 것이다.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인간이 아닌 존재는, 감정이 없어야 한다고. 그게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을 구별하는 미신적인, 그러나 오래 지속되어온 관념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둘은 본체 유전자에 그러한 정보가 나열되기라도 한 것처럼, 서로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보고 싶어했고, 그리워했으며, 애욕에 성욕까지 따라왔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M은 그러한 오류를 보고할 수 없었다.

 

 사랑이란 추상적인 개념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사랑을 할 수 있는가, 해답이 있기는 한 건지 알 수 없는 난제였다.

 

 

 

 

 

 

 

 

 

 

 

 조용한 복도를 살금살금 걸어 도착한 랩 앞에서 다니엘은 문고리를 살짝 돌렸다. 꽤 늦은 시각이었다. 심심했던 성우가 자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니엘 본인이 들고 있는 군복엔 흙탕물이 튄 흔적이 가득했다. 몇 시간 전, 훈련 후 씻는 동안 보았던 제 팔뚝과 다리에는 아니나다를까 생채기가 나 있었다. 걱정시키고 싶지 않다. 단순히 그 생각으로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아 쓰라리고 따가운 상처 위로 물을 끼얹어 최대한 피를 닦아냈다.

 

 문을 열자 보이는 건 소파 위에서 담요를 덮은 채 앉은 자세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성우였다. 문고리를 살짝 놓는다고 놓았으나 귀신 같이 인기척을 느낀 성우가 고개를 들고 다니엘을 쳐다봤다. 얼마 전 눈을 찌른다고 짧게 자른 머리가 눈썹 위로 껑충 올라가 날카롭게 깎인 얼굴형을 동그랗게 보여주고 있었다. 잠에 취해 흐릿하던 눈빛이 다니엘과 눈이 마주치자 금세 또렷하게 초점을 잡았다. 다니엘은 문 옆에 놓여있는 의자 위에 군복을 아무렇게나 내려놓고 성우가 앉아 있는 소파로 척척 걸어갔다.

 

 머리보다 마음이 앞서가는 건 언제나 성우 앞에서였다. 인간들이 다니엘 본인의 신체 능력을 측정하고 싶어하는 걸 안다. 그 때문에 늘 아침마다 훈련소로 불려나가 여타 다른 인간들과 함께 군 훈련을 하는 것이었다. 훈련을 할 때마다 늘상 듣는 소리였다. 어떤 상황에서든 머리가 먼저 나아가야 한다고. 머리로 판단을 하고, 이후에 움직인다. 시시각각 눈 깜짝할 사이에 상황이 변하고 역전되는 상황에서 이성을 앞세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인간들은 극한의 상황에서 이성을 앞세우는 일이 힘들기 때문에 훈련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안드로이드인 본인도 머리를 앞세우기란 쉬운 일은 아닌데, 훈련을 관장하는 소대장의 말에 열중쉬어 자세로 서 있던 다니엘은 고개를 푹 숙였다.

 

 다니엘이 온 것은 알았으나 아직 잠에 취해 있는 성우의 몸을 끌어안자 손을 잘 타는 성우가 답싹 몸으로 안겨온다. 얼굴 보여줘. 귓가에 대고 작게 말하자 성우가 고개를 들었다. 서로의 눈만 마주보다 섞이는 날숨에 둘 다 웃음이 터졌다. 성우를 안고 소파 위로 누웠다.

 

 

  보고 싶었다, .”

  , 나도.”

  같이 자고 싶다.”

  , 나도.”

  내 오늘 열심히 했으니까 쓰다듬어도.”

 

 

 똑같은 대답만 반복하던 성우가 키득거리며 다니엘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푸석푸석할 것 같은데 부드러운 자연의 백금발은 성우의 얇은 손가락 사이사이에 자연스레 감겨들었다. 투정을 부리듯 성우의 어깨에 코를 부볐다.

 

 랩에서만 지내다시피 하는 성우와 달리 훈련소로 오가는 과정에서 만나게 된 인간들은 제각각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다니엘은 그저 어느날 합류한 능력 좋은 신병으로만 알려졌다. 군대장의 먼 친척이다, 외국에서 살다 온 것이다, 여러 가지 말이 다니엘을 둘러쌌다. 외관상 인간이라는 이유 하나, 또 다니엘의 존재는 극비리에 부쳐져야하기 때문에 알려지면 안 된다는 이유 둘 때문에 다니엘은 밖에서나마 인간인 척 굴 수 있었다.

 

 사실 성우를 만나러 오기 전, 훈련 쉬는 시간 도중 친해진 몇몇 병사들과 말을 섞을 기회가 있었다. 훈련만 끝나면 곧장 연구소로 이송되는 다니엘과 달리 몇 달이고 가족들과 떨어져 있던 병사들의 얘기를 중간에서 듣고 있던 다니엘이 생소한 단어에 불쑥 말을 잘랐다.

 

 

 「죄송합니다만, 사랑한다는 게 뭡니까?

 「그런 걸 묻는 사람은 또 처음 봅니다.

 「아니, 그냥,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나싶어서 말입니다.

 

 

 가족 얘기를 하고 있던 병사들이 의아하게 쳐다보는 터에 겨우 둘러댄 다니엘이 의심의 눈을 거두는 제 옆의 병사의 눈치를 보곤 혼자 한숨을 돌렸다. 제각각의 나이를 가지고 있는 병사들 사이에서 이윽고 말이 슬금슬금 터져나왔다. 스물을 갓 넘긴, 남자보다는 소년에 가까운 병사가 검댕이 시커멓게 묻은 얼굴을 하고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그건 복잡한 겁니다.

 

 

 그 말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있던 병사들이 키득키득 웃었다. 나이가 어리신데도 잘 아십니다, 서른이 가까워지는 병사 한 명이 대꾸했다.

 

 

 「복잡한데 사랑한다는 말을 합니까?

 「그래서 하는 겁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니까 한 마디에 담는 겁니다.

 

 

 모여 있던 병사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남자가 사람 좋게 웃으며 덧붙였다. 군인 그만두시고 다시 사회로 나가시면 시인을 꿈꾸고 계시는 겁니까, 반쯤 장난스러운 야유가 섞인 말에 남자가 호탕하게 웃었다. 제가 살아온 인생이 여러분들보다 조금 더 길지 않습니까, 그만큼 겪은 것도 본 것도 많습니다. 그 이후로는 이야기 주제가 다른 곳으로 넘어가느라 흐지부지 되었다.

 

 돌아오기 직전 해산하라는 명령에 다니엘은 그때의 남자를 불쑥 찾아갔다. 김 상사님, 작게 부르는 말에 남자가 뒤돌아보곤 웃었다.

 

 

 「김 상사님께서는 누구에게 사랑한다고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그땐 몇 날 며칠 너무 보고 싶어서 찾아가자마자 애처럼 덜덜 떨면서 얘기했습니다.

 

 

 사랑에 대해 고민이 많으신가봅니다. 뒤따라오는 말에 다니엘은 대충 웃으며 둘러대곤 자리를 떴다. 몇 날 며칠 너무 보고 싶어서. 그 말이 자꾸만 귀에 맴돌았다. 무언가를 캐내려는 것처럼, 혹은 그 말이 온 몸에 있는 구멍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가 영영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아서, 돌아오는 내내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뇌 한 구석에 그 말을 새기기라도 할 것처럼 굴었다.

 

 성우는 다니엘을 보자마자 마음이 놓였는지 다니엘의 머리칼을 헤집는 손길이 점점 느려졌다.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변하는 걸 보던 다니엘이 성우의 작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쥐었다. 니엘아, 나 졸려. 얇은 입술이 웅얼거렸다. 성우의 눈썹, 감긴 눈, 콧대, 콧망울, 입술을 눈에 새기기라도 할 것처럼 찬찬히 뜯어보았다. 보고 싶었던 얼굴과, 그 이상으로 알 수도 없는 복잡한 생각들. 제가 무얼 하고 싶은지, 무얼 원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다니엘은 하나의 확신만 가지고 있었다.

 

 사랑해. 한참 후에 다니엘이 입 밖으로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이렇게 어려운 말일 줄 몰랐다. 다니엘은 잠든 성우의 앞에서 말을 꺼낸 후에도 한동안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느라 제 옷자락만 움켜 잡았다.

 

 

 

 

 

 

 

 

 

 

 

 아침 일찍 연구소에 도착했을 때, 다니엘과 성우의 아침을 챙겨주고 있던 지성이 M을 불렀다. 팀장님, 잠깐 얘기 좀 해요. 간밤 기어코 담배 한 갑을 다 태우고 잠들었던 M은 머리를 감지도 않고 대충 옷만 껴입고 출근했다. 어차피 연구소 내에 샤워실이 있어 손에 잡히는 바쁜 서류 작성만 좀 끝내고 샤워를 하려던 참이었다. 깔끔한 걸 못 버텨 본인의 랩 온 사방을 하얗게 만들었으면서 불특정 다수에게 시위라도 하는 것처럼 씻지도 먹지도 않고 출근하는 일이 잦아졌다. 안 씻으면 본인이 더 기분이 언짢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면 씻지 않는 제 모습이 마치 제 몸뚱아리에게 심술이라도 부리는 또 다른 내적 자아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M은 계획을 변경했다. 일은 제쳐두고 먼저 샤워를 하고 오기로 마음 먹었다. 아직 개발 초기 단계라 섭취하는 비타민으로는 부족해 인위적으로 비타민을 주입해줘야하는 탓에 성우와 다니엘에게 정신이 팔려 있는 지성 몰래 M은 샤워실을 다녀왔다. 얼마 안 있다 돌아오자 식곤증 때문인지 꾸벅꾸벅 졸고 있는 성우만 있었다. 다니엘은 훈련소로 갔을 것이다. M은 제 데스크탑이 놓여 있는 책상의 의자를 빼 앉으며 컴퓨터가 부팅되길 기다렸다.

 

 

  뇌물.”

 

 

 제 앞으로 믹스커피가 불쑥 내밀어졌다. 컵을 쥐고 있는 손을 따라 시선이 올라갔다. 지성은 무슨 일인지 꽤 심통난 표정이었다.

 

 지성은 연구소에 출입 자격이 있는 일반인에 가까웠다. M과는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만났다. M은 고등학교 보건 선생인 지성이 왜 이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되었는지 여전히 모르는 상태였다. 허울 좋은 구실조차 없는 합류에 처음 지성을 만났을 때 M은 몹시 아니꼽게 생각했다. 차라리 현직 간호사를 데려다놓지, 그런 투덜거림 정도는 마음에 담아두고 입 밖으로 내지 않을 수 있는 눈치 정도야 있었다. 그러나 같이 지내본 결과로는 그리 방해가 되지 않는 사람이었고, 나중에 술잔을 기울이면서 얘기해본 바로는 프로젝트에 대해 이해도도 퍽 높은 편이었다. 또한 프로젝트고 연구고 다 떠나서도 인간 대 인간으로 마음에 들었다.

 

 믹스커피를 받아들자 지성이 의자를 끌어와 M의 맞은편에 풀썩 주저앉았다. 부팅되는 컴퓨터의 화면과 지성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던 M이 모니터를 꺼버리는 지성의 손에 항복하겠다는 표시로 두 손을 들어보였다.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데.”

  보고 할 거야?”

 

 

 지성은 M과 단 둘이 있을 때, 혹은 무언가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M에게 반말을 직직 쓰는 버릇이 있었다. M은 굳이 그걸 고치고 싶은 마음이 없어 태클을 걸지는 않았다.

 

 

  뭘 말하는 거야.”

  쟤네. 보고 할 거냐고.”

  이미 보고는 다 끝냈는데.”

  내 말 알잖아. 폐기할 거냐는 뜻이야.”

 

 

 반쯤 성공한 결과물은, 최종적으로는 실패작이 되는 것이다. 현대 문명의 시류를 결정하고 먼저 앞서나가는 사람이 M이었다. 한 명의 천재는 역사를 만들고, 수많은 영재는 천재의 길을 메운다. 천재로 칭송받으며 살아온 짧은 나날 동안 M이 뼈저리게 느낀 것들 중 하나는, 반쯤 성공해봤자 쓸모가 없다는 것이었다. 반쯤 성공한 것도 나머지 반이 실패였기 때문에 최종적으로는 실패였고, 구 할 이상 성공한 것도 나머지 일 할이 채워지지 않으면 실패한 것이다. 그 누구보다도 M은 잘 알고 있었다.

 

 실패작은 폐기한다. 시간이 더 길어지면 안 된다. 결과물의 치명적 오류를 알고 있는 지성과 M 너나 할 것 없이 아는 사실이었다.

 

 

  아직 시간 남았잖아.”

  폐기할 거라는 얘기구나.”

  …….”

  쟤네 인간이에요, 팀장님.”

 

 

 감정이 있어. 서로 본 순간부터 끌린대. 마법 같대, 자기들끼리.

 

 

  나중에 얘기해.”

  …….”

  잠을 몇 시간 못 자서

 

 

 지성이 별 말 덧붙이지 않고 랩을 나섰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M은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지성의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단순히 정이 들어버린 거라고, 자위했다. 죄책감, 실패감, 무기력 따위에 잠식되어가는 본인을 위해서라도 다니엘과 성우는 인간이면 안 되었다.

 

 

 

 

 

 

 

 

 

 

 

 날이 풀리기 시작했다. 꽃샘추위도 가신 모양이었다. 지성의 감시 하에 연구소 밖에 잠시 다녀와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사실상 거의 처음인 외출이었다. 성우의 외투를 여며준 다니엘이 제 머리 위로 모자를 씌워주는 성우를 보고 실실 웃었다. 그렇게 좋냐, 뒤따라오는 지성의 타박에 다니엘이 여전히 웃음을 머금은 상태로 뒤돌아봤다.

 

 교외에서도 특히 산 중턱에 위치한 연구소에서 빠져나와 꽤 볼만한 것들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은 험악하기도 했고 멀기도 했다. 운전석에 지성이 앉아 네비게이션을 보며 시가지로 접어들 때까지 차 안에는 지성이 틀어놓은 노래만 잔잔히 흘렀다. 뒷좌석에서 성우와 손을 맞잡고 각자 처음 보는 세상에 입을 쩍 벌리고 바깥을 구경하는 동안, 셋이 탄 차는 천천히 도심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어디 갈래?”

 

 

 층층이 쌓인 건물들이 여러 개 나타나기 시작한 교차로가 저 멀리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을 때 지성이 물어왔다. 가고 싶은 곳 있어? 보고 싶은 거나. 뒤따라오는 말에도 성우는 여전히 바깥에 정신이 팔린 채였다. 저를 쳐다보는 백미러 속의 지성을 쳐다보던 다니엘이 어깨를 으쓱였다.

 

 

  아는 게 있어야죠.”

  대체 팀장님은 너네한테 뭘 가르치셨다냐.”

  우린 알 것만 알면 되는데요, .”

 

 

 다니엘의 말에 지성이 대답하기 난감한듯 머리를 긁적였다. 미안한 눈치였다. 창 밖을 내다보자 타고 있는 차 옆을 지나가는 수많은 자가용들과 택시, 버스가 보였다. 신기하나. 다니엘이 성우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제야 성우가 저를 쳐다보았다. 눈 안에 약간의 흥분과 고조된 기분이 들어 있어 저마저도 심장이 뛰었다.

 

 그럼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간다. 지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성우는 이내 차창에 머리를 박고 졸기 시작했다. 성우 형 잠이 너무 많아요. 얼마 전, M과 단 둘이 남았을 때 걱정 반, 투정 반으로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M이 의아한 표정으로 다니엘을 돌아봤다. 잠이 많다고? . M이 물었고, 다니엘은 출력 버튼이라도 눌린 것처럼 착실하게 대답했다.

 

 

 「성우 잘 안 자는데.

 「…….

 「안 자는지 못 자는지 모르겠지만…」

 

 

 M이 관찰한 바로는 성우의 평균 수면 시간은 일 세 시간 정도였다고 했다. 과도한 불안함으로 인해 파생되는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다고. 내랑 같이 있을 때는 거짓말처럼 곯아떨어지는데, 입 밖으로 다니엘은 말을 꺼내지 못했다.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기록해야하는 M이었음에도 다니엘은 M의 입에서 성우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불편해졌다. 성우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싶고, 분명히 자신은 M이 아는 성우와는 다른 성우를 알 텐데도. 그래서인지 M의 대답을 듣자 묘하게 기분이 붕 뜨는 것 같았다.

 

 아마 다니엘 네가 편해서 네 옆에서 자는 걸 거야. 이후 흘러가듯 대답한 지성의 말은 다니엘이 가지고 있는 감정을 도장으로 꽉꽉 눌러 인정해주는 것 같았다.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준 것처럼.

 

 한 시간 정도 차를 타고 달리자 도착지가 넓게 펼쳐져 보이기 시작했다. . 입 밖으로 새어나온 짧은 감탄사에 성우가 부스스 잠에서 깼다. 백미러로 눈이 마주친 지성은 뿌듯한 표정이었다.

 

 맘껏 봐. 바다라고 하는 거야.

 

 

  너 이런 거 본 적 있어?”

  아니내는 들어만 봤다.”

 

 

 초봄의 빛을 받아 반짝이는 파도가 일렁이다 해안가 가까이로 다가와 하얗게 부서지는 게 보였다. 다니엘이 의자 위를 더듬어 성우의 손을 찾아 다시 맞잡았다. 익숙하게 깍지를 끼며 감겨오는 손가락의 온기가 퍽 다정했다.

 

 처음 밟아보는 해안가의 모래는 군 훈련을 받을 때 밟던 질퍽한 진흙이라던가 딱딱한 산의 흙이라던가 하는 것들과는 달랐다. 신발 안으로 모래가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한참을 모래를 밟으며 성우와 뛰어다녔다. 발끝까지 금방이라도 올 것 같은 파도를 보다가 짜릿하게 발이 젖지 않을 타이밍에 뒤로 물러나는 걸 몇 번 반복하자 성우가 옆으로 뛰어왔다. , 파도가 철썩 다가오는데 바다 쪽으로 다니엘을 밀어버린 성우가 깔깔 웃으면서 도망쳤다. 덕분에 신발이 홀딱 젖었다. 멀리서 추운 날에 물놀이는 싫다며 지켜보고 있던 지성이 경악했다.

 

 다니엘, 넌 그거 벗고 차에 타. 젖은 흙이 차 바닥에 묻는 건 생각만 해도 진절머리가 나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지성이 잠시 편의점에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떴다.

 

 

  성우 형.”

 

 

 . 다니엘을 등진 채 바다를 쳐다보고 있던 성우가 꽤 들뜬 목소리로 대답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톤이 올라있는 걸로 보아 신이 난 모양이었다.

 

 

  내는 형 밖에 없다.”

  , 나도.”

  형이 뭐든지 해달라고 하면, 다 해줄 수 있다.”

  …….”

 

 

 바닷바람이 불었다. 초봄의 해수욕장에는 사람들만 띄엄띄엄 서 있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멀찍이, 서로 드문드문. 성우의 이마를 덮고 있던 앞머리가 바닷바람에 흐트러졌다.

 

 

  저번에 형이 얘기했던 거, 말인데.”

  …….”

  조만간 우리 폐기될 거라는 거. 팀장님 말. 형이 몰래 들었던, 그거.”

  …….”

  내는 폐기되기 전까지 형이랑 있는 기억으로만 채워도 좋을 것 같아서. 근데 형이 폐기되기 싫으면 데리고 도망칠 수도 있다. 어딜 가든 어떻게든 살겠지. 인간 아닌데, 인간인 척 하면서, 둘이 같이 있으면 뭐든 못하겠나. 그러다가 인간들처럼 아프면 죽고, 늙으면 죽고.”

 

 

 형이 먼저 개발된 덕분에, 태어날 때부터 형 눈을 봤고 기억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같이 있는다면. , 물론 무섭지. 안 무서울리가 없다아이가. 내가 뭐라고 하는 거지좀 더 정리해서 말하고 싶었는데. 진짜 복잡하제. 인간들은 이걸 사랑한다 카더라. 우리도 인간 하자. 폐기될 걱정 안 하고, 랩 밖에 나와서 바다도 보고, 서로 사랑한다고 얘기도 해보고, 매일 검사 안 해도 되고근데 있제, 그 기억에는 전부 형이 있다. 그러니까 바다만 보지 말고, 걱정만 하지 말고, 잠만 자지 말고, 내 한 번만 안아줄래.

 

 간단히 먹을 것과 다니엘의 신발을 담아둘 비닐 따위를 얻어오느라 잠시 시간이 걸렸던 지성이 다시 해안가로 돌아왔을 때,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손을 맞잡고 있는 다른 둘을 보았다. 쟤네 어쩌면 한 몸으로 태어났어야 했는데 팀장님이 잘못 만들었을지도 몰라. 그래서 둘을 방해하지도 못하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지켜보았다.

 

 

 

 

 

 

 

 

 

 

 

 감겨있던 눈꺼풀이 잠시 움찔거렸다. 이윽고 쌍꺼풀 없는 큰 눈이 천천히 뜨였다.

 

 그런 성우를 한 번 쳐다본 M은 다시 모니터로 얼굴을 처박았다. M은 랩탑을 무릎에 올려 보고서를 휘갈겨 쓰는 중이었다. 실험 관찰 일지라고 봐도 무방했다. XXX, A-501의 상태 양호. 그러한 글을 몇 개나 써내려가던 참이었다. 성우가 누워 있는 소파를 넘겨보다 한 줄 쓰고, 다시 넘겨보다 한 줄 쓰고, 체크한 상태를 컴퓨터로 입력하고, 흘러내린 담요를 성우의 어깨까지 끌어다 덮어준 후 다시 보고서를 작성하는 식의 산만한 일처리였다. 오류를 적어야했는데, 자꾸만 손을 움직여 다음 일자를 적고 있었다. 양쪽 어깨 위로 무거운 죄책감이 턱턱 올려진 것 같았다.

 

 성우와 다니엘의 손을 잡고 낭떠러지로 내몰린 것 같았다. 성우랑 다니엘의 손을 놓아버리면 살 수 있는데, 같이 맞잡고 있으면 자신을 포함한 연구소 전체가 사회적 논란에 의한 파장에 휘말려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애초부터 답은 정해져 있었다. M 본인이 배운 건 그랬다. 윤리와 도덕과 같은 것들을 떠나, 인간을 먼저 중시해야한다고. 연구소에서 잘릴까 전전긍긍하는 거라면 오히려 나은 상황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릴 적 생물학 강의 시간에 했던 모든 실험도구와 결과물은, 강의가 끝나고 나면 폐기하는 게 익숙한 일이었는데, 지금은 선뜻 손이 나서질 않았다.

 

 그러면 인간으로 인정하고 있는가. 질문에 대한 답을 얘기할 수가 없었다. 성우와 다니엘을 살려두면 어떻게 될는지에 대해선 차마 상상할 수 없었다. 본인의 손으로 폐기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비참한 끝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인간으로 인정한다면, 본인은 지금보다 랩을 더 하얗게 만들어야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쩌면 미쳐버릴지도.

 

 

  팀장님.”

  …….”

  팀장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문서 위에서 깜빡이던 커서가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저를 부르는 목소리가 이리저리 생각의 회로에 올라가 휘청이고 있던 저를 잡아 현실로 끌어내리는 느낌이었다. 초점 없이 모니터에 눈을 고정시키고 있던 M은 고개를 들어 성우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왼쪽 뺨 위의 점 세 개.

 

 뭔데? M은 쓰고 있던 안경을 벗고 마른 세수를 하며 물었다. 아직 본격적인 오후가 시작된 것도 아니었는데 요 며칠 간 불규칙적인 수면 시간과 스트레스 때문인지 피로가 무더기로 몰려왔다.

 

 

  사랑한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가끔 보면, 오글거리는 거 하나도 모르고 말하는 성우 네가 오백 년 전에 있던 사람 같다.”

  …….”

 

 

 성우는 영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그럼 다니엘도 오백 년 전 사람이에요? 논점에서 완전히 벗어난 질문을 던지는 바람에 이상한 심술이 마음 속에서 일어났다. 여태껏 쌓여있던 응어리가 예민함에 기대어 이리저리 삐죽하게 튀어나왔던 걸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무너지는 모습을 구차하게 엉뚱한 곳으로 뱉어내는 것이었다. 본인에게 돌아가야할 화살표가 자꾸만 어긋나 다른 곳을 찔러댔다. 찌르면 찌르는대로 면역 없이 받아들일 존재에게.

 

 

  그건 철학자들이나 일반인들이 할 생각이야. 나는 과학자라 그런 거 대답 못해.”

  …….”

  그리고 그런 건, 인간들이나 하는 거야.”

  …….”

  넌 인간 아니잖아.”

 

 

 랩탑을 내렸다.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있던 성우의 눈동자가 일어서는 자신을 따라 느릿하게 올라왔다. 생각보다 덤덤한 눈치였다. 더 아파해, 아파해라. 심술이 제 목을 조르느라 제대로 거르지 못한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게 헤집었다. 대답 않는 성우를 마주하고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너네 둘이 사랑한다는 건 애초부터 성립될 수가 없어.”

  …….”

  이제 더 이상 인간인 척 하지마.”

  저는 다니엘을 좋아해요.”

  증명된 바 없어. 그리고,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넌 감정을 가지면 안 되는 존재야. 잘못된 거라고.”

 

 

 처음부터 모든 게. 너랑 다니엘이.

 

 그리고 어쩌면 내가. 마지막 말은 하지 못했다. 시종일관 담담한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던 성우의 뺨 위로 눈물이 뚝 떨어졌다. 때문에 참을 수가 없어졌다. 거 봐, 쟤는 감정이 있잖아. 또 다른 내면이 아우성쳤다. 어떻게 그렇게 보는 사람이 다 괴로울 만큼 감정이 풍부한 얼굴을 타고났을까. 좋아한다, 아니다를 증명해낼 수 없다는 건 M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성우의 검은 눈동자 안에 담긴 슬픔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뒤돌아 랩을 뛰쳐나갔다.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옥상으로 오 층이나 뛰어올라가는 동안 쉴 새 없이 울었던 것 같다. 신이 아닌 인간이 신의 영역에 도전한 벌인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무너지고 있었다.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본인 외엔 아무도 믿지 않았는데, 종교가 없음에도 종교가 간절해졌다. 잘난 자기 자신을 제외하고 그 누구도 우러러볼 수 없었는데, 지금은 하늘을 꼭 봐야만 할 것 같았다.

 

 옥상에 도착해 허술하게 잠겨 있는 문을 열었을 때, 봄빛이 어린 맑고 새파란 하늘이 저를 반겼다. 햇살이 온 몸 위로 쏟아졌다. 뛰어올라오느라, 그리고 우느라 헐떡이던 숨이 가라앉고, 하늘 높이 떠 있던 해가 서산을 넘어 질 때까지, 바지 뒷주머니에 쑤셔두었던 담배 한 갑을 다 태우고도 남을 때까지 옥상에 가만히 서 있었다.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지성에게서 연락이 왔다. 성우가 고열에 시달린다는 내용이었다. 임시방편으로 해열제를 처방해달라는 말만 하고 핸드폰을 껐다.

 

 

 

 

 

 

 

 

 

 

 

  바다를 보고 싶어.”

 

 

 온전한 문장이다. 여전히 성우는 열이 38도에서 더 떨어지지 않았다. 신월이 다가온 건지 달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밤이었다. 뜨거운 체온이 제 품 안에서 바스라져 금방이라도 재로 변해 날아갈까봐 다니엘은 성우를 안고 있던 팔에 힘을 주어 제게 더 끌어당겼다. 열에 시달려 한동안 헛소리를 하던 성우가 힘에 부쳤는지 축 늘어진 채로 다니엘 제가 끌어당기는대로 따라왔다. 지성은 평소 성우가 다니엘을 기다리며 졸던 소파 위에 불편한 자세로 앉아 목을 그로테스크하게 꺾은 채 코를 골고 있었다.

 

 

  바다?”

  .”

  ?”

  네가 거기서 태어난 것 같거든. 넓고 시원하고 탁 트인 게 너랑 닮아서.”

 

 

 성우는 그래도 정신은 되찾은 것 같았다. 열이 39도까지 올라 헛소리를 하는 성우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쉴 새 없이 닦아주다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 때문인지 다니엘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

 

 훈련을 마치고 늘 그렇듯 랩으로 돌아왔을 때 이상하게 평소와 달랐다. 지성이 성우에게 해열제를 놓고 물에 적신 수건으로 땀을 닦아주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묻기도 전에 지성이 체온계를 들어보였다.

 

 

 「아까 전부터 헛소리만 하던데.

 「……. 많이 아파요?

 「딴 건 다 모르겠고, 너한테 뭐 말해줄 게 있다면서. 이름에 꿀 발라놓은 것도 아니고 다니엘, 다니엘, 계속 찾아서 다니엘이 아닌 내가 다 미안하더라.

 

 

 불규칙하던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잦아들었을 때 즈음 다니엘은 성우가 누워 있는 간이 침대 위로 몸을 구겨넣었다. 혹시라도 상태 안 좋으면 나 깨워. 한 마디를 남긴 지성은 소파에 앉아 팔짱을 끼고 자기 시작했다. 성우의 손을 잡자 그 와중에도 손을 맞잡아오길래 성우의 손을 제 머리 위로 가져다댔다. 그러나 머리에 손을 올린 채로 가만히 있어서 덜컥 겁이 나 성우를 불렀다. , 내 머리 만져도. 열에 들떠 눈을 감고 있던 성우가 설핏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니엘 왔네.

 

 그때로부터 두 시간쯤 흘렀을까. 다니엘은 시간을 가늠하며 여전히 뜨거운 성우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도망칠까.”

  …….”

  사실 내는 폐기되는 게 너무 무섭다그 너머를 몰라서.”

 

 

 열 때문인지 목이 불편한 것 같았다. 성우의 날숨이 색색거리는 소리를 내며 깨어있는 것만 암시했다. 성우의 손이 제 허리 위로 올라왔다. 열 때문에 여기저기 할 것 없이 뜨거운 몸.

 

 

  인간들 틈으로 도망치는 것도, 그 너머를 모르는 거잖아.”

  …….”

  그건 안 무서워?”

  거기는 형이랑 같이 가는 거라서, 안 무섭다.”

 

 

 순수한 고백이었다. 다니엘이 성우와 눈이 마주치자 베시시 웃었다.

 

 

  그래서, 형아. 내가 훈련소에서 같이 있는 인간들한테 물어봤거든. 인간들은 그 너머를 아냐고. 우리보단 많이 알 것 같아서, 물었는데. 다 모른다카데.”

  …….”

  근데 종교라고, 절대자를 찾는 그런 어떤 게 있다칸다. 내는 팀장님처럼 존재를 만드는 건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고, 그냥 이것저것 다 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또 다른 존재. 종교가 많더라. 종교마다 얘기하는 것도 달랐는데, 내가 제일 마음에 들었던 게 뭔지 아나.”

  뭔데?”

 

 

 인간도, 동물도, 인간이 아닌 존재도, 이 세상에 태어나기만 하면, 현재 어떤 모습으로 태어났든지, 그 너머에서 다시 다른 모습으로라도 태어날 수 있다는 거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랬다. 근데 형이랑 나는, 옷깃이 아니라 우리가 눈 뜨고 돌아다닐 수 있는 모든 시간 동안 같이 있었으니까, 그 너머에선 어떻게든 만나지 않겠나.

 

 형도 무서워할까봐 꼬치꼬치 캐물어냈다고, 차마 덧붙이지 못한 채 다니엘은 입을 다물었다. 인간이 아니더라도 돌고 돌아 인연이 닿을 수 있다는 것에 마음을 빼앗겼다. 어차피 인간들이 세운 수많은 가설 중 하나겠지만, 붙잡을 자락이라도 있다는 게 어딘가. 성우는 잠자코 들으며 이야기 중간부터 다니엘의 머리카락을 만지고 있었다.

 

 어두운 밤이다.

 다음 날의 해가 뜨지 않을 것처럼.

 

 

 

 

 

 

 

 

 

 

 

 나란히 붙어 있는 두 개의 수술대가 모두 채워진 건 간만의 일이었다. 다니엘과 성우는 손을 뻗어 자신들 사이에 있는 틈을 메우기라도 하려는 듯 서로 맞잡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당일이었다. M은 지성이 떠난 자리만 황망히 보고 있었다. 전날 보고서를 제출했다는 얘기를 했다. 꼭두새벽에 전화를 받은 지성은 이상하게도 잠에 취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목소리는 당연히 잠겨 있었으나, 밤을 새서 잠긴 건지, 울어서 잠긴 건지, 도통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M은 잠자코 지성의 숨소리만 듣고 있었다.

 

 

 「팀장님.

 「…….

 「저 사표 썼어요.

 

 

 그래, 수고했어. 입술이 꾹 다물려 그 말이 안 나왔다. 정적은 계속 되었고, 한참 견디다 못한 지성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 랩에 남아있는 짐은 나중에 빼러 갈게요. 전화가 끊긴 후 몇 분 있다 지성에게서 온 짤막한 문자였다. M은 더 이상 대답하지 못했다.

 

 

  팀장님, 눈이 안 보여요.”

  …….”

  니엘이 얼굴은 볼 수 있게 해주시지.”

 

 

 성우는 고열 때문에 시신경이 많이 나빠진 상태였다. M이 일부러 약물을 투여한 게 아니었다. 그러나 M은 굳이 변명하지 않았다. 마음의 짐을 지고 살아가야한다면, 지금껏 자기를 후려쳐줬으면 하는 기분에서였다.

 

 다니엘. 조용한 랩 안에서 성우가 작은 목소리로 다니엘을 불렀다. M은 라텍스 장갑을 끼며 둘을 지켜보았다.

 

 

  복잡한 걸 담아서 말하는 게 사랑한다는 거라며.”

  ……이제 내 좀 사랑하나.”

 

 

 우스갯소리를 한 다니엘 덕분에 초점 없는 눈으로 다니엘을 마주보고 있던 성우가 키득키득 웃었다.

 

 시간을 주고 싶었다. M은 제 숨소리마저 죽였다.

 

 

  사실 만들어졌을 때부터 안 사랑한 적이 없었는데.”

  지금 들으니까 부끄럽네.”

  무슨 느낌인지는 모르겠는데, 기분이 이상한데 좋은 게, 더 많이 말해줄 걸 싶어서.”

  괜찮다.”

  …….”

  우리 다음에 안 만날 거 아니잖아.”

  …….”

  그땐 일 분마다 사랑한다고 해도.”

 

 

 그래. 한숨처럼 성우가 대답했다. 그동안 매일 아침저녁에 본대도 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근데 다니엘, 나는 그동안 이제 어디서 널 그리워하지

 

 

 

 

 

 

 

* * *

 

 

 

 

 

 

 

 여기까지가 M의 이야기였다.

 

 나는 M의 이야기를 듣고 메모하고 있던 연필과 수첩을 쓰레기통에 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의 막바지가 되었을 때 즈음 M은 울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지 않고 우는 사람을 본 건 짧지 않은 내 인생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노천 카페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며칠 동안이나 이어졌다. 나중엔 M이 본인의 집으로 나를 초대했던 것이다. 밥을 먹고, 이야기를 듣고,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에서부터 유럽까지 비행기를 타고 시간과 돈을 쓰며 장장 몇 날 며칠을 보낸 게 아깝지가 않았다. 오히려, 처음부터 들으면 안 되었던 이야기라는 느낌이 강했다. 그러나 나는 M에게 알량한 동정심이 들었던 것이다. 그의 기억을 나누어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M은 이야기가 끝나고 난 후, 한국으로 돌아가는 나를 공항까지 배웅해주었다. 공항으로 가는 M의 차 안에서 M은 조수석에 앉아 있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청자가 불분명한 고해성사를 하는 것처럼 핸들을 꼭 쥐고 중얼거렸다. 그 이후로 바다가 보기 싫어져서 내륙 지방에 자리를 잡았다며, 혹시라도 바다에 갈 일이 있으면 그때 못다한 말이라도 전해달라고, 마지막으로 내게 부탁하는 것이었다.

 

 내가, 다 잘못한 거라고. 너희들은 잘못한 게 없어.

 너희는 질긴 인연인 만큼 수많은 삶을 돌고 돌아 또 다시 만나서 다른 세상에서 사랑하렴.

 

 한국으로 돌아온 후 더 이상 M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메일을 보내도 없는 주소라며 반송될 뿐이었다. M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던 A-501A-502가 다음 생에서 결국 만났는지 만나지 못했는지는 전지전능한 신만 알 뿐이었다.

 

 그로부터 일 년 후인 지금, 나는 다큐 프로그램으로 제작하지 못한 M의 이야기를 꺼내어 각색한 소설로 세상에 내놓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