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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녤옹

 

 

 

Never sure, will you catch me if I should fall?

 

Well, it's all an adventure

 

That comes with a breathtaking view

 

Walking the tightrope 

 

With you

 

 

 

 

 

 

Tightrope

W. 옹뀰

 

 

 

 

 

 

 

 

"?"

 

"들은 그대로인데.."

 

"....."

 

"나랑 잘래요?"

 

 

 

뻔뻔스런 표정으로 좁은 목재 의자에 앉아 일어서있는 그를 내려다보는 저를 순둥이 같은 얼굴로 말해오는 이 아이돌 뺨 후려치는 은발머리 신입생의 태도에 성우는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뱀처럼 머리를 빼꼼히 내밀며 점점 다가오던 다니엘 얼굴은 딱 성우의 코 앞에서 멈췄다. 다시 서로의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제 입술에 바로 맞은 편 분홍색을 띈 다니엘의 입술이 씰룩대며 입꼬리를 올리고는 그렇게 말했다. 햄 게이잖아요

 

 

 

 

 

-

 

 

 

 

 

때는 뜨거운 여름이 지나가고 2학기가 시작된 9월 가을이었다. 필수이기에 별 생각없이 신청했던 '음악 형식 및 분석'이라는 이름에 강의를 들으러 강의실에 10분 정도 일찍와 정중앙 맨 뒷자리에 자리를 잡아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다 이내 저벅저벅 단상 위로 들려오는 구둣발 소리에 성우는 얼른 핸드폰을 청자켓 안에 집어넣고 단상 위 교수를 바라봤다. 웅성웅성, 끼리끼리 뭉친 학생들이 어느 새 조용하기 그지없던 강의실을 울리고 있었을 때, 교수는 마이크도 없이 제 소개를 시작했다. 주내용은 거의 자기가 버클리 음대 출신이고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국립음대에서 피아노 과정을 마친 전적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서론에 모차르트에 대한 찬양이 되게 길었다. 이럴거면 종교를 만들지 왜 교수가 됐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얘기는 장황했다. OT임에도 벌써 모차르트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만 벌써 30분 째였다. 다른 수업 OT들이었으면 벌써 끝내고도 남았을 시간에 교수는 뭐가 그리 알려주기 바쁜지 이야기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 출튀할까. 성우가 문득 든 생각에 멋쩍은 목만 긁적거리며 바로 제 뒤에 문을 슬쩍 바라봤다. 가방을 앞으로 매고 엎드려 화장실 가는 척 나가면 승산이 있을 것 같은데, 성우가 흘끔흘끔 제 발 아래에 있는 가방과 단상 위에 교수를 번갈아 바라보며 눈치를 살살 보고 있을 즈음이었다. 시선을 정면, 아래, 정면, 아래를 보다 이내 확 튀는 분홍색이 눈에 띄었다. 눈에 띄는 분홍색의, 오른쪽 부근의 중앙쯤에 있는 자리에 앉아있던 분홍색 머리의 남자가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을 알아채니 우연이겠지싶어 시선을 아래로 향해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는데 정수리가 콕콕콕 누가 찌르는 듯 따가웠다. 또 핑크머리인가 싶어 이번엔 그 사람을 향해 시선을 돌려 고개를 들자 정말 딱, 거짓말처럼 눈이 마주쳤다. 누구 하나 눈 한 번 깜짝하지 않은 채, 마치 눈싸움이라도 하듯 두 개의 시선이 얽혔다. 제게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걸까, 말간 얼굴 속 시선이 뚫어지도록 저만 담고 있었다. 이미 앞에 서있는 교수는 신경도 안쓰기로 한 것인지 아예 몸을 반쯤 돌린 채 순수한 어린아이같은 눈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는데 순간 저도 모르게 부담스러워 성우는 애써 큼큼 헛기침을 하며 화끈거리는 볼을 양손으로 꾹 한 번 누르고는 곧바로 교수에게로 온 신경을 집중하려 애를 썼다. 그러다 타이밍 좋게 "질문이 있나?" 하고 물어오는 교수에 저를 긴장시키는 듯한 기분의 시선 또한 사라졌고 성우는 그제서야 하아, 하고 한숨을 푹 내쉴 수 있었다. 얼른 나가던가 해야지, 주섬주섬 눈으로는 계속 수업을 듣고 있었다는 듯 교수를 바라보며 가방을 싸고있던 사이 정적을 울리던 강의실에서 누군가 손을 번쩍 들고는 바로 교수에게 "교수님, 평가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하고 질문을 했다. 그에 교수는 금방 아, 하고 짧은 탄식을 내뱉더니 깜빡했다며 들고있던 파일을 열고는 서류 하나를 꺼내 대충 훑어보며 이번 시험 과제는 2 1조 원피아노로 진행할 생각이라고 말을 했다. 아니 까먹을 게 따로 있지, 저 양반이 진짜. 안 나가길 잘했네. 성우가 가방을 다시 내려놓고 자세를 편안히 잡는 사이 강의실에선 학생들의 탄식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곡은 자유곡입니다, 원하는 곡을 원피아노 포핸즈(One Piano Four Hands) 형식으로 편곡하여 시험 당일 날 연주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마침 1학년이랑 2학년들이 모였는데 선후배들끼리 얼굴은 알아야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조는 제가 짰습니다. 이참에 지금 다 불러드리기로 하죠, 자 그럼 1조부터 부르겠습니다."

 

 

 

1, 교수가 이름을 부르자마자 모두 수군거리며 제 짝을 찾거나 예측하기 바빴다. 2, 3, 4조까지 말하고나니 벌써부터 탄식과 욕가지들이 간간히 섞여 들려오기 시작했다. 밑에 학생들을 찬찬히 훑어봤지만 한 학기를 휴강을 해버리니 아는 얼굴이 몇 없었다. 안다한들 친하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1학년 때 친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친해져야 할 그 시기에 다른 데에 한 눈 팔고 있어 친해지지 못했을 뿐이다. 다른 사람은 다 상관없으니 피부가 하얗고 더럽게 착한 남자 그리고 아까 그 핑크머리만 피해 달라고 성우는 간절히 기도했다. 전자는 괜히 안좋은 기억만 되살아나는 것만 같아서가 그 이유였고, 후자는 그냥 싫었다. 엮여봤자 좋은 인연은 못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거봐, 또 보고 있잖아.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것인지 도 한 번 그와 눈이 마주쳤다. 이번엔 피하지 않고 끝까지 그를 주시하고 있자 얼마 안가 그가 갑자기 활짝 웃어 보였다. 뭐가 웃기다고 웃는 걸까, 제 얼굴에 뭐가 묻은 걸까. 성우가 얼굴을 손으로 문지르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 사이 강의실에 그의 이름이 울렸다.

 

 

 

"마지막으로 가장 기대가 되는...10, 피아노학과 2학년 옹성우랑 피아노학과 1학년 강다니엘. 유일한 남자팀이네?"

 

 

 

교수의 말과 함께 제 앞자리에 바로 있던 사람이며 여기저기 저를 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강다니엘, 오다가 민현의 말로 듣기는 했다. 1학년에 수석으로 온 애가 있는데 왜 이 학교로 왔는지 모를 정도라고. 버클리를 갔으면 갔지, 왜 굳히 한국에 남아있는 것인지 이유를 모르겠다며 민현이 말을 했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두 수석끼리, 그것도 남자팀. 기대되네. 곡은 정해지는 대로 다음주 이 시간에 제출하도록 하세요, 오늘 수업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우루루 빠져나가는 무리들이 성우를 지나치며 웅성거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야 쟤야? 뭐야 쟤 복학했네. 휴학했었어? , 지난 학기 때 안보이더라. 와 기대된다, 쟤 강다니엘도 완전 대박이잖아. 둘이 뭐할라나, 와 나까지 기대되네. 마치 들으라고 말하는 것인지 서로 킥킥대며 강의실을 나가는 동안 성우는 그저 입만 꾹 닫은 채 얼른 모든 사람들이 강의실을 빠져나가길 빌었다. 비아냥이든 정말 순수한 기대이든 이제 그에게는 시끄러운 소음일 뿐이었다. 아무것도 듣기 싫어.

 

 

 

성우야

 

"선배님"

 

"이 씨발..-."

 

"?"

 

 

 

아무것도 듣기 싫다니까 생각나는 건 또 뭔 경우야. 그 거지같은 얼굴을 왜 또 생각하는데. 욕가지를 뱉으며 양손에 얼굴을 가득 묻은 채 갑자기 떠오른 그 얼굴을 다시 가라앉히려 부던히 노력했다. 제발 좀 가라앉아 있어, 이왕이면 좀 없어지고. 저 깊은 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소리를 억지로 듣지 않으려고 성우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위태로운 줄 위에서 몸을 힘겹게 가누며 과거의 기억에게 벗어나려 줄 위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뒷걸음질 쳤다. 오지마, 더 이상 여기로 오지마. 나 좀 이제 냅두라고. 선배님, 선배님? 옹성우 선배님. 위에서 제 이름이 들려왔다. 누구지, 하고 고개를 딱 올려 소리를 바라봤을 때 그 사람이 있었다. 핑크머리 걔.

 

 

 

"...혹시"

 

"안녕하십니까, 1학년 강다니엘입니다-."

 

 

 

90도로 꾸벅 인사까지 해오는 핑크머리의 다니엘이 사람 좋은 웃음으로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얘가 강다니엘이라니, 결국 얘랑 한 팀이라니. 종교 한 번 믿는 거 없다고 신이 이렇게 가차없이 저를 패대기칠 줄은 몰랐다. 차라리 하얗지도 말던가. 둘 다 싫다니까 둘 다 안겨주는 건 또 뭐야. 저를 보며 웃는 얼굴에 괜히 성우는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기분이었다. 복숭아 같기도, 솜사탕 같기도 한 게 히죽 웃는 꼴만 봐도 달달한 게 느껴지는데 그게 또 기분이 좋아서 괜히 진 기분이었다. 계속 앉아서 올려다보기만 하니 괜히 뒷목이 시큰해 자리에서 일어나자 대뜸 다니엘이 흰 손을 내밀며 악수 하실래요? 하고 손을 뻗으며 물어오길래 거절하기엔 또 싸가지가 없어 보일까 다른 뜻 없이 흰 손을 덥석 잡아줬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맞잡은 손 틈으로 하얀 엄지 손가락이 제 손바닥을 쓸어 올리는게 느껴졌다. 처음엔 설마했는데 점점 끈덕지게 손을 주물럭거리는 불쾌한 손길에 손을 거칠게 빼내고는 뭐하는 짓이예요? 하고 물었다. 그런데 대답이 가관이었다. 뭐가요? 뻔뻔한 얼굴로, 제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다니엘의 표정이 성우를 어이없게 만들었다.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 좋은 인연은 아니었다. 차마 그 얼굴에 할 말을 잃어 그냥 말을 말자 생각하고는 얼른 손을 청자켓 주머니 안으로 집어넣었다. 저를 뚫을 것처럼 쳐다보는 다니엘의 눈이 부담스러워 차마 정면도 보지못한 채 성우가 애꿎은 휴대폰 홈만 켜 스케줄러를 뒤적거리며 말했다. 일단 곡은 다음에 연습실 잡아서 만나면 그 때 정해요, 연습실은 제가 시간보고 잡아볼게요. 시간되시는 날짜만 말해주시고.. 선배님, 순간 다니엘이 입을 열었다. 그에 성우가 그제야 다니엘을 시야에 담으며 왜요? 하고 물어오자 다니엘은 대뜸 그에게 물어왔다

 

 

 

"저랑 점심 드시러 가실래요?"

 

"..지금 3시인데요."

 

"그럼 저녁은요."

 

"생각 없는데"

 

"저랑 먹기 싫은 건 아니고요?"

 

"......"

 

 

 

순간 성우는 할 말을 잃었다. 사실이었다. 가뜩이나 닮은 구석도 많은 게 밥까지 같이 먹으면 또 얼마나 그 얼굴이 튀어나올지 예감이 안 잡혀서. 그래서 먹고 싶지 않았다. 개 닮은 얼굴만 빼면 성격은 완전 그 놈이 그 놈이었다. 아닌가, 얼굴도 닮은건가. 하얗고, 말갛고, 웃는게 예쁘고, 달달하게 생긴 게 또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선배님 직전에 서양 음악사 강의 들었잖아요, 그거 끝나자마자 들어오셨으면서. 이어지는 말에 성우의 눈이 번쩍 뜨여지고는 다시 정면에 다니엘을 바라봤다. 너가 그걸 어떻게 알아? 하는 눈으로 다니엘을 쳐다보자 다니엘이 금방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 선배랑 오늘 다 같은 수업이었는데, 그래서 알았어요. 선배는 그리고 되게 유명하잖아요. 활짝 웃으며 말해오는 얼굴에 또 듣기 싫은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성우 너 되게 유명인사야, 너 그거 모르지?

 

"피아노학과에서 선배님 모르면 간첩이라던데."

 

여기서 너 모르면 간첩이야 간첩-. 너만 모르는 것뿐이지.

 

 

 

또 들려왔다. 또 제 발목을 잡으려 올라오고 있었다. 왜 말하는 것까지 똑같아서 이렇게 사람을 위태롭게 만드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저 고개만 푹 숙인 채 애써 머릿속에서 울려오는 소리를 잠재울 수 밖에 없었다. 선배, 괜찮아요? 어디 아파요? 갑자기 고개를 숙인 제게 불쑥 다니엘이 어깨를 잡아 저를 바라보는데 계속해서 그 얼굴이 생각이 났다. 얼른 피해야겠다. 이러다 정말 그 얼굴 때문에 숨도 못 쉴 것만 같았다. 그를 밀어내고는 성우는 힘겹게 말했다. 시간은 나중에 제가 연락드릴게요. 선배님, 다니엘이 다가왔다. 그에 성우가 바로 뒷걸음질 쳤다. 미안해요, 그 말만 하고는 도망치듯 가방을 고쳐 매고 뒤를 돌아 강의실 문을 열어 미친듯이 걸어나갔다. 제발, 제발제발, 따라오지 마라. 염불을 외우듯 빠르게 걸어가는 성우의 뒤로 다다다다하고 달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났다. 설마, 하는 생각에 목 뒤로 식은땀이 날 것만 같았다. 애써 부정해보려 했지만, 신은 정말 성우를 버린 것 같았다. 경보를 하듯 걷는 성우는 어깨가 잡히면서 순식간에 뒤로 돌려져 정면에 헉헉대며 거친 숨을 몰아 쉬는 다니엘과 마주할 수 밖에 없었다. , 진짜 빠르네. 하마터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얘는 여러 번 사람을 놀래키네. 성우가 알 수 없는 긴장감에 입만 꾹, 닫은 채 하염없이 다니엘의 검은 반팔티만 바라보고만 있자 불쑥, 다니엘이 성우의 앞으로 자신의 핸드폰을 들이밀며 말했다. 연락하잠서, 왜 내 번호는 안 들고 가는데. 아 씨발, 순간 얼굴이 푸쉬쉬하고 열기가 솟아오를 것만 같을 정도로 얼굴에 열감이 확 오르는 게 느껴졌다. 진짜 연락하겠다는 놈이 번호도 안들고가냐. 빠르게 쪽팔린 것을 티내지 않으려 그의 핸드폰을 뺏어 키패드에 제 번호를 입력한 성우가 무슨 받으면 안될 것을 받은 사람 마냥 다니엘에게 폰을 던지듯 건네 주고는 눈도 안 마주친 채 그럼, 나 갈게하고 빠르게 도망치듯 걸어갔다. 초반부터 이러면 큰일인데, 성우는 따갑게 아파오는 뒷통수에도 차마 뒤를 바라보지는 못했다. 다행히 다시 쫓아오지는 않았는데 콕콕 박혀오는 시선이 무서웠다. 너무 닮아서 큰일이다. 닮아도 저렇게 닮아도 될 일일까, 벌써부터 성우의 눈 앞이 깜깜했다

 

 

 

 

 

-.

 

 

 

 

 

[내일 만나요, 내일 6. 연습실 제가 따로 잡아 놨어요, 시간 되는 거 아니까 피하지 마요.]

 

 

 

 

 

딱 그렇게 왔었다. 알고 그런 것인지 모르고 그런 것인지 제가 딱 집에 도착하자마자 다니엘에게서 문자가 왔었다. 어쩜 철저하게 주소링크까지 첨부해 보내주기까지 해서 성우는 차마 싫다거나 그 날 무슨 일이 생겼다는 변명을 할 수 없었다. 주소가 찍혀 있는 연습실에 먼저와 조율된 피아노를 띵똥띵똥 아무 음이나 마구잡이로 치고 있다가 손풀기로 글리산도(Glissando)를 시작으로 높은 옥타브에서 낮은 옥타브로 그러다 다시 낮은 옥타브에서 높은 옥타브로 미끄러지듯 음을 쳐낸 성우는 곧바로 물 흐르듯 과제곡으로 생각해둔 Camille SaintSaёns, Danse macabre, Op. 40, 이를테면 죽음의 무도로 불리우는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밝은 선율에 부드럽게 시작이 되다 이내 갑자기 밝은 선율이 무너지듯 곡에 분위기가 급격히 어둡게 변해갔다. 평소 손이 유연하고 힘이 좋다는 평을 듣는 것 답게 혼자 연주하고 있음에도 성우의 연주는 완벽했다. 보통 포핸즈로 많이 치는 곡임에도 성우는 혼자서 그 곡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었다. 역시 잡생각엔 이만한 게 없네, 그렇게 생각하며 곡의 절정을 연주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불쑥 흰 손이 성우의 왼편으로 튀어나오더니 어느새 소리없이 나타난 다니엘이 큰 몸으로 성우의 몸을 살짝살짝 밀어내 자리를 차지하고는 자연스레 포핸즈(Four Hands)의 연주로 뒤바뀌었다. 웅장하게 퍼지는 곡이 다니엘의 힘으로 인해 더욱 더 웅장하게 연습실 안을 울리고 있었다. 확실히 저보다 힘이 좋았다. 그의 손을 봐도 느낄 수 있었다. 밋밋하고 조그만 제 손에 비해 그의 손은 하얗고 핏줄이 솟아 있으며 커다랬다. 그렇기에 움직임 또한 선연했다. 고조되는 음악 속에 괜히 저의 기분마저 열기가 피어 오르는 것만 같았다. 외줄 위에서 춤을 추듯 위태롭고 위험하면서, 뜨거웠다. 클라이막스, 마지막까지 조심스럽고 손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되는 분위기가 이어가면서 곡의 끝부분은 어딘가 모르게 경쾌했다. 곡이 끝나자 마자 무슨 격렬한 운동이라도 한 것 마냥 성우는 숨부터 몰아 쉬었다. 마치 다니엘과 무슨 해서는 안될 짓을 한 것만 같았다. 땀이 나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폈다가를 반복하다 이내 또 옆통수가 따가운 느낌에 왼편을 돌아보자 그가 히죽 웃고 있었다. 우리 잘한다 그쵸? 좁은 피아노 의자가 꽉 차도록 붙어오는 단단한 허벅지에 슬쩍슬쩍 옆으로 자리를 조금씩 옮기자 점점 다니엘이 큰 몸을 제게 붙여왔다. 어디가요, 긴 팔이 제 등 뒤로 반대편 피아노의자의 모서리를 손으로 짚어 성우를 막아 세우자 또 다시 코 앞에 붙은 다니엘의 얼굴에 또 다시 얼굴에 열꽃이 피어 올랐다. 또 한 번 줄이 넘어질 듯 심하게 요동쳤다. 몸을 가눌 수도 없게.

 

 

 

"하지마."

 

"뭘요?"

 

"...뭐든, ."

 

 

 

빨리 곡이나 정하자, 큼큼 헛기침을 하며 핸드폰을 꺼내며 애써 분위기를 환기시켜보려는 성우에 다니엘이 주욱 그를 쳐다보다 이내 흥미가 떨어졌는지 다시 긴 팔을 거둬냈다. 생각해둔 거 있어? 유튜브 영상을 뒤적거리며 다니엘에게 묻자 당연히 준비 좀 했죠, 하고 당차게 말하며 성우의 앞으로 악보를 보기 좋게 펼쳐 놨다. 악보는 알아서 치우는 걸로? 대뜸 곡에 대한 설명도 없이 칠 준비를 시작하는 다니엘에 성우가 갑자기? 하고 그를 막아보려 했지만 이미 턱짓으로 얼른 하라며 표정으로 말해오는 다니엘에 당황스러움에 아랫입술을 깨물다 이내 혀로 한 번 아랫입술을 축이고는 먼저 곡을 천천히 시작했다. 'Duet'이라는 이름에 봉준호 감독이 만든 해외영화의 OST였다. 중간 옥타브에서 시작되다 보니 다니엘에게로 몸을 쏠린 채 힘겹게 계속해서 같은 마디를 연주하다 다니엘의 베이스가 시작되면 곡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전체적으로 음이 반복되는 연주에 있어선 쉬웠지만 발랄함과 나락의 연속, 감정전달에 심혈을 기울여야하는 곡이었다. 저를 향해 들러붙는 이제는 꽤 익숙해진 시선, 이미 곡을 다 외운 것인지 다니엘은 건반보다는 옆에 있는 성우를 바라보며 연주를 계속 이었다. 마치 공예품을 감상하듯 잔뜩 긴장한 성우를 하나하나 뜯어보는 또 한 번의 눈짓에 성우가 저도 모르게 또 아랫입술을 혀로 축였다. 그러다 순간, 그가 다가왔다.

 

 

 

"......"

 

"......"

 

 

 

성우의 등 뒤로 긴 팔을 뻗어내어 뒤에서 안 듯, 다니엘이 라이트(Right) 파트의 힘을 실었다. 맞붙은 다니엘과 성우의 허벅지가 불이 데기라도 한 듯 뜨끈했다. 원래 파트가 이렇게 되어있는 건가, 갑작스런 스킨쉽에 생각들이 마구잡이로 얽혀나갔다. 그러다 귓가로 들려오는 다니엘의  숨소리에 솜털이 모두 곤두설 것만 같았다. 점점 성우의 뒷통수의 얼굴을 묻으려는 다니엘에 성우는 허리를 활처럼 휘며 숨을 그가 들리지 않게 조심히 내쉬었다. 똑같이 피아노를 치는 것뿐인데 발끝이 오그라들 듯 성우의 두 발이 달달 떨려왔다. 아까보다 더 그와 해서는 안될 짓을 하는 것만 같았다. 뭔가가 안에서 벅차 오르듯 성우가 숨을 색색쉬었다. 그가 저의 줄 위로 올라와 걸어온다. 평지를 걷는 것 마냥, 위아래로 파도가 요동치듯 줄은 흔들리고 자신은 이 줄 위에 떨어질까 불안해하는데 다니엘만 편안하게 제게로 걸어오고 있었다. 떨어지기 싫어, 최대한 그에게서 멀어지려 뒷걸음을 쳤다. 줄이 점점 흔들려오고 성우는 결국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다니엘의 팔은 곡이 절정으로 흘러가자 그제서야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에 성우가 안도의 숨을 푹 쉬자 픽, 하고 다니엘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곡의 끝부분은 절정과는 완전히 반대로 너무나도 허무하고 조용하게 끝이 났다. 곡이 끝나자 마자 "어때요? 괜찮죠?"하고 아무렇지 않게 앞에 악보를 정리하며 물어오는 다니엘에 성우는 숨을 약하게 쉬다가 이내 다니엘을 노려보듯 바라봤지만 그의 눈은 제 눈을 향하지 않고 있었다. 화내려고 했는데 그가 막아왔다.

 

 

 

"다니엘"

 

"선배 그거 알아요?"

 

"....."

 

"선배 그 버릇 진짜 안 좋은 거 같다."

 

 

 

다니엘은 제 아랫입술을 톡톡 검지로 쳐오며 성우를 향해 말했다. 그렇게 혀를 자꾸 내밀면 나쁜 생각 밖에 못하는데, 선배는 그거 알아요? 그거 얼마나 야한지. 히죽대는 다니엘에 앞에서 지금 여기서 이 아이를 때리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한 대 쳐버리고 그냥 한 학기를 또 버리자는 마음으로 다니면 조금이라도 속이 편해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우가 저도 모르게 손이 하얗게 변해질 정도로 꽉 잡은 주먹을 부르르 떨며 애써 끓어오르는 분노를 잠재우며 장난이, 좀 심하네, 하고 억지로 언성을 최대한 낮추며 나름 편안한 척 말해오자 다니엘이 큰 손으로 성우의 주먹을 잡으며 또 다시 달달한 맛이 날 것 같은 얼굴을 들이밀며 성우에게 다가왔다. 장난 아닌데, 다니엘이 말해왔다

 

 

 

"나 선배 좋아해요. 선배로서 말고, 다른 쪽으로."

 

 

 

그러다 또 거지같은 기억이 떠올랐다

 

 

 

사랑해 성우야 

 

 

 

휘청거리며 떨어질 뻔 했다. 그런데 밑으로 자꾸만 그 얼굴이 제 발목을 잡으며 끌러 내리기 시작했다. 요동치는 줄을 잡은 손도, 부르르 떨려오는 팔도 너무나도 아팠다. 속이 울렁거렸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

 

 

 

 

 

성우는 요 며칠 내내 밤을 지새워야만 했다. 잠에 들려고만 하면 어김없이 달달한 얼굴이 생각났다. 그에 비해 탄탄했던 허벅지며 팔뚝이며, 제 목께로 다가오는 숨결이 느껴져 밤새도록 몸을 이리저리 베베 꼬며 잠을 청하려다 결국 실패하고 그래서 결국엔 강의도 빠졌다. 한두 번 빠진다고 뭐라고 할 사람은 강다니엘 빼고 없으니까. 하루 종일 1시간 가량이 넘는 클래식 곡들을 듣고 작곡도 하며 평범한 시간을 보내는 걸 보면 괜찮은 것 같다 가도 새벽만 되면 다니엘이 떠올랐다. 고개만 떨구면 바로 부딪힐 정도로 가까운 그의 입술이 좋아해요, 하고 속삭여 오는데 멍이라도 때렸으면 꼼짝 없이 저보다 덩치도 큰 다니엘에게 잡혀 신성한 연습실에서 큰일날 짓이라도 당했을 것이다. 큰일날 짓, 밖에서는 들을 수 없는 무수한 행위들 같은 거.

 

 

 

"..뭔 개같은 생각이야아...-."

 

 

 

그걸 왜 상상 하는거야, 하고 싶었어? 뭐를? 걔랑 뭐를, 이틀 밖에 안 만난 애를 데리고. 괜히 애꿎은 배게만 팡팡 때리며 잊고 싶은 얼굴을 마구잡이로 욕했다. 너 때문이야! 너만 안 닮았어도!! 걔가 조금 더 잘생기긴 했지만, 아오 씨발 암튼 너 때문이야 이씨!! , , , , 씩씩거리며 배게며 주위의 곰인형까지 마구잡이로 솜주먹으로 때리고 다닌 성우는 이내 자신의 화가 이번엔 제 주먹으로 돌아갔다. 왜 이리 조그만거야!! 왜 넌 걔처럼 핏줄도 없구 조그맣기만 한거냐구우!! 왜 자꾸 걔가 생각나는 거냐구우우!!! 

 

에이씨! 하고 배게며 이불을 모조리 침대 밑으로 떨어뜨린 성우가 허, 하고 허탈한 얼굴과 함께 대자로 뻗은 채 침대 위로 누웠다. 곧 있으면 해가 뜰텐데, 이제는 학교에 나가야한다. 나가면 또 강다니엘이 있겠지, 또 귀신처럼 뿅하고 나타나서 또 자기를 간지럽히겠지. 고작 이틀인데, 이름만 생각했는데도 이렇게 가슴이 떨릴 일 일까. 성우가 괜히 왼쪽 가슴에 두 손을 올리고는 색색 숨을 쉬었다. 좋아해요, 저를 올려다보는 다갈색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이 너무나도 위태로워 보였었다. 포식자에게 잡아 먹히기 직전에 사슴의 꼴이었다. 오고있는 그 애의 연락마저 모조리 씹고있는 중인데, 지금 이 꼴로 내일 그 애를 어떻게 만나야 할지. 또 그 때처럼 저를 위협하면 어쩔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을 놓자니 강다니엘의 성적은 무슨 죄일까 싶어 함부로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공적으로 대하고 싶어도 다니엘이 자꾸만 선을 넘어오며 자신이 올라선 줄을 마구잡이로 흔들어 놓는 탓에 그러기도 힘들었다. 그렇게 주욱 강다니엘만 생각하다가 결국 항상 생각에 끝엔 '정말 나를 사랑하는 거면?'하는 미련 어린 질문만 남아있었다. 걔가 날, 좋아한다. 진심일까.

 

 

 

'...나 게이 아니야, 번짓수 잘못 고른 것 같네.'

 

'곡은 다음에 정하자. 지금 이 상태로는 너나 나나 죽도 밥도 안돼.'

 

'내가 싫어요?'

 

'.....'

 

'내 자체도?'

 

 

 

'내 자체'는 또 뭐야. 천장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던 성우가 흠, 하고 한숨을 내쉴 때였다. 때마침 드르륵, 침대 헤드 위로 핸드폰 진동소리가 들려오자 성우가 자연스레 핸드폰을 집어 올려 깜빡이는 불빛에 눈을 힘겹게 뜨며 화면 속에 이름을 바라봤다. 얘도 양반은 못되네. , 그럼 호랑이인가? 제 말하니 나타났으니까. 위협도 잘하고.

 

[내일 연습실 잡아 놨어요, 이번엔 학교 와요. 안오기만 해봐.]

 

[안 잡아 먹을테니까 나와요, 제발. 우리 곡도 못 정했잖아요.]

 

[6, 학교 정문에서 봐요. 같이 가게]

 

안 오면 지가 어쩔려구, 괜히 앞에 없다고 콧방귀를 뀌며 답도 안하고 뒤로가기를 눌러버리자 곧바로 또 다시 메세지가 왔다. [아 봤음 답 좀 해라] 그와 함께 화를 내는 길쭉한 곰돌이 이모티콘이 날아오자 저도 모르게 배시시 웃어버렸다. 제법 귀여운 것 같기도 하고. 낄낄대는 사이 [점이라도 보내요 진짜]하고 다시 메세지가 오길래 정말 점만 보내고 핸드폰을 다시 침대헤드에 뒤집어 놨다. 뭐라고 보냈을라나, 또 화내고 있나? 짜증내고 있을라나. 정말 순수하게 궁금해서였다. 성우는 자신을 그렇게 합리화했다. 어떻게 보고 싶은걸. 내려놓은 지 얼마 안된 핸드폰에 다시 손을 댔다. , 하고 성우가 또 웃었다.

 

[아 진짜 점만 보내나 진짜 정 없다 정 없어]

 

[내일은 꼭 같이 가야한다]

 

[피해 다니기만 해봐라]

 

[보고싶어 죽겠으니까 얼굴 좀 보여달라구요 진짜]

 

얘 미쳤나봐. 마지막 메세지에 성우는 숨이 턱 막혔다. 보고싶단다, 이 새벽에. 어디까지 들어올 셈이야. 벌떡 몸도 일으킨 채 계속해서 마지막에 온 메세지를 빤히 바라보던 성우가 핸드폰의 불을 끄고는 제 가슴에 올려놓은 채 또 한 번 풀썩 침대 위를 드러누웠다. 색색되는 숨소리, 심장이 뛰다 못해 팔딱거렸다. 어떡해 진짜 미쳤나봐. 심장이 가슴을 가르고 나올 정도로 뛰어댔다. 바로 고개만 꺾어도 이젠 강다니엘이 누워있을 것만 같았다. 걔를 좋아하나. 자꾸만 머릿속에 달달한 흰 얼굴이 떠올랐다. 선배! 하고 히히 웃어 대며 뛰어오는 솜사탕같은 얼굴이 떠오르다 가도 제 얼굴 앞으로 호랑이같은 얼굴로 좋아한다 말해오는 얼굴이 겹쳐오자 완전히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숨이 막혔다.

 

 

 

 

 

 

 

-

 

 

 

 

 

 

 

6시에 딱 맞춰 정문을 나왔을 때 언제부터 나와 있었던 것인지 정문 정중앙에 떡하니 서있는 채 성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담스럽게 왜 저러고 있냐 쟨.. 성우가 조용히 중얼거리며 야, 하고 다니엘을 부르자 핸드폰만 쳐다보던 은발머리의 다니엘이 활짝 웃으며 또 선배하고 뛰어왔다. 또 염색했어? , 바꾸고 싶어가. 괜찮지? . 무심하게 단적인 대답에 다니엘이 입을 삐죽이며 아 쫌 보고 얘기해라!!하고 성질을 내자 성우가 아무렇지 않은 척 보고 한 말이야, 하고 빈정대며 말해왔다. 핑크색 예뻤는데, 아쉽네. 뒷말은 삼킨 채로.

 

가는 동안엔 드디어 본격적으로 곡을 정하기 시작했다. 교수의 입맛을 고려하자면 모차르트가 맞는데 딱히 포핸즈로 편곡할 만한 곡도, 마음에 드는 곡도 두 사람 모두 없어 그냥 패스했다. 다른 애들이 할 것 같기도 하고. 형 쳤던 것도 괜찮던데. 죽음의 무도? , 실력 보여주기엔 그만한 곡도 없긴 하다. 유명하기도 하고. 그건 그렇지, 근데 너무 길어. 짧게 함 되지. 그래도 뭔가 더 있었음 좋겠어. 간만에 진지하게 공적인 이야기를 나누니 사실 다니엘이 달라 보인다고 성우는 생각했다. 확실히 괜히 저처럼 수석은 아닌지, 평판에 맞게 그는 머리가 좋았다. 머릿속에 악보가 있는 것인지 아님 피아노 자체가 있는 것인지 그는 술술 편곡 방향을 성우가 원하는 대로 말해왔다. 그럼 시작을 죽음의 무도로 잡고 포르테로 쭉 가는 부분에서 알레그로로 크레센도, 그러다 모데라토에서 피아노, 피아니시모로 곡에 점점 변주를 주다가? 다른 곡으로 아까 말했던 곡들로 바꾸는 건 어때요, 반전의 분위기의 곡이나 이보다 더 웅장한 곡으로. 웅장하면 너무 부담스럽지 않을까? 그런데 반대로 하자니 너무 뻔해요, 곡들도 그렇고. , 악마의 키스라고 알아요? William Bolcom? , 분위기 맞춰보면 이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확실히 다니엘이 말한 곡이라면 분위기도 분위기이며 확실히 좌중을 압도할 수 있는 무대는 충분히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유일하게 남자만 둘인 팀이니 힘 적인 면에서도 우수할 것이고

 

 

 

"괜찮을 것 같네."

 

"그제!! 편곡만 봐도 끝났다 끝났어."

 

"긴장 풀지마, 그러다 틀려."

 

"하이고마 아직 많이 남았는데 걱정은, 맨날 둘이 붙어서 연습 하면 되지!"

 

"....."

 

"둘이 붙어--."

 

 

 

히죽, 하고 내리자 하며 성우를 이끄는 다니엘에 성우는 그저 그의 얼굴만 바라볼 뿐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정말 나를 좋아하는 걸까. 잊을만 하면 자꾸 그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 하고 또 줄이 흔들렸다. 다니엘이 생각보다 너무 빠르게 제 앞으로 왔다.

 

 

 

 

 

 좁은 연습실에서 다시 각 허벅지를 붙인 채 다니엘이 임의로 앱으로 뚝딱뚝딱 만들어 낸 편곡에 따라 레프트와 라이트 파트를 1시간 가량의 토론 끝에 나눠내자 그제서야 얼추 곡의 틀이 제대로 잡힌 것만 같았다. 보통 같은 분야의 천재들끼리 만나면 협업은 커녕 싸운다는 말들을 많이들 하지만 성우와 다니엘은 달랐다. 둘 모두 틀에 박힌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같았으며 선호하는 피아노의 곡 성향 또한 이렇게 잘 맞아도 될까 싶을 정도로 잘 맞았기에 1시간 만에 틀을 완벽히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당분간 동안은 느긋하게 연습해도 될 터이니 아마 다니엘과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 마주하는 건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다니엘을 완전히 피하는 건 역부족일 테니까. 아직 예약한 시간보다 시간은 조금 남았지만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이만 가자 다니엘, 하고 성우가 가방을 정리하며 말해오자 불쑥 다니엘이 가방을 집은 성우의 얄팍한 팔을 잡아내고는 왜요, 하고 물어왔다. 왜냐니, 솔직히 성우는 빨리 이 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아니 정확히는 다니엘에게서 멀리. 더 같이 있으면 위험할 것 같았다. 다니엘 자체가 너무 위험했다. 또 저번처럼 아니면 보다 더 심하게 자신이 올라타고 있는 줄을 흔들어오면 어떡하나, 그래서 제가 떨어져버리면 어떡하나 싶었다. 그래서 도망가기로 했다. 그가 다가오면 더 뒤로 달아나면 됐다. 다니엘의 손도 놓은 채 성우는 연신 제 할 말만 했다. 연습은 각자 알아서 하고 시험 사흘 전에 또 맞춰보자. 당분간은 안 만나도 돼, 그러니까 이제 굳이... 연락하지 말라고? 화가 난 얼굴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막상 말간 얼굴을 바라보니 당황스러운 건 사실이었다. 서운한 건 아니었다. 그냥 예상 외의 반응에 조금 놀란 것뿐이었다. 동그래진 눈으로 여전히 의자에 앉아있는 다니엘을 바라보자 다니엘이 다갈색의 눈으로 성우를 바라보더니 이내 웃으며 물었다. 햄은 내가 싫어요? 그에 성우의 대답은 이랬다. 아니. 마음 속으로는 또 너가 좋아, 막 머릿속에서 생각나구 그래, 하고 덧붙이면서. 그러자 다니엘이 그럼 햄, 하고 성우의 손을 맞잡아 제 쪽으로 끌어오더니 말해왔다. 나랑 잘래요? 성우는 방금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래서 뭐? 하고 대답했고 다니엘이 재차 말했다. 나랑 잘래요? 햄 게이잖아요, 하고 말이다.

 

 

 

"나 알아요, 햄 예전에 여기 과 선배랑 헤어져서 휴학한 거."

 

"..너가 그걸 어떻게 알아?"

 

"와 모르노, 볼 때부터 분위기도 달랐는데. 내 여 학교 실기 보러간 날 둘이 얼-마나 꽁냥대던지."

 

"....."

 

"햄 진짜 게이 아니었음 과제고 나발이고 내 벌써 휴학 때렸다. 햄 게이인거 아니까 이래 들이대는 거지."

 

", 내가 너 좋아한대?"

 

 "선배님, 미안한데 나는 가능성 없는 나무는 쳐다도 안 본다. 그런데 우리 선배님은..."

 

"..., "

 

 

 

흐음,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몸을 일으킨 다니엘로 인해 피아노 의자가 뒤로 밀려나지면서 다니엘이 놀란 성우의 앞으로 불쑥 몸을 기울이며 코앞으로 얼굴을 또 들이밀자 성우가 허리를 뒤로 휜 채로 다가오는 얼굴을 피해냈다. 그리고는 잔뜩 얼어붙은 얼굴과 또 지기 싫은 목소리로 뭐, 하고 말해오자 다니엘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미 벌써 이만큼 넘어왔다, 그치? 하고 다니엘이 웃으며 말해왔다. 이미 줄 위에 저는 다니엘에게 잡혀버린 지 오래 였다. 아무리 뒷걸음을 쳐도 어차피 그에게 잡힐 것이었다.

 

 

 

"나랑 사귈래요?"

 

 

 

굳이 그 사람에 손을 잡으며 위태로운 줄놀이를 계속 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그 사람의 손을 잡고 같이 떨어져 위태롭지 않은 평지에서 사랑을 나눠도 되는 것이었다. 지금 이 손을 잡으면 떨어질 수 있을까. 너와 떨어진 그 밑엔 어떤 것들이 너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이미 정해진 답은 하나였다. 성우는 더 이상 생각할 필요도, 생각할 무언가도 없었다.

 

 

 

더 이상 성우가 타고 있던 줄 위엔 아무도 없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