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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녤옹

 

 

 

 

기차

율리

 

 

 

 

 

 

 

 

 

 

캄캄하기만 한 새벽. 한 걸음씩 걸음을 옮기는 성우는 금방 쓰러질 듯 비틀거렸다.


하아..”

 

추운 날씨에 입에서는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온다.

어제 괜한 오기로 좀 무리를 한 건가.. 걸을 때마다 몸이 삐걱거리는 것 같은 느낌이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 같아서 전봇대를 붙잡고 잠시 숨을 고르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날씨가 추운 날 별이 더 잘 보인다고 했던가..

오늘 날씨가 추워서 인지 하늘 가득한 별이 너무 잘 보인다.

요즘은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가 없었지만 예전에도 이곳은 별이 잘 보이기는 했었다.

그게 마음에 들었던 곳이었으니까..

조금만 더 있으면 해가 떠서 별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겠지..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 성우는 픽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어디로.. 가야 할까? 그냥 사라질 수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또 생각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네.. 중얼거리며 성우는 택시를 절대 잡을 수 없는 그곳을 천천히 벗어나고 있었다.

걷다가 다시 뒤를 한번 돌아보고 다시 걸음을 옮기는 성우였다.

 

한참을 걷고 나서야 앞에 지하철역 입구가 보였다.

지하철역에 내려가서 시간을 보니.. 아직 첫차가 움직일 시간이 아니라 눈을 감고 시간이 지나길 기다렸다.

그렇게 도착한 기차역은 이른 시간인데도 제법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표를 사야 하나 한참을 고민하다 결정을 하지 못한 상태로 자신의 차례가 되어 매표소에 서게 되었다.

 

여기서 제일 먼 곳으로 부탁합니다.”

 

라고 했더니 직원이 네? 하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 부산이요.”

“30분 후에 출발하는 무궁화호는 5시간 넘게 걸리고요. ktx1시간 후에 출발합니다. ktx로 발권해드릴까요?”

무궁화호로 해주세요.”

 

잠시 성우를 쳐다보던 직원이 잠시 후 표를 내어주었다.

아마 이런 경우 무궁화호를 달라고 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나 보다..

기차표를 내려다보며 아직도 무궁화호가 있는 건가 신기해하며 걸음을 옮겼다.

지금 성우에게는 조금이라도 천천히 떠날 수 있는 시간이 오히려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한 선택이었다.

충동적이라고 하기엔 조금 애매하지만 아무것도 결정이 되지 않은 상태이니 기차에서 5시간 동안 앞으로의 일을 충분히 생각해야겠다고 성우는 생각했다.

기차를 타기 위해 플랫폼으로 내려서면서 기껏 생각해낸 도피처가 이건가 싶어서 또 쓰게 웃는 성우였다.

 

너무 오래돼서 이제는 기억도 잘 안 나.”

 

어릴 때 외할머니 댁인 부산에 2년 정도 가 있었던 적이 있다고 했다.

 

궁금한데.. 어떤 곳에서 살았는지..”

나중에 같이 가보면 되지 뭐.”

 

뜬금없이 그 일이 생각나서 부산으로 도착지를 정해버렸다.

 

이른 아침 무궁화호 열차에는 역시나 사람이 별로 없었다.

빠르게 돌아가는 바쁜 세상이니 이동 수단에 5시간 이상 허비하는 사람은 없겠지 생각하며 편안하게 몸을 의자에 기대었다.

출발시간이 다가오자 그래도 조금씩 사람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막 입구로 들어서는 긴 머리에 한쪽 어깨에 기타를 메고 커다란 귀걸이를 하고 있는 남자의 모습에 성우의 시선이 멈추었다.

처음 만났을 때 다니엘이 떠올라 혼자 피식 웃는 성우였다.

핑크색 머리에 달랑거리는 귀걸이를 하고 손에는 반지를 두 개나 끼고 있었다.

그때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거나 한심한 양아치 정도로 생각했었다.

 

친구 녀석이 반 강제로 제출해서 별 의미 없이 들어갔던 영화 감상 동아리였다.

말이 영화 감상이지 제대로 한 적이 있나 싶게 그저 만나서 술 먹고 노는 것이 전부인 곳이었다.

그렇게 노는 것이 나름 재미있어서 자주 어울렸지만 대학 등록금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인 성우는 마냥 놀 수만은 없었다. 알바를 하다 보니 자주 참석할 수도 없었다.

1학년 때는 장학금을 받고 알바로 생활이 가능했지만 2학년 때는 전액 장학금을 받을 수가 없어서 결국 휴학을 하고 돈을 벌어야만 했다.

몇 가지 알바로 다음 해에 복학했을 때 친구들은 다 3학년이 되어있었고, 2학년의 무리 중에 핑크머리를 한 다니엘과 만났다.

생각 없이 사는 날라리라고 생각하고 무시했었는데 동아리에서까지 만나게 되었다.

그런 날라리 같은 다니엘을 선배들이 귀여워하는 것이 의아하기만 한 성우였다.

 

선배 우리 같은 과죠? 동아리까지 같다니 완전히 인연이네요.”

 

라고 말하는 다니엘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렇다고 하기에 이 동아리의 반 이상이 우리 과였다. 다니엘도 모르지 않을 거 같아서 별다른 말없이 다니엘이 주는 술을 받으며 천천히 그를 관찰했다.

선배든 후배든 동기들이든 두루두루 이야기하고 장난치는 걸 보니 성격이 좋을 것 같다.

 

특이한 머리색이네.. 경영학과와는 안 맞아. 취미로 음악이라도 하는 거야?”

 

오랜만에 술이 들어가서 인지 거침없이 나온 성우의 말에도 불쾌한 기색 없이 웃는 다니엘이었다.

 

그렇죠? 그런 말 많이 들어요. 지금은 자유를 만끽하는 중입니다. 딱 대학까지만 자유롭기로 약속했거든요. 그래서 이것도 바꿀 생각 없어요.”

 

자신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만지면서 말하는 다니엘을 보며 무슨 소리야? 별나긴.. 자유가 뭐라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의 집에서 그에게 준 유일한 자유는 대학에서의 시간이라는 것을..

대학을 졸업하면 부모님이 정해준 길을 가며 정해준 여자와 결혼해서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으면 된다.

그리고 지금 정해진 길을 가는 그의 머리색은 평범했다. 다니엘에게 말한 적은 없지만 가끔 성우는 그때 핑크색 머리에 달랑거리는 귀걸이를 하고 밝게 웃던 다니엘이 그리울 때가 있다.

 

성우는 지나가는 판매원을 불러 세워 맥주를 샀다. 목을 축이고는 창밖을 보았다.

잔뜩 찌푸려져 있는 하늘을 보니 비가 내릴 것 같다.

아니다.. 이렇게 추운 걸 보니 눈이라도 내리려나..

한참을 창밖 하늘을 보다 성우는 뻑뻑한 눈을 길게 감았다 떴다.

그러고 보니 거의 잠을 자지 않았다.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데 눈이 불편하다.

맥주를 한 번에 들이 키고 캔을 아래에 내려놓고 등받이를 뒤고 젖힌 채 눈을 감았다.

자고 일어나면 있는 위치가 바뀌어 있겠지.. 기절하듯 잠들어서 시간이 빨리 간다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눈을 감았다 떴는데 부산이면 정말 순간 이동 한 것 같겠구나 생각하다 피식 웃어보는 성우였다.

 

빨리 집에 가

귀찮아. 자고 갈래요.”

절대 안 돼. 빨리 가라고..”

눈을 딱 감았다 뜨면 내 집이면 좋겠다. 그런 순간이동 능력이 있었으면..”

무슨 헛소리야. 불편하잖아. 빨리 가.”

 

어느 순간부터 핑크머리가 보이면 자신도 모르게 의식하게 되어 단둘만 있는 이런 시간을 견디기가 힘든 성우의 마음도 모른 채 다니엘은 침대에 누워 안 가겠다고 버티고 있었다.

결국 그날 밤 다니엘을 보내지 못했고 남자 둘이 작은 침대에 잘 수가 없어서 성우가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워 잠들었다.

 

그날 새벽 얼굴에 뭔가 닿는 간지러움에 잠이 깬 성우는 자신의 얼굴을 만지는 손길이 다니엘이라는 걸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눈을 뜨지 못하고 다니엘이 심하게 뛰고 있는 자신의 심장소리를 듣지 못하기를 빌었다.

한참 동안 얼굴을 조심스럽게 만지던 다니엘의 손길이 머리카락으로 가서 머리카락 몇 가닥을 잡아도 보고 손 사이로 흘려보내기도 하였다.

그 느낌이 그대로 느껴져서 성우는 굳어버린 몸을 어쩌지도 못하고 숨조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다니엘의 손길이 물러 간 것 같아 눈을 떠볼까 고민하는데 이마에 다니엘의 입술이 느껴졌다. 다니엘은 이마에 입을 맞추고 입술에 입을 맞추고는 그대로 성우의 집을 나섰다.

다니엘이 나간 걸 알고도 한참을 눈을 뜨지 못하고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멍하게 있던 성우였다.

같은 마음이었었나.. 생각지도 못했다. 기쁘면서도 왠지 마음이 가라앉았다.

다니엘이 대기업 사장님의 외동아들이라는 것이 이미 과 내에 쫙 펴져 있는 상태였다.

성우는 한참 만에 일어나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에 다니엘이 간 방향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만 있었다.

 

같은 자세로 오랫동안 앉아 있으려니 조금 힘이 들었다.

여전히 허리도 뻐근하고 아래쪽도 욱신거리는 아픔이 느껴졌다.

이런 상태로 오랫동안 앉아있으려니 참기가 좀 힘들었다.

이번 역에 10분 정도 정차한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성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 자판기에서 뜨거운 커피를 뽑아들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한두 방울씩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성우는 비를 맞지 않는 자리로 한걸음 옮겨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녀석에게 고백을 받았던 것도 비가 오는 날이었다.

 

다니엘이 자신과 같은 마음을 갖고 있다는 걸 알면서부터 성우는 다니엘을 피해 다녔다.

안 되는 일은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는 성우였다.

고아원에서부터 바라고 소망하는 건 다 부질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서 조금이라도 덜 상처받으려면 희망을 품어서는 안 된다는 걸 일찍부터 배워버렸다.

과의 행사도 동아리 모임에도 알바를 한다는 말로 거의 참석하지 않았었는데.. 어느 날 집 앞에 다니엘이 서 있었다.

언제부터 있었던 건지 온몸이 비에 젖은 다니엘을 확인하니 우산을 잡은 손이 떨려왔다.

다니엘을 본 순간 몸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갔지만 얼마 가지 못해서 다니엘에게 팔을 잡혀 버렸다.

 

뭐예요? 진짜 나 피해 다니는 거였어요?”

알았으면 이제 여기 오지 마.”

 

다니엘을 보면 말을 하지 못할 것 같아서 보지 않은 채로 꺼내놓는 말이었다.

 

왜 갑자기? 혹시.. 내 마음 알아서 그런 거예요?”

그런 거 몰라. 나는 그냥 사는 것도 너무 힘들어. 그러니까 그냥 가.”

날 보고 말해야지 그런 건..”

 

다니엘이 성우의 얼굴을 잡아 자신에게로 향하게 했.

생각지 못했던 다니엘의 행동에 미처 수습하지 못한 눈빛이 흔들렸다.

 

선배를 좋아해요. 당신이 좋아서.. 당신을 갖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아요. 욕심 안 내려고 했는데.. 안 되겠어요. 조금이라도 나한테 마음이 있으면 달아나지만 말아줘요 제발...”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다니엘의 표정에 가슴이 무너질 것 만 같았다.

성우는 잡고 있던 우산을 버리고 다니엘을 안고서 마주 앉아오는 다니엘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몸이 차가워지도록 불안해하며 자신을 기다렸을 다니엘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아픈 눈빛으로 자신을 보는 다니엘을 어떻게 거부할 수 있을까..

아니.. 거부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마음을 받아 주더라도 쉽지 않을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멀어질 수 있다면 그래서 다니엘이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도 거부하고 싶지 않다. 조금쯤은 그를 욕심내도 되지 않을까..

 

너 몸이 너무 차가워. 더 이상 비 맞으면 안 될 것 같으니까 일단 집으로...”

 

다니엘을 떼어놓고 말을 하는데 다니엘이 그대로 입술을 부딪쳐 왔다.

소중한 듯 뺨을 감싸고 키스해 오는 다니엘에 자신이 하려던 말은 잊고 성우는 다니엘을 다시 마주 앉았다.

그 순간은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처지도, 그의 미래도...

 

참 웃기는 상황이다. 그를 떠나는 마당에 떠오르는 건 그에 대한 기억뿐이다.

이래서 정말 그가 없는 삶을 살아갈 수나 있는 걸까?

착한 다니엘은 절대 자신을 버리지 못하리라는 걸 성우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니까 어머니 역시 버리지 못할 것이다.

둘 사이에서 고민하고 힘들어하다 어느 순간 지쳐버리겠지.

어쩌면 자신은 평생 다니엘의 숨은 애인으로 살아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보고 싶어 할 때나 위로가 필요할 때 함께 있어주고, 언제나 그를 기다리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수도 있다. 그러다 바쁜 그의 일상에서 점점 잊히고 멀어지고.. 그러다 어느 순간 그에게 자신의 존재가 없어질 수도...

딱 그때까지만 함께 있으면...

하지만 그렇게 살아가기에는 자신이 너무 가엽다 느껴지는 성우였다.

 

성우는 자신에게 찾아와 당당하게 말하던 그녀를 떠올렸다.

 

내 남자예요.”

 

진한 향수 냄새를 풍기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쯤에는 이미 다니엘에게 안긴 후였지만 내 남자라고 입 밖으로 꺼낼 자신이 없었던 성우였다. 약혼녀가 있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고..

 

당신 상대로 이러는 거 자체가 어이없지만, 그 사람이 진지하게 말했기 때문에 그나마 내가 제대로 말하는 거니까 잘 들어요. 당신 같은 게 앞길을 막아도 되는 사람이 아니에요. 나와 결혼하면 그는 얼마든지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어요. 그러니까 당신이 떠나줘요. 그 사람에 대한 마음이 진심이라면.. 원한다면 충분히 보상 할게요

 

그녀의 것을 뺏은 것 같은 죄책감에 성우는 아무 말도 못했지만 그녀가 하는 말 어디에도 다니엘에 대한 사랑은 없어 보였다.

자신이 가진 것들이 다니엘에게 도움이 되고 그녀 또한 다니엘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그 녀석이 가진 돈이 탐 나서 옆에 붙어 있는 거 아닙니다. 당신이 말하는 그런 거 때문에 다니엘을 떠날 생각도 없습니다. 다니엘이 권력을 갖고 싶다고 말한다면 그때 생각해 보겠습니다.”

 

다니엘은 돈을 버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아버지 때문에 힘들고 외로웠다고 했다.

그녀 곁에 있으면 다시 다니엘이 힘들고 외로워 질것 같아서 그녀에게만은 그 녀석을 내어 줄 수 없을 것 같았다.

성우의 말에 얼굴을 구기던 그녀는 벌떡 일어나 성우의 뺨을 내리쳤다.

 

분명히 지금 이 순간을 후회하게 될 거야.”

 

그리고는 카페를 나서는 그녀를 한참 보고 있었다.

 

 

열차가 곧 출발한다는 방송을 듣고 반쯤 남은 커피를 그대로 버리고 기차에 올라타는 성우는 아직은.. 그 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했던 말들 때문에 다니엘을 떠나온 건 아니었으니..

그녀보다는 자신이 다니엘을 더 사랑한다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얼마 후 찾아온 그의 어머니는...

 

성우는 자리에 앉았다가 답답해지는 것 같아서 다시 일어나 열차 사이에 그나마 좀 시원한 공간으로 나섰다.

후덥지근한 차내와는 다르게 서늘한 느낌이었다.

입석 승객을 위한 건지 지나치는 사람들을 위해 잠시 앉을 자릴 마련한 건지 작은 의자가 있었다. 앉는 것이 편하지 않아 그 옆벽에 기대었다.

담배를 배워볼걸.. 새삼스레 후회가 되었다. 돈이 아까워서 시작도 못했었다.

알지도 못하는 담배 맛이 문득 생각나는 게 좀 웃기기는 하지만 어디에 있어도 답답한 마음이 담배를 피우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조금은 추워진 공기에 있으니 피로가 밀려오는 것 같았다.

이대로 기대어 잠들면 어떻게 되지? 이 정도 추위에 죽지는 않겠지..

지금쯤 다니엘은 자신이 떠났음을 알아챘을 것이다.

완전히 잠을 깨서 나왔을 때 알아차리라고 현관문에 마지막을 알리는 메시지를 붙였다.

자신에게 어머니를 만났다고 거짓말을 하고 그녀와 있는 것을 보았다.

어제 그녀의 향수냄새를 묻혀 온 그를 그대로 당겨 안으며 입을 맞추었던 성우였다.

그녀의 향을 맡으며 그의 팔에 안겨서도 내내 그녀와 함께 있는 그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를 떠난 것은 꼭 그 한 장면 때문은 아니었다.

 

얼마 전 자신을 찾아왔던 그의 어머니. 그녀는 자신을 앞에 두고 울고만 있었다.

소리 내어 우는 것도 아니고, 가만히 보다가 눈물이 흐르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누가 뭐래도 그녀에게 만은 죄인인 걸 알고 있기에 성우는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요. 하지만 난 내 아들이 소중하니까.. 당신한테 모진 소리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어머니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던 성우는 그녀를 보다 눈을 감아버렸다.

 

아들이 다른 사람 손가락질 받으면서 사는 걸 볼 수 없어요. 한 번도 그런 눈빛으로 말한 적이 없어서 어쩌면 그쪽을 사랑...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안 되겠어요.”

 

당신 같은 게 방해할 사람이 아니라고 원래 내 것이었다고 했던 약혼녀의 말도, 고아 주제에.. 천하고 더러운 게 어디서 내 아들에게 꼬리를 쳤냐고 말하는 아버지의 말에도 포기하지 못한 그를 어머니의 눈물과 사과의 말 때문에 놓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을 많이 좋아하는 거 알아요. 다 버려도 당신은 못 버린다는 그 애를 도저히 설득할 자신이 없어서 사람이 할 짓이 아닌데도 당신을 찾아왔어요. 미안해요. 제발 당신이 버려줘요. 당신이 떠나줘요. 제발.. 미안해요. 정말 미안합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두 손을 모르고 고개를 숙이며 울고 있는 어머니를 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눈앞이 흐려지는 걸 느끼는 성우였다.

저한테도 어머니가 있다면 이랬겠지..

자식인 자신을 위해 타인에게 모진 소리를 하더라도 내 아들을 위해서..

내 어머니라면 그녀도 분명 그렇게...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를 떠올렸다.

성우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하는 어머니를 보며 눈을 감았다.

차올랐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손을 올려 쓱 닦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그럼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고개를 드는 그녀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그대로 돌아섰다.

 

다니엘은 자신을 위해서 눈물을 흘려줄 사람도, 화를 내줄 사람도, 힘을 키워 줄 사람도 있다. 무엇 하나 가진 것이 없는 자신은 다니엘의 곁에 있을 필요가 없는 사람 같았다.

지금 순간만큼은 다니엘이 부러웠다.

가만히 서서 아무것도 없는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왜 이 모양으로 태어났을까? 왜 이렇게까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고 태어났을까?

두 손이 다시 뿌옇게 변하고 있었다. 그대로 두 손을 들어 올려 눈을 가렸다.

손가락 사이로 물기가 흘러내렸지만 성우는 그대로 한참을 서 있었다.

제 편은 세상에 유일하게 다니엘 하나인데 그걸 제 손으로 끊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성우는 어느새 차갑게 식은 자신의 손을 마주 잡았다.

어제 다니엘에게 이별의 말을 전하려고 했었다.

결국은 대화다운 대화는 하지 못한 채 잠들어 있는 다니엘의 얼굴을 보며 일방적인 이별을 했다.

이제는 사회인이라 검은색인 머리도 만져보고 귀걸이를 하지 않은 자욱이 있는 귀도 만져보고, 짙은 눈썹도 만져보고 도톰하고 부드러운 입술도 만져 보았다.

하나하나 눈에 담고 하나하나 손으로 기억했다.

평생 잊지 못할 사람이다. 지금 보는 이 마지막 모습을 평생 마음속에 담아두고 그리워하며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일어나서 옷을 입고 집을 나서며 다시 한 번 다니엘을 돌아보았다.

이제는 어느 곳에서 너를 그리워해야 할지 모르겠다.

 

성우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차내로 들어섰다.

이것저것 제멋대로 떠오르는 그에 대한 기억은 그대로 두려고 한다.

기억상실에 걸리지 않는 한 평생 떠오르겠지만 이제는 흘러넘치는 기억들을 조금씩 지우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면 된다.

성우는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어제 회사에 간 다니엘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볼 수 있어?”

무슨 일 있는 거야?”

 

아버지와 만나고 그의 약혼녀가 찾아온 것도 알고 있는 다니엘은 성우의 말에 긴장했다.

 

아니야. 오랜만에 저녁 먹을까 해서..”

 

그리고... 마지막 말을..

어쩌면 너에게 상처 주는 말들을 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알았어. 오랜만에 맛있는 거 먹자. 회사로.. 아니다. 너희 집 근처로 갈게

 

아버지의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다니엘은 혹시나 이곳에 왔다가 아버지와 성우가 만날까 봐 걱정하는 거겠지.

 

아직 퇴근시간까지는 많은 시간이 남았지만 성우는 다니엘의 회사로 갔다.

회사 입구가 잘 보이는 카페에 앉아 퇴근시간쯤 전화를 해서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성우는 대학을 1년 더 휴학하고 이번에 졸업을 한다.

성적이 나쁘지는 않아 1차 합격 통지를 받은 회사도 있지만 아직 확정된 회사는 없었다.

다니엘과 헤어질 생각을 갑자기 하게 되면서 일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다니엘에게 빠져 다른 생각도 못하고 있는 걸 보면 그의 아버지의 말처럼 천하고 더러운 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괜히 웃음이 났다.

그때 다니엘에게서 전화가 왔다.

혹시 여기 있는 걸 본 건가? 아직 퇴근시간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는데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다 전화를 받았다.

 

다니엘 사실은..”

어쩌지? 어머니가 회사로 오셔서 저녁 약속 못 지킬 것 같은데... 많이 늦지 않을 거니까 전화할게.”

 

성우는 급하게 끊어진 전화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머니를 만나면 자신과 만났다는 걸 이야기하시려나..

한참을 그대로 그의 회사 입구를 보면서 멍하게 있던 성우의 눈이 커진 것은 다니엘의 팔을 잡고 웃으면서 걸어가는 그의 약혼녀의 모습을 본 때문이었다.

여기서 다니엘의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뒷모습으로도 그를 잘 못 볼 리가 없었다.

어머니가 오셨다고 했는데... 역시 그도 어쩔 수 없이 부모의 뜻대로 살아가는구나 싶은 생각에 화보다는 체념에 가까운 마음이 생겼다.

다니엘을 믿지 못함이 아니었다. 이렇게 조금씩 거짓말이 늘어가겠지.

자신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은 마음과 부모님의 강요 사이에서..

언제가 되었든 떠나야 하는 게 맞는다면 하루라도 일찍 끝을 봐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성우였다.

성우는 다니엘과 그녀의 모습이 사라진 후에도 그곳에 머물다 한참 후에 집으로 돌아갔다.

 

밤이 늦었을 때에야 미안해하는 목소리로 다니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미안. 내가 늦었지? 잤어?”

아니야. 아직 안 잤어.”

 

지금까지 그녀와 둘이 있었어? 둘이 무슨 이야기를 하느라 이렇게 늦은 거야?

성우는 묻지 못할 이야기를 속으로 삼키고 있었다.

 

생각보다 늦어져서.. 내일 전화할...”

지금 와 줄 수 있어? 보고 싶은데..”

“.....”

 

전화기 너머 다니엘에게서는 말이 없었다.

말하지 못하는 말들이 있어서 목소리가 떨렸던가.. 그걸 다니엘이 눈치챈 건가..

아니면 평소와 다른 자신의 말에 당황한 건가..

정말 이대로 끝인 건가 생각하며 성우는 전화기를 꽉 잡은 채로 더 이상 말을 꺼내지도 못하고 다니엘의 말을 기다렸다.

 

금방 갈게.”

 

 

어느새 잠이 들었던가 보다.

잠시 후 부산에 도착한다는 안내 멘트가 나오고 있었다.

자는 동안 뭔가 꿈을 꾼 것 같은데.. 뭐가 꿈이고 뭐가 현실인지 몽롱하기까지 했다.

열차에서 내려서며 성우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비도 눈도 오고 있지 않았다. 이곳은 지금까지 살던 곳과 다른 곳이었다.

걸음을 옮기며 어디로 갈지 고민했다.

5시간 넘는 시간 동안 고민하려고 했었는데 생각한 거라고는 다니엘에 대한 것들뿐이었다.

어디로 갈까? 혼자서 그를 떠올리고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개찰구를 나서면서도 고민하고 있는 성우였다.

일단 부산에 왔으니까 바다를 보러 갈까? 거기에 가서 어디로 갈지 결정을 할까..

하다가 거기 가서도 분명 다니엘에 대한 생각만 하겠지 생각하니 왠지 한숨이 나온다.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들다가 성우는 걸음을 멈췄다.

이곳에 절대 있을 수 없는 것이 눈에 보였다.

온종일 생각하고 있었더니 이제는 헛것이 보이는 건가..

다시 한 번 고개를 들어 이곳이 어디인지 확인해 보았다.

눈을 크게 감았다 다시 뜨고 눈앞에 보이는 것을 확인했다.

다시 보아도 틀림없는 다니엘이 눈앞에 있었다.

환상일 게 틀림없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서도 다니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성우였다.

그러다 어느 정도 가까이 갔을 때 진짜 다니엘인 걸 확인하고서 성우는 걸음을 멈췄다.

 

다니엘도 처음부터 개찰구에서 나오는 성우를 지켜보고 있었다.

당장 달려가 성우를 잡고 싶었지만 침착하게 기다렸다.

다니엘은 성우에게 한걸음 다가갔다. 그러자 멈춰 있던 성우가 한걸음 뒷걸음질 쳤다.

다시 한걸음 다가갔더니 성우는 다니엘이 서 있는 방향과 다른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젠장.. 기다려 주는 게 아니었는데.. 성우인 걸 확인하자마자 달려가서 붙잡는 거였는데..

다니엘은 성우에게 달려가 어렵지 않게 팔을 잡고 그대로 성우를 당겨 품에 안았다.

 

달아나지 말아달라고 했잖아.”

 

그대로 성우의 귀에 작은 소리로 말하는 다니엘을 성우가 밀어냈다.

 

그만하자. 이제 못하겠어. 널 기다려 주는 것도, 네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도 지긋지긋해. 이제 그만 날 놔줘.”

 

다니엘은 자신의 눈을 보며 차갑게 말하는 성우를 가만히 보다 성우에게 입을 맞추었다.

깜짝 놀란 성우가 다니엘을 밀어냈다.

 

미쳤어? 여기가...”

 

하지만 다니엘은 다시 성우를 당겨 입술에 키스를 해왔다.

사람 많은 기차역 대합실에서.. 성우는 다시 다니엘을 밀어내려고 했지만 다니엘은 성우를 잡은 팔에 더 힘을 줄 뿐이었다.

한참 만에 다니엘은 성우를 놓아주었고, 성우는 얼른 주위를 돌아보았다.

힐긋힐긋 보고 있는 사람이 있고, 수군거리는 사람도 있고, 놀란 눈으로 똑바로 보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꽤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성우였다.

 

뭐 하는 짓이야?”

세상 모든 사람이 당신이 내 사람이라는 걸 알게 하고 싶어. 그래서라도 달아나지 못하게 하고 싶다고.. 다 버릴 수 있어. 세상이 정해 놓은 법칙 같은 것도 필요 없어. 너만 있으면 돼.”

가진 게 많으니까 버릴 것도 있네. 나는 원래 가진 게 없어서 버릴 것도 없는데..”

 

성우의 양 팔을 잡은 채로 똑바로 눈을 마주치며 말하고 있는 다니엘의 말에 비웃으며 말하는 성우였다.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내가 있잖아. 혼자 감당하려고 하지 말고 같이 하자고 했잖아.”

 

다니엘을 보다가 눈물이 날 것 만 같아서 얼른 고개를 숙이는 성우였다.

 

지칠 거야. 서로 지쳐서 미워하게 되는 순간을 맞는 것보다 지금 헤어지는 게 나아.”

 

무너질 것 같아서 다니엘의 옷깃을 꽉 잡으며 그의 한마디에 어제의 결심이 흔들리고 있는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 성우였다.

 

날 믿어. 그런 일 절대 없어. 세상에 숨기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너도 숨을 생각하지 마. 도망치려고 하지 마.”

 

다니엘은 자신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다니엘과 잘 돼봐야 숨겨진 연인일 거라고 생각했다.

다니엘이 다른 사람에게 번듯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게, 그의 어머니가 말한 대로 손가락질 받지 않게 떠나주는 게 그를 위한 거라고 생각했었다.

맨 처음 그가 고백했을 때 한말이 달아나지 말라고 한말이었는데...

상처 받을까 봐 언제나 달아나서 숨으려고만 하는 자신을 다니엘은 잘 알고 있었다.

다니엘은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성우를 꼭 안았다.

 

불안하게 해서 미안해. 내 의지가 전해지지 않아서 사람들이 널 찾아가게 해서 미안해.”

 

성우는 다니엘의 품속에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니엘이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고 있다.

다니엘을 꺾을 수 없어서 자신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다니엘은 자신보다 훨씬 큰 압박을 받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던 성우였다.

 

내가 당신 없으면 안 돼. 정말이야. 그러니 제발 달아나지 마. 힘들면 날 원망하고 때려도 좋으니까 제발 곁에 있어줘.”

 

다니엘이 자신을 찾아내 줬다는 것만으로도 더 이상 달아날 수가 없었다.

사실은... 달아나고 싶지 않았다. 그의 곁에서 떠나고 싶지 않았다.

 

달아나도 내가 반드시 찾아낼 거지만 이런데 힘 빼고 싶지 않아. 우리 어떻게 살아갈지 함께 고민해야 하잖아.”

 

찾아내줘서.. 포기하지 안아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지만 입을 열면 목소리가 갈라질 것 같아서 마음속으로만 말하며 성우는 다니엘을 마주 안았다.

언젠가 또다시 그를 떠날 결심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 지금 떠나지 못한 걸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조금 더 그의 곁에 있고 싶다.

 

겨울 바다를 둘러보고 저녁 늦게야 서울로 올라가는 ktx에 몸을 실었다.

다니엘은 하루 더 있다가 가자고 했지만 말없이 회사에 출근하지 않은 것이 분명한 다니엘이 하루 더 회사를 쉬게 할 수는 없었다.

기차를 타고 올라가면서 성우는 다니엘에게 기대어 자고 있었다.

그런 성우의 고개를 편안하게 고쳐주고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는 다니엘이었다.

하마터면 놓쳐버릴 뻔한 게 떠올라 성우의 손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어젯밤 평소와 다르게 자신에게 안겨드는 성우를 보고 눈치를 챘어야 했다.

성우 답지 않게 늦은 시간에 보고 싶다고 오라고 했을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갑자기 찾아온 어머니와 약혼녀를 보고 확실히 정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성우에게 약속 취소 전화를 했다.

일단 그녀를 택시 태워 보내고 어머니와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어머니께는 죄송하지만 그 사람이 없으면 살지 못하는 건 자신이라고 분명하게 이야기했다. 절망에 가까운 표정을 지으시는 어머니께 자신의 행복을 위해 한 번만 져달라고 부탁드렸다.

자신을 끌어안는 성우가 불안해 보였지만 자신이 곁에 있으면 괜찮을 거라고 확신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말로 해줄걸.. 조금만 기다리면 온전히 당신에게 갈 거라고..

 

아침에 눈을 떠서 성우가 떠났다는 걸 알았을 때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어떻게든 찾아야 했다. 잡아야만 했다.

성우가 갈만한 곳이 떠오르지 않아서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

언제 나간 건지 어디로 간 건지 모르겠지만 이대로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서둘러 그의 집에서 나왔다.

그러다 예전에 잠깐 성우와 대화를 나눴던 것이 생각났다.

어쩌면.. 부산으로 가지 않았을까.. 공항으로 차를 돌리면서 그가 간 곳이 제발 부산이기를 빌고 또 빌었다.

그곳에서 못 만난다고 해서 성우를 찾는 것을 포기하지는 않을 생각이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일찍 만나고 싶다 생각한 다니엘이었다.

공항에 도착해 가장 빠르게 부산으로 가는 걸 찾았지만 이미 매진이라고 했다. 혹시나 나올지 모르는 취소 표를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리기도 했다.

한 시간 정도 기다렸을 때 취소 표를 잡을 수 있었고, 부산에 도착해서 택시로 기차역까지 왔지만 서울에서 출발 한 기차가 세대가 도착할 동안 성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버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번만 보고 가자고 생각했을 때 성우의 모습이 보였다.

공항으로 가면서부터 평소 믿지도 않는 하느님께 빌고 또 빌었었다.

처음 하는 자신의 기도를 들어 준 것 같아서 성우를 보고는 다시 하느님께 감사했다.

 

정말 길었던 하루를 돌아보며 이 사람을 잃을까 봐 조마조마했던 심정을 떠올렸다.

무던히 잘 참는 사람이었는데 얼마나 힘들었으면 떠날 생각까지 했을까..

너무 소중한 사람인데.. 아프게만 한 것이 미안했다.

다니엘은 잡고 있던 성우의 손을 들어 입을 맞추었다.

자고 있는 성우를 보다가 눈을 감고 성우의 손을 잡은 그대로 자신의 두 손을 모으고 오늘 하루 종일 불렀던 하느님을 다시 불러보았다.

 

하느님 한 가지만 더 들어주세요.

혼자 있는 시간에 이 사람이 아프지 않게.. 힘들지 않게.. 도와주세요.

함께 있는 동안은 제가 행복하게 해 줄 테니까.. 그것만 도와주세요.

눈을 감고 다시 한 번 하느님께 조용히 빌고 있는 다니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