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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녤옹

 


 

 

 

어디에서 너를

채설

 

 

 

 

 

 

 

 

 

 

 

너의 소식을 남의 입으로 듣는 것보다 더 확실한 이별이 있을까.

 

"성우 형 조교 그만뒀잖아요. 몰랐어요?"

 

햄버거 팩을 다섯개 정도, 두손 가득 무겁게 사들고 학과실을 찾자 석사생 하나가 되묻는다. 순간적으로 얼어붙은 나는 그렇다 아니다 말도 못한 채 아, 무거우니까 일단 받아. 하고 들고 있던 비닐봉투들을 틈없이 어질러진 조교 책상위에 올려놓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파티션 벽에 붙어있던 일정표, 명함들, 모니터에 나란히 붙어있던 포스트잇들, 그 옆에 작게 놓였던 선인장 화분과 나랑 커플로 맞춘 머그컵과 티워머 같은 것들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니까 형이, 조교를 그만 뒀다고.

 

"이삼일 됐을라나, 형 몰랐어요?"

"성우형 볼라고 왔나, 귀여운 후배들 보려고 왔지. 얼른 먹어."

 

아무렇지 않은 척 웃음을 띤 채 주섬주섬 햄버거 봉투를 푸는 후배들을 바라보는데 입맛이 썼다. 그러고보니 형이랑 연락한게 얼마나 됐지?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며 학과실에서 집처럼 먹고사는 성우의 사정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여기 오면 언제든 만날 수 있었다. 그래야만 했다. 학과실을 나서며 폰을 꺼내 최근통화목록을 뒤진다. 어제, 그제, 일주일 전으로 넘어가자 요일 대신 날짜가 찍혔다. 명색이 애인이라는게 이렇게나 무심했었나, 미안함과 함께 약간 화가 치밀었다. 내가 연락 못하면 형이 먼저 연락하면 되는거 아니야?

 

--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소리샘으로...

 

종료, 카톡.

 

[ 형 어디에요? 학과실 왔는데 없던데. ]

 

이쯤이면 조교를 그만뒀다는 것을 왜 먼저 상의하지 않았는지, 아니 상의까지는 아니어도 이렇게 중요한 일을 왜 먼저 말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간접적인 항의 정도는 알아듣겠지. 답장을 기다리며 복도 벽에 기대있는데 아까 그 석사생이 학과실을 나오다 눈이 마주친다. , 다니엘형.

 

"성우형 연락 안되죠?"

"?"

"형이 한 일주일 전부터 자꾸 시력이 떨어진다고 병원가본다고 했거든요. 병원에서 컴이랑 폰 절대 보지 말라고 했다고, 그래서 조교일도 그만둔거에요."

", 그래."

"그래서 아마 연락 안될거에요. 폰을 못보니까. 형 자취방 가보는게 나을걸요?"

 

햄버거 소스가 묻은 손을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후배의 모습을 멀거니 지켜보면서, 나는 입을 다물었다. 일주일이나 우리는 바빴구나. 일주일이나 우리는 서로를 우선으로 두지 않았었구나. 형이 아프고 힘들어서 연락을 못했으면 나라도 했으면 되었을 텐데. 그렇게 누가 먼저 언제 연락을 하는 것으로 서로의 마음을 재고 따질 단계는 넘어섰다고 생각해서였을까, 형에게 소홀했던 것을 이제 인정할 때가 된 것 같았다. 형은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컴도 폰도 못할 정도로 시력이 안좋으면 밥은 먹었을까, 가서 뭘 시켜먹을까 하다가 해먹는게 나을 것 같아 마트를 들렀다 가기로 했다. 마음만큼이나 발걸음이 무거웠다

 

 

 

 

 

 

[ 누구세요 ]

"."

 

간단하게 열리는 문, 익숙하다 못해 거울같은 얼굴. 아무렇지 않게 형이 문을 연다. 왔어? 하고 말을 붙이고 방안의 소파베드에 벌렁 누워버리는 폼이 아픈 사람 같지는 않았다. 컴도 폰도 못한다더니 책을 들고 있다. 마트에서 장을 본 큼지막한 봉지를 2인용 식탁 위에 올려놓으며 최대한 평소처럼 물었다.

 

", 내 카톡 못봤어요?"

"카톡? , 나 폰 꺼놨어."

"학교는?"

"교수님이 안나와도 된다고 해서."

 

마지막 말이 길게 늘어지며 하품을 끌고 나왔다. 그러니까 지금, 나한테 말하고 싶지 않다는 뜻인 것 같은데. 잠자코 형의 말을 따라주기로 했다. 아주 잠시만. 사실 나도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형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어서. 봉지에서 삼겹살 팩을 꺼내고 상추와 깻잎을 꺼내 싱크대 안에 털어넣었다. 쌈장이 남아있던거 같았는데, 냉장고를 열어보니 고추장 된장 같은 안 썩는 것들 사이에서 내용물이 말라붙은 작은 쌈장통이 하나 있길래 꺼냈다. 가스렌지에 후라이팬을 올리고 불을 켜고, 달궈진 팬에 삼겹살을 얹었다. 삼겹살이 익는 틈을 타서 상추와 깻잎을 씻어 접시에 담았다. 식탁위에 너저분히 널린 봉지들을 대충 치우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두개씩 챙겨 놓자 어느샌가 형이 옆에 서서 집게로 고기를 뒤집고 있었다.

 

", 웬 삼겹살. 라면이나 먹자고 할랬드니."

"그냥, 고기 먹고 싶어서. 나오라고 연락했는데 안받길래 사왔어요."

"역시 강고기."

 

후라이팬에 구운 고기는 조리가 간단한 만큼 빨리 식어버려서 먹는 동안에는 둘다 말이 없었다. 소주를 따서 각자 잔에 따르는 것으로 식사가 시작됐다. 형 앞에는 김치가, 내 앞에는 쌈장과 마늘이 놓였다. 큰 접시에 가득했던 고기가 바닥을 드러내고 자글자글했던 기름이 고여 웅덩이를 이룰 정도가 되자 더 이상은 미룰수가 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망설이다 먼저 말을 꺼냈다.

 

"나 할말 있어요."

"나도 할말 있어."

"형이 먼저 해요 그럼."

"우리 헤어지자."

 

아무렇지 않게 삼겹살을 집어먹으며 형이 말했다. 무슨 변명을 늘어놓을까 진실은 뭘까 시력이 안좋아 조교일을 그만둘 정도라니 질병인건가 뭔가 걱정과 우려와 기대와 분노를 다 누르고 황당함이 덮쳐왔다. 한대 얻어맞은 것처럼 눈앞이 흔들렸다. 오물오물 기름기가 번진 입술이 꿈처럼 움직였다. 꿈처럼이 아니고 이건, 꿈일거야.

 

"뭐라구요?"

"너 군대 간다며."

 

그 다음 펀치는, 정확하게 명치에 꽂혔다.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할 수가 없었다. 형이 고기를 다 삼키더니 쭉, 고개를 젖혀 소주잔을 기울인다. 크으, 하고 인상을 찡그린 형이 젓가락으로 식은 고기를 쿡쿡 찌른다. 입으로 젓가락을 한번 쪽 빨더니 식탁 위에 탁 소리나게 내려놓는다

 

"왜 말 안했어."

"안한게 아니고, 하려고 한거에요."

"남의 입으로 들으니까 기분 진짜 이상하더라."

"...화났어요?"

"첨엔 좀 화났는데, 생각해보니 그럴수도 있겠다 싶고."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그래야 형이 나한테 얘기 안한게 용서가 되는 모양새지. 당황했던 나는 금세 침착해져 소주잔을 비웠다. 아까 비어버린 형의 잔과 내 잔을 다시 채우면서 머릿속으로 할 말을 정리했다. 군대에 가려고 결정한건 얼마 전이었다. 더 이상 졸업을 미루기도 힘들고, 해외유학이나 경력직도 군필자를 더 우대한다길래 충동적으로 내린 결론이긴 했다. 사실 그렇게 결정하고 나니 마음은 편해서 좋았다. 2년의 유예기간이 생긴 것 같기도 했고, 숨 좀 돌릴 수 있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고. 딱 하나, 형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나, 그 고민만 빼고

 

", 내가 일부러 말 안한건 아니에요."

"응 알아. 사정이 있었겠지."

 

형이 다시 잔을 들어 쭉 비운다. 저렇게 빨리 마시는 타입 아닌데, 그동안 혹시 연락 안한게 내가 군대간다는 말 안해서 서운해서 그랬던거였나, 혹시 내 연락을 여태껏 기다렸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자코 다시 잔을 채웠다. 나도 형에게 같은 말을 해줘야 하는건가? 이거 이 형 혹시 지금 밑밥 까는거 아냐

 

"그러니까 헤어지자."

"...."

 

말이 왜 그리로 튀는 지 모르겠네. 지금 군대간다 말 안했다고 헤어지자는 걸로밖에 안들리는데, 나도 할 말이 많다. 여기서 터뜨려봐야 애취급밖에 더 받지 않을까 싶어 그런건데. 두번씩이나, 너무한데.

 

"나 군대간다고 지금 헤어지자는 거에요?"

"그것도, 일부 포함."

"군대는 형도 다녀왔잖아요. 나 잘 기다렸는데."

"일부라고."

"그럼 나머지는 뭔데요."

 

형이 또 아무말 없이 잔을 비운다. 이제 더 채울 술도 없다. 얼굴에 열이 올라 화끈거린다. 술이 오른건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지금와서는 모두 변명같을까, 혹은 책임을 떠넘기는 것 같을까. 그러니까 지금 나 때문에 헤어지자는 거야...? 형과 나 사이에 군대 같은게 장애물이 될거라고 생각해 본적은 없는데. 아니 애초에 뭔가가 장애물이 될거라고 생각했던 적도 없는데.

 

"우리 얼마나 됐지? 7?"

"8년이요."

"오래도 만났다."

 

자조적인 웃음이 형의 얼굴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비어버린 소주잔을 아까운 듯이 다시 털어 한방울 정도 맛을 보면서, 짭짭, 입술이 달라붙었다 떨어지는걸 보면서 난 잠자코 지갑과 겉옷을 챙겼다. 두 병이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오늘이 날인가 보다

 

"다니엘."

 

식탁에서 현관까지는 채 세 발짝도 되지 않았다. 운동화에 발을 구겨넣으며 흘끗 돌아본 형의 얼굴이, 이상했다.

정말로 이상했다. 여태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뭔가 말하고 싶으면서도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는 얼굴, 울것 같으면서도 절대 울지 않을 것 같은 얼굴.

내가 사랑했고, 사랑하는, 이제 사랑할수 없을 것 같은 얼굴.

 

"지금 나가서, 다시 돌아오지 마."

 

저 형이 또 저런다. 술도 고것밖에 안먹어놓고.

숙였던 고개를 치켜들고 들고 있던 볼캡을 꾹 눌러썼다

형 얼굴만큼이나, 내 얼굴도 이상하게 보일 것 같아서.

 

 

 

 

 

 

 

 

 

 

 

 

너의 소식을 남의 입으로 듣는 것보다 더 확실한 이별이 있을까.

 

"다니엘 군대간다며? 성우 외롭겠네~"

 

놀리듯이 말을 걸어온 동기가 어깨동무를 했다. 팔에 걸쳐진 그 무게보다 방금 들은 말이 더 무거워서 난 그냥 이를 드러내며 주먹을 쥐어보였다. 내가 군대를 다녀와서 석사 마치고 박사과정을 밟을 때까지 휴학과 졸업 연기와 학사경고를 누적해가며 학교의 화석이 되어가던 동기녀석은 진짜야! 하고 정색을 했다

 

"입대 날짜도 나왔다던데, 언제래더라."

"됐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학식 갈비탕이래."

"오오 갈비탕!"

 

발걸음을 옮기는데 오른쪽 시야가 어두워졌다. 검은 얼룩이 생기는 것 같더니 아예 밝기가 흐려진다. 절로 느려지는 내 걸음을 따라 동기가 뒤를 돌아보다가 문득 내 표정이 이상했는지 어깨를 짚는다. 옹성우, 괜찮아?

 

", 컴퓨터를 너무 많이 봤나봐. 눈이 시려.."

"너 너무 조교실 틀어박혀 있어서 그래. 산책도 좀 하고 먼 산도 좀 바라보고. ?"

"너나 그러고 살아라 너나."

 

사실 시력이 나빠지는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며칠 전에 들른 안과에서는 한쪽만 시력이 갑자기 나빠질리가 없다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큰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볼 것을 권했다. 그 결과가 나온 것이 어제. 입원해서 MRI 까지 찍게 하더니 주치의라는 사람은 이상한 소리를 늘어놓았다. 뇌하수체에 선종이 생긴 것 같은데 자세한 검사를 받아봐야 할 것이라고. 시력 저하와 함께 두통, 메스꺼움, 어지러움 등이 같이 나타날 수 있으니 당분간은 조심하라는 이야기였다. 선종, 선종이 뭐지. 착한 종양인가.

 

"검사 결과 나오는 대로 수술 잡읍시다."

 

내가 학부생들에게 레포트 양 많다고 좋은 점수 나오는거 아니라고 말할 때 저런 느낌일까. 꺼칠해진 얼굴로 반쯤 감긴 눈으로 사무적으로 MRI 영상을 클릭클릭 하던 주치의가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말해서 더 기분이 이상했다. 결국 수술을 해야한다는 거? 뇌하수체를? 그게 그 대뇌 사이에 붙어있는 거기 말하는거 맞는 거야? 엄청 쪼끄만거?

 

"시력은 회복되나요?"

"아주 천천히지만 회복 될겁니다. 그래도 TV나 컴퓨터 모니터 많이 보면 안좋겠죠. 핸드폰도 마찬가지고. 다른 호르몬 이상증상은 없죠?"

"다른 이상이 더 있을수 있나요?"

"뇌하수체가 호르몬 분비기관이다 보니까 일시적으로 성욕감퇴나 발기부전이 있을수도 있어요. 갑상선 쪽에서 이상이 발견될 수도 있고. 수술하면 다 좋아질 겁니다."

 

그러고보니, 그랬다. 다니엘은 술을 많이 마신 날은 꼭 내 자취방에서 자고 가곤 했다. 그리고 꼭 술김에 입술을, 맨몸을 부벼댔다. 알콜기가 가득한 뜨거운 숨소리가 싫은 것은 아니어서 나도 많이 받아줬었는데, 요새는 그것도 여의치가 않았다. 다정하고 배려심 많은 다니엘이 한참이나 물고 핥고 빨아대는데도 잘 서지 않았다. 생각없다고 돌아눕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우리 형이 피곤한가아, 하면서 취한 애 답지 않게 나를 다독이다 뒤에서 끌어안은 채 삼초 만에 잠들어버린 다니엘의 품에서 머릿속이 복잡했다. 마음이 식은 걸까, 그래서 몸이 동하지 않는 건가

그 다음 다니엘이 섹스를 시도했을 때는 그냥 자는 척을 해버렸다. 두 번을 그러고 나니 마음이 초조해졌다. 그런데 이렇게 의사의 진단을 받고 나니 차라리 편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눌수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타격이 큰 일이었다.

 

그 후로 다니엘의 얼굴을 보는 것이 어려워졌다. 물론 레포트니 과제니 조별모임이니 졸업을 앞두고 많이도 바쁠 것이다. 자격증도 따야 하고 영어 성적관리도 해야하고 취업을 위한 자기소개서나 면접 준비도 해야겠지. 졸업 후에 바로 대학원에 진학한 내가 별로 도와줄 것도 해줄 말도 없어 그저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면 그 불발로 끝난 두 번의 잠자리 때문인가 하는 생각도 아주 잠깐 들었지만, 우리가 나눈 시간을 생각해보면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수술은 간단하다고 했다. 누구의 입장에서 간단한 것인지를 묻고 싶었는데 그저 고개만 끄덕끄덕했다.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수술동의서를 써야 한다고 해서 엄마를 불렀다. 엄마는 한참이나 의사의 설명을 듣고 별거 아닌듯한 표정을 가장하고 있는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입원실에 누워있는 내 옆에서 주섬주섬 담요를 챙겼다

 

"엄마."

"."

"나 남자 좋아해."

"...이 상황에 그런 말이 나와?"

"이 상황이니까 그런 말을 하는거야."

 

엄마는 아무 말 없이 각이 접힌 담요의 모서리만 매만지고 있었다. 자꾸만 자꾸만. 무슨 말을 할지 고르는 것 같았다. 엄마가 엄청 놀라거나 엄청 화를 내거나 농담 그만하라며 헛웃음이라도 터뜨릴 것 같았는데, 이렇게 그저 알았다는 듯한 반응은 기대하지 않았던 바라서 좀 놀라웠다. 한참이나 담요가 닳도록 모서리를 접고 또 꼬집던 엄마가 한숨처럼 말을 했다.

 

"그때 걔야? 다니엘인가 하는 애."

"알고 있었어?"

"걔 얘기밖에 안했잖아 너."

"...그랬나."

"...한번 데려와. 밥이나 먹게."

"안돼."

"뭐가 또?"

"헤어졌어."

 

엄마는 대답없이 갑자기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리고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어깨를 들썩거리는 엄마의 모습이 너무 낯설어서 난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아니, 내가 헤어졌다는데 왜 엄마가 울어?

 

"엄마, 왜 울어? 내가 남자 좋아한다고 해서?"

"성우야. 성우야...."

 

손을 뻗어 엄마의 어깨를 잡았다. 엄마가 내 손을 꽉 붙잡고 매달렸다. 흑흑 울면서 눈물 콧물을 쏟아내면서 성우야 성우야 내 이름만 부르던 엄마는 의사를 다시 만나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거, 간단한 수술 아닌 것 같다는 말을 남기고서.

 

병실에 혼자 남은 내 얼굴이 꺼진 티비에 비쳤다. 진짜 이상한 표정이었다. 나조차도 처음 보는 얼굴. 울것 같으면서도 울지 않는, 그런 표정. 소주를 사러간다며 볼캡을 쓰고 나가던 다니엘의 등이 떠올랐다. 견갑골 사이가 팽팽한 채로 잔뜩 축 처진 어깨가

 

엄마가 놓고간 담요에 동그란 얼룩이 남아있었다. 멍하니 그걸 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아마도 엄마는 그 어깨를 볼 일이 없을 것이다. 아들의 남자친구로 인해 혼란할 일도, 미워하고 싫어하거나 인정하고 받아들일 일도. 우리는 헤어졌으니까. 그 넓은 어깨나 판판한 등이나 무엇을 입어도 팽팽해지는 그 날개뼈 사이도, 볼 수 없겠지.

 

그리고 나도, 그렇겠지.

다시는 너를 볼 수 없겠지.

 

 

 

 

 

 

 

 

 

 

너를 어디에서 추억해야 할까,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다.

 

짧아진 머리로 복학서류를 내고 과사무실에 들렀다. 습관같은 거였다. 이제 형을 어디에서 그리워할 수 있을까. 과사무실의 몇십년된 나무문짝 같은데서 형을 생각할 수 있을까. 이 안에 들어가도 형은 없겠지. 그 모든 지나간 시간이 이제는 아득해진 것처럼, 이 마음의 고통도 흐려질 때가 올까. 이렇게 무엇을 봐도 형 생각 뿐인데. 어디에서 추억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눈길 닿는 곳, 그 모든 것이 옹성우 세글자였다

 

형은 아프다고 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뇌에 종양이 생겨서 수술을 했단다. 그 소식을 훈련소에서 들었고, 아무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몸이 고단해서 그 의미를 나중에서야 곱씹었다.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도 머릿속에 떠오르는건 바로 들었을 때와 같은 거였다. 그저 물음표.

 

왜 나한테 얘기하지 않았을까

왜 그 모든걸 혼자 짊어졌을까

왜 날, 믿어주지도 사랑하지도 않았을까

 

역시나 과사무실에는 형이 없었다. 안에서 시시덕대고 있던 대여섯이나 되는 사람들 중에서 아는 얼굴이 하나도 없었다. 형이 앉아있던 자리에 새롭게 자리잡은 얼굴만 겨우 알아볼 정도였다. 다니엘 제대했다더니 복학했구나, 하고 어색한 인사를 건네는 것에 어색한 미소로 마주 답해주고, 몇 학번 아래 후배들이라며 돌아가며 인사하는 것을 그저 고개만 몇 번 끄덕거리다가 나왔다. 입 안이 썼다

 

마음이 아팠다. 헤어졌다는 것이 이렇게 현실로 와닿을 줄은 몰랐다. 군대에 있을때만 해도 그저 아득했는데 막상 학교에 오니까 어딜 봐도 형 뿐이어서 오히려 실감이 났다.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공간, 눈에 익은 건물과 낯선 사람들. 형 없는 곳, 형 없는 나. 아까 인사를 하느라 벗은 볼캡을 손에 꾹 쥐었다. 모자챙에 눌려 손바닥이 아렸다

 

그때 누가 뒤에서 어깨를 탁 쳤다.

 

"군대가는 것도 말 안하더니, 제대하는 것도 말 안하네. 너 워낙 유명인이라 학교에 소문 짜하던데."

"....."

"강다니엘 알고보니 머리빨이었어. 우와 흉해. 사진 한장 찍자, 이거 완전 흑역사 각이다. 모자 얼른 쓰지 않을래?"

"."

"."

 

해사하게 웃는 얼굴이 여전했다. 너무 여전해서 이상할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봤던, 어떻게 해도 설명되지 않는 그 표정과는 백팔십도 다른, 내 기억속의 옹성우, 8년을 만난 옹성우, 그러니까 그냥, 옹성우.

 

"다시, 못 볼줄 알았는데."

"봐서 싫단 소리야?"

"..떻게 된거에요? 괜찮아요? 다 나았어요? 수술은? 학교 아직도 다녀요? 조교는 안해요?"

"하나씩 물어봐."

 

미소를 짓고 있는 얼굴이 낯설고, 반가웠다. 그렇게 소주 사오겠다고 집을 나서고 처음 보는 얼굴. 이렇게 다시 만나도 되는건가 싶을 정도로 이상하리만치 자연스럽고도 편안한 지금. 뭔가 시간이 거꾸로 돌아간 것처럼, 믿어지지 않으면서 너무나 기뻤다. 이게 꿈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 내가 미안해요."

"아하하, 너 진짜."

 

제일 별렀던 말부터 했다. 형은 청량하게 웃었다. 탄산수의 기포가 터지는 것처럼. 손을 대면 사라질 것 같아, 잠에서 깨면 사라질 것 같아 눈조차 깜빡이지 못하는 내 손을 느릿하게 잡아왔다. 학교 안에서는 손은 커녕 시선조차도 제대로 맞추지 않았었는데, 진짜 꿈일까. 그래도 손에 닿는 온기가 절박해 꾸욱, 힘을 주어 붙잡았다. 내 손 안에서 형의 손가락들이 엉망으로 구겨진다. 형은 건물 안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어제 만난 사람처럼.

 

"엄마가 밥해준댔는데. 너 머리 그래서 당분간 못가겠다."

 

영 실감이 나지 않아 형이 잡아끄는대로 따라가면서 나는 멍청하게 형의 뒤통수만 쳐다보았다. 저 머리 어딘가에 종양이 있었다고? 그런데 떼어냈다고? 그런 사실마저 없었던 일이 되었다는 듯이 너무 편안한 형의 말, 아니 근데 누구? 엄마?

 

"어머니요? 형 어머니?"

"."

 

복도에 나란히 놓인 강의실 문을 열어보던 형이 나를 돌아보며 내가 소고기 먹자고 했어. 육회도 해달라고 하고. 잘했지? 하면서 생긋 웃었다. 가슴이 두근, 뛰었다. 여태 거기 있는 줄도 몰랐던 심장이 찌르르 하고 신호를 보내왔다. 다시 살아났다고. 그러니까 이제 다시 멎게 하지 말라고, 놓치지 말라고.

 

 

 

 

 

 

 

 

 

 

 

 

너를 어디에서 추억해야 할까,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다.

 

수술은 잘 끝났다고 했다. 의사가 그랬으니 그런거겠지 뭐. 바깥으로 드러나는 상처도 없고 그러니까 아픈 곳도 없고 증상도 없고. 가습기가 폴폴 하얀 김을 내는 병실에 앉아서 멍하니 티비 채널을 돌렸다. 엄마가 옆에 앉아 뜨개질을 하다가 음악프로에 같이 시선을 고정한다

 

엄마가 뜨고 있는 빨간 목도리는 내가 어릴적 입던 스웨터를 풀어서 만든 것이다. 뜨개질만 손에 잡으면 빨래고 청소고 다 모른척하고 싶다고 몇년을 쉬었는데, 막상 병간호 한다고 병실 생활하니 어지간히도 할 일이 없었나보다. 눈은 티비를 보고 있고 입은 티비프로를 따라 웃고 있는데 손가락만 외따로 혼자 바쁘다. 멀거니 규칙적이고도 바쁜 손가락을 보는데 다니엘이 떠올랐다.

 

다니엘은 아무데서나 마구 떠올랐다. 심지어 링겔 줄을 매달고 화장실에 다녀올 때도 떠올랐다. 걔는 팔이 길어서 이런 것도 잘하겠다, 벽에 붙은 전등 스위치를 끌때도 생각났다. 수술할 때는 속옷도 다 벗고 환자복만 입으라고 해서 실없는 웃음도 나왔다. 다니엘이 들었으면 엄청 식겁했겠네. 그러다가도 좀 좋아했을 것 같기도 하고. 마취가 풀리면서도 생각이 났다. 감각이 덜 돌아온 다리를 굽혔다 펴면서, 다니엘이 여기에 입을 맞춰도 아무 느낌이 없을까 궁금했다

 

"엄마."

"."

"나 수술 잘 끝났대."

", 잘됐어."

"그래도 밥, 해줄거지?"

 

바쁘게 움직이던 손가락이 뚝 멈춘다. 시선만 돌려 엄마의 얼굴을 본다. 엄마 표정이 묘했다. 이걸 뭐라고 받아들여야 하나 고민하는 표정. 그저 씩 웃어보였다. 아이고... 하며 엄마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다시 손가락이 움직인다. 같은 자리를 반복하는 것 같은데 밑으로 내려오는 편물의 길이가 길어지고 있었다. 엄마는 깔깔대는 티비 소리에 묻힐 정도로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알았어."

"걔 고기 좋아해."

"알았어."

"갑각류 알러지 있어. 새우, 게 그런거."

"알았어."

"국물도 내면 안돼. 양념도 쓰면 안되구."

"알았다구."

"소고기 먹자, 소고기. 육회도 좋아하드라."

 

또다시 손가락이 뚝 멎는다. 심상치 않은 느낌. 엄마가 잠자코 편물을 한손에 옮겨쥔다. 어우, 피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인데.

 

"네 엄마를 좀 그렇게 챙겨봐라! 이놈새끼가 진짜."

"으악! 엄마는 아빠가 있잖아!"

 

환자복 위로 매운 손바닥이 날아왔다. 씩씩대며 등짝을 날린 엄마가 도로 뜨개질을 시작한다. 어쩜 이렇게 등 한가운데를 때려서 문지르지도 못하고 온몸을 비틀게 하는지. 엄마는 엄마다. 수술 잘됐다니까 바로 태세전환이야. 막 울땐 언제고.

 

"...아빠한테는 엄마가 얘기할게. 가만있어."

", 고마워."

 

그러고 나서 또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티비에서 웃음소리가 터져나와도 놀란 탄성이 들려도 엄마의 손가락만 바빴다. 뜨개바늘만 멍하니 쳐다보다 티비를 껐다. 조용했다. 또다시 다니엘 생각이 났다. 어우 형, 너무 티비를 오래봤나봐요. 귓가에서 막 티비소리가 울리는거 같아요.

 

잘 지내려나. 날씨가 많이 추워졌는데, 핫팩이며 양말이며 군생활 챙겨주는 사람은 있으려나. 인기 많았는데, 벌써 다른 사람이 생겼으려나. 어디서든 눈에 띄는 외모에 스타일, 상냥하고 정이 많은 성격까지 최고였지. 아무렴, 다니엘같은 애가 없지.

 

"성우야? 어디 아파? 간호사 부를까?"

 

엄마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내 얼굴을 살핀다. 난 그제서야 내가 울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엄마, 엄마 밥 못해줄지도 몰라. 내가 등신이라 그런 애를 놓쳤어, 이제 끝났어, 그냥 보내버렸어. 어쩌지 이제와서 걔 없이 못살겠는데, 어쩌지 그냥 수술 실패할걸, 마취 깨어나지 말걸, 엄마 가슴에 대못박고 그냥 가버릴걸.

 

"....엄마아...."

"얘가 뒤늦게 난리야. 너 헤어졌다더니 그것때문에 그런거지?"

"어떡해 나, 흑흑, 다니엘 너무, ... 보고싶어..."

 

엄마는 말없이 잠자코 내 등을 두드려주었다. 다 큰 아들녀석이, 그 남자친구 때문에, 헤어졌다며 울고 있는걸, 그저 토닥토닥.

 

또다시 다니엘 생각이 났다. 그 커다랗고 따뜻했던 손이. 내 등과 머리를 쓰다듬던 손이, 내 입술과 볼을 감싸던 손이, 내 손을 잡아오던 그 손이.

 

 

 

 

 

 

 

 

 

빈 강의실은 조용했다. 당연하지 아무도 없었으니까. 형은 아무말 없이 문을 잠그더니, 내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때까지도 난 현실감이 없어서 잠자코 눈에 어른거리는 형의 목덜미를 내려다봤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할지 알수가 없었다. 형의 상태도 궁금했고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내가 여기 올지 어떻게 알았는지 같은 것도 묻고 싶었다. 그러다가 문득,

 

닿아오는 입술에 눈앞이 하얘졌다

그리고 알았다. 아무 말도 필요 없다는 것을.

 

 

 

 

 

 

다니엘은 조용히 입술을 맞대고 있다가, 몇초 지나지 않아 강하게 내 허리를 끌어안고 폭풍같은 키스를 퍼부었다. 그립고 익숙한 혀가 내 입안의 여린 살을 훑고 지나갔다. 혀뿌리까지 빨아들이는 거친 입맞춤에 호흡이 가빠졌다. 키스할 때만 느낄수 있는 다니엘의 짙은 체취에 머리가 띵했다. 내 허리를 끌어안은 손이 조급하게 등이며 엉덩이를 만져대는 것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리웠다. 보고싶었다. 만지고 싶었다. 허전했던 마음이 부풀어올랐다. 다니엘이 좋았다. 너무 좋았다. 그저 좋았다

 

 

 

 

"사랑해요."

"나도 사랑해."

 

 

 

 

 

우리가 만난지

십 년이 지나고,

이제 다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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