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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녤옹

 

 

월간 4월호 부터 이어지는 시리즈입니다

 

 

 

 

 

 

 

너를 기억해 5

Sukina

 

 

 

 

 

 

 

 

 

 

성우의 아버지가 다시는 그의 병실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은 후, 다니엘은 병원에 찾아가지 않고 있다. 보고 싶지. 그립지. 그 마음이야 어찌 쉬이 가라앉힐 수 있겠는가. 정말 정신 놓고 일만 하기도 했고, 친구들을 만나 이기지 못할 만큼 술을 퍼 마시기도 했다. 술이라는 게 마시면 마실수록 주량이 는다고 하던데 어째 이상하게도 마음만 더 약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다 너무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고 다니엘은 망설였다. 자신의 전 여자 친구인 지연. 그녀가 실로 오랜만에 얼굴 좀 봤으면 좋겠다며 다니엘을 불러냈다. 마주보고 있어 봐야 얼굴 붉힐 일만 가득할 텐데 굳이 나가서 뭐하나 싶다가도, 한 번만 만나주면 다시는 귀찮게 하는 일이 없다고 했다. 참 막무가내여서 일단은 알겠다고 했더니 문자메시지로 약속 시간 및 날짜를 보내주었다. 이 사실을 알면 성우가 크게 화낼 게 뻔했다. 가만히 누워있지만 말고, 노발대발하며 왜 만나야 되는지 소리라도 질러줬으면 좋겠다.

 

 

늘 그랬듯 지연은 한껏 차려 입은 채 약속 장소에 나와 앉아 있었다. 밝지 않은 얼굴로 오랜만이라며 건네는 인사가 썩 유쾌하지 않았다.

 

 

왜 보자고 한 거야?”

그냥. 가끔 이렇게 얼굴도 보면서 지내야지.”

굳이 내가, 너랑, 이런 곳에서 얼굴을 봐야 되나?”

못 볼 게 뭐야. 성우도 아프니까 뭐라고 안 할 거잖아.”

 

 

지연의 입에서 무성의하게 튀어 나온 성우의 이름은 다니엘의 인상을 일그러뜨려 놓았다.

 

 

그녀는 수도 없이 아픈 성우를 들먹였다. 에두를 것 없이 바로 용건을 말했다면 기운 뺄 이유도 없었을 것 같았다. 원하는 건 다니엘이 성우와의 관계를 끝내고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란다. 그게 말처럼 쉬우면 진즉 그렇게 하고도 남았을 거다. 아니, 동시에 만나려고 했겠지.

 

 

당신 친구 아냐? 친구가 아파서 사경을 헤매는데 말을 그렇게 해도 돼?”

친구? 말 참 쉽게 하네.”

 

 

아직도, 여전히. 그녀는 울분을 토했다.

 

 

사실 다니엘이 잘못하기는 했다. 여자 친구가 있음에도 다른 사람에게 눈을 돌리는 건 잘못 된 일이다. 게다가 눈을 돌리다 못해 여자 친구를 떠나버린 것도 큰 죄이기는 했지. 누가 들은 들 쉽게 이해나 할 수 있으려나 싶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제 시선을 돌린 건 성우였고, 지연으로 인해 그를 만나게 된 것을 오히려 기뻐했던 다니엘이었는데.

 

 

너 때문에, 네 죄 때문에 성우가 그렇게 된 거야.”

그래서, 그걸 속죄하는 방법이 네게 돌아가는 거야?”

뭐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럴 리가 있나.”

나는 아직도 기다리고 있으니까 괜찮으면 돌아와도 돼.”

내가 다시 죽는다 해도 그럴 일은 없어.”

 

 

다니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지연과 이곳에서, 쓸데없는 소모전을 할 이유가 없었다. 속죄는 성우에게 하여야 했다. 지금 자신의 기준에서는 그랬다. 정작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 건 성우였고, 찾아가서 호흡기에 의지한 채 시간을 보내고 있는 얼굴조차 보지 못해 잔뜩 성이 난 상태인데 재미있다는 듯 자신을 긁어대는 지연이 영 못마땅했다.

 

 

속죄를 해도 형한테 해. 얼굴 보여줬으니까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마.”

 

 

속으로 수 천 가지의 욕을 내뱉으며 자리를 뜨려는데 지연이 손목을 붙잡고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을 이야기를 건넸다.

 

 

성우 못 본지 한참 됐지? 손가락 움직였어. 눈도 깜빡여.”

“......”

그러니 앉아. 앉아서 더 들어.”

 

 

지연의 태도가 너무도 태연하고 당당해보였던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성우의 부모님과도 친분이 있는 사이였기에 병문안을 가는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오히려 환대를 받을 정도였으니까. 때때로 성우의 간호를 부탁받기도 했단다.

 

 

그리고 바로 어제, 오랜 시간을 움직이지 않은 채 숨만 간신히 성우가 손가락을 움직였으며 자신의 말이나 부모님의 말에 눈을 깜빡였다고 했다. 누군지 알아보겠냐고 묻는 질문에 눈을 깜빡였는데 지연의 입에서 다니엘의 이름이 나온 순간 눈물을 흘렸다고. 다니엘의 이야기에 눈물만 흘리는데 어떠한 질문을 해도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고 했다. 대화를 통한 의사소통은 불가해서 더 이상 물어보지 못했지만, 성우는 다니엘의 이름을 들은 뒤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성우도 얼마나 괴로웠으면, 나한테 얼마나 미안했으면 네 이름에 반응도 안 했겠어?”

 

 

다니엘은 표정이 굳은 채 대꾸도 없이 지연의 말을 듣기만 했다. 어찌 됐든 자신이 입을 떼면 좋은 말이 나갈 리 없었고, 그랬다가는 더 이상 성우의 소식을 들을 수 없을 테니까.

 

 

성우가 그토록 오래 의식 없이 있었던 건 스스로 자책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기도 했대. 누구 때문이겠어?”

 

 

다니엘, 너 때문이지.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다니엘에게 대못을 박아대는 지연이 참 원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이다. 성우는 자신이 지연에게서 다니엘을 얻은 것에 행복해하기도 했지만, 자책하는 마음도 꽤 커서 그 때마다 바닥으로 솟구치는 그를 끄집어내야만 했다.

 

 

성우... 보고 싶지 않아?”

“......”

내가 만나게 해줄게.”

 

 

그리고 지연은 조건을 걸었다. 성우를 보게 해줄 테니 다시 자신에게 돌아와 달라는 것.

 

 

마주 보고 앉아서 인상만 쓰고 있어도 좋고, 신경질적으로 말해도 좋아. 짜증만 내도 돼.”

싫다면?”

그럼 뭐 성우 못 보는 거지. 평생.”

평생?”

그래. 내가 어떻게 해서든 성우 부모님께 말씀드려서 너 못 만나게 할 거야.”

그렇게까지 해야 되나?”

해야 돼. 네가 욕심낸 만큼 나도 낼 거야.”

 

 

지연은 한 치의 물러섬이 없었다. 그녀 입장에서는 당연했다. 하루아침에 제 단짝 친구에게 남자 친구를 빼앗겼으니. 너무 사랑해서 모든 걸 다 내어주고 싶다며 성우에게 자랑을 늘어놓고, 매일을 행복하게 살았는데 그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무너져버렸으니까. 눈에 뵈는 게 없다고 할 법 했다. 정말 그랬으니까.

 

 

자신을 만나러 나와서 애정이 없더라도 데이트만 해주면 된다고, 그게 전부라고. 그러면 성우를 원하는 만큼 보게 해주겠다면서.

 

 

당장이라도 내가 너 데리고 성우 보러 갈 수도 있어. 어떡할래? 돌아올래?”

 

 

다니엘은 자리에 앉아 한숨을 내쉬다 담배 한 대 피우고 오겠다며 일어섰다. 흡연부스로 가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멋대로 쏴버린 화살이 이렇게 돌아오기도 하는 구나 싶어서 참 속상하고 서글픈데, 지연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성우를 볼 수 없다는 게 더 화가 났다. 성우를 볼 수 있는 모든 통로가 막혀버려서 결국 그녀에게 기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기요.’

 

 

흡연부스에서 성우에게 건넸던 첫 마디였다. 부스 안에 자신과 성우뿐인데 불러도 대답이 없어서, 다니엘은 괜히 그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두어 번 두드렸다.

 

라이터 좀 빌릴 수 있을까요?’

 

 

라이터를 빌려 달라던 다니엘의 말에 성우는 불이 붙어 서서히 타들어가고 있는 담배를 입에 문 채, 한 번 들이마셨다가 연기를 뱉어내며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내밀었다. 라이터를 빌려 달라던 다니엘이 손바닥만 내밀고 가만히 있어서 성우가 손에 쥔 라이터를 까딱거렸지만 집어가거나 하지 않았다. 결국 성우가 어쩔 수 없이 다니엘의 손바닥에 라이터를 올려두었다. 그러자 손가락을 살짝 오므렸다. 성우의 손가락에 다니엘의 손가락이 닿는데, 차가운 느낌이 들어 움찔거렸다. 차가운 느낌이 싫었는지, 제 손이 닿자마자 살짝 오므려진 다니엘의 손가락이 싫었는지 성우는 라이터를 놓자마자 손을 급히 빼내었다.

 

 

그 첫 만남이 자꾸 맴돌았다. 함께 한 시간이 유독 길고 많았지만 이상하게 첫 만남만 떠올랐다.

 

 

닮아 있었다. 낯선 곳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상황 파악을 하던 그의 어깨와 자신의 어깨가 부딪혀 짧은 탄식을 내지르던 때와. 너무도 닮아서 더욱 흡연부스 안에서의 첫 만남이 떠올랐던 것 같다.

 

 

돌아갈게. 그래, 형 보게 해준다는데 돌아가야지.”

성우 보러 언제 갈래?”

내일.”

 

 

성우를 만날 수 있다. 내일이면, 제 연인인 성우를 보러 갈 수 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

 

 

 

 

 

지연과 만난 이후 다니엘은 착잡한 심정으로 집에 돌아왔다.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성우를 만나야겠다는, 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억지로 만남을 지속하는 건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찾아가면, 그래서 얼굴을 보면 성우가 벌떡 일어나 저를 안고 많이 보고 싶었다며 눈물이라도 펑펑 흘려주려나.

 

 

지난번에 전해 준 편지는 읽었을지 모르겠다. 평소에 한 번씩 써줬으면 좋았을 걸. 이렇게 후회만 늘어놓을 게 뻔한 데 더 잘 해줄 걸. 시간이 갈수록 이런 생각들만 머릿속에 가득해졌다.

 

 

다니엘은 다시금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편지지에 수많은 내용들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제 눈을 떴다니, 이 편지도 읽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괜스레 마음이 설렜다.

 

 

 

 

 

*

 

 

 

 

 

정말 약속대로 지연은 다니엘을 성우의 병실에 들여보내 주었다. 아무도 없었다. 성우가 생활하고 있는 환경은 그대로였고, 얼굴을 덮고 있는 호흡기는 없었다. 이제 웬만큼은 회복된 것 같다는 생각에 다행스러웠다.

 

 

성우 보고 나오면 이따가 영화 보러 가자. 저녁도 먹고, 산책도 하러 가.’

 

 

제 멋대로 할 일을 정해버린 그녀에게 다니엘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별 생각 없었다. 이미 눈앞에 성우가 있고, 그런 이상 굳이 싫다며 으름장을 놓고 싶지도 않았다.

 

 

다니엘은 천천히 다가가 성우의 침대 옆에 앉았다.

 

 

. 나 왔어.”

 

 

성우는 대답이 없었다. 대신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다니엘을 본 성우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무런 말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다니엘을 뚫어져라 보는데, 그 모습에 턱 막혔던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푸른 무늬의 환자복을 입고 멋대로 움직이지도 못한 채 고개를 제 쪽으로 돌리는 데도 한참이 걸리니, 가만히 누워있기만 하던 모습보다 더욱 낯설었다.

 

 

잘 지냈어? 나 많이 보고 싶었을 거야. 그치?”

 

 

대답하듯 눈을 깜빡이는 일은 없었다. 그저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그러다 한 번씩 손가락을 움직거렸다. 움찔거리며 굽혔다가 폈다. 그 모습을 보던 다니엘이 그 손 위에 제 손을 얹었다. 차갑기만 한 손이 안타까워서 몇 번이고 쓰다듬어 주는데 성우의 얼굴에서 미소 한 번 볼 수 없었다.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면서 다니엘은 성우의 주변을 살폈다. 아직 시들지 않은 화분의 꽃을 보니 다행이지 싶었다.

 

 

아직 살아 있다. 그치? 편지는 읽었어?”

 

 

성우는 대답이 없었다. 그래도 다니엘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펼쳐 놓았다.

 

 

곧 형 생일이야. 얼마 안 남았다. 그치? 형이 아프지 않았다면 함께 보냈을 건데. 지난 생일 보낼 때 형이 말했었지? 여름에도 이름을 부르고 여름에도 연애를 해야 한다. 그래.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연애 중일 거야. 지금은 우리 둘 다 지옥 같은 곳에 있지만, 금방 벗어날 수 있을 거야. 근데 형이 먼저 벗어나면 좋겠다.”

 

 

다니엘은 자신의 가방에서 편지를 꺼내 성우의 손에 쥐어주었다.

 

 

생일에, 형 만나러 올게. 축하해주러 올게. 매일은 못 올 거야. 그러니까 나 볼 때까지 기다려. 다음에 올 땐 목소리도 들려주고 손도 잡아줘. 나만큼이나 형도 오래 기다렸다고 얘기해 줘. 알았지?”

 

 

다니엘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분 앞에 가서 섰다. 성우도 그를 따라 시선을 옮긴다.

 

 

가져다 놓은 화분의 꽃은 아직 생기가 돌고 있었다. 성우의 가족들이 오가면서 잘 가꿔줬던 것 같다. 성우의 손길이 닿는다면 꽃이 더 예쁘게 자랄 것 같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안타까웠다. 붉은 꽃잎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다니엘은 굳은 얼굴로 감상에 젖었다.

 

 

백일홍. 백일 간 붉은 빛을 낸다고 해서 성우의 손에 꽃송이를 쥐어주었던 순간. 그 순간 성우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손바닥에 꽃송이를 올려둔 채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데, 그 순간을 잊을래야 잊을 수 없다. 폭탄을 만들고 남은 화약을 가져다가 밝은 불꽃이 파바박 튀도록 만들어 불꽃놀이라며 보여줬더니 기뻐하던 것도 참 귀여웠달까. 주변의 시선을 피해 숨어서 둘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수줍게 미소를 짓던 그 모습도 참 귀여웠다.

 

 

그 기억이 다니엘에게는 고스란히 남겨졌고, 한 번 살았던 경성에서의 기억에 더 좋은 기억들이 덧칠해졌는데 성우는 어땠을까.

 

 

그 때나 지금이나, 우리의 첫 만남은 당황스럽다. 그치?”

 

 

성우는 알려나 모르겠다.

 

 

다니엘이 모든 기억을 가지고 성우와 함께 경성을 살았고, 제 마지막을 이 나라를 위해 바치고, 그리고 다시금 성우의 앞에 나타났다는 것을. 그러게 하기까지 수도 없이 기다렸다. 성우가 어떻게 경성에서 숨을 거두었는지, 그리고 다시 태어나 자신의 앞에 나타났는지. 세세히 알 수 없다. 그저 다시 만날 그 시간을 기다렸을 뿐.

 

 

경성에서 함께 했던 그 시간을 잊지 못해서, 텅 비어 있을 그 날의 기억을 채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 노력을 성우의 사고 후에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너무 가슴 아팠지만.

 

 

그 시절에 마지막으로 주었던 꽃이 너무 허름해서 미안했어.”

 

 

그래서 다니엘은 성우가 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은 순간부터 그를 만나기 위해 잠들어 있던 그를 제 멋대로 깨워 다른 시대로 데려갔다. 함께 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면, 그러면 온전한 모습으로 제 앞에서 있어줄 것 같아서. 위태로운 가정에, 따스함 따위 없는 곳에 데려다 놓은 것이 미안해서 끝내 자신이 의건이자 다니엘이라 말할 수 없었다. 의식을 찾게 해주려 멋대로 불러들인 것 또한 자신의 욕심이었기에 더욱 그럴 수 없었다.

 

 

밝히자면, 다니엘은 전생부터 현생의 모든 기억을 갖고 있었다. 능력이라면 능력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있어서, 특정인을 원하는 시대로 불러들여 함께 보냈던 시간을 다시 한 번 보낼 수 있었다. 물론 잠깐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거에 일어난 일을 바꾸거나 할 수는 없었다. 그저 원하는 사람을 원하는 시대로 불러들여 함께 하는, 그러면서 잠깐의 행복함을 선사할 수 있는 그런 능력. 물론 함께했던 그 시간이 행복이었을지 불행이었을지는 다녀 온 상대가 판단할 일이었다.

 

 

성우에게도 경성에서의 인연이 행복이었는지 답을 듣기 전까지는 섣불리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

 

 

형은 강의건을 잊었을까, 강다니엘을 잊었을까?”

 

 

답을 들을 수 없는 물음. 성우는 그를 듣고 눈물만 흘리는데, 어떤 기분일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눈을 감은 채 아무 말이 없는 그의 손가락을 보니 다시금 움찔거렸다. 다니엘은 그 모습에 마음이 쓰렸다.

 

 

나를 잊었으면 어쩌지?”

 

 

성우의 머리맡에 있는 백일홍 화분을 보며, 다니엘은 그의 옆에 앉았다. 힘없이 움찔거리는 손을 잡고 다시금 제 할 말을 이어갔다.

 

 

아버님께서 나를 반대하셨어. 형의 가족들은 경성에서나 여기서나 나 싫어하시는 건 똑같네. 내가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더라. 형이 너무 보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서 나 지연이 누나랑 다시 만나기로 했어. 그래야만 형 만나게 해준대. 그래, 뭐 내가 어떻게든 하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러다 진짜 못 보게 될 수도 있잖아? 형이 진짜 싫어할 건데. 그냥 내 멋대로 막 싸우고 난리 좀 부리고 그럴까? 그런 거 철없어 보인다고 싫어하잖아.”

 

 

다니엘에게 손이 잡힌 성우는 손가락을 다시금 움직였다. 그의 움직임이 느껴지니 만감이 교차했다. 전에 봤을 때만 해도 좀처럼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속이 뒤집어질 것 같았지만 오늘은 그래도 움직임을 보이고, 호흡기도 떼어냈으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경성에서 조금 더 오래 볼 걸.”

 

 

매일 볼 걸, 매일 만나서 실컷 웃게 해 줄 걸. 후회와 원망이 뒤섞인 다니엘의 읊조림이 성우를 뒤흔드는 것 같았다. 경성에서의 옹성우는 마냥 순수하고 여렸어서, 다니엘은 그를 망가뜨리고 싶지 않았다. 2018년에서 힘들게 했던 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

 

 

다니엘은 경성에서 의건이 되어 성우를 만난 기억도 모두 갖고 있는데 그는 어떨지 모르겠다. 기억이나 할까 모르겠다. 기억을 한다면 다행이었지만 그렇지 않다면 다시 설명해주어야 할까 고민이 되기도 했다. 물론,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지만. 물론 가장 큰 문제는 이곳에서 언제 성우가 원래의 모습을 찾을까였다. 원래의 모습을 찾기는 할까,

 

 

그냥 형이 편히 지내도록 놔뒀어야 했나? 그러면 조금 더 빨리 깨어났을까?”

 

 

이렇게까지 와버린 상황이 원망스러우니 자꾸만 거슬러 올라간다. 그 날 만나자고 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직접 데리러 갔다면 이런 일은 겪지 않아도 됐을까. 형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연과 계속 연애 중이었다면 이런 상황은 닥치지 않았을까. 애초에 이 시대에 살면서 성우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까.

 

 

. 빨리 깨어나. 나랑 할 일 많잖아.”

 

 

성우의 눈에서는 다시금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미세하게, 아주 약하게 고개를 젓는 듯 했다.

 

 

빨리 깨어나서, 일어나서 밖에서 만나. 그래야... 그래야...”

 

 

다니엘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를 따라 성우의 시선이 움직였다. 잡고 있던 손을 놓고, 떨어뜨렸던 편지를 다시 주워 손에 쥐어주었다.

 

 

곧 다시 만나러 올게.”

 

 

누워있는 성우의 이마를 쓰다듬어 주고, 살며시 입을 맞춘다. 그리고 눈을 맞추며 슬며시 미소를 지으니 다시금 눈물을 흘리는 게 보였다.

 

 

울지 말고, 다음에는 꼭 이름 불러줘, 알았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고, 문 앞에 서서 한 번 더 성우의 모습을 보는데 가슴 한 구석이 쓰렸다. 이래서, 이래서 그의 아버지는 오지 말라 했는지도 모른다.

 

 

문을 열고 나와 닫고 난 뒤 그대로 주저앉은 다니엘은 제 입을 틀어막았다. 겨우 벽을 짚고 일어나 제 이마와 주먹을 몇 번이고 쿵쿵거리며 쳐댔다. 누워있는 모습을 보며, 호흡기 없이 숨을 쉬고는 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눈만 깜빡이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몇 번이고 터져버릴 것 같은 속을 눌러 담았다. 눈물을 닦아주고 다독여도 성우는 아무 말이 없었다. 손가락을 움찔거리고, 눈을 깜박이며 눈물을 떨구어 낼 뿐.

 

 

벽에 이마를 대고 한참 말없이 속을 가라앉히고 있는데 제 등을 다독이는 손길이 느껴졌다. 지연이었다. 저만치 떨어져 다니엘을 기다리던 그녀가 다가와 그를 달랬다.

 

 

오랜만에 보니까 좋지?”

가자.”

생각보다 일찍 나왔네? 더 있다 나올 줄 알았는데.”

가자고.”

 

 

다니엘은 시뻘개진 눈을 손등으로 훔쳐낸 뒤 먼저 돌아섰다. 지연은 그저 신이 났는지 다니엘의 팔짱까지 끼고는 옆에 바짝 붙어 서서 걸었다.

 

 

 

 

 

*

 

 

 

 

 

성우야, 잘 잤어? 어제 지연이 왔다 갔다며?”

 

 

성우의 누나가 병실에 들어오며 잔뜩 들뜬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지연이야 워낙 성우의 가족들도 다 아는 데다 워낙 예뻐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게다가 그녀는 누나에게 병실에 다녀갔다며 호들갑을 떨었을 게 분명했다. 다니엘과 함께 다녀갔다는 이야기는 쏙 빼놓은 채 말이다.

 

머리맡에 놓인 백일홍 화분에 물도 주고, 주변을 닦으며 이런저런 질문을 하니 성우가 눈을 깜빡인다. 그러다 갑자기 성우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성우야! 왜 그래, 어디 아파?”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고개를 저으며 괴로워하는 모습.

 

 

성우의 누나는 벽에 붙어 있는 호출벨을 눌렀다. 어디가 아픈 거라면 상태를 확인해봐야겠다 싶어서. 수차례 고개를 저어대다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도무지 진정할 겨를이 보이지 않아서, 이러다가 발작을 일으키는 건 아닌가 싶어서 누구든 불러야 했다. 겨우 괜찮아졌다 싶었는데 발작을 일으켜 잘못되면, 그러다 예전의 성우로 돌아오지 못한다면 가슴이 미어질 게 뻔했으니까.

 

 

호출벨이 울리고 금방 병실로 들어 온 의사와 간호사는 성우의 상태를 살폈다. 어딘가가 악화되었다거나 다른 증상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고 했다. 갑자기 이러는 이유는 의식을 되찾고 자신의 상태를 확인한 뒤 큰 충격에 휩싸여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같은 것이라 했다. 시간이 지나면 나을 수 있다면서. 이상 있으면 벨 눌러 달라며 병실을 빠져나가는 의료진을 보며 성우의 누나는 한숨을 쉬며 보호자용 의자에 앉았다.

 

 

물수건을 들고 성우의 얼굴이며 손이며, 보이는 곳을 모두 닦던 그녀는 성우의 머리맡에 놓여 있던 편지를 보았다.

 

 

성우야, 이건 뭐야? 지연이가 두고 간 거야?”

 

 

편지를 집어 들어 읽어도 되냐고 성우에게 물으니 눈을 깜빡였다.

 

 

누나가 읽어줄게. 우리 성우 심심하지 않게.”

 

 

성우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옹성우. 성우야. 이렇게 부르는 거 참 싫어했는데, 그치?

 

네 이름 석자를 적고 그저 바라보는데, 너보다 시적인 건 없었어.

 

여름에도 이름을 부르고 여름에도 연애를 해야 한다.

네 생일이 여름이라고, ‘여름에 부르는 이름이라는 시를 좋아했지.

 

나는 그런 너를 참 많이 좋아했어.

지금도 좋아해, 아주 많이.

 

내가 얼마나 못해줬는지, 못났는지 알려주고 싶었나 봐.

그래서 내가 큰 벌을 받는 기분이야.

물론 제일 괴로운 건 너일 텐데.

 

사랑해. 좋아해. 언제나 변함없어, 나는.

깨어나면 마주 보고 말해줄게.

그러면 웃으면서 안아줘.

 

- 다니엘.]

 

 

제 누나의 입에서 다니엘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또 한 번 성우는 눈물을 흘렸다. 견딜 수가 없었던 것 같다. 구구절절 애정이 듬뿍 담긴 편지를 읊어주었는데, 운다. 너무 좋아서인지, 그 반대인지 알 수는 없었다. 그저 성우는 말없이 울기만 했다.

 

 

성우야...”

 

 

두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저어대다가 입술을 앙 다물고 있던 성우가 눈을 떴다. 그리고 힘겹게 소리를 내뱉으려는 듯 숨소리를 냈다.

 

 

성우야? 어디 안 좋아?”

“......”

성우야?”

...”

성우야, 천천히. 천천히. 누나가 다 알아 들을게. 천천히.”

 

 

성우의 누나는 한 마디 떼어 보려는 성우의 손을 붙들고 눈물을 눈에 그렁그렁 단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이든 좋으니, 천천히 말해 달라고. 어떤 말을 해도 다 알아들을 테니 천천히 입을 떼어 보라고. 얼마만에 듣는 목소리인지, 그저 반가워서 무슨 말이든 듣고 싶었다.

 

 

제 누나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것인지, 성우는 제 안에서 소리를 끌어내려 애썼다. 한 글자씩 천천히 떼어내던 성우가 마침내 한 마디를 내뱉었다.

 

 

... 누구야?”

 

 

누구인지 물었다.

 

 

성우야, 누구? 다니엘? 다니엘이 누구냐고 물었어?”

 

 

성우가 누운 채 고개를 끄덕였다. 성우의 누나가 편지를 보여주며 다시 한 번 물었다.

 

 

다니엘이... 누구야?”

 

 

몇 번을 다시 물어봐도 성우는 다니엘이 누군지 모른다며 고개를 저었다. 처음 보는 글씨에,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고 했다.

 

그래서 성우는 제 의식을 찾고 난 뒤 다니엘이 병실에 찾아와 슬픈 얼굴로 반갑게 인사하며 이런저런 말들을 늘어놓을 때 기분이 이상했다고 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가 들어와 친근하게 자신을 부르고,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펼쳐놓는데 누구냐 물어보자니 말문이 막혀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제 손을 잡고 이마를 쓰다듬으며 입까지 맞추는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눈물을 흘리는 일밖에 없었단다.

 

 

성우야... 기억이... 안 나?”

다니엘...”

너 깨어나기 전에 몇 번 왔다 갔었는데...”

다니엘...?”

 

 

성우는 고개를 돌렸다. 머리맡에 놓여 있는 백일홍 화분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다니엘...”

너 그 이름만 들으면 울었어.”

 

 

제 누나의 말에 성우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 이름만 들으면 울었다. 다니엘이라는 남자는 저를 보며 애틋한 말들을 건넸다. 행여나 자신을 잊으면 어쩌나 걱정했고, 빨리 깨어나 달라며 빌었다. 못해준 것에 대해 사과했고, 첫 만남은 예나 지금이나 당황스럽다며 미소를 지었다. 한없이 미안하다는 말과 애정이 담뿍 담긴 말을 건넸다. 맞잡은 손에서 따스함이 느껴졌지만 그저 그것뿐이었다.

 

 

오히려 그것뿐인 게 성우를 당황스럽게 했다. 겨우 기억을 되찾고 나서 갑작스럽게 생소한 기억이 밀고 들어왔다. 엄청난 크기의 감정과 함께. 하지만 그것을 오롯이 받아들이기에, 성우는 너무도 유약해진 상태였다. 몇 날 며칠을 눈만 꿈뻑이다가 겨우 입을 트게 되었는데, 뒤이어 저를 채우는 다니엘이라는 남자와의 추억이 어지럽게 만들었다.

 

 

실례가 될까 싶어 누구냐며 묻지도 못했다. 눈물은 제 멋대로 흘렀고 손을 잡고 울먹이는 그를 내쫓을 수도 없었다. 사랑하고 좋아한다며 편지까지 남기고 간 그가, 그가 다니엘이고 그의 이름을 부르면 제 눈에서는 눈물이 흐른다.

 

 

정말... 기억 안 나?”

전혀...”

너무 오래 잠들어 있었어. 그래서 그런 거야.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

그런가...”

잊을 정도면 그렇게 중요한 사람 아닌 걸 거야...”

 

 

너무 중요하기에, 다시 한 번 되새기고자 기억이 사라진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기억이라는 게 제 뜻대로 사라졌다가 다시금 돌아오는 것이니 그냥 두고 보면 알게 되는 것인가 싶었다.

 

 

성우는 그저 다니엘의 이름을 몇 번이고 읊어댔다.

 

 

 

 

 

*

 

 

 

 

 

2017년의 어느 날, 제 남자 친구를 소개해주겠다던 지연에게 장소와 시간을 연락받아 그녀의 남자친구와 만나기 위해 나간 성우는 피곤함에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먼저 나가 지연을 기다리고 있는데 조금 늦어지니 잠시만 기다려 달란다. 옅게 한숨을 쉰 성우는 카페 안에 마련 된 흡연부스로 향했다.

 

 

금방 누가 담배를 피우고 나간 건지 머리 위로 뿌연 연기가 흐트러지고 있었다. 허공에 손짓을 두어 번 한 성우는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한 번 깊게 들이마시고 뱉어내는데 흡연부스의 문이 열렸다. 색이 바랜 듯한 잿빛의 머리칼을 한 사내가 들어왔다. 잿빛이라고만 하기에 금빛이 섞여 있는 오묘한 색이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누구든 시선을 둘 법한 모습이었다. 습관처럼 위아래를 훑어보는 성우에게 그가 다가온다.

 

 

저기요.”

 

 

훑어보는 걸 들켰다 싶어 성우가 고개를 푹 숙이는데, 앞에 멈춰 선 그는 성우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두어 번 두드렸다. 고개를 드니 입을 꾹 다문 채 미간을 찌푸리는 그가 성우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라이터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성우는 입에 불이 붙어 서서히 타들어가고 있는 담배를 문 채, 한 번 들이마셨다가 연기를 뱉어내며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내밀었다. 라이터를 빌려 달라던 그가 손바닥만 내밀고 가만히 있어서 성우가 손에 쥔 라이터를 까딱거렸지만 그는 집어가거나 하지 않았다. 결국 성우가 어쩔 수 없이 그가 내민 손바닥에 라이터를 올려두었다. 그러자 그가 손가락을 살짝 오므렸다. 성우의 손가락에 그의 손가락이 닿는데, 차가운 느낌이 들어 움찔거렸다. 차가운 느낌이 싫었는지, 제 손이 닿자마자 살짝 오므려진 그의 손가락이 싫었는지 성우는 라이터를 놓자마자 손을 급히 빼내었다.

 

 

괜히 머쓱해져 입에 물고 있던 담배의 재를 털고 고개를 돌리는데 그의 시선이 따라 움직였다. 성우가 돌아서니 한 걸음 따라 움직이는 느낌에 괜히 서늘함이 느껴졌다.

 

 

저기요.”

“......”

라이터 안 받으세요?”

괜찮아요.”

 

 

성우는 급히 담배를 재떨이에 던져 넣고 흡연부스를 빠져나왔다. 한 번 고개를 돌려 흡연부스 안을 보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괜히 자신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고 생각할 것 같아 그러지 못했다.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자리로 다가가는 성우의 눈에 지연이 보였다.

 

 

성우야!”

 

 

지연이 반갑게 웃으며 다가왔고, 성우가 자리를 향해 손짓하자 먼저 가서 앉았다. 성우도 뒤이어 지연의 맞은편에 앉았다.

 

 

쉬는 날 미안... 남자친구가 좋은 사람 같은데, 아무래도 네가 봐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내가 뭘 안다고...”

그래도 남자는 같은 남자가 봐야 더 잘 알지 않을까?”

그런가? 뭐 마실래?”

아냐. 남자친구가 사온다고 먼저 앉아있으래.”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성우와 지연 사이에는 어색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성우도 어색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제 음료만 홀짝거리며 마셨다. 지연은 그의 맞은편에 앉아 휴대전화만 보고 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색함이 둘 사이를 갈라놓았다. 차라리 지연의 남자친구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이 어색한 분위기를 떨쳐낼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누나!”

 

 

지연의 옆에 누군가 다가왔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성우가 누군지 확인하려 시선을 옮겼을 때, 두 손에 커피를 든 남자가 서 있었다. 지연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 남자가 앉았다. 테이블 위에 커피 두 잔을 내려놓은 남자는 성우를 빤히 바라보았다. 미소를 짓는다. 성우는 괜히 시선을 이리저리 옮기며 눈동자를 굴려댔다.

 

 

인사해. 여긴, 내가 말한 친구. 옹성우. 성우야, 여긴 내 남자친구. 강다니엘.”

안녕하세요.”

 

 

성우가 먼저 인사를 건네니 지연의 남자친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라이터를 내밀었다. 이름이 강다니엘이라고 했다. 다니엘, 참 독특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다니엘은 말없이 라이터를 든 손만 내밀었다. 지금 뭐하자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드는데 마침 지연이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다니엘은 이유는 성우가 더 잘 알 거라고 말한 뒤 웃었다. 성우도 그의 행동에서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는데, 이유를 더 잘 알 거라고 말하면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지연이 몇 번이나 성우에게 벌써 장난치려는 거냐며 물었지만 다니엘은 그저 웃기만 했다. 애매한 대답만 남긴 채 말이다. 좋아 보이는 둘의 모습에 성우는 멋쩍어져서 음료만 마셔댔는데, 벌써 쪼로록 하는 소리가 났다. 컵을 흔들며 살펴보니 음료는 이미 다 마셔버려 얼음만 잔뜩 남아있었다.

 

 

제 거 더 드실래요? 드릴까요?”

괜찮아요.”

 

 

다니엘이 내민 음료가 달달한 맛이었다면 성우도 선뜻 받아서 마셨겠지만, 색이 짙은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성우는 몇 번이나 고개를 저으며 질색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 잠깐... 담배 좀 피우고 올게. 괜찮죠?”

 

 

성우의 말에 지연은 담배 좀 끊으라며 핀잔을 주는데, 다니엘도 뒤따라 일어섰다. 손에는 여전히 라이터가 쥐어져 있었다.

 

 

라이터 없지 않아요?”

... 괜찮아요.”

같이 피우러 가요. 누나, 나도 피우고 올게. 금방 올게.”

 

 

지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제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성우가 먼저 흡연부스로 향했다. 그 뒤를 다니엘이 따르고 있었다. 성우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다니엘. 그의 눈에 성우의 뒤통수부터 어깨를 지나 매끈하게 떨어지는 등의 라인이 들어왔다. 다리는 길고 발은 작아 보였다. 좋게 말하면 슬림한 체형. 어떠한 옷이든 다 잘 받는 축복받은 체형 같달까. 느릿한 걸음으로 어깨를 슬쩍슬쩍 움직거리며 흡연부스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멋지다는 말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조금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흡연부스로 들어와 아무런 말없이 서로의 담배를 꺼내 물었다. 성우가 담배를 입에 물자 다니엘이 라이터를 켜서 내밀었다. 담배의 끝에 불꽃이 닿자마자 성우는 숨을 한 번 들이마셨다. 그리고 다니엘은 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라이터의 불이 꺼지자 두 사람은 동시에 후- 하고 긴 숨을 뱉어냈다. 흡연부스 안에 두 사람이 내뱉은 연기가 자욱하게 들어차기 시작했다.

 

 

다니엘이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와 성우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먼저 말을 걸었다.

 

 

라이터 제가 가져도 돼요?”

 

 

성우는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형은 라이터 또 사야 되지 않나...”

그렇겠죠?”

자요, 라이터.”

 

 

다니엘은 또 한 번 라이터를 내밀었다. 성우가 손을 뻗어 라이터를 집으려는데 다니엘의 손가락이 바짝 오므려졌다. 라이터는 다니엘의 주먹 속에 숨겨졌다. 성우가 손가락으로 다니엘의 주먹을 두어 번 두드려도, 손가락은 오므려진 채 펴질 줄 몰랐다.

 

 

뭐하자는 거예요?”

라이터 줄게요.”

줘요, 그럼.”

대신에...”

 

 

다니엘이 두어 번 연거푸 빨아들였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방금 전까지 담배를 들고 있던 손을 주머니에 넣어 휴대전화를 꺼낸다. 라이터를 쥔 손을 내밀며 시선은 휴대전화에 고정한 채 입술을 오물거리며 혼자 뭐가 그리 신났는지 콧노래까지 부른다. 성우는 도무지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번호 불러 봐요.”

왜요?”

왜긴요. 궁금하니까 그렇죠.”

싫다면?”

그럼 다음 주에 저랑, 누나랑 같이 또 만날 걸요?”

“......”

그것보다는 나랑 단 둘이 만나는 게 좋지 않겠어요?”

 

 

당돌한 다니엘의 입에서 뜬금없는 말이 새어나오자 성우는 표정이 더욱 굳었다. 고작 라이터 하나 빌려주었다가 이게 무슨 봉변인지 모르겠지만, 참 이상한 건 진저리치도록 싫었던 건 아니라는 거다. 얼굴도 고만고만하게 잘생긴 녀석이 당돌하게 대뜸 번호부터 달라고 라이터를 빌미로 삼는 것도 우스웠다.

 

 

강다니엘씨랑 나랑 오늘 초면이에요. 알아요?”

그게 왜요? 오히려 난 좋은데.”

내 친구가 그쪽 여자 친구고.”

그래서요?”

 

 

다니엘은 오히려 성우를 이상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대뜸, 단둘이 있는 흡연부스 안에서 연락처를 묻는 게 무슨 잘못이라 생각하느냐고 반문하는 것 같았다.

 

 

저 누나한테 형 얘기 되게 많이 들었어요.”

 

 

다니엘은 성우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웃었다. 한쪽 입 꼬리가 슬쩍 올라가는데, 이상하게 버릇없어 보이거나 재수 없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 웬만큼 형에 대해 알고 있는데.”

 

 

성우는 도무지 다니엘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었다. 고작 라이터 가지고 장난하려는 태도가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나랑 데이트하는데 형이랑 사귀는 느낌. 뭔지 알아요?”

 

 

지연은 성우에게 다니엘의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았다. 아니, 일 때문에 바빠서 힘들어하던 성우를 보며 쉽게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성우도 딱히 남자친구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았다. 지연이 먼저 남자친구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지만, 성우는 일이 바빠서 또렷하게 대답을 해 준 기억이 없었던 것 같다.

 

 

만나는 내내 형과 나를 비교하면서, 형처럼 해달라는 이야기를 했거든요.”

“......”

근데 참 이상한 게, 나는 형과 비교 당할수록 형이 궁금해졌어요.”

 

 

다니엘의 말에 의하면, 지연은 어려서부터 친했던 친구인 성우를 말끝마다 꺼냈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였고, 항상 어딜 가든 붙어 다니며 어린 시절의 모든 추억을 함께 했다고 들었단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성우의 기억 속 가장 오래 된 일부터 지금까지 항상 지연이가 있었다. 성우의 어렸을 적 일기를 보아도 그렇다. 엊그제는 지연이랑, 어제는 지연이랑, 오늘은 지연이랑, 온통 지연이랑.

 

그러나 성우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왜 비교 당할수록 자신이 궁금해진 것인지. 단순히 여자 친구가 가장 친하다고 말하는 남자이기 때문일까.

 

 

첫 만남부터 장난이 지나치신데...”

지나치게 솔직한 거죠.”

그게 좋은 건 아닐 텐데요?”

그게 제 매력인데.”

 

 

다니엘은 어떠한 말을 건네도 끄떡없었다.

 

 

번호 안 줘도 괜찮아요. 어차피 누나한테 알려달라고 하면 되니까.”

어차피 저 모르는 번호로 연락 오면 안 받아요.”

받게 하죠, . 무튼 알아둬요. 나는 형이 궁금하다는 거.”

 

 

 

 

 

*

 

 

 

 

 

성우야! 괜찮아?”

 

 

얼마나 지났을까. 다니엘이 다녀간 후 꽤 시간이 흘렀다. 곧 성우의 생일이라며 그 때 보자던 그는 정말 생일날이 돼야 올 것 같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사람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성우의 꿈에 나타났다. 조금 더 앳되어 보이는 모습으로 등장한 그는 제법 건방진 말투로 성우에게 다가와 라이터를 빌렸다. 매일 같은 장면이 되풀이 됐다. 꿈속에서 성우와 다니엘은 통유리로 된 공간 안에 있었고, 밖은 뿌옇게 흐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그 꿈은 매일 잠자고 있던 성우를 눈물 흘리게 했고, 성우는 매일 괴로워하며 잠에서 깨어났다.

 

 

식은땀에 흠뻑 젖어 괴로워한 뒤 깨면 일찍 와 있던 누나나 어머니에게 다독임을 받았다.

 

 

슬슬 재활 치료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오래도록 누워 있었기에 걷는 게 어색해질 수도 있으니까. 언제쯤 퇴원할 수 있을 지도 알 수 없단다.

 

 

너무 병실에만 있어서 그래. 치료 받으러 다니고, 산책도 슬슬 다니면 괜찮을 거야.”

...”

밥도 좀 먹고, 성우야...”

 

 

평범하게 회사를 다니며 나름 만족한 생활을 했던 자신이 이렇게 병실 안에만 갇혀서 퇴원이 언제일지 기다리며 조용히만 있으니 답답했다. 그래서 성우는 입맛이 없다는 이유로 밥도 잘 먹지 않았고, 티비를 틀어줘도 보지 않았다. 잘 웃지 않았고 우울한 그늘 안에 갇혀 잃어버린 제 기억의 일부를 복원해내려 애썼다.

 

 

그래야겠지? 근데 누나.”

?”

다니엘... 다니엘 말이야.”

.”

나랑 꽤 가까웠던... 사이였나 봐.”

 

 

그러지 않고서야, 다 큰 남자가 옆에 와서 한참을 보고 가거나 사랑하고 좋아한다는 편지를 써서 놓고 갈 리가 없잖아.

 

 

뭐가 있긴 한 건지, 있다면 그게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싶었다. 알려 줄 사람은 다니엘뿐인데, 그가 와서 설명해준다 한들 자신이 그걸 이해할 수는 있을까. 옅은 한숨이 섞인 성우의 말에, 그의 누나는 더 이상 신경 쓰지 말라며, 나중에 기억이 돌아온다면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라면서 달랬다.

 

 

 

 

 

벽을 붙들 거나 보조기구를 사용하면 어느 정도 걸을 수 있을 정도가 되어서 재활 치료를 진행하는데, 온종일 그 이름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다니엘.

 

 

사고 전에는 어떤 사이었을지 몰라도 일단 지금은 기억에 확실히 남아버린 건 맞다. 병실에 찾아와 저를 붙들고 바라보던 눈빛은 따뜻했고, 처연했으며 꽤 인상적이었다. 깨어난 후 자신을 그런 눈으로 바라 본 사람은, 게다가 남자는 처음이었으니까. 그를 기억하고 반겨줬다면 한껏 미소를 지으며 행복해했을 것이다. 사랑하고 좋아한다고 했지만 일단 성우는 미안해하는 마음이 가장 컸다. 그의 앞에서 말은 못해줬어도 말이다.

 

 

먼저 올라가 계세요. 치료 끝나고 천천히 올라갈게요.”

아닙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제가 잘 말씀 드릴게요.”

 

 

가족들이 와서 봐주지 못하는 날에는 아버지가 경호 차 보낸 직원이 도와주었다. 오늘처럼 재활치료실로 데려다주고 치료가 끝나면 병실까지 함께 가주는. 그는 성우의 옆에 바짝 붙어 참 살뜰히도 챙겨주었는데, 이제는 웬만큼 혼자 천천히 다닐 정도가 되어서 굳이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제 할 일이 성우를 돕는 일이니 직원은 먼저 병실로 올라가는 것을 망설였지만 재차 저를 떠미는 마당에 어쩔 수 없이 체념한 얼굴로 먼저 치료실을 빠져나갔다.

 

 

저를 돕는 직원을 보낸 이유는 하나였다. 느리게 걷더라도, 천천히 다니더라도 병원 건물을 빠져나가서 바깥공기를 맡고 싶었다. 어쨌거나 오래도록 병실에 갇혀 살았던 건 맞으니까. 매일 보던 사람들이 아니라 병원을 오가는 여러 사람들을 보고 싶기도 했다.

 

 

옹성우님, 오늘은 보조기구 없이 내려오셨어요?”

... 벽 짚고 걸으면 괜찮아서요.”

그래도 조심하셔야 돼요.”

, 조심할게요. 수고하셨습니다.”

조심히 올라가세요.”

 

 

재활치료실의 치료사들은 입에 조심을 달고 살았다. 말끝마다 조심하셔야 한다, 조심해서 해라,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등.

 

 

인사를 건넨 성우가 벽을 짚으며 치료실을 빠져나왔다. 벽에 바짝 붙어 서서 환자들을 위해 설치 된 핸드레일을 붙들고 천천히 걸었다. 환자복을 입고 보호자와 함께 거니는 사람들, 유니폼을 입고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 의료진들.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데 정작 자신은 혼자 핸드레일에 의지해 걷고 있었다.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면 금방 병원 건물 밖으로 나갔을 텐데, 오늘은 유독 오래 걸리는 것 같았다.

 

 

건물 밖을 나서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바깥냄새는 참으로 오랜만인 것 같다. 공기부터 따스하니 남다른 느낌이었다. 익숙하게 매일 거닐던 거리도 이제는 낯선 곳이 되었다. 환자복은 입고 있지만 그래도 나와서 혼자 느릿하게 산책을 하고 있으니 가만히 누워있는 것보다는 좋은 것 같았다.

 

 

공원처럼 마련된 공간이 보였다. 건물 밖으로 겨우 나와 주변을 둘러보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제 눈에 보이는 공간까지 혼자 걷자니 뭔가 불안해서 마음을 접고 병실로 올라가야 하나 싶었다. 옅은 한숨을 쉬며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팔짱을 끼며 옆으로 바짝 다가섰다.

 

 

어떻게 나왔어?”

 

 

팔을 붙들린 채 고개를 돌리니 곁에 다가 선 이가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많이 좋아졌나 봐. 이렇게 혼자서 다닐 수도 있고?”

 

 

성우는 너무 당황스러운데, 저를 보는 남자의 얼굴은 한없이 밝았다.

 

 

다니엘?”

. 나야.”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다니엘은 성우를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품에 담았다가 떼어내 얼굴을 보고, 다시 담았다가 떼어내 환한 미소를 짓고.

 

 

당신이 다니엘...”

다리 아프지? 저기 가서 좀 앉을까?”

...”

 

 

다니엘은 성우의 팔을 붙들고 부축하며 천천히 걸었다. 공원 같은 공간 내에 있는 벤치로 다가가 제 손바닥으로 두어 번 툭툭 털어내더니 성우를 앉혔다. 나란히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성우의 고개는 정면을 향해 있었다. 그러다 이내 고개가 툭 떨구어졌다.

 

 

다니엘...”

?”

나랑 무슨 사이였어요?”

 

 

성우가 고개를 돌리자 둘의 시선이 맞닿았다. 다니엘의 얼굴에는 적잖이 당황한 그늘이 잔뜩 드리워졌다.

 

 

주고 간 편지... 읽어봤어요. 그런데 도무지 당신이 누군지 기억이 안 나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편지를 놓고 가며 제 손을 붙들고 울먹이던 모습을 보았던 것은 알고 있지만 왜 그러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다니엘이라는 이름을 듣고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눈물을 흘렸던 것은 맞지만, 눈물을 왜 흘렸는지조차 알 수 없다고 했다. 일시적인 현상이지만 이게 언제 괜찮아질지 몰라서 성우는 거듭 다니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다.

 

 

다니엘은 그런 성우의 잡고 지그시 눈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기억해줘도 돼.”

“......”

내 이름이 다니엘인 건 알았고, 이제 내 얼굴을 잊지 않을 거니까.”

얘기... 해줄래요? 함께 겪었던 일들에 대해.”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까. 다니엘이 머릿속은 복잡해졌는데, 마주보고 앉은 성우의 얼굴은 바라보기만 해도 마냥 좋았다. 기억을 잃었다고 해도, 괜찮았다. 염려했던 일이 일어났을 뿐이니까.

 

 

이제 밖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도 알았고, 밖에서는 제지하는 사람도 없으니까...”

“......”

매일 이 시간에 만나러 와서 함께 보냈던 시간들에 대해 얘기해줄게.”

 

 

다니엘은 다시금 성우에게 다가가 제 품에 담았다.

 

 

전부 다 기억나게 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