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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녤옹

 

 

 

월간 2017년 9월호와 이어지는 시리즈입니다

 

 

 

 

 

 

 

 

 

 

성우는 쇼핑백을 한 곳에 가지런히 모아둔 뒤, 가까이 다가오는 중년여성을 안쪽 소파 자리로 안내했다. 제가 차 대접해드리고 싶었는데. 성우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진동 벨을 만지작거리자, 중년여성은 눈을 부드럽게 휘어가며 소리 내 웃었다. 그 웃음은 성우가 가장 사랑하는 웃음과 닮아있었다.

 

잘생긴 아들이 골라줘서 잘 산 것 같아.

제가 고른 거 다 좋다고 하셨잖아요. 정말 마음에 드세요?

그럼, 누가 고르고 사준 건데. 숨 좀 돌리고 잘생긴 아들 수트나 보러 갈까?

 

성우는 애써 웃으며 마침 울리는 진동 벨을 가지고 일어섰다. 중년여성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성우가 주문한 음료를 가지러 간 동안, 중년여성은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메시지를 보냈다.

 

[너보다 성우가 훨 낫다, 아들]

 

중년여성, 다니엘의 어머니는 바로 사라지는 1 표시에 소리 내 웃으며 핸드폰을 가방 안에 넣었다. 음료 픽업만 하는 게 아니라 달달한 디저트까지 추가로 고르는 성우의 모습을 바라보던 어머니는, 흐뭇한 표정으로 테이블 위에 팔을 눕혔다. 아들의 연인은 성별을 떠나 누구라도 사랑할 만큼 좋은 사람이었다.

 

 

 

*

 

 

 

, 형 때문에 내 망했다.”

뭐래. 너 진짜 욕먹고 싶냐?”

성우 씨랑 엄마랑 데이트 하는데 내는 끼지도 몬하고..”

니가 없어야 데이트인 거야, 인마.”

 

민현의 날카로운 말에 다니엘은 쥐고 있던 원고가 구겨질 정도로 주먹을 쥐었다. 맞은편에 앉은 민현이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웃었다. 들고 있던 펜으로 다니엘을 가리키며, , 치게? 민현이 짓궂게 묻자, 다니엘은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 거리다 고개를 내저었다. 하여튼 가만 보면 젤로 양아치다. 일부러 민현이 들으라는 듯 크게 중얼거린 다니엘은 구겨진 원고를 손끝으로 문질러 폈다. 민현은 테이블로 상체를 가까이 가져와 양팔을 눕히며 다니엘을 뚫어져라 쳐다봤고, 다니엘은 그 시선이 불편한 듯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숙인 채 눈만 치켜 떠 시선을 마주했다.

 

너 진짜 할 거야?

. 곧 성우 씨 생일이라 안하나. 그때 할 끼다.

. 너 내 생일은 그냥 넘겼잖아.

형이랑 성우 씨랑 같나.

 

이걸 동생이라고. 민현은 어이없다는 듯 입을 벌린 채 헛웃음을 뱉었다. 다니엘은 뒤늦게 배시시 웃으며 손을 뻗어 민현의 팔을 잡았다. , 징그럽게. 다니엘의 손길에 민현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다니엘의 손을 뿌리치자, 다니엘은 오히려 당황하는 기색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기지개를 켰다. 역시. 형이랑 성우 씨는 천지차이라고.

 

 

 

너 오늘 그거 퇴고 끝내기 전까진 아무데도 못 가.”

아니, 미치겠네. 원래 이건 형이 할 일이잖아.”

작가님이 워낙 까탈을 떠셔서요. 직접 하시라고요.”

내 그라믄 잠깐 나가서,”

안 돼.”

 

, 왜애애애애애. 다니엘은 결국 테이블에 엎드려선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내도 데이트!! 이젠 울부짖는 다니엘을 힐끔 바라 본 민현은, 다니엘이 퇴고를 끝낸 원고를 집어 들어 읽었다. 니엘아. 다니엘? 민현이 다정한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자, 환하게 웃으며 얼른 상체를 일으켰던 다니엘은, 여기 다시 고쳐. 자신에게 퇴고를 끝낸 원고를 내밀며 펜으로 밑줄을 긋는 민현의 모습에 질끈 눈을 감았다. 여우같은 황민현. 내 남은 생에 니한테 형이라 하믄 사람이 아이고 개다.

 

 

 

 

 

 

Hands on me. .

내 모든 것에 네 이름 세 글자를 새기니 비로소 완성됐다.

w.겟어거스트.

 

 

 

 

 

 

어머니, 저 수트 많아요. 정말 괜찮아요..”

곧 생일이라며? 생일선물도 못 해줘?”

아니, 그건 아닌데.. 어머니, 저 갖고 싶은 책 있어요!”

그건 니엘이한테 사달라고 해.”

 

다니엘의 거침없는 성격은 어머니를 닮은 거였구나. 성우는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손끝으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매장의 직원과 수트 여러 벌을 꺼내 대화를 나누던 어머니는, 멀뚱히 선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성우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우리 아들이 너무 잘생겨서 다 잘 어울리네.

아드님께서 꼭 배우 같으세요.

그쵸? 내가 아들이 둘인데 이 아들이 훨씬 잘생겼어.

 

성우는 지금만큼 다니엘이 필요했던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워낙 살가운 성격도 아니고, 어머니 연배의 어른과 가까이 한 적도 없으니, 성우로선 어머니의 호의가 영 적응되지 않았다. 마음써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익숙하지 않은 건 어쩔 수 없었다. 어머니는 그런 성우의 마음을 헤아렸다는 듯, 성우에게 슬쩍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마음 편히 받아도 돼. 성우가 나한테 선물할 때 마음 같은 거야.

 

성우는 그제야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해요. 성우의 작은 웃음소리 사이로 수줍은 인사가 섞여들었다. 어머니는 호탕하게 성우의 등을 두드리곤 다시 수트를 고르는 것에 집중했다. 받는 것에 익숙해지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주는 거야 쉬웠지만, 누군가의 호의와 마음을 받는 건 그만큼 자신에게 짐이 되는 거라고 생각했던 성우였다. 다니엘을 만나고 나서 다니엘의 주변 사람들과 가까워질수록 성우는 그걸 짐이라고 생각했던 걸 고쳐가고 있었다. 다니엘이 좋은 사람이니, 당연히 그 주변 사람들 또한 좋은 사람인 건 당연했다. 다니엘은 자신에게 사랑 이상으로 더 많은 것을 주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항상 고맙고, 미안하고,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에게 사랑받는 건 어딘가 부족했던 자신의 삶이 가득 채워지는 거라고, 성우는 어머니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

 

 

 

아쉬워서 어떡해.”

죄송해요, 예약 시간을 더 늦출 걸 그랬나 봐요.”

일은 일이지. 그래도 잘생긴 아들이랑은 하루 종일 있고 싶어서 그래. 주책이지?”

아뇨, 어머니. 저도 그래요.”

얼른 가봐. 바쁜데 데려다주기까지 하고 고마워.”

어머니, 선물 정말 감사해요. 잘 입을게요.”

생일 지나고 또 우리 둘이 데이트 하자.”

. 들어가세요.”

 

성우는 머뭇거리다 어색한 움직임으로 어머니를 살짝 끌어안았다. 어머니는 성우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다정하게 등을 다독였다. 고마워, 성우야. 미리 생일 축하해. 어머니의 다정한 목소리에 성우는 울컥한 듯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어머니는 성우의 품을 벗어나 성우의 엉덩이를 두드렸다. 그 손길에 성우가 놀라 움찔하며 눈을 크게 뜨자, 어머니는 소리 내 웃으며 성우를 밀어냈다. 얼른 가, 늦어. 어머니의 재촉에 성우는 미소 지으며 허리를 숙여 인사하곤 호텔의 입구를 벗어났다.

 

다니엘의 차를 대신 가져온 성우는 시동을 켜곤 가만히 핸들을 손끝으로 매만졌다.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자 다니엘의 향수 향과 익숙한 체취가 느껴졌다. 성우는 핸들에 이마를 기대곤 느껴지는 체취에 집중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향수 향이라면 모를까, 누군가의 체취가 이렇게 확연하게 느껴질 수 있다니. 성우의 입 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성우는 차를 출발시키며 블루투스로 통화를 걸었다. 체취보단 연인의 목소리가 절실했다.

 

 

 

, 어머니 호텔에 모셔다 드렸어요.”

- 재밌었어요?

. 어머니가 너무 잘 챙겨주셔서. 나 선물도 받았어요, 어떡해.”

- 많이 받아도 돼요. 엄마 돈 많다.

뭐야, 그게. 다니엘은 퇴고 많이 남았어?”

- 아뇨? 금방 끝난다!

- 웃기고 있네. 성우 씨, 다니엘 오늘 야근이에요.

 

성우는 멀찍이 들려오는 민현의 목소리에 웃음을 터트렸다. 나 이제 샵으로 가요, 얼른 집중해서 빨리 끝내. 성우가 나른한 목소리로 말하자, 다니엘의 낮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보고 싶어요. 연인의 시무룩한 목소리가 안쓰럽기보단 귀엽게 느껴졌다.

 

나도 보고 싶으니까 이제부터 집중해요. 알았지?

. 이따 봐요, 성우 씨.

, 사랑해요.

말해 뭐하노, 내가 더 마이 사랑한다.

 

마침 정지신호에 걸려 성우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블루투스가 아닌 직접적인 연결이 되자 다니엘의 숨소리가 더 생경하게 느껴졌다. 성우는 쪽, 소리를 낸 뒤 다급하게 통화를 끝냈다. 다니엘로부터 다시 전화가 걸려왔지만 성우는 일부러 받지 않았다. 밀당, 뭐 그런 건 아니었지만 왠지 민망하잖아. 성우는 샵으로 향하는 길 내내 다니엘의 모습을 상상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한 달 후에 꼭 리터칭 받으러 오세요.”

 

성우는 입구까지 고객을 배웅한 뒤 문을 닫았다. 연달아 두 사람의 고객에게 타투를 해준 성우는, 오픈 팻말을 클로즈로 바꾸곤 검은 암막커튼을 쳐 유리벽을 가렸다. 복층으로 올라가 방금 전까지 사용했던 머신과 잉크를 정리한 뒤, 거즈에 소독약을 잔뜩 묻혀 베드를 닦았다. 복층을 완벽하게 정리한 성우는, 가득 채워진 책 중 다니엘의 글이 담긴 문예집을 골라 1층으로 내려왔다. 소파 앞 테이블에 문예집을 내려두고 안쪽으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나온 성우는, 냉장고에서 시원한 맥주를 꺼내왔다. 목에 걸쳐놨던 수건으로 캔의 물기를 닦은 성우는 소파에 앉아 문예집을 집어 들었다.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 내 연인의 글. 처음 이 글을 읽었을 때의 벅참이 떠올랐다.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 사람의 일상은 어떨까. 기분 좋게 상상했던 것들이 현실로 자신에게 스며들었을 때. 자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더 소설 같은 연인의 일상에 자신이 함께하고 있음에 성우는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작게 웃었다.

 

성우는 문예집을 내려두고 소파에 몸을 눕혔다. 일부러 자신의 것이 아닌 다니엘이 입는 샤워가운을 입은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샤워가운의 깃을 양손으로 잡아 얼굴 위로 끌어올려선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다니엘의 차안에서 느꼈던 것보다 훨씬 더 진하게 연인의 체취가 느껴졌다.

 

처음 다니엘을 만났던 초여름. 그리고 자신의 생일을 미리 알리지 않아 지나쳤던 것에 대해 화를 냈던 다니엘. 그래, 작년 내 생일은 그냥 넘겼었지. 성우는 반쯤 뜬 눈으로 샤워가운의 보들보들한 재질을 내려 보며 그날을 떠올렸다.

 

 

 

*

 

 

 

근데 진짜 성우 씨 생일은 언제에요? 말 안 해줄 거예요?”

나는 다니엘 씨 생일 아는데. 1210일이잖아요.”

어떻게 알았어요?”

포털 사이트에 다니엘 씨 이름 검색하면 나와요.”

, 맞네. 그래서 언제냐고요.”

내 생일 지났어요. 그러고 보니 나도 깜박했었네.”

뭐라고요?”

825. 저번 달이었어요.”

 

다니엘은 자신의 품에 안겨있던 성우를 떼어놓곤 몸을 일으켜 앉았다. 방금 전 정사에 힘이 빠졌는지 축 늘어지며 느릿하게 눈을 깜박이는 성우가 얄밉게 보였다. 100일 가깝게 만났는데, 저번 달이 생일이었다니. 이게 무슨 말이야. 다니엘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다니엘?

와요. 내 지금 지짜 화났다.

아니, 왜 화를 내요? 나 뭐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어떻게 애인 생일을 그냥 지나치게 만들 수가 있는데.

 

성우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앉았다. 침대 옆에 우두커니 선 채 시선을 피하는 다니엘의 손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다니엘은 그마저도 피하며 돌아섰다. 성우는 이해할 수 없었다. 생일 그게 뭐라고 이렇게 서운해 하는 거지. 나조차도 내 생일이 별 거 아닌데, 왜 자기가.. 성우는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채 팔짱을 끼웠다. 성우로선 다니엘의 서운함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러다 다니엘의 훌쩍이는 소리에 성우는 눈을 크게 떴다. 그 다음부턴 튕겨지듯 침대에서 내려와 다니엘의 허리를 끌어안는 성우였다.

 

생각해 봐요. 내 생일 언젠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치믄 성우 씨는 아무렇지도 않긋나.

 

, 그렇구나. 내가 잘못한 거 맞네. 성우는 다니엘의 허리를 꽉 끌어안은 채, 너른 등에 이마를 기대며 웃음을 터트렸다. 울지 않기 위해 몸에 힘을 주느라 떨려오는 진동이 사랑스러웠다. 성우는 다니엘이 진정될 때까지 끌어안은 팔을 풀지 않았고, 다니엘 역시 성우를 피하지 않았다. 진정됐는지 돌아선 다니엘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몰라 난감한 얼굴로 입술을 내밀었다. 성우는 그걸 놓치지 않고 입을 맞추며 양팔로 다니엘의 목을 끌어안았다.

 

 

 

내년 생일에 올해 몫까지 더해서 축하해줘요.”

지금까지 모든 생일 다 합쳐가 축하해줄 끼다..”

그래, 그래. 나 내년에 기대할 게요?”

내 안 울었으요. 알죠?”

그럼, 그럼. 알아요. 이제 누울까?”

.”

 

성우는 다니엘에게 안겨 다시 침대에 누웠다. 이런 거구나. 나한텐 별 게 아니어도, 상대방에겐 더없이 큰 거구나. 연인이란 건, 사랑이란 건 이런 거구나. 성우는 다니엘에게 안기며 눈을 감았다. 어딘가 비어있던 마음이 한없이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 남은 나의 생은, 내가 아닌 다니엘로 채워지겠구나. 성우는 그 풍족함이 벌써부터 기대가 됐다. 쉽게 미래를 꿈꾸는 편은 아니었지만, 다니엘과의 미래는 꿈이 아닌 현실일 거란 예감이 들었다.

 

 

 

*

 

 

 

진짜 기대가 되긴 되네. 나 어떡하지.”

 

성우는 지난날의 회상을 끝내며 샤워가운의 옷매무세를 정돈했다. 복부 위에 양손을 가지런히 올리고, 팔걸이에 양쪽 발목을 올려 교차했다. 잔잔한 음악이 조용히 울려 퍼졌다. 이런 나른한 시간이 언제부터 편했지. 항상 나를 다그치며 살아온 것 같은데. 나의 모든 변화의 시작은 다니엘이구나. 처음 만났던 초여름, 가을, 겨울, , 그리고 다시 여름. 성우는 다니엘과 함께 해온 모든 순간을 되짚듯 회상했다.

 

어느 계절이건 나는 다니엘의 이름을 부르고, 다니엘과 사랑을 할 거야.

 

성우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캔 맥주를 들어 살짝 미지근해진 맥주를 들이키자 마침 문이 열렸다. 뛰어왔는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자신을 발견하여 성큼성큼 다가오는 다니엘을, 성우는 맥주를 마시며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성우의 손에서 캔을 받아든 다니엘은 벌컥벌컥 맥주를 들이키곤 손등으로 제 입술을 닦았다. 입에 머금고 있던 맥주를 다니엘의 속도에 맞춰 꿀꺽 삼킨 성우는 미소를 지으며 다니엘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내 지짜 다 끝내고 왔어요. 잘했죠.”

, 너무 잘했어요. 내 니엘이 상 줘야겠다.”

성우 씨? 뭔가 말투가 평소랑 다른데.”

이런 날도 있는 거예요.”

 

성우는 다니엘의 손목을 잡아 제 옆에 앉혔다. 다니엘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멀뚱히 성우를 바라봤고, 성우는 다니엘의 다리 위에 앉아선 양손으로 다니엘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다니엘은 그제야 미소를 지으며 성우의 샤워가운 끈을 손으로 매만졌다. 풀지는 않았지만 언제든 당기겠다는 듯 아슬아슬하게 끈을 팽팽히 잡은 다니엘의 손길에 성우는 웃었다. 그리곤 다니엘의 눈가, , 입술에 차례로 입을 맞춘 성우는 다니엘을 끌어안으며 눈을 감았다.

 

나 오늘 깨달은 게 있는데요.

말해 봐요, 성우 씨.

내 인생은 다니엘이 들어와서 완벽해진 것 같아요.

그렇게 예쁜 생각을 혼자 했어요?

이제 같이 하려고.

 

성우는 다니엘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다니엘은 기다렸다는 듯 끈을 당겼고, 풀어진 샤워가운은 양옆으로 펼쳐지며 성우의 피부를 드러냈다. 눈앞에 드러난 피부보다 자신의 입술에 더 집중하는 다니엘이 사랑스러운 듯, 성우는 다니엘의 어깨를 양손으로 잡곤 고개를 뒤로 물렸다.

 

 

 

성우 씨.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잖아요.”

, 작가님.”

근데 내가 아는 모든 단어와 문장을 뒤져봐도 이것보다 시적이고 아름다운 말이 없었어요.”

그게 뭔데요?”

옹성우.”

?”

성우 씨 이름이요. 성우 씨 이름 세 글자보다 아름다운 말이 없더라고.”

 

성우가 미소 지었다. 다니엘은 성우의 샤워가운 사이로 손을 넣어 성우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성우는 다니엘의 입술에 입을 맞추며 눈을 감았다. 지금까지 다니엘과 함께 해오며 느꼈던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생소해서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한 답이 구해졌다. 나에게 다니엘이란 사람은, 다니엘의 이름은, 나를 완성시키는 마지막 퍼즐이었다.

 

 

 

*

 

 

 

24일 밤 1155. 성우는 자신의 맞은편에 앉은 다니엘의 표정에 그만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다니엘은 조금 원망스런 눈빛으로 성우를 바라보다 다시 핸드폰으로 시선을 옮기곤 아랫입술을 물었다. 성우는 손을 뻗어 다니엘의 입술 사이를 엄지로 갈랐다. 다니엘은 여전히 핸드폰을 내려 보면서도 성우의 엄지를 입안으로 쏙 머금었다.

 

뭐 그렇게 초조해 해.

이제 2.

아니, 다니엘.

 

성우는 결국 끅끅거리고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아까부터 케이크를 테이블에 세팅하고 초를 꽂은 뒤, 고깔모자를 쓰고 있는 다니엘이었다. , ! 정신없이 웃고 있으니 다니엘의 외마디 비명이 들려왔다. 성우가 그 비명에 놀라 고개를 들자, 다니엘은 호들갑을 떨며 초에 불을 붙였다. 성우의 시선이 촛불로 옮겨지자, 다니엘은 목을 가다듬곤 테이블 위로 성우의 손을 잡았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성우 씨, 생일 축하합니다.

 

다니엘의 노랫소리에 성우는 웃음을 꾹 눌러 참았다. 노래가 끝나자 초를 불어 끄곤 눈을 감은 성우는, 소원을 비는 중인지 한참동안 말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드디어 성우의 눈이 떠지고 자신을 바라보자, 다니엘은 성우의 옆으로 자리를 옮겨선 성우를 끌어안았다.

 

 

 

내가 제일 먼저 축하해줬다, 맞죠?”

맞죠. 고마워, 다니엘.”

옹성우 씨. 태어나줘서 고마워요. 당신이 태어나줘서 내가 행복해졌어요.”

, 정말..”

 

태어나줘서 고맙다니. 성우는 웃음 대신 울음을 뱉으며 다니엘의 목을 양팔로 꽉 끌어안았다. 오차 없이 딱 달라붙은 상체에 다니엘의 양손이 공중에서 허우적거렸다. 결국 성우의 몸을 감싼 다니엘의 양손은 성우의 울음에 맞춰 떨리는 마른 등을 토닥였다. 별 게 아니긴, 이렇게 행복한 거였는데. 작년에 그냥 지나친 게 서러울 정도야. 성우는 훌쩍이며 다니엘에게서 떨어졌다. 참을 필욘 없지만 진정은 하고 싶은데. 자꾸만 흐르는 눈물이 눈치 없다고 생각했다. 다니엘은 그런 성우의 눈물을 연신 부드러운 손길로 닦아주며 웃었다.

 

다니에엘.. 작년엔 미안했어요.

아이고야, 갑자기 작년이요?

내가아, 작년에, 흐윽.. 생일 별 거 아니라고..

 

말을 채 잇지도 못하고 다시 엉엉 울어대는 성우의 모습에 다니엘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연인이 우는데 웃음이 자꾸만 터지는 건 뭐지. 다니엘은 의아하면서도 알 것 같은 막연한 기분에 성우를 다시 품에 끌어안았다. 울면서 말하느라 늘어진 말꼬리며 귀여워진 말투가 사랑스러웠다. 가끔은 울리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고 잠깐 생각했지만, 그건 진짜 나쁜 생각 같아서 다니엘은 고개를 내저었다.

 

 

 

앞으로의 모든 생일은 내가 제일 먼저 축하해줄게요.”

나도 그럴래..”

당연히 그래야제, 이제 뚝. 울다 쓰러지긋다, 성우 씨.”

네에..”

 

눈가와 코끝을 붉게 물들인 성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훌쩍였다. 다니엘은 쓰고 있던 고깔모자를 벗어 내려두곤 성우의 손을 양손으로 잡았다. 성우는 여전히 훌쩍이며 다니엘과 시선을 마주하곤 미소 지었다. 지금 이것만으로도 지나온 모든 생일을 합쳤던 것보다 훨씬 행복하고 기쁘다고 성우가 나지막이 속삭이듯 말했다. 다니엘은 그런 성우의 속삭임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다, 자신이 잡은 성우의 손을 향해 상체를 낮췄다. 성우의 손등에 입을 맞춘 다니엘은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성우는 다니엘이 내미는 작은 상자에 다시 울컥,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원래는 기다렸다가 이따 믓찐 곳에서 하려고 했는데..

다니엘..

몬 기다리긋다, 이래 예뻐가 빨리 하고 싶어서요. 미안타.

 

다니엘은 자신과 똑같은 타투가 새겨진 성우의 왼쪽 약지에 입을 맞추곤 양반다리를 하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한쪽 무릎을 세워 앉은 다니엘이 작은 상자를 열자, 그 안엔 같은 디자인의 반지가 두 개 담겨있었다. 성우는 다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다니엘의 손길을 시선으로 쫓았다. 조금 더 작은 반지를 꺼내 성우의 약지에 끼워준 다니엘은, 성우의 입술에 짧게 입 맞춘 뒤 떨어져선 성우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성우 씨. 나랑 결혼해주세요.”

다시 말해요.”

결혼해주,”

주세요, 말고.. 하자고 해요.”

성우 씨. 나랑 결혼해요.”

. 결혼해요.”

 

성우는 달려들 듯 다니엘의 품에 안기며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 태어난 것을 후회한 적은 없지만 기뻐한 적도 없었다. 혼자 살아가는 게 당연했고, 편하다고 생각했다. 그 모든 건 외롭지 않기 위한 변명이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나는 누구보다 사랑을 기다렸고, 모든 순간이 외로웠다고 성우는 울먹이며 속삭였다. 다니엘은 성우를 더욱 힘주어 끌어안으며 대답했다.

 

우리가 서로를 만난 건 우연인 줄 알았는데, 사랑하고 보니 운명이었어요.

 

더 기다릴 것도 없었다. 성우는 다니엘의 입술에 입을 맞췄고, 다니엘은 성우를 끌어안은 채 뒤로 몸을 눕히며 웃었다. 성우는 다니엘의 입술을 제 입술로 오물거리다 더운 숨을 뱉으며 다니엘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다니엘은 성우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다시 생일축하 노래를 흥얼거렸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축하를 받는 건, 태어난 것 자체를 축복받는 것과 같았다. 여기서 더 설렐 수 있을까. 이것보다 더 기쁠 수 있을까. 성우는 축하와 함께 받은 프로포즈에 뒤늦게 귀를 붉혔다.

 

그때 성우의 핸드폰에 진동이 울렸다. 전화가 왔나, 싶을 정도로 끊이지 않는 진동에 성우가 느릿하게 몸을 일으키며 눈가를 손등으로 닦자, 다니엘 역시 몸을 일으키며 손을 뻗어 성우의 핸드폰을 대신 집어주었다. 진동의 정체는 생일축하 메시지였다. 처음 다니엘을 만나게 해줬던 현빈과 민현, 그리고 성우가 알고 지내던 사람들은 성우에게 생일을 축하한다며 예쁜 메시지들을 보내왔다. 그 중엔 W와 다니엘의 어머니도 포함됐다.

 

울먹이며 사람들의 메시지를 확인하던 성우를 뒤에서 끌어안은 다니엘은, 성우의 어깨에 턱을 올린 채 함께 메시지를 읽으며 웃었다. 그러다 뭔가 떠올랐는지, 다니엘은 성우의 얼굴을 감싸 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성우가 빨개진 코로 고개를 갸웃거리자, 다니엘은 씩 미소를 지으며 성우의 손을 잡았다.

 

 

 

성우 씨. 여권 챙겨요.”

 

성우는 다니엘의 의중을 알아챌 수 없었지만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연인이 뭘 원하든 그걸 전부 들어줄 수 있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리고 연인이 어디에 있든 그 옆자리는 당연히 자신의 자리임을 알고 있는 성우였다.

 

 

 

 

 

Epilogue.

 

 

 

곧 비행기가 이륙한다는 기내방송에 민현은 핸드폰의 전원을 끄며 하품을 내뱉었다. 기지개까지 켜가며 무의식중에 고개를 옆으로 돌린 민현은, 나란히 앉아 서로의 손을 잡고 대화를 나누는 다니엘과 성우의 모습에 헛웃음을 뱉었다. 가장 바쁜 시기에 하필이면. 얄미운 마음에 자신의 옆자리에 앉은 다니엘을 향해 주먹을 쥐었다가, 행복하게 웃고 있는 두 사람의 표정에 민현은 손을 내리며 고개를 뒤로 젖혀 몸을 기댔다.

 

퀘벡이라니, 진짜 상상초월이다.

 

민현은 생각할수록 웃음이 터지는 듯 작게 중얼거리며 미소 지었다. 그 소리에 다니엘과 성우가 민현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민현은 느껴지는 두 사람의 시선에도 눈을 감은 채 웃었고, 다니엘과 성우 역시 웃음을 터트리며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2주 전에도 민현을 데리고 퀘벡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다니엘과 성우였다. 민현은 이번 여행을 마지막으로 저 둘과는 여행을 하지 않겠다, 다짐했다. 아니지. 아예 안하는 건 아니고, 나한테 애인 생기기 전까지만.

 

 

 

피곤한 컨디션에 장거리 비행은 역시나 무리였다. 장 르사주 국제공항을 구경할 새도 없이, 민현은 이동할 택시를 잡는데 집중했다. 다니엘과 성우 역시 체력이 남아날 상황이 아닐 텐데. 민현은 뒤늦게 걱정스런 얼굴로 뒤를 돌아 다니엘과 성우를 찾았다.

 

성우 씨, 한 번 더 찍어요.

이렇게? , 창피해요.

아이다, 예쁘기만 한데 와요.

 

내가 걱정을 사서 했네. 누가 누굴 걱정 하냐. 민현은 얄미운 마음에 어서 오라고 소리를 치며 택시 트렁크에 자신의 짐을 실었다. 2주 전에 퀘벡에 도착했을 땐 그래도 꽤나 자신을 챙기던 다니엘이었다. 대신 짐도 들어주고, 택시도 알아서 잡고. 저게 아주 빠져가지고. 민현은 실실 웃으며 자신에게 다가와 뒤늦게 짐을 싣는 시늉을 하는 다니엘의 어깨를 결국 주먹으로 내려쳤다. 그런 민현의 주먹을 양손으로 잡은 성우는, 차라리 나를 때려. 하며 더욱 민현의 염장에 불을 붙였다.

 

꽤 긴 거리를 달려 도착한 호텔은 거의 성에 가까웠다. 오래된 고성을 호텔로 개조한 뒤 각종 세레머니를 위한 장소로도 쓰인다고, 2주 전 예약을 위해 방문했을 때 가이드가 설명해주던 말이 떠올랐다. 민현은 다니엘과 성우에게 대충 손을 흔들어 인사한 뒤 자신의 객실로 향했다. 오늘 푹 자둬야 내일부터 강행군을 소화할 수 있을 테니 지금은 식사고 뭐고 잠부터 자야겠다. 로비에 남겨진 다니엘과 성우는,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곳곳을 느긋하게 구경하며 둘만의 시간을 가졌다.

 

 

 

내일이면 다 오실 텐데, 나 리스트 다시 확인해볼래요.”

아이고야, 백 번은 넘게 확인했다. 이제 좀 눕지?”

그래도.. 불안한데.”

올 사람은 알아서 다 와요. W 걔도 알아서 와, 핸드폰 내려놔요.”

어떻게 알았어?”

 

내가 당신을 모를까. 다니엘은 고개를 내저으며 성우를 향해 손을 뻗었다. 다니엘의 예상대로 W에게 메시지를 보내려던 성우는 핸드폰을 테이블에 내려둔 채 다니엘의 손을 잡고 그 옆에 몸을 눕혔다. 내일 모레면 드디어 그날이에요. 다니엘이 성우를 끌어안으며 말하자, 성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니엘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특별한 날이 될 텐데 더 완벽하게 잘하고 싶어서.

지금도 충분히 완벽해요. 성우 씨랑 내가 이렇게 같이 있잖아.

진짜 말을 너무 잘한다고..

말만?

아니, 전부 다.

 

성우는 자신의 위로 몸을 포개 눕는 다니엘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며 키득거렸다. 다니엘과 성우가 입을 맞추려던 순간, 객실의 초인종이 울렸다. , 진짜 저 형. 다니엘이 성우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며 중얼거리자, 성우는 다니엘을 밀어내곤 침대에서 내려와 입구로 향했다. 문을 열자 역시나 민현이 씩 웃으며 샴페인을 얼굴까지 들어 흔들고 있었다.

 

 

 

형님이 아주 좋은 샴페인을 사왔다.”

눈치 좀 있어라. 이 시간에? 굳이?”

원래대로면 둘이 각방 써야 한다고.”

들어와, 민현아. 괜찮아, 다니엘 괜히 그러는 거야.”

, 성우 씨!!”

 

성우는 문을 활짝 열어준 뒤, 뒤로 돌아선 다니엘을 향해 짓궂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니엘은 베개로 얼굴을 묻은 채 발버둥을 치다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민현과 성우는 이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샴페인과 잔을 세팅하고 있었다. 다니엘은 굳이 민현과 성우 사이 의자에 앉아선 능숙하게 샴페인의 코르크 마개를 열었다. , 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 거품이 흘렀고, 다니엘은 재빠르게 잔 세 개에 샴페인을 따른 뒤 티슈로 병을 닦았다. 성우는 그 일련의 행동을 바라보다 박수를 쳤고, 민현은 그 모습에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2주 전, 다니엘과 성우는 민현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함께 퀘벡으로 가 법원에서 증인을 서달라는 부탁에, 민현은 그럴 줄 알았다며 웃었지만, 내심 속으론 꽤나 놀랐었다. 법원에서 먼저 신청을 하고, 2주 후의 날짜를 받은 뒤 지금 호텔로 장소까지 정하고 나서도 민현은 실감이 나질 않았다. 어릴 때부터 봐왔던 강다니엘이? 아직도 철없는 애 같은데 나보다 먼저? 세상 오래 살고 볼일이었다. 뭐 백세시대에 그렇게 오래 산 것도 아니었지만.

 

그로부터 2주가 지난 지금, 다니엘과 성우, 그리고 민현은 미리 예약했던 호텔의 객실에서 샴페인을 마시고 있다. 민현은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는지 샴페인을 마시다가도 헛웃음을 뱉었고, 다니엘과 성우는 그럴 때마다 얼굴을 붉히며 모른 척을 했다. 내일부터 손님들이 하나 둘 도착할 테고, 내일 모레, 드디어 예정된 세레머니가 진행된다. 민현은 가만히 다니엘과 성우를 번갈아 바라보다 샴페인을 마시곤 입술을 열었다.

 

 

 

둘 다 축하해. 대단하다, 진짜.”

그니까 내 빼고 성우 씨랑 단 둘이,”

다니엘! 미안, 민현아. 그리고 너무 고마워. 들어주기 힘든 부탁이었을 텐데.”

돈은 다니엘이 다 냈으니 나야 여행하고 좋지. 성우 덕분에 좋은 여행하네?”

돈은 내가 냈다믄서 와 성우 씨한테만 그라는데.”

 

다니엘의 볼멘소리에 민현과 성우는 웃음을 터트리며 둘이서만 잔을 맞댔다. 그게 또 자신을 빼놓는 거라고 생각한 다니엘이 칭얼거리듯 자신의 잔을 흔들자, 민현과 성우는 다니엘의 잔에도 잔을 맞대주곤 고단함과 설렘이 담긴 긴 숨을 내쉬며 다시 샴페인을 마셨다.

 

잘 살아.

 

민현의 차분한 목소리에 다니엘과 성우는 서로의 손을 잡곤 대답 대신 웃었다. 어떠한 말보다 가장 듣기 좋은 말이었다. 가장 힘이 되어준 조력자의 간단한 말 속엔 깊은 축하와 응원이 담겨있었다.

 

 

 

*

 

 

 

퀘벡의 법원에서 온 흰머리의 중년남성은 인상이 푸근한 멋쟁이였다. 행커칩과 넥타이, 양말을 세트로 맞추고, 짙은 갈색의 수트를 차려입은 중년남성은 플라워 아치 중앙에 자리를 잡은 뒤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 앞에 자리를 잡고 선 다니엘과 성우는, 서로 똑같이 맞춰 입은 하얀색 턱시도와 행커칩 대신 끼워둔 부토니에를 마주보며 서로의 손을 잡았다. 드디어 다니엘과 성우의 세레머니, 결혼식이 시작됐다.

 

공원 같은 정원엔 하얀색 천이 버진 로드를 대신했다. 그 양옆으로 꽃장식이 된 벤치가 놓였고, 그 자리는 다니엘과 성우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먼 곳까지 와준 사람들이 채웠다. 다니엘과 성우는 주례사의 축복을 들으며 서로의 시선을 마주한 채 기쁜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이 부부가 됐음을 정식으로 인정합니다.

 

주례사의 말이 끝나자 벤치에 앉아있던 하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다니엘과 성우는 입을 맞췄고, 그 옆 증인석에 서있던 민현은 뒤돌아 몰래 눈물을 훔쳤다. 다니엘과 성우가 정식으로 부부가 되는 순간엔, 민현도, 다니엘의 지인들도, 어머니도, W도 함께하고 있었다. 성우는 다니엘로 인해 알게 된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진심으로 기뻐했고, 다니엘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진정으로 성우와의 사랑을 인정받았다.

 

 

 

*

 

 

 

내 남은 모든 시간엔 당신이 있을 거예요.”

그 모든 시간 동안 끝없이 사랑할게.”

사랑해요, 성우 씨.”

사랑해, 강다니엘.”

 

다니엘과 성우는 서로의 손을 잡은 채 입을 맞췄다. 퀘벡의 아름다운 정원, 다니엘과 성우는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고, 서로를 향한 끝없는 사랑을 맹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