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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녤옹

 

 

 

  

 

 

 

* * *

 

 

 

해피 버스데이. 성우는 혼자서 낮게 읊조렸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오른팔에 누군가의 동그란 머리를 걸친 채였다. 성우의 목소리에 다 쉬어빠진 목소리가 화답한다.

 

 

축하해.......”

 

 

성우는 아직도 잠기운이 덕지덕지 늘러 붙은 다니엘의 눈두덩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정수리 부근에서 늘어진 머리칼을 만지는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Mayday

밤냐

 

 

 

 

작년 825, 강다니엘은 8인조 남자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했다. 다니엘은 소속사로부터 일방적으로 부여받은 포지션에 만족한다고 했다. 성우는 다니엘의 포지션을 포털 사이트에 직접 검색해 알아보았다. 강다니엘, 로티 소속, 메인댄서. 성우 또한 보자마자 작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찰떡같은 포지션이었다고 할 수 있다.

 

 

로티는 데뷔한 뒤 정규 하나와 싱글 하나를 냈다. 물론 두 곡 다 전혀 뜨지 못했고, 가요 프로그램에서도 맨 앞이나 두 번째 정도의 순서에 얼굴을 비췄다. 하지만 다니엘은 뜨지 못한 것에 대해서보다는 데뷔를 했는데도 무대에 별로 서지 못하는 것에 더 유감을 표했다. 걔가 무대에 굶주려 있다는 걸, 걔를 아는 모두가 알았다.

 

 

성우 씨, 슬슬 준비하실 게요.”

 

 

스태프의 부름에 성우는 손아귀에 꼭 틀어쥐고 있던 대본을 내려놓는다.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서는 성우를 스태프는 위아래로 훑어본다. 무례한 행동이지만 이 업계에서는 너무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성우는 태연히 그 눈빛을 받아냈다. 누구에게든지 평가를 받고, 높은 등급을 받아 어떻게든 본인이 속한 그룹을 사람들이 한번이라도 돌아보게 만드는 일이 성우의 역할 중 하나였다.

 

 

혹시 제 옷에 뭐라도 묻었나요?”

 

 

둥근 말투로 부드럽게 묻자 스태프는 얼굴을 붉히며 아니요, 하고 대답해온다. 성우는 그런 그에게 최대한 상냥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그럼 그만 갈까요? 같이.”

 

 

옹성우는 제가 이렇게 말할 때마다 자기 양 어깨를 거칠게 문지르며 웃던 다니엘을 떠올린다. 그 단편적인 기억에 미소는 짙어지고, 입가엔 조그만 보조개가 파인다.

 

 

스태프와 함께 한창 메인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 곳으로 들어서자 김 감독이 눈짓으로 인사를 해왔다. 간단한 목례로 화답하는 성우를 이번에는 촬영장의 수많은 스탭들이 시선으로 훑어 내린다. 그 노골적인 눈짓에 성우는 또다시 제 위치에 대한 생각을 한다. 뜨지 못한 아이돌로 기억될 가능성이 농후한 그룹 로티의 멤버이자, 김 감독의 피앙세라는 괴상한 별명으로 불리는 신인 배우. 아이돌로 새롭게 데뷔한 옹성우에게 주어진 애매하고도 기묘한 위치였다.

 

 

고래 트릴로지가 국제 영화제에서 극본상을 받은 이후로 성우는 더 자주 김 감독에게 불려 다녔다. 정확하게는 김 감독과 오 작가 모두에게다. 오 작가는 고래축제를 찍을 때 김 감독이 신인 감독만 아니었어도 절대 성우를 캐스팅하지 않았을 거라고 했던 걸 깡그리 잊어버린 듯이 굴었다. 두 사람은 성우를 딱딱한 회의실 의자에 몇 시간이고 앉혀두고 차기작을 구상했다. 어차피 무조건 성우를 주연으로 쓸 생각이니 그냥 처음부터 성우를 기반으로 한 스토리를 짜겠다는 심산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예술가 부부를 상대하는 일은 성우에게 있어 꽤나 버거웠다. 그들은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막 데뷔해 바쁜 성우를 아무 때나 작업실로 불러냈다. 사람을 가리지 않는 이 부부는 성우뿐만 아니라 당장 필요한 사람들은 죄다 그때그때 불러냈는데, 그것 때문에 성우는 촬영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촬영에 관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미리 인사를 나눠야했다. 노 메이크업에 트레이닝 복 차림으로 말이다.

 

 

문제는 불려나갈 때마다 이 예술가 부부 앞에 앉아 있는 신인 배우에 사람들이 지대한 관심을 표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아무리 신인이라지만 바쁜 사람을 저렇게 계속 앉혀두는 이유가 뭐냐, 하는 합당한 문제 제기였다. 몇몇 스탭들이 쑥덕거리기 시작하자 가장 부부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연출가가 부부를 대변해 이렇게 말했다.

 

 

- 뮤즈 같은 거래요. 직접 앞에다 두고 보면서 작업하지 않으면 안 된다던데?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적합한 설명은 아니었다. 옹성우는 파랑새, 뮤즈, 백합과 같은 별명으로 공공연히 불렸다. 김 감독 부부에게 뮤즈가 있다는 소문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옹성우는 결국 차기작과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들에게서도 파랑새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가요 프로그램 녹화를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오다 카메라 감독에게 거기, 파랑새!” 라고 불렸을 때의 기분이란. 너무 놀라 그대로 계단에서 굳어버린 성우와 고장 난 성우를 데리고 무대 밑으로 내려오는 다니엘의 영상은 SNS에서 꽤 오랫동안 회자되었다. 고래 트릴로지에서 성우가 맡았던 역할이 워낙 진중한 역할이어서 그런지 겨우 파랑새라고 불린 것에 당황해 움직이지도 못하는 게 의외라 귀엽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신인 배우를 음악 프로그램 카메라 감독이 뜬금없이 파랑새라고 부르는 이유를 궁금해 하는 사람도 많았고 말이다.

 

 

그렇게 옹성우는 온갖 사랑스러운 별명으로 사람들에게 불렸다. 앞에서는 파랑새, 뒤에서는 백합, 장난기 많은 부부에게는 뮤즈. 성우는 제게 쏠린 관심의 정도를 불어나는 별명의 개수로 실감했다. 팬들이 로티 팬 사인회에 파랑새 인형이나 백합 꽃다발, 화관 따위를 들고 오는 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때쯤이었다. 성우가 차기작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인터뷰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그때의 성우는 아이돌로 데뷔한지 3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풋내기였다. 지금도 신인이긴 하지만 그때는 정말 앞도 뒤도 구별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당시의 성우는 백합 같은 청초한 이미지도, 파랑새 같은 귀여운 이미지도 제대로 소화해낼 자신이 없었다.

 

 

내일 별명 언급 좀 해주시라고,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말 해달라고 성우는 차기작 제작발표회 전날에 김 감독 부부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엄지와 검지를 붙여 오케이 사인을 보인 부부는 그렇게 Mayday제작발표회에서 대형 홈런을 치기에 이른다.

 

 

- 그러고 보니까 성우 씨가 되게 다양한 별명으로 불리더라고요. 저희가 제일 먼저 성우 씨 별명으로 부르기 시작했는데, 다들 부르니까 뭔가 질투 나더라고요.

 

 

- 하하. 맞아요. 난 그 별명이 제일 좋던데. , 뭐더라, 피앙세?

 

 

성우는 그렇게 파랑새, 백합, 뮤즈와 같은 좋은 별명들을 뒤로 하고 김 감독의 피앙세라는 어딘가 석연찮은 별명을 공식적으로 얻게 되었다. 성우를 잘 아는 지인들은 모두 그 얘기만 들으면 깔깔대며 웃었지만 다니엘만은 한 쪽 볼을 부풀리며 못마땅함을 드러냈다.

 

 

- 그 사람은 왜 결혼까지 해놓고 형한테 약혼자다 뭐다 해요.

 

 

- 그냥 하는 소리지.

 

 

- 내는 싫어요.

 

 

성우는 불만스러워하는 다니엘을 어르고 달래면서도 속으로 서늘한 생각을 주워섬겼다. 그래도 아무런 별명이 없는 것보다야 낫지. 김 감독님 하고도 더 자주, 되도록 오래 엮이는 게 좋고. 성우는 연습실 바닥에 주저앉아 괜히 애교를 부리는 다니엘의 얼굴을 부둥켜안았다. 데뷔를 하나 안하나 강다니엘은 참 변함이 없어서 좋았다. 다니엘의 옆에 바싹 붙어 있으면, 성우는 단번에 데뷔하기 직전의 옹성우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성우 씨, 지금 들어갑시다.”

 

 

김 감독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성우는 세트장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연습실에서 쉼 없이 땀을 흘리는 강다니엘이, 다시 성우에게서 멀어져 가는 순간이었다.

 

 

 

 

* * *

 

 

 

강다니엘은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로티라는 그룹명을 꽤 마음에 들어 했다. 애초에 이사님이 술에 취해 지은 성의 없는 이름이긴 했지만 롯데월드의 간판 너구리와 꼭 같은 이름이라 귀여웠다. 또 팬들이 종종 성우 형이 다람쥐랑 닮았다고 하는데 로티라는 이름 자체가 다람쥐한테 적격인 것 같아 좋았다. 강다니엘에게는 로티를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그게 설령 이사님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건너온 페어뷰 고트 로티만 마셔서 붙은 이름이라고 해도.

 

 

오늘은 스케줄이 아예 없는 날이었다. 활동기가 아닐 때는 그런 날이 많았다. 보통 다니엘은 연습실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지만 오늘은 꼭두새벽부터 멤버들과 함께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생방송 촬영을 했다. 기획된 프로그램은 아니고 자체 방송이었는데, 팀장님 명령이었다. 데뷔 1주년을 맞아 뭐든 해보라는, 성의 없고 무책임한 명령.

 

 

다행인 건 로티 멤버들이 이 일을 제법 즐겁게 해냈다는 점이다.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조그만 회사라 그런가, 애들끼리 단합도 잘 되고 서로 위할 줄 알았다. 다니엘은 멤버들과 뒤섞여 즐겁게 데뷔 1주년 자축 이벤트를 즐겼다. 카메라가 꺼진 뒤 멤버들과 덕담 몇 마디를 나누기도 했다.

 

 

- 내년엔 더 잘 되자.

 

- 내일 더 열심히 연습하자.

 

 

다니엘은 그렇게 말할 줄 아는 같은 팀 멤버들이 좋았다. 그 순간 꼭 성공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도 충동적으로 했다. 얘들이랑 몇 년 동안 같이 일할 수 있으니까 나는 그것만으로도 괜찮을 것 같다고. 다니엘은 그런 사람이었다. 상황에 잘 매몰되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 가치를 부여할 줄 아는 사람.

 

 

성우 형. 형도 그럴까. 다니엘은 성우가 주변 사람들을 아끼는 마음에 혼자 너무 많은 짐을 짊어질까 걱정스러웠다. 오늘도 성우는 혼자 촬영 스케줄 때문에 데뷔 1주년 행사에 참여하지 못했다. 변변찮은 로티의 인지도와 옹성우 한 사람의 인지도는 조금 과장되게 얘기하자면 천지차이였다. 성우는 자기 개인 팬이 로티 팬 사인회에 몰려드는 걸 멤버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했고 멤버들은 성우와 똑같이 정산 받는 걸 성우에게 미안하게 생각했다. 아무 감흥도 없는 건 여덟 명 중 강다니엘뿐이었다. 다니엘은 성우에게 미안하지 않았다. 그저 쓸데없이 남의 것까지 감당하려는 성우가 안쓰럽고, 신경 쓰였다.

 

 

촬영이 끝나자마자 그 길로 성우 기숙사 근처에 조성된 시장으로 향했다. 치킨 한 마리, 치즈 케이크 한 판, 족발 같은 걸 직접 샀다. 슈퍼에서는 술을 살까 음료수를 살까 한참이나 고민하다 깔끔하게 포기하고 탄산음료를 바구니에 쓸어 담았다. 성우는 내일도 촬영이 있었다.

 

 

형이 지금 하고 있는 작품이 몇 개더라. 다니엘은 미간을 한껏 찌푸리며 손가락을 접었다. 지상파 저녁 시간대 수요 드라마 한 개가 절찬리 방영 중이고, 케이블 주말 특별 기획 드라마 한 개는 이제 막 기획 단계다. 아직 대본 리딩도 안했다고 건너들었다. 성우는 신중하게 작품을 선택하는 편이었지만 워낙 들어온 오퍼가 많았다.

 

 

숙소 현관으로 들어서자마자 다니엘은 손에 들고 있는 것들을 바닥에 내버려두고 에어컨 먼저 켰다. 늦더위가 장난이 아니었다. 대강 손등으로 이마에 난 땀들을 훔쳐내고 음식부터 정리해 냉장고 안에 넣어두었다. 정리나 요리 같은 것과는 거리가 있는 다니엘이었지만 배우 숙소에 성우와 함께 살면서부터 조금 형편이 나아졌다. 휴식기에도 새벽같이 일어나야 하는 성우를 위해 이것저것 챙겨주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다니엘은 냉장고를 정리하거나 간단한 음식을 만들기도 한다. 엄마가 알면 지금껏 그 정도도 안했냐고 타박을 하면서도 기특하다고 엉덩이를 두드려 줄 정도의 발전이다.

 

 

다니엘은 마지막으로 케이크가 든 상자를 냉장고에 넣으며 실실 웃었다. 꼭 이러니까 형 내조하는 것 같디. , 요즘 제가 성우에게 하는 행동들을 생각하면 그리 틀린 말도 아니었다. 오늘 아침엔 기어이 소고기를 볶아 주먹밥도 만들었다. 부신 김에 주먹밥을 돌돌 굴리고 있는 저를 돕겠다고 부엌으로 들어온 성우를 욕실로 밀어내고 편의점에서 산 갓김치 뚜껑을 뜯었다. 성우는 다니엘이 해준 아침 식사를 눈도 제대로 못 뜨고 히죽거리며 먹고 갔다. 딱 거기까지였으면 다니엘이 저녁에도 이렇게까지 성대한 만찬을 준비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 , 우리 1주년이라 미역국까지 만든 거야? 니엘이 진짜 짱이다.

 

 

여기서 강다니엘의 버튼이 눌렸다. 기껏 휴식기에 들어가자마자 조리법을 몇 개나 검색해 만든 미역국이었다. 세 시간이나 걸려 만들었고, 그대로 냉동고에 보관해 형 생일에 먹을 수 있도록 한 거였다. 다니엘은 엄마가 제 생일 때마다 미역국을 끓여주었듯이 성우에게 미역국을 한 번 끓여주고 싶었다. 그냥 이번 한 번만. 이벤트처럼.

 

 

근데 거기서 우리 1주년이 왜 나와. 다니엘은 성우가 매니저 형의 전화를 받고 숙소를 나서기 전까지 표정 관리를 위해 무던히 애써야 했다. 성우가 둥근 발음으로 내뱉은 우리 1주년은 로티 데뷔 1주년이라기엔 너무 달콤했다. 끔찍하게도 강다니엘은 저가 언제부터 성우와 사귀기 시작했는지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그게 다니엘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성우가 떠나자마자 팀장님한테 전화해 혹시 성우 형이 아이돌로 전향하겠다고 한 게 언제였는지 기억하냐고 물었다. 이른 시간부터 회사에 출근해 있던 팀장은 작년 다이어리를 찾아내 쉽게 대답해주었다.

 

 

- 어디 보자, 825일이네.

 

 

다니엘은 하하, 825일 진짜 대단하다! 옹성우 탄신일, 로티 탄신일, 강다니엘 옹성우 커플 탄신일까지 전부 다해먹는 날짜라니. 트리플 탄신일 같은 거네, 하고 잠깐 동안 현실을 부정하다 금방 마음을 다잡았다. 성우는 밤샘 촬영이 끝난 뒤 다시 숙소로 돌아온다고 했다. 다니엘은 그때를 틈타 못다 한 축하를 보충할 계획이었다.

 

 

그냥 옹성우 생일이기만 했으면 다른 애들까지 죄다 데리고 와서 깜짝 파티나 준비했을 텐데. 성우를 놀려먹을 기회를 놓쳤다며 우진이 두고두고 아쉬워했던 게 이제와 생각났다. 다니엘은 옹성우 대변자라도 된 것처럼 요즘 계속 촬영하느라 바빴으니 오늘은 그냥 쉬게 놔두자고 다른 멤버들에게 일러두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다른 멤버들도 1주년 영상을 찍고 난 뒤 체력이 떨어져, 숙소에서 떡볶이를 시켜 먹고는 다들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 형은 어디 가는데요.

 

 

- 숙소.

 

 

우진은 다니엘이 버젓이 숙소에 있으면서 숙소로 간다고 대답하는 것에 헛웃음을 지었다. 형은 뭐, 성우 형 껌 딱지 같어. 그 말에 쏜살같이 반응한 건 다니엘이 아니라 바닥과 한 몸이 되어있던 라이관린이었다. 성우 형 껌 딱지 나예요. 힘들어 죽으려고 하면서도 성우 형 껌 딱지 타이틀을 잃지 않겠다는 집념에 우진과 다니엘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래. 너 다 해. 옹성우 껌 딱지.

 

 

아무튼 다니엘은 옹성우 껌 딱지는 귀여운 동생에게 양보해도 1주년 기념일까지 양보할 생각은 없었다. 사귀기 시작한 뒤로 처음 맞는 생일이라고 성우에게 미역국을 만들어 준 것처럼 1주년 기념일 정도는 둘이서 보내고 싶었다. 공교롭게 생일과 그룹 데뷔일이 겹치는 상황이다. 앞으로는 더욱 둘이서만 보낼 기회가 적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다니엘은 성우가 없는 숙소에서 혼자 성우를 기다리게 된다. 몇 시간이나 성우의 흔적으로 가득한 곳에서, 편안한 기분에 파묻혀 있었다.

 

 

 

 

* * *

 

 

 

다니엘, 전혀 기억 못하는 것처럼 보였지. 성우는 숙소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턱을 괴고 가만히 생각했다. 걔는 지가 아주 거짓말을 잘하는 줄 안단 말이야. 별로 아쉬운 소리를 한 적이 없을 테니 당연히 거짓말도 못할 수밖에 없다. 옹성우는 구석에 몰려서 고개도 숙이고 비굴해져도 봤지만 다니엘은 항상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런 게 성미랑 안 맞는 애다.

 

 

그런 점이 좋아. 입 밖으로 소리 내 중얼거리자 매니저 형이 뒤를 슬쩍 돌아보며 응? 하고 되물었다. 성우는 웃으며 아무 것도 아니에요, 한다. 이건 굳이 말하자면 다니엘의 양면성 같은 거다. 주변이 어떻든 항상 걔가 다니엘로 존재하는 점이 달콤한 만큼 걔의 무심한 부분도 받아들이고 싶다. 성우는 조금 고민하다 케이크 체인점 앞에서 잠깐만 세워달라고 형에게 부탁했다. 그래도 기념을 안 하고 넘어갈 수는 없었으니까.

 

 

가게 안에 들어가 진열장에 있던 케이크 중 입맛에 맞으면서도 예쁘다는 생각이 드는 홀 케이크 하나를 계산했다. 점원이 성우를 알아보는 바람에 성우는 점원에게 사인을 여러 장 해줘야했지만 전혀 귀찮거나 피곤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성우는 촬영이 끝난 직후부터 그저 기분이 좋았다. 다니엘과의 일을 거리낌 없이 머릿속에 그릴 수 있는 오늘, 이 시간이 즐거웠다.

 

 

싱글벙글 웃으며 케이크 상자를 들고 다시 차에 올라타자, 매니저 형이 이상하다는 듯이 성우에게 물었다.

 

 

오늘 무슨 기념일이야?”

 

 

제 생일이잖아요.”

 

 

자기 생일 케이크를 자기가 사는 게 어디 있어. 애들이 생일 파티 같은 거 해주면 어쩌려고.”

 

 

다니엘이 애들 다 숙소에서 뻗어버렸다고 했어요. 생일 파티 내일 하자고 하던데요?”

 

 

그럼 그냥 내일 같이 하지. 내가 같이 올라가서 초에 불이라도 붙여줄까?”

 

 

하하, 되게 웃기겠다. 괜찮아요. 그냥 케이크 먹고 싶은 기분이라 그런 거니까.”

 

 

성우는 가벼운 거짓말들을 주워섬기며 이제는 가책도 느끼지 못하는 양심을 괜히 탓했다. 나 완전 타고났나 봐. 거짓말이 막 술술 나오네.

 

 

형을 웃는 낯으로 배웅하고 차에서 내린 성우는 승강기에 올라탄다. 폐쇄된 공간에 갇히자마자 입가가 딱딱하게 굳어졌다. 기분이 나쁜 건 아닌데, 이상하네. 성우는 괜히 오른손에 들고 있던 케이크 상자를 왼손으로 옮겨갔다. 머쓱한 기분이 발끝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왔다. 괜한 짓을 한 것 같다, 그냥 왠지.

 

 

애들이 내일 축하해준다고 했는데 조용히 쉬기나 할 걸. 뭔가 혼자 궁상떠는 것 같잖아. 애들 나쁜 사람 만드는 것 같구. 현관에 들어서 구두를 벗고 성우는 케이크 상자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생각했다. 그래도 촛불을 붙이고 싶다고. 그건 다니엘의 무심한 부분을 받아들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였으니까.

 

 

성우는 소중한 순간들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붙잡을 수 있다면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싶었다. 다니엘이 그런 것에 흥미 없어 한다는 건 다니엘과 사귀고 있는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하고 싶으니까, 여기서 괜찮은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다니엘에 대한 생각을 하며 하루를,

 

 

, 왔나.”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다니엘이 있었다. 지가 갖고 싶다고 졸라서 산 마약소파 위에서 다니엘은 그 큰 덩치를 웅크리고 자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눈은 다 붙어 가지고 조금씩 끔뻑거리는데, 그 와중에도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안아보겠다고 하는 게 귀여웠다.

 

 

아마 성우는 케이크만 사오지 않았어도 바로 되도 않는 애교를 부리는 다니엘에게로 달려갔을 것이다. 다니엘을 품에 가득 껴안고, 움푹 팬 쇄골과 도드라진 목젖 사이 어딘가에 코와 입술을 파묻었을 것이다. 그 상태에서 숨을 깊게 들이쉬면 다니엘의 냄새가 났다. 햇볕에 잘 말린 이불이나 연한 섬유유연제 같은 향이었다.

 

 

성우가 뻣뻣하게 굳은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자 다니엘은 눈을 세차게 비비며 성큼성큼 성우에게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눈곱이 덕지덕지 붙은 눈을 가늘게 뜨고 성우의 표정을 기민하게 살핀다. 생각보다 재빠른 다니엘의 움직임에 성우는 덩달아 두 눈을 크게 치떴다. 나 지금 표정 이상하지 않나? 엄청 이상할 것 같은데. 얼굴과 귓가가 점점 달아오르는 걸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 ,”

 

 

형 우나? 아닌데? 근데 얼굴이 왜 이러노.”

 

 

거침없이 뻗치는 손바닥은 조심스럽게 성우의 뺨을 훑고 지나간다. 성우는 그쯤 되면 정말로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되어버린다. 표정이 일그러지고 고개가 절로 수그러들었다. 이런 얼굴은 다니엘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다른 한심한 꼴을 전부 보여줘도 이 부분만큼은 꽁꽁 숨겨두고 싶었다.

 

 

다니엘은 성우의 왼쪽 손목을 들어올렸다. 헐렁하게 차고 다니는 시계를 풀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약지에 끼워져 있던 반지마저 빼내버린다. 섹스하기 전 다니엘이 밟는 절차 같은 거였다. 성우는 그 익숙한 손길에 안심하고 다니엘 쪽으로 무게를 실었다. 이대로 흘러가버리면 다니엘은 더 이상 성우에게 아무 것도 물을 수 없게 된다. 성우는 어서 그 시간이 도래하기를 바랐다.

 

 

듣고 싶은데.”

 

 

소리?”

 

 

평소와 같은 다니엘의 느물거리는 농담에 성우는 직접 넥타이를 풀며 대답했다. 감정은 어느 정도 가라앉은 상태였다. 태연한 목소리가 성대에서 튀어나갔다.

 

 

아니.”

 

 

다니엘은 약한 힘으로 쥐어져 있던 검은 넥타이를 손아귀에서 빼내며 이어 말했다.

 

 

숨기는 거, 전부.”

 

 

 

 

 

 

 

 

 

* * *

 

 

 

Mayday, Mayday. 다니엘 군, Mayday. 전혀 위급 상황 같지 않은 목소리로 성우는 다니엘의 잠을 깨우곤 했다. 그 긴장감이라고는 하나도 묻어나지 않는 음성에 다니엘은 배시시 웃었다. 아침 햇살은 커튼과 커튼 사이로 새어 들어와 이불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 무늬와 아침 공기의 온도, 그리고 성우 형의 축축 늘어지는 말꼬리가 좋아 다니엘은 자주 성우 혼자 사는 배우들 숙소에서 잠을 청했다. 성우 형이 주연으로 출연했던 영화가 연출 상을 받은 뒤로 회사는 데리고 있던 배우 연습생들을 모두 내보냈다. 한 명만 제대로 키워 회사를 먹여 살리게 하겠다는 이사님의 의도가 훤히 읽혔다.

 

 

성우는 다니엘이랑 있을 때마다 아무 생각 없이 Mayday의 대사를 입에 담았다. 처음에 다니엘은 성우가 이번에 출연한다는 작품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금방 대사들을 통해 성우가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추측할 수 있게 되었다. 낭만 넘치는 비행기 조종사. 일만 잘하지 속은 순 맹탕이어서 자기 전 매번 어린왕자를 읽고 은퇴 뒤에는 퇴직금을 털어 개인 비행기를 사 사막으로 가는 게 꿈인 남자였다.

 

 

다니엘은 그 역할이 성우와 퍽 어울리는 것 같으면서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고 느꼈다. 모순적인 말이지만 정말 그랬다. 성우는 자기 생활을 소중히 하면서도 훌쩍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 했다. 루브르 박물관이나 런던 시계탑 같은 누구나 알법한 유명한 곳부터 가기 좀 까다로운 유우니 사막, 여행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잘 모르는 훈자 같은 곳까지 가고 싶은 곳이 많은 사람이었다. 다니엘은 종종 성우의 여행 가고 싶다, 하는 중얼거림을 깊게 받아들였다. 성우가 원하는 대로 그를 떠나보내고, 저는 한국에서 하염없이 성우를 기다리는 모습이 눈에 훤했다.

 

 

하지만 형은 반드시 돌아오겠지. 다니엘은 그렇게 생각했다. 소중한 것들이 모여 있는 이곳으로, 옹성우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다니엘은 저가 그 소중한 것들 중에서도 단연 최고의 가치를 지닌 존재라는 걸 잘 알았다. 그건 자신감이나 자만심, 뭣도 아니었다. 성우 형, 하고 부르면 성우는 바로 두리번거리며 다니엘을 찾았다. 초조해보이기까지 하는 그 눈빛에 다니엘은 그의 뿌리 깊은 사랑을 매번 확인할 수 있었다.

 

 

좋지 않은 습관이었다. 다니엘은 저가 꼭 의처증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좋아하는데, 무수한 시간을 함께 하는데 왜 이 정도로 질리도록 확인받고 싶은 걸까. 성우를 의심하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그냥, 다니엘은 성우가 저를 사랑한다는 걸 내보일 때마다 손 쓸 도리 없는 희열을 느꼈다. 저도 잘 들여다보지 않는 구렁텅이에서 치고 올라오는 감정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들켜서는 안 되는 제 밑바닥이었다.

 

 

성우의 보금자리에 스며들며 다니엘은 안정되어갔다. 하도 성우 형 숙소에서 살다시피 하니 다른 멤버들도 매니저 형들도 그러려니 하는 것 같았다. 다니엘은 신혼살림을 차린다면 꼭 이럴 거라는 생각을 했다. 거실 블라인드부터 욕실 구석에 놓인 라벤더 디퓨저까지 다니엘의 손을 타지 않은 것이 없었다. 성우 형의 모든 걸 알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니까 다니엘은 차선책을 택했다. 휴식기에 들어가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성우와 숙소에서 지하철로 한 정거장만 가면 되는 대형 마트에 가 필요한 것들을 사들인 것이다. 성우의 취향에 맞으면서 제 취향에도 맞는 걸로, 다니엘은 두 사람의 공간을 메웠다.

 

 

숙소를 꾸미는 데는 대휘의 역할이 컸다. 성우와 다니엘은 마트에서 사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되는 물건이 있으면 무조건 사진을 찍어 대휘에게 보냈다. 대휘는 짜증을 내면서도 착실하게 의견을 냈다. 쓸데없이 공간만 차지할 거라던가, 전반적인 인테리어와 어울리지 않을 거라던가 하는 생산적인 조언들이었다. 얼추 소꿉장난 같았던 집 꾸미기도 끝이 보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을 때쯤, 다니엘은 대휘에게서 뼈아픈 얘기를 들었다.

 

 

- . 성우 형 어디 안도망가요.

 

 

다니엘은 못된 장난을 치려다 걸린 어린애처럼 어깨를 움찔 떨었다. 멤버들과 함께 쓰는 공동 숙소 냉동고에서 얼음 통을 꺼내던 중의 일이었다.

 

 

-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요. 회사에서 성우 형 붙잡으려고 얼마나 애쓰는지 알죠? 애초에 성우 형 계약만 우리들이랑 다르게 10년짜리고.

 

 

- 성우 형이 계약 몇 년인지 알려줬어?

 

 

- .

 

 

- 왜 나는 몰랐지.

 

 

- 둘만 서로 조심 못해서 안달이니까 그렇죠! 맨날 붙어 다니면서 뭐 그렇게 비밀이 많아요, 둘 다.

 

 

다니엘은 식탁 위에 스마트폰을 올려놓은 채 카톡을 하는 대휘의 머리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쩜 저렇게 동그랗지, 하고 부러 딴생각으로 빠지기도 한다.

 

 

- 형 요즘 인터넷 게임도 하나도 안하죠? 그 핸드폰 앱으로 하는 거 빼고. 사람은 살던 대로 살아야 해요. 그러다 골병 들 걸요?

 

 

- 얼음 먹을래?

 

 

- 아뇨. 저는 됐고요, 아무튼 인테리어가 어쩌고 하는 거 하나도 안어울리니까 적당히 하세요.

 

 

- 귀찮아서 그래?

 

 

이대휘가 약간의 귀찮음 때문에 몇 살 터울 형들에게 작작 하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닌 걸 뻔히 알면서 강다니엘은 못된 말을 했다. 솔직하게 대면할수록 제 밑천이 드러나서기도 했고, 대휘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이유가 짐작이 가서기도 했다.

 

 

- . 저 귀찮아서 그래요. 이제 됐죠?

 

 

아예 스마트폰을 들고 제 방으로 들어가려는 대휘에게 다니엘은 바로 솔직하게 사과했다.

 

 

- 미안.

 

 

- 됐어요.

 

 

다니엘은 대휘에게 더욱 미안해질 소리를 결국 입에 담고 만다.

 

 

- 성우 형 때문이지, 이 얘기 하는 거.

 

 

대휘는 더 이상 다니엘을 외면하지 못하고 다시 몸을 다니엘 쪽으로 돌렸다. 불안함을 느끼는 사람처럼 시선을 다니엘의 얼굴에서 비스듬히 한다.

 

 

- . 근데 진짜 그런 거 아니거든요, 저는.

 

 

- 나도 알아.

 

 

- 아는 사람이 왜 그렇게 무섭게 눈을 치뜨는 데요. 진짜 하지 마요. 나 무서우니까.

 

 

예전에 성우 형과 둘이서 돈가스를 먹다 형이 했던 얘기가 떠오른다. 형은 대휘가 그냥 돈가스는 안 좋아하는데 안에 치즈랑 고구마가 들어간 돈가스는 좋아한다고 했다. 잘 먹지도 못하는 애가 그건 자기 얼굴보다 크게 튀긴 것도 야무지게 잘라서 다 먹는다고.

 

 

별 거 아닌 듯 대휘에 대한 얘기를 하던 형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잔잔한 애정이 깔린 눈빛이었다. 다니엘은 그 때 내심 놀랐었다. 사람들 간 거리감을 제법 잘 재는 다니엘이 보기에 형과 대휘는 전혀 친근한 사이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성우는 그 때도 그렇고 그 후로도 가끔씩 대휘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다니엘로서는 조금 이해하기 힘든 관계였다.

 

 

누가 자길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기민하게 반응하는 이대휘가 그런 옹성우의 따스한 시선을 못 알아차렸을 리 없다. 그래서일 것이다. 대휘가 내 괴상한 행동에 어떻게든 제어를 걸어보려는 건. 다니엘이 생각해도 저는 언제 어디로 어떻게 튀어나갈지 모르는 비치발리볼 같은 인간이다. 그리고 성우 형과 대휘는 자기나 자기 벽 안에 들어온 사람이 혹시라도 상처받을까 온몸의 털을 곤두세우는 고양이 과고.

 

 

- 대휘야, 어떻게 하면 괜찮아질까.

 

 

다니엘은 속으로 메이데이, 메이데이, 하고 외쳤다. 딱 세 번만 하는 구호라고 들었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실컷 외쳤다. 이렇게까지 누가 좋았던 적이 한 번도 없어서 다니엘은 혼란스럽다. 뭐 언제 괜찮아지는데? 언제 다시 예전처럼, 강다니엘처럼 지낼 수 있는데? 나다운 게 뭔지도 모르겠다. 집은커녕 자기 방 꾸미기, 아니 방 청결 유지에도 관심이 없던 때가 너무 예전 일 같다.

 

 

와요. 저거 케이크지. 팬들이 줬나?”

 

 

“.......아니.”

 

 

성우는 마지못해 다니엘에게 기대다시피 했던 몸을 바로 세우며 대답했다. 다니엘은 눈빛으로 성우를 재촉한다. 그럼 저 케이크 정체가 대체 뭐냐고.

 

 

그냥, 내가 축하하고 싶어가지구.”

 

 

. 형 생일을?”

 

 

아니. 1주년,”

 

 

로티가 아니고 우리들 1주년 얘기죠.”

 

 

근데 왜 나를 안부르노. 다니엘은 제가 제법 담담한 톤으로 얘기했다고 생각했는데 성우는 한 쪽 어깨를 잘게 떨었다. 정장 재킷을 입고 있는데도, 그 어깨를 눈으로만 훑고 있는 데도 다니엘은 그걸 느낄 수 있었다.

 

 

같이 해야 하는 거잖아요. 우리 둘이.”

 

 

다니엘의 서운함이 묻어나는 표정을 성우는 어쩔 줄 몰라 하며 건너다봤다. 성우는 필사적으로 설명했다.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서, 나 기념일 못 챙겨도 별로 아무렇지도 않아. 이렇게 우리 데뷔일이랑 겹치기까지 하는데 앞으로도 못 챙길 가능성이 더 높구.”

 

 

그런 문제가 아니잖어. 아무튼 형은 혼자서 기념하려고 했다는 건데. 왜 거기에 날 안 부르는데.”

 

 

다니엘은 그렇게 뱉어놓고 잠깐 제가 너무 당당했나 하는 생각을 했다. 오늘 아침에야 1주년인 걸 안 주제에 말이다. 그래서 다니엘은 슬쩍 꼬리를 내렸다. 내가 기억 못해서 그런 거제. 미안, 하고 말했다. 이렇게 저자세를 취하는 편이 꽁꽁 싸맨 성우의 진심을 들여다볼 수 있는 방법이라는 걸, 이제 다니엘은 잘 알고 있다.

 

 

아냐, 아냐. 나는 그냥 너무 아까워서 그랬던 거야. 너랑 하는 기념일은 할 수만 있으면 다 기념하고 싶어서. 진짜 다 하고 싶어 가지구, 너 그거 나랑 다 같이 하면 되게 귀찮을 건데. 나 막 너랑 처음 와인 딴 날까지 다 기념할 건데.”

 

 

성우는 제가 횡설수설하고 있는 걸 알기는 하는지 귓가를 빨갛게 물들이고 기어이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려버리며 헛소리를 했다. 성우의 진심은 바다에 밀물이 밀려들어오는 것처럼 느린 듯 빠르게 흘러나왔다.

 

 

보여주기 싫었는데. 너 이런 거 오글거린다고 생각하잖아. 아니, 날 진짜 오글거린다고 생각하진 않겠지만 막 공감되진 않을 테니까. 부끄러워. 나 지금 약간 죽고 싶어.”

 

 

형 죽으면 내 앞으로 어떻게 살라고.”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너도 참.”

 

 

성우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가렸다. 다니엘은 그런 성우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 충동적으로 말했다.

 

 

별로 안 오글거려. 내가 더 오글거리는 거 같은데.”

 

니가 뭘?”

 

 

성우는 얼굴도 목도 빨갛게 하고는 개미 기어가는 소리로 물었다. 다니엘은 형이야말로 메이데이를 외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저러다 익을 대로 익어서 펑 터져버리거나 바람 빠진 풍선처럼 주저앉을 것 같다.

 

 

나 이거 형이랑 하고 싶었던 거 같어. 형이 나 빼고 뭐 하는 거 싫어.”

 

 

다니엘은 어떻게 해야 제 복잡한 심경이 성우에게 제대로 전해질지 고심한다. 최대한 직관적으로 설명해보려 하지만 말을 내뱉으면 내뱉을수록 수렁으로 끌려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형은 성인이고 각자 스케줄도 있으니까 형이랑 뭐든 다 같이 하고 싶다는 뜻은 아닌데. 그냥 나한테 형이 이런 부분을 안 보여주려고 했다는 게, ,”

 

 

서운한가? 끝을 의문형으로 둥글게 만들며 다니엘은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다 알고 싶은데. 내가 생각해도 좀 유치한 거 같네. 다니엘은 스스로가 굉장히 서툴다 못해 연애라고는 한 번도 안 해본 멋없는 놈처럼 느껴졌다. 이런 경험은 정말로 처음이니까, 어쩌면 멋없는 놈인 게 맞을 수도 있고.

 

 

괜히 겸허해진 다니엘의 앞에 아까보다 어깨를 바로 편 성우가 바짝 얼굴을 가져다댄다. 다니엘은 꼭 강아지에게 얼굴을 내주는 것처럼 가만히 입술을 붙이고 있었다. 성우는 그런 다니엘의 입술을 살살 핥다가, , 하고 문다. 아프지 않게 이빨 대신 입술로.

 

 

그럼 얘기하지 뭐. 그냥 쪽팔리고 죽을래. 예상치 못한 속삭임에 다니엘은 두 눈을 크게 떴다. 성우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해놓고 또 귀를 빨갛게 한다. 단순히 아까의 붉은 기운이 끄트머리에 남아 있는 건지 아닌지는 좀 모호한 구석이 있다.

 

 

다니엘은 선뜻 전부 얘기해주겠다는 성우에게 잠깐 당황하다, 이내 자기도 입술을 열어 혓바닥을 얽는다. 눈을 감고 형을 더듬어간다. 끈덕지게 붙어가도 성우는 다니엘을 밀어내지 않는다.

 

 

- 괜찮아질 때까지 하면 되잖아요, 둘이서. 청춘이라 좋으시겠네요.

 

 

전혀 부럽지 않다는 투로 퉁명스럽게 대답하던 대휘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문득 형이 제게 뜬금없는 여름 이야기를 했던 것도 생각난다.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는데, 배우 일이 따뜻하고 안정적인 봄 같은 느낌이라면 무대에 서서 춤추고 노래하는 일은 한여름 뙤약볕에 서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는 요지의 얘기였다. 형은 주량보다 반병은 더 마셔서 혀가 꼬부라질 대로 꼬부라진 상태였고, 나는 나대로 제법 취해 있어서 자세한 것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형도 그럴까. 우리들이 벌벌 떨면서도 무대에 올라서 땀을 흘리는 것처럼, 서로 행복하다가도 애꿎은 구조 신호를 읊조리고 싶은 마음이 될까. 성우는 쑥스러운 기색이 덜 가신 얼굴이었지만 입으로는 너 아니, 아니, 하구 말한다. 내 버릇 옮았나 봐.” 하고 또 시답잖은 얘기를 했다. 다니엘은 다시 한 번 그 입술에 달려들었다. 괜찮아질 때까지 하라는 대휘의 말을 면죄부처럼 휘두른다. 구조 신호를 쏘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