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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녤옹

 

 

 

 

 

Rumor

사이언티스트

 

 

 

 

 

    

 

1.

 

상주조차 없는 장례식이었다.

영정 속에서 웃고 있는 명교수는 이를 알았을까, 알고 있었을 터였겠지.

시골의 작은 호스피스 병원, 그곳의 낡고 초라한 장례식장.

출세보다는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았던 노교수의 끝은 여기 모인 얼마 안 되는 이들 모두가 비통해 마지않을 정도로 적적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정승 집 개가 죽으면 문상을 오지만, 정승이 죽으면 개 한 마리도 얼씬거리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하물며 정승조차 아니었던 명교수였다. 오직 제자에게만 훌륭했던 스승이었다. 가족조차 없는 혈혈단신이었다면 양명이라도 하셨으면 좋았을 텐데.

 

"다니엘, 눈 좀 붙여."

 

상주조차 없는 장례식에 모인 이들은 살아생전의 고인을 따르던 제자들이었다.

제자들이라고 해서 많이 모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많이 모인 게 아니었어도, 고인을 따르던 제자들이 적었다는 것도 아니었다.

다들 바쁘니까. 더욱이 명교수가 가르치던 문예 창작을 전공한 제자들이라면, 분명 이 사회에선 남들 보단 조금 더 바쁘게 살아가야 했으니까.

그래서 조문조차 올 여유가 없었겠지. 상제 역까지 할 여유는, 더더욱.. 없었던 거겠지.

 

"...혹시 누가 올 줄 어떻게 알고."

 

다니엘이 자신을 걱정스레 쳐다보는 동창에게 한번 씩 웃어주며 대답했다. 그러곤 그는 제 손에 쥐고 있는 핸드폰을 빤히 쳐다보았다.

시대가 참 좋아져서, 요즘 사람들은 문자 따위에 화환 기프티콘만 더하면 제 위로는 다 챙겼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영정 속에서 웃고 있는 명교수는 이를 알았을까, 이는 몰랐겠지. 제 평생 모든 것을 다해 위하던 제자들은. 이렇게나 괘씸했다.

회색 핸드폰의 무게만큼. 다니엘은, 지금 달랑 하나 입고 있는 제 하야디 하얀 와이셔츠 포켓. 그곳에 넣어 놓은 싯퍼런색 담뱃갑. 그것의 무게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괘씸하지 않냐?"

 

괘씸,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말로 꺼내진 않았는데.

말은 다른 곳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니까, 차마 상주자리엔 앉지 못해 그 주변 언저리에 앉아있는, 다니엘의 먼 왼쪽 편. 휑하디 휑한 상갓집 구석. 거기서 열린 작은 술판. 그곳에서 툭.

 

"교수님이 얼마나 아꼈는데, 지를."

"등단하고 나선 학교 사람들이랑 연락 싹 끊었잖아 걔."

"요즘 걔 소설 잘나간대요. 베스트셀러래. 베스트셀러."

"내용 읽어 보니까 딱 호모가 쓸 만한 글이던데. 사춘기 여고생의 첫사랑. 뭐 그런 낯 간지러운 거 있잖아요."

 

, , , .

마지막 분향이 이미 한 세 시간은 전이었다. 지금 남아 있는 이들은, 따라서 이 쓸쓸한 빈소, 채워주겠답시고 남아주는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한 명은 다니엘의 선배로, 서른 중반에 접어든 지금 까지도 등단을 하겠다며 아둥바둥하고 있는 이였고. 한 명은 그 선배의 동기. 등단은 했지만 책이 팔리지 않는 작가. 나머지 두 명은 후배들, 이제는 아예 글이랑은 거리조차 먼 사람들. 다니엘은 그들을 보며 구태여 그들을 폄하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자격지심. 질투. , 그런걸 생각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신경 쓰여?"

 

어느새 동창, J의 시선도 저들을 향해 있었다.

저들을 바라보며 J가 하는 말에, 다니엘은 역시나 이번에도 웃는 척을 준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냐, 그런 거. 내가 왜 신경 써. 라는 말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력이 없었다. 거짓말조차 쉽사리 나오지 않을 정도로.

 

동문회에서 명교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왔던 다니엘이었다. 달려와선, 명교수가 연고가 없다는 이야기를 의사에게 전해듣고는 손수 장례 절차까지 하나하나 다 진행했다. 물론 그 이후로 달려온 J같은 동문들이, 그를 꽤 도와주긴 했지만.. 사실상 이 장례식장의 상주는 다니엘이었다. 그러니 장례 2일차였던 지금. 아니, 이제는 3일차로 접어드는 자정에 가까운 이 시각. 그는 지쳐있을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

 

전혀 괜찮지 않은 표정으로, 다니엘이 말했다.

말하며 그는 아까 전, 정신을 차리려 스스로 꽉 조여 놨던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풀 고는 단정하게 빗어 놨던 제 옅은 갈색 머리카락 한쪽을 거칠게 쥐었다.

 

"괜찮아."

 

그러고 있는 자신의 팔을, 서둘러 잡는 J에게 다니엘이 다시 한 번 더 말했다.

말하며 그는 J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그 행동을 멈췄다. 그러자 J가 헝클어진 그의 머리를 매만지려 했다. 그래서 다니엘은 그 손길을, 조금은 신경질적으로 피했고.

 

"괜찮아, 진짜로."

 

다시, 다시. 괜찮다고 말했다.

지금은 누가 이렇게 신경 써 주는 것조차 지쳤다. 그래서 다니엘은, 고마웠지만. J가 자신을 신경 쓰지 않아주길 바랬다.

그래서 일부러 J를 쳐다보지 않았다. 않으며, 눈만 느릿하게, 큼직하게 끔뻑이며 아무도 열지 않을 장례식장의 문만 쳐다봤다.

그러고 있으니, J, 더 더 고맙게도, 그러고 있는 자신을 향해 한숨을 쉬긴 했지만. 그 이상의 어떠한 말도 행동도 하지 않았다.

 

 

 

2.

 

 

"...."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몇 시간이 흘렀을까.

J를 쳐다보지 않는 것처럼, 다니엘은, 시계 또한 의도적으로 보지 않았다. 보면 시간은, 가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짜증나게도 가늠은 되었다. 귓가엔 아직도 이따금씩 "옹성우가.." 어쩌고. "역겹지.." 어쩌고. 소리가 들려댔다. 그러니 시간은, 사실 얼마 지나지 않았을 것이었다.

감사한 사람들이야, 감사한 사람들. 그는 그 소리들이 툭툭 제 고막을 때릴 때마다 그 사실을 되새겼다.

, 생각해보니 진심으로 감사했다. 졸린 와중에 그렇게도 제 신경 한 사발 실컷 긁어주시니, 잠이 오다가도 달아...

 

그 순간.

 

"...."

 

조용히 있던 J가 입을 열었다.

아마도 다니엘, 자신과 같은 것을 보고 놀라선 저를 부른 것일 테지. 그리고 J가 입을 연 것과는 반대로, 떠들던 이들의 입은 순식간에 다물린다.

이유는 아이러니 하게도 J와 같은 것이었다. 검정색 정장을 차려입은 옹성우가, 투명한 장례식장의 유리문 너머에 서있었다.

다니엘은 그를 보며 반사적으로 일어섰다. 일어서며, 여전히 야속하게도 잘생긴 옹성우의 얼굴을 실감했다. 6년 전과 별반 달라진 것도 없는 모습이었다.

차분히 가라앉은 새까만 머리. 그 머리카락에 가려져 있음에도, 꽤나 선명하게 단단함이 보이는 그의 눈썹뼈. 그 눈썹뼈 아래, 쌍꺼풀, 없는데도 대책 없이 커다랗고 맑은 눈.

그리고 유려한 콧날, .. 그리고 창백한 입술. 입술, 왜 창백하지.

 

"....성우 형."

 

다니엘은 그 입술을 보며, 문을 여는 성우에게, 들리지 않을 텐데도 말을 걸었다. 들리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 말을 걸었다.

제 탓은 아니었지만, 떠들던 이들이 성우에 대해 떠들어 댄 이유의 한 편엔 자신의 이름도 걸려있었다. 다니엘은 그 가십에 자신이 침묵해 왔던 것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는, 성우가 찬찬히 문을 열고, 신발을 벗고. 제 앞, 아니 영정 앞으로 걸어오는 그 모든 순간에 침묵해야 했다. 그 동안의 침묵은 무책임이었고 지금 이 순간의 침묵은 무책임에 대한 책임이었다.

 

"...성우 선배."

 

J가 성우를 보며 말한다. J도 역시나, 다니엘과 마찬가지로. 입을 닫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다니엘이 입을 닫고 있었고, 다니엘 보다는 본인이 더 입을 열기 쉬운 입장이란 것을 알고 있었던 터라, J는 망설였긴 했지만 어쨌든 입을 열었다.

그러자 성우가 J를 보며 쓰게 웃는다. 쓰게 웃는다는 것은, 그가 웃긴 했으나 웃음에서 쓰디 쓴 향기가 매섭게 피어올랐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건, 그조차도 다니엘에게는 한 줌의 곁도 없었다. 다니엘은 없는 사람 마냥, 성우는 J만을 아는 체했다.

 

".. 지냈어? 아니, 장례식장에서 할 소린 아닌가."

 

성우는 그렇게 말하곤 J에게 "헌화로 해도 돼?"하고 속닥거렸다. J는 그 말에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어색한 몸짓을, 이해한다는 듯 성우의 고개가 자연스럽게 끄덕인다. 다니엘은 이 모든 게, 너무한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성우는 무표정하게 헌화를 하고선 조용히 묵념을 시작했다.

그 순간 예의 그 테이블에서 "낯짝 겁나게 두껍네" 하고 큰 소리가, 큰 소리로 한 의도 명백히 보여 줄 정도로 크게 터져 나왔다.

대체 뭐가? 교수님 돌아가신 데 성우가 일조라도 했다는 건가? 싶어 다니엘은 그 테이블을 돌아보았다. , 어이없게도 범인은 다니엘 자신을 바라보며 의기양양하게, 스스로가 무슨 지원군이라도 된 것 마냥 제 얼굴을 자랑스레 치켜든다. 나 잘했지-하는 표정이었다. 네가 하고 싶었던 말이지-하는 표정이었다.

 

아냐, 씨발. 그런 게 아냐. 나는, 나는.

 

참담함에 다니엘은 눈을 감았다. J는 눈을 감은 다니엘을 발견하곤 서둘러 그 돼도 않는 지원군에게 쉿-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하지만, 그 지원군은 "아니 뭐 내가 못할 말 했나."하는 상투적인 대사를 친다. 그 말에 성우는 눈을 떴다.

 

"....나 이제 가볼게."

 

눈을 뜬 성우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다니엘은 성우가 방금 그랬던 것처럼, 말에 담긴 의미에 잠식되어 다른 아무것도 생각치 못하곤 번쩍 눈을 뜬다.

그리곤 오늘 처음으로, 성우에게 감히 말을 걸었다.

 

"왜 벌써요."

 

지금 이 말을 하는 자신의 얼굴은 과연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까. 다니엘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곧 그 생각이 가차 없이 지워졌다. 성우가, 그 말을 꺼낸 자신을 향해 시선을 옮겼기 때문에.

 

"?"

 

질문이 되돌아왔다.

? 왜인 것을 모르느냐는 의미일까, 아니면, 왜 벌써요- 하면서 왜 자신을 잡냐는 의미일까.

다니엘은 왜? 라고 말하는 성우의 표정에서, 지난 이틀 동안 이따금씩 맡았던 향내. 그리고 마지막으로 맡은 지 몇 시간은 된 향내를 느꼈다.

누군가는 향냄새를 맡고선 아련하고 몽환적이네 라고 했었다. 아니었다. 향내는, 마지막을 고하는 우울하고도 선명한 냄새였다.

 

"..밥 먹고 가요."

 

선명한 이별이 예상돼서. 다니엘은 성우를 붙잡았다.

성우와 자신의 마지막은, 이미 6년 전에 이루어 졌던 것이었으나. 아니, 뭐 그냥 선 후배 간에, 이별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 것이긴 했으나.

글쎄. 오늘이 지나면 정말로 못 볼 것 같아서. 정말로, 강다니엘이란 사람과 옹성우란 사람의 교차점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 같아서. 그래서 잡았다.

 

째깍-째깍-

 

성우는 그 제안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둘의 대화는 시계 초침 소리만으로 가득 채워졌다.

제발, ? 라는 말은 다시 하지 말아줘요. 다니엘이 생각했다. 저도 몰랐으니까, 물어도 대답할 수가 없었다. 모르는 데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 왜일까. 6년 전, 자신을 사랑한다는 소문에 빠졌던 성우. 성우. 성우 형. 자신은 왜, 지금에 와서야 붙잡고 싶어지는 걸까.

 

"..여기 대리 기사님 와?"

 

그런데 형, 형도 지금 나랑 같은 생각해요?

 

 

3.

 

 

술상은, J, 일부러 구석에 있던 이들과는 멀리 떨어진 문 쪽으로 준비했다.

지쳐있는 다니엘을 더 지치게 할 순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졸업한지 5년이 지나고 나서도 다니엘은, 은사라며 명교수의 장례식에 제일 먼저 도착해서는 모든 것을 도맡아 한 착한 친구였다. 그러니 이정도 편의는 봐 줄 수 있었다. 이런 편의의 연장선에서, J는 자리에 앉는 성우를 보고선 신나가지고는 떠들어 대려 하는 이들 또한 조용히 시켰다. 다시 말해, 이 모든 J의 행동은 제 착한 친구 다니엘을 위한 것이었지, 등단하고 나서 학과 사람들 모두를 쌩까고, 다니엘을 좋아하기 까지 한 호모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고마워."

 

안주를 내려놓는 J에게 호모, 아니 성우가 말했다.

J는 대답을 빈 웃음으로 대신했다. J는 남의 흠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부류의 사람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남의 흠을 쉽게 감싸주려 하는 인정 넘치는 부류의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평범하게, 흠집 난 사람이 제 바운더리만 넘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의 예의정도는 가식으로나마 떨어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다만, 착한 다니엘은. 그렇지 못하지. 흠을 쉽게 감싸 주려하지. 감싸주려 해서 꽤나 불편할 것이 자명한데도, 그런데도 문상객이랍시고 그를 잡은 것이겠지. 그래서 문제였다.

 

"...잘 지냈어요?"

 

다니엘이 말했다. 그는 술잔을 꽉 그러잡으며, 본인의 잔만 채우고 있는 성우에게, 술 한 잔 달라는 말 한마디를 못해선 그러고 있었다.

J는 그걸 보고선 자연스레 또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한숨을 쉬자마자, 다니엘이 저리 가란 눈짓을 해댄다. 그 모습에 그는 한숨마저 다 내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리에서 물러났다. 저 호모가 다니엘 속, 그때처럼 다 태워 놓진 말아야 할 텐데, 생각하면서. 내일, 발인해야 되는데- 생각하면서. 한숨을 마저 쉬면서.

 

"OO출판에 있다며. 내 소식 다 알잖아."

 

자신들을 등 진채로 상주 자리로 돌아가는 J를 보며 성우가 말했다.

성우는 말을 끝내고도 J를 계속 바라보다가, 계속 보고 있기엔 뭐했는지 다시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그의 시선은 제 앞에 놓인 편육을 향해 있었다.

그러다 술잔을 들었고, 눈을 감으며 그것을 비웠다. 그리고 나선 다시 눈을 떴고, 떴음에도 여전히 시선은 아래였다. 결코 다니엘을 보지 않았다.

 

"그런 거 말고, 어디 아픈 데는 없었는지. 뭐 그런 거 있잖아요."

 

다니엘은 그렇게 말하곤 관자놀이를 짚었다. 머리가 지끈 아파왔기 때문에.

물론 알고 있었다. 성우의 이번 작품, 등단하고 나서 세 번째 작품. 엄청나게 잘 팔리고 있다는 것 정도는. 자신이 다니고 있는 작은 출판사, 돈보다는 작품성 위주의, 욕심 없는 사장이 하는 회사. 그곳의 사장마저 동문이라는 소식들 듣고 선 다음 작품 어떻게 안 되겠냐 물었을 정도로 거물이 된 성우. 성우. 성우 형.

 

"그게 왜 궁금해?"

 

거물, 호모, 옹성우. 옹성우가 강다니엘을 쳐다보며 질문을 꺼냈다.

강다니엘로선, 강다니엘이란 사람으로선 옹성우의 그 질문이, 그 눈빛이. 너무 무거웠다. 거물답게, 거인처럼 그는 다니엘을 압도했다. 너무나도 간단하게. 지금까지 다니엘을 그가 바라보지 않았던 것은, 그럴 수 없었던 게 아니라 그러지 않았을 뿐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것 마냥. 태연하게.

 

그래서 다니엘은 이번에는 반대로 자신의 시선이, 저들 앞에 놓인 편육을 향해 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어께엔 피곤함의 무게가 가득이었고 고개엔 죄책감의 무게가 가득이었다. 하지만 이러고 있으면, 앞에 있는 성우가 불편해 할 텐데. 그 걱정에 그는 괜스레 젓가락을 집어, 보고 있던 편육을 들었다. 먹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냥 입에 쑤셔 넣었다. 비릿한 돼지기름과 퍽퍽한 단백질들이 이빨 사이로 아무렇게나 뭉개진다.

 

"..니엘이 넌, 여전히 먹는 게 이쁘네."

 

끝끝내 억지로 삼키려는데, 성우가 그렇게 말한다. 어딘가 텅 빈 듯 한 목소리였다.

목소리에 놀라 다니엘은 죄책감의 무게고 뭐고 다 집어 치우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멍한 표정의 성우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서로의 눈길이 만난다.

어느새 괴고 있었던 걸까, 한 손으로 턱받침을 하고 있던 성우는 그렇게 눈이 마주치자마자 황급히 제 머리를 들어 올리며 저의 척추를 바로 세웠다. 그러고 있는 게 편하면, 그러고 있어도 되는데. 다니엘이 생각했다. 그러고 있으면 더 좋을 텐데.

 

"그때 그거, 사실이었어요?"

 

그가 자신에게 더 좋을 것을 쉽게 해주지 않으리란 걸 알기에, 다니엘은 심통을 부렸다.

고인 침을 꼴깍 삼키며, 혹시라도 그가 자리를 박찰까 두려워하며, 그래서 언제라도 일어 설 수 있게 양반다리를 하고 있는 제 허벅지에 힘을 주며. 그런 긴장에도 불구하고 떠오르는 자신의 궁금증을 여실히 드러내며. 심통을 부렸다.

 

"나 그때도 말했는데. 맞으면 어쩔거고 아니면 또 어쩔 건데, 라고."

 

성우가 어이없다는 듯 살포시 웃으며 대답했다. 방금 살짝 당황했던 것, 다 어디로 갔는지. 그는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다니엘 자신을 짓눌렀다.

짓눌려진 다니엘은, 고개를 떨어뜨리며, 상 위에서 굴러다니던 소주 병 뚜껑을 몰래 제 손에 담았다. 담고는 그것을 억세게 쥔다. 손바닥 안에 박아 넣기라도 하는 듯이.

날카로운 알루미늄이 오래 전 글을 쓰던, 오래 전 글을 그만둔, 다니엘의 손에 파고든다. 만족스러웠다. 심통은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보고 싶었어요."

"?"

 

너무 밝아서, 파랗게 까지 보이는 형광등 빛이 진녹색의 소주병과 마주치며 화려하게 부서진다.

다니엘은 왜? 라고 묻는 성우의 대답에, 감히 대답하지 못한다. 그저, 쥐고 있는 소주병 뚜껑이 원래 매달려 있던 그 곳, 이제는 반쯤 남은 소주 병. 그것 만 주시했다. 주시하려 했다.

 

"우리 친했잖아요."

 

하다가, 다니엘은 어린아이 마냥 그렇게 투정했다.

뚜껑도 나름의 쓸모는 있어서 존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라도 생각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술은 오래되면 오래 될수록 깊어진다고들 하니까.

그런 줄 알고 애써 붙어 있으려 했던 것이었다. 거기다 더해, 술 맛 모르는 어중이떠중이들이 함부로 마시지 못하게. 그래서 그랬던 것이었는데.

 

"이젠 아니잖아."

 

성우가 단호한 어조로 말한다. 다니엘은 그걸 들으며, 찬찬히 제 시선을 올렸다.

맞아요, 아니죠. 다니엘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까지, 물론 교수님을 존경 한 건 맞지만. 성우의 까만 정장 상의, 반질거리는 단추가 시야에 들어왔다.

이 장례식장에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서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텐데도. 이제는 형의 입술이 보였다.

이틀 내내 한 발자국도 나서지 않았던 이유는. 그리고 눈동자, 의도친 않았겠지만, 모든 걸 순진무구하게 당겨 삼키는 블랙홀을 닮은 눈동자가 있었다.

 

명교수가 살아생전 가장 총애했던 제자. 그리고 자신과 친했던, 자신이 동경했던, 자신을 좋아한다고 소문이 났던, 그래서 자신이 버렸던, 버린 주제에 오늘은 또.. 기다렸던.

 

그 여름, 내 이름을 썼던.

 

"성우 형."

 

형이 올까 봐. 기다렸어요.

 

 

 

4.

 

 

대학 시절, 성우는 전국에서 글 좀 쓴다는 놈들 다 모였던 저들 학교에서도 천재라고 명성이 자자했던 선배였다.

다니엘은 그 명성을, 처음엔 듣기만 들었었다. 그런 선배도 있었다더라, 깐깐한 교수님 유한 교수님 가릴 것 없이, 교수님들 모두가 좋아했던, 그런 선배가 있었다더라.

질투를 하려 해도 그 선배의 글을, 막상 직접 읽어 보면, 대놓고 본인과 실력 차가 느껴져서 어쩔 수 없다- 정도만 생각하게 되는, 그런 선배가 있다더라.

 

처음엔 무슨 풍문이겠거니 생각했었다.

하지만 입학하고 나서 처음 치루는 중간고사, 시험 아니고 과제. 그것의 예시로 교수님이 보여주던, 성우의 글.

그것을 읽고 선, 그는 ', 진짜구나' 생각했다. 이 부분은 미려하고도 날카롭다 저 부분은 뭉툭하지만 뭉근하다-등 그의 글에 교수가 붙였던 온갖 미사여구, 순식간에 납득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보고 싶었다. 그런 글을 쓴 천재를, 뭐가 다르면 자신조차 자신을 자신 따위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건지, 궁금해서.

하지만 볼 수가 없었다. 다니엘이 입학 했을 때 이미, 성우는 1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갔었기 때문에. 글을 잘 써서, 그거 쓴 사람 보겠다고 면회 찾아갈 정도의 동경은, 기다린다 할 정도의 선망은, 그 당시 까진 아직 아니었다. 당시 다니엘은 뭐, 볼 수 있음 보고 싶다. 정도였다.

 

그렇게 해서 결국, 다니엘이 성우를 처음 보게 된 것은, 그로부터 3년 후, 성우가 전역한지 1년이 지나 3학년에 접어든 시점, 그리고 다니엘이 이제 막 전역하고 복학해서 글 한 줄 쓰기가 어려워, 군대 가 있는 동안 다 굳어 버렸나보다- 하며 제 머리를 원망하는 시점에서 였다.

 

 

**

 

 

"...이 부분은 어떤 의도로 쓴 거야?"

 

A4용지 뭉치를 두 손으로 꼭 쥐고선, 그걸 마치 제 건강검진 결과표 대하듯 신중히 살펴보던 성우가 말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눈을 세게 한 번 끔뻑 감았다가 떴다. 습관인 듯 했다.

 

명교수는 글엔 재능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재능과 노력, 즐기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 중 제일은 재능이고, 그 외의 것들은 재능 있는 자들 사이에서 우열을 가릴 때나 쓰는 것이라고 했다. 재능이 없다면, 그 외의 것들은 그저 취미의 영역에서나 쓰이는 것이라고.

 

".. 그거, 그냥 쓴 건데요. 왜요? 이상해요?"

 

다니엘이 떨리는 자신의 두 손을 둘 곳 찾지 못해 이리 저리 옮겨 대다가 대답했다. 하필, 이 곳, 테이블도 시원찮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노트북 하나랑 커피 하나 쯤 올려두면 끝일 정도로 협소한 것밖에 없었다. 그러니 이 테이블, 1.5배 정도 되는 등짝을 가진 저로서는, , 숨긴답시고 숨긴다 하면 그 모양새가 더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아냐, 내가 이 부분 좋아서 그래."

 

...그렇지만 명교수는, 그런 말을 하면서, 여기서 우열은 대체 무슨 우열을 가리키는 것인지 말한 자신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많이 팔리는가, 좋은 평론을 받는가, 읽는 이가 만족하는가, 사회적으로 얼마만큼 큰 파문을 가져다주는가.

여러 척도들을 제시하며 교수는 제자들에게 물었다. 재능이 대체 무엇이기에 특기와 취미를 가르는 것일까.

 

"나는 사실 사랑 얘기 좋아하거든. 교수님들은 사회 비판, 뭐 그런 거 위주로 쓰라고 하시는데... 그래도."

 

쑥스러워 하는 듯, 이 아니라 확실히 쑥스러워 하며 성우가 말을 마친다. 그런 성우를 보며, 다니엘은 이 형, 너무 잘생겼는데, 배우 해도 되겠다-고 내심 감탄했다.

 

학과 휴게실이었다.

볕이 잘 들게 천장이 유리로 되어 있는 곳이었고, 중앙엔 무슨 종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시든 모습은 다니엘이 군대를 가기 전에도, 후에도 못 봤던 것 같은, 꽤나 큰 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를 중심으로 여러 꽃과 풀들이 이곳저곳에 배치되어 있었는데, 겨울엔 이 식물들, 죽지 말라며 히터까지 빵빵하게 나오기 까지 하는 곳이었다. 총장이 아마, 문예창작학과를 좋아한다고 했었던가. 이런 곳을 취업률도 낮은 과에 쥐어 준 것은, 그런 개인적인 호감에 기대를 더하며, 노벨 문학상이라도 타오라는 의도였겠지만.. 실상은, 이 휴게실, 이만큼의 휴게실로서는 참으로 비참하게도, 외면 받고 있었다.

 

"...나도 형, 사랑 얘기 쓸 때가 더 좋아요. 나 보다 훨씬 잘 쓰잖아."

 

문예창작학과 학생들은 이곳을 잘 쓰지 않았다. 이 휴게실 쓸 시간에 도서관에 가서 취업 준비 한번이라도 더 하는 것을 택하고 있었다.

확실히 휴식이란 행동을 취하기엔 좋은 곳이었지만, 공부하기엔.. 방금 전 손을 숨기려 했던 다니엘이 느꼈던 것처럼, 협소한 테이블 문제도 있었고, 너무 쉬기 좋아서 너무 쉽게 졸리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리고 그렇다고 해서 정말 쉬기 좋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게, 위치가 너무 별로였다. 교수동 3층이라니, 학생을 위해 놓았다는 곳의 입지가 상당히 악의적이었다. 때문에 아무리 교수들이 입학 초부터 자기네들 여기 절대 출입 안한다고, 여기서 제발 영감 좀 받으라고- 광고 하고 있다 한들 여길 쉽사리 오는 이는 없었다. 없을 수밖에 없었다.

 

"아냐 내 거는. 내 거는 그냥 멋모르고 쓰는 거지. 네 건 진짜잖아"

 

표정에도 소리가 있다면 지금 형의 표정은 힝-이겠지.

천재인데다, 형은, 잘생겼고 겸손하기까지 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얼마 전, 학기 초, 복학 후 처음으로 듣게 된 명교수의 강의 시간. 그래서 처음 형을 만날 수 있게 되었던 그 시간. 학기 말 최종 제출물의 표준 예시로 등장한 본인의 과제에, 멋쩍게 웃던 형을. 자신이 수업이 끝나자마자 쫓아갈 정도로 동경하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천재에 대한 범재의 동경. 뭐 그런 것이었다- 아마도.

 

다니엘은 그렇게 맨날이고 천날이고, 이 형을 이처럼 따라다니게 된 이유를, 두루뭉술하게 합리화 했다.

합리화 하며, 그런 형이 자신을 진짜-라고 칭찬한 게 좋아서, 사실 무슨 의미인지 어렴풋 알겠는데도 "그게 무슨 말이에요?"하고 물었다.

 

"나는 사람도 많이 못 만나고 그러는데.. "

 

천재인데다, 형은. 잘생겼고 겸손하고 노력까지 하는 사람이었다. 교수마다 극찬하는 글 실력에는 역시나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형은, 언제든 시간이 날 때면 항상 이곳으로 와 제 낡은 노트북을 툭탁거리며 글을 쓰고 있었고, 따라서 자연스레 학과 내에선 아웃사이더로 통할 수밖에 없었다.

학과 사람들은 이런 형을 보며 천재는 역시 고독하다느니 어쩌느니 말이 많았지만. 심하면 재수 없다느니 교수한테 잘 보이려고 한다느니 하기까지 했지만.

 

"너는 아니잖아. 사람도 많이 만나구. 그러다보면 진짜도 만나잖아."

 

...그거는요, . 그건 그냥 제가 술을 좋아해서 그러는 거구요.

 

너무나 순수하게 자신을 부러워하는 형의 모습에, 다니엘은 떨떠름한 심정이 들었다. 그래서 속으로, 하지만 부끄러우니까 들리지 않게, 형에게 변명을 했다.

 

아무튼 알고 있었다. 사실 형, 사람 되게 좋아한다는 것. 그러니 그 날, 자신이 다가 가자마자, 처음 보는 사이에도 반가워 가지곤 어쩔 줄 몰라 하며 저가 먼저 이것저것 먼저 알려주려고 나서던 거였겠지. 다른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아니 모르니까 다들, 형을 무슨 언터쳐블 마냥 가까이 가기도 두려워하는 거였다. 혹여 천재를, 자신의 평범함으로 더럽힐까 두려워서는-

 

"...그러면 형도."

 

-그럴 필요도 없는데.

 

처음엔 좋았다. 그런 형을, 자신만 편하게 가까이 할 수 있는 것이.

천재에 대한 어설픈 독점욕이었을까. 하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니까, 아까웠다. 이런 형을 자신만 본다는 게.

이건 그의 재능과는 상관도 없는 이야기였다. 그냥, 천재 아니더라도. 이 사람, 이 형. 지금 봄 햇살에 반짝이며, 되게 이쁘게 웃고 있는데. 웃으며- 자기 시무룩해진 거 숨기려고 하는데, 나 불편 하지 말라고. 그리고 이런, 불편하지 말라고 하는 작위적인 웃음마저, 이렇게나 귀엽기까지 한데.

 

"괜찮으면.."

 

다니엘은 그렇게 생각하다가, 하던 말 끝 마무리 짓는 것조차 잊어버리고는, 대신 자신의 원고를 쥐고 있는 형의 손이나 덥석 잡으려 했다.

잡고선 어디 자랑이나 빨리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착한 형을, 당장이라도 남들한테 소개 시켜주고 싶었고. 이렇게 잘난 형이, 자신을 칭찬 했다는 것도 소문내고 싶어져서. 그리고 이렇게 잘생긴 형에게, 누구- 좋은 여자라도 소개..

 

"나는.. 여유가 없어, 다니엘. 급하거든."

 

시켜 줄 시간 없겠구나.

..여유가 없다니까. 다행이었다. 다행이어서, 다니엘은, 성우를 잡으려 뻗던 제 손을, 툭 떨군다.

 

"...어쩔 수 없죠, . 그럼 제 거 봐 줄 시간도 모자란 거 아니에요?"

 

다행, 다행. 뭐가 다행이었을까, 뭐가 다행이었기에, 안도하는 마음에 취해 뭐가 다행인지도 신경 쓰려 하고 싶지 않을 정도인걸까, 자신은.

지금 말하는 것은 상관없었다. 어차피 성우 형은 황급히 손사래를 치면서.. 아니라고 하겠지. 당황해서는 더, 귀여워져 가지고서는.

 

"아니! 괜찮아. 좋아서 읽는 거야. 진짜 괜찮아. 니엘이 너 거 읽는 거 도움 많이 돼."

 

거 봐. 저러잖아.

손사래는 아니었다. 원고 쥐고 있어서 못하는 걸까, 성우는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어 부정을 표현했다.

...다행, 다행. 뭐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다행이었다. 아무튼 형이 귀여웠다. 그래서 다니엘은, 그냥 웃고 마는 것을 선택했다.

 

 

 

5.

 

오늘도 햇빛이 내리 꽂히듯 들어서고 있는 휴게실 이였다.

 

성우의 글은, 물론 그 자체로도 훌륭했고, 인물들도 매력적이었지만.

특이하게도, 특별한 점을 꼽으라 하면 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작가에 대한 호감도가 오른다는 것이었다.

읽다 보면 어쩌다 이런 글을 쓰게 된 걸까 하는 순간들이 많았고, 그 순간이 넘어 가면, 이 글의 끝에선 작가가 어떤 생각 속에서 어떻게 글의 마침표를 찍을까 하는 것들이 많았다.

 

"그게 좋은 거야?"

 

성우가 그런 감상을 듣더니 눈을 땡그랗게 만들고 선 물었다.

다니엘은 당연히 좋은 거지요-라고 대답하려다가, 자기 말 한마디를 기다리며 긴장 하고 있는 형이 귀여워서 잠시 뜸을 들였다. 으음-소리를 내면서.

 

처음엔 자신의 것만 보여주는 일방적인 만남이었다. 근데 그게 한 달쯤 지나니 형은, 본인의 작품을 슬며시, 미공개작 이라면서 지금처럼 보여주기 시작했다.

 

"교수님들도 그런 말 하더라. 어느 순간 글에서 빠져 나오게 된다구. 나와 가지고는, 글을 멀리서 보게 된대."

 

그렇게 말하면서 성우는, 더운지 저가 입고 있는 얇은 티셔츠 가슴팍을 검지와 엄지로 살짝 잡고선 팔락였다. 그러다 또 다시 눈 크게 한 번 깜빡.

그런 다음엔 좀처럼 자신이 감상을 내놓지 않자, 그는 재촉을 대신 해, 자리를 더욱 더 이쪽을 향해 당겨 앉는다. 당겨 앉으려, 의자를 잡고 선 본인의 머리를 훅 들이민다. 아니, 들이 민 것은 아니었겠지만.. , 무슨 남자 샴푸 냄새가 이리도 달큰한건지. 이거 귤 냄샌가, 라임 냄샌가.

 

확실히 실내 정원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거의 온실인터라 기온이 높았다. 중간고사가 지난, 한 발자국만 더 걸으면 여름인 지금은, 확실히 더.

...둘만 있어도 더웠고, 둘만 있어서 더.

 

"...형을 좀 응원하고 싶어지는 게 있긴 해요. 표현이 처절해서..."

 

다니엘이 멍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아늑한 불꽃에 맹렬히 타오르는 것 같아서,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래서 정신이 혼미했다. 그러자 성우가 땡그랗게 떴던 눈을 천천히, 반으로, 위에서 아래로, 스르르 닫는다. 눈꺼풀이 내려가는 만큼, 입 꼬리도 내려간다.

 

, 처절.

그 순간 명교수가 오늘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중학교 때 쯤 배워서 알겠지만, 글에는 당연히 작가 개인의 성격, 성향, 취향, 바람이 녹아 있을 수밖에 없다고.

 

".. 아니, 그게 아니고. 실감 넘친다..? 생생하다?!"

 

당황스러워서, 다니엘은 황급히 형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같은 수업을 듣고 왔던 터라, 당연히 형도 자신처럼 그 말을 똑같이 떠올렸을 것이었다.

그럼 표현이 진하다는 수식어는 오히려 역효과인가? 형이 눈을 살짝, 치켜뜬다. 치켜뜨곤 자신을 바라본다. "...내가 부정적인 걸 많이 쓰긴 했지." 역효과 맞네, 그거 말하고선 다시 눈, 아래로, 아래로 하는 거 보니. 많이 걸리는 부분이었나, 트라우마 같은 거 있는 건가. 그래서 혹시, 마음 상했나. 어쩌지.

 

"아니요 진짜. 진짜, 그런 게 아니라, 너무 잘 쓰니까."

"...아니야, 음침한 애가 음침한 걸 많이 쓰는 게 뭐 대수라고."

 

계속, 계속. 당황이 끝나지가 않아서, 앉아있던 의자에서 반쯤 일어서기까지 하며 부정을 피력했다.

하지만 성우는, 그런 열성적인 변명 태도에도 불구하고, 저를 잡고 흔들기 까지 하는 자신에게, 이리 저리 팔랑 팔랑 흔들리기만 하며 맥없이 답할 뿐이었다. 아직도 여전히 시무룩해져 있었고 이제는 어쩐지, 무언가 체념한 듯 한 눈빛까지 띄고 있었다. 그래서.

 

"아닌 게 아니라, 진짜, 그냥 읽다보면 형 토닥거리고 싶다는 건데, 그러는 게 뭐가 음침한 거예요."

 

그래서 다니엘은 그만, 제 본심을 툭 털어 놓고 만다. 그러자 팔랑 거리던 성우가 갑자기 자기 몸에 힘을 빡 주고는 몸을 바로 세운다. 그러면서 입 꼬리를 사르르 올린다. 그리고 눈을, 이번엔 아래에서 위로, 반 접으며-

 

"....그러고 싶었어?"

"?"

 

-웃는다. 쓴 웃음 같은 게 아니라, 정말로 달달하게.

 

"토닥거리고 싶었냐구. ? 어디? ? 혹시 엉덩이?"

 

제 팔을 잡고 있는 다니엘 자신의 손을 잡는다. 잡는다? 아니, 그보다는 부드럽게 얹어 놓는다는 표현이 더 알맞을 것이다. 포개어진다- 정도?

 

다니엘은 제 손 위에 올려진, 그 손을 본다. 성우 형, 키는 비슷했는데, 손은 완전 작았다. 완전 작아서, 심장이 쿵. . .

 

"...이거 장난이었어요?"

 

입 안이 바짝 말라왔다. 그래서 침을 꿀꺽 한번 삼키고 말했다. 계속 시선이, 성우 형의 손 위에서 맴돌았다.

 

그것만 보고 있으려니까 하하-하고 발성 좋은 목소리가 웃는 게 들렸다. 햇살처럼, 그 소리가 고막에 꽂혔다. 꽂혀서는, 고막을 넘어 뇌와 심장을 향해 나아간다. 부득불 다니엘 자신의 모든 피, , 근육들을 꿰뚫으며 나아간다. 그 침략의 원동력은, 아마도 다니엘 자신의...

 

"화난 거 아니지?"

 

다니엘이 아무 미동도 없어지자, 성우가 걱정되는지 물었다. "화난거야?" 제 손 밑에 있는 다니엘의 손을, 흔들 어도 보고. "장난인데.." 제 고개를 숙여, 떨궈진 다니엘 얼굴의 밑으로 들어가 그의 표정을, 불편한 자세 속에서 구태여 보려고도 했다. 때문에 다니엘의 시야엔 성우의 손 대신 얼굴, 차오르고. 그 동안의, 그 어느 때보다 가깝게.

 

"...."

 

목소리가 떨렸다, 는 사실 정도는 다니엘 스스로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기엔, 이 순간이 너무 버거웠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다니엘은, 제 손을 빼내어 자기 얼굴 아래로 들어온 성우의 얼굴을 향해 뻗었다. 홀린 듯이, 미친 듯이. 천천히, 멈춤 없이.

 

"?"

 

형은 그 손길을 피하지도 않는다. 미칠 노릇이었다.

당연한 것처럼, 손길이 닿기 전 자기 속눈썹을 가볍게 파릇-하고 떠는 것 말고는, 아무 반항도 없었다. 그래서 탓을 돌리자면, 이건 형이 잘못 한 것이었다.

뺨을 감싸 쥐어 본다. 따듯했다. 말캉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니어서 안타까웠지만, 손에 형의 얼굴이 담겨있었다. 그럼 이보다 더 무거운 것은 없었다.

 

형이 갸웃- 하고 고개를 한번 까닥인다. 그래서 손목에, 살짝, 아주 살짝. 형의 입술이 스친다.

감당하기 힘들었다. 눈으로, 손으로, 모든 피부로-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단두대마냥 자신의 모든 숨을 처형시키고 있었다.

 

"...우리 다음엔 장소 좀 바꿀까요? 여기 너무 더워."

 

다니엘이 빠르게, 화제를 바꾼다. ...동경은 이만큼이나 무서운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동경, 동경. 일평생, 남한테, 남자한테 처음 느끼는 이것은 분명 동경이었다. 동경이어야 했다.

손을 가볍게, 무거운 것 밑에서 빼낸다. 분명 쥔답시고 쥐고 있던 것이었으나, 이제는 역으로, 깔려 있었던 것이었다.

 

"어디?"

 

그렇게 말하는 형의 얼굴이,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간다.

 

다니엘은, 당장이라도 다시 잡고 싶었으나.. 손이 떨려서, 아니, 어께에 힘이 안 들어가서, 아니, 온 몸이 저릿할 정도로 큰 충격에 빠져 있었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

 

"...저 자취해요."

 

이 말을 한 것도 아주 간신히 였다. 간신히, 아주 간신히. 어설픈 회피였다. 하도 어설퍼서, 위험해 마지않게도 그런 말 밖에나 할 수가 없었다.

 

"그래 그럼."

 

...위험한 걸 왜?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