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 to dusk (황혼)
스민
내 나이 18 살에 난 영국으로 보내졌다.
인종차별의 표본적인 곳이 바로 내가 다니는 학교였다. 어렸을 때 부터 자신을 외국에 보내겠다 이야기 했던 어머니는 일부다처제도 아닌 대한민국에서 아버지의 둘째 부인 노릇을 하며 날 키워왔고 유일한 아들인 나는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아야 할 의무를 지닌 채 어머니의 생각보다 늦게 이 곳으로 오게 됐다. 그래도 아버지 께선 나름 신경을 써 준다고 그랬던 것 이였을 테지만 사립 명문인 본 학교 학생들은 있는 것 들이 더 하다는 내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줄 만한 행동을 보여왔기에 굳이 부잣집 자제들 사이에 끼어 학교를 다닐 필요가 있었을까 싶기도 했다. 매일 등교 후 칠판에 적혀있는 모욕적인 동양인 비하 낙서들을 지울 때 마자 드는 생각 이였다.
태어났을 때 부터 한글과 함께 익혔던 영어는 지금 나의 상황에 도움 보다는 해가 되었다. 내가 듣지 못할 것 이라 확신 하며 숙덕거리는 그들의 생각도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런 수치스러운 말들이 한국어보다 더 확실히 귓가에 꽂혀 들어오는게 더 짜증이 났고 전학을 온 이후 한마디도 내뱉지 않다가 그 땐 정말로 화가 나서 '다 들리니까 제발 닥쳐.' 라고 날카롭게 소리쳤다.
새로운 한국인 친구가 전학 왔다. 키도 훤칠하니 나 만큼 커다랬고 누가 봐도 한국인 이였지만 뽀얗고 맑은 피부 때문에 오히려 이국적 으로 느껴질 정도 였다. 내가 알아듣고 있다는 걸 알고있음에도 여전히 깔깔거리며 자신을 비하하는 이 친구들이 이젠 안쓰러울 지경 이었기에 유일한 한국인 인 자신이 반가웠을 한국인 친구에게 ‘저렇게 얘기하는 거 일상이니까 신경 쓰지마. ‘ 라고 이야기 한 후 딱히 아는 척 을 하진 않았다. 그도 자신을 비하하지 않을 뿐 저들과 똑 같은 타인 일 뿐이니까.
피아노 치길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기 때문에 이 학교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단연 음악실 이였다. 음악실 이라기 보다는 악기실에 가까웠는데, 그 이유는 이곳 에선 수업도 진행된 적이 없었고 피아노를 비롯한 악기들이 즐비가 되어있어 피아노가 놓여있는 공간까지 걸어갈 길 빼고는 빼곡히 악기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였다. 특히나 피아노의 뒷 공간은 나의 몸과 책가방을 나란히 놓을 만큼의 자리밖에 되질 않아서 더 포근하고 아늑했다. 나에겐 그 곳 만이 유일하게 교실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었던 장소였으며 이어받아가야 할 회사 때문에 견뎌내듯 살아가는 나에게 있어서 낙원같은 공간 이었다.
그랬던 나만의 공간에 갑작스럽게도, 그가 침투하기 시작했다.
“거기서 뭐해?”
“…그냥, 혼자 있고 싶어.”
다 큰 남자애가 그 좁은 공간 속에 혼자 쭈그리고 앉아 있다는 게 얼마나 웃겨 보였을까, 부끄러운 탓에 고개를 푹 숙인채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 들었지만 피아노 위로 턱을 괸 채 자신을 내려다 보며 ‘왜 혼자 있고 싶은데?’ 하며 물어오는 그의 질문은 예상 밖의 일 이였다. 그게 왜 궁금한거지?
“아무도… 날 이해해주지 않아서.”
“…아무도?”
“응. 아무도,”
그는 나를 다 이해하려 들었다. 후에 물어보니 그런 이야기를 하는게 너무 안쓰러워 보였다고 말 하던 그였다. 무엇이던 간에 평소에 잘 하지 않았던 일 들은 적응이 되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불편한 것 들이 많은데 그는 나를 백 퍼센트 이해하려는 불편과 시간을 들여 완전히 나에게 스며들으려 노력하였다. 그런 그의 노력은 내가 모든 사람들을 경계하고 날카롭게 날만 세웠던 그동안의 습관들 을 완벽히 고쳐놓았고, 그렇게 깨닫게 된것 은 날 아무도 이해해 주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내가 아무도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는 것 이였다.
이른 새벽. 소리가 나지 않게끔 현관 문을 살짝 닫은 채 책가방을 등에 둘러맨 나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뛰어나갔다. 습한 공기가 온 동네를 뒤덮어 한발 한발 내딛을 때 마다 머리 사이로 물방울이 송골히 맺혀 나갔지만 상관 없었다. 온 정신이 학교 음악실에 지배되어 이미 그가 와 있진 않을까 걱정이 되어 운동화 밑창이 쇄열 되듯 연이어 발을 굴렀다.
도착한 음악실 문 앞에서 서성였다. 막상 학교에 다다르니 심장이 쿵쾅 거리기 시작하면서 몰려오는 두려움. 급한 투로 당장 학교에 와 달라던 그의 문자를 확인 하다가 너무 빨리 뛰어온 탓에 머릿속이 점점 흐려지기 시작했고 한참을 헐떡이던 숨소리가 멎게 된 까닭은 어둠속에서 나타난 그가 뒤에서 날 끌어 안아서 였다.
그 캄캄한 어둠 속 유일하게 소리가 흐르는 곳 은 음악실 이었다.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고 있는데도 자꾸만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와서, 나도 모르게 더 엉엉 울어버렸다. 자신을 보면서 항상 짓고있던 그 해맑은 웃음이 오늘따라 더 밝아보여 나도 모르게 울다가 웃어버렸고 그는 엉덩이에 털이 날 것 이라며 까르륵 웃어댔다. 그가 들고있던 케잌의 촛불을 한번에 후- 하고 불자 완전히 암전되어 서로의 얼굴만 보였던 그 공간의 불을 그가 켜 내었고 가까이 다가와 자신에게 쇼핑백을 하나 내밀었다. 그 속에 들어있던 목걸이는 참 예뻤다. 갑작스럽게 맞이한 불빛 탓에 눈을 찌푸린 채로 한참을 바라보다 맑게 웃었다. 그저 고마웠던 탓에. 그냥, 날 이렇게 까지 위해주고 아껴주던 사람이 그가 처음이였던 탓에.
“잘 어울리네.”
“…고마워, 너무… 예뻐.”
“아직도 그래?”
“…뭐가?”
아직도 혼자 있고 싶어?
긴 대답 대신 고개를 좌우로 주억 거리자 눈을 접으며 베시시 웃는 그. 더 이상 피하지 않고 올곧이 바라보며 함께 웃었다. 에어컨도 틀 수 없어서 몸 전체가 끈적 거렸지만 살짝 까치발을 들어서 그를 끌어 안으며 이야기 했다.
‘지금도 너랑 같이 있잖아.’
몸을 떼어냈지만 다시 그 넓은 가슴과 자신의 가슴이 맞 닿았다. 자신을 돌봐주는 집사에게 걸릴까 싶어 잔뜩 긴장한 채로 이곳 까지 뛰어와서 일까 살짝씩 두근거리던 심장이 조금 더 크게 쿵쾅거리며 뛰어댔다.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귓가에 속삭이는 그 말에 볼이 발그랗게 달아 올랐다. 어쩌면 내가, 그를 친구 이상으로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고,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그 목소리가 제 고막으로 간지러히 파고들었다.
“생일 축하해, 성우야.”
“꿈인가…”
환상 같았던 꿈 속 에서 깨어났다.
며칠째 머무르고 있는 이 지역, 해링본 의 향 내음은 기름냄새가 짙어 상쾌해야 할 아침에도 그닥 그렇지 못했다. 그래도 어제를 지나온 아침에게 반갑다는 인사 마냥 기지개를 쭉 킨 채로 거울을 바라보니 눈에 띄는 갈비뼈 깊게 새겨진 자욱. 그 문양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강 다니엘.’
가장 처음 눈을 떴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이 표식을 위해 지난 몇 십년간 이 세계를 돌아다니며 근원지를 찾아 다녔다. 모든 이가 지니고 있는 자신만의 코드번호가 아닌 너무나도 생소한 이 표식은 보는 사람들마다 입을 모아서 자신을 ‘돌연변이’ 라고 이야기 했다. 그를 찾기 시작했던 여행 초반엔 머무르는 지역 사람들 에게 문양을 보여주며 사연을 설명 하였는데 그러는 열에 아홉은 엉덩이를 걷어차며 돌연변이가 머물 곳은 없다며 저를 내쫒기 일쑤 였다. 그렇기에 지난 세월 동안 자신은 제 문양을 꽁꽁 숨기며 아무 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보통 몸 어딘가에 새겨진 코드번호의 상대들을 1-20 년 안으로 찾는다고 들 하는데 자신은 벌써 40 년 째 였다. 아무래도 문양의 존재를 숨기기 시작하니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이 한정적 이였고, 그랬기에 속도도 역시 많이 더뎠을 것 이다. 그렇게 지금껏 알아낸 것 이라곤 아마 이 표식의 주인은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 과 이 표식이 누군가의 이름 일 것 이라는 것. 하지만 그 마저도 본래 새겨진 코드번호가 어떠한 사람의 이름이라는 것 이라는 사실로 알게 된 것 이기에 실제로 알아낸 것 은 딱히 없었다.
어느새 평범한 일상으로 자리 잡아버린 문양의 주인을 찾는 일은 일어나자 마자 본 마을에 서는 장에 부리나케 달려가느라 더 몽롱 해 졌지만 평소와 달리 어제 꾸었던 꿈은 확실히 제 정신을 번쩍 트이게 만들었다.
“마담, 성우가 뭘 까요.”
“서우? 그게 뭐야.”
“... 아니에요.”
아무래도 자신이 상상력이 뛰어난게 아닌가 싶었다. 기억이 잘 나진 않았지만 꿈 속에서 정말 상상도 못했던 일 들이 벌어진게 분명 했기에 조금씩 기억을 더듬어 보고 있었다. 매번 장이 설 때 마다 들르는 상점의 마담 에게도 질문 해 봤지만 자세히 설명 했다간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것 같아 꺼내었던 말을 다시 물렀다. 하아- 도대체 무슨 꿈 이지. 갑작스레 생긴 변화는 단조롭던 일상에 깨나 큰 영향으로 끼쳐졌다.
***
“너 한국어 다 까먹었지.”
“뭐래, 다 기억 하거든?”
분명 토종 한국인 인데, 아무리 어렸을 때부터 영국에서 나고 자랐다 해도 자신과의 대화 조차 영어로 나누는 그가 참 의아했다. 그럼 한글로 니 이름 여기다 써봐. 쓸 수 있어? 공책을 내밀며 손에 볼펜까지 쥐어 주었다.
“아 진짜 자존심 상해, 이런 건 기본 아냐?”
“지금도 영어로 얘기하는 중 이면서 잘도,”
‘강 다니엘.’
“자 여기, 잘 쓰지?”
“…그러네.”
… … 사고가 정지 된 듯 일 순간 모든게 멈췄다. 환상에 갇힌 것 마냥 굳어버린 몸이 정말 꿈이라는 걸 일깨워 주는 듯 했다. 강 다니엘 이라는게 네 이름이야? 종이에 적혀진 문양과 같은 모양을 띄는 내 갈비뼈 깊게 새겨진 이 문양이, 그게, 네 이름이였어? 하지만 이를 자각한 순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땀으로 흠뻑 젖은 옷은 내가 꿈속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았는지 알 수 있게 해 주었고, 방금의 꿈 으로 이 전의 꿈 까지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찾고있는 이 문양의 주인이 바로, 꿈속에서 나와 함께 했던 그, 라는 것이었다. 무슨 까닭이 따라서 그랬던 것 인지 알 수는 없으나 지독히도 외로워 하던 날 따뜻히 감싸 주었던, 정말 친절하고 자상했던 그. 난 꿈 속의 이상한 세계 속 에서도, 지금의 현실 에서도 타인의 시선으로 인해 핍박을 받으며 힘듦을 겪고 있었고, 꿈 속에선 그가 날 위로 해 주었지만 지금 이 곳 엔, 나 자신 말고는 내가 의지할 곳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껏 문양을 보고 상대를 찾을 수 있을 것 이라 얘기했던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잘 될 거라는 말도, 긍정적인 답변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자신은 어떤 생각으로 그랬던건지 지난 40년간 꿋꿋이 그를 찾아왔다. 그게 다 이 꿈을 꿀 것을 알고 그래왔던 것 인 걸까? 장의 마지막 날 인 오늘. 지금껏 꽁꽁 숨겨왔던 사실을 이 세계의 전체를 돌아다니면서도 항상 들르는 단골 상점의 마담 에게 처음으로 털어 놓았다. 자신이 지니고있는 문양과 지난 밤 꾸었던 꿈에 관한 이야기까지, 전부.
“M-6SW25.”
“…네?”
“너와 같은 경우의 여행자를 본 적이 있었어.”
“…정말요?”
한 100년 전 인가.
그 여행자는 코드번호 ‘M-7EG10 ‘ 를 가지고 있었고 나와 비슷한 문양이 팔목 전체를 덮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상대를 찾는 노고 대신 팔목의 표식을 지워 달라며 울부짖었고 그 당시때만 해도 돌연변이의 존재는 즉시 암살당하는 지극히 고지식한 시기 였기에 마법사 시절의 마담 은 군말없이 그 표식을 흔적도 없이 지워 주었다고 했다. 허나, 표식의 주인과 만났을 경우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 도록 주문을 단단히 걸어 두었다더라. 그래서 어떻게 됐다고?
“그 여행자는 문양의 상대를 찾았나요?”
“그야 모르지, 하도 오래된 일 이라 기억도 잘 안나고, “
“…저 같은 사람이 또 있다는 것 말고는 딱히 큰 정보가 되지 않았네요.”
“말 좀 끝까지들어, 여기서 요점은 내가 그 여행자와 아는 사이인 사람을 알고있다는거야.”
자네, 당장 떠날 채비를 하는 게 좋겠어.
마담이 내어준 지도 대로 라면 꼬박 사흘은 쉬지 않고 걸어야 할 터 였다. 절로 나오는 한숨에 고개를 푹 떨구고 있을 무렵 탁상 위로 무언가를 내미는 마담.
“다른 기억들은 잘 나지 않아도 내가 만들었던 물건들은 다 기억하고 있어서, 그 때 그 여행자에게 내 주었던 것 과 같은 거야. 그 문양의 상대를 찾는데 에도 분명 도움이 될 테니까 잘 지니고 다녀.”
그리고, 빛이 나는 곳에 머물러. 명심해.
손을 내 저으며 천막 밖으로 자신을 내보낸 마담은 진한 보랏빛 입술 화장 위로 예쁜 호선을 그리며 웃어 보여 그에 자신도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보라색 벨벳 천막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남은 자신은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마담 이렇게 사라지면 몇 년은 보기 힘든데, 머리를 긁적이며 지도를 펼쳤다. 후우- 그래, 40 년도 더 넘게 찾아 왔는데 그깟3일 걷는다고 몸이 어디가 부서지기라도 하겠는가, 그렇게 모든 짐들을 등에 진 채 출발한 여정은 꽤 부지런하게 걸은 탓에 닷새 째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그 전에 머물던 마을과는 달리 시끌벅적한 해안 지역인 헨타니아 는 모든 사람들이 해맑게 웃으며 자신을 반겨주는 탓에 괜스리 민망 해 지기 까지 할 정도 였는데 마담이 얘기 했던 그 사람의 거주지는 마을 의 가장 안 쪽에 위치 했기에 다시 몇 시간을 걸어 가야 했고 드디어 도착한 그 곳은 해안 마을의 집 답게 푸른 빛의 지붕을 띄고 있는 건물 전체가 하얗고 커다란 저택 이였다. 마담이 챙겨준 자루 속 식량이 딱 한개를 남겨두고 있었기에 하루 전 부터 꼬박 굶고 있던 자신. 여전히 꼬르륵 거리는 배를 붙잡고 저택의 겉 을 둘러보고 있었을까 별안간 자루 속에 들어있어 자신의 목에 걸어놨던 푸른 빛의 펜던트가 눈에 띄게 빛이 났다.
'빛이 나는 곳에 머물러. 명심해.'
“...여기가 맞구나,”
드디어 도착 했다. 한껏 들뜬 마음 으로 숨을 크게 고른 후 종을 울리려는데 자신의 펜던트와 같이 빛나고 있는 명패가 눈에 들어 왔다. 어? 이 문양... 제 몸에 새겨진 문양과 흡사한 모양을 띄고 있는 문양이었다.
그에 확신을 가진 채 들어선 집 안은 넓은 마당이 예쁘게 가꾸어 져 있었다. 역시 해안 마을 이여서 인지 시원한 느낌으로 꾸며진 포근 해 보이는 해먹과 하얀 페인트 칠이되어있는 조형물 들이 탁 트인 기분을 나게 해 주었고 겨우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건만 계속해서 꼬르륵 거리는 배에 남은 식량을 입에 베어 문 채 자신도 모르게 해먹으로 몸을 털썩 뉘었다. 한참을 힘들게 걸어 와서 였을까, 아니면 지난 시간 동안의 긴장이 모두 풀려서 였을까. 쏟아져 오는 잠을 굳이 미루지 않고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
“너는?”
“...어?”
“넌 한국어 다 안 까먹었어?”
“야, 난 한국에서 몇년을 살았는데.”
“얼른 써 봐 그럼.”
네 이름, 쓸 수 있지?
자신이 해 줬던 것 마냥 손에 볼펜 까지 쥐어 준 그가 맑게 웃는다. 이게, 나 따라하고 있네. 그저 웃으며 손에 꽉 말아 쥔 펜으로 한자 한자 이름을 적어 갔다. 자. 봐, 나도 잘 쓰잖아-
'강 다니엘.' '옹 성우.'
옹성우. ... 잠깐만, 이거. 이게 내 이름이야? 글씨를 다 쓴 후 고개를 휙 들어 올려 그에게 질문 했다. 내가, 내가 옹성우야?
“ 네가 옹성우지 누구야.”
“그럼 넌? 넌 누군데?”
... 번쩍 뜬 눈 앞엔 어두운 인영이 있었다.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키자 자신과 가까이 하려 숙이고 있던 몸을 벌떡 일으킨 그는 뒷걸음질 치면서도 자신을 올곧이 바라보았다. M-7EG10.
“...네?”
“내가, M-7EG10 이라고.”
“...”
“그리고 강 다니엘.”
마담이 이야기 했던 100년전 여행자와 같은 코드번호, 이 발음으로 읽는게 맞는 건가. 이질감이 크게 느껴졌지만 내가 지금껏 찾고있던 그 사람이 눈 앞에 있는게 맞는 것 같다는 확신이 들어 울컥 눈물부터 차 올랐다. 그러니까, 제가...
“M-6SW25.”
“...”
“옹성우 에요.”
늦게 와서 미안해요... 꿈 속 에서 자신을 다독이는 그를 안아줬던 것 처럼 그의 목을 감싼 채 엉엉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눈물을 흘리던 그와 나는 차근차근 잔뜩 어지러져 있던 조각들을 맞춰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꿈 속에 나타났던 것이 내 앞의 이 자가 맞다는 사실과 그도 나와 같은 꿈을 100년 째 꾸어오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 얼마나 힘드셨어요, 그동안 어떻게 살아오셨어요…
“찾았으니, 그걸로 됐네요.”
“…네?”
“150년 동안, 당신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닿지 못해서… 거의 포기하고 있었거든요.”
“…”
“당신이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
“전 당신을 그리워하고, 계속해서 찾고 있었어요.”
그는 방랑 생활을 했던 시절 이런 이야길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몸에 새겨진 코드번호의 상대방과는 정신이 연결 되어있데, 그래서 모든 걸 함께 공유할 수 있다고 했어. 서로를 더욱 빠르게 찾을 수 있도록 말이야.’ 그 때문 인지 그는 자신이 꾸는 꿈이 내가 꾸었던 꿈과 일치하는지 궁금해 했다. 그래서 내가 얼마 전부터 꾸기 시작했던 꿈 들의 내용을 이야기 해주자, 그는 해맑게 웃으며 반응 해 주었다. 자신과 같은 내용이 맞았구나 하고 이야기 하면서.
“마담은 시간여행자 에요. 100년 전 날 봤을 때부터 이미 당신과 내가 만나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죠.”
“…다 알고있었다구요?”
“네. 직접적인 개입을 하지않는게 시간 여행자들 끼리의 암묵적 룰이여서 당신을 알고 있었어도 아는 척 할 수 없었을거에요. 까딱 잘못 실수 했다간 시간의 파동으로 인해 이 세계 존재 자체가 사라져 버릴 수도 있으니까, “
“그래도 그렇지… 그것 때문에 100년을 넘도록 절 기다리셨잖아요…”
“…그때의 저에겐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았어요. 돌연변이 들은 암살의 표적이 되기 일쑤 였고 지금처럼 자유로워질 걸 예상했다면 그런 선택은 하지 않았을테지만 문양이 가려지는 부위에 그려져있는 당신과 달리 전 팔목 전체에 뒤덮혀져서 어딜가던 눈에 띄게 보여졌고 매순간 순간 사방에서 위협을 느꼈어요. 마담은 그래서 그랬을거에요. 제가 지워달라 사정사정 했기도 했었고,”
“... 죄송해요. 너무 늦게 찾아와서...”
“...말 했잖아요, 당신을 찾았으니 그걸로 됐다고.”
“그치만... 당신의 100년은요. 절 찾기위해 소비한 100년은 어떻게 보상 받을 수 있냐구요...”
“... 당신도 40년간 절 찾아왔잖아요,”
“...”
“그리고 이 문양.”
“문양이요?”
“네. 그 동안 무슨 뜻인지 궁금했었거든요. “
이젠 꿈 속 세계에서 우리 둘 서로의 이름 이었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고맙다고 해줬다. 자신 같았으면 화부터 냈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해보니, 더욱 그에게 고맙고 가슴이 잔뜩 뭉클 해 졌다. 100년 전, 문양의 상대방인 자신 과의 만남을 본 마담의 권유로 마담과 자신이 만날 때 까지 이 마을에서 거주하고 있으라 일렀다는 마담. 그는 마담이 건내준 보따리를 싸 들고 본 마을로 들어와 자리잡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 때 까지만 해도 허허 벌판에 사람 하나 없던 마을이였던 헨타니아 는 70년 전 쯤 갑작스런 해산물 떼가 밀려 들어와서 급격히 성장 하였고 그는 헨타니아의 성장을 예상했을 마담의 선견지명에 혀를 내두르며 돈을 떼로 벌어들였다고 했다.
“그때 줬던 물건들이, 지도하고 식량들, 그리고 이 명패였어요.”
“...제 문양이 새겨진 명패군요.”
“그래요. 그냥 제 손목에 있는 문양만 가져다 새긴 건 줄 알았더니,”
“가까이 닿으면 빛나는 작용을 하는 물건이었어요.”
“마담이 그러더라고요, '빛이 나는 사람을 찾아. 명심해.'“
“' 빛이 나는 곳에 머물러. 명심해.'“
“... 그 사람은 100년이 지나도 여전하군요.”
“그러게요,”
지난 40년 간 마음놓고 웃었던 적이 있었던가? 주변사람들의 우스개 소리에도 그저 문양의 상대에 대한 생각 때문에 도저히 입꼬리를 올릴 수 없었던 나였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허무했지만, 이렇게라도 만날 수 있게 되어서 너무도 행복한 마음이였다.
“괜찮다면, 이 마을에서 저와 함께 해줄래요?”
“...어,”
“절대 당신을 붙잡아 두려는게 아니에요. 하고 있던게 있었다면 다시 돌아가도 좋고, 그냥. 난 항상 이 곳에 있을테니까, 언제든 찾아와도 좋다는 뜻 이에요. 그러니까...”
“아뇨!! 싫다는게 아니라요, 제가 그래도 될까 싶어서 그랬어요...”
“언제나 선택은 당신의 몫인걸요,”
“...”
“이곳까지 날 찾으러 와 준것도 당신의 선택 이였구요.”
“...전,”
쉽사리 입이 떼어지지가 않았다. 난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거지? 40년간 이 사람을 찾기위해 여행 해 왔는데, 당연히 함께 하겠다고 이야기 해야지 뭐하는거야...!
“원한다면, 다시 돌아가도 좋아요. “
“네?”
“꿈 속으로. 아니, 현실 속으로.”
“무슨 소리를 하시는거에요,”
“의지가 강하면 돌아갈 수 있어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머리속이 몽롱하다. 지금 저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헷갈릴 정도로 눈앞의 모든 것 이 빙글빙글 돌면서 캄캄해진 앞. 난 또 다시 잠에 드는 걸까, 아니면 지금껏 너무 피곤해서 잠깐 꿈을 꾸는 걸까.
***
“야, 옹성우. 옹성우!!!”
“...뭐야.”
“너 왜 이렇게 정신을 못차려? 우리 늦었어 임마!”
“뭐?”
“빨리 일어나! 오늘 마지막날 이라서 방검사 한다고 했단말이야!”
머리가 깨질듯 아파왔다. 지금까지 내가 본건 뭐지? 너무나도 생생했던 탓에 벙 찐 채로 재환에게 끌려나오듯 방에서 빠져나왔다. 여기 어디야?
“이 미친새끼, 너 자꾸 헛소리 할래? 왠지 어제 일찍 자더라니, 다같이 밤 새기로 해놓곤 먼저 쳐 자니까 좋았냐?”
“아니 내가 꿈을 꿨는데,”
“꿈 얘기는 나중에 하시고, 일단 버스타러 가자- 엉??”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길었다. 정말 몇십년의 세월이 지나간 듯한 기분에 전신이 오싹해져서 양 팔뚝을 교차시켜 손바닥으로 비볐다. 으... 진짜 기분 이상한데. 버스가 연이어 세워져 있고, 일어나지 않는 자신들 대신 짐을 실어준 친구들 에게 고맙다 이야기 하는 재환을 따라 인사를 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한참을 벙 쪄 있었을까, 그렇게 귀가 멍멍 거릴 정도로 시끄럽게 떠드는 친구들의 소음을 뚫고 나온 목소리는 자신의 귀를 쫑긋 세우게끔 만들었고 한참 자고 일어났음에도 몰려오는 피곤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도 고개를 한번에 휙 들어 올렸다.어. 어디서 들어본 목소린데,
“다들 짐 똑디 챙겼제? 놓고 온거 진짜로 없제?”
“네에-!!”
“혹시라도 만약에 짐 두고 온 거 있는 아 있으면 그 아 혼자 뛰어 댕겨와야된디. 알긋나? “
“에이 쌤- 택시라도 잡아줘요!!”
“택시를 잡던 히치를 하던 알아서 하고, 짐 다 챙깄나 물어본거다이가! 짝꿍 있는가 다 확인 해 보고!”
“있어요!”
“그람 출발 한다- “
M-7EG10. 그사람 이였다. 분명 꿈에서 보고왔던 그사람. 그러니까 저 사람이... 우리 쌤인거야?
“야. 우리 쌤 바꼈냐?”
“뭐래, 의건쌤 교생으로 같이 수학여행 온거잖아. 너 진짜 갑자기 왜그래?”
“아니 내가 말했잖아- 이상한 꿈을 꿨는데 거기에 저 쌤이 나왔단 말야.”
내친구로... 말을 이어가며 꿈 속에서 또 꿈을 꾸고 왔다는 이야기 부터 시작해서 모든 내용을 다 말 해주니까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보는 재환. 그럼 너 꿈 속에서 40년이나 보내고 온거네?
“그렇다니까? 잠을 잤는데도 잔 것 같지가 않아,”
“...내가 봤을 때 너,”
“너...?”
“의건쌤 좋아하네.”
“...에라이 새꺄,”
“아 왜애-!!! 야 그렇게 40년동안 찾아다니는 꿈까지 꿀 정도면 그냥 사랑하는 거 아니냐?”
“지랄, 너한테 얘기한 내가 잘못이지.”
에휴- 팔짱을 낀 채로 창 밖을 바라보았다. 아니 무슨 꿈을 이렇게 다이나믹 하게 꾸냐고, 심장이 아직까지도 벌렁거리는 탓에 눈을 꾹 감았다 떠 내자 한참 재환에게 꿈 얘기를 하는 사이에 휴게소에 도착을 한건지 주차장 안쪽으로 차가 들어서고 있었다.
“옹, 니 뭐 먹을꺼?”
“아니, 너 혼자 갔다와.”
“... 새꺄 너 그렇게 굴면 내년에 대학 들어가도 아싸 각...”
“아 혼자 갔다오라면 갔다와!!!”
“아 알았어! 진짜 승질머리 하고는...”
혼란스러웠다. 단시간에 너무 많은 걸 받아들이느라 그런건지 머리가 터질 듯 어지러웠고 그렇게 눈을 꾹 감고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성우 니는 안내리나?”
“...쌤.”
“오늘 아파서 좀 늦게 일났다며, 좀 괘안나.”
“...아뇨, 안 괜찮은 것 같아요 쌤.”
“왜, 마이 아프나. 어디가 아픈데?”
“그게 아니구요, 제가 좀 이상한 꿈을 꿨거든요.”
“...꿈?”
“네. 쌤이랑 저랑 친구였다가, 막 서로 몸에 이름이 새겨져서...”
일순간 굳은 표정 이였던 것 같아 보이는 쌤이 자신의 말을 짜르며 이야기 했다. '혹시 그 얘기, 내일 학교에서 다시 해줄 수 있겠나.'
“네, 뭐. 할 수 있어요.”
“알겠다, 피곤하면 한숨 푹 자래이.”
고작 꿈 얘긴데 뭐가 궁금한건지 꽤 진지한 표정을 한 채 일어서는 쌤. 순간 반짝거리는 목 언저리가 눈에 띄었고 분명 어디선가 본 것 같단 느낌을 받았지만 한참을 떠올려봐도 기억이 나질 않아 고개를 저어 털어 내었다. 아, 진짜 복잡해. 하룻밤 사이 40년 이상의 세월을 견뎌낸 듯 머리에 과부하가 온 것 같았다. 어차피 도착하면 깨워 주겠지, 하고 그대로 의자에 기대었다. 눈을 감아도 쌤의 목걸이 모양이 눈 앞에서 아른거려 잠에 드는데 조금 시간이 들긴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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