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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녤옹

 

월간 4월호 부터 이어지는 시리즈입니다.

 

 

 

 

 

인공호흡 5

예하 C

 

 

 

 

 

16.

질식에 대한 기억이 있다.

 

인간은 양수를 벗어나 세상에 내던져지는 순간부터 물 속에서 호흡하며 살아가는 법을 서서히 잊어간다. 성우가 수영을 배우게 된 것은 그런 방법을 잊은 지도 한참이 지난 후인 열 살 무렵이었다. 어린이 풀에서 물장구를 치다가 자신이 생겨 어른들이 사용하는 풀에 들어갔다. 당연히 둥둥 떠올라서 물고기마냥 헤엄을 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냥 보기에는 크게 깊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당연히, 물을 잔뜩 먹고 구조 요원에 의해 끌려 나왔다. 그때 성우는 처음으로 물 속에 갇혔을 때의 질식을 체감했으며 한동안은 물에 들어가지 못했다. 다시 수영장에 발을 딛게 된 건, 어른 수영장에 들어갔다가 죽을 뻔 했다고 친구들에게 한껏 놀림을 받아서였다. 수영을 배워서 제 키보다 깊은 물 속에서도 보란듯이 수영을 해서 친구들의 놀림 따위를 받지 않겠다는 치기 어린 생각이었다.

 

그 생각이, 어느새 성우의 삶에서 수영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탈바꿈 시킨 시작이었다. 이제 스물 한 살인 성우는 마음껏 수영할 수 있었고, 오히려 땅 위에서보다 물 속에서의 시간을 더 편하게 느꼈다. 아마 시작한 계기는 보잘 것 없었어도, 수영을 배우며 느꼈던 충만감이나 일체감이 성우를 이 길로 이끌었을 거라고 지금도 성우는 생각했다.

 

성우는 수영을 했고,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니엘의 손을 놓던 순간, 다니엘을 두고 어디 가지 않겠다던 약속을 기억해 냈고, 조악한 변명을 했다. 나는 계속 여기 있으니까. 그만 두거나, 다른 곳으로 도망치거나 하지 않으니까, 약속을 어긴 건 아니라고. 당연히 먹일 변명은 아니었으나, 약해질대로 약해진 성우의 마음은 그런 변명을 적당히 합리화 시키며 다니엘을 놓은 죄를 눈감아 주었다.

 

그렇게 적당히 넘어간 댓가를, 이제서야 치르고 있는 걸까. 물살을 가르지도 않고, 그저 눈을 감은 채 물 속에 깊이 가라앉은 채 성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양수에 잠긴 태아처럼 몸을 웅크리고 눈을 감은 채 물 안에 잠겨 있는 것은 편안했다. 이대로 영원히 눈을 뜨지 않고 잠길 수만 있다면. 그러면 더이상 이렇게 아프지 않아도 될 텐데.

 

다니엘을 놓은 날 이후, 성우는 수영장에 있는 시간을 늘렸으며 물 속에 잠기는 시간도 늘었다. 다니엘이 볼 수 있을 때는 연습에 매진했으나, 그가 보이지 않으면 종종 물 속에 가만히 잠겨있고는 했다. 숨이 막힐 때까지 잠기고 나면, 다니엘이 없어 느끼는 질식과 별 다를 것이 없는 감각이 성우를 안심시켜 주었다. 다니엘의 품에 안겼을 때 느끼던 그런 체취도, 온기도. 그런 게 없어서 겪는 질식은 아닐 거라고.

 

이런 건 일상적인 거야. 난 수영을 하니까. 물에서 살아가니까.’

 

다니엘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저 일상적인 질식일 뿐이라고. 그러나 성우의 마음은 이미, 그런 합리화를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도 많은 것들을 적당히 넘긴 이후였다. 더이상은 합리화를 시키는 생각이 작동하질 않았다. 무리한 것을 자꾸 합리화를 시키다보니 아예 망가져 버린 것만 같았다.

 

내가, 너 없이 살 수 있을까?’

 

다니엘이 없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괜찮아야 했다. 버린 건 성우 자신이었으니까. 그리고 성우에겐, 수영이 있으니까. 애초에 그런 것들을 위해, 서로의 앞날에 걸림돌이 되는 걸 없애기 위해, 그리고 수영보다 소중한 것을 갖지 않기 위해 다니엘을 가차없이 버렸다. 선택에 대해 내가 원한 게 아니라고 징징거릴 나이는 아니었다.

 

성인. 성인 간의 연애. 책임도, 감당도, 3 자의 개입이 없었으니 성우가 짊어져야 할 것들이었다. 그리고 이제야. 다니엘의 손을 놓은지 3 개월이 지난 이제서야 성우는 정말로 괴로워졌다. 나는 언젠가 죽도록 이 날을 후회할 것이다. 다니엘의 손을 놓을 때 한 생각을, 성우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하고 있었다.

 

알면서도 놓았으니까, 버텨야 하는데. 괜찮아야 하는데, 괜찮지 않았다. 물 속에 잠겨 있으면 어느 정도는 괜찮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조차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물 속에 아무리 길게 잠겨 있어도, 결국 남는 것은 후회와, 다니엘을 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 뿐이었다. 마음은 무력했다. 바꿀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내가 어떻게, 너 없이 살 수가 있을까.’

 

알면서 선택한 일이었다. 돌이킬 수 있는 일이어도, 돌이키고자 할 용기가 성우에게는 없었다. 비겁하고, 이기적이고, 겁도 많고, 용기 없는 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도 다니엘에게 미련을 갖지 않는 게 옳았다. 이번 합리화는 그래도 성공적이라는 생각을 멍하니 하며, 성우는 숨을 쉬기 위해 물 위로 올라왔다.

 

폐를 열고 숨을 깊게 들이마셔도 가슴은 영 답답하기만 했다. 어차피 물 속에서도 체험하는 질식이다. 그래서, 괜찮지 않지만 괜찮았다. 원래 이런 거니까. 이런 게 일상이니까. 그래서, 정말로 괜찮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17.

이 정도면, 나 꽤 많이 기다린 거 아닌가? 저 끝의 레일에서 물살을 가르고 있는 성우를 보고, 음료수를 마시며 쉬고 있던 다니엘은 그런 생각을 했다. 사실 다니엘은 성우의 한계가 고작해야 한 달에서 길어도 두 달 정도라고 생각했다. 다니엘은, 그럴 의도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의외로 허술한 구석이 있는 성우의 아주 작은 것까지도 세심하게 챙겼다.

 

헌신에 가까운 연애였다. 물론 성우는 다니엘을 그만큼 사랑해 주었고, 다니엘이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을 챙겨 주었다. 누가 더 주고 덜 주고 할 것이 없는 이상적인 연애였다. 성우를 잃고 다니엘이 그 좋아하던 고기조차 반기지 않을 정도로 입맛을 잃어 버리고 품에 허전해 많이 울었던 것처럼, 성우 또한 다니엘이 없이 느끼는 상실감은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계속 눈에서 보이니, 분명 얼마 지나지 않아 제게 돌아올 것이라고. 자기가 잘못 생각했다고, 적어도 후회하는 티라도 내 주었다면 다니엘은 역시 그렇지 않냐며 성우의 손을 다시 잡으려고 했다. 아주 약간의 틈이라도 보여 준다면.

 

하지만 성우는 너무나 멀쩡해 보였고, 신기록을 세웠고, 연습량까지 늘린데다가 최근에는 다니엘이 없이도 종종 웃는 것 같았다. 괜찮은 척 하는 거라고 생각했으나, 삼 개월이 넘어가자 슬슬 괜찮은 척이 아니라 정말로 괜찮은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동시에, 나는 여전히 괜찮은 척만 하고 있는데 정말로 성우가 괜찮은 거라면 이건 역시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옹성우라는 이름 석자만 봐도 가슴이 애틋해졌고 동시에 고통스러웠다. 세상에 그 많은 사랑과 이별을 이야기하는 노래, 문학이 있지만, 다니엘에게 있어 옹성우만큼 애틋하면서도 고통스럽게 문학적인 것은 없었다. 옹성우라는 존재가 다니엘에게는 세상의 모든 노래였고 모든 시 그 자체였다.

 

수영이고 뭐고 그만 두고 항의라도 하듯 술이나 퍼마시며 매일을 보내고 싶었다. 그렇게 망가지면 성우가 자신을 봐줄 것 같았다. 이제라도 울면서 달려와 미안하다고 할 것만 같았다. 그런 시위는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성우를 보지 못하는 건 괴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괜찮은 척을 하며, 자기는 정말로 괜찮다고 시위라도 하듯 성우의 곁을 맴돌았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로 괜찮지 않다고 생각했다. 매일 밤, 성우를 안고 잠들던 날이 떠올라 겨울이 아님에도 몸을 웅크리고 추위를 견디며 잠들었다. 온몸에 오한이 들 정도로 성우가 보고 싶었다. 이제는 한계였다. 당장이라도 성우의 발치에 엎드려, 제발 돌아와 달라고, 형이 없이는 살 수가 없다고 울면서 빌고 싶었다.

 

하지만 성우는, 한 번 본인이 생각한 것은 바꾸지 않는다. 옆에서 무리하는 게 빤히 보여도, 본인이 내린 결정을 본인이 철회하는 게 아닌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다니엘이 아무리 매달려도, 성우가 스스로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돌아올 리가 없었다. 그래서 다니엘은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만, 성우는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

 

마지막 메시지가 세 달 전이었다. 사랑한다고, 잘 자라고. 그런 인사를 나누던 그런 메시지였다. 그 이후에는 단체 창에서만 볼 수 있었던 성우에게, 떨리는 손을 들어 메시지를 보냈다.

 

그저 성우가 없어서 느끼는 괴로움이라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럴만한 계기도 없었지만, 한계였다. 한계여서. 성우가 없는 시간을 계속 보내는 게 한계여서, 몸이 말을 듣질 않았다. 수업도 가야 하고 연습도 가야 했다. 수영장에 가서, 성우를 봐야 하는데. 그 괜찮아 보이는 얼굴이라도 봐야 그래도 견딜 수가 있는데.

 

[내 아파요.]

 

성우를 볼 수가 없어서 아픈 것인지, 아니면 계속 괜찮은 척 하며 성우를 봤기 때문에 아픈 것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더라. 조심해야 해. 그렇게 말하던 성우가 생각났다. 가을이니까 혼나진 않겠네. 우스운 생각이었지만 웃음이 나오진 않았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 와중에도, 마지막으로 성우가 보낸 메시지는 또렷하게 보였다.

 

나도 사랑해, 다니엘.’

 

목소리가 선했다. 헤어지자고 말하기 전날 밤, 그렇게 말했다. 그 목소리가 들리는 메시지로, 자기도 사랑한다고. 그건 그저 거짓말이었을까, 아니면 진심이었을까. 정말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헤어지고 싶다고 말했을까. 아니면.

 

[아파요, .]

 

그런 고민을 끌어 안은 채, 다니엘의 손 끝에서 휴대폰이 미끄러졌다. , 보고 싶다. 끝까지 드는 생각은, 그 하나였다. 결핍이 병을 부른 것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