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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녤옹

* 월간 7월호와 이어집니다.

 

 

 

 

탱탱볼 놀이 下

좀비

 

 

 

 

 

 

 

 

 

 

4

 

공항 직원들은 항공사의 결정이 해산을 함의한다고 받아들였다. 부서 안엔 팀장님과 다니엘만 남아 있었다. , 다른 분들은요? 조심스럽게 물어보았고 팀장님은 고개를 저었다.

 

튄 거지. 죽을 것 같으니까. 당장 윗선이 아무도 없어.”

 

팀장님은 희미하게 웃었다.

 

다니엘씨도 그냥 들어가. 어떻게 돌아갈지 막막하겠지만.”

팀장님은요?”

 

그는 번잡하게 늘어져 있는 자신의 책상을 대충 정리한 뒤 차키를 집어 들었다.

 

나도 돌아가야지. 집에 무사히 가게 되어도 다들 잘 있을지 모르겠다.”

 

팀장이 먼저 자리를 뜨고 나서야 다니엘은 자신의 짐을 정리했다.

 

 

 

다니엘은 걸었다.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심정보다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차라리 걷겠다는 심정에 가까웠다. 어차피 집으로 돌아가봤자 아무도 없었다.

 

외계체는 모든 것을 건드렸다. 전력소의 일부를 건드리면 전기가 끊겼고, 방송 위성을 건드리면 방송이 끊겼고, 안테나를 건드리면 통신 신호가 끊겼다. 공항 또한 마찬가지였다. 네 시를 막 넘은 지금은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태양빛으로 어느 정도 생활이 가능했지만 밤이 되면 이곳 또한 마비될 것이다. 공항은 한 순간에 역할을 잃었다. 한 면을 모두 유리로 감싸고 있는 구조는 그 자체로 바깥의 상황을 중계해주는 것 정도만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어떻게 사라지고 있는지, 한국의 불이 어떻게 꺼지고 있는 지 밖만 보면 알 수 있었다.

 

다니엘은 계속해서 걸었다.

 

사람들이 다 빠진 터미널은 고요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공항에서 한 사람이 보였다. 왼쪽으로 틀어져 걷기도 하고 오른 쪽으로 틀어져 걷는 사람이었다. 움직이지 않는 무빙워크와 꺼진 조명의 공항은, 한 면으로 가득 찬 유리 창에 의하여 간신히 생명력을 부여 받은 느낌이었다.

 

저기요.”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얼굴을 보니 알겠다. 오전에 잠시 이야기를 나눴던 남자였다. 그가 입은 제복은 정갈하게 정리되지 않은 채 바지 바깥으로 빠져나와 있었다.

 

……. 저기요 말고, 성우 씨요.”

 

그가 웃었다. 웃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마지 못해 웃는 그런 웃음이었다.

 

옹성우요. 제 이름.”

. .”

못 알아볼 뻔했어요. 사복은 또 다른 느낌이네요.”

그 쪽도요.”

, 갈아입고 올게요. 기다려 줄 수 있어요?”

 

함께 가자는 내용을 내포하는 질문이었다. 기다릴 필요가 없었지만, 혼자라는 막막함이 아까부터 닥쳐와서 그런지, 그와 함께 가고 싶었다. 설령 그가 불과 한 시간 반 전에 본 사람일지언정 그랬다. 그러죠, . 내 대답에 그는 이를 보이지 않은 채 살짝 웃었다. 아까 보았던 옷으로 갈아입고 나온 그가 내게 다시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일단 조금 더 걸을까요.”

 

그저 그와 내가 여태까지 하던 것만이 대답이 되었다.

 

 

 

공항의 실내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은 쉬운 일이었으나 하늘 바로 아래에서 조금 더 걷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외계체가 닿는 모든 것은 지워버리고 땅에 닿았다가 다시 튀어 올랐다. 그것은 다시 추락하며 다른 무언가를 지우기 위해서 움직였다. 사람들은 아이의 순진한 괴롭힘을 당하는 벌레처럼, 아이의 손가락을 피하듯이 애를 쓰며 일정한 방향 없이 뛰어 다녔다.

 

외계체는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컸다. 바닥에 닿을 때는 그 크기가 웬만한 대형 트럭 두 대 정도였기 때문에, 바닥에 닿기 전에 여찌저찌 피할 수 있었다. 퉁 소리와 함께 한참을 하늘 위로 올라갔고 그것이 내려오는데도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다니엘은 밖으로 나가려는 성우의 손을 잡아 방향을 틀었다. 멈춰 있는 화물 엘리베이터의 옆 계단으로 나와 내려간 곳은 지하주차장이었다. 전기가 끊긴 주차장은 어두웠다. 저 멀리 출구에서 희미하게 빛이 보일 뿐이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공항을 빠져나온 듯했다. 핸드폰 플래시 라이트를 켜서 비춰보았더니 몇 개의 자동차들의 형체만 어렴풋이 보였다.

 

이렇게 가야 쪼매라도 질러 갈 수 있을 거예요.”

 

주차장은 넓었다. 성우는 항상 차를 IDT 센터에 주차시킬 뿐 한 번도 인천 공항을 이용한 적이 없어 몇 번 방향을 헤맸다. 그럴 때마다 다니엘이 그의 팔꿈치께를 잡고 방향을 정해줬다. 방향 끝의 빛을 따라갈 때마다 다니엘의 팔꿈치에 닿는 그의 온기를 느낄 때마다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혼자 있는 것보다 의지할 수 있는 서로가 더 절실했다. 그들은 나가기 전 키득키득 웃으며 짧은 대화를 나눴다. 맥락 없이 가볍게 오가는 대화가 그들의 빳빳한 어깨를 조금 풀어주었다. 밖이 가까워진다는 것을 밝아지는 시야가 알려주고 있었다. 미약한 두려움이 다니엘의 몸을 감쌌다.

 

그들은 뛰지 않았다. 아까 걷겠다는 약속을 무언으로 지키겠다는 듯이.

 

 

 

 

5

 

외딴 섬에 건설된 인천공항을 등지고 걷기 시작하니 끝없는 광야만이 그들 앞에 펼쳐져 있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출퇴근할 때는 오 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하지만 걷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한 시간을 넘게 걸어도 어떠한 건물도 나타나지 않았다. 도로의 기능 마저도 상실한 길이었다. 걷다 보면 인간의 형체가 멀리서 보였다 말았다 했고, 차체의 일부가 지워진 잔해를 마주 치고는 했다.

 

그들은 계속해서 걸었다. 걷기도 하고, 외계체가 자신들에게 가까워지면 뛰기도 하고, 그것이 다른 곳으로 방향을 틀면 다시 걷는 것을 반복했다. 외계체는 퉁퉁대며 땅을 쳐댔고 그 사이로 그들은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 아침에 먹은 것, 일정한 리듬으로 떨어지고 튀어 오르는 것을 반복하는 외계체들 그 자체, 배터리가 다 떨어져가는 핸드폰, 최근에 본 영화, 음악, 이런 이야기들. 이야깃거리가 끝날 때마다 번갈아서 주제를 꺼냈다. 다니엘이 먼저 말을 걸기도 했고 성우가 먼저 말을 걸기도 했다. 앞으로 핸드폰을 쓸 수 있을 지도, 영화나 음악을 여가로 보낼 수 있을 지도 확실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서로가 곁에 있다는 것을 확인 받기 위한 대화였다.

 

하지만 성우는 다니엘에게 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었다. 성우는 하늘을 볼 때마다 숨이 가빠오며 어지럼증을 느꼈다. 외계체가 땅을 쳐대는 소리를 들을 뿐, 가까이 온다는 것은 다니엘이 말해야만 알 수 있었다. 앞으로 이 일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과, 당장의 공포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두려움이 동시에 닥쳤다. 서로를 의지하는 상황에서 본인의 상황을 알리고 싶지 않아 애써 얇은 입술만 깨물어야했다. 아랫입술이 퍽퍽하게 텄다.

 

해는 점점 서쪽으로 기울었다. 아직 석양이 내려앉은 것은 아니지만 해가 지면 한 자리 수의 기온으로 내려앉을 것이다. 얇은 옷으로 어떻게 밤을 버틸지 고민이었다.

 

다니엘씨. 일단 사택에 가야할 것 같아요. 신도시 끄트머리에 있는데, 내가 지내던 곳은 아니지만 아파트 단지니까 어디든 빈 곳이 있을 거예요.”

 

그곳이 얼마나 먼지 단언할 수 없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사택 근처에는 상가단지가 있었고 그 길에 어디라도 잠시 몸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고속도로의 출구를 빠져나와 국도를 계속해서 걸었다. 걸어온 거리를 가늠해보았을 때 공항에서부터 한 10키로 정도 걸어온 것 같았다. 활주로를 벗어나면 1분도 되지 않아 벗어나는 거리가, 이렇게 본인을 압도할 줄은 몰랐다. 싸늘한 가을바람이 귀청을 때렸다. 멀리 보이는 교차로에 이 층짜리 건물 하나가 시선에 들어왔다.

 

편의점이겠죠. , 저런데 항상 하나쯤 있잖아요.”

 

다니엘의 말에 성우도 동의했다. 공항에서 각자의 일을 마무리하고 출발했기에, 그들의 출발은 너무 늦었다. 미리 도착한 사람들이 먹을 것을 죄다 털어 갔을 것이라고 짐작했고, 그것은 옳았다. 편의점 문은 깨진 채로 유리 조각들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유리 조각을 넘어 안으로 들어가니 라면이나 즉석식품은 다 털린 상태였다. 가방 안에 들어갈 만한 에너지 바나 다른 것을 챙기고 직원 창고로 들어갔다. 역시 안도 다 털려 있었다. 서랍 구석 같은 곳을 뒤져 손전등을 찾았다. 성우가 편의점 안으로 들어간 목적이었다. 아직 아무도 가져가지 않아 다행이었다.

 

편의점을 빠져나와 다니엘을 찾았다. 사 차선의 도로 중 버려져 있는 차가 두 대 있었고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건물을 한 바퀴 돌아도 그가 보이지 않았다.

 

그를 발견한 곳은, 외계체의 습격을 받아 동그란 호 모양으로 사라진 채, 남아 있는 경차의 잔해 뒤였다. 운전석만 사라진 채, 조수석 방향으로 차체가 휜 채로 쓰러져 있었다. 그가 인기척을 느낀 모양인 지 소스라치게 놀라며 성우를 보았다. 뭐해요. 툭 말을 던졌다.

 

, 이거 봤어요.”

 

그가 성우에게 내민 것은 창고형 유통 매장의 장바구니였다. 본래 주인이 갖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장바구니 안에는 옆 편의점에서 챙겨온 듯 보이는 먹거리가 담겨 있었다. 성우는 비닐봉지를 풀어서 그 안에 있던 몇 개를 엉성하게 담겨 있던 장바구니 안에 우겨 넣었다. 가방에서 손전등을 꺼내 그에게 주었다.

 

다니엘 씨가 이거 들고 앞장서요. 내가 이거 들 테니까.”

가다가 힘들면 말씀해주세요.”

얼른 가요. 사택까지 한참이에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손전등을 들지 않은 손에 아까 보지 못한 펜던트 목걸이가 쥐어져 있었다. 출처를 묻진 않았다. 하늘을 보지 못하는 것을 다니엘이 모른 척해주는 것처럼, 굳이 그가 숨기고 싶어하는 것을 들추고 싶지 않았다.

 

 

 

 

6

 

성우는 모든 것에 더디게 반응했다. 오후의 직접적인 생존에 위협을 느낀 이후로 주변을 자각하는 능력이 더 더뎌졌다. 자꾸 위를 보지 못했고 건물이 뭔지 파악하지 못했다. 다니엘은 무언가에 공포증이 생긴 것이라고 성우의 증상을 어렴풋이 진단했다.

 

경차를 본 이후를 기점으로 버려진 차를 종종 발견했다. 몇몇 사람은 차를 버리고 도망을 간 모양이었다. 휘발유를 챙길만한 통이 있으면 좋을 텐데. 성우는 기름의 힘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큰 통이 있으면 챙길게요. SUV에서는 부르스타 버너를 발견해 다니엘이 들고 가기로 했고, 한 경차에서는 운전용 슬리퍼가 있기에 가방 안에 챙겼고, 한 세단에서는 물 500ml를 발견해 나눠 마시고 빈 병에 휘발유를 넣어 놓았다. 롤렉스 시계 같은 것도 보았지만 챙기지 않았다. 도시에서 생존하기 찍는 것 같아요. 그쵸. 막막할 때마다 다니엘은 위트로 분위기를 챙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허기가 졌지만 마땅히 잘 곳을 발견하기 전까진 쉴 수 없었다. 성우의 말에 의지하여 사택으로 가야했다. 사거리에서 잠시 고민하던 성우는 해를 오른쪽으로 둔 채 다시 걷기 시작했다. 갑자기 서쪽에서 가려진 건물 사이로 그 분홍색의 것이 가까이 다가왔다. 철근의 골조를 건드리는 탓에 건물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눈치채지도 못했을 그런 조용한 외계체의 움직임이었다.

 

뭐해요! 피하지 않고!”

 

반응 속도가 더 빠른 다니엘이 성우의 손목을 채어 20미터 정도를 냅다 뛰었다. 스르륵 땅에 떨어져 닿은 외계체는 다시 하늘 위로 떠올랐다. 동그란 지름의 가장 넓은 부위가 성우로부터 1m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였다. 코 앞에 다가온 죽음의 위협에 소스라치게 놀란 성우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바로 옆에서, 분홍색 외계체에 현실의 것이 닿는 순간을 지켜보았다.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중력의 법칙을 무시한 채로 현실의 것을 잡아먹었다. 그 자리에 묵직하게 서있던 나무 한 그루, 부러져 있던 자전거, 가드레일 같은 것이 홀연히 사라졌다. 닿는 순간 외계체 안에서 그것들이 뿌얘지더니, 먼지 한 톨의 흔적도 없이.

 

다시 높은 하늘로 올라가는 외계체를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올려다볼 때까지 성우는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서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성우씨.”

어떡해요. 다니엘씨. 나 무서워.”

 

다니엘은 성우에게 타박하고 싶었다. 비정상적인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버틸 거냐고. 정신 차려야 우리가 산다고 타박하고 싶었다. 땅만 바라본 채로 뇌까리는 성우의 초점은 불분명하게 나가있었다.

 

저 사라질 뻔했던 것 맞죠.”

.”

흔적도 없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얄팍하게 흔들리는 그의 가슴을 꽈악 안았다. 중심이 흐트러져 그에게로 쏠렸다. 안정적이지 못한 자세로 급박하게 그를 위로해주는 것이라도, 저의 체온이 그에게끔 위안이 되었으면 했다. 저의 포옹이 지금 그를 위로하는 유일한 수단이라 믿었다. 우리는 지금 당장 죽지 않을 거라고. 목표를 잃고 방황하는 지금일 지라도, 서로가 있어서 괜찮을 거라고.

 

 

 

 

7

 

해가 진 도시는 검었다. 전기의 수혜를 얻으며 살았기에 수많은 시간을 눈뜨고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을 체감했다. 펼쳐진 들판 위에 간헐적으로 검은 건물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외계체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곳은 검은 기름 얼룩이 묻은 것처럼 하늘이 더 검었다. 높은 건물이 보이다가 낮은 건물이 보이다가 했고 그 건물들은 그림자처럼 보이기만 했다. 사람이 모두 어딘가로 도망 간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듯이 건물 사이사이에 희미한 노란 빛이 보였다. 양초 쯤으로 빛을 만든 모양이었다.

 

폐허가 된 도시 정 가운데를 걸으며, 기계처럼 걸었다. 비싼 돈을 주고 산 가죽 구두는 이제 더 이상 신발의 기능을 하지 못했다. 신발 안에서 물집이 세 군데 정도 잡히고 나서야 걷던 다니엘을 불러 멈추게 했다. 잠시 그게 오나 봐주세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신발을 벗었다. 찬 가을 바람에 발이 시릴 수 있겠지만, 슬리퍼라도 신어야했다.

 

억수로 힘들긴 하네요.”

 

신발을 벗어 가방 안에 넣는 동안 다니엘이 말했다. 그는 아까부터 꾸욱 쥐고 있던 펜던트를 목에 걸었다. 가방 안에 있던 것 중 걸으면서 먹기 만만한 것을 손전등을 들지 않은 손에 쥐어주었다. 오늘 하루만 여섯 시간 넘게 걸었다. 허리는 쑤셔왔고 다리는 팅팅 부어 있었다.

 

거의 다 온 것 같아요. 이쯤이었어요.”

생각해보면 암데나 들어가면 되는 것 같지만. 디게 도리? 도리를 지키는 것 같네요

 

다니엘이 웃었다.

 

근데, 쫌 느려진 것 같지 않아요? 얘네 굼떠졌는데.”

 

성우는 무신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을 보지 못하는 탓에 외계체가 어떻게 움직이는 지 전혀 파악하지 못한 탓이다. 다니엘을 전적으로 의지해야하는 제 자신이 한심했다. 애써 모르는 척 자꾸 분위기를 풀어내려는 그의 심성이 선해 더 그랬다. 슬리퍼가 조금 큰 탓에 발이 질질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 속도가 느려진다면 아예 신발을 벗고 맨발로라도 걸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저거 뭐 같아요?”

?”

뭐 이름이라도 붙여 줘야 할 거 아니에요. 살인의 종류도 이름이 붙어있는데, 총살, 교사, 토막살인 같이.”

살인의 종류에 무슨 이름이 있어요. 그냥 살인이지.”

아 쫌. 들어봐요. 암튼 우리 죽이려고 하는 거 똑같은데 이름이라도 붙여줘야 지대로 원망하죠.”

콘테스트 열까요.”

무슨 콘테스트요.”

도착할 때까지 쟤 이름 지어주기.”

이기는 사람한테는?”

. 아까 장바구니 안에서 맥주 한 캔 봤어요. 그거 몰빵.”

 

다니엘은 흐흥 소리 내어 웃었다. 사택 단지가 시야 끝에 걸렸다. 성우가 아까 입고 있었던 유니폼의 로고로 만들어진 간판이 건물 끄트머리에 매달려 있었다. 잠시의 휴식이, 단잠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8

 

예상과는 달리 단지 입구의 경비실엔 상주 중인 경비원이 있었다. 성우가 자신의 사원증을 보여주며 처지를 설명했다. 경비원은 플라이어를 던져 주며 빈집은 알아서 찾으라고 말하곤 경비실 창문의 커튼을 쳐버렸다. 성우는 단지를 쓱 쳐다보더니 아무 불도 켜져 있지 않은 한 건물에 들어섰다. 일부러 1층의 빈집을 찾기로 했다. 혹여나 대피해야하는 상황이 다시 찾아온다면 빨리 자리를 피하기 위해서다.

 

그래도 멈췄으니, 잠은 잘 수 있을 거예요. 몇 시간이라도 눈 붙여야죠.”

 

1층 복도가 울릴 만큼 쾅쾅 문을 두들긴 다니엘은 아무런 반응도 없다는 것을 재차 확인한 후 플라이어로 오토락 문고리를 뜯었다. 문을 뜯고 들어간 곳은 아무도 입주한 흔적이 없는 새 집이었다. 난방의 흔적도 없이 싸늘하게 식은 공기가 그들을 감쌌다. 빌트인으로 들어와 있는 부엌살림들과 옷장만 있었다. 운이 좋았다. 그 누구도 다치지 않고 여기까지 걸어왔다는 것부터 이미 운은 입증된 것일 지도 몰랐다.

 

화장실에 들어가 상태를 체크한 성우가 거실로 나와 다니엘에게 말했다.

 

물은 나오네요. 찬물이긴 한데. 수건은 없으니까 요령껏 씻어요.”

먼저 씻어요. 그동안 먹을 것 좀 차려볼게요

 

다니엘은 성우가 들고 온 장바구니에서 손전등을 들고 이것저것 먹을 것을 꺼냈다. 포카칩을 뜯고, 샌드위치 과자의 속 봉지를 뜯었다. 콜라, 그리고 맥주를 꺼내 바닥에 고르게 놓았다. 성우가 나오는데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머리를 촉촉하게 적시고 화장실을 나왔다. 오늘 입었던 옷가지들을 빠느라 시간이 오래 걸린 것 같았다.

 

이거 완전 술판인데요.”

소주 한 병 딱 있어야하는데. 맞죠. 일단 저도 씻고 나올게요.”

 

그가 화장실에 들어간 사이에 물기를 머금은 옷과 속옷가지를 바닥에 널어놓았다. 닦지 않은 먼지가 묻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닫힌 화장실 문 너머로 물소리가 들렸다. 자리에 앉아 종아리를 두들기며 다니엘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기다렸다. 슬리퍼를 신고 한참 걸은 것도 한몫한 건지 다리가 팅팅 부어있었다. 한참을 두들기다 바닥에 철퍽 누웠다. 움직이지 않고 쉰 게 한나절만이었다. 나른한 게, 눈만 붙이면 바로 잠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물소리가 끊기고 다니엘도 거실로 나왔다. 누워서 그를 맞이할 순 없어 비척이며 몸을 일으켰다.

 

. 안 추워요?”

 

상의를 탈의한 상태였다. 내일 입을 여분의 옷이 없어서 빤 거라고 했다. 조종사는 오히려 이 분이 해야할 것 같은데. 사기업 조종사보다는, 국방의 의무 쪽. 예쁘게 박힌 근육이 돋보이는, 같은 남자가 봐도 자꾸 보고 싶은 그런 몸이었다. 여자보다는 남자에게 더 성적인 매력을 이끌리는 성우의 성적 지향성을 제쳐 두고도 그랬다.

 

그래서, 생각해봤어요?”

어떤 거요?”

쟤 이름이요.”

 

성우가 고갯짓으로 창문 쪽을 겨누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어찌 됐든 그랬다.당장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은데도, 걱정에 잠기게 만드는 불안감의 근원이었다.

 

아직요. 못 정한 거니까 내 진 건가. 성우씨가 다 드실래요?”

 

바닥에 딱 하나 놓인 맥주 캔을 뜯었다.

 

농담이에요. 종이컵 없으니까 좀 더러워도 같이 나눠 마셔요.”

뭐 생각해본 거 있어요?”

 

성우가 콜라 캔을 따서 내밀었다. 다니엘이 맥주 캔으로 맞부딪혔다. - 하는 유쾌하지 않은 마찰음이 들렸다. 시원하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온도의 액체가 식도를 흘렀다. 그 자체로도 맛이 나쁘진 않았다. 맥주를 한 모금 마신 그는 말을 이었다.

 

. 첨 볼 때부터 생각했는데요. 저거 말이에요. 탱탱볼 같지 않아요? 땅에 부딪혔다 튕겨져 나오는 게. 그냥 탱탱볼이 돌아다니는 것 같아요.”

 

다니엘이 그저 웃었다.

 

사실. 상공에서 봤거든요. 뉴스에도 뜨지 않았을 때. 제가 처음인진 모르겠지만 다짜고짜. 아 저, 소형기 조종사거든요. 높으신 분들 자주 타는 그런 거.”

. 거서 봤을 땐 어땠어요?”

그 땐 봤을 땐 풍선껌 같기도 하고 그랬는데. 아 되게 좀 이런 말하니까 오글거리긴 하는데에. 쫌 예뻤어요. 이젠 제대로 못 볼 것 같긴 한데.”

 

성우는 마지못해 웃었다. 오늘 제 역할도 하지 못한 자신이 한심해서였다. 유일하게 자신을 잡아주던 중심점이 일에 대한 프라이드였는데, 설령 이 상황에서 생존하더라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제가 하던 일을 그대로 할 수 있을 지 의문이 들었다.

 

오케. 이거 드세요. 탱탱볼로 합시다. 저거.”

 

다니엘은 맥주와 콜라의 자리를 바꿨다. 내기를 핑계 삼아 성우도 한 번 마시라고. 맥주의 쌉싸름하고 비린 맛이 성우의 입 안에 자리 잡았다. 바스락, 감자 칩도 입 안에서 찌그러들었다. 입 안에서 사각사각 씹히다가 사르르 녹았다. 오늘 거의 처음 먹는 인위적인 나트륨 맛이었다.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신 성우가 다시 콜라와 맥주의 자리를 바꿔놓았다.

 

위에서 보고 있으면. 다 빨빨거리면서 돌아다녀요. 돌아다니는 차가 보이구. 사람은 아예 보이지도 않구. 뭐 이렇게 열심히 사나 싶은데. 그래요. 신기하기도 하고. 미련해보이기도 하고. 안쓰러워 보이기도 하고.”

성우씨가 개 중 하나라 그런 가보다. 그체.”

. 그런가. 저 되게 열심히 살았거든요.”

그래 보여요. 진짜로.”

다니엘 씨도 그래 보여요. 진심으루.”

 

이 상황에서 그들의 과거에 대한 인정은 소용없는 부류였으나 그래도 적당량의 마음의 위안을 줄 정도론 충분했다. 그들은 까끌거리는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 과자를 마저 먹었다. 사각대는 소리가 어두운 부엌을 채웠다. 손전등에 의지하고 있어 성우와 다니엘이 움직일 때마다 벽에 거대한 그림자가 비쳤다. 다니엘은 성우 뒤에 말끔한 벽에 비추는 거대한 그림자를 신기한 듯이 쳐다보았다. 그러다 문득 시선이 맞았다. 어색함에 피할 법도 한데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자신의 어깨선을 따라 시선을 이동하는 성우의 깊은 눈을 보니 절로 아득한 감정이 들었다. 상체를 굽혀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춘 건 한 순간이었다. 따뜻한 기운이 얇은 피부를 타고 스쳐지나갔다.

 

더 해도 돼요?”

 

성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아내와 헤어진 이후에 한 켠에 담아둔 미안함과, 지독한 매너리즘에 빠져 일에만 몰두하며 살았다. 간만의 키스였다. 따뜻한 체온이 맞닿고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다. 마음이 실제로 오가서 이렇게 가까워지고 싶은 건지 확신할 수 없었다. 다만, 서로가 절실했다. 다니엘이 절실했다. 실로 오랜만의 감정이었다.

 

미안해요.”

 

멀어지는 그가 무서웠다. 싸늘한 그의 어깨를 양팔로 감싸 다시 입을 맞췄다.

 

어쩌면 아까부터,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한 채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가까스로 세상의 끝에서 살아남았을 때부터, 서로가 서로의 온기를 의지한 채 포옹했을 때부터, 그들의 밤이 이렇게 될 것이라는 것을 예견했을 지도 모른다.

 

 

 

 

9

 

시야가 어렴풋이 밝아져 힘겹게 눈을 떴다. 해가 뜬 모양이었다. 파뜩 눈을 뜨니 한 번도 보지 못한 풍경이 보였다. 원래대로의 일상이라면 다니엘의 시야에는 살짝 곰팡이 진 천장이 보였어야 했다. 지나치게 말끔한 천장이었다. 그 천장을 감각하자 자신이 지금 새로운 공간 안에 있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었다. 어제 오전부터 재난 상황을 겪고 있다는 현실이 부수적으로 따라왔다. 꿈 같이 먼 경험이었으나 어느 경험보다 생생하게 다 상기할 수 있었다. 땅겨오는 종아리의 근육 신경이 현실임을 말하고 있었다. 눈을 껌벅였다. 고요 속에서 눈이 감겼다 떠지는 소리를 감각할 수 있었다.

 

무신경하게 상체를 덮은 야상을 치우고 자신을 안고 있는 성우를 쳐다봤다. 어제의 긴 밤의 마지막에 다시 샤워를 끝마친 성우는 거의 다 마른 옷가지를 입고 뽀송한 것 같다며 샐샐 웃었다. 그를 깨울까 하다 그만 두었다. 날이 밝으면, 다시 다리를 건너 서울로 걸어갈 것이다. 그 다리는 이미 끊겨 있을 지도 모르지만 일단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더 자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다니엘은 거추장스럽게 늘어져 있는 것들을 치우며 창문을 향했다. 이중으로 잠겨 있는 테라스의 문을 열고 나간 다니엘의 얼굴이 검게 굳었다. 다니엘은 다시 성우에게 돌아와 그의 몸을 흔들어 깨웠다. 성우씨, 일어나 봐요. 얼른요. 성우는 얼굴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싸늘한 공기를 몸으로 감각하는 지, 그가 어깨를 더 움츠렸다. 구석에 던져두었던 야상을 성우에게 던지며 말했다.

 

어제 말했던 것처럼 그냥 탱탱볼이라고.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성우의 팔목을 잡고 테라스 밖으로 나왔다. 어제의 하늘을 채우고 있던 덩어리진 것들은 하늘 한복판에서 여러 개로 나누어지고 있었다. 비눗방울이 하나가 두 개가 되고, 두 개가 네 개가 되듯. 아무런 소리도 만들지 않고 고요히 갈라지고 있었다.

 

성우는 주저앉았다. 다리 힘이 풀린 탓이었다. 다니엘 또한 그런 그를 구태여 일으키지 않고 함께 테라스에 다리를 굽혀 앉았다. 예상할 수 없는 미래에 불안감이 절로 닥쳤다. 손은 발발 떨리고, 가슴은 단거리 스프린트를 한 것마냥 쿵쾅 쿵쾅 뛰었다. 성우는 흔들리는 동공을 숨기지 않고 그를 막연히 쳐다보았다.

 

탱탱볼 놀이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