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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녤옹

 

 

 

 

 

 

여름 냄새

한날

 

 

 

 

 

 

 

 

 

 

 

불현듯, 간밤에 생일을 축하한다는 톡을 보내고 저가 몇 번째인지를 가장 궁금해 하던 다니엘에게 8242359분에 톡이 도착한 사실을 캡쳐해 올려줬을 때 천둥이 치는 이모티콘으로 도배되던 채팅창이 떠올랐다. 아직 아무런 축하 톡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연이어 알려줬을 때 일찍 보낸 축하메시지를 복사해 연신 붙여넣기를 하던 그의 행동도 덩달아 생각이 났다. 같은 교실 같은 후문으로 들어서면서 옹성우 생일 축하해! 하고 육성으로 소리치는 다니엘을 보면서 첫째도 둘째도 셋째로 축하해준 사람도 저라고 이야기하는 얘의 어제가 기억났다. 교실에 있던 애들이 약속처럼 성우에게 생일을 축하한다고 이야기했다. 그 소리가 어쩌다 노래가 되었고 개중 몇몇이 갑자기 목청을 뽑으며 열정적으로 성우의 생일을 축하해주었다. 개중에 다니엘도 껴있었다. 성우는 요란스러운 풍경의 가운데 주인공이 되어 가만히 서있었다. 입으로 폭죽소리를 내는 친구, 책상을 두드리는 친구, 노래를 35절까지 하는 다니엘. 성우는 고맙다는 여러 말 대신 활짝 웃었다. 정말 시끄러운 생일날이었다.

 

 

하교하는 길에도 교정을 뛰어서 성우를 지나쳐가는 친구가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날리고 앞서 걷던 애들이 뒤돌아 축하해 하고 말하는 풍경이 이어졌다. 그때마다 웃었고 다니엘은 더 크게 웃었다. 너 때문이잖아. 좋다이가.

 

성우가 사는 곳은 학교와 크게 멀지 않았다. 버스로 세 정거장 정도의 거리였다. 그리고 다니엘이 거기에 세 걸음정도 더한 곳에 살았다. 다니엘의 보폭을 기준으로 했을 경우에 그랬다. 덕분에 지금처럼 등하교를 거의 매일 같이 했다. 들어오는 버스의 번호를 확인한 다니엘이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버스의 문이 열리자 자연스레 살짝 비켜서 뒤따라온 성우를 먼저 태웠다. 두 자리 의자가 비어있으면 항상 바깥쪽에 다니엘이 앉았는데, 오늘은 빈 두 자리가 없어 한 자리에 성우를 앉히고 그 앞에 섰다.

 

 

가방 줘.”

 

 

성우는 재빨리 다니엘의 가방을 건네받고 제 머리 위에 달린 에어컨 방향을 다니엘 쪽으로 돌렸다. 굵은 땀이 송골송골 맺힌 이마와 젖어서 뭉친 앞머리가 완연한 여름이었다. 받아든 가방의 어깨끈이 퍽 축축했다. 많이 더우냐는 물음에는 고개를 살살 저으면서 옷을 두어 번 펄럭거렸다.

 

신호를 받아 정차한 버스 안에서 성우는 조용히 창밖을 내다보았다. 여기 근방이 이 동네에선 나름 번화가라 다니엘과 자주 걸어 나왔었다. 같이 다니는 단골 PC방도 이곳에 있다. 성우는 곰곰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생각했다. 그때쯤 차가 조금씩 바퀴를 굴렸다.

 

 

. 저기 문 열었네.”

어디.”

저거저거. 삼촌분식.”

어 맞네.”

 

 

옷 갈아입고 갈까. 벌써 먹고 있는 것처럼 익숙하게 메뉴를 조합하는 다니엘의 입이 요란하게 움직였다. 뛰듯이 버스에서 내리고 집으로 가는 걸음 내내 분식에 대한 얘기가 끊이질 않았다. 대문 앞에서 초인종을 눌러놓고 마지막으로 옷만 갈아입고 만나자는 말을 꺼냈다. 그와 엇비슷하게 스피커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는데 적절하게 조용해진 주변 덕분에 옆집 대문 앞에 서있던 성우도 그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어서 와라 성우야~ 아줌마가 상다리 부러지게 생일상 차려놨다~~

 

 

아 맞다! 엄마가 니 밥 무러 오란다.”

 

 

랩을 하듯 빠르게 뱉어놓고 저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는지 허. 하고 혀를 찼다. 그걸 지금 말하나 니? 내가 어제부터 그렇게 말하라고 말했는데- 스피커 너머의 엄마의 끊임없는 잔소리와 잘못했지만 듣기 싫어 몸부림치는 다니엘의 풍경이 꽤 볼만했다. 성우는 반 아이들의 생일 축하를 받았을 때처럼 활짝 웃었다.

 

 

다니엘방으로 올라가면서 훔쳐본 주방은 상다리 부러지게라는 말이 거짓말이 아님을 증명하듯 음식과 음식냄새로 가득했다. 두루치기 맛있겠다하고 중얼거렸는데 엄마가 두루치기가 맛있게 됐다고 말했다.

 

내는 좀 씻어야겠다. 고개를 끄덕이고 냉큼 다니엘의 침대에 앉았다. 교복을 훌훌 벗어던지는 다니엘을 피해 방을 둘러보았다. 주에 다섯 번은 오는 것 같은 이 방에 새로울 건 없지만, 괜히 침대 밑에 손도 넣어보고 베개의 쿠션감도 확인해보았다. 그 모습에 다니엘이 실없이 웃었다.

 

 

내 방 어떻노.”

그렇지, 여긴 네 방인데 참 내 방 같고 그러네.”

니네 집 욕실 좀 쓸게.”

조금만 써.”

 

 

말장난에 다니엘이 멈출 줄 모르고 웃었다. 5분 안에 온다며 나간 뒤 혼자 남은 성우는 다시 차근차근 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늘 같은 자리에 있는 가구. 한쪽 창만 가리고 있는 커튼. 드러난 창밖으로 보이는 제 방 창문. 그리고 침대 아래 구겨져있을 잡동사니들. 저기에 양말은 몇 켤레나 있을까. 방금도 훌렁훌렁 벗은 교복을 침대 위에 그냥 던져두고 나갔다. 성우는 물끄러미 그것을 바라보았다. 아무렇게 늘어져있는 저와 똑같은 모양의 옷가지 가운데 솟아있는 네모난 명찰을 또박또박 읽었다.

 

 

강다니엘.”

 

 

세 글자인 제 이름과 달리 글자와 글자 사이가 좁았다. 그 교복을 집어든 건 충동적이었을 것이다. 고작 세 정거장밖에 되지 않는 거리에 땀이 식었을 리 없다고, 처음엔 얘가 얼마나 땀을 흘렸는지 가늠해보려고 손을 뻗었다. 예상보다 조금 더 축축한 상태인 것을 만져서 확인하고 그 다음 코에 가져간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옷에서 기대했던 땀 냄새 대신 여름과 남자애 냄새 같은 게 났다는 것이었다. 성우는 다니엘의 교복에 코를 묻고 킁킁거렸다. 불쾌한 땀 냄새가 나지 않는 게 신기했다. 버스를 탈 때나 식당에서 줄을 설 때 다니엘의 뒤에 서면 나는 냄새가 났다. 당연한 거였다. 다니엘의 옷에서 다니엘의 냄새가 날 뿐이었다. 그는 이제 교복에 얼굴을 거의 파묻다시피 냄새를 맡았다. 아 이건 너무 다니엘이다. 다니엘 냄새다.

 

 

다니엘 냄새

 

 

그리고 벌컥 방문이 열렸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벌떡 고개를 들었는데 다니엘과 눈이 딱 마주쳤다. 그냥 너 교복 되게 축축해, 땀 냄새가 안 나네, 별스럽지 않은 말을 자연스럽게 뱉으면 되는 거였는데 그 실없는 소리를 못해 연신 속으로 망했다, 이미 늦었어, 따위의 절망스런 말만 되풀이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아무 말이 없는 지옥의 침묵이 이어졌다. 그걸 먼저 깬 건 다니엘이었다.

 

 

가자 밥 무러.”

 

 

돌아서 나가는 다니엘의 등을 확인하자마자 성우가 울상을 지었다. 망했다며 두 손에 고개를 묻었다 아직까지 다니엘의 교복이 들려있는 것에 또 한 번 소스라치게 놀랐다. 방금까지 저기 서있던 그 애의 얼굴을 천천히 떠올리려 노력해보았다. 화났나. 기분 나빴겠지. 당연하지. 망했다. 끝났다. 절망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아래층으로 내려오면서 각자 맞은편에 앉아있는 엄마와 다니엘을 확인했다. 흡사 추궁을 받으러 가는 기분으로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쭈뼛거리다 엄마 옆에 앉았는데 다행히 내 새끼-하며 좋아해주셨다. 한시라도 다니엘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내내 어느 속인지 모를 속이 불편함으로 가득 찼다.

 

그래도 할 건 다 했다. 그래서 더 괴로웠다.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는 다니엘. 촛불을 부는 성우. 박수를 치는 엄마. 선물 증정식까지 있었다. 다니엘이 식탁 옆에 미리 준비해둔 선물상자를 건넸다. 성우는 최대한 밝은 표정으로 그것을 받아들었다. 다니엘의 얼굴도 덩달아 어색한 감정으로 물들었다.

 

 

부모님 내일 오시나?”

모레 오세요.”

 

 

성우네 부모님은 출장이 잦았다. 때문에 다니엘네에서 밥을 먹는 건 익숙한 일과 중 하나였다.

 

 

느네엄마가 니 걱정 마이 하드라.”

 

 

생일 혼자 보낸다꼬- 전 괜찮아요. 접시를 요리조리 돌리며 위치를 바꾸는 엄마에게 진짜 괜찮다고 말했지만 결국 고기위주의 접시들은 모두 성우 앞에 차려졌다. 성우가 어색하게 웃는 동안 다니엘이 보란 듯이 손을 뻗어 갈비찜을 가져갔다. 엄마가 아들을 째려봤다.

 

 

손 씻었나.”

샤워했다.”

 

 

엄마의 화제는 자연스레 땀을 많이 흘리는 다니엘로 넘어갔다. 성우는 이 화제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꾸만 방금 일어난 절망적인 사고를 기억나게 했다. 엄마의 목소리에서 땀만 강조돼 들리는 것 같았다.

 

 

니는 땀 냄새가 안 난다, 신기하게. 땀을 안 흘맀나? 아 야가 그 머꼬. 더위를 안 타는 체질인갑다.”

아니요! 오늘 엄청 더웠고, 땀도 많이 흘렸어요

 

 

힐금거리며 눈치를 보는데 다니엘이 팍 인상을 구겼다.

 

 

 

 

 

 

*

 

 

 

 

다니엘은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숨기지 못하는 표정에서, 툭툭 던지는 거친 손짓에서 모두 티가 났다. 다니엘은 조용히 분노했다. 아침부터였다. 늘 나오는 시간에 가벼운 세 걸음으로 성우네 대문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눌렀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것이다. 그땐 늦잠을 잔줄 알았다. 원체 잠이 많은 애라 이해했다. 핸드폰 시계를 확인하고 성우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신호음이 들리다가 뚝 끊겼다.

 

 

이거 알람인줄 알고 끈 거 아이가.”

 

 

다니엘은 세 걸음을 다시 돌아가 제 방으로 성큼성큼 걸어 올라갔다. 커튼이 달리지 않은 쪽 창을 통해 성우의 방을 살폈다. 한창 자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성우가 방에 없었다. 옹성우가 보이지 않았다.

 

곰곰 생각할 겨를이 없어 그날은 혼자 등교를 했다. 다행인지 성우는 무사히 학교에 온 모양이었고 그를 증명하듯 익숙한 간식가방이 걔의 자리에 놓여 있었다. 어쨌든 늦잠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고 나니 슬슬 불만이 피어올랐다. 얼굴 보면 투정이라도 부릴 생각에 앞문과 뒷문만 번갈아가며 쳐다보고 있었는데 성우가 조례시간이 다 돼서 잽싸게 들어와 앉는 바람에 말도 못 붙였다. 쉬는 시간에는 좀 이야기할 수 있을까 했던 생각은 오산이었다. 다니엘이 이쪽으로 올 기미가 보이기만 해도 성우는 자는 척을 하거나 뭘 빌리러 간다고 큰소리로 어색하게 말하며 자리를 피했다.

 

아침부터 그의 행보를 차근차근 훑어보았다. 사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성우가 다니엘을 피한다는 건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다니엘은 화가 나면서 겁이 나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했던 식당에마저 성우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니 그 이상함은 더욱 심해졌다.

 

 

내한테 너무한 거 아이가.”

 

 

마음이 너무 불안하고 불편했다. 그것과 별개로 배는 고팠다.

 

매점에서 빵을 사들고 야외로 나왔다.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늘 가던 그 벤치로 돌려졌고 당연하다는 듯이 거기에 앉아있는 성우의 동그란 뒤통수를 보았을 땐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옆자리에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어본 성우의 어깨가 잔뜩 움츠러들었다. 들고 있던 빵을 급하게 먹기 시작하는데 역시나 몇 입 못 먹고 캑캑거리며 기침을 뱉었다. 다니엘이 자기 우유를 뜯어 성우에게 먹였다.

 

 

니 왜 내 피하는데.”

 

 

예고 없이 훅 치고 들어오는 물음에 겨우 진정됐던 가슴이 다시 쓰림을 토했다. 나오려던 기침을 억지로 밀어 넣었다.

 

 

아침에 혼자 가고 쉬는 시간에도. 밥은 왜 여서 이러고 먹고 있는데.”

 

 

말을 할수록 욱하는 기운이 올라왔다. 다니엘은 억울했다. 성우가 아무 말도 못해서 더욱 그랬다. 입을 꾹 다물고 한참을 죄인처럼 손 모아 앉아있던 성우가 개미 기어가는 소리로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다. 미안하다고 하는데 또 마음이 스르르 풀어진다. 불편했던 속이 갑자기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상황은 좀 더 제가 화를 내야 할 것 같은 심각한 분위기여서 다니엘은 애써 얼굴을 굳히고 성우를 쳐다보았다.

 

 

어제 그거는

 

 

성우가 운을 떼는 어제 그거에 대해 생각하던 다니엘은 이명처럼 울리는 엄마의 땀 냄새 이야기를 떠올리곤 무겁게 눈을 감았다 떴다. 방문을 열었을 때 정면으로 보이는 침대 가운데 앉아 제 교복에 얼굴을 묻고 있던 성우를 기억하고 있었다.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는 이상야릇한 기분에 어렵게 꺼낸 말이 밥 먹자였던 것 같다. 그때 그 놀라 당황하던 얼굴이 지금도 생생했다. 덕분에 제 이상함까지 알아채지 못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식사하는 내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건,

 

 

더러웠지

, 니가 왜 더럽노! 희한한 소리 하지 마라.”

 

 

방금까지 땀 냄새만 생각했던 다니엘은 괜히 뜨끔했다. 엄마가 땀 냄새 이야기를 할 때마다 제 교복에 얼굴을 묻고 있는 성우가 생각났다. 그 후로 쭉 땀 냄새 걱정 때문에 속이 편치 않았다. 내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성우가 드디어 얼굴을 보여주었다. 곧 울 것 같은 얼굴로 무어라 더 말을 하려는지 얇은 입을 우물거렸다. 난데없는 삿대질과 함께 그 입에서 나온 말은.

 

 

 

 

다니엘이 파득 귀를 감싸 쥐었다. 성우의 짧은 한마디가 무얼 말하는지 단번에 알아들었다.

 

 

. 뭐가.”

 

 

시치미를 뗐다. 성우는 방문을 열고 서있던 다니엘의 얼굴을 떠올려보려 했던 어제를 기억했다. 그랬을까. 빨갰을까. 딸기우유처럼. 성우는 어쩌다 저가 먹은 다니엘의 딸기우유를 보며 생각했다.

 

 

니 혹시, 내 땀 냄새 때메 내 피했나.”

, 아니야! 나는 너한테 들켜서너 땀 냄새 안 나! 나 네 냄새 좋아해,”

 

 

성우가 입을 합 다물었다. 다니엘은 무슨 말을 하지 않았지만 성우의 두 손이 자연스레 두 귀를 감췄다. 얼굴마저 여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