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월간녤옹

 


 


 

그대, 부디, 나를

러페

 

 

 

 

 

 

 

 

 

 

숫자가 인생을 평가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남들 뒤에 서 본적이 없었다. 세상에서 공부가 제일 쉬웠고, 공부가 제일 재밌었다. 연수원 성적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판사가 아닌 검사를 지원한 건 좀 더 역동적인 일을 하고 싶었던 탓이었다. 남보다 높은 자리에 앉아 중립을 지키며 냉정하고 공평한 판결을 내려야 하는 판사가 아니라 좀 더 약자의 편에 서서 좀 더 정의로운 일을 하고 싶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검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건 옹판사보다 옹검사가 듣기에 조금 더 멋져 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첫 사건은 폐건물에서 발생한 사망사건이었다. 사인은 약물중독, 지문을 인식해서 데이터를 돌려보니 이미 마약 복용으로 전과도 있는 사내였다. 사인도 확실했고, 타살의 흔적도 없었다. 유가족에게 사망 사실을 전달하러 간다는 계장님과 담당 형사님을 따라나섰다. 굳이 검사님까지 가시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었지만, 첫 사건이라 어쩐지 그 현장에 있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었다.

.

.

 

 

 

 

이런 곳을 달동네라고 하던가, 높고 높은 아파트들이 가득 모여 있는 도시를 지나 차로 더 이상 올라 갈 수도 없는 그 곳. 잘 차려 입었던 양복 마이를 벗어 한 손에 걸치고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는 걸음걸이가 점점 무거운 추를 단 것처럼 힘이 들었다. 그러게 검사님은 안 오셔도 된다니까, 연신 헐떡이며 거친 숨을 내쉬는 통에 자꾸만 계장님이 뒤를 돌아 나를 챙기셨다. .. 틈틈이 운동 좀 할걸.. 그동안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만 했던 체력이 여실히 드러나는 꼴이었다. 괜찮습니다. 웃고 있는 입꼬리마저 부들부들 떨려왔다. 잠시 숨을 고르며 고개를 드니 아직도 걸어가야 할 계단이 그 끝을 보이지 않은 채 펼쳐져 있었다. 나보다 20살은 많아 보이는 계장님과 담당 형사님이 저만치 앞서가고 있는 걸 보고는 다시 입술을 굳게 물며 걸음을 옮겼다.

 

 

먼저 도착한 계장님과 형사님이 나를 기다려주고 계셨다. 숨을 고르고 잔뜩 구겨진 등도 곧추세우고 마이 안주머니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흐르는 땀도 닦았다. 처음 마주하는 유가족, 어쩐지 죽은 시체를 처음 본 순간보다 지금이 더 긴장되는 것 같았다. 죽은 자와 살아 있는 자의 차이일까. 크게 숨을 들이 쉬었다가 내뱉고는 손에 걸고 있던 마이를 갖추어 입었다. 탁탁 가슴을 주먹으로 몇 번 내리치고는 삐그덕 소리를 내는 파란색 철제 대문을 두들기니 잠그지 않았는지 그대로 심한 쇠의 마찰음을 내며 문이 열렸다.

 

 

계십니까.”

 

 

시멘트로 뒤덮인 작은 마당은 군데군데 부서지고 파인 자국을 메우지 않아 엉망이었다. 노끈으로 대충 연결한 빨래줄 위로 펄럭이는 티셔츠 몇 개가 보였다. 마당 한 구석은 초록빛 소주병과 갈색빛 맥주병이 한 가득 쌓여 있었다.

 

 

누구... 세요?”

 

 

나무로 만든 미닫이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어린 소년이 얼굴을 드러냈다. 낯선 이들을 잔뜩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목에 걸려있는 공무원증을 벗어 아이를 향해 내밀었다.

 

 

안녕, 아저씨는 검사야. 어머니 집에 계시니?”

 

엄마.. 없는데요. 그리고 아버지도 없어요.”

 

 

검사증을 본 아이가 더욱 경계의 눈빛을 보였다. 생각해보니 마약 전과자인 아버지를 둔 아이가 이런 낯선이의 방문이 처음일 리가 없었다. 경계를 풀기 위해 웃어볼까도 생각했지만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들고 온 내가 아이 앞에서 웃는 건 말이 되질 않았다.

 

 

저기.. 아버지 성함이 강만덕씨 맞지?”

 

“....”

 

.. 저기.. 강만덕씨가 오늘 폐건물에서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하신 채 발견됬어.”

 

 

눈을 거의 가린 머리카락 탓에 눈동자는 보이지 않았지만 문을 붙들고 있는 손이 벌벌 떨리고 있었다. .. 이거 생각보다 힘든 일이구나. 가족의 부고를 전하는 일이 유쾌할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정말 유감이다... ”

 

“... 정말.. 아버지가 죽었어요?”

 

 

돌아가셨어요? 가 아닌 죽었어요? 라고 묻는 질문이 순간 어색하게 느껴졌다.

 

 

.. 돌아가셨어.”

 

 

갑작스레 아이가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내게 달려와 양 팔을 붙잡았다. 가려져 있던 눈동자가 드러났다. 까맣고 투명해 보이는 어린 소년의 눈동자가. 아이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래. 슬프겠지..

그런데, 아이의 입술 끝이 웃고 있었다. 어째서..?

 

 

정말 우리 아버지 죽었어요? 정말 ?? 정말 죽었어요???”

 

 

아이의 손에 붙잡힌 양팔에 힘이 가득 들어간 것이 느껴졌다. 너무 슬프면 사람이 미치는 건가. 아이의 괴상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놀란 내 눈이 점점 확장됐다.

 

 

.... 정말 돌아가셨어.”

 

 

그 순간 아이의 눈에 차오른 건 분명 슬픔이 아니라 환희였다.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들어 올린 아이의 허름한 긴팔 상의가 팔꿈치까지 흘러내렸고 곧 드러난 멍으로 가득한 손목이 말 대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아버지의 부고를 전하며 돌아서는 우리에게 아이는 연신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며 허리를 숙였다. 난처한 듯 웃으며 힘겹게 올라왔던 계단을 내려갔다. 등 뒤로 녹슨 쇠의 마찰음을 내며 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약물 중독자 아비 밑에서 자란 애들은 꽤 높은 확률도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아요. 저 아이도 그런가 보네요. 손목 보셨죠?”

 

...”

 

자식조차 슬퍼해주지 않는 죽음이라..”

 

 

그건 그 아비가 자초한 일이 아닐까요.’라는 말은 속으로 삼키었다. 그래도 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

.

.

 

 

 

시신 수습을 위해 다음날 검사실로 찾아 온 아이는 교복 차림이었다. 교복 자체는 아이의 몸에 제대로 맞아 보이지도 않고 깨끗해 보이지도 않았다. 단지 목 끝부터 손목 끝까지 단정하게 채운 단추가 신경 쓰였다. 그때는 놀람과 당혹감에 제대로 인식하지 못 했는데, 아이는 꽤나 키가 컸다. 그리고 몸도 컸다. 발견했던 망자의 덩치를 생각했을 때 거뜬히 아버지의 폭력을 제압할 수 있을 몸이었다.

 

새끼 코끼리를 쇠사슬에 묶어 기르면 그 쇠사슬을 거뜬히 부셔버릴 만큼 자란 뒤에도 과거에 얽매여 쇠사슬을 끊을 엄두도 내지 못한다던 얘기가 생각났다. 이 아이도 그랬던 걸까. 아버지를 거뜬히 능가할 만큼 자란 뒤에도 어린 시절부터 시작 된 폭력이 아이에게 반항을 허락하지 않았던 걸까.

 

 

 

사인이 명확해서 부검은 하지 않을 생각이야. 언제든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해 갈 수 있어.”

 

안 가져가면 안돼요..?”

 

??”

 

장례 치를 돈도 없고, 그런거 있다던데요. 시체 기증. 그런거 하면 안돼요?”

 

저기.. 어머니는?”

 

도망간지 10년도 넘었어요. 아무도 없어요. 저 혼자에요. 친척도 없어요. 그러니까. 안 가져가면 안돼요?”

 

 

아버지의 시신을 무슨 물건을 다루 듯 가져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까맣고 투명한 눈동자에 딱히 악의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악의가 없다는 게 더 문제였다. 투명한 줄 알았던 눈동자가 공허해보였다. 투명한 게 아니라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허전함이 느껴졌다.

 

 

다니엘군. 정말 그러길 원해요?”

 

.”

 

 

아이는 단호했다. 다니엘은 정말로 시신을 수습해 가지 않았다. 꾸벅 인사하며 검사실을 나가는 다니엘의 뒷모습이 잠들기 전까지 머릿속을 멤돌았다.

 

.

.

.

 

 

 

 

계장님. 강만덕씨 사건이요. 그 아들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잠들기 전까지 가장 궁금했던 질문이었다. 그래서 출근 후 계장님의 얼굴을 보자마자 물었다. 서류를 넘겨보던 계장님은 마치 별일 아니라는 듯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고아원으로 가겠죠. 정말 아무도 없는 모양이더라구요.

 

고아원이란 세 글자가 어쩐지 목에 생선 가시가 걸린 것처럼 자꾸만 신경 쓰였다. 어느 고아원으로 가게되냐는 내 질문에 자판을 몇 번 두드린 계장님은 서류 한 장을 출력해주셨다.

 

.

.

.

 

 

 

 

 

 

 

쉬어야 하는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이 앞에 서 있었다. [지역아동센터] 팻말이 햇빛에 반짝여 빛이 났다. 여기에 내가 왜 온 걸까 생각했다. 검사에게 첫사건은 잊혀지지 않는 첫사랑같은 거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사건의 당사자보다 유가족인 그 아이가 어쩐지 잊혀지지 않았다.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던 아이가, 그 눈에 가득 찬 환희가, 고통으로 가득찼을 그 아이의 인생이, 왜 자꾸만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걸까.

 

.

.

 

 

원장님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다니엘이 원장실로 들어왔다.

 

 

? 검사님?”

 

 

고작 며칠이 지나지 않았는데 다니엘의 눈동자는 전보다 빛이나 보였다. 이 곳이 꽤나 지내기 좋았나보다.

 

 

안녕, 다니엘. 나랑 어디 좀 갈까?”

.

.

 

 

 

 

 

다니엘을 데려온 건 근처 대학병원이었다. 친구인 민현에게 부탁하여 다니엘의 몸을 검사해보기로 했다.

길고 긴 검사가 끝나고 다니엘을 복도에 앉혀 둔 채 민현과 단 둘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다니엘의 뼈들은 꽤 여러 번 부서진 흔적이 보였다고 했다. 다시 붙은 자국들이 여러 곳이라고, 병원을 가지 않았던 건지 매끄럽게 붙어 있지는 않았지만 수술할 정도는 아니고, 그 흔적들을 제외하면 다 건강한 편이라고 했다.

 

 

성우야,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신경 써? 이미 사건은 끝난 거라며,”

 

모르겠어.. 그냥 자꾸만 생각나. 마음이 쓰여서..”

 

내가 정신과 전문의는 아니지만 성우야, 다니엘에게 필요한 건 한 순간의 동정심이 아닐거야. 그러니까, 일시적인 감정으로 아이에게 관심 두지마.”

 

“....”

 

 

약자의 편에 서고 싶어 검사가 된 내가 만난 최초의 약자는 다니엘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약물중독자인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고 자란 아이가 자꾸만 눈에 밟히는 건 내 스스로가 어쩔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러니까.. 민현아.. 한순간의 동정심이면 안 돼? ?

 

.

.

 

 

 

병원에서 나와 다니엘과 차에 올라탔다. 하얀 긴팔티셔츠와 검은 반바지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는 다니엘을 보는데 어쩐지 옷이 조금 작아 보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옷을 사주고 싶었다. 그냥.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백화점 안으로 향하는 나를 머뭇거리며 다니엘이 뒤따랐다. 요즘 애들은 어떤 브랜드 옷을 입지... 10년의 나이차이가 주는 거리감에 머뭇거리다가 젊은 아이들이 많아 보이는 점포로 들어가 옷을 골라주었다. 이 옷, 저 옷 몸에 가져다대니 안 어울리는 게 없었다. 다니엘은 뒤통수를 긁으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 사주셔도 되는데...”

 

그냥 사주고 싶어서 그래.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는 뇌물? 그런거야. 그러니까 받아도 돼.”

 

“......”

 

 

더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내가 먼저 시선을 피하니 다니엘은 말을 삼켰다. 탈의실에 들락날락 시키며 인형놀이를 할 생각은 없었다. 빠르게 어울릴법한 옷 몇 가지를 고르고 신발도 고르니 다니엘의 양 손이 무거웠다. 핑계처럼 내 옷도 몇 개 사서 다니엘의 손에 들려주었다. 젊은 네가 좀 들어, 내가 옷 사줬으니까. 생긋 웃으며 내가 말하자 다니엘이 따라 웃었다. 아이의 부담감을 조금 덜기위한 행동이었으나, 그런대로 통한 모양이었다.

 

 

나 배고픈데, 밥 좀 같이 먹어줄래?”

 

“..........”

 

고기 먹고 싶은데, 고깃집을 혼자 어떻게 가.. 같이 가자, ?”

 

 

고깃집을 혼자 갈 수 없다는 부탁아닌 부탁으로 다니엘이 따라 나섰다. 2-3걸음 앞서 걷던 내가 돼지고기 먹을래, 소고기 먹을래? 라고 말하며 뒤를 돌았는데 다니엘이 저만치 걸음을 멈추고 서 있었다. 조금은 울 것 같은 그 눈빛이 향하는 건 엄마, 아빠 손을 꽉 잡은 한 아이가 꺄르르. 웃으며 재잘 거리는 모습이었다. 그 눈빛이 너무 슬퍼 보여 다니엘에게 다가가 한 손에 들려 있던 짐을 빼앗고는 손을 맞잡고 이끌었다.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다니엘이 다리가 굳은 것처럼 따라오지 않고 서 있었다.

 

 

여기 주말이라서 그런가 사람이 너무 많다. 그치? 잃어버리면 안 되니까, 손 좀 잡자.”

 

 

다니엘은 느리게 눈꺼풀을 깜빡이며 마주잡은 손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푹 고개를 숙이는데 아주 미세하게 올라간 입꼬리가 보였다.

 

 

나 배고픈데, 빨리 가자.”

 

 

어쩔 수 없다는 듯 내 손길에 이끌려 오는 아이가, 귀여웠다. 안쓰러웠다.

.

.

 

 

 

 

 

고깃집에 데려다니 이거 비싼거 아니냐며 먹기를 망설이기에 내가 다 먹겠다며 부위별로 합해서 두 근정도는 주문한 거 같다. 깨작깨작 거리는 젓가락질을 외면하고 혼자 꾸역 꾸역 먹었다. 평소 음식을 자주, 여러 번 먹지만 한 번에 많이 먹지는 못하는 나는 고작 300g도 먹지 못했다. 다니엘에게 이거 이미 시킨거라 안 먹으면 그냥 돈 날리는건데.. 라며 쳐다보자. 다니엘은 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젓가락을 움직였다. 소고기 한 근 반이 거뜬히도 다니엘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한 점씩 입에 넣을 때마다 맛있는건지 아이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소고기를 잔뜩 먹이고는 카페에 마주 앉았다. 다니엘은 아이스초코를 나는 캬라멜 마끼야또를 시켰다. 연신 단 커피가 목구멍를 향해 내려가자 기분이 좋아졌다. 단숨에 절반을 입 안으로 삼켰다. 다니엘은 빨대로 컵 안을 휘젓기만 하고 마시지 않고 있었다.

 

 

“..검사님..”

 

?”

 

왜 저한테 잘해주세요?..”

 

... 그냥?”

 

“....”

 

있잖아. 다니엘군, 사람의 인생에는 말야. 가끔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이 찾아오기도 하거든? 내가 왜, 나한테 왜, 그렇게 아무리 물어봤자 아무도 이유를 대답해 줄 수 없는 그런 고난. 그러니까, 그런 고난처럼 이유를 알 수 없는 호의가 찾아오기도 하는거야. 왜냐고 이유를 묻지 않아도 되는. 오케이?”

 

“.....”

 

 

고개가 반쯤 숙여진 다니엘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동글동글한 머리가 귀엽고 부드러워서 머리카락을 거칠게 헤집었더니 다니엘이 아, 하지마세요. 라며 내 손을 뿌리쳤다. 짜식.

 

 

근데, 다니엘군은 꿈이 뭐야?”

 

“....”

 

되고 싶은거, 하고 싶은거,”

 

“... 없어요...”

 

 

마치 그 말이 나는 한가하게 미래를 꿈 꿀 시간같은거 없었어요. 라는 것처럼 들렸다. 말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다. 아이의 얼굴빛이 어두워졌으니까. 또 다시 눈빛이 공허해졌으니까. 또 다시 고개를 숙이니까.

떨구어진 다니엘의 고개를 잡아 올렸다. 이번에는 내 손길을 뿌리치지 않았다.

 

 

아까 원장님한테도 말씀드렸는데, 앞으로 내가 다니엘군의 후원자가 될거야. 필요한거 있으면 나한테 말해. 배우고 싶은거 있어도 말하고. 되고싶은 꿈이 생겨도 말해. 누군가한테 의지하고 싶어지면 날 불러.”

 

 

내가 내민 명함을 받아든 아이의 공허해 보이던 눈동자가 촉촉이 젖어왔다. 자리를 옆으로 옮겨 어깨에 아이의 머리를 기대고 꼭 끌어안았다. 넓은 등을 쓸어내리니 들썩이는 박동이 느껴졌다.

.

.

 

 

 

 

 

다니엘과 나 사이에 간격이 하루하루 좁아지는 게 느껴졌다. 아이는 더 이상 내가 베푸는 호의에 이유를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주는 호의를 기쁘게 받았고 감사해했다. 하루는 학교 미술시간에 다비드 조각상을 그렸다며 그걸 내게 주겠다고 무작정 검찰청을 찾아왔었다. 다비드 조각상을 보고 그리는데 자꾸만 내가 생각났단다. 검사님을 닮은거 같긴 한데 검사님이 더 잘생겼어요. 라며 웃었다. 맞는 말이라며 맞장구를 치자. 내게 왕자병이 있으시네요. 라며 더 내려갈 수 없는 눈꼬리를 심하게 접어가며 웃었다.

 

가끔씩 예고없이 찾아오기에 다음에는 연락하고 오라고 했더니 그제야 핸드폰이 없다고 했다. 그 말에 바로 함께 가서 최신폰을 손에 쥐어주었다. 방방 뛰며 기뻐하던 다니엘은 그 다음날부터 하루의 시작과 끝을 내게 보고했다. 언제나 퇴근하면 톡이 넘칠 듯 쌓여있었다. 그 날 뭘 배웠는지, 뭘 먹었는지, 뭘 생각했는지, 검사님은 밥을 잘 드시냐며 안부까지도.. 그리고 가끔은 길고양이가 너무 귀엽다며 고양이 사진을 보내기도 했고, 길에 핀 들꽃 사진을 보내기도 했고, 맑은 날은 파란 하늘 사진을 보내기도 했다.

 

 

외동으로 자란 나는 그런 다니엘이 귀여웠다. 동생이 있다면 딱 이랬을까. 내가 베푸는 호의의 속에서 자라는 아이를 보는 건 꽤나 기쁜 일이었다.

 

 

어느새 여름에서 계절이 바꾸고 겨울이 되었다. 공무원이 칼퇴근하는 철밥통이라고 누가 그래.. ... 검사의 일을 생각이상으로 빡셌다. 세상에 나쁜 놈이 왜 이렇게 많은건지. 게다가 요령없는 초임검사인 나는 주말까지 반납하지 않으면 도통 선배들 페이스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가능하면 일주일에 한 번은 다니엘과 밥을 먹으려고 노력했지만 자꾸만 쏟아지는 사건에 그 일주일이 이주일이 되었고, 어쩔 때는 삼주가 되기도 했다. 미안하다며 약속을 취소하는 내게 다니엘은 괜찮다고 대답했다. 통화상이라 얼굴이 보일리는 없지만 어쩐지 쓸쓸하게 웃고 있을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니엘의 겨울방학이 거의 끝이 나던 그쯤, 다니엘을 못 본지 이주가 되어가고 있었다. 만나지 못해도 아이는 여전히 내게 하루의 시작과 끝을 이야기했다. 만나지 못하는 만큼 그 톡의 양이 더 늘어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제때 답을 해주지는 못하더라도 자기 전에 밀린 톡을 다 읽고 조금 긴 장문의 답을 해주는 게 내 일과였다. 그러면 언제나 몇 초도 걸리지 않고 숫자 1이 사라졌다. 그럴때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쩐지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집을 지키고 있는 우리 집 강아지, 코룽이가 떠올랐다. 지금 옆에서 내 얼굴을 연신 핥아대는 이 녀석이 다니엘과 겹쳐보였다. 귀엽네, 귀여워.

.

.

 

 

 

 

다니엘과 만나 밥을 먹었다. 피자가 먹고 싶다는 아이와 마주 앉아 피자 한 조각을 입에 물었다. 다니엘은 연신 조잘조잘 거리며 입을 오물거렸다. 꿈이 생겼다고 했다. 경찰이 될 거라고. 경찰이 되고 싶다고. 경찰제복을 입은 다니엘을 떠올리니 꽤나 잘 어울렸다. 열심히 하라며 어깨를 두들겨주자 아이의 귀 끝이 조금 붉어졌다. 아니다. 잘 못 봤겠지.

 

다니엘은 메고 왔던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내게 작은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이게 뭐야?”

 

오늘.. 어버이 날이에요.. 비싼건 아니고..”

 

 

안을 열자 심플한 넥타이핀이 들어 있었다. .. 좀 감동. 어버이 날 내게 선물을 주다니..

 

 

고마워! 나 너무 감동이다!!”

 

 

넥타이핀을 꺼내 허공에 올려 바라보니 조명에 반짝여 빛이 났다. 오늘은 넥타이를 매고 오지 않은 탓에 입고 있던 셔츠 카라에 넥타이핀을 꽂았다.

 

 

어때, 어울려?”

 

. 잘 어울려요.”

 

 

눈동자가 안 보일정도로 접힌 아이의 눈에서 단내가 날 것 같았다. 다니엘은 웃는게 참 예뻤다. 아이와 만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다니엘은 더 이상 공허한 눈빛을 보이지 않았다. 원래 잘 웃었던 아이처럼, 원래 사랑받고 컸던 아이처럼 해맑게 잘도 웃어댔다. 원장님 말씀으로는 시설에서 거의 맏형에 속하는 다니엘이 어린 동생들을 살뜰히도 잘 챙긴다고 하셨다.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이 이런건가. 원장님이 다니엘을 칭찬하시면 내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시험을 잘 봤다며 중간고사 성적표를 내게 내미는데 그 종이에 적힌 등수를 보고는 아이를 힘껏 안기도 했다. 다니엘은 날이 갈수록 성장했고, 나는 그런 다니엘을 보는 게 좋았다.

 

 

.

.

 

 

 

 

다니엘은 때로는 우리 집에서 함께 밥을 먹었다. 엄마가 보내주신 밑반찬들의 양이 너무 많을때면 함께 해치워달라며 집으로 불렀다. 처음 우리집에 불렀을 때 다니엘은 작은 꽃다발을 내게 안겨주었다. 첫 방문에는 빈손으로 오는거 아니래요. 라며 쭈뼛 쭈뼛 내미는 꽃의 이름은 알 수 없었지만 그 뒤로 보이는 다니엘의 붉은 볼과 색이 비슷했다.

 

어느새 다니엘은 내가 느낄 수 있을 만큼 내게 고마움이상의 호의를 내뿜었다. 하지만 나는 그걸 무시했다. 지금의 관계가 좋았기에, 어린 아이의 사춘기적 감성은 금방 사라질 수 있는 감정이라 치부했다.

하지만.. 내 마음대로. 그러면 안되는 거였다.

 

.

.

 

 

 

 

그 날도 다니엘이 우리집으로 오기로 한 날이었다. 내게 자기가 만든 음식을 해주고 싶다며 오겠다고 땡깡을 부리는 아이를 막을 변명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미리 잡혔던 약속이 있어서 다니엘에게는 저녁을 함께 먹자고 했다. 원장님께 양해를 구해 하룻밤 재우고 다음 날 데려다 줄 생각이었다.

 

토요일 점심 데이트를 함께한 상대는 약속이 있어 오늘은 그만 들어가야 한다는 내게 아쉬움을 표하며 계속 붙잡았다. 다니엘이 집으로 오기로 한 시간은 6. 최소한 5시에는 가서 집 정리를 해야했다. 아이는 언제나 약속시간보다 30분 빨리 오곤했으니까. 시계를 보니 4. 붙잡는 상대에게 정말 가야 한다고 말하니 그러면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그것까지 말리자니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내 차키를 상대에게 넘겼다. 집 앞에 도착하니 450분이 조금 넘었다. 잘가라며 인사를 건냈다. 그런데 내게 차키를 돌려주던 상대가 갑자기 내 손목을 잡아끌어 입을 맞추었다. 당황한 내가 가슴팍을 밀어내자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겨우 데이트 한 번 했는데 어디서.. 다시 안보는게 좋겠다며 몸을 돌리는데.. 상대가 다시 내 손목을 붙잡았다. .. 잘못 걸렸네. 한숨을 내쉬며 이마에 손을 짚는데, 주차된 차들 사이로 익숙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니엘?!”

 

 

한 손목에는 커다란 마트 봉지를 걸고 있던 다니엘이 잔뜩 구겨진 미간을 하고는 서서히 내게로 다가왔다. 다니엘의 시선은 나보다는 잡힌 손목을 향해 있었다. 다니엘은 내 손목을 잡은 상대의 팔을 거칠게 뿌리치고 나를 자신의 품에 안으며 차가운 눈빛을 뿜어댔다.

 

 

당신, 뭔데요.”

 

 

다니엘의 서늘한 눈빛에 상대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다니엘의 체구는 그에게 위협을 주기 충분했다.

 

 

다니엘, 잠깐만.”

 

 

다니엘의 품에 안긴 꼴이 우스워 벗어나려는 데 날 안은 손에 더 힘이 들어가 벗어나지 못했다.

 

 

뭐야, 남자가 있었어? 있으면 말을 하지. 에이씨.”

 

 

상대는 낮게 욕짓거리를 내뱉고는 우리에게서 멀어졌다. 상대의 뒷모습이 사라지고 나서야 다니엘의 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니엘.”

 

 

부르는 내 목소리를 외면하고 다니엘이 나보다 앞 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내가 멍하니 있자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그리고 다시 열렸다.

 

 

안 타세요?”

 

 

아이는 내게 화를 내고 있었다. 목소리가 눈빛이 분위기가 명백히 내게 화를 내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붙잡고 나를 계속 응시하는 다니엘 때문에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그 안으로 올라탔다. 둘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11층에 도착해 집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까지 우리 사이는 무거웠다.

 

문을 여니 코룽이가 주인의 귀가를 반기며 방방 뛰어댔다. 다니엘이 그런 코룽이를 품에 안고는 연신 털을 쓰다듬었다. 옷 갈아입고 올게. 라는 내 말에도 다니엘은 나를 바라보지 않고 코룽이만을 쓰다듬고 있었다.

 

옷을 갈아입는 내내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하필이면 다니엘에게 남자와 입을 맞추는 장면을 들켰다. 내가 의도했던 상황은 아니었지만 나는 죄를 지은 학생처럼 변명거리를 떠올리기 위해 애를 쓰다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내가 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와 냉장고 문을 열어 물을 하나 꺼내 마셨다. 갈증이 났다. 냉장고 안은 다니엘이 사온 음식재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시선을 옮기니 소파 위에 앉은 다니엘이 아직도 코룽이를 품에 안고 쓰다듬고 있었다.

 

 

검사님..”

 

 

나를 부르는 다니엘의 목소리가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다.

 

 

코룽이 말이에요. 버려진 개라고 하셨죠.”

 

...”

 

 

아이는 나를 보지 않았다. 왠지 목이 더 타는 것 같아 들고 있던 물병을 다시 입에 데고 마셨다.

 

 

동네 애들이 박스에 버려진 코룽이를 괴롭히는게 불쌍하고 안쓰러워서 데려오셨다고 하셨잖아요.”

 

“.........”

 

 

다니엘이 코룽이를 양 손으로 들어 올렸다. 끊어져 뭉툭해진 코룽이의 꼬리가 연신 움찔거렸다. 혀를 내밀고 헥헥 소리를 내며 다니엘에게 재롱을 부리고 있었다.

 

 

“......저도.... 코룽이 같은거에요? 검사님한테?”

 

“....”

 

 

아니라는 말이 내 생각보다 훨씬 느리게 나왔다. 아이의 질문에 놀랐던 탓일까. 아니면 내 마음 속 깊은 곳을 들켜 당황했던 탓일까. 내가 만든 몇 초의 정적이 분명 다니엘에게 상처를 만들었을 게 뻔했다. 아이는 한 쪽 입꼬리를 올리고 차게 웃었다. 들어 올린 코룽이를 내려주자 코룽이는 원을 그리며 뱅글뱅글 제자리를 돌았다. 다니엘이 손을 내밀자 벌러덩 몸을 뒤집으며 발을 흔들었다. 내미는 다니엘의 손길이 기분 좋은 듯 꿈틀대는 코룽이는 눈치가 없는게 분명했다. 지금 이렇게 분위기가 차가운데 코룽이만이 그 차가움을 느끼지 못했다.

 

다니엘이 몸을 일으켜 나를 향해 발을 움직였다. 아이가 점점 내게 가까워질수록 나는 뒷걸음을 쳤다. 도망치던 나는 더 이상 갈 수 없는 벽에 부딪쳤고 다니엘이 내 코앞으로 다가왔다. 고작 10센티쯤 될법한 거리까지 내게 얼굴을 가까이한 다니엘이 양 손으로 벽을 짚어 나를 그 안에 가두었다.

 

 

다니엘...”

 

검사님... 저는요..”

 

“....”

 

검사님의 동정이 필요한 어린애가 아니에요.”

 

 

어느새 이렇게 자란걸까. 다니엘은 더 이상 아이가 아니었다. 내가 만났던 최초의 약자였던 다니엘이 보이지 않았다. 그의 눈빛은 너무도 진한 수컷의 향기를 품고 있었다. 만난 지 햇수로 3년째가 된 19살의 다니엘은 그동안 내가 알던 모습이 아니었다. 내가 한순간의 감정일거라 여기며 외면했던 눈빛은 사라지기는커녕 그 욕망을 더 키워가고 있었다. 나는 대체 왜 이 눈빛을 계속 외면했을까.

 

 

“...다니엘.. 나는.. 널 동정한게 아니야..”

 

거짓말..”

 

 

한 쪽 입꼬리만을 올리고 웃는 다니엘의 눈이 날카로웠다. 입술은 웃는데, 눈은 웃지 않았다.

 

 

나한테 내밀었던 그 손, 나한테 보여줬던 그 다정함.. 그게 전부 동정인 줄 내가 모를 줄 알았어요? ..그래도 상관없었어요. 검사님이 내게 주는 그 다정함이 동정이여도 상관없었다고요. 검사님 옆에 있을 수 있으면 아무래도 좋았어요.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받은 따뜻함이었으니까.. 내가 잡을 수 있는 유일한 손이었으니까.. 검사님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요.. 나는요... 검사님이 내 아버지 같았고, 내 형 같았고, 내 가족 같았어요,.. 그리고.. 지금의 나는요.. 검사님을... 옹성우 당신을.. 사랑해요....”

 

다니엘...”

 

 

다니엘의 입에서 절대 듣고 싶지 않은 말이 흘러나왔다. 안돼. 그만. 더 이상 말하지마..

 

웃지 않던 눈동자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얀 볼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그의 뾰족한 턱 끝으로 모여 바닥으로 떨어졌다. 마음이 아파 그 눈물을 닦아 주기 위해 다니엘의 볼에 손을 올렸다. 다니엘이 내 손길을 쳐냈다.

 

 

“...하지마요. 이제.. 나한테 더 이상 다정하게 대하지마요.. 날 사랑해 줄거 아니면.. 만지지마요.. 다정하게 대하지 말라구요..”

 

 

다니엘에게 거부당한 내 손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우는 그의 얼굴이 너무 마음 아프지만 내가 줄 수 있는 사랑과 다니엘이 원하는 사랑이 다른 것이기에 나는 다시 그 볼을 쓰다듬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의 우는 얼굴을 계속 볼 수가 없었다. 내 돌아간 고개가 다니엘에게 거절의 뜻으로 전달된 건지 다니엘의 무릎이 무너져 내렸다. 바닥과 무릎이 마찰음을 크게 내며 닿았고 다니엘이 내 양손을 붙잡아 자신의 이마를 맞추었다.

 

 

“... 사랑해주세요.. 검사님... 동정이여도 괜찮으니까.. 날 사랑해주세요......사랑해...주세요... 제발요.....”

 

 

다 자란 수컷의 향기를 뿜던 다니엘이 어린아이처럼 서럽게 소리내며 울었다. 내 귀에 그의 울음소리가 마치 짐승의 포효처럼 들렸다. 너무도 서럽게 울어대는 다니엘 때문에 내 눈가에도 눈물이 맺혔다.

 

다니엘.. 우리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