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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녤옹

/여름은 매년 돌아온다.

/Summer comes back every year.

 

/보바.

/Purple Banana.

 

 

 

 

 

 

 

 

 

 

눈이 아프다, 해가 무섭게 내리쬔다.

 

유난히 파란 하늘이 있다. 푸르다기보단 구름 한 점 없어 탁해 보이기까지 한다. 사람들은 이걸 맑다고 표현한다. 맑음과 탁함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내게는 그저 숨이 막힐 정도로 파랗다.

 

숨통이 트이는 건 먹구름이 푸름을 몰아내면서부터다. 비가 내리는 건 별로 신경 쓰지 않지만 저게 구름인지 뭔지 구분도 안가는 하늘 아래 서 있자면 그 그늘이 나를 덮어주는 것만 같다. 그대로 그늘에 눌려 납작해진 느낌이 들 때쯤, 맥주 하나를 따러 편의점에 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달랐다. 맑은 하늘과 푸른 구름을 좋아하던 너와 나는 그렇게 달랐다. 밤하늘에 희미하게 비친 작은 별들마저 좋다고 말하던 너를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닌데, 딱히 이해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맥주 한 캔과 담배 한 개비는 같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마치 오랜 전통이라도 되는 듯 맥주 하나를 비우고 담배로 입가심을 했다. 매캐한 연기는 빗방울 사이로 순식간에 사라진다. 네가 나를 위해 담배를 물기 시작한 것도 아는데, 담배로는 우리의 차이가 태워지지 않았다.

 

언제부터 네가 그렇게 앞서갔는지 모르겠다. 언제부터 내 마음은 뒤처졌으며, 너는 뒤를 보고 걷게 됐는지도. 내게 남아있는 건 지독한 정, 미안함, 기억, 미련, 뱉지 못한 인사... 그중 사랑은 이미 희미해졌다. 네 경쾌한 발걸음을 따라가려다 조금 힘이 부쳤다. 힘든 걸 모른 채했으면 됐는데 알잖냐, 나 유리 체력인 거. 어느 순간부터 내 속도로 걷기 시작했다.

 

 

 

"내만 형을 좋아한다. , 그거 알아요? 우리 만난 지 4년도 더 넘은 거. 근데 형은 지금 어디에 멈춰 서 있는 거예요."

 

 

 

다니엘이 울 줄은 몰랐다. 어른스럽고, 키 크고, 성격 좋고, 단단한 사람인 네가 울 줄은 몰랐는데. 그런 너를 무너트릴 만큼 내가 그에게 상처를 줬다는 게 놀라웠다. 나는 언제부터 너에게 이렇게 커다란 존재가 됐으며 언제부터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게 됐는지. 미안함이 쌓이면 죄책감이 된다.

 

그래서 서로를 위한 일이라고 말해버렸다. 변명마저 성의 없었다. 마지막까지 나는 다니엘에게 상처를 준 것이다.

 

 

 

그래, 그만하자 형.”

 

 

 

너와 나의 계절이었던 여름은 매년 돌아온다.

 

 

 

 

 

 

 

-

 

-

 

 

 

겉에 입고 있던 자켓을 신경질적으로 벗어던졌다. 아침엔 그렇게 쌀쌀하더니 열두시 땡 치자마자 거짓말처럼 푹푹 찌기 시작했다. 한국의 여름은 올 때마다 이렇게 요란을 떤다. 성우의 등줄기로 땀 한 방울이 길을 내기 시작했다. 도르륵 하고 흘러내리는 느낌이 유쾌하지 않았다.

 

 

 

미리씨, 여기 표시한 거 수정 좀 해줘요.”

 

 

 

여기저기 정신없게 표시되어있는 종이뭉치를 툭 건넸다. 말은 한마디면 충분했다. 워낙 센스 있게 일을 잘 하니까. 클라이언트의 변덕에 장단 맞춰 줄 만큼 여유가 있는 사람이었으면 싶었는데, 성우는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늘 사람을 상대하는 건 다른 직원이. 그런데 이번 건 좀 더 지랄 맞았다. 웬만하면 성우가 나서지 않는데 딴지를 걸어도 납득이 가게 걸어야지, 이정도면 그저 악감정에 치받힌 시비로 밖에 안 보였다. 여기서 질문 하나, 그렇다면 누구를 향한 악감정일까?

 

 

 

클라이언트를 회사로 불러내기로 했다. 아니지, 모시기로 했다.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 이길래 사람을 이렇게까지 괴롭히나 얼굴 한번 봐야했다. 간만에 끊었던 담배가 생각난다. 얼굴을 마주하면 그래도 덜 지랄 맞아지지 않을까 하고 기대를 품었는데 사무실 유리창 너머로 보인 얼굴에 그 기대는 휙 하고 휩쓸려나갔다.

 

말없이 자리에 앉는 클라이언트를 내려다보며 성우는 그대로 멈춰 섰다. 어이가 없으면서도 반갑고, 그 지랄 맞던 새끼가 강다니엘이였다는 게 또 괘씸했다. 그럼 이해가 가지. 그 악감정이 내 것이었구나.

 

 

 

사람을 불렀으면 뭐라도 하시죠. 그렇게 한가한 사람은 아닌데 저.”

 

오랜만이다?”

 

말했다시피 시간이 별로 없어서, 업무 외의 얘기는 안 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높임말 써주시고요.”

 

 

 

수트에 완벽한 서울말까지, 성우는 하마터면 박수를 칠 뻔했다. 잘 자랐구나, 잘 자랐네. . 말문이 턱 막혀 별다른 말을 할 수 없었으므로 다니엘의 바람에 맞춰 성우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얼굴을 맞대니 그렇게 지랄 맞던 게 사라졌다. 성우가 하는 말에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이던 다니엘이 그럼 그렇게 진행해주세요 하고는 금세 자리를 떴다.

 

다시 등줄기를 타고 땀 한 방울이 흘러내린다. 올해도 여름이 오는구나.

 

 

 

 

 

-

 

 

 

여름, 아이스크림, 에어컨, 야근. 직원들 입에 쭈쭈바를 하나씩 물렸다. 야근 수당은 꼭 챙겨주는 개념대표였기에 직원들은 군소리 없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지난번 다니엘과의 만남 이후 들이밀었던 최종 디자인은 싱겁게 오케이 사인을 받았다. 그 내용을 보니 대충 어떤 회사에 다니는지 짐작은 갔는데, 아무리 서울이 작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재회를 할 수가 있었을까.

 

다니엘은 이미 알고 있었다, 는 게 유일무이한 가설이다. 헤어진 지 3년하고 조금 더 됐다. 아직은 떨어져 있던 것보다 만났던 시간이 더 길었다. 성우는 그때 자신이 얼마나 개같이 굴었는지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만일 다니엘이 알면서 그렇게 지랄 맞았던 거였다 하더라도 성우는 이해했다. 내가 원인이거늘.

 

가장 푸르던 때 만났던 것 같다. 넌 스물 하나, 난 스물둘. 나름 인생의 쓴맛을 봤다며 으스대던 나이었다. 둘 다 군에서 제대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는데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다. 인생 과제 중 꽤 크다고 말할 수 있는 리퀘스트를 끝마친 뒤의 해방감과 외로움, 동반자의 필요성... 두 사람은 길게 말하지 않았다. 금세 가까워져 금세 마음을 주고 금세 불타올랐다. 성우는 애초에 불같은 사람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 무던하고 대충 사는 법을 알았는데, 다니엘은 정반대였다. 뭐든 간에 늘 열심에 열정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다. 그게 딱히 버겁던 건 아니었지만 성우는 아 정말 다르구나 하고 생각하는 날이 많았다.

 

다름의 해석에 대해 얘기해보자. 성우는 늘 깊이 생각하는 타입인데, 다름에 대해선 특히 더 오래 생각하곤 했다. 사람들이 다름을 잘못 말할 때 틀리다 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사실 꽤 많다. 그것은 다름에 대한 해석의 차이 혹은 오해로부터 시작된 건 아닐까 생각한다. 성우가 너와 나는 참 다르다,’ 하고 말할 땐 문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는데 다니엘이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성우는 어렴풋이 예상이 갔다. 다르다는 건 종종 부정적인 뜻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다니엘도 그런 느낌을 받았을까. 죄책감을 받아들이기로 한 이상 이런 생각이 들이닥치는 건 불가항력적이었다.

 

야근은 조용히 진행됐다. 유리창 너머로 노크 소리가 나기 전까진. 다니엘이었다. 문을 통통 두드리는 소리에 직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저번에 봤을 때와는 달리 피곤한 얼굴이었다. 직원 하나가 문을 열어주니 뒷목을 문지르며 대표님을 만나러왔다 말하는 다니엘이었다. 성우가 다니엘을 사무실로 데리고 들어왔다.

 

 

 

무슨 일... 이렇게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시죠?”

 

... ... 씨발.”

 

?”

 

회사에서 다 갈아엎으라 해가. 좆같아서 두번은 안 올라했는데... 존나 지랄한다 아이가.”

 

 

 

저번과는 다른 반말에, 욕에, 사투리까지. 여간 피곤한 게 아니었나보다. 성우는 가만히 다니엘을 바라보다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니까 개지랄 떨던 게 다니엘이 아니라 저 회사였구나. 다시금 반가움이 몰려왔다. 성우와 다니엘은 모든 직원이 퇴근하고 나서도 한참동안 대화를 나눴다.

 

 

 

반가움은 그리움을 끌어내어 그리움 너머의 익숙함과 재회하게 한다. 길고 길었던 회의가 끝나고도 두 사람은 헤어지기가 아쉬워 회사 앞 편의점에 들렀다.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는 언제 마주해도 편안했다. 그 때처럼 맥주 한 캔을 사서, 그 때와 달리 담배 한 개비가 아닌 과자 한 봉지를 샀다. 곧 비가 올 것처럼 꿉꿉한 날이었다.

 

 

 

너네 상사 변태지? 어떻게 이제 와서 다 뒤엎냐.”

 

미안해요. 내 선에서 해결해볼라 했는데 그 새끼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어가 어쩔 수 없었다.”

 

미안하긴. 클라이언트가 맘에 안 든다는데 뭐 어쩔 수 있나.”

 

페이는 확실히 할 거니까. 좀만 더 고생해줘요.”

 

 

 

다시 만난 날 그렇게 딱딱하게 굴었으면서 다니엘은 언제 그랬냐는 듯 예전과 같은 모습이었다. 다니엘을 바라보고 있자면 오로지 다니엘만 보이는 건 아니다. 어리던 그때, 생소하던 감정, 함께한 것들... 단순히 추억이라 부르기엔 그것보단 좀 더 특별한 것들이었다. 오늘은 정말 한 캔만 마셔야겠다. 실수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별다른 내용의 대화가 아니어도 편한걸 보니.

 

 

 

 

 

 

 

-

 

 

 

 

 

멍했다. 입에 물은 볼펜 뒷부분을 잘근잘근 씹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는 진짜 개새끼인가 보다. 이별을 먼저 말하지 못해 다니엘에게 마지막 인사를 떠넘긴 주제에 다시 만나니 또 반갑다. 욕심은 자신의 죄를 모르는 듯 끊임없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서른이 되어도 여전히 속이 없다. 성우는 그게 자신이 어릴 적 유난스런 사춘기 없이 넘어갔기 때문인가 하고 생각했다. 그때 부리지 못한 어리광을 다니엘에게 쏟아 부은 건 아닌가 하고. 여전히 철이 없다. 성우는 그렇게 핸드폰을 들었다. 맥주 한 캔이면 괜찮겠지.

 

 

 

언제쯤 마무리돼요?”

 

... ? 이번 건 맘에 든다니 다행이네.”

 

지도 양심은 있겠죠.”

 

 

 

또 편의점 앞이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플라스틱 테이블에 마주 앉아 맥주를 들이켰다. 다니엘은 별말 없었다. 일부러 그러는 듯 의뢰한 일에 관한 게 아니면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런 다니엘의 모습에 되려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인가를 떠올린다. 목이 탄다. 그래도 다니엘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이미 자신의 맥주 캔은 텅 비어 테이블 위를 굴러다녀도 성우가 다 마실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꺼내도 될지 성우가 입을 다문 채 마른얼굴을 쓸었다.

 

 

 

성우형.”

 

 

 

텔레파시라도 통했는지 다니엘 입에서 먼저 성우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성우의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 목소리로 불리는 성우형이 세 글자가 얼마나 반가우면서, 사람을 비겁하게 만드는지.

 

 

 

잘 지냈어요?”

 

 

 

물어봤어도 한참 전에 물어봤어야 할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성우는 마치 다니엘을 지금에서야 다시 만난 듯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띄웠다. 성우는 대답의 방향을 고민했다. 네가 없던 시간을 말해야 할지, 나만이 있던 시간을 말해야 할지. 전자는 아무래도 너무 비겁했다. 너에게 모든 걸 지게 만들어 놓고는 이제와 네가 없는 삶은 이랬다느니 저랬다느니, 성우가 얕게 숨을 들이 마쉬었다.

 

 

 

나는 뭐, 그럼. 내 성격 잘 알잖아.”

 

알죠.”

 

 

 

짧은 대답 속에 우리의 시간이 담겨있다. 그 시간은 자꾸만 자꾸만 성우를 끌어당긴다. 어차피 비겁한 인생이었으니, 한 번 더 비겁해지라고. 어느새 성우의 맥주 캔도 바닥을 드러냈다. 이제 여기서 헤어지면 되는 거지. 한 번만 마셨어야 할 맥주를 두 번 마셨고 너의 얼굴도 두 번이나 봤으니 이제 그만 헤어지면 되는 것이다. 그래야 하는데, 성우가 테이블 밑으로 작게 주먹을 쥐었다.

 

 

 

니엘아.”

 

 

 

다니엘 손 안에 있던 맥주 캔이 와그작 하고 구겨졌다.

 

 

 

우리 집에 갈래?”

 

 

 

 

 

 

 

-

 

 

현관문이 부서질 듯 세게 닫혔다. 정장을 갖춰 입은 두 사내가 서로에게 엉겨 붙어 다급하게 입술을 찾는다. 이건 모두 내 잘못이다. 내 잘못이고, 내가 쓰레기니까 오늘밤만은 예전처럼 날 대해줘. 대충 벗어던진 구두가 현관 앞을 굴러다녔다. 간만에 맞닿은 입술의 감촉은 네게 다시 불린 이름만큼이나 반가웠다. 너무도 익숙하고 익숙해서 두려운. 열려있던 베란다 창 틈 사이로 텁텁한 여름바람이 불어온다. 곧 비가 오려나. 어둠은 곧 무채색의 옷가지들로 어지럽혀진 집안을 조용히 덮어주었다. 오늘의 잘못을 덮어주듯, 이 밤은 그저 실수라며 용서받을 수 있을 것만 같이. 거실 소파에 몸을 겹쳐 누워있던 두 사람은 절대 눈을 맞추지 않았다. 틈이 생기지 않게 입을 맞추고 서로의 몸을 탐하고, 마치 처음으로 함께 밤을 보내던 그 날처럼.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형체 없는 소리만이 귓가를 울릴 뿐, 두 사람은 언어를 잃은 듯 정신보다 행동이 앞서도록 내버려뒀다.

 

오늘밤의 여름은 그 때와 같은 여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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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맥주 한 캔이었다. 그것뿐이었는데 마치 전날 과음이라도 한 듯 머리가 아파왔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보니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니엘은 자신의 흔적을 완벽하게 지우고 사라져 있었다. 뭘 기대한 건지, 이런 감정마저도 나답다. 이기적이고 비겁하네. 나가면서 성우의 옷도 정리했나보다. 성우의 수트가 얌전히 의자에 걸쳐져 있었다. 엉덩이를 붙이고 앉으니 뒤가 찌르르 했다. 그러고 보니 얼마 만에 가진 잠자리였나, 충분히 풀어줄 시간도 없어 다급했던 전 날 밤의 기억이 떠올랐다. 어스름히 비추던 달빛 아래의 다니엘은 꼭 어렸던 스물 하나 그 때의 얼굴과 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내 얼굴을 똑바로 봐주지 않았다는 것.

 

성우가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비틀비틀 부엌으로 향하다 테이블에 놓인 검은 봉투를 보고 우뚝 멈춰 섰다. 다니엘이 사다 놓고 간 건가. 날카로운 소리로 부스럭대는 봉투를 몇 번 뒤적였더니 인스턴트 죽이 종류별로 나왔다. 조그만 플라스틱 그릇을 손에 쥔 성우가 허, 하고 실소를 내뱉었다. 아침엔 밥이라며, 술 마신 다음날엔 꼭 죽을 먹던 버릇이 있었다. 그 때는 기어코 피곤한 다니엘을 졸라 아침 댓바람부터 죽을 사오라 시켰었다. 이제는 빵도 잘 먹는데.

 

눈앞에 놓인 작은 죽들을 바라보던 성우가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내가 어젯밤 다니엘에게 어떤 짓을 한 건지 뼈저리게 느껴졌다. 나이를 먹어 예전보다 더 무뎌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모든 기억과 감정들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 듯 온몸을 찌른다. 무딘 것이 아니라 무심한 것이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 푸른 건지 탁한 건지도 구분을 못하는 내가, 결국 나의 이기심이 어린 날의 다니엘에게 상처를 입히고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나는 나를 향한 다니엘의 마음이 얼마나 큰지를 잘 알고 있었다. 너무 잘 알았다. 알면서, 알아서 그랬던 것이다. 시간을 되돌려 스물 하나 그 때의 다니엘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 빛나고 귀했던 어린 날의 강다니엘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무릎이라도 꿇고 빌 것이다. 내가 너를 더 갉아먹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옹성우를 떠나라고.

 

시야가 흐려진다. 뜨뜻한 눈물이 성우의 손등 위로 떨어져 내렸다. 참나, 나이 먹으니까 울기도 쉽게 우네. 눈물마저 저한테는 과분한 것 같다. 미친 사람처럼 덜렁 속옷 바람으로 바닥에 주저앉아 죽을 품에 끼고 울던 성우가 톡이 울리는 소리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직업병이다. 도착한 톡은 바로바로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거.

 

 

 

 

강다니엘

[오늘도 갈게요.] 오전 7 : 21

 

 

 

 

매미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머릿속을 파고드는 시끄러운 여름 소리. 더운 바람이 온 몸을 휘감고는 놓아주질 않는다.

 

 

 

올해도 이렇게 여름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