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월간녤옹

 

 

월간 4월호 부터 이어지는 시리즈입니다.

 

 

 

 

 

 

 

인공호흡3

예하C

 

 

 

 

 

 

 

 

 9.


 모라토리엄. 경제 용어로,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생겼을 때 그 일의 해결 시기를 조금 늦추는 일. 즉, 유예. 성우는 고등학교에서 공부할 때 언뜻 들었던 단어를 기억해냈다. 의식적으로 떠올린 것은 아니다. 다만 최근의 일에 대해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그 단어가 수면 위로 떠올라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에, 어떻게 수영을 시작하게 되었더라?’

 

 기억은 선명했다. 여느 아이들처럼 물장구를 치며 물에서 노는 시기가 지나간 뒤 수영을 배웠고, 물살을 가르면 가를수록 물과 하나가 되는 것 같은 일체감이 들었다. 내가 살아갈 곳은 여기다. 땅 위에서 두 발로 걷고 뛰고 하는 것보다, 나는 이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다.
 


 인어나 할 법한 유치한 생각을 했는데, 어느새 그 생각이 성우의 길을 정해버렸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웃을 지도 모르지만, 성우는 그 생각 하나로 지금껏 수영을 한 시도 그만두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난 여기가 아니면 안 돼. 이게 아니면 안 돼. 그런 강박에 가까운 생각으로, 좋다거나 싫다거나 하는 생각도 한 적이 없었다.

 

 배고프면 밥을 먹고,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고, 졸리면 잔다. 수영은 성우에게 있어 그런 수준의 일이었다. 좋다 싫다를 따지기 이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일. 선택할 수 있었으면 다른 걸 했겠지. 그런 생각조차도 성우는 거의 한 적이 없다. 오히려 다른 사람에 비해 일찍 재능을 발견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단 하나.

 

 “형.”
 “응, 다니엘.”

 

 다니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매일, 수십 수백 수천 번을 후회하고, 그런 후회를 하는 자신을 환멸하고.

 

 “대답을 안 한다 했더니 종일 여기 있었나. 말이라도 해 주지”
 “으응, 미안해.”
 “내도 옷 갈아입고 올게. 기다리라.”
 “알겠어.”

 

 그럼에도 다니엘을 보면 제 마음은 감쪽같이 감춘 채 다정한 연인마냥 웃으며 대해주는 제 스스로에게 가증스러움을 느낀다. 그럼에도 다니엘을 놓아야지, 그런 생각은 라커룸에서의 고백 이후 한 적이 없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내가 어떻게, 다니엘을, 먼저 놓을 수가 있지?

 

 수영을 시작한 이래, 다니엘만큼 성우에게 포기할 수 없는 무언가가 생긴 건 단언컨대 다니엘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성우는 그게 두려웠다. 다니엘은 수영과는 달랐다. 성우의 인생에 있어 어느 정도의 색채와 빛을 가져다 줄 수는 있지만, 평생 같이 있어 줄 지도 모르는 것이고, 수영처럼 성우가 쥐고 있는 이상 늘 확신과 함께 곁에 있을 것이 아니다. 결국에는 성우가 소유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인간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성우는 늘, 본능처럼 다니엘을 욕심냈고 밥을 먹고 숨을 쉬는 것처럼 다니엘을 찾게 됐다.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진학하며 다니엘과 어쩌다 그렇게 된 것처럼 연락을 끊는 것조차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다. 이러면 돼. 아프고 힘들어도 이러면 된다고 1 년을 버텼지만, 다니엘과 재회하던 날 성우는 깨닫고 말았다.

 

 끊어내고 끊으려 해도 잊지 못했던 지난 1 년은 다니엘에게도 마찬가지인 시간이었으며, 어렴풋이나마 다니엘의 마음은 제 마음보다 더 곧은 것 같다고 느꼈다. 다니엘은 고민을 한 적이 있었을까. 성우가 있어서 제 삶에 어떤 차질이 생길지,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것이 정말 정답과는 거리가 먼 길일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이나 해 본 적이 있을까.

 

 그다지, 기대할 만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의심했다면 고백하지 않았을 것이다. 성우가 고백은 커녕 다니엘과 멀어지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수없이 고민하며 생각했던 것처럼.

 

 머리가 아팠다. 성우는 깊게 숨을 뱉은 뒤 다시 폐 끝까지 숨을 채우고는 물 속 깊이 잠겼다. 수영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도망치듯 물 속 깊게 잠겨 눈을 감았다. 실내 수영장의 빛은 햇볕을 따라가지 못했다. 물 속 깊이 잠겨 눈을 감자 새까만 어둠이 제 시야를 집어 삼켰다.

 

 비록 짧은 순간이어도, 안정감이 들었다. 마음 속에 들어찬 그 숨막히는 문제들을 전부 물 속에 내려 놓고 도망치고 싶었다. 마음이 제 마음대로 되면 얼마나 좋을까. 다니엘과 웃으며 헤어지고, 각자 제 인생을 걸어 간다면. 언젠가 마주치면 웃으면서 인사하자. 그렇게 산뜻하게, 친구와 헤어지는 것처럼 인사하고 돌아설 수 있다면…….

 

 성우는 그저, 무서웠다. 다니엘과 가까워지는만큼 자제력을 잃는 제 자신이, 다니엘과 있으면 수영을 포함한 전부 생각나지 않는 자신이, 다니엘만 있어 준다면 모두 포기해도 괜찮을 것 같은 스스로가, 다니엘은 절대 먼저 자신을 놓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그래서.

 

 다니엘을 자신이 먼저 놓게 될 것이라는, 움직이지 않을 사실이.

 

 “성우 형!”

 

 물 안에 잠겨 있음을 알면서도 자신을 찾아 헤매는 저 목소리도.

 

 “형, 어데 있길래 안 보이는데?”

 

 자신이 참았던 숨을 터트리며 수면 위로 올라오는 동시에 자신을 발견하고 환해지는 저 표정도.

 

 “내 형 죽은 줄 알았다. 물에 빠져서.”
 “물고기가 익사하는 소릴 해.”

 

 고작 몇 분 전에 봤으면서 맹목적으로 부모를 사랑하는 어린 자식처럼 제게 쏟는 애정도.

 

 “이리 와.”
 “내 잠깐 준비 운동 좀 하고.”
 “됐으니까, 어서.”

 

 다짜고짜 빠트리듯 잡아 당겨 물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목을 감아 끌어 당기며 입술을 겹치자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적극적으로 끌어안으며 혀를 얽어오는 행동. 셀 수 없을 만큼 입술을 겹쳤는데도 여전히 조금 떨리는 그 감정도.

 

 “하아, 형.”
 “응, 다니엘.”

 

 겹쳐오는 체온은 늘 처음처럼 뜨거웠다. 그 애정의 깊이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 같은 온기였다. 성우는 늘 그 체온에 안심했고, 숨을 쉬었고, 불면 따위는 잊은 채 깊이 잠을 잤고, 물 속에 잠긴 것처럼 평온함을 느꼈다.

 

 그런 감정의 기반이 되는 건 당연히, 다니엘이 단 한 번도 돌려 말한 적 없고 표현을 감춘 적도 없는 곧고 직설적인, 솔직한 애정이었다. 그 마음이 너무나 애틋하고 제 자신의 비겁함이 미안해서, 성우는 점점 견딜 수가 없어졌다. 벼랑 끝에 내몰려, 사실이 총구를 머리에 들이대고 다그치는 것 같았다. 전부 포기하고 같이 떨어지든가, 다니엘을 버려. 그러면 네가 가려던 길을 갈 수 있게 해 줄게. 한 번 정도, 실수는 할 수도 있는 거니까.

 

 그게, 실수였을까?

 

 성우에게는 수영을 시작한 이래로, 제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광명이 비추는 길이 늘 함께 했었다. 그 빛을 따라 깊은 물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뻗어나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을 만난 이후…… 성우는 그 길이, 제가 가려던 길이 맞는지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다니엘을 버리고 가는 길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니, 애초에 내가 하고 싶은 건 뭐였지.

 

 기억의 상실을 불러오는 우울 속에서, 성우는 제 자신을 포함한 그 어떤 것도 믿지 못하게 되었다. 그건 생각보다 두려운 일이었고, 다니엘이 곁에 있을 때는 진통제를 삼킨 것처럼 비로소 숨을 쉬고 안심할 수 있었지만, 그것조차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안정적인 안식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성우도 알고 있었다.

 

 과연 그게 정말, 실수였을까?

 

 인간은 변한다. 그건 움직이지 않는 명제였고, 다니엘과 자신은 아무리 물 속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지낸다고 해도 결국엔 인간이었으니까.

 

 

 

 10.


  인어공주는 결국 왕자를 찌르지 못하고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11.
 성우는 자신이 그토록 헌신적인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차피 물 속에서 살아간다는 건, 끝없이 숨을 참는 노력과 질식의 바로 앞에서야 죽지 못해 숨을 쉬는 행위의 연속이 아닐까? 고민은 길었다. 지나치게. 그리고 거듭할수록 움직일 수 없는 답을 만들어 냈다.
 
 답을 내야했다.

 

 

 

 12.


 “그러니까, 다니엘.”

 

 비겁하다고 해도 어쩔 수가 없었다.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성우는 시선을 들 수가 없었다. 비가 내린 땅은 한껏 젖어 있었다. 물 웅덩이가 보였다. 다행이었다.

 

 나는 언젠가 이 날을 죽도록 후회할 것이다. 성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니엘을 받아 들인 것보다 더, 다니엘이 자신에게 익숙해지는 것을, 내가 다니엘에게 익숙해지는 것을, 그렇게 서로의 곁이 익숙해지도록 길들여질 때까지 내버려 두었다는 것을, 결국 그 끝조차 일방적으로 내가 잘라내버리는 것을 죽도록 후회하게 될 것이다. 나는 지옥에 떨어질 거야. 설령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이게 옳아.

 

 “이제 그만하자.”

 

 제 앞에서 소리를 죽인 채 우는 다니엘의 눈물로 땅이 젖어 들어가는 것을 보지 않을 수 있어서, 제 눈물 또한 감출 수 있어서, 정말, 정말로 다행이었다.

 

 정말로 이게 옳은 길일까?

 

 성우는 이미 정답을 확신할 수 있는 믿음을 상실해버렸다. 그것도 아주 오래 전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