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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녤옹

 

 

 

 

 

 

 

열대야

옹뀰

 

 

 

 

 

 

 

 

 

 

 

 

 

너의 다정함의 온도는 36.5도를 넘기고 내게 화상을 입힌다.

- 김우석, '다정함의 온도'

 

불면.

 

 

-.

 

 

그러니까 때는 태양이 서서히 뜨거워지는 5월이었다

 

"..누구세요?"

"... 너 구나, 그 국대."

".. 국대는 아이고..."

"유망주?"

"꿈은 그래요... 근데 여서 뭐해요?"

 

곧 있으면 일본에서 대회가 열릴 것이었다. 혜성처럼 등장한 마린 보이, 물의 소년, 국대 유망주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수영계의 이목은 다니엘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는 이사장은 온 선생님들에게 국가의 공을 세워야 한다며 대뜸 다니엘이 원할 때 무조건 수영장으로 보내라는 공고를 내보냈다. 다니엘과 그의 어머니를 따로 불러내고는 "아드님의 컨디션은 저희에게 맡겨 주시죠!"라고 했던 날이 엊그제 일처럼 생생했다. 덕분에 다니엘은 안 그래도 유명인사였는데 유명세가 더 높아졌다. 정확히는 조롱하는 학생들이 더 많았지만 말이다

그래서 다니엘은 더 수영장이 편했다. 수업을 듣다 졸려서 쉬는 시간에 엎드려 잠을 청하려고 해도 바로 조롱 섞인 말들이 들려왔다. 마치 들으라는 듯, 저 새끼 근데 이랬는데 대회 망함 어떻게 되는 거임? 학교 개망신 아냐? 아 씨발 개부럽다, 나도 어렸을 때 운동이나 할 걸. 지금이라도 축구로 가봐? 네 수준에 축구는 무슨, 유망주라잖아. 그래도. 유망주는 지랄, 결국 국대는 아니 잖아. 국대도 아닌 새끼가 국대인 척 꼴값은. 지랄 났네. 어렸을 때부터 남들이 하는 일들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간 선택의 대가는 외로움이었다. 하지만 다니엘은 차츰 그것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외로움이 남들의 시기와 점점 친해지게 되었다.  

아니 정확히는 친해지는 중이었다. 아직 17살에게 외로움이란 아직까지는 먼 존재였다.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그 소리는 잠시 움찔한 듯 조용했지만 수군거리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야 저 새끼 들은 거 아냐? 와 저 새끼 또 나가네, 좋겠다. 저 새끼 1등 하나 안 하나 내가 본다. 힐긋 거리는 눈들에 다니엘은 오늘도 차분한 척 해야만 했다. 수영에서도 그렇 듯, 약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 그 게임에서 지는 사람은 오직 제 자신이니까

교무실에 가 운동을 하고싶다고만 하면 선생들은 모두 출석 인정을 해줬다. 그리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체육관 옆 수영장으로 향했다. 수영장은 언제나 청결함을 유지했다. 실제 경기장보다는 좁은 수영장에서 옷을 갈아입고 스트레칭으로 팔다리를 쭉쭉 늘려가며 들어서던 순간이었다. 유리문을 열자 보이는 조그만 뒷통수에 놀라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다 유리문이 끼긱하고 쇳소리를 내는 바람에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조막만한 얼굴에 이목구비가 선명한 얼굴이, 까맣게 덮인 머리 사이로 보이는 까만 눈과 마주치고 말았다. 강다니엘 17년 인생 가장 잘생긴 얼굴이었다.

 

 

 

 

 

", 엄마. VIP1시간 전에 돌아가셨고, 자고 가도 된다길래 그냥 씻고 체크아웃했어요. 저 이만 퇴근할게요."

[왜 그랬어, 이왕 자는 거 호텔 스위트룸 좀 누려보지.]

"내 처지에 무슨."

[네 처지니까 자고 와야지, 그런 매너 있는 놈들이 앞으로 몇 올 것 같아?]

"난 내 집이 편해요, 그러니까 나 오늘 이만 퇴근-."

[그래, 내일은 두 분이야. 잠 푹 자고 와. 살도 좀 찌우고. 너 너무 안 먹인다고 컴플레인 들어오는 거 알아?]

"그럼 딴 놈 쓰라지."

[너 지금 많이 번다고 개기니?]

"아들 애교 정도는 받아줘야지."

[아들은 염병, 들어가서 발 닦고 싸게 자기나 해.]

", 엄마도 잘 자."

 

씨발, 내가 살이 찌든 말든. 휴대폰을 자켓 안주머니에 우겨 넣으며 성우는 동시에 담배곽에 담배 하나를 입에 물며 욕짓거리를 했다. 불을 지피고 후, 연기를 한 번 뿜어내고는 또 한 번 씨발, 하고 욕을 뱉었다. 또 한 번 허리가 찌르르 울리는 기분이었다. 제 엉덩이를 어찌나 좋아하는지 아직도 엉덩이만 얼얼했다. 매너가 좋기는 개뿔 뭐 잘 수나 있어야 잠을 자지. 성우의 모습은 누가 봐도 완벽했다. 명품 수트와 신발, 그리고 깔끔하게 씻고 나온 덕에 처음에 했던 반깐 머리가 아닌 완전히 덮은 머리로 가르마를 살짝 다듬었다. 다시 하아, 하고 연기를 뱉는 성우가 톡톡 담뱃재를 아래로 털어내고는 유난히 맑은 밤하늘을 바라봤다. 좋은 호텔이라 그런가 더럽게 예쁘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구름을 찾아보려 했지만 실패였다.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이고는 하늘에 대고 후 내뱉었지만 이내 금방 사라졌다. 오늘은 유난히 몸이 피곤한 날이라고 생각했다. 이유를 알 수 없어 더 화가 났다. 지금 이런 사소한 순간에도. 빠르게 짧아져 간 담배에도 욕을 내뱉었다. 빌딩 숲 사이, 큰 전광판에서 오늘의 뉴스들이 쏟아졌다. 성우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이야기. 하하호호 웃는 얼굴들이 전광판 위로 띄어 지자 성우는 피곤이 되려 늘어나는 기분이었다. 오늘 팁도 두둑히 얻었겠다. 모범택시 타야지. 성우가 바닥에 담배를 툭 던지고는 연기를 뱉으며 꾹꾹 그것을 밟았다. 일어났을 때부터 자꾸만 어깨가 무거운 기분이었다. 왜 그런가 이유를 몰랐는데,

 

".. 실례하겠습니다."

"?"

"혹시 옹성우씨인가요?"

"...누구신데요."

", 경계는 하지 않으셔도 되고 저는 그냥 질문만.."

"성우형-!!"

"..., .. 저는..."

 

호텔 1층이 떠나가라 와다다 소리를 내며 낯익은 얼굴이 달려왔다. 티비에서 한참이나 많이 봤던 얼굴, 성우가 절대 모를 리 없는 얼굴이었다. 근처로 둘러싸는 경호원들, 눈이 휘어지도록 웃는 눈가에 점 하나, 깊게 패여지는 입동굴까지.

 

'대한민국의 마린 보이, 오늘 FINA 쇼트코스 세계선수권 대회 남자 1500m 자유형 금메달과 함께 당당히 입국.'

 

 

 

"넌 이름이...엄청 특이했는데, ....."

"다니엘이요."

"아 맞다, 다니엘. 이름 이쁘네. 난 옹성우."

"햄 이름이 더 특이한 거 같은데.."

"그런 말 많이 들어."

"근데 왜 여서 잠을 자고 있어요?"

"... 더워서. 수업도 듣기 싫고, 나 안 들어오는 거 이젠 신경도 안 쓰는 거 같길래. 물에 발 담그고 있으니까 잠이 솔솔 오더라. 수영장 냄새도 좋고, 그래서 어디 기대서 잠 좀 잤어."

"..매번 이 시간에 와요?"

", 여기 온 지 꽤 됐어."

"그랬구나..."

"근데 넌 왜 왔어?"

"..저야...운동하러 왔죠."

"너 원래 이 시간에 안 오잖아."

 

그래도 5교시까지는 듣고 오던데. 그걸 어떻게 알아요? 내가 항상 5교시 끝나면 돌아가거든. 같이 물장구를 약하게 치며 말이 트였다. 처음 놀란 다니엘에게 자연스럽게 옆을 내어주며 너도 들어 올래? 하던 성우에 자연스럽게 앉아 있다보니 어느 새 통성명이 끝나있었다. 연습해야 하니? 아뇨, 잠깐 놀아도 뭐라 안 한다. 완전 게으른 애구나? 맞나. 사투리 쓰네? 부산에서 살았는데 운동 때문에 여 오게 됐어요. 너 사투리 되게 이상하게 쓰는 거 알아? 섞여서 그래요. 섞여서. 속았네, 난 너 이름때문에 외국에서 왔나 싶었는데. 다들 그런디, 그래서 쪼매 힘들어요. 아예 녹음 해놓고 물어볼 때마다 틀어줄까봐. 좋은 생각인데? 방송부에 이참에 틀어줄까? 뭐라카노, 햄요 이상한 장난 디게 잘친디. 그 이상한 장난에 웃고있는 너도 이상하다고 생각 들지 않니

성우에 말에 다니엘이 까르르 웃으며 물장구를 쳤다. 물이 와이셔츠에 튀어 성우의 팔을 비쳐 보일 때쯤 결국 다니엘은 성우의 등쌀에 못 이겨 결국 수영장에 빠지고 말았다. 꽤 깊은 곳인 줄 알았는데 다니엘은 꽤 평안해 보였다. 햄도 들어올래요? 나 수영복 없는데. 그럼 들고 와요, 내랑 여서 놀자. 너 진짜 게으른 아이구나? 성우의 빈정거림에 다니엘이 다시 해사 하게 웃으며 성우에게 말했다

 

"맞다. 내 게으른 아니까 햄이 좀 많이 놀아줘요. 내랑 놀자, 여기서."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누군가와 이렇게 웃고 떠든다는 것이. 오랜만에 외로움이 점점 더 멀어지는 느낌을 받는 날이었다

 

 

 

 

"..햄요."

 

마이 화났나? 무려 60cm 정도 된다는 넓은 어깨가 보는 사람도 시무룩해질만큼 축 처져 있었다. 달그락, 성우의 앞에 캬라멜 마끼야또 안 얼음이 또 한 번 녹는 소리를 냈다. 벌써 5분 째 침묵이었다. 아까 그 호텔, 끔찍했던 스위트룸 바로 옆 방이 다니엘의 방이라는 것에 성우는 몹시도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 들었을까? 그래도 호텔인데 모텔촌처럼 방음이 부실하지는 않겠지? 별 생각이 들었다. 화려한 이 아이 앞에서만큼은 추해지고 싶지 않았다. 추한 모습은 일전에 너무 많이 보여줬으니까

상황을 요약하자면 간단했다. 성우는 단번에 다니엘을 알아봤고 일부러 모른 척했다. 저 옹성우 아닌데요, 라고 말하기엔 타이밍이 늦었다. 발뺌하기에는 다니엘이 너무나도 제 모습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아닌데? 옹성우인데 누가 봐도-. 진짜 내 몰라요? 알죠, 국가대표잖아요. 그거 말고. ...뭐를요? 옹성우씨 아니어도 내한테 그럼 시간 쪼매만 내어 줌 안돼요? 사람들 지금 다 우리만 본디. 마지막 말에서 성우는 다니엘이 꽤나 많이 얍삽해졌음을 느꼈다. 제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모습을 빠르게 눈치채고는 그 점을 이용해 저를 잡아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대단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어렸을 때 모습이 많이 사라진 것만 같아 조금, 아주 조금 아쉬웠다. 그 때는 마냥 강아지 같았는데. 성우가 굳이 '맞아, 내가 옹성우야.'라고 말하지 않아도 다니엘은 이미 진작에 성우가 거짓말했음을 알았는지 자연스레 제게 햄, , 거리며 부르고 있었다. 제 취향도 너무나도 잘 기억하고 있었고. 차마 커피에 손을 대기가 힘들었다. 이 마저도 이 아이의 배려가 느껴져서

 

"내 많이 별로였나... 아님 사람들 다 보는 데서 떼써서 화났나..."

"..왜 아는 척 했어?"

"..와 했냐니, 당연히 하지. 햄이잖아."

"당연한 거야?"

"당연하지. 내 햄보고 깜짝 놀랐디. 완전 반짝반짝하게 입었는데 너무 잘생겨가 막 계에속 봤는데 햄이길래 내 달려 가려다 매니저님 보낸 거였다. 햄 뭐 회사원이가? 햄요 마이 성공했..." 

"..나한테, 안 물어보니?"

"..... , 됐다. 싫음 안 말해도 된다."

 

내 그거면 마이 괜찮아졌다. 처음엔 쪼매 마이 미웠는데, .. 내 햄 성격 아니까. 내가 빨리 성공해서 만나러 가야지-, 가야지 했지. ..내 성격을 안다고. 순간 숨이 턱하고 막혔다. 손에 자꾸만 땀이 찼다. 그러면서 또 괜히 화가 울컥 나올 것만 같았다. 네가 뭘 아는데? 그런 따위의 화가 아니었다

 

".., 만나러 오려고 하는데."

"?"

"성공했으면 더 만나려고 하면 안되는 거 아냐?"

"..형아야?"

"...다른 기자들이 있었으면 어쩌려고 그래."

"기자들 있어야 뭐, 내 배우나 가수도 아이고..-."

"그래도 조심해야지, 너 국가대표잖아."

".., 그래, 그렇지.. 내 그럼 쫌 조심하께요. 내 미안타.."

"미안하라고 하는 소리가...아니야, 아니야. 미안, 내가 오늘 좀 많이 피곤해서 화가 막 났네."

"내가 피곤한데 잡은 기가?"

"...미안,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만 일어날게. 너도 푹 쉬어. 오늘 온 거잖아."

", 아 햄아 그럼 내 핸드폰 번호..."

"나 핸드폰 오늘 고장 났어."

"...... 그럼 내 번호 줄게. 고치면 연락 줘요."

"...그래."

"내 데려 다 줄..."

"아냐, 혼자 내려 갈게. 잘 자."

".... 조심히 가고.."

 

묘한 선이 그어져 있었다. 그리고 다니엘은 적어도 그 선이 얼마나 길게 그어져 있을지는 몰라도 얼마나 그 선에서 가까이 다가가기 힘들지는 가늠이 갔다. 누가 봐도 성우가 자신을 밀어내고 있었다. 이는 어색해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저기서 지금 저에게 한 거짓말이 몇 개일까, 다니엘은 홀로 가늠해봤다. 사실 자신을 처음 봤을 때 크게 당황하던 성우의 눈이 잊혀지지 않는 것은 사실이었다. 마치 마주치면 안될 사람을 마주치기라도 한 듯. 다니엘은 진작에 그에게 서운함을 느꼈고 조금 화가 나기도 했다. 이미 마음속에서는 그를 붙잡고 마구 몰아 붙이고 싶었다. 그러고 싶었는데, 그럼 더 도망갈 것만 같았다. 사실 다니엘은 다음날의 미래를 알았다. 오지도 않을 전화만 기다리며 또 내내 불안해 하겠지. 전화번호라도 억지로 물어볼 걸 그랬나, 다니엘이 타는 속에 성우가 입도 대지 않은 밍밍해진 커피를 들이 붓 듯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일부러 더워서 잠도 못 잘까 에어컨도 진작에 틀어 놓았던 건데 소용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밤, 자기는 글렀다는 생각이 드는 다니엘이었다

 

큰 대회 하나를 이제 막 끝낸 국가대표의 하루는 끝내기 전의 하루보다 더 바빴다. 광고만 2건이랬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인기가 많다는 심야 토크쇼 녹화가 있다고 했다. 에어컨 광고랑 금융 광고라고 했다. 국대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한다는 그런 광고. 양 볼이 정말 미어 터질 정도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양 볼이 마구 아팠다. 컷 소리가 끝나자 마자 볼에 바람을 넣어 근육을 스트레칭을 하고 화장을 고쳐 받으면서 시선으로는 핸드폰에만 꽂혀 있었다. 진짜 연락 안하겠다 이건가? , , , 화면을 살살 두드렸다. 매니저가 눈치없이 그에게 달려와 다니엘, 다시 촬영 들어 간대, 하고 그에게 말하자 뚝 다니엘이 그에게 물었다. 행님 저희 촬영 언제쯤 끝나요? .. 글쎄, 밤늦게 끝날 것 같은데? 내 그럼 촬영 끝나고 야식 좀 사 갖고 와도 돼요? 내가 사줄게, 뭐 먹고 싶은데? 아이 참, 내 오랜만에 좀 시내 걸어보고 싶어가 그렇다. 조심해서 다녀올게요. .. 모자도 써. ! 히죽 웃어 보이며 씩씩하게 대답을 하니 좁혀진 매니저의 미간이 금새 평평해졌다. 촬영 가자, 매니저가 앞장서 촬영장으로 걸어가는 길을 다니엘이 천천히 쫓아갔다. 다니엘의 눈빛이 묘하게 서늘했다

 

 

 

"누님! 조심조심.. 많이 어지럽죠?"

"- 조금? 있잖아 오옹-. 난 진짜아- 우리 옹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지? 어쩜 이렇게 잘생겼을까..-."

"어후어후, 누님 발 조심하시고."

"배려도 있어! 옹아, 그냐앙.. 누나랑 살래? 우리 옹이 우리집 고양이 해라.."

"..아하하- 누님 농담두-"

"어디서 이런 애가 굴러왔나 몰라...-. 생각 있으면 값 말해, ? 누나가 내줄 게-."

", 누님 조심히 들어 가셔야 해요-."

"- 우리 애기 이걸로 맛있는 거 먹어-."

"감사합니다-!!"

 

대기 된 차문을 쾅 소리가 나게 닫아버리고 애써 두 손에 흰 봉투를 꼭 쥐고는 90도 인사로 쌩 가버리는 차를 향해 인사했다. 몇 년이나 한 짓인데 항상 기분은 똑같이 거지같았다. 후우- 한숨을 푹 내리 쉬고는 성우가 다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는 재빨리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갔다. 열심히 매 놓은 넥타이를 끌어내며 카운터에서 장부를 보고 있는 마담, 한 사장의 옆에 있던 의자에 풀썩 성우가 주저 앉자 한 사장이 차갑게 일어나, 하며 성우를 향해 말했다. 나 오늘 퇴근 할래요, 나 끝났잖아. 떼쓰듯 말하는 그에게 한 사장은 차갑게 답했다. 안 돼. 가긴 어딜 가. 그 말에 성우가 나 끝났잖아요! 라는 대답을 냈지만 한 사장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차갑게 그를 내칠 뿐이었다

 

"갑자기 호출 들어오면 어쩌려고."

"어차피 급하면 나한테 다 오잖아요."

"너가 씹으니까 하는 말이지."

"그럼 나 이제 뭐해요. 호출도 안 오면."

".. 글쎄, 카운터라도 보고 있을래?"

"...진심 아니죠?"

", 아니지. 돈 빼고 토끼면 누구 좋으라고. 팁 얼마 받았어?"

"...30?"

"여편네 더럽게 조금 줬네, 만질 거 다 만지고 갔으면서."

"저번 미진이는 너가 노력 안 해서 못 받은 거라고 막 뭐라하더니."

"단골이잖아. 단골 주제에 조금 주니까 짜증난다는 거지. 돈 없는 여편네면 상관이 없는데."

"있는 놈들이 원래 더하긴 하지."

"가지고 퇴근해. 연락 오는 거 씹지 말고. 그 좁아 터진 집에서 자느라 못 받았다느니 그런 개소리도 하지 말고."

"오케이-."

 

으아아, 퇴근이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스트레칭을 하고는 애써 공들인 머리를 헤집었다. 그를 한 사장이 천박하니까 나가서 헤집어. 손님 있어, 하고 말해오자 성우의 입이 금새 툭 튀어나왔다. 엄마 미워. 말 조심해, 손님 끊겨. 와 여기 엄마때문에 오는 단골도 많아? 정확히는 거래처, 너가 내 아들이라고 소문이라도 나면 내 인생 쪽박 난다. 아아, 그래요. 한 사장님-. 그만 개기고 가, 확 어디 룸에다 넣어버리게. 갈게요-. 

 

"굿모닝-."

 

정확히는 굿나잇 대신. 이 바닥에 잠은 거의 사치였다. 다시 문을 여니 햇빛이 서서히 천막 틈을 미치고 있었다. 여전히 날씨는 더럽게 좋았다. 선선한 바람과 함께 담배를 하나 입에 물고 사람도 없는 거리에서 빽빽 연기를 불며 길을 갔다. 다행히 술은 또 많이 마시지 않은 탓에 오늘은 그나마 정신이 맑았다. 다니엘과 만나고 나서는 어떻게 집에 왔을 지 모르고 또 어떻게 씻고, 잘 준비를 끝마쳤는지 몰랐을 정도로 멍했는데 오늘은 또 말똥말똥했다. 불면증의 시작을 알리는 징조였다. 수면제로는 소용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성우는 잠을 잘 수 없었다. 여름이면 더 심할 정도로. 초반에는 술에 의존하다 위세척을 두어 번 겪고나서 한 사장에게 뒤지게 맞을 뻔했던 일 이후로는 웬만하면 거의 손대지 않았다. 약에 의존하자니 딱히 효과가 없었다. 왕창 먹고 자자니 또 위세척을 당할 것만 같았고. 애써 잠을 불러내고자 자꾸만 눈을 꽉 감았다 뜨기를 반복했는데 효과가 미비했다. 조금 걸으면 졸리지 않을까, 성우는 길목에 담뱃불을 비벼 끄고는 곧장 발걸음을 돌려 집을 돌아서 걸었다. 집은 어차피 교통비를 아끼려고 룸과 가까운 곳에 잡았다. 좀 많이, 좀 심각하게 허름한 원룸집. 이 동네가 다 비쌌으니 성우는 그저 합리화했다. 비싼 동네 자보는 경험도 좋지. 교통비를 아끼는 건데. 선물로 받은 아르마니 구두를 신은 채 또각또각 공원을 가로질렀다. 뛰어야 하나, 조금 더 돌아야 하나. 아무리 걸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오늘은 자야 하는데, 경보를 했다가 뛰었다가, 또 천천히 걷다가. 그럼에도 잠은 느릿하게 제 몸에 달라붙어 왔다. 이정도면 되지 않았을까, 한숨을 작게 내쉰 성우가 다시 발걸음을 돌려 공원 밖으로 향했다. 휴대폰에 시간은 뭘 얼마나 했다고 벌써 6시를 가리켰다. 앞으로 잘 수 있을 시간이 또 줄어들고 말았다. 뻐근한 목에 표정을 잔뜩 찡그린 채 풀어보려 애를 쓰며 길을 나서던 중이었다. , 하고 어느 순간 제 앞이 막혀 있었다. 단단한데 옷이 부드럽네, 부드러워? 성우가 찡그린 눈을 슬며시 떠 제 앞에 선 검은색의 형광 초록색의 줄을 띈 트레이닝복을 입은 다니엘이 저를 보고 있었다. 어느 새 이어폰을 뺀 채 저를 노려보고 있었다. , , 사고회로가 정지된 것만 같았다. 무수히 많은 생각이 단숨에 성우의 머릿속으로 들어오면서 또 한 번 잠이 번쩍 깼다. 하지만 그건 이미 성우에게는 뒷전의 일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여기서, 이 시간에, 이렇게 마주할 거라고는 생각 지 못했다. 성우는 얼른 변명거리를 생각해내기 시작했다. 어디서 왔다 하지, 어디를 간다고 하지. 무수한 생각을 하다 결국엔 허무하게 분위기를 망쳐 놓았다

 

"..안녕?"

"안녕 못 하는데요."

"... 그래?" 

"핸드폰 고쳤나 봐요."

"..?"

"퇴근해요? 집에 가나."

".....어어...."

 

잔뜩 헤집어진 머리, 왼손에는 핸드폰. 빼도 박도 못했다. 어느 하나도. 눈을 떼구르르 굴린 채 그의 시선을 피해보려 는데 괜히 무섭게 저를 노려 다 보고 있었다.

 

"...일을...그게..."

"그게"

"...끝났..."

"끝났는데."

"핸드폰은..... 그래."

"고쳤네."

"고쳤... ."

"그럼 지금 집 가나."

"! 지금은..!"

"."

"...., . 갈려..."

"그럼 가자. 데려다 줄게."

"아니.. 나 혼자 가도..."

"번호도 받아야 하고."

"......"

 

이미 빼도 박도 못했다. 마치 어딘가 함정에 빠진 기분이었다. 소심한 목소리로 운동은..? 하고 묻는데 너무나도 간단하게, 웃지도 않은 채 이게 운동이지. 간단한 말 한 마디만 남기고는 제 옆에 선 채 턱짓으로 앞장 서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거절하기엔 너무 무서운 눈빛이라 할 수 없었다.

성우는 거의 취조를 당하는 사람의 꼴이었다. 저번에 해사 하게 마구 웃어주더니 이젠 웃어주지도 않았다. 번호를 뜯기고(?) 한사코 혼자 가도 된다는 집을 자꾸 자기가 싫냐는 물음으로 넘겨 짚길래 이 마저도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서 한참을 빙빙 집주위만 맴돌았다

 

"우리 안 들어가나."

"...저 다니엘."

"."

"...우리 밥 먹을래..?"

 

성우는 또 한 번 혀를 깨물고 그냥 이 자리에서 죽어버릴까, 그 생각을 했다. 다니엘의 표정이 아까보다 더 무서워진 건 기분 탓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새벽 6시에, 식당도 안 열었을 이 시간에,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한 말이었던 건지. 다니엘은 한참이나 말이 없다 이내 그래요, 하고 순순히 제 말에 대답했다. 이제 밥집을 생각해야만 했다. 순댓국? 아무거나 먹여도 되나, 맛있는 곳이... 또 다시 무수한 생각을 펼치고 있을 즈음 다니엘이 발을 돌린 곳은 시내 쪽이 아닌 바로 근처에 낡은 빌라였다. 그리고 그런 다니엘의 발걸음에 성우의 눈이 크게 번뜩였다. , 다니엘? 어디..? 햄 집 여 아니예요? ...?

 

"라면 있죠?"

"..., ..."

"한 봉다리?"

"...두 봉다리."

"됐네, 들어가자."

 

다니엘이 빌라 안으로 몸을 숨겼다. 어떻게 알았냐고 묻기엔 다니엘의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서 물을 수가 없었다. 또 한 번 다니엘에게 무너지고 말았다

사람이 두 명이니 라면은 4봉지여야 한다고 말하는 다니엘에 하나만 먹어도 된다 했더니 자기는 3봉지도 잘 먹는다고 말하며 끝까지 4봉지를 그 조그만 냄비 안에 우겨 넣기 시작했다. 솔직히 쪽팔려서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고 싶은데 반지하라 창문도 없었다. 정말 사람 한 명 살 수 있는 공간에서, 이럴 줄 알았다면 미리미리 청소도 하고 담배 냄새도 없애고 그랬을 텐데. 모든 게 엉망이었다. 이 집도, 저 조그만 냄비도, 그리고 자신도. 신나게 다 끓여진 라면을 들고 오던 다니엘의 얼굴에 다시 해사함이 가득했다. 햄 상은요? .. 없는데. 책 깔아도 되지? 상관없다. , 신문더미들을 바닥에 놓고 그 위로 냄비를 올렸다. 다니엘은 뚜껑으로 저는 그릇으로 라면을 덜어 먹었다. 와 상도 없노, 밥 안 묵나. 잘 안 먹어, 항상 먹고 오거든

사실은 호텔에서 술 먹고 과일만 미친듯이 먹고 와. 그렇게 대답하고 싶은데 그럼 정말 바닥 끝까지 나가 떨어질 것만 같은 기분이라 관뒀다. 후루룩, 라면만 입 안으로 우겨 넣었다. 라면도 맛있게 잘 끓이네, 컵라면도 잘 끓였는데. 뭐만 하면 자기가 하겠다고 항상 이렇게 앉혀만 뒀는데

 

"..-!"

"햄아, 괘않나?? 물 갖고 올 게. 쪼매만 있어라."

 

쿨럭거리며 코이며 입이며 너무 따가워 눈물이 핑 돌았다. 물과 함께 다니엘이 건네 준 휴지로 대충 얼굴을 정리했다. 진짜 꼴사나워, 속으로 중얼거리며 눈을 휴지로 꾹꾹 눌렀다. 왜 끝까지 다 챙겨주려고 구는 건데. , 억지로 울음을 삼켜냈다. 언제나 다니엘은 성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너무 무거워서 어디 가지도 못할 정도로. ..미안, 웅얼거리며 다니엘에게 말해오자 다니엘은 금방 또 괘않아요, 하고 성실하게 대답했다. 물을 한 번 더 마시고 한시름을 놓자 가만히 있던 다니엘은 그 맛있는 라면도 내려놓고 제게 물었다. 내 불편하나. 그 말에 이번엔 물을 마시다 사레가 걸릴 뻔했다. 아니라고 말하려는데 다니엘이 자꾸 타이밍을 가로챘다

 

"..화난 게 있음 화났다 말해주면 안되나."

"화난 거 없...."

"아니면 그 일 때문에 그러나."

"....."

"미안해서 불편한 거면 미안해 하지 말고, 내가 싫어서 그런 거면.. 왜 싫은 지 말해줘요."

"....."

", 햄 찾으려고 유명해지기로 한 건데. 그래서 내 열심히 게으름 안 피우고 연습했다. 내가 유명해지면 우리 다 찾기 쉬울 테니까."

 

난 너가 오히려 찾기 쉬워서 숨기 편했는데.

 

"햄은 내 안 반갑나."

 

너가 그래서 날 더 못 찾을 줄 알았는데.

 

"..내가 그래 싫나."

 

너가 안 찾기를 바랐는데.

 

"그래서 도망갔나."

 

그래서 더 열심히 도망가고 숨었던 건데.

 

 

 

-.

 

 

 

17살의 다니엘은 5월의 어느 날을 기점으로 더욱 더 빠르게 성장해갔다. 그리고 18살이 되고, 다니엘은 두 개의 대회에서 또 1등을 받아왔다. 어른들만 있는 큰 파티를 좋아하지 않았다. 점심 시간에 미리 수영장으로 와 매점에서 잔뜩 사 들고 온 빵과 과자들, 음료수들을 잔뜩 늘어 뜨려 놓고 물이 많은 수영장 옆에서 깔깔거리는 조촐한 파티가 좋았다. 성우와 둘이서 신나게 이야기를 늘어놓는, 그런 재미 말이다. 그 어느 때보다 짜릿하고 재밌었다. 모두가 수업을 하고 있는 사이에 누구의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원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 학년이 바뀌고 성우가 빠지는 말이 많아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니엘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성우가 별 일 없다고 했으니까

다니엘은 이 행복이 사라지면 어떡하지, 미리 걱정을 했다. 그리고 항상 성우는 그런 다니엘에게 별 걱정을 다한다며 타박했다. 다니엘에게 성우는 어쩌면 미국에서 왔다는 눈 파란 코치님과는 다르게 많은 도움이 된 사람이었다. 대회 전 날까지 불안해하는 그에게 성우는 항상 그렇게 말한다

 

"뭐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꼭 그게 이뤄진대."

"누가 그래요?"

"..우리 엄마가 그러더라. 뭐든 좋게 생각하래. 잘 될 거야, 라고 하면 다 이뤄진댔어."

"정말?"

", 그러니까 넌 잘 할 거야. 넌 잘 해. 넌 잘 할 거야."

"..햄요."

""

"1등하면 소원 들어줘라."

"너 맨날 1등하잖아, 그냥 지금 해달라고 말하는 게 빠르지 않아?"

"그래도 동기부여."

"그래, 동기부여."

 

대신 꼭 1등이야. 이상한 거 말하면 기각, 그렇게 말하고는 성우가 다니엘의 머리칼을 헤집었다. 하모- 햄아 내 잘한 디. 자유형은 껌이다, 떵떵거리며 말하던 다니엘이었다. 성우는 그런 다니엘에게 알겠다며 새끼손가락까지 잊지 않고 걸어줬다. 불안감이 싹 가시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불안감은 한순간에 한 사람을 잡아 먹고 만다. 잠식해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은 그런 불안감이었다

 

"긴장 풀고, 또 저번처럼 발목에 무리 안 가게 하고."

"."

"너 발목 다친 거 아직 안 나았다, 괜히 또 힘줬다 근육 놀라게 하지 말고."

"당연하죠- 어무이 내 잘하고 온다."

"...그래, 내 새끼 잘하고 오겠지 뭐."

"1등해서 올게요-!"

 

[, 3번 레인은 전 세계의 집중을 한 몸에 받는 선수입니다. 우리 강, 다니엘 선수-!!]

[, 이번 대회에서 1등을 하는 순간 다른 거 신경 쓸 것도 없이 국가대표 확정이죠?]

[강다니엘 선수의 역사, 그 서막이 오르는 순간입니다.]

[이 선수의 자랑이라고도 할 수 있죠? 크게 걱정할 부분이 있을까요?]

[저희는 하나만 보면 됩니다. 직진과 집중, 이 두 가지만 강다니엘 선수가 확실히 가지고 있다면 이번 경기 또한 기대해 볼만 하다고 봅니다.]

 

애써 환하게 웃으며 목에 건 수건을 내려놓은 다니엘이 후우, 후우 심호흡을 천천히 내쉬며 레인 앞으로 다가섰다. 몸을 덮고 있던 겉옷을 벗고 발목에 더 신경을 쓰고 스트레칭을 했다. 잘 할 거야, 잘 될 거야. 넌 잘 할 수 있어. 성우를 생각함 다니엘이 조용히 읊조리자 옆에서 킥, 하는 소리가 났다

 

"Hey, kid."

 

Jack 뭐시기 였는데, 호주 선수였는데 거의 국가대표 확정이라고 했던 선수 중 하나였다. 저보다 신장은 더 컸고 저보다 더한 갈색 눈을 가졌었다

 

"(도망가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도망 가.)"

"(어른들 노는 곳에 애들이라니.)"

 

가서 물장구나 더 치고 오지 그래? 잭인지 작인지 하는 선수의 도발에 18살의 소년은 침착할 수 없었다. 뭐라고 하지도 못하고 위로 올라오라는 신호가 떴다. 잭이라는 놈은 끝까지 저를 비웃고 갔다. 침착, 긍정, 집중, 사실 다니엘에게 모두 들어오지 않았다. 기필코 저 놈만은 이기리, 그 하나만 가지고 움직였던 것 같다

 

[, 신호가 나오고 역사의 첫 걸음.]

[강다니엘 선수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 출발합니다-!!]

[초반 다이빙 빨랐습니다, 아 그런데 다니엘 선수 초반부터 너무 강하게 들어가는데요.]

[강한 의욕이 보이고 있습니다만 아직 괜찮아요. 성급해 하면 안됩니다. 집중, 집중이 필요한 때이죠.]

[옆의 선수를 의식하지 말고. 다니엘 선수 빠르게 포인트 전환,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호주의 Jack horizen 선수 그 옆을 바짝 따라가고 있습니다. 지금 둘 모두 선두에 있는데요.]

[지금 거의 속도가 비슷합니다. 신장을 극복했는데요. 한 바퀴를 지났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온 몸에 힘이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머릿속으로는 계속 안된다고 외치고 있었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았다. 눈길이 자꾸 재기라는 선수에게 향했다. 잘 될 거야, 잘 될 거야, 애써 고개를 앞으로 향한 채 헤엄을 쳤다. 잘 할 거야, 잘해야 해. 말하고 싶었다. 좋아한다, 싫어도 도망가지만 말아 달라고. 잘 할 거야

 

[두 바퀴 진입-! 아직까지 선두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잘 될 거야.

 

[아 잠시만요- 이게 무슨 일인가요?! 반 바퀴를 남은 지금 강다니엘 선수 갑자기 속도가 늦어졌습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다니엘 선수 조금만..- 강다니엘 선수.. 3등에 안착했습니다..]

[.. 이렇게 되면 도쿄 대회에서 확실하게 우승 트로피를 쥐고 오는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는데요..]

[아직 포기하기 이릅니다. 강다니엘 선수, 이제 18살인 소년입니다. 포기하기엔 이릅니다.]

[, 그렇습니다. 동메달을 손에 넣은 강다니엘 선수, 다음 도쿄 800m 자유형 대회 때 기대를 해보겠습니다. 지금까지 wbs 중계...]

 

근육에 손상이 왔다고 한다. 도쿄 대회를 나가기 힘들 정도로, 도쿄로 가는 순간 국가대표도 못해보고 수영을 접어야 한다고 의사는 말했다. 코치에게는 미친듯이 혼이 났다. 이제 조금 있으면 신문에 대문짝 만하게 실릴 것이었다. 강다니엘 선수, 근육 부상으로 국대 포기. 학교는 어떻게 가지? 라는 질문보다는 먼저 성우가 떠올랐다. 어떻게 보지? 완전 떵떵거리며 왔는데. 눈물이 핑 돌 것만 같았다. 잘 될 거라고 말해줬는데. 잘 할 거라고 믿어줬는데.

 

"학교에는 며칠 못 나온다고 말해둘게, 학교는 걱정하지 말고.."

"어무이"

"..."

"내 몬 걷는 건 아니죠?"

"걸을 수는 있다, 와 학교 갈라 꼬?"

"."

"네 괜찮겠나."

"...볼 사람이 있어서 가..."

 

위로 쪼매만 받고 오께요. 다니엘이 눈을 꾹꾹 누른 채 울음을 간신히 삼키며 애써 말했다

 

학교는 최악이었다. 모두가 자신을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다니엘은 수업 시작부터 교실에서 잠을 청해야만 했다. 교장은 이번 일에 배신감이니 뭐니 충격이 컸었는지 더 이상 선생님들이 제게 출석 인정을 해주지 않았다. 다니엘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수군거리는 소리들이 들렸다. 어떤 놈은 대놓고 들으라는 식으로 올림픽이니 뭐니 떠들기 시작했다. 우리 올림픽 언제 더라? 어디서 하더라? 어린애 심술 부리 듯한 장난에는 면역이 돼 딱히 자극이 되지는 않았다. 얼른 점심시간이나 오기를 빌었다. 성우가 보고싶었다. 생각해보니 몇 반인지도 몰라서 찾아갈 수도 없었다. 햄아, 보고싶다.. 머릿속으로 성우에게 말할 순서를 정했다. 사과를 해야 할까, 애써 웃어넘기는 게 맞을 까. 그래도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머릿속이 그냥 하얗게 빈 느낌이었다

절뚝거리는 발로 또 다시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역시 점심시간의 수영장은 조용했다. 또 기다리면 오겠지? 과자까지 한아름 안은 채 수영장으로 들어갔다. 물도 없는 수영장으로. 교장이 화가 단단히 나기는 했나 보다. 다니엘은 물도 없는 수영장에서 허공에 발길질을 했다. 그러면서 천천히 그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학교가 끝날 때까지 말이다. 그리고 다니엘은 그렇게 일주일 보내고 나서야 교무실에서 알 수 있었다. 성우가 경기가 이던 그 날, 자퇴를 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

 

 

"나 잠시만 전화 좀."

"."

", 이사님."

 

, , 울리는 진동소리에 성우가 본 건 다름 아닌 그 날 밤, 장 이사였다. 이 개새끼, 성우가 속으로 읊조리고는 조용히 자리를 화장실로 옮겼다. 여보세요, 하고 딱딱하게 받은 전화에 장 이사는 놀랐는지 기쁜 목소리로 주절거리기 시작했다

 

[받았네?]

"받으시라고 하셨잖아요."

[언제 이렇게 말을 잘 들었다고, 말 잘 들으니까 꼴리잖아.]

"하실 말씀이 뭔가요?"

[아휴, 우리 옹은 너무 차가워- 그런데 목소리 울리네? 샤워해? 누구랑?]

"하실 말씀 없으신 거죠?"

[.. 안 받아주네. , 우리 전화야 늘 그 내용이지. 밤에 바쁘니?]

"."

[얼마짜리인데? 200 더 줄게, 째고 호텔로 와. 11.]

"이사님."

[거기에 300 . 한 사장한테는 내가 말할 게. 다 째고 와. 끊는다.]

"이사..! 이 개새끼가.."

 

아침부터 좆 생각밖에 없나 이 새끼는... 성우가 다시 잔뜩 머리를 헤집었다. 으아아, 앓는 소리를 내며 우는 척을 하다 짧은 진동소리에 다시 핸드폰을 바라봤다

 

-내가 사준 걸로 풀세팅 해 와, 버건디로. ^^* [S호텔 장 이사]

 

"개새끼..."

 

성우의 미간이 더 심하게 좁혀졌다. 갑자기 피로가 물밀듯이 몰아치는 기분이었다

 

 

"미안, 라면만 먹고 가네."

"됐어요. 햄 번호랑 집 알았음 됐다."

"...그래."

"내 전화랑 문자 씹으면 내 바로 달려간 디. 캐리어 들고 올 거다."

"너 국대 맞아?"

"국대가 아이돌이가? 붙는 기자도 없다."

"너가 국대니까 그렇지... 너 인기 많잖아."

"...그거 질투가? 내 그럼 쪼매 설렌 디?"

"뭐래, 너 빨리 가. 재수 없어."

"히힣, 햄 일 바쁘나."

"?"

"밤에 야식이나 먹자고."

"야근이야, 다음에 먹자."

"햄네 회사는 사람을 그래 쪽쪽 빨아 먹노."

"그러게. 내가 좋은가 보지 뭐."

"회사 어딘지 가르쳐 달라 하면 당연히 안 가르쳐 주겠지?"

"당연하지?"

 

샐쭉 노려보는 눈에 성우가 뭐, 하고 퉁명스레 대답하자 다니엘이 금방 흥, 소리를 내고는 내 연락 씹지마래이, 하는 말만 남기고는 문을 열고 나갔다. , 하고 닫힌 문. 뒤를 돌아보면 자기가 먹은 것까지 싹싹 설거지도 해놓고 졸리다니 이불까지 손수 펴주고 갔다. 이제 정말 씻고 자기만 하면 됐다. 자야만 했다. 머리가 지끈거려도, 잠은 안 와도. 그래야 밤에 더 보기 좋은 옹성우가 될 수 있으니까.

, 하고 온 톡에는 프사만 봐도 그 발신자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해맑게 보드를 탄 채 웃고있는 얼굴.

 

- 잠 안 오면 따뜻한 물 마시고 자, 약 먹지 말고. 숫자 100까지 꺼꾸로 세는 것도 좋대.

- 잠 안 오면 내 방에서 자도 된다. 아님 오늘 병원 가도 난 좋고.

 

다니엘의 그 세심함이 저를 더 미치게 만들었다. 그 세심함과 빠른 눈치로 만들어 낸 다정함에 더욱 더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

 

 

간만에 다섯 시간 넘게 잤던 것 같다. 한참을 뒤척이다 또 다니엘 생각이 나 그 이불에 괜히 얼굴을 묻은 채 이불을 펴주던 다니엘의 모습을 생각하다 잠깐 잠에 빠져들었는데 5년 전 그 날이었다. 다니엘과 깔깔대며 놀던 그 때. 지금이랑 똑같이 햄, 햄아, 하고 예쁘게 웃으면서 쫓아다니는데 너무 행복했다. 따뜻했다. 다니엘, 하고 부르면 해사 하게 웃으며 돌아봐 주던 너가 좋았다. 그래서 깨어났을 때는 더 비참했다. 너로 인해 깊은 잠에 빠진 채 상쾌하게 일어났다는 사실에 더욱 더 죄스러웠다.

얼른 씻고, 매무새를 꼼꼼히 다듬고. 옷장 안에 비닐에 둘러 쌓여있던 검은 실크 셔츠를 안에 입고 버건디 수트와 구두를 신었다. 그 다음엔 왁스로 머리를 완전히 올린 채 호텔로 향할 준비를 했다. 엄마에게 굳이 연락을 넣을 필요는 없었다. 연락이 없다면 한 사장이 알고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준비를 하는 데만 두 시간이 넘었다. 천천히 준비를 해도 됐다. 어차피 공들여 열심히 준비해봤자 또 헤집어질 것이었다.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아 S호텔로 향했다. 옹성우라는 인격이 사라질 시간이었다

 

 

 

"지금 이사님 무슨 소리를..."

"아니 뭐.. 나쁘게 듣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이 바닥 비즈니스가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지금 저희 선수에게..."

"나이도 23이면 적은 나이도 아니고, 왜요? 애인 있어요? 애인이 싫대요?"

"장 이사님."

"앞으로 더 많은 스폰 받으실 텐데, 이정도 면역은 기르셔야죠. 그냥 사알짝 놀아 보시라는 겁니다. 올림픽에도 콘돔이나 그런 거 다 구비되어 있다면서요."

"이런 얘기 하시는 거면 이만 가봐도 될까요."

"..아이-, 강 선수, 너무 놀 줄 모르네.. 한 번 맛 들리면 정말 못 나온 다니까요? 취향이 어떻게 되요? 혹시 남자? 남자면 내가 죽이는 애 하나 아는데."

"그만하시죠."

"진짜 죽이는 애야, 여자애들보다 더 예쁘고, 더 소리도 잘 내고."

"장 이사님."

 

촬영이 끝나자 마자 스폰을 대주겠다는 장 이사의 말에 온 곳은 너무나도 최악이었다. 문을 열자 마자 보이는 독한 술들과 과일들. 처음엔 여자들이 들어오길래 한사코 싫다고 말하고 나서야 장 이사는 여자들을 물렸다. 초면에 반말부터 담배까지, 다니엘이 화를 꾹꾹 눌러 담았다. 대한민국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기업의 이사에게 개기는 건 꽤나 위험한 짓이었다. 광고 계약 건에서 끝난 줄 알았다. 너무 순순히 이야기가 되는 것이 썩 불안하다 했는데 갑자기 이런 막말을 꺼내니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날 선 분위기에 다니엘과 장 이사의 눈빛이 마주쳤다. 그러다 먼저 시선을 거둔 건 장 이사였다. , 싫다면 야. 어쩔 수 없네요. 그러던 중간이었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누군가에 장 이사가 활짝 웃으며 큰 소리로 제가 들으라는 듯 들어오라며 떠들었다

 

"쟤가 아까 말한 그 남자애인데, 보기만 해보시죠. 진짜 끝내 주는데... 어어, - 왔어?"

"..."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아까 까지만 해도 몇 시간 전에 봤던 성우였다. 검은색 가죽 초커에 버건디색 수트를 갖춰 입은,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아침에 본 얼굴이 아니었다

 

"....."

"....."

 

아침에 본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대신 두 눈이 말하고 있었다. 완벽히 웃고 있던 얼굴에서 눈이 떨렸다. 손이 떨리는지 두 손을 뒷짐을 진 채 제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제 시선이 성우에게 꽂힌 걸 안 장 이사의 눈빛이 묘하게 변하더니 곧장 다니엘을 슬쩍 보며 성우를 불렀다. , 여기 앉아. ... 다니엘의 시선이 성우에게로 꽂혀 있었다. 그리고 장 이사는 그런 다니엘을 도발하듯 성우의 허리를 꽉 껴안고는 저는 일이 있어서- 먼저 가시죠, 하고 웃어 보였다. 그리고 곧장 허리를 안은 손은 대놓고 성우의 엉덩이로 향했다. 이사님.. 성우가 허리를 비틀자 장 이사가 재밌다는 듯 웃어 보였다. 왜 부끄러워? 남들 앞에서라 그런가-. 아니면 국가대표 앞이라 그런가-. 이번엔 허벅지 안으로 손이 향했다. 성우의 얼굴이 점점 하얗게 질렸다

 

"안 가실 건가요?"

"...아뇨, 지금 가려고요."

"다음 회의 때 뵙겠습니다-."

 

옹이 또 누구한테 예뻐 보이려고 이런 걸 해왔어? 오늘은 뭐할까? 진짜 너무 예쁘게 하고 왔네? 어린 놈 냄새 맡고 온 거야? 제 뒤로 이어지는 더러운 말들에 다니엘의 눈이 떨렸다. 문 앞으로 향하는 내내 꽉 진 주먹이 성우의 얼굴처럼 하얗게 질려갔다

통화에서 들었던 이사님이, 왜 아침 새벽에서야 성우가 퇴근을 할 수 있었는지, 잠을 왜 못 잤는지. 짜여진 퍼즐들이 맞춰가는 기분이었다. 철컥, 문이 닫힌 소리 이후로 발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다니엘, 미안. 저런 사람 인줄 알았으면 만날 생각조차 안 했을 텐데. 많이 놀랐지? 오늘은 일찍 자. 내일은 늦게 깨울 게."

 

묻고 싶은 말이 너무나도 많았다. 당장이라도 장 이사를 죽을 때까지 패놓고 그를 데리고 오고 싶었다

 

"..다니엘?"

 

저 문 안으로 무슨 일을 당하고 있을 까. 저를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아니 처음 만난 그 날, 저를 보며 무슨 생각이 들었을 까.

 

"다니엘, 많이 피곤해?"

".., 오늘 일찍 잘게요."

 

성우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 날이 떠올랐다. 갑자기 어릴 적 제 자신이 혐오스럽도록 밉고 아팠다.

 

 

-.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성우는 그 날 장 이사의 괴롭힘으로 대충 감을 잡았다. 목을 조르고, 거세게 행해지는 폭력은 너무나도 아팠다. 전혀 흥분도 안됐고. 장 이사는 그런 제게 화풀이를 했다. 어린 놈의 새끼가, 어른이 말하는데, 따박따박, 내가 잘못한 거야? 저를 걷어차면서도 장 이사의 화는 풀리지 않았다. 손이 떨리도록 무서웠다. 처음 이 바닥에 섰을 때보다 더. 어디든 붙잡고 속을 게워내고 싶었다. 장 이사의 화난 얼굴 위로 멍하니 저를 보던 그 맑은 얼굴이 떠올라서. 이 상황이 믿기지 않다는 듯 놀란 눈이 너무나도 생생하고, 가슴 아파서.

행위는 네 시간 째 이어지다 결국 제 풀에 지친 장 이사가 아무런 뒤처리도 없이 제 몸 위로 수표 다발을 던져주고는 제 혼자 옷을 챙겨 입고 방을 나갔다. 온 몸이 아프고 얼얼했다. 한 삼십 분을 몸을 웅크린 채 울었던 것 같다. 첫 날 이후 처음으로 소리 내어 울어봤다.

 

옷을 겨우겨우 챙겨 입고 씻지도 못한 채 택시에 몸을 맡기고 집으로 향했다. 절뚝이는 걸음으로 반지하인 집으로 가자 또 다시 발걸음이 뚝 끊겼다. 검은색 후드를 뒤집어 쓴 큰 인영에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이 먼저 쳐졌다. 입가에 상처를 보이지 않으려 다니엘이 저를 보는 순간 똑같이 고개를 돌렸다. 지금 당장이라도 자리를 뜨고 싶었다. 다시는 이 아이를 눈뜨고 제대로 볼 수조차 없었다. 그런데 다니엘은 기어코 선을 넘으려고 했다. 뚜벅뚜벅 계단을 올라온 다니엘이 피곤에 절은 목소리로 가요, 들어가자, 하고 입을 열었다. 손에는 검은 봉지가 들려있었다. 그런 다니엘을 밀쳐내고 속에 차오르는 아픔도 꾹꾹 삼켜가며 아무렇지 않은 척 문을 열었다. 구두도 벗어 던져버리고는 뒤따라 들어온 다니엘을 향해 말했다. , 다 봤잖아. 그 말에 다니엘은 불도저 마냥 다가오더니 입가에 상처만 매만지며 때렸나, 금마가? 하고 화를 낼 뿐이었다

 

"때렸냐고 그 새끼가."

"..내 손님이야. 이게 내 일이고."

"맞는 게 일이 가."

"맞기만 했을 거 같아?"

"......"

"..그래, 나 더러운 일 해. 너가 싫냐고, . 계속 보니까 재수 좀 털리더라. 난 이렇게 불행한데 넌 뭐가 힘들다고 남들이 하는 일 다 째놓고도 징징대는지 알 수가 없어서."

"......"

"나 남자한테 대주고 다녀. 아줌마들 비위도 맞춰주고. 살만 해. 돈도 많이 벌고. 나 잘 살아. 잘 산다고."

"..알았다."

"......"

"..그럼 씻고만 온 나, 약만 발라주고 내 갈게. 걱정되서 왔다."

"......"

"미안 타, 내가 금마 성격 건드려서."

 

씻고 온 나, 다니엘은 그 말을 뒤로 정말 약이라도 주고 갈 생각인지 벽에 기대 앉았다. 악을 쓰고 나가라 하기엔 힘이 없었다. 울컥 올라오는 눈물에 그냥 입술만 깨물며 화장실로 향했다. 그러다 옷을 벗었는데 온 몸이 쓰라리고 아파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눈을 꽉 감은 채 성우가 문을 살짝 연 채 다니엘, 하고 그를 불렀다.

 

"..도와줄 거면, 나 씻는 것 좀 도와줘..."

"...너무 아파서 못 씻겠어."

 

눈물이 핑 돌았다.

 

다니엘은 정말 말없이 머리와 몸만 씻겨주고 옷을 갈아 입혀주고 성우를 이불 위로 앉혔다. 얼굴을 쭉 빼놓고 있는 성우의 턱을 조심히 들고 많이 아프대이, 하고 면봉 위로 짜낸 약을 조심히 바르자 따가움이 밀려 들어왔다. 입가에, 목 뒤로, 옆구리에도 발라주던 다니엘이 속상한 목소리로 금마가 물어뜯었네, 물어뜯었어, 하며 중얼거렸다. 손목 위로 올라온 멍을 봤을 때 그 눈빛은 더욱 더 무서워졌다. 호오, 호오, 상처 위로 바람을 불어주는 것까지 잊지 않은 채 다니엘이 붕대며 밴드까지 꼼꼼하게 붙여주었다. 됐다, 다니엘이 말하고는 입가에 상처를 쓸어주었다. 잔뜩 얼얼했던 상처들이 조금 괜찮아진 것만 같았다

 

"너 이제 가."

"기껏 치료해준 사람한테 할 말이가."

"약 발라주고 간다며, 이제 가."

"그럼 이것만 하고."

"아니 가라..."

"자는 것만 보고 갈게. 그 다음부턴 쳐다도 안 보고 내 갈기다."

 

봉지를 뒤적이던 다니엘이 그때 그 조그만 냄비를 꺼내 놓고는 우유 한 팩을 들고 냄비에 들이 부어 끓이기 시작했다. 우유가 끓을 때까지 냉장고에 사온 죽들을 종류별로 냉장고에 담기 시작했다. 밥 먹기 싫어도 먹고 힘들면 죽이라도 먹어요. 햄 좋아하는 걸로 싹 다 사왔다. 내 이거 호텔에 바락바락 해 달라고 졸라서 가져온 거니까 먹어요. 안 먹음 속상 타. 그 뒤로는 컵에 덜 끓여 그렇게 뜨겁지 않을 우유를 붓고는 제게로 가져왔다. 마셔라, 물보다 훨씬 낫다. 그걸 또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조심스레 한 모금 두 모금, 우유를 마시다 그냥 생각에 잠겼다. 옆에 쭈그려 앉은 채 저를 보는 다니엘을 슬쩍 보니 또 힣, 하고 실없이 웃었다. 그에 또 마음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이 집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모든 것과 어울리지 않는 아이. 그래서 밀어내야 할 것 같았다.

 

"...어렸을 때 아빠가 돌아가셨어. 그리고 엄마가 혼자 날 키웠는데."

"..."

"엄마도 돌아가셨어. 그래서 학교도 다 빠졌고."

"..."

"왜 여기로 왔는지 안 물어보니?"

"...말 안 해도 된다."

"......"

"다 이유가 있겠지."

"......"

"잘 산다니 됐다."

"......"

 

눈물이 또 핑 돌았다. 그래서 괜히 우유를 또 들이마셨다. 여기서 울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다 마신 컵을 건네니 일말에 말도 필요없이 컵을 들고 싱크대로 가 꼼꼼히 설거지까지 끝마쳤다. 그리고는 다시 자리로 오는데, 차마 보기가 힘들어 대뜸 자리에 누울 수 밖에 없었다. 나 졸려, 잠 올 것 같아. 진짜? , 그러니까 너 가. 너 있으니까 불편해서 못 자겠어. 알았다, 내 갈게요. 홱 돌려 누운 채 자리를 정리하는 다니엘의 소리가 들렸다. 신발을 구겨 신는 소리와 함께 기어코 다니엘이 또 다시 제 선을 넘으려고 들었다

 

"내 연락할게요."

"......"

"해도 되죠?"

 

다니엘이 빠르게 제게로 헤엄쳐 오고 있었다. 아무리 선을 몇 십 개 그어놓아도 끝까지 넘으려고 들었다. 선의 끝까지 길게 돌아오려고도 안했다. 빠르게, 빠르게 다가와 저를 당황시켰다. 속수무책으로 자신은 그런 다니엘에게 넘어가고 있었다

 

"...."

"?"

"...알았다고."

"..푹 쉬어요."

 

철컥 열리는 문 소리와 함께 다니엘의 인기척이 멀어져 갔다. 아직도 허리가 찌르르르 울려왔다. 분명 약을 꼼꼼히 발랐는데도 눈물이 났다. 손등으로 아무리 꾹꾹 눈을 눌러보아도 눈물이 났다. 방 안이 아직 다니엘로 인해 따뜻했다. 속수무책으로 넘어가버렸다. 더운 열기 때문인지 잠이 확 달아났다. 아주 단 걸 먹은 것처럼 마음이 얼얼했다.

 

그 아이의 다정함에 오늘도 잠도 못 잔 채 울기만 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