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월간녤옹

 

 

 

 

 

 

 

 

[굳셀 강, 빛날 희]

다론

 

 

 

 

 

 

 

 

 

 

 

혹시 기억하십니까.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날을.

 

 

 

저는 그 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무척이나 더웠지요, 그 해의 여름은.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저는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먹을 것이 없으니 도와달라고, 구걸을 했었지요. 나이도 어린데 천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저에게 먹여 살려야 할 가족들까지, 사실 혼자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도 조금은 했답니다. 그렇게 거리에서 울고 치이고, 늘 똑같은 하루하루를 살고 있던 제 앞에 도련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주저앉은 저에게 손을 뻗으며 괜찮냐고 물으시는 것을 보고 그 티 없이 하얀 손을 내가 잡아도 되는 걸까, 사실 조금 망설였습니다. 그런 저를 보고 무릎을 굽혀 먼저 손을 잡아주셨지요. 도련님의 곁에 서있던 사람들이 안 된다고 말렸지만, 이내 일어선 저에게 값이 꽤 나갈 것 같아 보이는 장신구 하나를 건네주셨습니다.

 

 

"나와 함께 가자."

 

 

그리고는 눈꼬리가 휘어지게 웃으시는데 나는 그 웃음에 이끌려 도련님을 따라오게 되었습니다. 허름한 옷을 입고 지저분한 모습의 저를 데리고 세욕터로 향하시더니 깨끗하게 씻기고 고운 옷을 입혀주셨습니다. 가볍고 움직이기도 편한 그 옷이, 당신께서 주신 그 옷이, 마음에 꼭 들어서 저는 잠을 잘 때에도 그 옷을 안고 잠에 들곤 했답니다.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옹성우라고 합니다. 도련님."

 

도련님의 존함은 강의건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건이 도련님이라고 부르라고 하셨지요. 하지만 저는 압니다. 당신의 주위 사람들이 황태자 전하라고 부르는 것을 똑똑히 들었습니다. 하나, 저를 보고 도련님이라는 호칭을 고집하시는 당신을 보고 그를 따랐습니다.

 

당신은 저를 데리고 사냥을 나가기도 하고 까막눈이던 저에게 글을 가르쳐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제 가족이 있는 곳에 배불리 먹고 남을 곡식을 내려주셨고, 내관 이외의 남자는 궁에서 잠을 잘 수 없는 것을 아시고 궁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제가 지낼 곳 또한 마련해 주셨습니다. , 궁궐에 편히 출입할 수 있도록 출입증인 신부 또한 내어주셨으며 저는 그로 인해 자유롭게 궁을 드나들며 도련님을 만나러 갈 수 있었습니다.

 

 

-

 

 

"! , 황태자 전하께 예쁨 받으니까 좋니?"

 

"..."

 

어디서 갑자기 나타나서 양인 행세야?”

 

 

"뭣들 하는 게냐."

 

도련님께서는 항상 제가 곤란할 때 나타나셔서 저를 구해주셨습니다. 이렇게 대놓고 말하는 궁녀들도 있었지만 제 뒤에서 저를 아니꼽게 보는 궁인들도 있다는 것을 압니다. 양인도 아닌 것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서 귀족 대우를 받는 천한 것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가끔은 혼자서 울기도 울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도련님께서 저를 찾아와 꼭 안아주셨습니다.

 

"너는 내 사람이니 가장 좋은 것들을 받아야 마땅하다. 누군가 또 그런 말을 하거든 내게 말하거라. 너를 비방하는 자가 있거든 내 엄벌에 처할 것이야."

 

이렇게 말을 하시며 기죽지 말라고 더 고운 옷을 입히고 저를 꼭 옆에 붙들고 다니셨습니다. 곱고 값비싼 옷도 좋았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많은 음식도 좋았지만, 도련님께서 저에게 내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좋았습니다.

 

그 말 한마디가 좋아서, 바라보는 그 눈빛이 좋아서 그저 그 행복만을 붙들고 살고 싶었습니다. 당신도, 저도 그렇게 마냥 행복하게만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도련님의 아우인 둘째 황자님께서 도련님의 자리를 넘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도련님은 날로 예민해지셨고 잠을 설치는 날이 늘었고, 식사를 거르는 일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어느 날은 도련님께서 저를 조용히 부르시더니 희고 예쁜 손으로 제 손을 잡으시더군요.

 

"성우야."

 

", 도련님."

 

"궁에서, 아무도 믿지 마라. 이 궁에서, 나 말고는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단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나는 황제가 될 사람이다. 너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은 모두 내 황위를 빼앗으려고 하는 자들 뿐이야. 그들의 꾐에 넘어가서는 안 돼."

 

그리고 그 말이 무섭게 다음날 집에 불이 났다고 했습니다. 어머니와 동생들이 떠올라서, 그 소식을 듣자마자 저는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 후로도 저희 집을 시작으로 도련님을 측근에서 모시는 사람들의 가족들이 죽어나간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상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더군요. 황태자가 무고한 백성들을 죽인다는 소문이 말이지요. 아무런 목격자가 없었지만 죽어나간 백성들의 공통점 그 사이에는 도련님이 계셔서, 이때다 싶은 자들이 물고 늘어지더랍니다. 궁에는 믿을 사람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 소문을 믿지 않았고, 믿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좋은 사람인 당신께서 그럴 리가 없었으니까요. 태자에 대한 소문은 금방 퍼져나가기 마련이라 장에 나가면 도련님에 대한 소문을 쑥덕거리는 사람이 천지였지만 저는 도련님만을 믿었습니다.

 

심지어 도련님 옆에서 지내는 저를 해코지하는 사람들도 생겼습니다. 나는 가족을 잃었고, 이제 당신을 떠나면 갈 곳이 없었는데 왜인지 모르게 누군가 날 도련님에게서 떨어지게 하려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닌 척했지만 늘 불안했습니다. 제가 죽는 것보다 도련님이 어떻게 될지 몰라서, 황위 계승이라는 그 커다란 짐을 지고 있는 도련님을 보며 늘 마음 졸였습니다. 사람일은 그 누구도 모르니까요.

 

 

-

 

 

"이거, 태자 전하께 가져다 드려. 둘째 황자님께서 구해오신 다과야."

 

 

건네받은 다과는 그 색이 고와 꽤나 먹음직스러워 보였습니다. 오다가다 자주 만났던 궁인이었습니다. 식사를 궁에서 할 때에 제 식사를 가져다주는, 때로는 모양이 고르지 못한 다과들을 건네주는, 그리고 황태자께서 아끼는 분이니 특별히 주는 것이라며 내민 알록달록한 세욕제들 까지. 도련님을 제외하고 저에게는 이 궁에서 가장 친분이 두터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의심 없이 그녀의 부탁을 들어준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 이걸 성우 네가 가지고 오느냐."

 

"도련님께 오는 길에 건네받았습니다."

 

 

도련님께서는 다과가 담긴 바구니를 엎으며 화를 내셨습니다. 신경 쓸 일이 많아서 예민하셨으니, 그러려니 했습니다. 떨어진 다과를 주워 담았고 바닥에 흐트러진 가루들은 다른 궁녀들을 불러 치우게 하였지요. 나가보라는 도련님의 말씀에 터덜터덜 제 거처로 돌아와서 제 행동을 반성했습니다.

 

 

'아무도 믿지 말라했거늘, 이게 독이 든 다과였으면 어쩌려고 그랬느냐!!'

 

 

도련님이 저에게 처음으로 화를 내셨습니다. 자꾸만 그 모습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녔습니다. 그 다과에 독이 들어있었다면 저는 태자 시해 죄로 꼼짝없이 형을 받을 것이 분명하니까요. 도련님의 눈빛은 옛날에 저를 이끌던 맑은 눈빛에서 독기를 가득 품은 눈으로 바뀌어있었습니다. 그 눈이 자꾸 떠올라서 제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도련님은 부쩍 식사를 거르는 일이 잦아지셨습니다. 안 그래도 날렵한 얼굴이 더 말라 안쓰러울 지경이 되었을 즈음, 갑작스럽게도 황제 폐하께서 병사하시고 도련님께서 황제로 즉위하셨습니다.

 

굳셀 강 자에 빛날 희, 강희를 연호로 하여 황제가 되신 도련님은 전에 비하면 웃음을 되찾으셨으나 어째 그 모습이 더 불안해 보였습니다.

 

 

 

 

사실 저는 도련님이 황제가 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가끔 저를 데리고 나가 별을 보며 해맑게 이야기를 하시던 도련님의 그 모습이 저는 그렇게 좋았습니다.

 

"사천공봉이, 저 별이 내 별이라고 하더구나."

 

 

왜 그 옆에 더 빛나는 별이 도련님의 별이 아니냐고 물었을 때 제 입을 손으로 막으며 황제폐하가 살아계신데 어떻게 내 별이 더 빛나겠냐고 말하시던, 도련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혼자 바라본 하늘에는 더 이상 선황의 별은 없었고 도련님의 별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습니다.

 

 

 

도련님은 이제 한 나라의 황제십니다. 저 같은 놈은 눈에도 보이지 않으시겠지요. 저는 도련님을 만난 그 날부터 쭉 그렇게 도련님의 뒤에 서 있었건만, 왜 저를 한번 돌아보지 않으십니까.

 

흔들리는 갈대라고 했습니다. 제가 보낸 사랑의 시에, 왜 도련님 당신을 흔들리는 갈대라고 표현하셨습니까. 둘이서 궁을 떠나서 살자고 말했을 때 왜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주신 것입니까. 차라리 그렇게 여지를 주지 마셨어야지요. 저는 그 후로 혼자 마음을 키웠는데 도련님은 그게 아니셨던 겁니까.

 

황후는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황후가 된다면 도련님을 볼 길이 더 없을 것을 알아서, 그저 가까이에서 도련님을 돌보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황제가 된 당신께서는 저를 찾지 않으셨습니다. 상궁을 따라 당신이 계신 곳에 들어가려다가 들켜 된통 혼이 났습니다. 벌써 황후와 후궁까지 두신 것을 압니다. 괜찮았습니다. 다 괜찮았건만, 홀로 걷던 궁에서 마주친 도련님이 제 시선을 피하신 것이, 저를 없는 사람처럼 대하시는 것이 그렇게 마음이 아플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가 곧 밝혀졌습니다. 황명으로 끌려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한가운데에는 둘째 황자님이 계셨고, 곧 제 옆에 그때 그 상급 궁인이 고개를 숙인 채 들어왔습니다. 황제 시해 미수, 많은 이들이 사형을 받았고, 저는 그 한번 다과를 전달했다는 이유로 귀양형을 받았습니다.

 

"황제 폐하를 뵙고 싶습니다. 한 번만, 떠나기 전 한 번만, 뵙게 해주십시오."

 

 

그렇게 만난 도련님은 저를 보고 쓴웃음을 지으시더군요.

 

 

씁쓸한 웃음 끝에는 차가운 황제 폐하만 남아있었습니다, 더 이상 제가 사랑한 도련님은 그곳에 없었습니다.

 

-

 

저는 혼자 지냅니다. 잘 지낸다고 말하고 싶지만 잘 지내지 못합니다. 조금만 신경을 쓸 일이 있으면 가슴 한쪽이 찢어지듯 아픕니다. 마음의 병이라고 했습니다. 어렸던 그 날에 당신의 손을 잡았다는 그 이유로 저는 고칠 수도 없는 마음의 병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알았더라고 해도 저는 그때 도련님의 손을 잡았을 것입니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나의 황제이자, 내 전부였으니까요.

 

매일 서신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된 거, 내 마음이라도 알아주셨으면 했습니다. 이미 제게 지울 수 없이 각인된 당신을 그리워하며 매일 시를 썼습니다. 이미 나는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제 마음의 화살이 한 번쯤은 도련님의 옷깃이라도 스쳐 지나가길 바랬습니다.

 

 

"서신이 왔습니다."

 

 

. 제가 처음 배운 글자였습니다. 도련님이 글을 가르쳐 주실 때 가장 먼저 가르쳐 주신 글자였습니다. 참 많이도 기다렸습니다. 떨리는 마음을 안고 열어본 서신은 나를 울게 만들었습니다.

 

 

'너를 부정한 만큼 나는 아팠다.'

 

 

 

간결했지만 완벽한 문장이었습니다. 이 곳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동안 도련님을 한 번도 원망하지 않았다고 하면 그게 거짓말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서신 하나로 모든 것이 용서가 되었습니다. 서신을 가져온 사람이 궁으로 돌아가셔도 좋다고 하였지만 1저는 조금 더 이곳에 머무르겠다고 말했습니다. 늘 준비가 되어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돌아가려고 하니 마음이 정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오지 않는 저를 찾으러 도련님이 직접 발걸음을 하셨습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얼굴이 이제는 살도 많이 올랐고 전보다 더 편해 보였습니다. 도련님의 연호처럼, 굳세고 빛나는 사람 그런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나를 바라보며 웃는 얼굴에 목놓아 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괜찮다. 이제는 괜찮다. 품에 안긴 채 다독여주는 그 넓은 어깨에 안겨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람인 것 마냥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렇게도 서럽더냐. 내가 많이 미웠겠구나. 이제 나라는 안정을 찾았고 반란세력도 눈에 띄게 줄었단다. 최대한 빨리 너를 찾는다는 것을 조금 많이 늦었구나."

 

"미웠습니다. 하지만, 이제 괜찮습니다."

 

"성우야, 내가 너를 싫어해서 그런 것이 아닌 것만을 알아다오."

 

"알고 있습니다, 폐하."

 

"그렇게 부르지 말래도."

 

"그러면 폐하를 폐하라고 부르지 뭐라고 부릅니까?"

 

"건아. 불러봐라."

 

"어떻게 그렇게 합니까! 장난치지 마십시오."

 

"황명이다."

 

 

"건아."

 

 

말 끝에 웃음이 번졌습니다. 알고 계신가요. 당신은 나를 부정해서 아프다고 했지만 나는 당신을 너무나도 사랑해서 아팠습니다. 당신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나를 찾을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래, 성우야."

 

 

 

그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지금 당신의 웃음이 증명하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