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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녤옹

   

 

 

 

 

 

 

 

 

 

 

 

드라이브 갈래요

단팥소

   

 

 

 

 

 

 

 

 

몸살기가 있는지 몸이 축축 처졌다. 원래도 그랬지만 음악방송 mc를 맡으면서 쉬는 날이 완전히 없어졌다. 유일하게 안무연습이 없는 날이라 휴식을 취하고 있는 다른 멤버들에 비해 성우 혼자 새벽부터 스케줄을 소화해야했다. 카메라가 계속 따라다니는 게 아니라서 편했지만, 대기시간이 과하게 길었다. 리허설을 제외하면 혼자 대기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짬을 내서 책도 읽고 밀렸던 웹툰을 보기도 했지만, 요즘은 아무래도 다니엘과의 이상한 텐션이 마음에 걸려 생각이 자꾸 옆 길로 샜다. 성우는 다니엘과의 대화방을 켰다가 이내 인상을 쓰며 내려놓았다.

 

1년 이상을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서바이벌에서도 여러 번 같은 팀이었고, 함께 데뷔하고, 숙소생활을 시작해서도 쭉 같은 방을 썼고, 거의 모든 스케줄을 같이 소화했다. 그러니까 따로 노력하지 않아도 다니엘은 늘 곁에 있었다. 생활하면서 잠깐 설렜던 적도 있었고, 다니엘이 헷갈릴 법한 행동을 한 적도 있었다. 물론 성우도 마찬가지였는데, 인천에서 서울까지 다니엘을 데리러 간 행동 같은 것. 운전하면서도 약간 미친 게 아닐까 싶었지만, 얼굴도 알려졌는데 차도 없고 얼마나 곤란하겠냐는 생각이 앞섰다. 물론 간절하게 같은 꿈을 꾸는 동료에게 베푸는 동지애 같은 거였다. ,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한동안 다니엘과의 관계가 썸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는데, 그때는 미묘한 변화를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반응할 정도의 여유가 없었다. 저도 다니엘도 너무 바빴고 관계를 발전시키기에는 그 시그널 조차 너무 작고 미미했다. 집요하게 꺼내서 불을 붙일 정도로 간절하지는 않았지만, 갑자기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하면 화가 조금 났을 정도? 가끔 피어오르는 감정들을 구석에 구겨 넣으니 자연스럽게 시간을 또 흘러갔다.

 

, 지금은 맛있는 걸 보면 다니엘도 좋아하겠구나 싶고, 스트릿 브랜드의 옷들을 보면 우리 다니엘도 잘 어울리겠지 생각하는 정도?

 

, 자꾸 생각하는 걸 보니 다니엘이 좀 특별하긴 했나 보네.

 

 

 

"성우야, 다 왔어."

"."

 

 

 

결국 숙소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한숨도 자지 못했다. 성우는 안대를 벗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숙소로 올라갔다. 곧 저녁때라 메뉴를 고르고 있는 멤버들에게 인사만 하고 들어가려 하자 지성이 성우를 붙잡았다.

 

 

 

"성우야, 우리 밥 먹을 건데?"

"저는 안 먹을래요."

 

 

 

성우가 방으로 향하자 소파에 앉아있던 다니엘의 시선이 꽁무니를 졸졸 쫓았다.

 

방문을 닫으니 확실히 좀 조용해지긴 했다. 가방을 던져놓고, 겉옷만 대충 벗었다. 복잡한 것들은 내려놓고 일단 좀 눕고 싶었다. 2층 침대의 계단을 오르려던 성우가 정돈된 다니엘의 침대를 바라봤다. 인형이 잔뜩 자리 잡고 있어서 비좁았지만, 가끔 저기 누워있으면 다니엘 냄새가 나서 좋긴 했는데...

 

계단에서 발을 내리고 다니엘의 침대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이불을 잔뜩 껴안으니 올라오는 다니엘 냄새. 저녁을 먹은 후에야 들어올 줄 알았는데, 다니엘이 방문을 빼꼼히 열었다. 갑작스런 인기척에 꼼지락거리던 성우가 숨을 죽이고 자는 척했다.

 

 

 

", 밥 무야 지요."

"..."

 

 

 

다니엘은 성우가 누워있는 걸 보고 문을 살살 닫았다. 까치발로 침대까지 와서는 성우 앞에 걸터앉아 가만 내려보다 반응이 없자 볼을 콕콕 찔렀다. 볼이 쏙 들어가자 성우의 미간이 살짝 움직였다.

 

 

 

"자요?"

"...으응."

"왜 내 침대에 이래 누워있노.“

 

 

딱히 핑곗거리가 없어진 성우가 눈을 감은채 입꼬리를 축 내렸다.

 

 

"올라갈 힘이 없어가지고..."

"아이고, 그라모 첨부터 1층을 쓴다고 하지."

 

 

 

아무렇게나 넘어가 있는 성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넘겨 주었다. 다니엘이 다른 멤버들에게도 스킨십이 잦긴 했지만 이런 식은 좀 곤란했다. , 진짜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단 말이야.

 

다니엘이 닿았던 이마가 간질간질해졌다.

 

 

 

"메이크업 지우고 자야지요."

 

 

 

다니엘은 손을 뻗어 책상 위에 있던 리무버를 화장 솜에 꼼꼼히도 묻혔다. 성우를 일으켜 앉히고는 축축하게 젖은 화장 솜을 두 눈 위에 얹고 꾹꾹 눌러주었다.

 

 

 

"야아..."

"이래야 잘 지워진다고 그랬어요."

"나 눈에 오일 다 들어가겠다."

"지짜? 함 보자."

 

 

 

성우가 눈을 찡그리자 허둥거리던 다니엘이 꾹 눌려있던 화장 솜을 뗐다. 오일이 눈에 들어가서 잘 보이지 않았는데, 서서히 눈을 뜨니 다니엘이 정말 코앞에 가까워져 있었다. 놀란 채 말없이 눈만 깜박거리자 다니엘은 성우의 눈을 살피며 안타까운 표정을 했다.

 

 

 

"...괜찮아."

"눈 빨간데, 괜찮은 거 맞나?"

"..!"

 

 

 

얼굴을 잔뜩 무너뜨리며 웃은 다니엘이 다시 화장 솜을 올려주었다. 눈 위로 손끝을 동글동글하게 굴려 마사지를 해주니 온몸이 잔뜩 풀어졌다. 자꾸 붕붕 뜨는 기분에 괜히 제 손끝이 저리고 뱃속이 간질거렸다. , 정말 위험한데.

 

 

 

"마이 피곤하죠?"

"."

 

 

 

성우가 화장 솜이 떨어질까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다니엘이 목을 긁어가며 웃었다. 형 와이래 귀엽노. 라는 말을 아끼지 않고 내놓더니 성우를 와락 끌어안았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다니엘의 품이 더 여실히 느껴졌다. 단단한 팔로 꽉 끌어안고 큰 손바닥으로 성우의 마른 등을 살살 쓸어주었다.

 

순간 다니엘이 눈 위로 화장 솜을 올려준 게 고마워졌다. 아마 눈까지 잘 보였으면 벌써 귀까지 빨개졌겠지.

 

 

 

"야아...이거 떨어져어."

 

 

 

다니엘의 어깨로 얼굴이 붙어 눈에 있던 화장 솜이 떨어지기 일보직전이었다. 그제야 히 웃으며 품에서 떨어뜨린 다니엘이 성우의 눈에서 화장 솜을 뚝 떼어냈다. 답답하던 시야가 다시 환해졌다. 웃는 다니엘의 얼굴도 그대로.

 

 

 

"! 맞다. 형 내 축하해줘요."

"?"

"내 면허 땄어요."

 

 

 

갑작스런 다니엘의 말이 퍽 섭섭했다. 말도 없이 면허라고?

 

바빠서 대화를 잘하지는 못했지만, 저와 다니엘의 사이가 이 정도로 형식적일 줄이야. 진짜 직장동료 정도로 생각하는 건가? 최소한 멤버들 사이에서는 가장 가깝다고 자부했는데, 그동안 스스로 위안 삼았던 부분이 모조리 깨져버렸다.

 

 

 

"면허? 언제?"

"오늘 낮에요. 내 학원 다닌다고 말 안 했나?“

 

 

"안 했는데?"

 

 

 

너무 바빠서 다니엘에게 듣고도 까먹은 게 아닐까 하는 경우의 수를 떠올렸지만, 적어도 다니엘에 관한 일에 대해서는 그럴 일이 없었다는 부분이 좀 더 울컥하게 했다. 아니, 애초에 이야기 한지 안 한 지도 모르는 다니엘에게 화가 났다. 기분이 확 상했지만 표현할 길이 없어 입술만 깨무는데 다니엘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따라오는 눈.

 

 

 

", 아직 덜 지웠다."

"내가 할게."

"그라모 그럴래요?"

 

 

 

얘는 나를 키우던 고양이 정도로 생각하는 걸까.

 

 

 

 

 

 

 

 

 

*

 

 

 

 

 

 

딴에는 용기는 엄청 끌어올렸다. 열리지 않는 입술을 꼭꼭 씹다가 막 씻고 들어온 다니엘을 불렀다.

 

 

 

"다니엘 영화 보러 갈래?"

"?"

", 저번에 니가 보고 싶다던 거 개봉했어."

"아 그게요..."

"어디 가?"

 

 

 

평소와 좀 달랐다. 일찍 일어나서 아침까지 챙겨 먹은 다니엘은 벌써 샤워까지 마쳤다. 다니엘은 원래 외향적이었지만 활동기간에 짬이 좀 생겨도 철저하게 잠만 자는 스타일이었는데. 성우의 물음에 모자를 고르고 있던 다니엘이 2층 침대로 시선을 옮겼다.

 

 

 

", 내 운전연습 하러 갈라고요. 오늘 스케줄이 없어가꼬."

"그럼 같이 갈까?"

 

 

 

아무래도 틈틈히 운전을 했던 터라 저라면 다니엘을 도와줄 수 있고. 요즘은 붙어있을 시간도 별로 없었으니 나가서 밥도 먹고 이야기도 좀 하려고 했다. 다니엘은 한 번도 성우의 제안을 거절한 적 없어서 당연히 이번에도 그러자고 할 줄 알았는데.

 

 

 

"...아니 내 재환이랑 같이 가기고 해서요. 재환이가 뭐 살 것도 있다고 하고, 형 알잖아요. 가랑 뭐 사러 다니면 진짜 오래 걸리는 거. 형은 요새 너무 바빠서 나가면 힘들기만 하지 싶다."

 

 

 

다니엘의 말투가 좀 묘했다. 말꼬리가 줄줄 길어졌다. 성우의 눈을 살살 피하면서 둘러대는 걸 보니 대충 들어도 같이 가기 싫다는 느낌. 성우의 미간이 슬며시 좁아졌다.

 

 

 

"...그래?"

"어어. 그라고 내 운전 배우는 대신에 보드 가르쳐주기로 해서 오래 걸릴 거에요."

 

 

 

성우의 목소리가 가라앉자, 우물쭈물 거리던 다니엘이 입을 열었다. 성우가 뭐라 대꾸하지 않자 가방과 보드를 챙겨들었다. 곧 재환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왔다.

 

 

 

", 강다 아직 멀었어?"

"깜짝이야! 니는 왜 문을 벌컥벌컥 여는데!"

". 내가 너 필기 알려줘, 실기 시뮬레이션도 해줘. 이제는 도로연수 시킨다고 목숨까지 걸었는데 이러기 있어?"

 

 

 

필기부터?

 

재환의 말에 성우의 얼굴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다른 층에 사는 재환도 다 아는 사실을 제가 몰랐다는 것보다 저에게 이야기 할 가치조차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울컥했다.

 

성우의 볼 안쪽에서 알사탕이 볼록 생겼다. 금세 눈치챈 다니엘이 재환의 등을 팍팍 밀었다.

 

 

 

"야야야. 시끄럽다 나가자."

"아파!!"

", 내 재환이랑 갔다 올게요. 피곤한데 쉬어라."

 

 

 

금세 문을 콩 닫고 나가는 다니엘. 따지고 보면 다니엘과 저는 정말 아무사이도 아니었다. 룸메이트지만 어쩌면 동갑인 재환이 보다 덜 편한, 그냥 약간 친한 직장동료정도. 아니 어쩌다 손도 잡고 기분 좋으면 포옹도 하는 건 도대체 뭐야? 쟤는 재환이한테도 그러는 거야?

 

생각하다보니 정말 기분이 상해 다니엘이 나가기도 전에 방으로 돌아왔다. 얼마 만에 같이 쉬는 날인데, 또 섭섭함이 몰려왔다.

 

 

 

 

 

"성우야. 치킨 먹을래?"

"...아니이."

"또 배달오면 제일 먼저 닭 다리 먹을 건 아니지?"

"아니거든? 생각이 없다고오."

 

 

 

같이 치킨을 시켜먹자며 9층으로 내려온 민현이 방문을 열었다. 푹 가라앉아있는 성우가 신경이 쓰였는지, 성큼성큼 들어오더니 다니엘의 침대 위로 앉았다. 잔뜩 쌓여있는 캐릭터 인형을 주먹으로 툭툭 쳐보더니 성우를 올려봤다.

 

 

 

"그래도 동갑이니까 지들끼리 편해서 그렇겠지."

"뭐가?"

"다니엘이랑 재환이 말이야."

"...너는 그 이야길 왜 나한테 하냐?"

"너 다니엘이랑 재환이 나가고부터 완전 넋이 나갔다던데?"

"아니거든?"

 

 

 

놀리는 듯한 말투에 약간 화가 나 목소리가 높아졌다. 사실 민현의 말을 그대로 인정하는 꼴이 되어버려서 좀 남사스럽기도 했다. 얘는 쓸데없이 눈치가 빨라가지고.

 

 

 

"아니면 뭐야. 정신 빼고 있지 말라고. 티 난다고."

"...."

"그리고 너도 알잖아."

"뭐가?"

 

 

 

잠깐의 정적에 침이 꼴깍 넘어갔다. 정적보다 긴장되는 건 사뭇 진지해진 민현의 얼굴이었다.

 

 

 

"우리 아직 감정에 치우쳐서 뭔가 결정하면 안 되는 거... 너도 다니엘도... 그게 잠깐 일지 아닐지 잘 모르고..."

 

 

 

이럴 땐 무섭게 이성적이란 말이야. 민현의 말에 공기가 한층 무거워졌다.

 

 

 

"성우야. 만약에 활동이 끝나고 나서도 너랑 다니엘이..."

"만약은 없다며."

"?"

 

 

 

어줍잖은 위로를 하려는 민현이 갑자기 더 미워져서 발로 퍽퍽 차버렸다.

 

 

 

"황민현 니가 그랬잖아. 만약은 없다고."

 

 

 

 

 

 

 

 

 

*

 

 

 

 

 

 

다니엘은 재환과 나갔던 날, 저녁 먹을 때가 다 되어서야 돌아왔다. 뭐 미안하다던가 아니면 다음엔 같이 가자고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다니엘은 아니 다니엘과 재환은 점점 더 붙어 다녔다. 그 후로도 성우가 스케줄이 있든 없든 다니엘은 재환과 운전연습에 몰두했다. 분노를 넘어서 타협의 단계로 다다랐을 때 점점 무뎌졌다. 다만 다니엘과 저의 관계가 썸 비슷하게 아닐까 생각했던 게 후회될 뿐.

 

재환의 개인 스케줄로 없었지만, 다니엘이 어딘가 모르게 분주해 보였다.

 

 

 

"내 이래가 나가면 알아보겠나?"

"...잘 모르겠는데?"

"그라모 모자도 쓰까요?"

". 그래도 되고."

 

 

 

다니엘이 아까부터 호들갑이었다. 처음엔 마스크를 썼다가 여름이 다 되어가는 날씨에 옷을 겹겹이 입었다가 벗었다. 이번엔 모자까지 쓰고 성우의 결재를 받는 폼이 영 이상했다. 성우가 무뚝뚝하게 단답만 내어놓자 금방 울상이 됐다.

 

 

 

"내 영화 보러 가고 싶은데..."

"오늘 스케줄 없지? 다녀와."

 

 

 

무반응으로 일관하는 성우 옆으로 와 팔을 붙잡았다. 잉잉거리는 말투로 말꼬리를 죽죽 늘어뜨린다.

 

 

 

". 있잖아요..."

"?"

"내 혼자 운전하지 너무 무스브가..."

 

 

 

얘 또 왜이래 마음 약해지게...

 

 

 

"드라이브 갈래요?"

.

.

.

"...그러던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니엘의 옆자리였다. 다니엘이 부탁한다고 쪼르르 따라나올 생각은 아니었지만, 애가 혼자 운전해본 적이 없다고 난리를 쳤으니까. 게다가 지금은 재환이도 없고, 다니엘의 운전을 봐 줄 사람이 저 밖에 없다는 결론에서 보호자의 마음으로 나왔다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다니엘은 꽤 운전을 잘했다. 운동신경이 좋아서 운전도 잘 하는 건가. 다니엘은영화시간이 아직 좀 남았다며 성우를 갑자기 한강으로 데리고 갔다. 이미 밤이 깊어서 둘을 알아보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치킨에 콜라까지 한잔 하고 나니 맥주를 마시지 않아도 기분이 붕붕 떴다. 벤치에 나란히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다니엘은 은근슬쩍 성우의 손 위로 제 손을 포갰다. 따뜻하게 감싸는 온기가 뱃속 어딘가를 간지럽혔다. 잔뜩 말랑해져서 다니엘과 쭉 손을 잡고 주차장 까지 걸어왔다. 시계를 확인한 다니엘이 서둘러 안전밸트를 맸다.

 

 

 

"오늘 재밌었다. 맞죠?"

". 오랜만에 바람 쐬니까 너무 좋다."

"맨날 형이 운전했는데, 내가 운전하니까 막 든든하고 그렇죠?"

 

 

 

다니엘도 오늘 드라이브가 만족스러웠던지 어깨를 으쓱이며 들뜬 목소리를 냈다.

 

 

 

"재환이 없으면 우에 운전 하나 했는데, 그래도 형이 옆에 있으니까 너무 마음이 놓이고 좋아요."

 

 

 

, 정말 완벽하고 기분도 좋았는데. 갑자기 여기서 재환이가 왜 나와?

 

다니엘의 입에서 재환의 이름이 나오자 성우의 얼굴이 바로 굳었다. 다니엘이 가자고 해서 속도 없이 따라나와서는 치킨 사준다고 좋다고 웃고 손까지 잡아놓고, 뭐 재환이?

 

 

 

", 잠깐 세워봐."

"왜요. 뭐 놔두고 왔나."

 

 

 

다니엘은 성우가 휴대폰을 제대로 들고왔는지부터 확인했다. 어쩐지 더 서러워진다. 성우는 정말 울컥해서 큰소리부터 냈다.

 

 

 

"이게 보자보자하니까. 너 나한테 왜이래?"

"...?"

"도대체 나는 너한테 뭐야?"

"...뭐긴 뭐야. 성우형이지."

 

 

 

눈치가 없는 건지 정말 아무렇지 않은 건지 다니엘을 아직도 상황파악이 안 되는 듯 했다. 내가 이런 애를 보면서 설렜던 거 진짜 취소다. 취소.

 

 

 

"내가 너 면허 없을 때 서울역까지 마중도 갔는데... 면허 딸 때까지 한마디 말도 없고. 인간적으로 나한테 처음 태워줘야 되는 거 아니야? 그래도 내가 니 룸메이트인데. 나는 그래도 우리가 조금은 특별하다고 생각했단 말이야. 나는 그냥 재환이 땜빵이야?"

"? 형 지금 무슨 말 하노."

"그렇게 옆자리에 누굴 태우고 싶으면 니 물곰 인형이라도 앉히던가!"

 

 

 

물곰 인형을 이야기하면서 정말 목소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툭 건드리면 눈물이 확 쏟아질 것 같아서 다른 생각이라도 해보려고 했는데, 성우의 이야기를 들은 다니엘은 속 좋게 웃기나 했다.

 

도대체 뭐야 얘?

 

 

 

"아니, 형 땜빵이 아이라요. 하핳."

"됐어. 이게 웃을 일이야? 나 택시 타고 갈래."

 

 

 

아무리 화가 나도 이렇게 까지 하면 너무 초라해지는데, 당장 벗어나지 않으면 못 참을 것 같았다. 잔뜩 씨익씨익 거리는 성우가 벨트를 풀고 차 문을 잡았다.

 

 

 

"형형형! 잠깐만."

", 놓으라고."

 

 

 

아직도 웃음기를 머금은 다니엘이 성우의 어깨를 붙잡아 돌렸다. 눈꼬리가 잔뜩 휘어지는데 어쩐지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잡지...말라구우..."

 

 

 

성우가 고개를 옆으로 틀자 다니엘이 아예 양 볼을 꽉 붙잡았다. 눈까지 요리조리 굴리니 스읍 하고 입술을 깨문 다니엘이 천천히 시선을 맞춰왔다. 그리고 한참이나 뜸을 들였다.

 

내 좀 봐봐요. ?

 

 

 

", 내 쫌 부끄러우니까 한 번만 이야기할게요.“

"...뭔데! 니가 지금 나보다 쪽 팔려? ?"

"내가 재환이랑 운전연습을 하긴 하는데요. 이렇게 저녁에 나오지도 않고요. 분위기 막 내면서 커피도 안 마시고, 치킨도 안 먹어요. 가랑 나는 너무 친구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무엇보다 뭐.“

 

 

"이런 것도 안 해요."

 

 

 

성우의 입술을 빤히 보던 다니엘이 고개를 살짝 옆으로 꺽었다. 성우가 놀라 고개를 뒤로 물렸지만 다니엘이 그대로 다가와 성우의 입술 위로 살며시 포갰다. 버둥거리던 성우가 순간 얼어버리자 그제야 장난스레 몇 번 입을 꾹꾹 맞추다가 다시 눈을 맞추고 푸스스 웃었다.

 

 

 

"......너 뭐야!"

"형도 민현이 형이랑 자주 나가잖아요. 형은 민현이 형이랑 이런거 해요?"

"....아니!"

"그라모 특별한 사이 맞지요?"

"..몰라...."

 

 

 

성우는 꽤 놀란 모양인지 제 입을 꼭 막고 딸꾹질을 했다. 그 모습 조차 좀 귀여워서 웃던 다니엘이 이제 마음이 좀 놓이는지

 

 

 

"나는 형이 내 운전하는거 보고 불안해 할까 봐 재환이랑 연습했단 말이에요. 짠하고 보여줄라고..."

"아니 너느은... 그런 거면 진작 말을 하면 되잖아."

"그걸 우에 말하노. 부끄럽그로."

"그래도오."

"오늘 내 지짜 긴장했다고요. 빨리 칭찬해도."

"..잘했어."

 

 

 

다니엘이 머리를 들이밀기에 두어 번 쓰다듬어주니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게 아니라며 눈을 꾹 감고 입술을 내밀었다. 제 입술만 꾹꾹 깨물던 성우가 어설프게 다가가 쪽 하고 떨어지니 금세 다가와 도장 찍듯 맞춰오는 입술.

 

 

 

"형이랑 드라이브 하는 거 너무 신경쓰이고 진 빠져서 힘들었는데, 이거는 쫌 계속 하고 싶네."

 

 

 

성우의 허리 뒤쪽으로 다니엘의 손이 들어와 꽉 잡아당겼다. 좀 더 짧아진 거리에 가슴이 터질 듯 쿵쾅거렸다. 제 심장소리가 다니엘한테 들리면 어쩌지 하는 쓸데없는 고민을 하기 시작할 때쯤 잔뜩 가까워진 다니엘의 입술이 다시 닿았고, 이내 쏙 하고 밀고 들어왔다.

 

혀 위를 찬찬히 훑고 지나가더니 입천장을 살살 쓸어내릴 때마다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저절로 아찔해지는 기분에 성우는 다니엘의 티를 꾹 말아쥐었다. 꼭 쥔 주먹이 귀여운지 푸슬거리며 웃다가 살며시 입술을 뗐다.

 

 

 

"이제 우리 영화 보러 가까요?"

 

 

 

잔뜩 접어 웃는 눈.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