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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녤옹

 

 

 

 

 

 

 

다람쥐와 드라이브 하면 안 되는 이유

말자

 

 

 

 

 

 

 

 

성우야.”

…….”

옹성우.”

 

! 하는 콧소리와 함께 성우의 고개가 팩 돌아갔다. 단단히 화가 난 건지 까만색 머리 사이로 작게 튀어나온 부드럽고 둥근 귀가 두어 번 꿈틀거렸다.

 

성우야, 내 미안타.”

.”

성우야아.”

 

성우 옆에서 눈치만 보던 다니엘이 장난치듯 성우의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아핳, 간지러어! 하지 마! 살살 긁어오는 손가락에 본능적으로 해맑게 웃던 성우는 곧 다시 화난 얼굴을 만들어 다니엘의 손을 톡 쳐냈다.

 

나 지금 화났다구.”

미안타. 내 미안타.”

미안타 미안타 해두 소용없어.”

 

두껍게 올라와 말려있는 꼬리가 움찔움찔 하는 걸 보니 화가 난 것 같기는 한데.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성우의 표정이 간식을 달라고 협박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다니엘이 이 상황을 타파할 해결책을 생각하며 성우의 꼬리를 빤히 바라보자 성우가 꼬리로 다니엘의 허벅지를 찰싹 소리 나게 때렸다. 어딜 봐! 변태! 다니엘이 꼬리를 보지 못하도록 다니엘과 마주보고 앉은 성우가 소파에 머리를 기대곤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주인.”

.”

주인은 바보야? 아직두 내 화 풀어주는 방법을 모르겠어?! 나 저번에 주인이 들어올 때 밤을 이따만큼 가져오는 거 다 봤는데.”

 

여전히 화난 표정을 한 성우가 이따만큼!’ 하면서 공중에서 손을 둥글게 만들어 보였다. 역시 기분 탓이 아니었네. 밤을 먹을 생각에 신난 듯한 꼬리가 성우 등 뒤에서 살랑거리는 걸 본 다니엘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성우야 밤은 사흘에 한 개만 묵을 수 있다. 니 그제도 졸라가 세 개나 먹고 잤다 아이가.”

그르케 먹으라구 주인이 정한 거잖아!”

성우 니 맨날 밤 두 개씩 묵고 도토리 세 개씩 무면 살이 금방 쪄가 위험하다고 의사 선생님이 그랬제.”

 

다니엘이 짐짓 단호한 표정을 지어보이자 신난 듯 팔랑거리던 꼬리가 먼저 축 처졌다. 내내 화난 표정을 지어보이던 성우가 곧 입꼬리를 쭉 내려 우울한 표정을 해보였다. 아차. 다니엘이 이마를 짚은 건 그 다음이었다.

 

다니엘은 날 미워하나봐. 밤도 안 주구도토리도 안 주구맨날 여우랑 놀다가 오구.”

 

조금만 더 가만히 놔두면 눈물을 퐁퐁 쏟을 것 같은 얼굴에 다니엘이 침을 꿀꺽 삼켰다. 여우랑 논 건 어제 한 번이었는데. 가슴 깊숙한 곳에서 억울함이 밀려왔지만 차마 입 밖으로 말하지는 못했다. 간식 이야기로 넘어가는 바람에 중요한 것을 잊을 뻔했다. 성우가 다니엘에게 화가 난 것은 밤이나 도토리 따위의 간식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어제 다니엘은 잠시 맡겨 뒀던 물건을 찾으러 친구 집에 갔다가 여우 수인을 만났다. 다니엘에게 여우는 까칠함과 영악함의 대명사였기 때문에 혼자서 잔뜩 겁을 집어 먹고 갔는데, 생각보다 훨씬 온순하고 사람 손을 잘 타서 잠시 커피 마시는 동안 다니엘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여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더랬다.

성우야, 내 왔다. 집에 도착한 다니엘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소파에 앉아 다람쥐용 아이스크림을 두 손으로 쥔 채 먹고 있던 성우가 남아 있던 아이스크림을 급하게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듀인 와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능청스럽게 구는 성우에 다니엘이 혀를 내둘렀다.

 

성우 니 또 내 몰래 아이스크림 꺼내 뭇나.’

아니? 나 아이, 그거 어디에 있는 건지 잘 몰라.’

아이고, 능청스러버라. 다음부터는 진짜 혼난데이. 알았나.’

 

그러면서 다니엘이 성우의 코를 잡아 살짝 흔드는데, 난데없이 성우의 꼬리가 다가와 다니엘의 손을 퍽 쳐냈다. 예사롭지 않은 힘에 놀란 다니엘이 성우를 바라보는데, 뭐 때문인지는 몰라도 성우의 눈에 눈물이 가득 차있었다.

 

여우 냄새!’

으응?’

여우 냄새 나!’

, 내 친구네 집 갔다 왔는

여우가 얼마나 나쁜데! 여태 여우랑 놀다가 온 거야?!’

성우야.’

됐어. 주인 정말 진짜 완전 대박 리얼 헐 미워. 나 이제 주인네 다람쥐 안 해! 다른 다람쥐 알아봐!’

 

!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성우가 방문을 쾅 닫고는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그러다 다시 방문이 쾅 열리고 바닥을 쿵쿵 찧으며 걷는 성우가 부엌의 쓰레기통에 먹던 아이스크림의 나무 막대기를 버리곤 손을 씻는다. 성우의 움직임을 따라 시선을 옮기던 다니엘이 다시 한 번 쾅! 닫히는 문에 정신을 붙잡은 듯 눈을 두어 번 깜빡거렸다. 여우랑 다람쥐가 천적이었지. 손이라도 씻고 올 걸. 소파에 앉은 다니엘이 한숨을 쉬며 마른세수를 했다.

 

 

주인은 내가 밉구나내가 도토리를 너무 많이 먹어가주구.”

아이다. 그런 말 하면 혼난다고 했지.”

그럼 여우랑은 왜 놀다 왔어?”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대화에 다니엘이 결국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그래. 이 똑똑한 다람쥐를 누가 이기노. 어쨌든 여우랑 놀다 손도 씻지 않고 돌아온 것은 다니엘이 잘못한 거였다. 성우는 간식이 아닌 것에 욕심이 있는 다람쥐가 아니니 딱히 뭘 해주겠다고 할 수도 없고. 결국 다니엘은 간식을 꺼내주기로 다짐했다.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다니엘을 빤히 올려다보던 성우는 부엌 찬장으로 향하는 제 주인의 모습에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냈다. 언제 화가 났었고 언제 우울한 표정을 지었냐는 듯 한껏 해맑아진 표정으로 성우가 입을 열었다.

 

오늘의 다람쥐 운세. 간식을 많이 얻을 수 있겠네요. 도토리보다는 밤을 먹는 게 좋겠어요.”

아이고, 알았다, 알았어.”

 

밤을 넣어둔 통을 꺼내려 찬장 문을 연 다니엘이 그 안을 눈으로 천천히 훑으며 생각했다. 성우가 간식 말고 원하는 게 정말 없었나? 있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주면 한 개로 만족하지 못 할 성우를 알았기에 어떻게든 생각해내야 했다. 다니엘로서는 성우가 많이 먹는 것이 좋았지만, 건강을 위해서는 확실히 간식을 줄여야 했으니. 시간을 벌기 위해 일부러 조금 더 천천히 밤이 담긴 통을 꺼내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다니엘이 락앤락 통 뚜껑을 열다 말고 고개를 번쩍 들었다. . 그걸 왜 잊고 있었지?

 

주인은 밤을 꺼내기만 하면은 되는데 모가 그르케 오래 걸려?”

 

다니엘이 밤을 꺼내는 모습이 답답했는지 어느새 부엌에 와있던 성우가 물었다.

 

성우야.”

?”

드라이브 갈까, 드라이브.”

 

다니엘의 손이 쥐고 있는 밤이 담긴 락앤락 통만 빤히 쳐다보던 성우가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려 다니엘과 눈을 마주했다. 드라이부? 밤 같은 건 기다린 적도 없다는 표정이었다. 초롱초롱 빛나는 눈이 반짝이다 못해 눈이 부셨다. 다니엘은 웃으며 락앤락통을 도로 잠갔다. 작전은 성공이었다.

 

 

*

 

 

진짜? 진짜루 드라이브 가는 거야? ? 차만 타고 나갔다 올 건데 뭐가 그렇게 신이 나는지 성우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연한 밤색의 맨투맨을 꺼내 입었다. 가슴 쪽에는 도토리 세 개가 자수로 박혀 있어 성우에게 더 잘 어울렸다. , 지금 갈 기다. 작은 가방에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밤과 도토리를 몇 개 챙기고, 차 안에서 마실 다람쥐용 음료수까지 다 챙긴 다니엘이 잔뜩 신난 성우의 볼 위로 입술 도장을 찍었다. 귀여워서 우야노, 이걸.

 

근데 주인. 나 귀가 안 들어가.”

 

태어나 두 번째로 가는 드라이브에 많이 들떴는지 머리 위의 귀를 꾹꾹 누르는데도 들어갈 기미를 보이지 않자 팔이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나 드라이브 못 가? 표정이 금세 시무룩해졌다.

 

개안타. 차에만 있을 거니까 신경 안 써도 된디.”

그러면 나 드라이브 가?”

당연하지.”

 

다니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성우의 귀를 만지작대자 기분 좋은 듯 넓적한 꼬리가 살살 말렸다. 출발만큼은 순조로웠다. 다니엘은 침을 꿀꺽 삼켰다.

 

 

성우는 지금 가고 있는 드라이브를 제외하면 살면서 차에 타 본 것이 딱 한 번이었다. 성우가 이렇게나 좋아하는 드라이브를 왜 여태 가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다니엘은 단언할 수 있었다. 니네가 다람쥐 키워봐라. 우예 되는가.

 

허억, 주인! 저거 봐. 나무 엄청 많아! 그리구 엄청 빨라!”

알았으니까 발 구르는 건 그만 해라, 성우야. 차 막 흔들린다 아이가.”

.

.

주인! 방금 비닐봉지가 내 얼굴에 날아왔어!”

하이고, 성우야. 썬루프에 고개 내밀믄 안 된다 캤지. 얼른 내려온나.”

.

.

주인도토리가 창문 밖으루 도망 갔어어.”

내 몬 산다. 집에 가서 또 주께. 일단 남은 거 무라.”

다 도망 가가주구 성우 먹을 거 없는데

성우, 네가 던졌제.”

, 아니이?”

.

.

주인!”

.”

이거, 음료수 이르케 하면은, 폭포처럼 흘러!”

옹성우!”

히익.”

 

.

 

내 제 명 몬 산다. 제 명 몬 살아.”

 

갓길에 차를 세워 놓고 차에서 내린 다니엘이 조수석 문을 열었다. 서랍에서 휴지를 뭉텅이로 꺼내는 손길이 많이 다급했다.

 

하아성우야.”

 

조수석 위로 콸콸 쏟아진 성우의 다람쥐용 음료수는 뚝뚝 흘러내려 차체 바닥까지 젖어버렸다. 음료수통을 기울이면 당연히 폭포처럼 흐르지. 음료수를 흘리지 않게 물통에 따로 옮겨왔어야 하는데 그대로 들고 온 것이 화근이었다.

아까 다니엘이 놀라서 낸 큰 소리에 더 놀랐는지 다람쥐로 동물화 한 성우는 조수석 시트 위 음료수로 이루어진 강 한가운데에 앉아있었다. 찌익. 힘없이 울음소리를 내는 걸 보니 잘못했다는 것을 아는 것 같기는 했다. 음료수에 푹 절여진 작은 다람쥐를 들어 올린 다니엘이 휴지 뭉텅이를 음료수 위로 올려놓곤 주머니에 있던 손수건을 꺼내 다 젖은 다람쥐의 엉덩이를 조심스레 닦았다.

 

옹성우. 사람으로 안 돌아올 기가.”

찌이익

내는 다람쥐 말 못 알아듣는데.”

찌익, 찌익.

미안하기는 한갑네.”

 

혹시 젖은 몸에 감기라도 걸릴까 손수건으로 성우의 몸을 감싼 다니엘이 작은 다람쥐 몸이 된 성우를 자신의 남방 포켓에 쏙 넣었다. 찌익! 찌이익! 성우는 불편한지 꺼내달라는 듯 크게 울음소리를 냈지만 다니엘은 아랑곳 않고 푹 젖은 조수석을 닦기에 여념이 없었다.

 

성우 니 지금 벌 받는 중이다, . 거 가만히 있어야 돼. 알았나.”

 

귀가 아플 정도로 울어대던 다람쥐가 곧 울음을 그쳤다. 아이고, 말 잘 듣네, 우리 다람쥐. 다니엘이 작은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

 

 

본의 아니게 고속도로에서 조수석 청소를 하게 된 다니엘은 청소가 끝날 쯤 성우를 포켓에서 꺼내주려다 곤히 잠든 성우를 발견했다. 이 난리를 만들어 놓고 세상모르게 잠 든 다람쥐가 얄미웠지만 괜히 웃음이 났다. 자주 데리고 나올 걸 그랬나. 신나서 몸을 주체하지 못하던 성우를 생각하며 다니엘은 차를 출발시켰다.

집에 도착해 잠든 다람쥐를 침대 한 쪽에 눕혀놓은 다니엘이 성우가 깨지 않도록 느릿느릿하게 침대 위로 몸을 뉘였다. 이렇게 될 것을 어느 정도 예상하기는 했는데, 이렇게까지 기가 빠질 줄은 몰랐다. 그래도 성우가 좋아했으니 밤을 주어 안 좋은 식습관을 들이는 것보다는 나은 거라고 다니엘이 생각했다.

아아, 왜 졸리냐. 눈꺼풀에 누가 추라도 단 듯 천천히 감겼다. 성우 목욕도 시켜야하고, 저녁도 해야 하고, 자기 전에 성우 양치도 시켜야하는데머릿속으로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던 다니엘은 그대로 잠이 들었다.

 

엉엉 주이인. 허엉엉. 죽지 마아. 주인 주그면은 나는 어떠케 살아 이제 내 도토리랑 밤은 누가 조 허어어엉. 성우가 잘못 했어 이제 도토리도 안 숨겨 놓구 드라이부 가자고도 안 하궁 엉엉 밤도 많이 안 머그께 다니엘 회사 간 동안에 밤도 안 꺼내먹을게 그리구 침대 밑에 도토리 껍질 버리는 것두 안 하께 주그면 안대에. 엉엉 주이인.

난데없이 들리는 곡소리에 다니엘이 살며시 눈을 떴다. 누가 죽어?

 

뭐하노.”

 

엉엉, 주이인, 주인?!”

 

다니엘이 입을 열자마자 놀란 성우는 엉엉 울면서 다니엘을 끌어안았다. 다니엘 죽은 줄 알았어어. 허어엉. 여전히 우는 소리를 내는 성우의 등을 일단 끌어안아 토닥이던 다니엘이 한쪽 손을 뻗어 휴대폰을 켜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3. 집에 도착한 것이 대략 저녁 8시 반쯤이었으니 거의 16시간을 잔 셈이었다.

 

그만 뚝. 내 그냥 잠 잔 기다. 울지 마.”

내가 어제 힘들게 해가주구, . 주인 죽은 줄 알았어.”

아이다. 성우가 아무리 힘들게 해도 내 안 죽는다.”

 

우리 다람쥐 배고팠겠네. 눈물로 푹 젖은 얼굴을 손으로 몇 번 쓸어주던 다니엘이 성우의 입술 위로 짧게 뽀뽀했다.

 

주이인. 나 배고파.”

, 내 미안타. 밥 묵자.”

그리구 내 몸에서 음료수 냄새 나.”

목욕부터 하고 밥 무야겠네. 성우 니 다음부터 음료수 막 그래 쏟고 그라믄 진짜 혼날 줄 알아라. 알았나.”

 

다니엘의 품에 가만히 안겨 어리광을 부리던 성우는 다니엘의 잔소리가 시작되자 두 바퀴를 굴러 다니엘의 품을 빠져나왔다. 저 요망한 다람쥐. 헛웃음을 흘리며 성우를 바라보던 다니엘이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성우. 근데 도토리는 어데 숨겼노.”

성우가? 도토리 숨겼대?”

그라든데, 아까.”

아닐 걸.”

맞는데. 밤은 또 언제 꺼내 먹었어.”

? 나는 밤이 어디있는지두 몰라.”

맨날 그 소리.”

주인이 이상한 소리를 하니까는 그르치.”

침대 밑에 도토리 껍질 있나 보까.”

아아악, 주이인! 나 배고프다궁! 귀여운 다람쥐를 이르케 굶겨두 돼?”

 

몸을 내려 침대 아래를 확인하려는 다니엘을 필사적으로 저지한 성우가 다니엘의 손목을 붙잡아 당겼다. 뾰루퉁한 얼굴로 제 팔을 잡아당기는 성우를 보며 귀가 빨개지도록 웃은 다니엘이 못 이기는 척 침대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또다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