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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녤옹

 

 

 

 

 

 

 

이래서 연애는 언제하지

Rozen

 

 

 

 

 

 

 

 

 

 

"신입요? 누가 신입달래요? 일 잘하는 놈으로 달라고 했잖아요"

 

"아직 안 맞먹었어요. 맞먹어드려요?"

 

"와 지금 끊었나?"

 

전화기를 잡고 혼자 화내면서 떠들다 그마저도 화가 안 풀리는 지 전화기를 집어 던지다시피 끊고는 피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탁- 하고 집어 던졌다. 누구라도 걸리기만 해보라며 씩-- 거리고 있는데 차임벨소리를 내며 편의점 문이 열리고 알바생이 나왔다. 제법 큰 목소리로 통화해서 다니엘이 화난 상태임을 뻔히 알면서도 다니엘의 속을 한 번 더 긁었다.

 

"꽁초 바닥에 버리지 말랬잖아요"

"니가 여기 재떨이라도 두던가"

"신고 해버릴 거야"

"웃기고 있다"

 

성우는 다니엘을 무시하고는 여전히 불은 붙은 채 연기가 폴폴 나는 꽁초 가운데를 집었다. 끝부분은 죄다 씹어놔서 더럽고, 불 쪽은 뜨거워서 손가락 두 개를 이용해 겨우 끝을 집은 채 근처 하수구에 떨어뜨렸다. 하수구 구멍으로 쏙 들어간 담배를 보고는 고개를 드는데 붙어오는 시선이 야살스러워 시선을 피한 건 다니엘이었다

 

"짜증나"

"꼬매이 말 이쁘게 안 하나?"

 

그래 봤자,

성우는 톡 쏴 붙이고는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이기기라도 한 듯 의기양양해진 다니엘이 아직 많이 남은 맥주를 마시며 고개를 빼 편의점 안을 살폈다. 씩씩 거리며 물건을 정리하던 성우가 밖을 향해 획 쳐다보자 다니엘은 얼른 고개를 돌리며 다시 맥주를 마시는 척 했다. 괭이다 괭이, 꼬리 바짝 세운 화난 까만 고양이를 상상하다 혼자 피식 웃고 있는데 딸랑- 소리를 내며 성우가 다시 나왔다. 콜록- 나쁜 상상하다 걸린 것 마냥 사레가 들려 콜록거리고 있자 파란 테이블 위로 쥐포 하나가 툭 떨어졌다

 

"뭐고"

"안주 없이 마시면 속 버린대요"

 

멋쩍은 지 귀 끝이 빨갰다

 

"우리 아빠가요"

 

성우는 대답 없는 다니엘을 쳐다보고 입술을 잘근 깨물다가 아, - 하고는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놀리는 게 나았나- 편의점으로 들어간 성우는 밖으로 눈길도 안주고 카운터 안으로 쏙 숨어버렸다. 맥주를 꿀꺽 마시는 데 달아서 안주가 필요 없었다

 

 

 

 

 

 

 

 

이래서 연애는 언제하지

W.Rozen

 

 

 

 

 

 

1.

9 to 6를 사는 사람들과 달리 다니엘은 6 to 9을 살았다. 오후 여섯 시 출근. 업장을 한 바퀴 돌고 선수들과 인사. 친하게 건내며 농담 겸 힘내라는 안부의 사족을 좀 달고 나면 한 시간은 금방이었다. 밤새 진상들이 치고 간 사고 대충 정리해서 형님한테 보고를 마치고나면 벌써 손님 맞을 시간이었다. 딱히 진상만 없으면 다니엘이 할 일은 없는 편이었지만 진상은 거의 매일 있었다. 나름 예쁨 받아서 몸 안 다치는 이런 일로 빠진 게 맞는 데 영 안 맞았다

12월의 금요일은 실적에는 좋은 날이었지만 별로 좋아하는 날이 아니었다. 손님이 많은 만큼 진상도 많았다. 모든 진상이 다니엘의 선까지 올라오는 건 아닌 데 눈치 없는 놈이 자꾸 다니엘을 찾았다

 

"마 이래가 업장 관리 우째 할래, 니 오늘 내 한 번만 더 부르면 낙하산이고 뭐고 없다 알았나"

 

낙하산

2년 전에 찾은 강이사 친아들이다. 애비가 조폭이라고 지도 해보겠다고 나대는 걸 겨우 여기 앉혀놨는데 어려 그런지 의욕만 앞섰지 일은 못했다

 

결국 술을 뒤집어쓰고서야 하루가 끝났다. 기분이 별로였다. 오늘은 맥주고 뭐고 집으로 가야겠다 했는데, 편의점 앞에 쪼그리고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까만 뒤통수를 보니 지나칠 수가 없었다. 뭐하노- 다니엘의 목소리에 놀란 눈을 하고는 엉덩이를 툴툴 털어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눈도 비비적거리다가 코를 훌쩍였다. -

 

"아 술냄새"

 

성우는 눈빛에 다니엘이 셔츠를 펄럭이며 턱을 당겨 가슴팍에 냄새를 맡는데 덜 마른 셔츠에서는 술냄새가 잔뜩 올랐다. 내가 마신 게 아인데, 생각하다 굳이 말하진 않았다. 누가 술을 부었고, 실은 내가 그런 일을 하거든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그 사이 성우는 삐쭉 거리며 컵라면을 챙겨 다니엘의 가슴팍으로 밀었다

 

"내 안 먹을껀데"

"해장해요"

"별로 생각 없는데"

"혼자 먹기 싫어서 그래요? 같이 먹어요"

 

그런 뜻 아인데, 근데 같이 먹어준다고 하며 귀 끝이 빨개지는 게 귀여워서 내버려두기로 했다. 성우는 귀가 빨개진 게 느껴졌는지 손등으로 귀 끝을 꾸욱 눌렀다. 그러더니 다니엘에게 밖에 나가있으라며 손짓을 했다. 밖에서 들여다보니 혼자 바빴다. 컵라면 포장을 벗긴다고 입까지 일자로 앙 다물었다. 물 선 맞추는 게 뭐 그렇게 열심히 할 일인지 몇 번이나 들여다보며 조금씩 조금씩 더 부었다. 젓가락을 컵라면 입구에 끼우고는 두 개를 겹쳐 뒤뚱거리며 나오는 게 영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달려가 도와줘야하나 싶다가 그게 문을 어떻게 열고 나올 지가 궁금해 뒀더니 어깨로 낑-낑 거리며 열고 나왔다

웃음이 피식피식 샜다

 

"맛있죠? 나 물 진짜 잘 맞추거든요"

"그래봤자 컵라면... 아니가?"

 

다니엘의 대답에 성우는 김이 팍 샌 얼굴을 하며 편의점 조끼에서 볶은 김치를 꺼냈다. 이거 나만 먹을 거야

푸하- 투덜거리는 성우가 귀여워서 결국 웃음이 팍하고 터졌다. 성우가 노려봐서인지 웃음이 쏙 들어가질 않아서 두어번은 피식거렸다. 기분이 왜 별로였는 지 이유조차 생각이 안 났다

 

 

 

 

 

 

 

2.

편의점은 거의 매일 갔다. 어떤 날은 술만 먹기도 하고, 어떤 날은 컵라면을 같이 먹기도 했다. 술만 먹는 날에는 투덜거리며 라면은요?하고 물어왔는데, 라면 먹을 땐 꼭 마주보고 먹으면서 술 마실 땐 카운터를 지켰기 때문 인 듯했다. 마주보고 먹는 걸 더 좋아하는 듯 했지만 다니엘은 마주하고 밥 먹는 거보다 카운터에서 게임하는 걸 보는 게 더 재미있었다

배 안 고픈데? 하고는 계산 끝난 맥주를 들고 나와 노상에 앉았다. 그런 다니엘을 노려보다 눈이 마주치자 얼른 피하며 핸드폰에 고개를 박았다. 게임이 잘 안 되는지 혼자 끙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짜증내며 고개를 들길래 모른 척 담배를 꺼내 물고 훔쳐보지 않은 척 고개를 돌렸다. 유리문 너머로 시선이 따라붙는 게 느껴졌다. 아쉬워하다가 입술을 삐쭉, 안 봐도 느껴졌다

 

맥주가 한모금 남았다. 담배도 한모금

 

 

 

 

 

 

 

3.

조직쪽 일을 잘 모르긴 했지만 다니엘을 유독 싫어하는 간부가 있었다. 싫은 게 아니라 탐낸다는 건 업장으로 들어오면서 알게 됐다. 방문이 잦았다

곽이사

말이 간부지 다 늙어 자기 밑에 애들이라고는 몇도 없는 그런 노인네인데 다니엘이 이쪽에서 일하는 걸 마땅찮아 했다. 맷집도 좋고 주먹도 나쁘지 않은데 현장을 못 뛰게 하냐고 지 밑으로 오라고 확실히 키워준다며 다니엘을 주물러대고는 했다. '강실장' 하고 잔을 들자 다니엘이 오른손 팔목을 받치며 정중히 술을 따랐다

 

"친아들 때문에 너는 찬밥이라던데"

"예 뭐"

"니가 나한테 힘만 실어주면"

"이사님"

"...."

"놀다 가세요. 저 이제 여기서 장기 자랑할 짬은 아이잖아요. 잘 모시라"

다니엘은 앞에 있던 술잔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치 있게 옆에 있던 아가씨가 얼른 다니엘이 앉았던 자리에 당겨 앉았다. 정중하게 목례하고 돌아나갈 때였다. -그랑, 던져진 술 잔, 씩씩거리는 곽이사의 숨소리 이빨 다 빠진 호랑이. 다니엘은 대꾸할 가치가 없어 눈길도 주지 않고 룸을 나왔다

 

"...."

"룸 살피고, 먼저 드가께 일 있음 전화...전화하지 말고, 오늘 니 알아서 해봐라"

"...?"

 

개안타- 다니엘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건네주는 휴지를 받아 들고 얼굴을 꾹 닦았다. 하필 튀어도, 파편자체가 크지는 않아 상처가 깊지는 않은데 딱 볼 가운데 실금이 갔다

 

"-"

"..."

"좀 잘해라"

 

찬밥은 무슨, 찬밥이 되고 싶다 진짜.

 

 

 

 

7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라 그런지 성우는 카운터에 고개를 박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차임벨소리에 깰 까봐 다니엘은 밖에 앉아 담배만 태우며 지켜봤다. 발 아래 꽁초가 세 개쯤 떨어지고 나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오늘은 라면 먹을라 했는데 이래 자는 것만 보고 가네, 발걸음을 돌리는데 뒤에서 벨소리가 났다.

 

"아저씨!"

"아 깼나?"

"뭐에요? 왜 그냥 가? 꽁초..!"

 

성우가 터덜터덜 걸어 나오다 쌓여있는 꽁초를 보고 다니엘을 노려봤다. 진짜 이 아저씨가 안되겠, 다쳤어요? 걷던 걸음이 빨라져 한달음에 앞에 와 있었다. 다니엘은 웃으며 상처를 만지자 얇게 자리잡던 피딱지가 떨어지며 다시 피가 올라왔다.

심하지도 않은 상처를 보고 유난을 떨었다

 

"그건 좀 아니다"

 

어디서 난 건지 캐릭터모양의 밴드를 까고 있는 걸 보고 다니엘은 성우를 말렸다. 귀여울 꺼 같은데, 입을 삐죽거렸다 그리구.. 이거뿐인데.. 말 끝을 늘리는 게 나긋나긋 험한 사람들이랑만 있어서 그런가 말도 말랑말랑했다. 그라면, 안 붙일란다. 하고 고개를 돌리자 성우의 두 손이 다니엘의 양 볼을 꽉 눌러 잡았다

. 죄송,

얘는 손도 말랑말랑했다. 얼른 손을 후다닥 떼어냈다. 붙인 거 보구 싶은데. 이미 포장을 깐 노란색의 밴드의 접착면을 떼었다 붙였다 하며 손장난을 치고 있었다

 

"붙이면 뭐 해줄껀데"

"아니 아저씨 상처에 제가 붙여주는 건데 뭐 해주기까지 해야 돼요?"

"그람 말고"

 

다니엘이 한 걸음 물러났다. 어어, 장난치다 한쪽 접착면이 홀랑 떨어졌다.

 

"내랑 영화볼래?"

 

성우가 남은 한쪽면을 떼어내고 다니엘의 얼굴에 노란 밴드를 꾹꾹 눌러 붙였다. 귀엽다아- 만족스레 입을 헤에 벌리고 얼굴을 감상하는 게 더 귀여워 손을 들어 머리를 푸슬푸슬 쓰다듬었다. 니가 더 귀엽거든

 

 

 

 

 

 

 

 

4.

사실 영화는 성우가 보고 싶다고 얘기 했었다. 몇 번 먹은 아침밥에 들은 성우가 좋아하는 것들을 다니엘은 기억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핑크색 니트를 입은 성우가 다니엘을 못 본채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 뒤에 있던 벽에 자신을 모습을 비쳐봤다. 머리를 손으로 다시 만지고 얼굴을 꾹 누르는 게 귀여워 다니엘의 광대가 실룩거렸다. 저러다 머리가 더 망가질 것 같아 걸음을 빨리 했다.

 

"영화 제가 끊었어요"

"내가 보자 했는데 니가 왜"

"보고나서 밥 사주시면 되죠"

 

아침 11시면 남들은 출근해서 일 할 시간이지만 다니엘은 잘 준비를 할 시간이었다. 그래서 다니엘은 조금 졸았다. 눈을 떳을 땐 주인공 둘이 키스를 하고 있었다. 앵글 뭐 그런 건 몰라도 절절해 보였다. 성우는 우는 지 이따금 코를 훌쩍였다. 다니엘의 시선을 느끼고는 손바닥을 펴 눈을 꾸욱 누르고 안 울었다는 듯 눈을 마주치며 다가왔다. 한 뼘도 안 되는 사이를 남기고 훅 들어왔다. 안 울었어요

눈을 흘기며 자기 자리로 돌아가려던 걸 다니엘이 당겼다. 코 끝이 먼저 닿았고 입술이 닿았다. 운거 맞네- 입 안이 조금 뜨거웠다. 아닌..데에- 말 끝이 또 나긋하다.

다시 입술을 붙여온 건 성우였다. 맞대고 있는 입술이 바들바들 떨려서 입술에 심장이 있는 줄 알았다. 혀로 입술을 꾸욱 누르며 입술을 빨아댔다. 하아- 하고 숨이 트여 나오자 혀를 밀어 넣었다. 긴장해 주먹을 쥐는 게 느껴져 다니엘이 성우의 손을 깍지 껴 잡았다. 천천히, 하고 싶은데 애가 뱉는 달뜬 숨소리에 자극이 되 자꾸만 마음이 급해졌다. 몰아붙이며 좌석을 거의 넘어가듯 몸을 겹치자 성우가 버둥거리며 다니엘의 등을 콩콩 쳤다

 

"영화 멀었나?"

"후으, 삼십..분 정도 남았어요"

 

성우의 입술을 닦아주고 자기 자리로 고쳐 앉았다. 성우가 몇 번 숨을 고르고는 덜덜 떨면서 스크린에 눈을 둔 채로 다니엘의 손을 잡아왔다. ..갈까요,

손을 꽉 잡으며 다니엘이 먼저 일어났다. 어두운 영화관을 빠져나오면서 성우는 몇 번 다리를 휘청거려 허리에 팔을 단단히 감았다. 밝은 곳에 나오자 화장실부터 다녀온다며 자리를 피했다. 다니엘은 목 뒤로 흐른 땀을 닦으며 숨을 골랐다. 밥 못 먹겠는데

성우는 빨개진 볼을 꾹꾹 누르며 다니엘 옆으로 와 앉았다. 갈까, 어디...? 밥 말고, 성우는 알아 들었는지 소리도 못 내고 입이 벌어졌다. 다니엘은 검지로 성우의 턱을 올려주었다

 

"옹성우!"

 

맞네? 교복을 입은 무리가 성우에게 다가왔다. 오오 성우성우- 옹쓰 옹- 누구, 성우가 일어나자 교복 입은 놈 하나가 성우를 와락 껴안았다. 다니엘의 눈썹이 씰룩, 다니엘이 누구냐고 물으려는 데 그쪽 애들이 더 먼저 다니엘을 궁금해했다.

 

"누구, 누구셔?"

"........"

 

성우는 다니엘의 쳐다보고 눈을 굴리며 적절한 단어를 고르고 골랐다

 

"아는...삼촌?"

 

삼촌이라고는 자기가 해놓고 눈치를 엄청 봤다. 다니엘은 반갑다며 성우의 친구들과 인사했다. 아 잠시만, 전화 좀- 성우는 실수라도 한 것처럼 다니엘을 보며 끙-끙 전전긍긍했다.

 

 

 

"예 다니엘입니다"

 

 

 

 

 

 

 

 

5.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 생각 했는데 그래도 호랑이는 호랑이이었다. 업장을 다 깨놓고 갔다. 문 닫을 준비하는 데, 갑자기 오셔서- 매니저가 주절주절 말을 잇는 데 걔 꼴도 말이 아니었다. 시비도 참 요란하게 건다고 생각했다

 

"이사님 곧 오신다고"

"누구 이사"

"강이사님요"

 

그나마 먼저 정리된 룸에 들어가 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앉았다. 말랑말랑한 핑크니트 또 보고 싶은데, 와중에 밥을 못 사주고 와서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는...삼촌? 삼촌 이랬다. 형 정도는 되는 거 아닌가, 내 그렇게 늙지 않았는데, 그러고 보니 교복이면 고딩인가, 고딩이라...고딩, 몇 살 차이고- 성우의 생각이 꼬리를 무는 데 웅성거리는 소리에 다니엘은 생각을 그만두고 자리에서 일어나 옷 매무새를 고치며 문 쪽을 향해 인사했다

 

"앉아라 뭔 인사고"

 

똑 닮은 사투리를 쓰는 강이사가 귀찮아하며 쇼파에 앉았다. 다니엘은 얼른 옆으로 가 미리 세팅되어 있던 술 잔을 뒤집으며 술을 찰랑하게 부어 강이사에게 건넸다. 한 모금 마시고 다니엘을 노려보는 눈빛이 심상찮았다

 

"약점 잽힜나?"

"무슨 소리에요"

"곽이사가 이래 분간 없이 미친 놈은 아이라서 카지"

 

약점, 걔가 나한테 약점이라고 하기에 걔랑 한 게 너무 없었다. 근데 또 약점이라는 말에 걔만 생각나는 걸 보니 맞긴 했다. 대답을 못하고 있자 눈치가 빤한 강이사가 혀를 찼다. 잡혔네 약점

 

"알아서 해결 할낀데 뭐하러 이까지 오십니까 다 늙어서"

 

친아버지는 아니었지만 대화하는 걸로만 보면 모양새가 부자지간이 아닐 리가 없었다. 다니엘은 어떻게 생각하는 지 몰라도 강이사한테는 친아들과 진배없었다. 처음에는 그냥 후계자처럼 키웠다. 내 조직을 물려주고 자리에 욕심을 내길 바래서 현장도 많이 시키고 험한 일도 시켰는데 칼 맞고 왔을 때 마음이 좀 그랬다. 이게 자식 있는 부모 마음인가, 자기가 했던 일들을 돌아보니 다니엘에게 그 길을 따라오라고 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치는 것보다 안 다치는 게 마음이 편했다

친아들의 등장과 함께 다니엘을 조직 외부로 돌리는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고, 시나리오를 쓰던 이들은 다니엘이 강이사에게 미움이라도 받는 줄 알고 다니엘을 스카웃 해가려 했다. 강이사가 경고하면 몇 번 시도하다 말았는데, 곽이사는 집요한 데가 있었다. 그의 입지에서 다니엘은 꽤 필요한 패였다. 젊고 리더쉽 좋은. 강이사가 다니엘에게 갈색의 서류봉투를 내밀었다

 

"곽이사가 보낸기다. 니 흑심"

"...참 내"

 

성우였다

 

"내보고 니 쳐내라고 이라는 거 같은데 맞나?"

 

다니엘은 성우의 사진을 다시 잘 챙겨 봉투 안에 넣었다. 사진도 한 장 없는 데 잘됐다.

 

"내 흑심. 우째해야 숨길 수 있는데요"

 

 

 

 

 

 

6.

성우는 아침부터 가게 밖만 쳐다보고 있었다. 이름은 다니엘인 건 아는데 퇴근 시간이 9시쯤인 것도 알고, 가끔 술냄새가 많이 난다는 것도 알았다. 근데 집도 모르고 전화번호도 모르고, 필요한 건 하나도 몰랐다. 벌써 2주가 넘어가서 해가 바뀌는 데 다니엘은 없었다

크리스마스도 같이 하고 싶었고, 새해도 같이 맞이하고 싶은 건 너무 앞서간 거였나. 성우는 조금 속상했다. 영화관이 마지막이었다. 그 날 내가 뭘 잘못했나 생각해봤는데 도통 질문에 올바른 답이 없었다. 키스, 아저씨가 먼저 했잖아요. 한숨 푹, 아는 삼촌이라 그런 게 잘못됐나, 그럼 아저씨랑 내가 뭔 사인데요..

성우는 오랜만에 가는 학교에 교복을 꼼꼼히 살폈다

 

"하루 종일 힘이 없냐"

"그냐앙- 재미없어"

 

친구들이랑 노래방을 가도 재미가 없었고, 인형 뽑기에서 인형을 두 마리나 뽑았는데도 재미가 없었다. 알바가 없는 날이라 집에 있기도 싫어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데 그것마저 재미가 없었다. - 하고 햄버거를 무는 데 맛도 별루, 햄버거가 맛이 없는 날이 다 있네 한 입 더 먹으려다 햄버거를 내려놓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

 

"? 그 때 너랑 같이 있던 영화관 삼촌이다"

"?"

 

맞지? 맞지?하는 소리에 성우 대신 옆에 애가 맞네- 하고 대답했다. 완전 그때처럼 까만 정장입고 완전 어른. 맞아- 완전 어른,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는 다니엘을 확인하고 성우는 얼른 자신의 짐을 챙겼다. 양 옆에 끼고 있던 인형 두 마리를 친구에게 나눠줬다

 

"나 먼저 가두 되지?"

 

다니엘!하고 부르려다 너무 맹랑해 보여서 한 번 꾹 참았다. 아저씨!하고 부르려니 사람도 많아서 그건 그거대로 좀 그랬다. 그래서 뒤 따라 걷다 보니 미행하는 꼴이 됐다. 정신 없이 따라가는 데 호텔 입구를 확인하고 걸음을 멈췄다. 먼저 들어가는 다니엘을 두고 한 발 물러났다

 

 

 

 

 

 

 

 

 

7.

다니엘은 강이사와 대동해 곽이사와 담판을 짓기로 했다. 우리 패가 너무 약하다 아니에요. 강이사를 쫄쫄 따라붙는 다니엘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강이사가 팔을 확 들며 다니엘의 등을 내리쳤다. 패 약하다는 소리가 뭔 소리고, 니는 내가 똥으로 보이나!

팔을 꺾어 제 등을 문질렀다

 

"그냥 회장해가 곽이사 치면 안됩니까"

"내도 좀 쉬자-"

 

강이사는 회사 내에서 입지를 일부러 좁히고 있는 중이었다. 곧 있을 회장직 교체시기에 맞춰 같이 은퇴할 예정이었는데 그걸 모르는 곽이사는 아등바등 혼자 칼부림 중이었다. 강이사가 1순위긴 했지만 강이사가 없어진다고 자기가 1순위로 오르는 게 아닐 텐데

먼저 도착한 다니엘과 강이사는 농담을 가볍게 주고 받고 있는 데 곽이사가 입이 귀에 걸려서 들어왔다. 저 새끼 웃으면 불안한데, 다니엘은 싸한 기분을 누르고 예의를 차리고 인사했다. 다니엘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맞은 편으로 가 앉는 내내 웃는 얼굴이었다.

 

"식사 시킬까요"

"손님 데리고 왔는데, 들어오라고 해도 되려나"

 

고개를 끄덕이자 곽이사가 문 밖을 향해 들여보내라. 하고 지시했다. 문이 열리고 덩치 좋은 가드가 먼저 들어오고 따라 들어오는 건 교복차림에 눈을 굴리고 있는 성우였다. 다니엘과 눈이 마주치자 눈을 더 크게 뜨며 따라오던 걸음을 멈췄다. -꺽 웃는 곽이사의 웃는 소리가 거슬렸다

 

"이사님..!"

"강실장, 여기 뭐가 맛있다던데- 저기 아기는 뭘 좋아하려나?"

 

다니엘이 이를 부드득 갈며 자리에서 일어서자 강이사가 다니엘을 말렸다.  

 

"곽이사님. 아직 이래 양아치짓을 합니까. 강실장아 걔 데리고 나가라. 어른들끼리 얘기하구로"

 

앉지도 못하고 서있던 다니엘은 강이사의 말이 끝나자 성우에게 다가가자 가드가 움찔하며 뒷걸음질쳤다. 성우는 꽉 잡힌 손목을 빼려고 손을 이리저리 비틀며 잔뜩 겁을 집어먹고 죄송, 해요 몰랐어요, 라고 말했다. 뭐가 죄송한지, 뭘 몰랐는지

 

"- 손 안 떼나?"

 

나도 아까워서 그렇게 못 쥐는 손목이다. 가드가 움찔거리며 곽이사 눈치를 보자 곽이사는 풀어주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임에 맞춰 손목이 풀리자마자 성우를 제 쪽으로 당겨 안았다. 다친 데는 없나? 하고 살피다 빨갛게 손자국이 난 손목을 보고 다니엘은 눈이 뒤집어져 옆에 있던 화병으로 순식간에 가드의 어깨를 내려쳤다. 어깨를 맞은 가드가 맞은 곳을 부여잡고 신음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엎어졌다. 다니엘은 그걸 무표정하게 내려보며 성우를 꽉 안고 곽이사를 노려봤다.

 

", 아니 저런 애를 왜 안 키우는 지 모르겠다"

 

곽이사는 박수까지 치며 다니엘이 한 행동에 대해 만족스러워했다

 

"씨발 진짜"

"강다니엘. 니 입 안 다무나. 나가라 했다."

 

강이사가 카드키 하나를 던졌다. 밖으로 나오자 성우는 끅-끅 거리며 미안하다고 계속 그랬다.

 

"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오는데"

"아저씨 아냐고 묻길래, 흡 안다고 했구- 만나게 해준대서"

"내 아는 사람이면 다 따라갈 거가? 대답 안 하나!"

 

, 다니엘을 보던 성우가 눈물을 쏟았다. 손목도 아픈데, 저한테 소리치는 다니엘이 무섭고 낯설어서 심장이 콕콕 아팠다. 죄송....죄송해요 하고 고개를 푹 숙이는 데 서러움이 밀려왔다. 왜 왜 저 혼나요, 왜 화내는데, 다리도 후들거리고 성우는 자리에 풀석 주저앉았다. 어깨가 들썩거렸다.

 

".....보고...싶어서 왔는데"

"뭐라고?"

"아저씨가 안 왔잖아요. 아저씨가아,"

 

아저씨가 안와놓구- 왜 나한테 화내요! 그냥 저 사람들이 아냐고 물었다구요. 손목두 아픈데, 왜 나한테 화를 내요오 왜에- 빼에엑, 하고 울어버린 성우 때문에 지나가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아졌다

 

"맞나?"

"..훌쩍 뭐가 맞아요 갑자기이"

"내 보고 싶었나"

"...."

"내 기다맀나"

 

교복 입은 남자애와, 정장을 입은 남자어른 키스, 사람들이 시선이 다니엘을 향했다. 다니엘이 주위를 살피다가 여전히 훌쩍이는 성우의 손을 잡아당겼다. 가볍게 품에 폭삭 안겨 그렁그렁 거리는 눈으로 다니엘을 올려다보는데 다니엘이 입 꼬리를 당겨 웃었다. 웃어...? 이 아저씨가 진짜, 밀어내고 품에서 빠져나가려고 바둥거리자 더 단단히 허리를 감아 안았다.

대답도 미처 못했는데 다니엘의 입술이 짧게 맞붙었다 떨어졌다

 

"올라가서 얘기 좀 하까?"

"......얘기요?"

"궁금한 게 많을 꺼 같아가"

 

다니엘을 밀어내고 입을 앙 다물었다. 다 대답해주께, 하고 빙긋 웃는 다니엘을 보자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디서부터 화를 내야 하지, 저 사람들 뭐에요? 아니 왜 그 동안 안 왔어요? 그럴 거면 키스는 왜 했어요...? 성우는 한숨을 폭 쉬었다.

 

"근데요"

 

 

 

"...올라가서 얘기만 해요?"

"?"

"이래서 우리 대체 언제 연애하지..."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