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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녤옹

 

월간 4월호 부터 이어지는 시리즈입니다.

 

 

 

 

 

너를 기억해 6

Sukina

 

 

 

 

 

 

 

 

 

 

  기억을 찾고 싶은 마음이 컸던 탓인지, 성우는 매일 재활치료 시간을 기다렸다. 재활치료가 끝나면 병원 밖 공원에서 다니엘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래서 치료를 기다리고, 더 열심히 임했다. 치료가 끝나면 보상 같은 사람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호감이 생겼다고 하기 보다는 잃었던 제 기억의 일부를 찾게 될 생각에 들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성우님 좋은 일 있으세요? 전보다 표정이 훨씬 밝아지셨는데!”

“그런가요?”

 

 

  치료사가 보기에도 무언가 티가 났던 것 같다. 글쎄. 어찌 됐든 무료한 일상 중에 신나는 일 하나 생긴 것은 맞으니까.

 

 

“이제 걷는데 큰 무리는 없으시죠?”

“아직도 종종 벽은 짚어야 하는데 전보다는 나은 것 같아요.”

“다행이에요. 병실 올라가실 때 조심히 가시고... 산책은 적당히 하시는 게 좋아요.”

“알겠습니다.”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치료실을 나온 성우는 벽을 짚고 걸으며 병원 건물 밖으로 나섰다. 열심히 치료 받았으니 다니엘을 만나야 했다. 

 

 

  오늘도 나와 있을까.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그와 이야기하다 보면 많은 기억이 떠오를까. 

 

 

  사실 기억이 떠오른다고 하기 보다는, 새로운 기억을 쌓는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다니엘과 예전에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겠지만 켜켜이 함께 보낸 시간이 쌓이고 있었다. 나중에 떠올리면 그땐 그랬었다며 희미하게 웃을 법한. 

 

 

“왔어요? 치료는 잘 받았고?”

 

 

  오늘도 다니엘은 나와 있다. 한껏 밝은 얼굴로 성우를 맞으며 보자마자 달려와 부축부터 해주었다. 공원의 벤치로 향하는 동안 안부를 주고받는데, 그것만으로도 퍽 재미가 있었다. 친하고 가까운 느낌이 한가득 몰려왔다.

 

 

“손 펴 봐요.”

 

 

  인사가 끝나자마자 손을 내밀어보라며 말하는 다니엘 덕분에, 성우는 한 손을 쫙 펴서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러자 다니엘은 그 위에 붉은 꽃송이를 올려놓았다. 

 

 

  어디서 본 것만 같은 꽃의 자태가 아름다웠다. 붉은 꽃잎 하나하나가 생기를 머금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 눈을 뜨면 보이는, 병실 침대 옆 테이블 위에 올려 진 화분의 그것과 닮았다. 이렇게 보니 조금 더 새로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꽃송이에서 느껴지는 온기는 따스했다. 힘주어 움켜쥐면 행여나 바스라질 것 같았다. 왜인지 모르게 자꾸 말없이 바라보게 만드는 꽃송이였다. 

 

 

“뭐예요, 이게?”

“꽃.”

“그건 저도 아는데...”

 

 

  성우를 보며 다니엘은 크게 소리까지 내어가며 웃었다. 성우는 그 웃음이 의아하고, 제 손바닥에 꽃송이를 올려놓은 의미도 의아했다. 당황스러운 자신에 비해 상대는 너무도 여유로웠다. 옆에 앉은 다니엘은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고, 자신은 그렇지 않았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싶은데 조금은 억울한 기분마저 들었다.

 

 

“백일홍.”

“아...”

“백일 간 붉은 빛을 낸다고 해서 백일홍.”

 

 

  너무도 낯익은 말들, 낯익은 표정. 흩어져 있던 기억의 조각들이 서서히 가까이 다가오는 느낌. 느낌은 들었는데 실질적으로 멀어진 기억들은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 서글픈 느낌. 하지만 손바닥에 얹혀 진 백일홍의 꽃송이는 참으로 예뻤다. 쾌청한 오늘의 날씨가 너무 잘 어울리는 느낌. 

 

 

  머리가 지끈거렸는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 부근을 꾹꾹 누르던 성우를 보며 다니엘이 물었다.

 

 

“괜찮아?”

“네, 뭐...”

“근데 말이야... 기억을 꼭 찾고 싶은 이유가 있어?”

 

 

  내 것이었는데 잃었으니까. 성우에게는 우선 그 이유가 가장 컸다. 많은 사람들은 큰 사고를 당하고도 기억의 소실 없이 다친 곳만 회복한다는데 왜 자신만 읽은 기억을 찾아 갖은 노력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깊은 잠에 들었다가 깨면, 다시 아무렇지 않은 척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럴 수가 없어서. 잃은 기억은 그동안 자신이 쌓아왔던 것의 전부가 아니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던 것 같아서. 

 

 

  누군가 꼭 고의적으로 도려내버린 것처럼, 그런 것처럼 뻔뻔하게 중요한 부분을 가져가버려서 속이 제법 답답했다. 주변에는 분명 잃은 기억과 큰 연관 있는 것들이 가득한데, 기억이 없으니 그것들을 보며 동요할 수도 없었다. 뭐라고 생각해내야 감격이라도 할 것 아닌가.

 

 

“답답하고 불편해요.”

“뭐가?”

“편지 보면 다니엘씨랑 나랑 꽤 가까웠던 것 같은데, 나는 그걸 기억 못하잖아요.”

“그거야 뭐...”

“기억한다면 나는 오히려 신나서 대화할 것 같거든요.”

 

 

  성우의 말에 다니엘은 입을 다문 채 고개를 숙였다가 옅은 한숨을 두어 번 쉬었다. 그리고 성우를 바라본다.

 

 

“그럼 지금은 신나지 않아?”

 

 

  성우는 웃고 있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며 두 눈을 꽉 감는 게 보였다. 대답을 피하고 싶었던 것 같아 더는 묻고 싶지 않았다. 생각할 시간을 주자는 마음에, 다니엘은 하늘만 바라봤다. 타들어가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바람을 따라 떠가는 구름이 야속했다. 시간이 그 구름처럼 너무도 자연스럽게 가고 있는데, 성우와 자신의 시간은 멈춰 있는 것 같아서. 

 

 

“대답하기 곤란하면 답하지 않아도...”

“다니엘.”

 

 

  제 이름을 부르자 다니엘은 고개를 돌려 성우를 바라보았다. 

 

 

“나는 당신에게 어떤 사람이었어요?”

 

 

  시선을 마주한 둘 사이에 애틋함이 흐르는 듯 했다. 다니엘이야 성우에 대해 모든 것을 빼놓지 않고 기억하고 있으니 그럴 법 했지만, 다니엘에 대한 기억을 잃은 성우 또한 그랬다. 

 

 

  늘 다니엘에게 성우는 좋은 사람이었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좋은 사람’이었고, 길게 말하자면 끝도 없었다. 어떤 말로든 척척 수식할 수 있는 대단한 사람. 제 인생에서 빠져서는 안 될, 제 인생을 바꿔 놓은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람. 연애를 하고 사랑을 해오면서, 한 번씩 성우가 사랑을 확인 받고 싶어 할 때에는 그가 만족할 법한 엄청난 말들을 거리낌 없이 쏟아낼 수 있었다. 그만큼 제게서 큰 부분을 차지했으니까. 

 

 

“중요한 사람이었...겠죠?”

“좋은 사람.”

“좋은 사람이었어요? 내가?”

 

 

  기억이 없으니, 성우는 곧이곧대로 다니엘의 말을 수긍할 수 없었다. 

 

 

“좋은 사람이었으니 내가 이렇게 기억 좀 찾아달라고 매달리러 오겠지.”

“아...”

“근데 굳이 기억을 되찾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은데...”

“왜요?”

“리셋 됐다면, 다시 처음처럼 시작해도 괜찮으니까.”

 

 

  눈을 마주보며 다니엘이 웃자 성우도 따라 웃었다. 그게 뭐냐며 비웃으면서도, 나름 낭만적이라는 말과 함께. 기억도 나지 않는 남자가 처음처럼 시작해도 괜찮다는데 아무렇지 않은지 묻자, 성우는 괜찮다는 대답만 했다. 사랑을 느끼는데 성별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데, 어쨌거나 다니엘도 나쁜 사람이 아니었으니 가깝게 지냈던 게 아닐까 싶었고 그런 사람이라면 다시 시작하게 돼도 거리낌은 없을 것 같았다. 

 

 

“아, 이거.”

 

 

  꽃송이가 자리 잡은 성우의 손바닥 위에, 다니엘은 라이터 하나를 올려두었다. 

 

 

“웬 라이터예요?”

“우리가 처음 만난 날, 내가 형한테 빌렸던 거.”

“아... 그래요?”

“라이터 빌리면서 연락처 달라고 했었는데, 안 주고 갔었죠.”

“정말요? 좋은 사람이었다면서요.”

“처음에야... 아닐 수도 있으니까.”

 

 

  기분이 많이 상했을 것 같다며 사과를 건네는 성우는 얼굴에 난처함을 가득 드리우고 있었다. 

 

 

“예전에 이미 실컷 사과했으니까 이제 그만 해도 되는데.”

 

 

  첫 만남 이후, 연락을 지속하고 만남이 잦아지며 호감이 생겨나고 그것이 사랑이 되었을 때 성우는 다니엘에게 사과부터 했다. 무례하게 굴어서 미안하다고, 이런 사이가 될 줄은 몰랐다면서. 차갑게 굴더라도 절대 선을 넘는 법이 없었고, 본인은 나쁘게 대하겠다고 했지만 다니엘은 그렇게 느꼈던 적이 없었다. 처음부터 마냥 좋았으니 이상하게 느낄 리가 없기도 했다. 

 

 

“형은 사진 찍는 걸 좋아했고, 동영상도 많이 찍었지.”

“그래요?”

“핸드폰 뒤져보면 나올 걸요? 나랑 어디에 갔었는지, 어떤 얘기를 했었는지.”

“......”

“내 핸드폰에는 없어도 형 핸드폰에는 많을 거야.”

 

 

  고개를 끄덕이던 성우는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다가, 아무것도 쥐지 않은 손을 뻗어 다니엘의 손을 잡았다. 

 

 

“다니엘씨는 내게 어떤 사람이었나요?”

 

 

  생각지도 못한 성우의 물음에 다니엘이 입을 다물었다. 

 

 

  속 썩이는 사람, 나쁜 사람, 못된 사람. 제법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사람, 화가 나게 만드는 사람. 이 정도일까. 연애 중에 물어보면 항상 ‘좋은 사람이지. 멋있지.’하고 답해주던 성우였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이제야 좀 좋은 사람이 되어보려고 노력할 뿐. 

 

 

  성우와 잘 지냈지만 속을 끓이게 한 적이 더 많기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미안했던 것 같다. 그래서 선뜻 자신도 좋은 사람, 괜찮은 사람이었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나중에 성우의 기억이 돌아오면 한 번 물어봐야 할 것 같다.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러면 성우는 어떤 대답을 해줄까. 

 

 

“어떤 사람이었으면 해요?”

“글쎄요...”

“그런 거 있잖아. 기억 속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하는 거.”

 

 

  손을 잡은 채 다니엘을 바라보던 성우가 조심스레 내뱉었다.

 

 

“혼자 두고 싶지 않은 사람.”

 

 

 

 

 

*

 

 

 

 

 

  매일 성우는 재활치료 후 다니엘을 만났다. 병원 밖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기억을 찾기 위해 애썼으며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들으며 새로운 자신을 알게 되었다. 조금 늦는 날이 있기는 했어도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그 모습에 마음이 동할 수밖에 없었어서, 기억을 잃기 전에 왜 다니엘과 가까이 지냈는지도 알 것 같았다.

 

 

  잠을 자면서 악몽을 꾼 날에는 다음 날 다니엘을 만나 털어놓았다. 그러면 그는 따뜻하게 안아주며 다독여주었다. 악몽을 떨쳐낼 수 있도록 자신이 좋은 이야기를 더 잘 해주겠다면서. 

 

 

  그리고 차츰 성우는 다시금 저를 다정하게 대하는 다니엘을 향해 마음이 움직였다. 잠들기 전, 그와 나누었던 대화를 천천히 떠올리고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주려 노력하는 마음이 참 따뜻하고 고마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누나, 이 화분 누나가 사다놓은 거야?”

 

 

  재활치료며 다니엘과의 대화도 끝내고 병실로 돌아와 가만히 누워 있던 성우가 머리맡에 놓여 있는 화분 위에 올려 둔 꽃송이를 보며 말을 건넸다. 성우가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가겠다며 병실로 와서 책을 읽고 있던 그의 누나는, 책을 덮고 일어나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누가 사둔 건지 모르겠는데... 부모님도 아니라고 하시고 나도 아니고...”

“그럼...”

“다니엘? 그 사람일 걸?”

“그래?”

“그 사람 다녀간 후부터 있었으니까.”

 

 

  백일홍을 참 좋아하는 사람인가 싶었다. 그러니 이렇게 화분도 사다두고 꽃송이도 꺾어다 준 것 아닐까. 그러고 보니 꽃이 다니엘과 잘 어울리기도 했다. 내일 만나면 말해줘야지 싶었다. 

 

 

  그때, 병실 문이 열리고 성우의 부모님이 들어섰다. 누나의 도움을 받아 몸을 일으킨 성우를 보며 어머니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부터 물었다. 좋은 하루였다고 하니 다행이라며 안도하는 표정을 보이셨다. 

 

 

  그러나 그에 반해, 성우의 아버지는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요새 재활치료 끝나고 어디 다녀오는 거야?”

 

 

  목소리에 잔뜩 화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듣자 하니... 굳이 안 만나도 될 녀석하고 돌아다닌다던데?”

 

 

  테이블 앞의 소파형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잔뜩 인상을 찌푸린 성우의 아버지는 다니엘의 이야기를 꺼냈다. 담당의한테 들었다면서, 그래서 성우가 더 빨리 회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와 함께. 

 

 

“운동 삼아 산책하는 건 좋다만, 왜 쓸데없는 녀석하고 다니는지 모르겠구나.”

“쓸데없는 녀석...이요?”

“너한테 도움 될 사람 아니면 쓸데없는 거지.”

 

 

  이상하게 성우의 속이 끓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사람을 두고 쓸데없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인지 제 아버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도움이 될지 안 될지... 어떻게 아세요?”

“딱 보면 모르겠어? 하고 다니는 꼴 보면 알지.”

“......”

“내 이번까지는 그냥 넘어가겠다만, 한 번 더 그런 놈이랑 어울려 다녔다가는...”

“......”

“너도 그놈도 가만 두지 않을 거라는 것만 알고 있어라.”

 

 

  어디선가 본 듯한 표정,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말투. 한 번은 겪어봄직한 이런 상황. 성우는 점점 사색이 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 깨지기라도 할 것처럼 아픈 머리를 쥐고 괴성을 내지르며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성우의 행동에, 그의 누나와 어머니는 그에게 붙어서 진정시키려 애썼다. 그의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 밖으로 나갔다. 아무래도 상태가 심각해보여 의료진을 호출하려는 듯 했다. 

 

 

  성우의 머릿속에 소용돌이가 이는 듯 했다. 그 소용돌이는 성우를 적잖이 괴롭혔는데, 눈을 꼭 감은 그의 눈에 매달린 눈물방울들이 속눈썹을 적셨다.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에는 의식이 없어서 몰랐던 고통. 사고 직후에도 역시 의식이 없어서 알지 못했던 통증. 어느 정도라 형언할 수 없는 아픔이 성우를 뒤흔들었다. 

 

 

  금방 의료진이 의료기기들과 함께 병실로 들이닥쳤고, 그들은 성우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진정제를 주사하고 그의 몸에 이런저런 기기를 부착한 후 할 수 있는 조치를 다 하려 하는 모습이었다. 성우의 가족들은 그 모습을 보며 애가 타는 듯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진정제 덕분인지 성우는 괴로워하던 몸짓을 멈추고 잠에 빠진 듯 했다. 

 

 

 

 

 

*

 

 

 

 

 

  오늘도 어김없이 다니엘은 병원 건물의 출입문 앞에서 성우를 기다렸다. 매일 만나던 그 시간, 재활치료를 끝내고 나온 성우를 부축해 병원 내 공원의 벤치로 데려가 조심스레 앉히던 그 때. 오늘도 그 때를 고대하며 이곳에 왔다. 기다리고 있으면 성우가 벽을 짚으며 걸어 나왔고, 그를 보며 웃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늘은 성우가 나오지 않는다. 이미 나왔어야 할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병실로 올라가 봐도 되는 걸까. 재활치료실은 어디인지 알 수 없으니 성우가 있을 곳인 병실로 가는 수밖에 없었는데 올라가면 볼 수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섰다. 다시는 그와 만나지 말라던 성우의 아버지가 떠올랐고,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성우를 만나야 했고, 다니엘은 병원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너무도 사랑해서, 저를 기억하지 못하는 성우와의 만남에서조차 미련이 남았다. 마음이 가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차라리 막을 방법이 있다면 알고 싶었다. 막아서 참으면, 그러면 기억을 되찾은 성우가 제게 제 발로 걸어 올 것이라 생각해서. 

 

 

“성우형 만나러 왔어요. 형 안에 있죠?”

 

 

  역시나 병실 앞에는 검은 수트를 차려 입은 건장한 사내 둘이 지키고 서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못 만나게 할 거라더니, 아직도 이 수를 쓰고 계신가 보다. 그래서 성우가 자진해서 치료 후 내려오지 않으면 만날 수 없었다. 

 

 

  들어가지 못하도록 제 앞을 막아서는 사내들과 힘겨루기를 할 여력이 없었다. 다니엘은 그저 병실 출입문에서 멀찍이 물러나 비어있는 벤치에 앉았다. 걸을 수 있으니 막무가내로 기다리면 그의 모습이라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언제 나올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기다리면, 성우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의식이 없을 때에는 보지 않아도 참는 게 됐는데, 의식을 찾고 걸어 다닐 수 있는 걸 알고 나니 참기가 어려웠다. 어제만 해도 만나서 웃고 떠들던 기억이 생겨났었으니까. 

 

 

“다니엘씨?”

 

 

  옅은 회색의 원피스를 단정하게 차려입은 여성이 다니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성우의 누나였다. 다니엘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냉큼 허리부터 숙였다. 

 

 

“앉아요. 옆에 앉아도 되죠?”

“네.”

 

 

  성우의 누나는 다니엘에게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내밀며 옆에 앉았다. 몇 모금 들으킨 후 한숨을 내쉬는데 괜스레 불길한 마음이 생겨났다.

 

 

“어제 성우가 다시 깊은 잠에 빠졌어요.”

“네?”

“뭐 때문인지 정확히 원인은 알 수 없는데... 비명 지르면서 괴로워하더니 정신을 잃었거든요.”

 

 

  아무래도 만나고 들어간 후였던 것 같다. 성우의 누나는 다니엘에게 성우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바람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병이라도 있나 싶었는데 그것은 아니었고, 아버지와 이야기하던 중 언성이 조금 높아지면서 머리를 부여잡고 바들바들 떨다가 침대 위에서 몸부림을 치기도 했단다. 의료진이 들어와 진정제 투여 후 몸부림치지 못하도록 단단한 밴드로 몸을 고정시켜놓기도 했는데, 그 뒤로 성우는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성우가 많이 힘들었는지 울더라구요. 울면서 소리를 막 지르는데...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죠.”

“아...”

“언제 깨어날지 알 수 없대요. 원인도 알 수 없고...”

 

 

  다니엘은 또 다시 절망 속에 내던져진 느낌이었다. 또 다시 긴 기다림이 계속될 지도 모르는 일. 

 

 

“저 때문일까요?”

“네?”

“제가... 형을 만나서, 그래서 기억을 되찾아주겠다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바람에...”

“아니에요. 아닐 거예요.”

 

 

  성우의 누나는 다니엘을 다독였다. 회복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라 들었다면서 다니엘의 걱정을 최소화하려 애쓰는 듯 보였다. 

 

 

“아버지가 많이 반대를 하세요. 아무래도... 사고 난 이유를 지연이한테 들어서 그러실 수밖에 없겠지만...”

“아...”

“성우... 다시 깨어날 거예요. 그렇겠죠.”

“......”

“그 누구보다도 잃어버린 제 기억을 찾고 싶어 했으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성우의 누나는 얼굴을 보도록 해 줄 수 없음을 미안해했다. 다니엘은 애써 웃으며 괜찮다 했지만, 속이 상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매일 온다고 해도 이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아서. 깨어나면 연락을 달라고 청할 수도 없었다. 성우를 위하지만, 다니엘을 다독이지만 아버지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을 테니까. 

 

 

  결국 다니엘은 성우를 만나지 못한 채 병원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다시금 긴 기다림을 시작해야 했고, 어쩔 수 없으니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 기억이야 나중에 찾아도 되니 깨어나기나 했으면. 이것이 다니엘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흑심이자, 가장 큰 바람이 되었다.

 

 

 

 

 

*

 

 

 

 

 

  며칠 동안 깊은 잠에 빠져버린 성우가 꿈을 꿨다. 

 

 

  꿈에 자신은 세상모르고 곤히 잠을 자고 있었고, 그 옆에는 다니엘이 앉아 있었다. 또 다른 자신은 누워있는 자신과 옆에 앉은 다니엘을 멀찍이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었다. 다니엘은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누워있는 자신의 손을 잡았고, 무언가 말하는 듯 입술을 계속 달싹였다.

 

 

‘빨리 일어나. 너 그러다가 나 잊어버리면 어쩔래?’

 

 

  꿈이었지만 다니엘의 얼굴에 시련이 가득해 보였다.

 

 

‘내 이름도, 얼굴도 기억 못하면 어쩔래?’

‘......’

‘우리가 어떤 사이였는지도 잊으면... 어쩔래?’

 

 

  다니엘에게 가까이 다가가 안타까움에 뒤통수를 쓰다듬어주려는데, 꿈이라 그런 건지 제 손이 자꾸 빗나갔다. 뒤통수에 있던 손이 다니엘의 얼굴 앞으로 쑥 나와 버려서 적잖이 당황해버렸다.

 

 

‘모두가 반대하고, 모두가 형과 나는 이제 끝이라고 하는데...’

‘......’

‘마음이 가는 걸, 기울어지는 걸, 와르르 쏟아져버리는 걸 어떻게 하니.’

 

 

  꿈속에서 그 모습을 보며 무어라 말을 하려 입을 떼어냈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누워있는 자신도, 안타까운 모습을 지켜보는 자신도. 다니엘의 목소리에 답이 이어지지 않았다. 다니엘은 분명 듣고 싶어 했을 텐데 말이다.

 

 

‘백일홍도 그래서 가져다 놓은 건데. 이걸 보면 강의건이라도 기억할까 싶어서.’

 

 

  백일홍과 강의건. 그 말에 지켜보는 성우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꿈에서도 금방 눈물을 펑펑 쏟아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강다니엘과 보낸 시간은 불행함이 대부분이었는데, 강의건과 보낸 시간은 어땠을까.’

‘......’

‘행복하다고 느낀 순간이 있기는 했을까?’

 

 

  의건과 보낸 시간이 행복했는지 묻는 다니엘에게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성우는 꿈에서 깨어났다. 

 

 

  천천히 눈을 뜨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보는데, 병실 안에서 침대에 다소곳이 누워있는 자신뿐이었다. 제 누나는 테이블 앞 의자에 앉아 있었다. 테이블에 엎드려 단잠에 빠진 듯 했다. 성우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았다. 조심스레 손을 올려 눈가를 만져보는데 뜨끈했다. 아직 물기가 남아 있었다. 정말 눈물이 맺히기라도 했던 것처럼. 

 

 

  고개를 돌려 머리맡의 백일홍을 보니 지난번과는 달리 시들해져서, 붉은 꽃잎의 일부가 색이 바래버렸다. 

 

 

“백일홍... 강의건... 강다니엘...“

 

 

  성우는 조심스레 침대를 벋어나 바닥을 딛고 섰다. 머릿속에 계속 세 단어가 맴돈다. 백일홍. 강의건. 강다니엘. 

 

 

  병실 밖으로 천천히 문을 열고 나가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제 몸보다 훨씬 큰 환자복을 입어 소매와 바지자락을 펄럭이면서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을 헤집고 다녔다. 벽을 짚고 더듬거리면서 걷다가, 문이 열려 있는 병실까지도 살폈다. 비상계단으로 내려가면서 그를 찾고, 가볼 수 있는 곳은 죄다 둘러보며 그를 찾았다. 있을까. 이 시간에 병원 안에 있기는 할까. 

 

 

  그를 찾아 헤매다 건물 로비로 향하는 계단 앞에 멈춰 선 순간. 

 

 

‘누나랑 데이트하는데 형이랑 사귀는 느낌. 뭔지 알아요?’

 

 

  떠올랐다. 

 

 

‘왔구나. 이 지옥 같은 곳에.’

 

 

  가슴을 두드렸던 다니엘의 말도, 낯선 곳에서 처음 마주한 의건의 말도. 성우는 떠올려냈다. 

 

 

  모든 것이 기억났다. 그만큼 눈물이 차올라서 마구잡이로 흐르며 얼굴은 엉망이 되었다. 당황스러웠지만 스릴 넘쳤던 의건과의 만남과 다니엘과의 만남. 두근거림이 갈수록 커져만 가고, 함께 하는 시간이 지속될수록 제 마음 안에 굳건히 자리 잡던 흑심. 

 

 

  온 병원을 헤집고 손에 닿는 곳은 모조리 짚어가며 떠올리지 못했던 기억들을 떠올려냈다. 마주하면 예전처럼 이름을 불러주며 고생 많았다고 품에 안아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미안하다 사과를 건네면서. 기억하지 못한 것에 대한 사과는 끝없이 해도 모자랄 것 같았다. 모르겠다. 지금 이것들도 막상 다니엘을 마주하면 흩어질 것만 같은 생각들이다. 성우는 지금 숨어있던 기억들이 마구잡이로 등장하며 차례를 지키지 못해 뒤죽박죽 된 것만 같아 당황스러울 뿐인데, 이 와중에 다니엘을 마주하면 버틸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이 혼란스러움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까. 

 

 

  로비로 향하는 계단을 하나 둘씩 내려가는 성우의 표정은 참담했다. 저도 모르게 흘러내린 눈물로 범벅이 되었고, 잔뜩 열에 달떠 있었다. 건물 밖에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가 들렸다. 혹시라도 다니엘이 저를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리고 성우는 그대로 앞만 보고 달렸다. 어떻게든 건물 밖을 빠져나가 혹시라도 저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다니엘을 붙잡아야만 했다. 

 

 

“어?”

 

 

  건물 밖으로 나가 빗속에 내던져졌던 성우는 무언가에 팔이 걸린 건지 다시금 로비로 끌려 들어왔다. 한껏 놀라 잔뜩 커진 두 눈으로 제 팔을 붙잡은 이를 확인해보는데, 당황스러운 표정의 다니엘이 제 팔을 붙들고 서있다. 병원 건물 로비 한 복판에.

 

 

“어디 가?”

“어?”

“밖에 비 오는데 어디 가냐고.”

 

 

  다니엘은 잠깐이나마 비를 맞아 젖어버린 성우의 환자복을 손으로 툭툭 털었다. 살짝 젖은 머리칼의 물기도 털어주었다. 

 

 

“괜찮은 거야?”

 

 

  성우는 다니엘의 두 팔을 붙들고 몇 번이고 고개를 저었다. 여전히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숱하게 흘렸는데 아직도 멈추지 않았다. 다니엘을 마주하고 서니 더욱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강의건이... 너야?”

 

 

  성우의 물음에 다니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경성에서 내가 만났던 강의건이... 너였어?”

 

 

  다니엘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기억이 났어? 경성에서 나를 만난 게?”

 

 

  이번에는 성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시간을 멋대로 오가는 능력이 있는데, 그 능력을 자주 쓰지는 않아.”

 

 

  그런데 성우가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만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 능력을 써봤단다. 제 멋대로 성우를 데리고 경성으로 떠났고 잠시나마 제 멋대로 함께하게 됐다면서. 그 기억을 남겨두고 싶지 않았는데 그 기억마저 사라지면 제 존재가 성우에게서 모두 없어져버릴 것만 같아서 그럴 수 없었단다. 그래서 모든 기억을 남겨두었는데, 정작 의식을 찾은 성우는 단번에 그걸 떠올려내지 못했다고. 

 

 

  다니엘의 말을 들으며 성우는 고개를 숙였다. 

 

 

“네가 말하는 모든 일이 현실에서 가능한 일이야?”

“나는 가능하지.”

 

 

  성우는 고개를 들어 다니엘을 바라보았다. 이미 그의 두 팔이 제 허리를 감싸 안았고, 성우는 그의 어깨에 제 팔을 올려 두었다. 

 

 

“너를 두고 강의건을 찾았어, 내가.”

“경성에서?”

“강의건 앞에서 그를 부르며 울었어, 내가.”

“경성에서 만난 강의건도 나였으니까 괜찮아.”

“결국... 이렇게 만날 거였어?”

“그럼. 내가 얘기했잖아.”

 

 

  다니엘은 성우의 어깨에 저 고개를 얹었다.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살포시 두 눈을 감았다.

 

 

“좋은 날, 좋은 세상을 만들어서 찾아가겠다고. 마지막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고.”

“......”

“다시 태어나면 찾아갈 테니 만나달라고, 옹성우는 그게 말이 되느냐며 웃겠지만 내가 말이 되게 하겠다고.”

 

 

  성우의 등을 다니엘의 큼지막한 손이 천천히 토닥였다.

 

 

“지금 나를 안아주는 사람은 강의건이야, 강다니엘이야?”

 

 

  다니엘은 성우에게 제 눈을 맞추며 미소를 지었다. 

 

 

“누구였으면 좋겠어?”

“글쎄...”

 

 

  성우의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슬슬 헝클어뜨리는 다니엘의 표정 또한 본 적이 있었다. 언제고 변함없이 사랑을 속삭일 때, 부둥켜안고 사랑을 나눌 때,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서 사랑한다는 말을 해달라고 조를 때 등. 다니엘이 항상 지어주던 행복한 표정이었다. 

 

 

“지금 형을 안아주는 사람은 형을 사랑하는 사람이야.”

“강의건? 아니면 강다니엘?”

“누구였으면 좋겠는데?”

“지금은 2018년이니까... 강다니엘.”

“그럼 나는 강다니엘이지.”

 

 

  기억이란 것은 참 신기해서, 제 멋대로 남겨졌다가 마음대로 사라지기도 한다. 굳게 마음을 먹어야 흩어지기도 하고, 마음먹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산산조각 나서 없던 것이 되기도 한다. 의건과의 기억도, 다니엘과의 기억도 제 자리를 찾았고 성우는 그로 인한 혼란이 잠시 있기는 했지만 능청스럽게 저를 다독이는 다니엘 덕에 잠잠해진 것 같았다. 

 

 

“잊지 마.”

 

 

  성우의 뺨을 어루만지며, 다니엘은 따뜻한 미소로 성우와 다시금 눈을 맞췄다. 그리고 서로를 부둥켜안고 입을 맞췄다. 오래도록 기다려 온 지금 이 순간 또한 둘의 사랑으로 만들면서.

 

 

“어떤 곳에서 어떤 시간을 살든, 나는 너를 기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