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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녤옹

 

월간 7월호 부터 이어지는 시리즈입니다

 

 

 

 

 

트로피컬 하우스 2

네티

 

 

 

 

 

 

 

 쾅, 1000cc 짜리 맥주잔에 가득 담겨 있던 맑은 액체를 소위 원샷 해 버린 다니엘은 어느새 목 주변이 발갛게 물든 채로 헤실거리며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미친 새끼, 저걸 다 마신 거야? 겨우 소주 두 모금에 뻗어 버린 민현의 옆으로 다니엘의 상태를 보며 한마디 하던 재환을 비롯하여 다니엘의 앞자리에서 소주 한 잔을 제 입 안으로 털어 넣던 성우까지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하며 엎어진 다니엘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어쩐지,쟤 오늘 너무 간다 싶었어. 혀를 차며 테이블 위 족히 대여섯 개는 되어 보이는 빈 소주병들을 옆으로 치움과 동시에 새로이 소주 뚜껑을 따던 재환이 제 앞에 있던 빈 잔을 소주로 하여금 가득 채웠다.옹성우 니 진짜 나빴다……. 알코올이 들어간 상태에서 혀가 꼬인 바람에 잔뜩 뭉개진 발음으로 웅얼거리던 다니엘은 이윽고 팍, 고개를 쳐들며 제 앞에 앉은 성우를 세모꼴의 눈으로 있는 힘껏 째려보며입을 열었다.

 

 

 

 , 진짜 기억 안 나나.”

 

 다니엘, 아까부터 말하는 건데 나 진짜 기억 안 난다니까?그리고 대체 뭔지말이라도 해 줘야 내가 기억하려구 노력이라도 할 거 아냐!”

 

 

 

 자신이 원하던 대답이 아니었는지 천하의 나쁜 놈이니, 뭐니 하며 푸우우,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다시금 테이블에 처박은 다니엘을 바라봄과 함께 답답하다는 듯 소리친 성우는 이윽고 비어 있던 제 소주잔을 곧장 채우고는 한 번에 들이켰다. 아니이, 재환아.나 얘한테 뭐 잘못한 거 있어? 진짜 아까부터 왜 이래? 글쎄요, 형이 모르면 저도 모르죠……. 나름 멀쩡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둘의 앞자리는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한 명은 이미 학교 전체에 소문난 알코올 쓰레기였으며, 다른 한 명은 분명 평소대로라면 현재 제정신인 재환, 그리고 성우와 함께 멀쩡히 귀가했어야 하는 이였다.그러나 오늘은 무슨 날이기라도 한 건지 안주가 나오기도 전에 한 잔, 두 잔 하며 잔을 비워내더니 금세 취기가 오르던 다니엘은 자신이 이렇게 대여섯 개가 넘는 소주병에 손을 대게 한,그 이유의 주체인 성우가 전혀 기억하지도,예상하지도 못하는 무언가를어떻게든 성우에게서 끄집어내려 한 탓에 재환을 곤란하게,성우를 답답하게 했다.

 

 

 

 테이블 위 자리한 빈 소주병의 개수가 여덟 정도 되어갈 때 즈음, 다니엘은 이미 열댓 번 넘게 기억이라는 물음을 가지고 성우를 보채던 것이 점차 줄어들더니 종국에는 입 하나 벙긋하지 않고서 애꿎은 맥주잔의 손잡이만 엄지손가락으로 문질렀다.예고하지 않은 갑작스러운 정적이 셋 사이에 맴돌게 되니, 이 상황에서 무어라 붙일 만한 말도 없어 다니엘은 물론,이전부터 말짱한 상태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둘 또한 구태여 이 정적을 깨려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취기가 잔뜩 오른 탓인지 눈 앞이 핑 도는 듯한 현상이 일어 여전히 손잡이만 문질러 대는 다니엘을 제외하고는 두 개의 잔이 채워지고, 비워지기를 서너 번 정도 반복하니,무언가 결심이라도 한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천천히 들던 다니엘이 올곧은 시선으로 제 앞에 앉은 성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 마지막으로…… 한 번만,한 번만 다시 물으께.햄아,진짜 기억 안 나나.”

 

 잠잠해졌나 싶더니또 이러네. 형은 너랑 개인적으로 관련된 거라고는 진짜 아무것도 기억 안 난다니까는? 네가 말하는 기억이라는 게 대체 뭐길래 자꾸 이러냐궁.”

 

 니 저번에 잔뜩 취해가 내한테 좋아한다 칸 거, 진짜 모리나.”

 

 

 

 뭐?다니엘의 한마디로 인해 표정으로 번진 것이 답답함에서 당황스러움으로 바뀌게 된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진짜 기억 안 나나 보네.자신이 던진 말로 인해 미세하게 변해 가는 성우의 표정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던 다니엘은 헛웃음을 치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댔다.성우는 다니엘이 고민하는 그것이 자신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다는 것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제 생각 범주에서 너무나도 벗어난 답변이었기에 그야말로 혼란스러움의 연속을 겪고 있었다. 누가? 내가. 누구한테? 다니엘한테. 무엇을? 고백을. 어떻게? 술에 취한 채로. ? ……. 그러게. 왜지?다니엘이 말한 기억을 통해 성우 제 나름대로 상황을 정리하고 난 후의 자리에는 가장 큰 의문을 선두로 작은 질문들이 즐비했다.?왜 다니엘한테 고백을 했지?내가 다니엘한테 말한 좋아한다는 것이 고백의 의미가 아니었나?그렇다면 다니엘은 왜 저렇게 심각하지?, 설마.

 

 

 

 다니엘, 나 너 좋아하나?”

 

 

 

 여느 삼류 드라마에 나올 법한 성우의 질문에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기색도 비추던 것 잠시, 삽시간에 표정을 굳힌 다니엘은 한숨을 깊게 쉬었다. 내 짐 장난치는 거 아인데.자신도 역시 장난이랍시고 던진 질문이 아니었으나, 자신이 트로피컬 하우스에서 같이 생활하면서 봐 온 모습과는 확연히 반대되는것에 무어라 덧붙일 말을 찾지 못한 성우는 그대로 입술을 꾹, 문 상태로 정적을 일으켰다. 둘의 상황을 다 보고,둘의 이야기를 다 들은 재환은 성우의 팔을 툭,건듦과 동시에 입을 벙긋거렸다. ,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에요? 형이 다니엘한테 고백했다고요? 조심스레 물어오는 재환의 질문에 고개를 좌우로 두어 번 젓던 성우는 자신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며 말하려던 찰나, 이 둘의 대화를 제대로 비집고 들어오는 목소리에 벙긋거리던 것이 끊겼다.햄아, 내는요.

 

 

 

 햄이울 어무이 아부지가 하는 하숙집에 첨 왔을 때부터 햄한테 자꾸 시선이 가드라. 처음에는 사람이 우째 저리 잘생길 수 있나, 싶어가 계속 봤었그든.”

 

 “…….”

 

 그라다 이후에는 얼굴 외에도 귀엽다든지, 성격 좋다든지 카는 이유로 신경 쓰이기 시작하더니 자꾸,자꾸 흑심이 생기가 이제는 하다하다 질투까지 나드라.이래 마음이 햄한테 기울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우린 가능성도 없겠다 싶은 생각이 확 드는 기라. 그럼서 또 와르르, 무너지고.”

 

 

 

 그렇게 내 혼자 쌓고, 무너트리고 반복하던 중에 햄이 내한테 그런 기다, 내 좋아한다꼬. 캐가 내는 그때 너무 기뻤고, 상상도 몬한 거라가 꿈이라도 꾸고 있는 줄 알았다. 근데 햄은 이거 한 개도 기억 몬 하는 것도 그렇고, 아까 내한테 그랬제. 햄이 내 좋아하는 거냐고. 햄은 내를 좋아하는지도 제대로 몰랐음서 그래 말한 것도 내는, 내는 그냥 다 허무하다.햄 마음 잘 알았으니까 내 인제 삽질 할 필요도 없고, 깊게 볼 필요도 없긋다. 맞제.내 먼저 가께. 미안타.

 

 

 

 

 

** *

 

 

 

 

 

 햄 마음 잘 알았으니까 내 인제 삽질 할 필요도 없고, 깊게 볼 필요도 없긋다. 맞제.

 

 

 

 충동적이었고, 갑작스러운 일의 연속이었던 그날 이후로 성우와 다니엘은 여전히 트로피컬 하우스라는 같은 공간에서 생활했지만 다니엘이 건넨 마지막 한마디를 토대로 이전처럼 부딪히는 일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마치 둘의 관계는 그날 이전과 이후로 나뉘듯이, 그렇게.쌍방 관계인 줄로만 알았으나, 알코올이 잔뜩 첨가된 기억으로 인해 부정당해 버린 사실이 꽤나 힘겨운 듯 다니엘은 성우와 최대한 부딪히지 않게 다녔으며, 그런 다니엘에게 성우는 제가 제 입으로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진심을,그 진심의 이유가 불분명했기에 쉽사리 무어라 말을 걸지도 못했다. 어찌 되었든 알코올에 절어 증발해 버린 기억을 찾아야 했으나, 어색한 관계의 발화점이 된 그날에서도 기억하지 못했던 것을 이렇게 갑자기 기억해 낸답시고 앓아 봐야 생각이 나겠는가.타이밍 조차 둘을 도울 생각이 없었는지 트로피컬 하우스의 주인 부부 역시 여름맞이랍시고 휴가를 떠나 버린 탓에 당분간은 단둘만의 공간으로 변질되어 이들을 더욱 갑갑하게 옥죄었다.

 

 

 

 달칵. 오늘도 어김없이 둘은 서로 어떠한 교류도 하지 않은 채로 같은 공간에서 유지하고 있던 정적을 깬 것은 난데없는 방문 소리였다. 성우 자신은 지금 거실 소파에 앉아 혼자 티브이를 보고 있고, 자신이 묵고 있는 이 하숙집 주인 부부는 여행 갔으니 방문을 열고 나오는 이는 보지 않아도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햄아, 내 잠깐 나갔다 오께. 밥 잘 챙겨 무라.라든가,뭐 묵고 싶은 거 있나. 나가는 김에 사 오까.하는 목소리는커녕 서늘한 눈을 한 채로 신발장을 열던 다니엘은 평소에 신던 것이 아닌,다른 신발을 꺼내 신고는 곧장 현관문을 열어 밖으로 나섰다.한껏 손질한 머리,캐주얼과는 거리가 먼 옷차림. 원래 다니엘이 친구 만날 때 저렇게 신경을 썼던가.저렇게 입으니까 더 잘생겼네.이제 곧 자정인데 어디 가는 거지.다니엘이 방문에서 나오는 것부터 집을 나서는 모습까지 전부 소파에 앉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성우는 절대 해답을 찾지 못할 갖가지의 질문들로만 머릿속을 메우다 협탁 위에서 시끄럽게울리는 휴대폰 진동 소리와 함께 눈을 끔뻑였다., 여보세요?

 

 

 

 

 

* * *

 

 

 

 

 

 쿵, . 몸속 깊이 울려 퍼지는 진동과 시끄러운 노랫소리, 그에 맞춰 스테이지 위에서 신나게 춤추는 사람들, 그들에게 풍기는진한 알코올향까지. 싫어하는 분위기, 싫어하는 장르, 싫어하는 향에 파묻혀 조용히 술만 들이켜고 있어도 절로 알아서 사람이 엉겨 붙는, 싫어하는 장소. 평소와 같았다면제가 끔찍하게도 싫어하는 이곳에 일행 한 명 없이 발을 들이게 된 것은 지극히 충동적이었다.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내게 마음이 없고,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게 했던 고백은 알코올로 소독하면 금방 씻길 만큼 사소했고, 이 와중에 잊을 생각도,미워할 생각도 하나 못 하고 흑심은 자꾸만 커져 가게 되니, 이를 잠시나마 잊고 싶어 온 곳도 결국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관련된 곳이라는 것에 헛웃음이 절로 났으나 되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자리에 앉자마자 밀려오는 헌팅 쇄도에 이를 죄다 일일이 거절하고는 안주 하나 없이 양주만 잔뜩 들이켜니, 언제 온 것인지 모를 이가 제 옆에 바짝 붙어 말을 거는 탓에 들고 있던 잔을 내려 놓았다.

 

 

 

 그렇게 안주도 없이 술만 마시면 훅 가요.혼자 왔어요?”

 

 “……. 누구세요.”

 

 에이,여기 하루 이틀 오시나.무슨 아는 사람끼리만 헌팅하는 것도 아니고. 그나저나 아까부터 계속 보니까 헌팅 오는 거 죄다 거절하던데, 눈이 굉장히 높나 봐요?”

 

 그런 거 아이니까 수작 부릴라 카는 거믄 고마 가세요.”

 

 , 아니면 애인한테 차였나?”

 

 

 

 현재 처한 제 상황을 비슷하게 맞히는 질문에 결국 머리를 헝클임과 동시에 고개를 돌려 제 옆에 있는 이를 쳐다보니 맞나 보네, 하며 미소를 띄우는 모습이 얄밉게 느껴져 얼굴이라도 자세히 보자, 하는 마음으로 마주한 것을 선두로 천천히 시선을 옮기니,턱의 끝부분이 각져 있는 것 하며, 성우가 자주 하던 쉼표 머리, 3을 수직으로 돌려 놓은 것마냥 길게 그려진 입꼬리까지. 어느 요소이든 간에 성우를 떠올리게 하기에는 쉬운 얼굴이었다. 닮은 사람.그것도 제가 좋아하는 사람과 많이 닮은 사람. 그러나 딱 그것뿐인. 자신은 복잡한 머리를 털기 위에 찾아온 곳이 여기였기에 발을 들였던 것이지,누구를 만나는 것, 그중에서도 제가 좋아하는 사람과 닮은 사람을 만나겠다거나 할 마음은 전혀 없었기에 자신이 오늘 처음 이곳에 발을 들인 이후로 줄곧 그랬던 것처럼 바짝 붙어 팔짱을 끼는 팔을 귀찮다는 듯 툭,하고 내침과 함께 이를 벗어나려 자리에서 일어나니,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과 시선이 부딪힌 탓에 그 자리에서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평소라면 근처에도 안 갔을 곳에 발을 들이게 한, 제가 좋아하는 인물.지금처럼결코 가깝지 않은 거리에서도 서로 알아본다는 것,답지 않게 성큼성큼 걸어 오는 큰 보폭에 점차 좁혀 오는 거리, 그리고.

 

 

 

 다니엘.”

 

 

 

 익숙한 이름, 익숙한 목소리. 이를 제외한 모든 게 낯선 곳에서의 감정까지.실망,배신,혹은 상처.이해하지 못했다.성우는 왜. 성우가 왜? 여태까지 상처받은 것도 자신이었고, 자신에게 했던 고백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실망과 배신감을 느꼈던 건 자신인데, 왜 되려 성우가 더 상처받은 표정을 하는 것인지, 다니엘은 이해하지 못한 채로 성우의 뒤를 따라 장소에서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