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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녤옹

 

 

 

 

 

 ‘햄 좋아해요.’

 

 

 

 갑작스러운 목소리였다나는 그 날 학생 주임의 소관 아래 열린 조촐한 회식 자리에 불려갔었고 어느 정도 술을 마신 뒤라 사실 처음에는 뭐가 뭔지 제대로 분간이 되지도 않는 상황이었다그래서 나는 재차 되물었고 들려오는 목소리는 방금과 다를 것 없이 평온하며 같은 단어들을 내뱉고 있었다.

 

 

 ‘햄 좋아해요.’

 

 

 두 번 연속으로 관자놀이를 맞는 기분이었다골이 울렸다무언가 물리적인 힘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뒷목 잡고 쓰러질 일도 아니었다나는 최대한 이성적이고 싶었다내가 이성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여러 번 쉼 호흡을 반복한 뒤 입을 열었다.

 

 

 ‘시간이 너무 늦었다일단은 들어가.’

 

 

 그 때 그 아이의 표정이 어땠더라기억 날 리가 없다들어가라면서 내가 먼저 그 아이를 지나쳤고 그 지나치는 순간에 나는 내 손바닥을 그 아이의 머리 위에 올려 두 어 번 정도 토닥였던 것 같다그리고 그 이후 학교에서 그 아이를 마주쳤을 때도 별 다른 반응이 없었더랬지그렇다면 그 때 그 아이의 표정은 과연 어땠을까지금 내 앞에 서있는 것처럼내 앞에 서서 내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이 아이의 지금 표정과 비슷했을까.

 

 

 “와 대답이 없어요.”

 “... 어 그래.. 그래서 뭐라고 했지?”

 

 

 그 아이는 습관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자주 이마를 짚었다그리고 지금도 똑같이 이마를 짚으면서 반대편 손으로는 제 허리를 짚었다그 내려오는 시선의 시간이 길었다이 아이는 옛날의 그 아이와는 다른 아이처럼 보였다그만큼 키도 많이 컸고 덩치도 많이 커졌다그 예전처럼 내가 지나치면서 손바닥을 머리 위에 올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좋아한다고요내가 햄을.”

 

 

 그 때의 눈빛을 기억한다두 번이나 같은 말을 내뱉었던 그 때 그 아이의 눈빛은 잊을 수가 없었다어쩌면 그래서 나는 대답을 회피했고 시선 또한 도망쳤을지도 모르겠다지금의 이 아이는 그 때의 그 눈빛을 잃지 않았다오히려 더욱 더 깊어진 느낌이었다조금 더 짙어진 눈동자로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눈빛을 뿜어대는 게 부담스럽기는커녕 도리어 피하고 싶지 않은 시선을 끊임없이 이어가려 노력하는 중이었다.

 

 

 “나 같은 늙은이한테 그런 소릴 하고 있어.”

 “마음이 가는 걸,”

 “....”

 “기울어지는 걸,”

 “....”

 “와르르 쏟아져버리는 걸.”

 “....”

 “어떻게 해야 해요.”

 

 

 방금 이건 좀 반칙이었다말을 내뱉고 입 꼬리를 올려 미소 짓는 아이의 개구 진 표정에 난 그만 바람 빠지는 웃음을 입 밖으로 터뜨리고야 말았다웃는 얼굴에 광대뼈가 저릿할 정도였다그리고 난 그만큼 솔직해져야 할 필요가 있었다장난스런 표정의 아이가 감정에서만큼은 누구보다도 솔직하듯이 나 또한 그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부분을 간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이것저것 생각하기엔지금의 이 아이가 아주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걸 알기 때문에더 길어지면 그것 또한 내게도 좋은 일이 아닌 걸 알기 때문에.

 

 

 

 

 

flooded(;잠식 된)

w. 누뽀

 

 

 

 

 

 남들이 들으면 부럽다고 할 정도의 케이스였다나는반에서1등을 하고 전교에서도10등 안에 드는 우리 반 반장이 그렇게 가고 싶어 하던 교대를 내가 가버렸다그리고 군대를 다녀온 뒤 처음 본 임용고시에 떡 하니 붙어버렸다그 뒤로는 또 단박에 중학교 담당을 맡게 되었고 거기까지 걸린 시간이 남들보다 훨씬 짧았다그러니 정말 남들이 듣는다면 배 아파할 정도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정말 운이 좋아서 생긴 일이기 때문에 내가 그것을 남들에게 자랑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사실 내가 잘 나간다고 해서 그걸 가지고 가타부타 떠들어댈 사람들 또한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걸 아쉬워한다뭐 그런 것도 아니었다.남한테 주목 받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성향의 나로서는 그저 그 모든 운이 오히려 싫을 정도였다.

 나는 딱히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적당한 대학에 들어가서 적당한 학점을 받고 졸업하여 적당한 회사에 들어가는 것이 나름대로의 목표였다그러니까 나는 일반적인 또래 애들과 비슷한 학생이었다그런 내가 교대를 갔던 건 뜻하지 않은 일 때문이었다어쩌다 보니 늘 보던 모의고사보다 수능을 잘 치르게 돼서 그 점수를 그냥 보내기 아쉽다는 담임선생님의 말 때문이었다우리 반 반장은 수능 때 번호를 밀려 써서 평생 한 번도 받아보지 못 한 점수를 받게 되었고 그걸로 담임선생님의 신뢰를 모두 잃었었다그러니 담임에게는 내가 본인의 구세주나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성우야너라도 제대로 된 대학을 가야지너 지금 이 성적 정도면 전액 장학금도 받을 수 있어.그런데 왜 굳이 하향해서 가려고 해더 높은 곳을 봐야지선생님이랑 같이 이 학교에서 애들 가르치는 것도 좋은 생각 같지 않니?’

 

 

 1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채로 기억나는 그 때 그 날의 대화담임선생님은 아마 내가 제 말을 아주 잘 듣는 그런 학생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내 의견 따위 들을 생각조차 없었던 사람이었다싫다고 한 마디 건네지 못 한 채로 그저 고개만 끄덕인 나는 담임선생님이 써준 대로1지망, 2지망, 3지망을 선택했고 결국 난 그렇게 교대를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그 바람에 학교 플래카드에 떡하니 새겨진 내 이름 석 자가 동네방네 알려지게 되었고 가뜩이나 성까지 특이한 나는 졸업하고 나서도 학교 내에서 회자되고 있다고 전해 들었었다.

 무튼 그렇게 선생님이 되고 중고등학교가 함께 있는 한 중학교로 발령이 났다집과도 그다지 멀지 않아 부모님과 살고 있는 집 그대로 살 수 있었다출퇴근길엔 학생들이 많았고 얼마 뒤엔 자기 학교 선생님이란 것을 안 학생들이 내게 곧잘 인사를 건네 오기도 했다나는 내가 모르는 학생들에게도 교복을 확인하며 웃는 얼굴로 인사를 받아주었고 시간이 더 흐른 뒤엔 가벼운 말장난 따위를 하는 학생이 생기기도 했다그렇게 중학교에서3년을국옹쌤’ 이라는 애칭으로 불렸고 나는 이상하게도 또 빠르게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물론 바로 옆에 붙어있는 고등학교로 말이다.

 그리고 그 해 늦여름옆집에 새로운 가족이 이사를 왔다방학이 끝나고 개학하는 첫 날아침부터 분주한 소리에 잠이 깼고 출근을 하려 집을 나서니 그 분주한 소리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이사 오셨나 봐요.”

 “아 아이고아침서부터 마이 시끄러우셨죠.”

 “괜찮습니다어차피 일찍 출근해야하는 사람이라.”

 

 

 사투리를 쓰시는 걸로 보아 경상도 쪽에서 올라 온 가족인 것 같았다죄송하다며 연거푸 사과하시는 분들께 나도 마찬가지로 손 사레를 치면서 계속해서 괜찮다는 말을 건넸다그리고 미소를 띤 채로 목례를 하고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 몸을 돌려세웠다하지만 직업이 직업인지라 다시 고개를 돌려 집 쪽을 바라보았다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또래 같아 보이는 남자애가 멀뚱히 이삿짐만을 쳐다보고 있었다그러나 샛노랗게 탈색한 머리카락과 육안으로도 훤히 보이는 덩치가 또 또래 애들 같아 보이진 않고의아함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다시 몸을 돌려세웠다중고등학생이라면 방학이 끝났을 텐데 저런 머리카락 색은 영 아니겠지.

 개학 첫 날은 학생들에겐 일찍 끝나는 날이라 좋겠지만 선생들에게는 피곤함이 겹치는 날이었다학업계획서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퇴근도 제때 하지 못 하고 컴퓨터만 붙잡고 있어야 했다물론 나도 피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 바람에 평소보다 두 시간은 더 늦게 퇴근을 할 수밖에 없었다피곤한 몸뚱아리에 택시를 타고 싶었지만 분명 기본요금밖에 나오지 않을 걸 알기 때문에 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함께 흔들리는 몸이 더 축축 쳐지는 기분이었다집 앞 정류장에서 무거운 몸을 겨우 움직여 내렸고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가방을 집어 올리면서 집을 향해 걷고 있었다.

 

 

 “....”

 

 

 우리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 어귀에서 캄캄한 어둠 가운데 하얗게 피어오르는 연기가 있었다그리고 그것은 누가 봐도 담배 연기였다그 끝이 빨갛게 타올랐다가 다시금 피어오르는 연기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난 한 번도 동네에서 이랬던 적이 없었던 터라 조금은 당황스러운 마음도 갖고 있었지만 조금 더 가까이 가니 그 담배를 태우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이사 온 옆집에 있던 샛노란 탈색 머리 남자애나이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 한 채로 돌아서야했던 그 남자애였다아직 나를 발견하지 못 했는지 별 다른 반응 없이 그 상태 그대로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

 

 

 내 부름에 흠칫 놀란 건지 고개를 홱 돌려 나를 쳐다보는 애였다순간 그 눈빛이 마치 강아지가 올려다보는 것만 같아서 난 두 어 번 정도 헛기침을 내뱉어야 했다하지만 들려와야 할 그 남자애의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이 그저 고요한 적막만이 나와 그 남자애 사이를 메우고 있었다.

 

 

 “오늘 이사 온 친구 맞지?”

 “....”

 “난 옆집 사는 사람이..”

 “짐 내 담배 핀다꼬 꼰대질 할라 그라모 걍 가던 길 가세요.”

 

 

 예상치도 못 한 말과 말투가 들려왔고 난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마주친 시선은 그 남자애가 먼저 떼어버렸고 나는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그 남자애만을 바라보고 있는 상태였다하지만 내가 지금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내가 무슨 지적을 하려고 말을 걸었던 것도 아니고 그저 아까 아침에 봤던 사람이라 왠지 모르게 반가운 마음이 들어 인사나 주고받자는 식이었지괜히 억울한 마음에 입술만 계속 달싹일 뿐이었다.

 

 

 “.. 거 계속 그래 있을 거예요?”

 “뭐라고?”

 “짐 내 자기 소개 하는 거 기다리냐꼬요.”

 “아니 그게 아니구,”

 “햄 옆집 사는 사람인 거 다 알고 아까 떡 돌리러 갔다가 햄이 핵교 슨생이라는 것도 알게 됐고요.”

 “....”

 “자 그럼 전 갑니다햄은 계속 여 있던 지요.”

 “아니너 이름이 뭐야?”

 

 

 어느 새 코앞까지 와서 내게 끊이지 않고 말을 건네는 그 애에게 정신이 팔려 있었다사실 뭐라고 말을 했는지도 잘 모르겠다하지만 나보다 조금 낮은 시선이 내게서 돌아서려 할 때 나도 모르게 급하게 그 애의 옷자락을 손에 쥐었다그리고는 볼품없게 말을 한참이나 더듬으면서 겨우 이름 하나 물어보고야 말았다.

 

 

 “이름이 와 궁금한데요.”

 “?”

 “글고 내 어데 안 가니까는 이 쫌 놓아주세요.”

 

 

 나 정말 왜 이럴까자꾸 애 앞에서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난 서둘러 그 애의 옷자락을 놓았고 괜히 머쓱한 마음에 손으로 그 부분을 탈탈 털어주기도 했다.

 

 

 “강의건이요.”

 “?”

 “이름 물어봤잖아요이름강의건이라꼬.”

 “.. 어 그래들어가렴.”

 

 

 나는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났다내 뒤로 그 애가 나를 어떻게 쳐다볼지 모르겠지만 그 자리에 더 이상 있다가는 터져버릴 것 같은 얼굴을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자꾸만 스스로 부끄러운 행동들과 말투가 튀어나가는 바람에 처음 본 내 이미지가 어떻게 될 지부터가 걱정이었다가뜩이나 이미 나에 대해 대충 알고 있는 것 같던데.

 

 

 “....”

 

 

 그런데도 갑작스럽게 드는 생각은 물어봐야 할 것을 제대로 묻지 못했다는 것이었다처음부터 궁금했던 부분이 이름은 아니었는데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간 말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이름에 대한 질문이었다알고 싶었던 건 나이였는데뭐 알아도 달라질 것은 없었겠지만그저 옆집 사는 동생의 나이 하나쯤은 알고 있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다시 물어볼 기회가 오긴 올까옆집 사니까 그래도 한 번쯤은 더 마주칠 수 있겠지아까 그 허공에 떠다니던 하얀 연기가 생각났다조금 늦게 퇴근하면 더 자주 마주칠 수 있지 않을까.

 

 

 

 

#

 

 

 

 

 첫 만남은 그렇게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다.물론 나 또한 그 애의건이에게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을 것이다어른스럽지 못 한 모습을 잔뜩 보여 버려서 스스로에게 후회가 많이 남는 첫 만남이었다그 뒤로도 얼굴을 마주칠 일이 없어 혼자 조금 초조하기도 했다그러다가도 역시나 대학생이기 때문에 개강을 해서 얼굴이 잘 안 보이는 것은 아닐까싶은 마음도 들었다담배를 피던 노란 탈색 머리카락이 살짝 눈에 아른 거리기도 했다잘 어울렸는데.

 하지만 이게 웬걸의건이를 다시 마주치게 된 건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후였다그것도 내가 근무하고 있는 고등학교에서 샛노란 탈색 머리가 아닌 검은 머리카락에 하얀 얼굴로 마주하게 되었다의건이 옆에 서계시는 어머님께서 먼저 내게 인사를 건네셨고 나도 얼떨결에 허리를 숙여 인사를 드렸다.

 

 

 “하이고핵교 슨생님이라 카더니만은 여 계셨네요.”

 “아 어머님 안녕하세요.”

 “니 모하고 있노쌤한테 인사 안 드리나.”

 

 

 어머님께서 의건이의 옆구리를 툭 치셨다.하지만 의건이는 검게 변한 제 머리카락만 손가락으로 죽죽 잡아당길 뿐 내게로 향하는 인사나 별 다른 의사소통은 없었다하지만 나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이 학교에 어머님과 함께 왔다는 것과 머리카락을 검은색으로 염색했다는 것은 분명 이 학교에 다니기 위해 온 게 틀림없었다.

 

 

 “괜찮습니다동네에서 보던 형이 갑자기 선생님으로 되면 좀 어색하겠죠혹시 전학 때문에 오신 건가요?”

 

 

 의건이가 다니던 전 학교에서 전학 수속을 잘못 밟아 이상한 학교로 등록이 됐다고 한다원래 오려던 학교는 이 학교였는데 엄한 곳 통지서를 받고 나서야 뭔가 잘못 됐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러는 바람에 이제야 이 학교에 제대로 등록이 되었다고 했다.

 

 

 “고생하셨네요어머님께서.”

 “하이고 마고생은 무신 고생입니꺼개안습니다아이꼬 즈히 담임슨생님 만나러 갈 시간이 다 되가꼬 퍼뜩 가봐야 겠슴더.”

 “아 네네어서 가보세요의건이도 내일 보자.”

 

 

 다시 한 번 허리 숙여 어머님께 인사를 드리고 의건이 옆으로 지나치면서 손을 올려 의건의 머리를 두 어 번 정도 토닥였다그리고 나는 다음 수업을 가기 위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잡힌 내 손목 때문에 몸이 잠시 휘청거리게 되었다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뒤를 돌아보는데 그 자리엔 의건이가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나를 붙잡고 있는 중이었다.

 

 

 “.. ?”

 “.. ... 이예요.”

 

 

 뭐라고 하는 지 잘 들리지 않았다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데 하필 바닥을 보고 있으니 입 모양도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난 고개를 살짝 낮추고 귀를 갖다 댔다.

 

 

 “뭐라고 했어?”

 “아 지짜내 그.. 담배요그 비밀이라꼬요.”

 

 

 그 특정 단어에서는 더 작아지는 목소리에 나는 나도 모르게 풉하며 코웃음이 나와 버렸다.

 

 

 “와 햄 지짜 그래 안 봤는데,”

 “.”

 “.. ?”

 “햄 아니고 쌤여기 지금 학교구 너 이제 내 학생이야.”

 “아 그란 게 어딨어요.”

 “그럼 너 학교에서 나 계속 햄이라고 부를 거야?”

 “아니 그건 아아인데..”

 “쌤이라고 부르면 그거 비밀지켜줄게.”

 

 

 내가 한 건 했다고 생각했다그리고 이렇게 귀여운 아이인 줄 알았으면 그 날 그렇게 혼자 주눅이 들진 않았을 텐데나는 내 앞에서 아직도 우물쭈물 거리는 의건이가 귀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난 다시 손을 들어 의건이 머리를 쓰다듬었고 그 손길은 또 싫은지 고개를 세차게 저어대는 의건이었다.

 

 

 “하 지짜.. 그 지짜 비밀이에요.”

 

 

 난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 꼬리를 활짝 끌어올렸다내 확답을 받은 의건이는 급하게 뒤를 돌아 제 어머님께 다가갔다어머님께서는 무슨 얘기를 했냐고 물어보시는 것 같은데 의건이는 어머님 손을 뿌리치면서 먼저 앞서 걸어가고 있었다그 일련의 모습들이 딱 그 나이 대 또래 애들을 보는 것 같았다그러다 수업 시작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걸 듣고서야 나는 정신을 차렸고 급하게 걸음을 옮겨야 했다.

 

 

 

 

#

 

 

 

 

 약간 이중생활이라고 해야 할까학교 밖에서와 학교 안에서의 생활이 조금 달라졌다학교 내에서는 문옹쌤(중학교 때는 국어 담당이라 국옹쌤이었지만 고등학교 올라와서는 문학 담당이 되어 문옹쌤이라 불리게 되었다.)이라 불리며 아이들 사이에 나름 인기 쌤 중 한 명을 담당하고 있었다하지만 학교 밖에서는 그런 이미지 따위 찾을 수 없었다물론 학생들을 마주친다면 학교나 학교 밖이나 똑같겠지만 단 한 가지 변수그 변수 때문에 나는 혼란스럽기 시작했었다.

 

 

 “햄 어무이가 이기 갖다 드리래요.”

 “너 자꾸 쌤이라 안 하구.”

 “아 핵교 아이잖아요.”

 “학교건 밖이건!”

 “전 강의건인데요.”

 

 

 대화가 거의 늘 이런 식으로 흘러갔다처음에는 잘 알아듣지 못 한 나름 강의건 만의 개그가 이제는 하루라도 듣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가 됐다고 해야 하나.

 

 

 “어머님께는 잘 먹겠다고 전해 드리구 우리 집에서 엄마가 해놓으신 반찬 많으니까 이렇게 굳이 안 주셔구 된다고도 말씀 드려.”

 “내 햄이 말하는 그거 매번 똑같이 전달하는 거 알고는 있는 거죠.”

 “말씀 드려도 계속 주시니까 나도 계속 말하는 거야.”

 

 

 의건이네 어머님께서는 내가 마치 혼자 사는 사람인 것처럼 반찬이든 과일이든 매번 챙겨주셨다사실 처음에는 내가 의건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기 때문에 의건이를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주시는 건가싶었는데 완전한 내 착각이었다내가 의건이 담임도 아니거니와 워낙 손이 크신 어머님이셔서 우리 집뿐만 아니라 다른 옆집앞집뒷집에도 반찬을 나눠주신다고 했다하마터면 내 이상한 의심으로 인해 오해를 불러일으킬 뻔 했다직접적으로 말씀을 드리진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죄송하단 말씀을 두세 번 정도는 드린 것 같다하지만 그래도 너무 자주 주시기도 하고 음식 양 자체도 많기 때문에 이렇게 받기만 하는 게 죄송스러워서 가끔 의건이 손에 과일 바구니를 들려 보내기도 했고 명절 때는 한우 세트를 사서 들려 보내기도 했었다하지만 그렇게 보내고 나면 그에 두 배세 배가 되는 정도로 다시 우리 집에 되돌아 왔기 때문에 그것마저도 하지 말아야 하나 싶을 정도였다.

 

 

 ‘어머님 힘드시니까 너도 옆에서 잘 도와드리구.’

 ‘내 만날 도와드려요.’

 ‘확인을 할 수가 있어야지 말이야나중에 어머님께 여쭤봐야겠다.’

 ‘아 모 그란 걸 무본다 케요.’

 

 

 의건이는 참 귀여운 동생이었다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건 학교에서도 사실 잘 들어본 적이 없지만 그게 또 예의가 없는 건 아니었다천성이 착한 아이라 예의 없음이라곤1도 찾아볼 수 없는 아이였고 오히려 배려심도 많은 편에 속했다약간 츤데레라고 하나겉으로 보기에는 잘 웃지도 않고 무표정에 딱딱하게 구는 것 같지만 막상 얘기를 나눠보고 가만히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또 그렇지도 않다그러니까 정말 귀여운 동생이라고 계속해서 생각했었고 앞으로도 쭉 그럴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음식을 얼마나 많이 하시길래 이렇게 다 나눠주시는 거야?’

 ‘전에 살던 데에서도 똑같았어요뭐만 하모 다 주기 바빠가.’

 ‘아니 맨날 이렇게 많이 주시니까 궁금해 가지구..’

 ‘그래도 햄네 집에 젤 마이 주는 거예요.’

 ‘우리 집 식구도 몇 없는데.’

 ‘몰라요햄이 예쁜가보죠.’

 

 

 그 때 그 말을 하고는 서둘러 돌아서는 의건이를 왜 그 땐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을까그저 내가 의건이네 어머님 사랑을 받고 있구나나를 예뻐해 주시는 구나라고 일차원적으로만 생각했던 내가 어리석었다아니 어머님께서도 나를 그렇게 생각해주실 수도 있지하지만 그게 어머님뿐만 아닐 수도 있을 거란 것 또한 염두 해두었어야 했다.

 

 

 

 

#

 

 

 

 

 의건이는 고때 캐나다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하필 고때 가는 거냐고 묻지 그 때가 아니면 앞으로는 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보다 어른스러운 말을 했었다그리고 이모가 계시는 곳으로 가는 거라 크게 걱정할 것도 없다 말을 건넸다물론 다른 걱정을 하는 건 아니었다그냥정말 그냥 그저 조금 아쉬워서.

 

 

 “햄 좋아해요.”

 

 

 그 날은 학생 주임 소관 아래 열리게 된 조촐한 회식 자리에 참여해야만 했다아직까지는 내가 막내 선생님이기도 했고 학교에 온지도 오래 된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러한 자리를 마다할 권리는 없었다가서 고기는 별로 먹지 못 했고 술만 어느 정도 마신 상태였다더 마시자, 2차를 가자크게 목소리를 내시던 학생 주임 선생님은 체육 선생님에 의해 저지되셨고 결국 택시에 실려 집으로 가게 되셨다남은 선생님들은 어떻게 할 건지 잠깐 대화를 나누다 결국 해산하게 되었고 나는 집이 그리 멀지 않기에 술도 깰 겸 잠시 걷기로 마음먹었다.

 집으로 가는 골목 어귀 즈음 가던 중이었다이걸 반갑다고 표현해야 하는 걸까언젠가 보았던 장면 그대로 재생되고 있는 기분이었다어둠에 가려진 허공을 가르고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는 그 자리에 지금 누가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었다난 살짝 고개를 숙이면서 입 꼬리를 올렸다깨고 있던 술이 다시 오르는 기분이었다.그리고 가까이 다가선 곳엔 물론 의건이가 있었다의건이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쪼그리고 앉아있던 다리를 쭉 피며 일어섰다긴 다리가 반듯하게 섰고 손가락 사이에 있던 담배를 한 번 더 길게 빨고는 바닥에 떨어트려 발로 비벼 껐다입술 새로 하얀 연기 줄이 길게 이어졌고 연기 사이로 보이는 얼굴에는 아주 살짝 미소가 걸려 있었다

 

 

 “뭐라구?”

 “햄 좋아해요.”

 

 

 하지만 갑작스럽게 들린 목소리에그리고 재차 물었을 때도 변함없이 제 말을 그대로 전달하는 의건이에게 난 두 번 연속으로 관자놀이를 맞는 기분이었다골이 울렸다무언가 물리적인 힘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뒷목 잡고 쓰러질 일도 아니었다나는 최대한 이성적이고 싶었다내가 이성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여러 번 쉼 호흡을 반복한 뒤 입을 열었다.

 

 

 “시간이 너무 늦었다일단은 들어가.”

 “내 오늘 아이모 말 몬할 거 같아가 기다렸어요.”

 “.. 의건아.”

 “내 이제 캐나다 가잖아요그라모 오랫동안 못 볼 테니까내 후회하고 싶지 않아가 그래요.”

 “....”

 “대답 바라고 한 말 아이니까는 크게 생각하지 말아요아니.. 쌤 저 먼저 드갈게요조심히 드가세요.”

 

 

 기억은 살짝 왜곡되어 있었다아니 한참이나 왜곡되어 있었다내 앞에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스쳐지나가는 의건이를 잡을 힘조차 없었다아니 사실은 잡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지금 내가 의건이를 잡아버리면 그 뒤로는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만이 펼쳐져 있을 것 같았다난 그대로 멀어지는 의건이의 뒷모습만 바라보다가 의건이가 쪼그려 앉아있던 곳 그대로 무릎을 접어 앉았다살짝 비틀거리면서 바닥에 주저앉을 뻔 했지만 그런 불상사는 없었다사실 의건이를 보면서 올라오던 술이 의건이의 말 한 마디로 인해 바로 사라져 버렸다점점 멀쩡해지는 정신에 나는 차라리 내가 한참이나 취해있었더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

 

 

 하지만 그건 명백히 잘못된 생각이었다분명 의건이 또한 제 진심을 전하기 위해 많고 많은 고민을 했을 테고 내게 대답을 바라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저 마음이 과연 괜찮을까 싶은 거다내게 대답을 바란다고 하더라도 사실 해줄 수 없는 게 지금 내 사정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의건이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그래서 나도 적당한 기회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생기면 이 일에 대해서도 조금 더 깊게 얘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하지만 그 이후로 의건이는 개인적으로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학교에서도 얼굴 보기가 어려웠고 마주치더라도 다른 어떠한 말을 할 수도 없이 그저 인사만 주고받고 지나쳐야 했기 때문에 나로서는 너무나도 답답한 상황이었다.

 

 

 ‘대답 바라고 한 말 아이니까는 크게 생각하지 말아요아니.. 쌤 저 먼저 드갈게요조심히 드가세요.’

 

 

 내게 마지막으로 건넸던 말이 종종 떠올랐다내게 늘 햄이라고형이라는 호칭으로 불렀던 의건이가 마지막 말에 선생님이라 불렀었다그게 자꾸 마음에 걸렸다그러나 그게 끝이었다의건이는 그대로 캐나다로 떠났고 더 이상의 대화는 이뤄질 수 없었다공항까지 함께 가서 배웅을 해주고 싶었지만 학교 수업으로 인해 갈 수 없었던 일 또한 내게는 너무 괴로운 후회로 남게 되었다제대로 된 대답이 아니더라도그냥 무슨 말이라도 할 걸그 날 그대로 돌아서서 멀어져 가는 의건이를 그렇게 보내지 말 걸평생 남게 될 그 후회를 나는 돌이킬 수 없었다.

 

 

 “성우야여 의건이 방에 이기 있어가 가꼬 왔는데 이기 편지 같은데 니 이름이 써 있다 아이가.”

 

 

 의건이가 캐나다로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의건이네 어머님께서 나를 찾아오셨고 내게 건네는 건 누가 봐도 편지였다조금 두툼한 편지를 무겁게 내 손 위에 올려 지게 되었다그리고 나는 그 편지 하나로 내 모든 마음의 짐을 조금 내려놓기로 마음먹었다.

 

 

 ‘곧 올 게요그 땐 대답 들으러 오는 거예요.’

 

 

 

 

#

 

 

 

 

 “와 대답이 없어요.”

 “... 어 그래.. 그래서 뭐라고 했지?”

 

 

 의건이는 습관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자주 이마를 짚었다그리고 지금도 똑같이 이마를 짚으면서 반대편 손으로는 제 허리를 짚었다그 내려오는 시선의 시간이 길었다의건이는 옛날의 그 아이와는 다른 아이처럼 보였다그만큼 키도 많이 컸고 덩치도 많이 커졌다그 예전처럼 내가 지나치면서 손바닥을 머리 위에 올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좋아한다고요내가 햄을.”

 

 

 그 때의 눈빛을 기억한다두 번이나 같은 말을 내뱉었던 그 때 의건이의 눈빛은 잊을 수가 없었다어쩌면 그래서 나는 대답을 회피했고 시선 또한 도망쳤을지도 모르겠다지금의 강의건은 그 때의 그 눈빛을 잃지 않았다오히려 더욱 더 깊어진 느낌이었다조금 더 짙어진 눈동자로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눈빛을 뿜어대는 게 부담스럽기는커녕 도리어 피하고 싶지 않은 시선을 끊임없이 이어가려 노력하는 중이었다.

 

 

 “나 같은 늙은이한테 그런 소릴 하고 있어.”

 “마음이 가는 걸,”

 “....”

 “기울어지는 걸,”

 “....”

 “와르르 쏟아져버리는 걸.”

 “....”

 “어떻게 해야 해요.”

 

 

 방금 이건 좀 반칙이었다말을 내뱉고 입 꼬리를 올려 미소 짓는 의건이의 개구 진 표정에 난 그만 바람 빠지는 웃음을 입 밖으로 터뜨리고야 말았다웃는 얼굴에 광대뼈가 저릿할 정도였다그리고 난 그만큼 솔직해져야 할 필요가 있었다장난스런 표정의 의건이가 감정에서만큼은 누구보다도 솔직하듯이 나 또한 그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부분을 간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이것저것 생각하기엔지금의 이 아이가 아주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걸 알기 때문에더 길어지면 그것 또한 내게도 좋은 일이 아닌 걸 알기 때문에.

 

 

 “그걸 또 용케 외우고 있었네.”

 “햄이 쌤이었을 때 그래 매번 좋다꼬 하는데 내 어에 안 외요.”

 “그래두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데.”

 “햄은 이래 시간이 흘렀다꼬 다 잊었어요?”

 “아니그럴 리가 없지!”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뭐가 이렇게 볼품없을까나는 너무나도 별 일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의건이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갔을 거라는 걸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그저 내가 좋아하는 구절이었고 감정의 홍수 같은 걸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어 가장 좋아하는 시이기도 했다하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그걸 좋아하게 된 이유도그리고 의건이가 그걸 지금까지 제대로 기억해낼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그 구절에 우리 둘 모두가 빠져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홍수처럼 불어나는 감정의 양에 어쩔 도리 없이 허우적거리게 되는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그 안에서 헤어 나올 수 없게 되어 버린 그런 상황너무 우리의 상황과 같지 않은가.

 

 

 “창피하니까 그만 웃어.”

 “귀여운 걸 어떡해요.”

 “.. 이런 아저씨가 뭐가 귀엽다구.”

 “자꾸 나이 많다아저씨다뭐 이런 말 할 기가.”

 “그럼 어떡해우리가 띠 동갑인 거는 알고 있는 거지?”

 “그기 무신 상관인데요.”

 “.. 알겠어.”

 “그래서 햄 대답은요.”

 “?”

 “.. 햄 일부러 이라는 거죠내 좋아한다꼬 말하는 거 계속 들을라꼬.”

 

 

 살짝 눈을 흘겼지만 그게 또 아예 없는 말은 아니어서 입 꼬리를 끌어올렸다옛날 그 때 이 아이의 눈빛은 내가 감당하기 어려웠다지만 사실 그 좋아한다고 담백하게 말하는 목소리가 더 듣고 싶어 재차 되물었을 지도 모르겠다.

 

 

 “알겠어.”

 “뭐를 알겠어요.”

 “네가 나 좋아하는 거 알겠다구.”

 “이제 알았다꼬?”

 “아니이자꾸 그렇게 말할 거야?”

 “햄이 자꾸 대답은 않고 딴 말만 한다 아인교.”

 

 

 눈을 한 번 깊게 감더니 의건이는 다시금 손을 이마로 가지고 올라갔다나는 서둘러 그 손을 붙잡았고 두 눈을 번쩍 뜬 의건의 몸이 굳는 게 나에게 직접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햄이랑 뭐하고 싶은데.”

 “아 억수로 어색하다 아인교사투리 쓰지 말아요.”

 “내도 사투리 좀 써보자.”

 “할람 쫌 제대로 하던 지.”

 “햄이랑 연애할까.”

 “아 지짜... 뭐라꼬?”

 “뭐야또 듣고 싶어서 물어보는 거지?”

 “아이그기 아이라 짐 뭐라켔어요연애?”

 

 

 반응이 귀여워서 입을 꾹 다물고 그저 웃기만 했다그랬더니 되묻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속도도 빨라졌다난 결국 소리 내어 웃으면서 발걸음을 옮겼고 계속 그 자리에서 저 혼자 중얼거리던 의건이가 저 혼자 결론은 내리고서 훌쩍 나를 향해 뛰어왔다그리고는 그 커다래진 품을 한 가득 열어 나를 감싸 안았다.

 

 

 “햄 내 지짜 좋아해요.”

 “으응.”

 “내 지짜 오래 좋아한 거 알죠.”

 “.”

 “그만큼 더 좋아 할게요.”

 

 

 진지함이 서려있는 말투가 내 귀를 간지럽게 만들었다언제 이만큼이나 커서 나를 빈틈없이 안아주고 있는 건지 정말 신기할 따름이었다이 커다랗고 따뜻한 품에 파묻히더라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내가 먹혀들어가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더라도지금 이렇게 행복이 넘쳐흐르는 순간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의건아.”

 “응 햄와요.”

 “담배는 좀 줄이자.”

 

 

 내 말에 한3초 간 정적이 일더니 어깨를 들썩여가면서 웃어버리는 의건이었다뭔가 다른 기대하는 말이 있을 텐데 내게 그것을 종용하지 않는다아직도 더 기다릴 수 있는 걸까이 아이는오히려 내가 더 어린 기분이었다훨씬 더 어른스러운 건 바로 의건이었다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그 예전부터 어쩌면 나보다 더 큰 존재에 대해 빠져 들어가 버린 건 아니었을까내가 그 동안 부정하고 밀어내던 것들이 사실 상 이미 잠식되어 있기 때문에 겁을 먹고 외면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정말 어쩌면 내가 의건이보다 더 먼저..

 

 

 

 

-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