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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녤옹

 

 

 

 

 

 

[ 해바라기 ]

다론

 

 

 

 

 

 

 

폭염에 해바라기도 고개를 숙였다고 했다.

 

 

 

 

너무나도 강한 햇빛에 고개를 땅으로 떨군 꽃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염을 알리는 그 문장 속 주어가 '꽃들'이 아닌 '해바라기'라는 특정 꽃을 가리키는 것은 아마 그 이름 때문일 것이다.

 

 

크고 노란, 그 아름다운 꽃은 해를 따라 도는 것으로 오인하여 그런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했다.

 

원래 대부분의 꽃들은 햇빛을 받으며, 태양을 보고 피어나는 것이 일반적인 것을, 왜 하필 그 꽃만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는 의문이었다.

 

 

아무튼, 해를 보고 자란다는 그 꽃이 고개를 숙여버릴 정도로 올해 여름의 햇빛이 뜨겁고, 또 뜨겁다는 것.

 

 

 

그것만은 사실이었다.

 

 

 

 

 

 

 

-

 

 

 

 

 

", 나 어학연수 가."

 

 

캐나다로. 한 달 뒤쯤.

 

 

 

 

그야말로 폭탄선언이었다. 피곤해 죽겠다는 듯, 아침 일찍부터 왜 우리 집까지 찾아왔냐고 눈을 부비며 무거운 몸을 제 뒷마당 벤치로 겨우 옮긴 성우의 눈이. 다니엘의 그 한마디에 번쩍 뜨였다. 갑자기? 캐나다?

 

 

"캐나다에 우리 이모 있잖아. 공부하러 가려고."

 

 

 

 

사실 장난인 줄만 알았다. 누가 보면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해서, 더 넓은 세계에 대하여 공부를 하고 싶어서. 그래서 떠나는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다니엘은 그러기엔 공부와 거리가 많이 멀었다. 그래서 더 놀라기도 했었던 것 같다.

 

 

당장 한 달 뒤에 떠난다고 했다.

 

 

 

"언제 다시 돌아오는데?"

 

"그건 아직 몰라."

 

 

 

떠나는 날은 정해져 있었고, 돌아오는 날은 그렇지 않았다. 언제 돌아오는지 알았다면, 그 날이 약속되어있다면. 어떻게 기다리기라도 하겠다만, 기약 없는 기다림이란. 희망고문과도 같았다.

 

 

 

 

 

-

 

 

 

 

 

성우는 다니엘을 좋아했다. 다니엘은 그의 바로 앞집에 살았고,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 서로에 대하여 모르는 것이 없었다. 좋아하게 된 계기도, 언제부터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확실하게 기억이 나진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그저, 그가 웃는 것이 좋았고, 따뜻한 목소리 형이라고 저를 부르는 것이 좋았다. 그냥, 다니엘이 좋았다.

 

 

성우가 제 가슴속에 꼭꼭 숨겨둔 마음이었다. ! 어른이 되면 고백할 거야. 하고 얼른 스물이 되기를 기다리고 기다렸건만, 그 희망은 열아홉 여름에 무자비하게 꺾이고 말았다.

 

 

 

 

 

 

 

'! 아이스크림!'

 

'형네 집 벤치는 우리 놀기 딱 좋은데 너무 덥다. 내가 선풍기 가져올게. 기다려봐.'

 

'!! 이거 풀장 집에서 가져왔다! 물놀이 하자!'

 

 

 

하루에 한 개만 먹으라고 어머니가 신신당부를 했지만 꼭 아이스크림을 네 개나 꺼내와서 두 개씩 나눠먹던 여름이, 멀티탭에 꽂은 선풍기를 질질 끌고 와 먼발치에서 겨우 옅은 바람을 쐬곤 했던 여름이, 바람 다 빠진 휴대용 풀장을 머리가 어질 어질 해질 때까지 불어 물장구를 치던 여름이. 다니엘은 그 여름을 이제는 버티기 힘들었는지, 한국보다는 덜 더운 캐나다로 떠났다. 그리고 늘 다니엘이 챙겨주는 대로, 여름을 보냈던 성우에게는 이제 그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성우의 열아홉, 그 여름은 아프게 뜨거웠다.

 

 

 

-

 

 

 

 

다니엘이 캐나다로 떠나던 날, 성우는 그를 배웅하고 제 집 뒷마당 벤치에 앉았다. 그곳에 앉으면 꼭 보이는 게 있었다. 노랗고 커다란 해바라기. 참 이상하게도 이름은 해바라기이지만, 성우의 시선 속에 담긴 그 꽃은 태양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꼭 나 같네."

 

 

 

같으면서도 달랐다. 꽃은 태양이 뜨거워서 고개를 숙였지만 저는 이제 바라볼 태양이 없었다.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차라리 제 태양도 뜨거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옹 성우가 한 송이 해바라기라면, 그가 바라보는 강 다니엘이 제 태양이라면. 하늘에 떠있는 눈부신 태양 말고, 늘 내 옆에 있던 그 태양이, 제 마음과 같이 뜨거운 사랑을 주었다면. 차라리 부담스러울 만큼 사랑을 받아 고개를 돌린 것이었다면 좋았겠다.

 

 

 

괜히 전하지도 못한 마음이 혼자서는 버티기 힘이 들 만큼 무거워져 버려서, 이제는 바라볼 태양이 너무나도 멀어져 버려서. 옹 성우라는 해바라기는, 점점 고개를 떨구기 시작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따라 멀어진다고 했다. 아니, 멀어지기 위해 노력했다. 잊어야지. 언제 올지도 모르는 다니엘을 혼자 앓아낼 수 없어서. 성우는 그를 잊겠다고 다짐했다.

 

 

 

-

 

 

 

 

그가 없는 시간은 잘도 흘러갔다. 성우는 그렇게 기다리던 어른이 되었다. 스물, 기다리던 이유가 사라지니 스무 살도 별거 없다고 느껴졌다. 성우는 다니엘에게 따로 연락을 하지 않았고, 다니엘 또한 그랬다. 사실 너무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 잘 지내냐고 안부 정도는 메일로라도 물어볼 수 있잖아.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생각해보니 오지 않는 연락이 나은 것 같았다. 주고받는 연락에 다시 마음이 피어날지도 모르니까.

 

 

 

스물의 봄이었다.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다니엘은 잊을만하면 성우의 꿈에 찾아왔다. 잠에서 깨면, 아쉬워하는 제 모습에 눈물이 고였다. 나는 아직 다 잊지 못했구나.

 

 

그렇게 아직 남은 미련에 자주 눈물짓곤 했다.

 

 

 

시작도 해보지 못한 그런 마음이었다. 말도 건네지 못했다. 아쉬웠다. 차라리 떠나기 전이라도 마음을 전해볼걸, 그런 생각들이 자꾸 머릿속에서 삐져나왔다.

 

아쉬워하다가, 자기 자신이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조금 더 가면 다니엘을 원망한다. 나를 그렇게 오래 봤으면, 내 마음을 눈치챌만도 하건만, 그리고 눈물짓는다. 지금 이래 봤자, 다니엘은 없는데. 그렇게 반복한다. 꽤 오래 키워온 마음을 접는다는 건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꽃이 태양을 등진다는 것은, 그래. 어려운 일이었다.

 

 

 

 

 

 

-

 

 

 

 

1년이 조금 더 흘렀다. 다시 찾아온 여름이었다. 벤치에서 바라본 곳에는 작년보다는 더 많은 해바라기가 피어있었다. 이번 여름은 그리 덥지 않았다. 많은 꽃들이 태양을 향해 고개를 꼿꼿하게 쳐들고 있었다.

 

 

성우는 그렇지 않았다. 아니, 사실 성우는 고개를 들고 싶었다. 태양을 보고 싶었다. 고개를 숙인 듯했으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누군가 말하는 것 같았다. 넌 아직 잊지 못했어. 확실하게 마음을 굳히지 못했잖아. 그렇게 흔들렸다. 태양이 없는 곳에서는 바람이 불었다. 바람은 꽃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이리저리 가볍게 흔들리다가 다시 그 마음에 돌아왔다.

 

 

 

 

""

 

 

 

아씨, . 환청이 들리나 봐.

 

 

"성우 형."

 

 

앉아있던 벤치에 한 사람 몫의 무게가 더해졌다.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는 노랗게 물든 머리를 한 다니엘이 저를 보며 활짝 웃고 있었다. 절로 눈물이 났다. 나름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성우의 착각이었다. 그는 다시금 성우의 고개를 들게 만들었다.

 

 

 

", 나 없다고 해바라기씨 손도 안 댔나 보네. 해바라기 천지다 천지."

 

 

 

다니엘이 있을 적에는 해바라기씨가 가득할 때가 되면, 함께 꽃을 따 씨앗을 수확하곤 했었다. 그리고 다시 몇 송이가 필 정도만 심고, 그러기를 반복했는데. 다니엘이 없는 그 해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성우의 뒷마당에는 해바라기 정원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꽃들이 잔뜩 피어있었다.

 

 

 

 

해바라기는 폭염에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원래는 씨앗을 가득 머금었을 때, 그때에 고개를 숙이는 꽃이다. 씨앗은 한 해살이 풀인 그 꽃의 미련이었다. 미련을 세상에 남기고 사라지고, 그 미련들이 새로 다시 피어난다. 성우는 해바라기였다. 미처 주워 담지 못한 미련이, 태양을 다시금 만났다. 다시 피어나고 있었다.

 

 

 

", 왜 울고 그래. 나 많이 보고 싶었어?"

 

 

장난스레 던진 다니엘의 말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 보고 싶었나 봐. 보고 싶었어.

 

 

"나도."

 

 

, 날도 더운데 아이스크림 먹자. 다 녹겠다 형. 다니엘이 건넨 아이스크림을, 장난인지 진심인지 모를 자신도 보고 싶었다는 대답을 건네받았다. 다시 여름이었다. 그의 말이 어떤 의미이건 상관없었다. 일단 다니엘이 제 옆에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기다리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홀로 숱한 고민을 하며 보내던 날들이 결국 기다림의 시간이 되어있었다.

 

 

 

태양은 어차피 존재했다. 사라질 수 없었다. 그러니까 원래부터, 다시 피게 될 운명이었다.

 

 

 

 

 

 

 

 

[ 해바라기 , 꽃말 - 기다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