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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녤옹

 

 

**

 

 

 

 

 

 

 

 

 

 

 

 

다니엘의 자취방, 흔한 대학가의 원룸촌 오피스텔. 그곳의 1층 작은 주차장 뒷편.

 

 

홀로 상경하는 아들을 걱정하며, 그의 부모님은 많지 않은 살림에 꽤나 무리를 해가시면서 보증금 천에 월세 육십이나 되는 방을 잡아주었었고..

 

 

상경한 아들, 다니엘이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하면..

 

 

-아들, 여자 친구 생기면 꼭 피임해!

 

 

주차장은 개방형이었고, 작은 쪽문을 통해 건물 내부와 이어져 있는 구조였다. 만약 쪽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옆으로 돌아, 결코 일부러는 가지 않을 건물 뒤편 좁고 구석진 골목으로 들어간다면, 이 오피스텔 사람들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흡연 구역이 있었다.

 

 

그곳에서, 한참을 서 있던, 한참을 담배 피고 있던, 다니엘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가- 하면..

 

 

건물 그림자가 쨍하니 떠있는 유월의 태양을 가려주고 있었다. 덕분에 공기는 더웠지만, 그나마 괜찮았다. 햇빛이 닿지 않았으니까. 그늘이 지고 있었으니까. 숨을 돌릴 만 했다.

 

 

위를 올려다보니 하늘색의 하늘, 그것들을 거칠게 가로지르는 검은색 전선들. 다닥다닥 붙어있는 오피스텔들, 주택들.. 덕분에 태양조차 조각나버리는 모습의 하늘이었다- 숨이 쉬어 졌다.

 

 

발밑에는 방금 본가에서 온, 붉은색 우체국 로고가 그려져 있는 택배 상자. 거기에 낑겨 들어가 있던 콘돔 두어 개. 비뚤한 어머니의 글씨체가 눈에 익었다. 주책 맞구로-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담배부터 찾아졌다. 숨이 다시 갑갑해져 왔다.

 

 

죄책감과 배덕을 떠올리던 다니엘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하면.

 

 

..헷갈려 하고 있었다.

 

 

어제도 오늘도 똑같은, 아마도 내일도 똑같을 이 단단한 회색의 건물들 사이에서, 그를 둘러 싼 수많은 자취방들, 그 속에 살고 있을, 그의 또래, 아마도 같은 학교의, 대략적으로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왔을, 평균적인 20대의 삶을 가늠해본다.

 

 

 

 

정상적인, 일반적인, 특별한, 이상적인, 이상한- 이성, 동성, 동성애..

 

 

 

 

헷갈려하고, 가늠해보다- 무서워하게 되었고,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

 

 

 

 

 

 

 

 

 

 

더워서 장소를 옮겼다는 구색이 무색하게도, 방은 더웠다.

 

 

타죽겠네. 싶을 정도로 볕이 강한 건 아니었다. 다만 방 한편으로 나 있는 창이, 하필이면 남향이었던 터라(햇빛 잘 들어오라고 남향으로 터 있는 것이었겠지만), 그 아래 긴 원목 앉은뱅이 탁자에 앉아 과제를 하고 있던 다니엘과 성우는 충분하게, 아니 과분하게도 햇빛에 노출되어 있었다. 때문에, 볕이 강한 건 아니었지만 과한 건 맞았고, 둘은, 타버리고 있진 않았지만 삶아진다-정도 까진 맞는 상태였다.

 

 

 

 

 

 

" 좋아해. "

 

 

 

 

 

 

불을 하나도 켜지 않았는데도, 햇살이 하도 밝아서, 공기 중에 날라 다니는 먼지들이 아른거리며 나풀대는 게 훤히도 보이고 있었다.

 

 

성우는 그 가운데에서, 살짝 열에 달아오른 얼굴로 연신 제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고, 있었는데,

 

 

갑자기 고백을?

 

 

 

 

 

 

"?"

 

 

 

 

 

 

반대편에서 원고지에 글을 써내려 가고 있던 다니엘이, 놀라서는 물었다. 질문을 물어보다의 물었다-도 맞았고, 개가 무언가를 물었다-의 물었다도 맞았다. 놀라서는, 성우의 그 말을, 그가 물었다.

 

 

 

 

 

 

"아니.. 고백하는 장면 쓰고 있는데.. .. 약간 약한 거 같아."

 

 

 

 

 

 

, 그러면, 그렇지..

 

 

성우가 저에게 눈길 하나 주지 않는 채로, 앞에 놓인 노트북만을 뚫어져라 주시하기만 하면서, 끄응 소리나 낸다. 다니엘은 그걸 보고 멍하니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럼 그렇지, 그럼 그렇지. 반복해서 속으로 읊조린다.

 

 

 

 

 

 

".."

 

 

 

 

 

 

하지만 그 말을 아예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아니왜 아예 무시하면 안 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닌 게 아니라 사실, 알겠으나-그게 후배의 선배에 대한 예우, 뭐 그딴 게 아니라-

 

 

...아무튼. 아예 무시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는 하는 수 없이 성우와 같이 끄응.. 소리나 냈다. 생각 하는 척 하며, 계속해서 망설이기만 했다.

 

 

 

 

 

 

"뭐 좋은 거 없을까?"

 

 

 

 

 

 

보통 때면, 그러고 있으면, 성우는 저가 알아서 저의 글에 제일 알맞은, 훌륭한, 좋은 표현을 찾았다. 하지만 오늘은 또 하필이면, 그게 잘 안 찾아졌나보다. 안 찾아졌는지, 한숨을 쉬며 그렇게 또 물어본다. 눈을 댕그랗게 뜨면서, 입술을 앙 다물면서.

 

 

 

 

 

 

"저도 연애 쪽은 좀.."

 

 

 

 

 

 

뭐 좋은 것, 을 떠올리는 노력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않았지만 그렇게 아무런 대답이나 영혼 없이 뱉었다.

 

 

눈으로 보이는 게 성우의 모습이라, 성우의, 볕에 달뜬 불그스레한 얼굴이라, 끙 하니 앓는 다소 애처롭기까지 한 모습이라. 어쩐지 낯이 좀 간지러워졌었기 때문에-

 

 

그랬던 터라, 그랬던 성우의 모습이었는데, 였다가 성우의 표정, 한순간에 바뀐다. 장난스러움이 가득 넘치기 시작한다. 눈은 반달이 되고 입 꼬리는 보기 좋게 호선을 그린다.

 

 

 

 

 

 

"너 연애 많이 해봤잖아."

 

 

"...?"

 

 

 

 

 

 

지난 세달 정도 같이 지내다 보니 알 수 있었다. 형은- 장난과 농담을 좋아 하는 사람이었다.

 

 

소심한 편이었긴 했지만, 이따금씩, 분위기가 조금 늘어진다 싶으면 저렇게 장난기를 슬슬, 종종. 뿜어대곤 했다. 했는데, 문제는 오늘 이 화두가, 장난삼아 이야기하기엔..

 

 

다니엘은 그래서 표정을 굳혔다. 연애란 화두를 꺼낸 사람이, , , 하필이면, 성우라서.

 

 

 

 

 

 

". 기분 나쁘라고 한건 아니구, 그냥, "

 

 

..오가는 길에 들은 거긴 한데, 그냥. 너 여자 친구 많이 사겨봤다는 거 같아가지구..

 

 

 

 

 

 

성우, 변명하는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어디로? 듣는 다니엘의 이성을 향해.

 

 

사실이었다. 여자 많이 만났던 거, 굳이 남들한테는 숨기지도 않는 사실이었다. 성우와 이렇게 지내게 되기 전까지는, 굳이 숨기는 것조차도 귀찮게 생각할 정도로 평범한 자신의 일상이었다. 술을 마시고, 학교 사람들과 어울리고, 여자를 만나고- 여자, 여자. 옹성우, 남자.

 

 

하필이면, 하필이면, 하필이면...

 

 

모든 상황과 조건들이 다니엘 자신에게는 너무 갑갑하게, 너무 어찌 할 수 없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이성이 저 별 것도 아닌 팩트들에 부딪혀 가출을 생각하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

 

 

 

 

 

 

그래, 무리는 아니었기에,

 

 

 

 

 

 

"?"

 

 

 

 

 

 

다니엘은 무리수를 던졌다.

 

 

 

 

 

 

"키스 해보고 싶어요."

 

 

 

 

 

 

키스를 말하는 다니엘의 눈빛은 결코 어디 한 군데가 텅 비어있거나, 혹은 어딘가 망설임이 있어 떨리거나 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 보다는 무언가가 넘치는 듯했고, 무언가가 날카롭게 비집고 나오는 듯 한 모습이었다.

 

 

 

 

 

 

"..?"

 

 

 

 

 

 

그래서 그 무언가에 예상치도 못하게 휩쓸린, 꿰뚫린, 성우는 당황을 하고.

 

 

....그 당황하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다니엘은 안타까움을 느꼈다.

 

 

 

 

 

 

"는 어떨까요?"

 

 

 

 

 

 

말을 돌리는 마음은 자신을 부정하는 마음과도 같았다.

 

 

키스하고 싶어요, 는 어떨까요.

 

 

떠올렸을 땐- 웃어넘기며 갑갑함, 조금이라도 삭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발상이었다. 발상이었는데, 해보니 더없이 비참했고 더없이 맘에 차지 않았다. 장난을 장난으로 마무리 짓기 위해 장난스레 웃어보여야 했지만, 그런 이유에서, 다니엘은 웃지 못했다.

 

 

 

 

 

 

"... . , 겠는데. 좋아, 괜찮아."

 

 

 

 

 

 

대신 애써 웃으려 하는 것은 성우였다. 웃으며, 당황했으면서, 웃어넘기려 하며, 어색함을 지우려 했다.

 

 

그러면서 성우, 다시 자기 노트북 화면이나 보려고 하는데, 다니엘은 그 모습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아서- , 형은 왜 보통 사람처럼, 내 일상에 녹아 들지 않을까요. 왜 형과 있는 이 시간은, 보통의 내 일상과 정상적인 내 상식에서 온통 동 떨어져 있는 것 같아, 현실감이 없어, 나는-

 

 

형과 나는, .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도, 멀어요?

 

 

그렇게 다니엘의 속은, 이성은, , , 무너지고.

무너진 다니엘이, 자리에서 번쩍 일어나- 성우가 있던 건너편으로 걸어가며 말한다.

 

 

 

 

 

 

 

 

"정말요?"

 

 

 

 

 

 

 

 

망설임 없는, 이성 없는 그 행보에, 놀랍게도 성우는 그리 당황치 않았다. 않으며, 덤덤히 반응했다.

 

 

 

 

 

 

 

 

"...응 정말로."

 

 

 

 

덤덤히 계속해서 웃어넘기려 할 뿐이었다. 그저 그는, 제 옆에 자리 잡는 다니엘을 빤히 바라보기만 할 뿐, 계속, 계속. 미소나 지을 뿐이었다-지으려 할 뿐이었다. 지으려는 시도만을 하려 했다..

 

 

 

 

 

 

"...그럼 해봐요."

 

 

 

 

 

 

그래서, 다니엘은 눈이 지끈하니 팽 돌았다.

 

 

 

 

내가 이러는 게, 형은 아무렇지도 않아?

 

 

 

 

형의 팔을 잡았다. "..하는."- 이란 말이 형한테서 흘려져 나왔다. 살짝 뿌리치려고 하는 것도 같았다. 어디 도망 못가게 단단히 붙잡았다. 붙잡고는, 감정을 결코 숨기지 않으며, 다니엘, 거짓말을 계속했다.

 

 

 

 

"과제 주제가, 고백이었잖아요."

 

 

"고백한다 생각하고, 그냥 한번 해보면 안돼요? , 감이 안와서."

 

 

 

 

형을 붙잡은, 손이 떨렸다. 제발 이라는 속마음을 애써 말로 뱉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 정도가 최선이었다, 그걸 넘으면 바로, 성우에게, 자신은 평범한 남자 후배로 남아 있을 수가 없었다- 아니 이미 넘었나, 아니 이미 평범한 남자, 부터가 아닌가. 아니, 아니.. 모르겠어, , 제발요. 제발 그냥,

 

 

 

 

".. 근데 좀.."

 

 

 

 

미소-가 깨진다, 난처한 표정이었다, 형이.

 

 

그 모습에 다니엘은 아주 잠깐 고민했다. 늘 좋은 사람, 선배, 형으로서 사람 좋은 미소만 보여주던 성우였다. 근데 그런 사람의 미소를, 자신 따위가 무너뜨려도 되는 것인가?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이미 저안의 욕정이 차고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형도 모르겠다면서요."

 

 

 

 

 

 

조금만 더 하면, 넘어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형은 좋은 사람답게, 난처함을 숨길 수 없어 하면서도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 하고 있었다. 형은 좋은 선배답게, 저를 붙잡은 다니엘 자신을, 그리 심하게 뿌리치려 하고 있진 않았다, 형은, 좋은 형답게.

 

 

 

 

"진짜 괜찮아?"

 

 

 

 

...정말로, 조금만 더 하면, 넘어 올 것 같은 모습으로, 모든지 다 이해 해 줄 것 만 같은 얼굴로, 오히려 자신을 걱정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괜찮아요."

 

 

 

 

다니엘은 그 말을 한 뒤, 형의 얼굴을 살포시 그러잡았다.

 

 

볼을 감싸 쥐어 본다. 눈꼬리가 쳐지고 있던 형이, "저기, 진짜... 할거면. , 눈 감을까?"하고 사근거린다. 맑은 눈망울을 볼 수 없다는 게 아쉬웠지만, "..형이 편한 대로 해요."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조용히 눈꺼풀이 가라앉는다. 긴 속눈썹이 도드라졌다. 햇빛이 그곳에 내려앉았다.

 

 

눈꺼풀, 아래 속눈썹, 아래 삼각형을 그리는 세 개의 점. 아래, 아래, 형의 입술.

 

 

 

 

 

 

옅은 다홍빛의, 얇은..

 

 

 

 

 

 

다니엘은 그것에 너무 심취하지 않기로 했다. 볼을 감싸 쥔 제 손이, 성우의 체온으로 물들어 올라서, 그래서- 욕정이, 더 급하게 올라와서.

 

 

입술을 천천히, 형의 입술을 향해 옮겼다. 형의 숨결이, 다니엘 자신의 얼굴 위로 스쳤다. 가까이 가져갈수록 그 숨결은 분명해지고 단단해져갔다. 그것이 흣-하는 소리와 함께 멈춘 것은. 너무 가까운 거리가 되어버려서, 서로의 온기가 서로의 입술 사이로 느껴질 정도가 되어버린 때였다.

 

 

그 정도 거리가 되니, 뭐라 생각 할 새도 없었다. 형의 입술에, 다니엘, 제 입술을 겹쳤다.

 

 

맨들한 입술이 입술 위로 느껴졌다. 형의, 옹성우의, 맥동이 맞댄 입술로 느껴졌다. 느껴지는 순간 형, 바들하고 떨었던 것도 같다. 그래서 다니엘은 제 체중을 실어 그를 껴안았다. 껴 앉고는, 해일마냥 넘실거리는 제 마음을 대변하기라도 하는 듯, 몰아 붙였다.

 

 

그러자 "...." 라는 앓는 소리가, 형에게서

 

 

, 까지는 완성시키고 싶지 않았다. 말하느라 살짝 열린 입술 사이로 혀를 넣는다. 그러면서, 어디 도망 못 가게 형의 마른 몸을 한쪽 팔로 단단히 걸어 잠갔다.

 

 

 

 

 

 

-모자라.

 

 

 

 

 

 

혀를 집어넣어, 형의 혀를 단단히 건드리고, 단단히 건드린 다음에는, 형의 숨을, 영혼을 빨아들이듯 한껏 빼앗았다. 자연스레 형의 고개가 딸려왔고, - 하는 짧은 신음 소리 또한 딸려왔다. , 진짜. 부족해요. , ... . , .

 

 

솜사탕을 물어뜯는 것처럼 형의 아랫입술을 깨물어 본다. 형의 눈이 살짝 열린다. 살짝 울먹이는 것도 같은 눈동자가 보였다.. 

 

 

 

 

 

 

..여기를 넘으면 평범한 강다니엘은 사라지는 것이었다. 이 순간을 넘으면-

 

 

 

 

 

 

 

 

..넘어도, 돼요? ?

 

 

 

 

 

 

 

 

다니엘, 맞닿아있던 성우 허벅지 위로- 화산과도 같은 열기 만개한 제 하반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며-

 

 

 

 

 

 

 

 

 

 

 

 

 

 

-띵동

 

 

 

 

 

 

 

 

 

 

 

 

 

 

다니엘은,

 

 

 

 

 

 

 

 

 

 

 

 

 

 

-띵동

 

 

 

 

 

 

 

 

 

 

 

 

모든 순간이 멈춘다.

 

 

 

 

 

 

 

 

"초인종...나가..봐야 하지 않아?"

 

 

"괜찮아요."

 

 

 

 

 

 

 

 

-돌아보면, 안 돼.

 

 

그 옛날, 저승에 있던 에우리뒤케를 지상으로 데려가던 오르페우스에게, 하데스가 말했던 금제가 떠올랐다. - 돌아보면 안 돼. 지옥까지 발 디뎌가며 네 것을 취하려고 했으면, 뒤 돌아 볼 여유 따위는 없는 거야. 오르페우스는 지상의 입구에 다다라서 실패했으나, 다니엘은, 자신은 그럴 수 없다 생각했다. 그래서, 끌어 잡은 성우를 더욱 더 조여 안았다.

 

 

 

 

 

 

-띵동

 

 

 

 

 

 

 

 

기계적인 초인종 소리가 계속, 계속 울렸다.

 

 

누구인지는 상관없었다. 거슬렸던 건- 특별한, 자신과- 성우형. 성우 형과의 이..

 

 

성우 형과 있는, 일상 아닌, 평범함 아닌, 특별한 이 시간과 공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더욱이, 만약, 지금 저 초인종을 울리고 있는 사람이, 정상적인- 평범한 다니엘, 그런 자신의 일상 속의 익숙한, 마찬가지로 평범한 누군가라면.. 이 순간이, 이 선택이, 현실이라는 게 너무 와 닿을 것 같았다.

 

 

 

 

 

 

 

 

-띵동

 

 

 

 

 

 

 

 

-그러면 지옥까지 발 딛은 용기, 모두 사라져 버릴 것 같았는데.

 

 

 

 

 

 

 

 

"..다니엘."

 

 

 

 

 

 

 

 

눈이 풀린 성우가, 만류한다. 그만 하자고.

 

 

씨발.

 

 

손짓으로, 문가를 가리키며, 나가보라고 한다.

 

 

, 이게 제 최선이었는데요, 못난 건 알지만. 이게 제..최선이었는데요.

 

 

빤히 자신을 내려다보는 형을 차마 보지 못하며, 다니엘, 성우를 덮친 자세 그대로 무너져 내린다. 열기가 채 가시지 않고 있었다. 아른거리고 아스라한 이 방 안의 풍경이 아직도 여기에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이제는 분명히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평범한 이성애자- 였던 강다니엘이 낼 수 있었던 최대한의 용기.

 

 

이 순간이 지나면, 다음의 기회와 다음의 변명과 다음의 용기, 광기는 언제쯤 생길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이렇게 살아온 게 23년이라, 결코 다시 쉽게는 오지 않을 것 같은데.

 

 

 

 

 

 

 

 

잠시 뒤,

 

 

 

 

 

 

 

 

진이 빠진 다니엘은 너털거리며 문을 열었다. 문을 열기까지가 마지막으로 종소리가 울린 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5분여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라서, 다니엘은, 혹시라도 문 앞에 아무도 없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뭐하느라 이제 나와. 집에 콘돔 있어?"

 

 

 

 

 

 

하지만 어김없이, 기대는 헛된 바람으로 휘날려 흐르고.

 

 

 

 

"...지금 나 과제하거든."

 

 

 

 

 

 

H였다. 사실, 문을 열기 전부터 반쯤 예측이 되었다. 이 시간에, 목요일 2시 즈음에, 자신이 집에 있다는 것을 확신하며 저리 미친 듯이 종을 눌러대고, 망설임 없이 기다리기 까지 할 수 있는 인물은, H 하나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고 H였으면, 나올 때 까지 이러고 있을 애였다.

 

 

 

 

 

 

 

 

"너가 언제부터 그런 거 신경 썼다고."

 

 

 

 

 

 

 

 

그녀가 너무 당당하게 집을 들어오려 한다. 다니엘, 그걸 보고 서둘러 몸으로서 막았다. 그리곤 아무 것도 없는 것 마냥, 아무렇지도 않게-라고 스스로는 나름의 연기를 해보지만, 겉으로는 '나 여기 뭐 감추고 있소' 하는 티 다 냈다.

 

 

 

 

"..가라 진짜."

 

 

"아니 왜 그래? 언제는 시간 날 때마다 찾아오라며."

 

 

 

 

 

 

...그랬지.

 

 

H와는 사귀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몸은 섞는 사이였다. 말하자면 섹스파트너, 하지만 그보다는 더 우정 어린 관계랄까. 정이 없진 않은 관계였다. 쿨하되 핫하진 말고 웜-정도는 하자, 는게 다니엘과 H, 둘 관계의 정의였다.

 

 

였다, 였었다. 다니엘이, 성우에게- 들러붙기 전까진.

 

 

H는 당연하게. 수상쩍은 다니엘의 움직임에 합리적인 의심을 가졌다.

 

 

그래서 그녀는, 찾아오라며-를 말하며, 순식간에 다니엘의 머리를 한 손으로 젖혀버리고는 집안 내부를 살폈다.

 

 

그리고 그곳엔,

 

 

 

 

 

 

 

 

"...? 옹성우 선배 아냐?"

 

 

 

 

 

 

당연하게도, 성우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나름 정리한다고는 하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오늘 성우가 입고 온 게, 하얀 화이셔츠라. 구겨진 군데군데가 햇빛에 반사되어 다 티가 났다, 다니엘 자신처럼.

 

 

아래로, 셔츠를 당겨 잡아, 티 안내려고 하고 있었나본데, 다 티가 났다. 다니엘 자신처럼.

 

 

우리, 무언가를 했네요, 정말로.

사실 얘 보자마자 형이랑 저, 진짜 그랬나 싶을 정도로, 흐릿해졌었는데.

진짜, 형이랑 저, 했네요.

 

 

그 모습을 보고 다니엘은 띄엄띄엄, 그런 생각을 했다. 일상과 비일상이 만나는 모습이었고, 자신의 평범함과 특별함이 만나는 순간이었다.

 

 

 

 

"너 선배랑 친했어? 야 그럼 나도 좀 소개해주지."

 

 

 

 

H가 달라붙으며- 달라 붙지 마 씨발.

 

 

그렇게 말했다. 씨발  왠지 모르게 좆같았다, 하지만 뿌리칠 수 없었다. 다니엘, 자신의 24시간, 일주일, 한 달, 일 년엔, 아직 평범함이 더 많았다. H, 꼴에 과 인싸라서, 그 평범함에 너무 깊게 연관되어 있는 애였고.

 

 

 

 

 

 

"..니가 왜."

"나 잘생긴 사람 좋아하잖아."

 

 

 

 

 

 

그래서 기운 없이 천천히 얌전히, 그렇게 말하니 H, 당당하게 확고하게, 자신의 취향을 말한다.

 

 

 ...그 대답에 다니엘이 할 수 있는 말, 딱 하나 밖에 없었다.

 

 

 

 

 

 

 

 

"꺼져."

 

 

 

 

 

 

H는 꺼져라는 말을 듣자마자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 왜, 나도 소문의 그 옹선배랑 얘기해보고 싶었단 말야."

 

 

 

 

 

 

성우가 이 표정 할 때는, 퍽이나 귀여웠었는데.

 

 

H가 하는 표정이 역겨웠다. 예전엔 예뻤는데, 지금은 역겨웠다.

 

 

성우를 이렇게 깊게 생각하게 된지, 분명 얼마 안 된 것 같았는데.. 벌써 평범함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니, 역겨운 것 보다는 사실, 부러운, 부러워서 절하 해버리고 싶은. 그런-

 

 

 

 

 

 

", 다니엘. , 다음에 와도 되는데."

 

 

 

 

 

 

 

 

H에 대한 복잡한 감상을 속으로 늘어놓고 있으려니, 성우가 어느새 바로 등 뒤까지 걸어와서는 그리 말한다. 다니엘, 놀라서 뒤를 돌아본다. , 벌써 제 짐까지 다 챙긴 모양새였다.

 

 

 

 

 

 

"아니, . 그게,"

 

 

 

 

 

 

변명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변명을 하려는데, 성우는 다니엘 자신의 눈조차 제대로 마주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자신의 가슴팍 언저리에만 애매하게 시선을 얹고 있었다.

 

 

....형은 키스한 거, 좋았을까?

 

 

멍청하게도 갑자기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아- 미안했는데 그보다도, 우선은 다른 그 어떤 것보다, 이 순간엔 그게 제일 신경 쓰였다. 신경 쓰이며-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뭐야 내가 가야되는 분위기 같네?"

 

 

또 등 뒤에서 불이 화르륵 하고 피어오른다. H가 다니엘의 등을 톡톡 건드린다.

앞뒤로 진퇴양난. 난처함에 다니엘, 앞의 성우 뒤의 H 모두 없는 옆을 바라본다. 제 집 현관엔 언젠가 멋있는 것 같아서 사다 두었던 제임스 배리, 피터 팬의 삽화가 걸려있었다.

 

 

 

 

"제발 가라."

 

 

-에서 깨기 싫어.

 

 

돌아보지도 않고 그리 말해본다.

말하자 적막이 순식간에 셋을 감쌌다. 적막- 1, 2, 3.

 

 

 

 

"...이거 때문이었구나. 주당 강씨가 두문불출했던 게."

 

 

 

 

3초가 흐르니 H, 그 적막을 깬다.

 

 

...그랬지, 만 지금은, 이제는 성우 형이..

 

 

생각이 이어지다가 끊긴다. 이걸 인정 할 건가? 정말로?

다니엘, 성우를 바라본다. 성우는 무언갈 참는 듯 한 표정이었다. 웬디를 집으로 데려다 주던 피터 팬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녀의 말 한마디에 서로의 관계, 지속과 이별이 정해지는 상황에서, 피터 팬은-

 

 

 

 

"..., 갈게 다니엘."

 

 

 

 

형이 고개를, H를 향해, 아니 밖을 향해 돌린다.

그리고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발걸음을 옮긴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결정을 내려야 했다, 내려야 했지만, 사실 결정 하고 싶지 않았다. 다니엘은 자신의 우유부단함을 떠올렸지만 그걸 책망하며 바로잡기 보다는 그냥 이 상황이 차라리 빨리 지나가길 바랬다.

 

 

 

 

".."

 

 

 

 

바래서, 그냥 짧게 그 단어 하나밖에 던지지 않았다.

다른 무언가로 잡기엔, 갑작스러운 두 세계의 충돌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그래서-

 

 

...형은, .. 하필이면, 남자에요.

 

 

속으로, 저 자신이 편해지기 위해, 그런 탓이나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탓 때문인지 성우, 집 떠나는 발걸음에 한 점 멈춤이 없었다.

앨레베이터를 기다리지도 않고 계단으로 향한다. -타탁-타닥. 집이 7층이어서, 내려가는 것도 한참일 텐데..

 

 

그 소리를 눈길로 물어물어 뒤 쫓아 보고 있으려니, H가 이번엔 다니엘 가슴을 톡톡 친다. 보고 싶지 않았다, 보고 싶지 않은 동시에, 환상이 사라지고 남은 현실을 마주해야 된다- 라는 상황을 깨닫는다. 깨달아서 다니엘, H에게, 결코 얼굴을 보지 않으며 거칠게 입맞춤을 한다.

 

 

H를 탓할 건 없었다, 성우를 탓할 것도 없었다. 나쁜 건 자신이었다.

그걸 알고 있어도 이 키스, 다분히 감정적인 건 자신이 나쁜 새끼이기 때문이겠지.

 

 

H는 그럼에도 그 키스를 따라왔다. 따라오는 걸 넘어서, 본인이 더 열성적이었다.

 

 

떫고 그윽한 화장품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성우 형은 무슨 냄새였더라.

주고받는 혀 속으로 민트 맛이 느껴졌다. 형은, 내가 이상해 보였겠지.

그녀가 다니엘의 바지, 벨트 언저리에 손을 가져다 댄다. ...하나도 흥분, 안되는데.

 

 

 

 

"존나 못하네."

 

 

 

 

H가 순간 움츠러 드는 다니엘을 발견하고, 신경질적으로 키스를 끝내며 말한다.

변명할 의지도 생겨나지 않았다. 지금 신경 쓰이는 것은 오직, 형은 저와 한 키스 좋았을까- 하는 것. 아니었다면, 형은 어떤 키스를 좋아할까, 역시 여자랑 하는 게 좋겠지. 형은- 자신처럼.. 그런 게 아닐 테니까. 아니려나, 아니면, 나는 어쩌지.

 

 

 

 

"..이런걸 바이라고 하나?"

 

 

 

 

멍하니 그 생각을 곱씹으며 있는데, H, 다니엘이 맞이한 혼란에 종지부를 꽂아버린다.

일순 다리 힘이 풀렸다. 풀려도, 주저앉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신발장을 부여잡고 버틴다. 성우, 성우 형. 피터 팬. 에우리뒤케, 현실과 이상. H-

 

 

방을 가득 채운 여름의 햇빛이, 구름에 가려지는가, 스멀스멀 자리를 비운다.

어둑해지는 방 안에 다니엘과 H가 서있는 현관 또한 옅은 어둠으로 물이 든다.

 

 

 

 

...성우 형, 벌써 내려갔나?

 

 

 

 

7층인데, 계단에서 들려오던 발소리가, 너무 일찍 끝나있었다.

 

 

 

 

 

 

 

 

 

 

 

 

 

 

 

 

 

 

 

 

6.

 

 

 

 

 

 

 

 

 

 

 

 

 

 

그 뒤, 일주일.

 

 

일주일을 원래대로 살았다.

 

 

일주일 동안, 다니엘은 매일 같이 그간 못 갔던-안 갔던, 술자리. 다 채우기라도 하겠다는 듯 꼬박 꼬박 나갔다.

 

 

하루는 남자 동기들과, 하루는 선배들과, 하루는 친했던 과내 동아리 애들과..

인맥이 넓었던 다니엘이었기에, 일주일을 모두 다른 이들로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 하나 그 한 사람을 대신 할 수가 없어서.

 

 

하루는 남자 동기애들한테, 술에 취해서는 너네 혹시 성우 선배라고 아냐고 물어봤었다. 대답은 아, 그 교수님들이 맨날 칭찬하는 선배.

 

 

하루는 선배들에게, 어디서 들어봤다는 척 맨날 교수님들이 칭찬하던 선배 있다던데, 물어봤었다. 대답은 아, , 장학금 받아서 학교 다니는 애.

 

 

하루는 친했던 동아리 애들한테, 스치듯 그 선배 누구야? 성 특이한 선배, 운만 떼어 봤었다. 대답은 아, 그 잘생긴 사람

 

 

어느 하나 제대로 성우에 대해 아는 이가 없었다.

 

 

대략적으로, 어렴풋이, 흐릿하게.

 

 

존재를 알고 있긴 했으나 그 누구도 다니엘이 아는 성우의 모습들까지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술이 깨면 늘 집이었다.

출결이 어떻고 학점이 어떻고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성우와 키스했던 그 자리에 웅크리고 누워 서는 보고 싶다, 나는 아닐 거야. 또 하고 싶다, 내가 왜 게이야. 아니야. 맞아. 아니야- 하는 말들만 머릿속으로 중얼거렸다.

 

 

담배를 피우는 것도, 굳이 아래까지 내려가고 싶지 않아서 집안에서 피웠다.

아래까지 내려가고 싶지 않은 것도 있었고, 사실- 그동안 그 흡연장이 어딘가 좀, 보통의 생활반경과는 떨어져- 이질적이었다고 생각해 왔었기에, 그래서 가고 싶지 않는 것도 있었다.

 

 

이질적인- 비일상인- 특이한- 조금이라도 그런 게 연관된 것을 굳이 짚어가며 살고 싶지 않았다.

 

 

가시지 않은 취기에 목이 말라 물을 찾다보면, 탁자에 놓인, 성우 앞에서 쓰고 있었던 제 '고백'이란 주제의 글 적힌 원고지가 보였다.

담뱃재를 터는 재떨이가 탁자 위에 있었어서, 담배를 필 때면, 성우가 좋다고 했었던, 저가 쓴 '사랑을 시작하는 두 남녀의 고백' 원고지가 보였다.

 

 

일주일의 마지막 날엔 손수 그 원고지를 태웠다. 태우면 멋있을 것 같아서- 그래서 태웠다.

 

 

다니엘은 그렇게 비정상적인 일주일을 보냈다.

 

 

 

 

 

 

 

 

 

 

 

**

 

 

 

 

 

 

 

 

 

 

일주일을 정말로 두문불출 하다 보니 어느새 이른 장마가 시작되고 있었다.

 

 

교수동 3, 앨레베이터에서 내리면 바로 지척에 있는 휴게실. 벽면도 유리로 되어 있어서 누가 안에 있는지, 누가 바깥을 지나가는지 안과 밖의 사람 모두 훤히도 다 보이는 곳.

꽃이 잘 필 수 있게, 나무가 잘 자랄 수 있게, 유리 천장으로 되어 있는 곳- 이었지만 오늘은 햇빛 대신 줄 창 때려대는 빗소리만 바깥까지도 훤히 다 들릴 만큼 세게 울려 퍼지고 있는 곳. 빗소리만 가득이여서, 어둑하니 을씨년스러운, 흡사 귀신의 숲과도 같은 이 곳.

 

 

이곳의 한 가운데에.

 

 

 

 

"성우 형."

 

 

 

 

문을 열며 다니엘이 말했다.

그 순간 번쩍하고 온 세상이 환해진다. 그런 다음 몇 초 있다 쾅-하는 벼락의 소리.

 

 

성우가 그 굉음에 놀라 인사를 받을 새도 없이 움찔하며 반사적으로 눈을 감는다.

 

 

, 귀엽다.

 

 

예고도 없이 잠적하고, 며칠 만에 나타난 것이었지만. 예고도 없이 나타나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함부로 그를 부른 것이었지만.

 

 

다니엘은 그 모습을 보고, 저가 지금 해야 하는 '그냥 며칠 무슨 일 있었어요. 걱정했어요? 걱정 마요. 그냥 앞으로 쭉 잘 지내면 되요' 따위의 태도 싹 잊어버린다.

그저 귀엽다는 생각만, 그저 한 번 더 키스하고, 한번을 넘어- 더 나아가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잖아.

 

 

그런 생각들을 스스로 삼키기에도 버거웠는데, 형도 그래요? 묻는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결국 할 말을 잃어버린다.

 

 

조용히 형 옆으로 가서 앉는다. 형이, 다행히 자연스럽게 "오랜만이네"하고 말을 걸어준다. 할 말이 없었는데, 아직도 할 말은 없는데.

그래서 다니엘, 그저 쓴 웃음을 짓는다. 부디 이 웃음이 지난날의 잠적뿐만 아니라 그 날 있었던 자신의 모든 행동들을 다 해명 해주길 바라며.

 

 

 

 

창밖으로 빗소리가 흘러 넘쳤다. 창 안으로는 성우의 자판치는 소리, 다니엘의- 그런 성우 지켜보는 시선의 소리.

 

 

여름이었지만 서늘한 한기가 휴게실을 가득 메웠다.

다니엘, 성우가 입은 반팔, 아래로 얼핏 솟아오른 닭살들을 본다. 보고 나선 저희네가 앉아있던 테이블을 제 검지로 톡톡 건드린다.

자신의 손바닥 안엔 열기가 가득이었다. 얄쌍하게 드러난 저 팔을 잡는다면, 잡아준다면, 잡혀준다면. , 서로 윈 윈일텐데.

 

 

적당히 하자고 생각했었는데, 아직 이 모양이었다. 입고 있던 셔츠 단추, 위로부터 하나. 빠르게 풀어버린다.

 

 

 

 

성우처럼 무언갈 쓰려고 온 것도 아니었기에, 딱히 할 게 없었다.

그래서 핸드폰이나 들여다보려는데, 다시 벼락이 떨어졌다. 이번엔 하늘 저 편에서가 아니라, 보고 싶었던 그에게서.

 

 

 

 

"..그 친구랑은 사귀는 사이인거야?"

 

 

 

 

다니엘은 팔다리가 굳어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었지만 내색치 않았다. 않으며, 그저 보려던 핸드폰만 마저 볼 뿐.

오늘의 날짜, 유월 구일. 종강은 이주 뒤였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면 형이랑 여행이나 가고 싶었다. 여행까지 같이 갈 정도로 친해졌는가 하는 의문이 들긴 했지만, 억지라도 부려볼까 하는 모험심도 들었다.

 

 

 

 

"."

 

 

 

 

어리광 피우고 싶어졌다. 다니엘, 성우의 손을 잡는다.

형은 모든 걸 이해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천재고, 착하고, 잘생기고. 그런 형이니까, 부족한 자신정도는 좀 봐주지 않을까.

키스까지 해줬잖아- 키스까지 해준 형답게 성우는 자길 붙잡는 그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뿌리치지 않는 것을 넘어 오히려 손을 건네주기까지 했다.

 

 

 

 

"미안."

 

 

 

 

건네주며, 사과까지도.

 

 

왜 사과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서늘한 그의 손을 잡은 게 좋아서, 다니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온 몸이 얇은 사람이었는데 유독 손만큼은 말랑말랑하고 폭신했다. , 또 한군데 말랑할만한 곳이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하면 좀 그런가. 하지만 말랑한-이란 단어를 볼 때면 항상 성우의 뒤태가 떠올랐다.

 

 

 

 

"아무 사이 아니에요. 진짜."

 

 

 

 

빗줄기가 살짝 약해져 유리 천장을 두드리는 소음이 살짝은 잦아들고 있었다.

가볍게 다니엘은, H와 자신과의 관계를 부정했다. 부정하며, 정말로 내가 사귀고 싶은 게 누구인데- 하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었다.

 

 

 

 

"..귈 수도 있지. 예쁘잖아."

 

 

 

 

형의 손바닥 안쪽을 꾹꾹 누르고 있는데, 성우, 그 손바닥 누르고 있는 다니엘 제 손을 가볍게 쥐며 말한다.

그 손길에 다니엘은 모든 저가 하고 있던 행동을 살짝 멈춘다.

 

 

 

 

"너도 잘생겼고.. 잘 어울리던데."

 

 

 

 

멈췄다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만큼의 시간 잠깐 흐른 다음에, 제 눈썹을 다른 한 손으로 긁적이는 것을 기점으로 숨을 다시 내쉬기 시작한다.

 

 

 

 

"아니라고요."

 

 

 

 

목소리에 힘을 최대한 빼자고 생각하다 보니 쥐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화가 느릿느릿 이어지다 보니 어느새, 손에 들어 차있던 성우의 손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교수동 3, 지난 학기 동안 둘, 함께 해왔던 휴게실. 유리의 벽으로 둘러 쌓여 있는 이곳에 오면, 다니엘, 성우와 이 전처럼 똑같이 지낼 수 있을 가라고 반쯤 확신했었다. 꽃이 잘 필 수 있는 이곳에서, 나무가 잘 자랄 수 있는 이곳에서, 둘의 관계, 자신만 선 넘지 않는다면 모든 게 괜찮아 질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기에..

 

 

하지만 오늘은 햇빛 대신 우울이 가득했다. 우울함과 어렴풋이 느껴지는 비극의 전조만 가득이었다.

 

 

그 전조는 다니엘 제 가슴 속에서 울컥거리는 역겨운 충동과 괴이한 파란의 덩어리들. 꾹꾹 눌러 담아도 불쾌하리만큼 깜짝스레 튀어 올라대는 B급 공포영화 같은 욕망.

 

 

 

 

"알고 보니까 그 친구 나랑 교양 같이 듣더라구."

 

 

"..?"

 

 

 

 

무언가 잘못 끼워 맞춰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갑작스레 무너지는 게 아니라, 토대부터가 잘못 되어서.

 

 

 

 

"3일 전쯤에, 마주쳤거든."

 

 

"뭐라 해요?"

 

 

"딱히 별말은 아니고.. 그냥 자기 글도 봐달라고."

 

 

"그래서요?"

 

 

"?"

 

 

 

 

그래서 스러지는 모래성을, 급하다고 아무렇게나 흙을 더하는 것과 같이, 순간을 붙잡아 보려 했지만.

 

 

 

 

"..알겠다고 했는데."

 

 

 

 

-콰콰쾅

 

 

 

 

성우가 또 움찔 했다. 그러자 다니엘은 움찔하는 성우의 손을 아까보다 더 세게 쥐었다.

 

 

 

 

"걔 글에 대해 진짜 아무 관심도 없어요. 우리 과, 성적 맞춰 들어온 애에요."

 

 

 

 

다니엘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살펴보자면, 그는 이런 말 할 사람이 아니었다.

과내에선 무슨 일이 있어도 그저 허허 웃기만 하는 실없고도 좋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고, 대외 활동을 할 때에도 그는 딱히 별다른 성격상의 오점을 내비치는 일이 없었다.

성격상의 오점, 이를테면, 지금 그가 하고 있는 남 흉보는 일이라던가 하는 것들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주관적으로도 그게 위선적인 발상의 태도는 아니었다. 필요에 의해서 흠집을 물고 늘어지는 것은 스스로도 속이 불편했다.

 

 

그래서, 다니엘은 몰랐다.

 

 

 

 

"네가 뭔데 그런 얘길 해 강다니엘."

 

 

 

 

뒷담을 할 때는 주변을 살펴야 한다는 사실을.

 

 

 

 

..너는 왜 이럴 때만 나타나냐.

 

 

 

 

"...."

 

 

 

 

H는 휴게실 문 앞에서, 클리셰처럼, 팔짱을 끼고 서있었다.

다니엘은 깜짝 놀라는 것 보다 기가 찬 심정이 더 컸기에, 차라리 한숨을 내쉬었다.

 

 

놀란 것은 다니엘보다 성우가 더 놀라있었다. 아까 벼락 소리에 놀라던 것들보다 훨씬 더 놀라서는  "그게, 다니엘은 그게 아니라," 로 시작되는 변호를 준비하려 했다.

하지만 H는 그런 성우의 시도를 가볍게, "아니에요, 뭐 없는 말도 아니긴 한데." 정도로 마무리 짓는다. 짓고는, 잠시간 성우 옆에 앉아있는 다니엘을 내려다 봤다.

 

 

 

 

머피의 법칙은 선택적 기억 때문이란 게 떠올랐다.

실패할 확률이 매우 적은 일을 할 때, 일이 아무 문제없이 해결되면 그건 당연하다 생각해서 기억하지 않기 때문에, 실패한 일만 기억하는 것이라고.

그러면 성우와 다니엘 자신이, 이렇게 계속 하필이면, 하필이면 하며 엇나가고 있는 것은?

H 때문에? 아니면 혹시, 애초에 실패할 사이니까 하필 만 기억되고 있는-

 

 

계속 하필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이게 원래 법칙 아닐까. 형을 좋아하면 안 된다는, 절대 이뤄질 수 없다는. 그래서 그 법칙을 증명하는 공식들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고-

 

 

 

 

"...그래도 기분은 나쁘네."

 

 

 

 

H, 그 말을 내뱉듯 던지고 나선 문 밖을 향한다.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성우, 다니엘에게 "나가 봐야지.'하고 낮게 말한다.

모든 순간이 웹툰처럼, 스크롤 내리듯 한 컷 한 컷 지나가고 있었다. 다니엘, 손에 쥔 성우의 손을 물끄러미 본다. 꼼지락 거리는 작은 손이 거기에 있었다.

무게가.. 무거웠으나, 방금 전 내려앉은 마음보다는 가벼웠다. 가벼운 것 같았다. 가볍다고 생각해야, 지금까지 살아 왔던 것처럼 계속 평범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다니엘, H가 나간 문 밖으로 헐레벌떡 따라 나갔다.

 

 

힐 신은 것 같았는데, 발걸음이 굉장히 빨랐다. 어느새 H, 저 멀리 있는 비상구 계단 앞 까지 가있었다.

황급히 그녀를 붙잡는다. 그녀도 성우도 잘못 한 게 없었다. 애초에 안 될 걸 시작하고 있는 자신이 문제였다.

 

 

 

 

"."

 

 

"놔 이거."

 

 

 

 

-

 

 

 

 

손이 뿌리쳐짐과 동시에 뺨에 번쩍-하고 쓰라림이 느껴졌다.

 

 

..그래 맞아도 싸지.

 

 

 

 

"지금 뭐해 다니엘?"

 

 

 

 

지금 뭐하냐고, 모르겠는데.

 

 

다니엘은 찰나에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하는 제 뺨을 만졌다. 만지며, 돌아간 고개를 수습하려는 의지마저 잃는다.

뺨이 아파서가 아니라, 뇌가 아팠다. 저 질문에 대체 무슨 대답을 해야 하나.

 

 

 

 

"....이거는 미안한데,"

 

 

 

 

텅 빈 탱탱볼같은 대답을 해본다. 텅 빈 탱탱볼은 아이보리색 교수동 복도 벽에 부딪혀 픽하고 찌그러진다.

그러자 H가 한숨을 쉰다. 쉬고는,

 

 

 

 

"네 입장에서는 내가, 되게 좆같겠지. 좆같고 같잖고 그렇겠지. 다니엘, 근데."

 

 

 

 

아니, 그런 게 아닌데. 아닌데. 아닌데.

 

 

벌떼처럼 말을 쏘기 시작하는 그녀를 닥치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뺨을 만지던 손으로 어중간히 귀나 매만질 정도의 대처밖에 할 수 없었다. 할 말이 없어야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다니엘 자신은.

 

 

 

 

"너 지금 뭐하는 거냐고."

 

 

 

 

그런 자신에게, H, 너무하는 거 아니냐.

 

 

옛날 폐차장의 무겁고 거대한 쇠구슬, 그게 제 가슴을 퍽하고 내리치는 것 같았다.

질문의 무게가 그랬다. H는 거의 모든 걸 아는 눈치였다-

 

 

 

 

"성우 선배랑 자고 싶니?"

 

 

 

 

, 제발.

 

 

거의가 아니라 다, 모두 다, 알고 있었다.

입 밖으로 내보인 적 없었는데, 여자는 이만큼 무서운 존재라는 걸까. 어떻게 알고 있었다.

부정을 해야 했는데, 부정 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자신을 부정하는 게 더 쉬울 만큼 쇠구슬의 무게는 어마어마했다.

너는 비정상이고, 나는 정상이니까, 그러니까- 죽으라고 하는 것 같았다.

 

 

 

 

"너 진짜, 게이야?"

 

 

 

 

...혹시 얘가 여자여서 아는 게 아니라, 그냥 내가 너무 많이 티를 냈나.

 

 

다니엘은 그 무게에 짓눌려서 뇌가 터져버린듯, 생각 없이 그런 마음이나 스쳐 떠올렸다.

뇌가 짓눌렸지만, 심장은 오히려 압력에 튀어오른걸까. 그런 걸까- 성우 형도 알았으면 어쩌지.

 

 

그래서 H의 저 말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if의 상황을 가정하고 상상해버려서.

그 상상에 대답한다. 성우가 자신이 그를 사랑한다는 걸 알고, 지금의 H와 마찬가지로 저를 멸시하려하며 저 질문을 던졌을 때.

 

 

해야 하는 대답을 뱉는다.

 

 

 

 

"....아니라고. 그런 거."

 

 

 

 

-그때는 이렇게 맥없이 대답하면 안될 텐데. 키스하면서 발기까지 해버려가지고, 티 거의 다 났을 텐데.

 

 

 

 

"...증명 해 봐."

 

 

 

 

문득 자신이 성우를 사랑한다-라는 말을 끝까지 떠올린 게, 지금이 처음이란 걸 깨달았다.

성우 형, - 까지만 생각했었다. 사랑해라는 말, 혼자 생각하는 건데도 무서워서 다 완성시킬 수 없었다.

늘 키스하고 싶다, 만나고 싶다, 보고 싶다- 는 욕망에 울퉁불퉁한 말들만 만져대고 있었다 .

 

 

근데, 오늘에서야. 끝의 끝까지 몰려서야 그 말을 매끈히 완성 시킬 수 있었다.

 

 

완성은, 했는데.

 

 

H에게 다가간다. 다가가서, 눈을 감고 입을 맞춘다. 감흥이 없어서 어떻게 어떻게 하자는 생각도 없었다.

그냥 입을 맞추고 가만히 있었다.

 

 

완성은 했는데 완성을 한 게, 고작 이런 순간을 넘기기 위해서라니, 가정을 하기 위해서라니.

..완성하자마자 망가뜨려버리는 고백이라니.

 

 

 

 

처참한 심정으로 입을 대고 있는데, H가 제 입을 뗀다.

 

 

 

 

? 나는 이게 최선인데. 이 정도로 믿어주면 안되냐.

 

 

 

 

 

 

의문에 다니엘은 눈을 떴다.

 

 

 

 

, 눈을 뜨니. 뒤에서 씨발 대체 왜 인기척이.

 

 

 

 

".... 그냥, 걱정돼서. 싸우는 게 아닐까 해서."

 

 

 

 

발성이 정확해서. 땡땡하다 생각 들 정도로 울림 좋은 목소리.

뒤를 돌아 볼 수도 없었다. 분명한 현실을 관측해 확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비상구 계단, 문 위에는 어디론가 달려 나가는 사람 그림. 초록색으로 옅게 빛나고 있는.

 

 

저기로 나가면 이 상황에서 도망칠 수 있나.

 

 

 

 

"미안, 자리 피해줄게."

 

 

 

 

성우를 등진 다니엘은 성우의 느린, 질질 끄는 발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일그러졌다.

어떤 상황에도 자신은 성우를 잡을 수 없었다.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에.

 

 

 

 

"이따위 도발에도 넘어갈 거면서, 티는 왜 내니? 등신 같이."

 

 

 

 

H가 씁쓸한 표정으로 멈춰버린 다니엘의 볼을 툭툭 건드렸다.

그녀를 원망 할 수 없었다. 이 상황에서, 너무한 것은 다니엘 자신이었다. 자신의 감정만 빼면 모든 게 말이 됐고 넘치거나 모자람이 없었다.

 

 

 

 

"다니엘, 노선 똑바로 해. 갈 거면 가고 말거면 말아. 하지 말란 거 아냐. 갈팡질팡 하지 말란 거야."

 

 

 

 

갈 수 없으니, 말아야 했다.

정상적인 세상의 정상적인 사랑에만 당당해 질 수 있는 자신이라면, 성우에게 어떠한 무언가도 드러내선 안됐다.

 

 

콰콰쾅-

 

 

멀리서 천둥소리가 또 들려왔다.

 

 

성우 형, 내려가다 또 움찔 하는 것 아닐까.

 

 

성우 형, 내가 잡았다면, 나한테 움찔 했을까.

 

 

 

 

 

 

"그딴 어줍잖은 마음에 다치는 거 너 혼자 아냐. 정신 차려."

 

 

 

 

 

 

H는 그 말을 끝으로 다니엘을 스쳐 지나갔다.

 

 

 

 

 

 

 

 

 

 

 

 

 

 

7.

 

 

 

 

 

 

 

 

 

 

 

 

 

 

 

 

그 후로 이상한 소문이 퍼졌다.

 

 

 

 

 

 

 

 

 

 

처음은 그 이튿날, 아침 수업을 같이 듣는 A였다.

 

 

-교수동에 있는 휴게실. 그 층 남자 화장실에 누가 다니엘, 좋아해- 라고 써놨다더라. 뭐로 쓴 건지 잘 지워지지도 않아서 청소 하는 분께서 투덜거리셨다- 라고.

 

 

 

 

그 다음은 그 다음 다음날, 오랜만에 축구 같이하기로 한 선배들 무리. 그 중 B였다.

 

 

-오늘 또 써놨다더라, 무슨 페인트 펜같은 거로 써놓은 거라더라. 다니엘, 좋아해. 남자 화장실에 써놔대는 거니까 여자애는 아니지 않겠냐

 

 

 

 

그 다음은 주가 바뀌고, 월요일. 시험 기간에도 술만 마셔대는 과내 동아리, 후배 C였다.

 

 

-D가 교수님이랑 면담할 게 있어서 그 층에 갔었는데, 성우 선배란 사람이 휴게실에 있었다더라. 그 선배 맨날 거기 있는 다던데. 혹시..

 

 

 

 

불이 본격적으로 붙기 시작한 것은, 그 이야기가 들렸던 그 날 저녁. E에게서 였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었다.

 

 

-소문이 진짜에요? 성우랑 글 쓴다고 거기 자주 들렸었다면서요. 다니엘.. 후배죠? 제 친구가 그러는데, 오늘 성우가 그 화장실에서 나오는 걸 봤다고...

 

 

 

 

 

 

 

 

 

 

 

 

 

 

**

 

 

 

 

 

 

 

 

 

 

 

 

 

 

명교수의 기말 과제. 에세이, 주제는 배신이었다.

 

 

간간히 내는 레포트나 이전에 냈던 중간 과제와는 달리, 기말 과제는 꽤나 까다롭게 채점한다는 게 유명했던 터라.

다니엘은 잘 쓰지도 않던 안경마저 써 가면서 새벽까지 과제에 몰두했다.

 

 

그러던 중

문자가 왔다. 집중하고 있던 다니엘은 서둘러 핸드폰을 확인했다. 발신자 F.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오늘 G가 거기 휴게실 가서 직접 물어봤대. 혹시 이상한 소문 퍼지는 거 아시냐고. 걱정된다고.

 

 

 

 

핸드폰 옆으로 타두었던 커피가 모락모락, 김을 내고 있었다. 싸늘하게 식는 피부에 서둘러 그것을 마신다.

다니엘의 방 안엔 그 어떤 식물도 없었다. 그 어떤 햇빛도 없었다. 새까만 어둠만이 진창이라, 질퍽질퍽한 종말의 촉감이 군데군데 묻고 있었다.

 

 

 

 

-걱정 하지 말라더라. 상관하지 말라하면서 쫓아내더래. 싸가지 1도 없다고 하던데, 그 사람이랑 왜 친하게 지낸 거야?

 

 

과제 때문에.

 

 

-뭐 낌새 같은 거 없었어?

 

 

몰라, 없었어.

 

 

-너는 아니지?

 

 

 

 

 

 

도심 한복판이라, 아직 밤 한복판이라, 들릴 리 없는 닭 울음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F가 마지막으로 보낸 메세지는 기프티콘이었다. 요새 잘나간다는 은색 동전 모양의 포장이 인상적인 초콜렛 세트. 함께 온 메세지는, 시험 기간에 너도 복잡하겠다. 걱정되니까 먹고 해.

 

 

 

 

걱정, 내가 지금 걱정하고 있는 게 뭐지. 걱정해서, 두려워하고 있는 게 뭐지. 쟤들이 걱정하고 있는 건 뭘까.

 

 

 

 

옆에 내려놓았던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마시고 난 뒤, 30초 정도는 따듯한 온기에 취해 먹먹한 공포의 발소리를 잊는다.

세 번의 부정엔 어떤 망설임도 없었다. 그 대가로 얻은 것은 30초 정도는 쉴 수 있는 여유. 그리고 초콜렛.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그 혼잣말을 중얼거린 뒤 다니엘은 과제에 다시 빠져 들었다. 소문이 돈 뒤로 부터 계속 그랬듯 생각하는 것을 그만 두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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