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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녤옹

 

 

월간 4월호 부터 이어지는 시리즈입니다.

 

 

 

인공호흡 6

 

예하 C

 

 

 

 18.

 

  언젠가는, 생각했다. 지나가겠지. 반드시 지나가겠지. 매일이라도 먹고 싶던 음식이 거짓말처럼 질리듯, 언젠가는 잊혀지고, 지나가고, 그저 가볍게 웃거나 미소를 지으며 지나갈 수 있는 그런 일이 되겠지.

 

 

 

 당연히, 그건 착각이었다.

 

 미련은 생각보다 더 지독했고, , 아팠다.

 

 

 

 

 

 

 

19.

 

 [.]

 

 [내 아파요.]

 

 

 

 

 

 연습을 마치고 샤워를 한 후 머리를 말리며 연 사물함에서, 성우는 기어이 휴대폰을 열어 그 메시지를 보고야 말았다. 차마 지우지 못했던 대화창이었다. 지우지도 못하면서 보는 것이 괴로워, 성우는 늘 최소한으로 메신저를 확인했고, 그래서 그의 친구들이나 그에게 연락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언젠가부터 메신저가 아닌 문자나 전화를 선호했다.

 

 

 

 나도 사랑해, 다니엘. 그렇게 성우가 보냈던 마지막 메시지 바로 아래에, 다니엘이 몇 시간 전에 보낸 메시지가 있었다. 언젠가부터, 성우가 끝내자고 말한 이후 성우도 모르는 언젠가부터 표준어를 쓰던 다니엘이었다. 사투리 억양이 아주 약간 남은 채로도 잘만 표준어를 쓰던 다니엘이, 메신저로 다시 사투리를 쓰고 있었다.

 

 

 

 

 

 메신저로는 표준어 쓰더라.’

 

 내 표준어 잘해요. 말하는 거야 아직 습관이 안 되가 글타 안 하나.’

 

 귀여워서 나는 좋은데.’

 

 형이 그렇게 말하면 내 메신저로도 써야 할 거 같은데.’

 

 

 

 

 

 그렇게 말하더니, 정말로 그 직후부터 다니엘은 꼬박꼬박 메신저로도 사투리를 썼다. 말할 때야 그렇다치고 메신저로도 그러려니 부끄럽다면서, 성우의 귀엽다는 말 한 마디에 잘도 쓰는 게 귀여워서 성우는 다니엘의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가슴을 꽉 눌렀다. 빠르게 뛰는 심장이 금방이라도 가슴을 찢고 튀어 나올 것만 같아서.

 

 

 

 성우는 물방울이 떨어지는 머리를 털 생각도 않은 채 한참이나 서서 휴대폰 화면을 노려 보았다. 꺼지기 전 화면이 어두워지면 손가락을 움직여 다시 환해진 화면을, 한참이나. 그러면 바뀔 것처럼. . 내 아파요. 간결한 메시지는 정말로 진심인 것 같았다. 원래 다니엘은 조악한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렇게나 곧고, 솔직하고, 거짓 한 점 없는 마음은 성우에게도 늘 닿아왔던 그대로였다.

 

 

 

 가야, 할까.

 

 

 

 성우는 오래 고민했다. 가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게 굳게 마음 먹고 끊어냈으면서, 이 정도에 마음이 약해져서 가면 어떻게 하려고. 아프고 괴로워하는 그 애를 보면 다시 돌아갈 수도 있었다. 너도 힘들고 나도 힘든데, 우리가 어떻게 서로 괴로워하면서도 헤어지겠니. 다시 보자. 다시 만나자. 우리 다시,

 

 

 

 사랑하자.

 

 

 

 그렇게 말할 것만 같았다. 안 돼. 절대로 안 돼. 내가 어떻게, 어떻게 너를 다시 보겠니. 그렇게 너를 버리고, 나를 질책하고, 괴로워하고, 이 세상에서 혼자 남은 것처럼 버텨냈는데. 너를 잃고서야 겨우, 그나마 이전의 그 고요한 상태로 돌아왔는데. 비록 무덤 같은 침묵이었지만, 겉으로나마 고요하고 평온한 일상을 이제 겨우 다시 불러들였는데.

 

 

 

 하지만…….

 

 

 

 부질없는 것을 알면서도, 성우는 결국 다니엘을 거절하지 못할 것을 직감했다.

 

 

 

 

 

 

 

20.

 

 다니엘의 자취방은, 성우가 제 집만큼 자주 드나들어던 곳이었다. 성우가 지내는 오피스텔에서 딱 10 분만 걸으면 나오는 곳이었다. 뛰면 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때로는 다니엘과 함께, 보통은 서로가 너무나 보고 싶어 한 쪽이 그 짧은 기다림을 참을 수 없어 뛰어 다니던 길이었다.

 

 

 

 자취방 앞에 선 성우는, 괜스레 손에 쥐고 있던 죽 봉투의 손잡이를 다시 고쳐 쥐며 한숨을 삼켰다. 학교 정문을 나와 죽집과 약국에 들러 가장 몸에 좋고 비싸다는 죽과 짐작가는 모든 약을 산 제가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전해 주고 그냥 갈까. 아니면, 문에 걸어 두고, 챙기라는 말만 메신저로 남겨 둘까.

 

 

 

 

 

 얼굴을 봐서 어쩌겠다고.’

 

 

 

 

 

 이미 끝난 사이였다. 그저 선후배로 돌아가기로 했다. 다니엘도 그것을 납득했고, 성우도 그것을 받아 들이기로 했다. 겨우 정리를 하고 조금이나마 숨 쉬기가 편해진 게 아니냐고 애써 스스로를 설득했는데, 그것을 제 손으로 다시 허무는 기분에 견딜 수가 없었다.

 

 

 

 한참이나 고민한 뒤, 성우는 너무 힘을 꽉 쥐었던 탓에 아린 주먹에 힘을 빼며 빈 손을 들어 도어락을 열었다. 잠시 망설였다가, 번호를 하나하나 조심스레 눌렀다. 9, 5, 0, 8, 2, 5……. 도어락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쉽게 열렸다.

 

 

 

 다니엘, 누군가의 생년월일로 비밀번호를 설정하지 말라고 했잖아. 성우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바뀌기 이전의 번호는 두 사람이 사귀게 된, 즉 다니엘이 고백을 한 날짜였다. 비밀번호를 슬슬 바꾸는 게 어떻겠냐고 하자, 다니엘은 웃으며 성우의 눈 앞에서 설정했다. 누군가의 생년월일로 하지 말라고 하자, 다니엘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내 생년월일 아니면 된 거 아니에요.?’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뻔뻔하게 구는 다니엘을, 성우는 늘 이길 수가 없었다. 너무나 당당하고, 그것이 또 너무 사랑스러워서. 성우는 다니엘과의 관계에서 늘 패자였다. 다니엘은 제가 꼭 아래인 것처럼 성우에게 굴었지만, 성우는 사실 자신이 늘 다니엘과의 관계에서 지고마는 걸 잘 알았다. 그걸 다니엘이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연애는 더 좋아하는 사람이 지는 거라는데, 성우는 늘 다니엘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다니엘이 자신을 좋아하는 것보다 덜 좋아한다는 말을 수긍할 자신이 없었다. 하루하루 더 좋아졌고, 더 빠졌고, 더 행복해서.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가자, 욕실 탓에 생긴 짧은 복도 너머 한 칸으로 이루어진 집이 조용했다. 적당히 어지럽혀진, 그래서 다니엘의 성격을 잘 반영하는 집은 늘 주인을 닮아 활기찬 에너지가 가득했는데. 아프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물론 그걸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성우는 의심하지 않았다. 손에 들린 것들이 성우의 믿음을 대변하고 있었으니까.

 

 

 

 

 

 다니엘.”

 

 

 

 

 

 조용히 신발을 벗으며 성우가 다니엘을 불렀다. 대답은 없었다. 성우의 부름은 갈 곳을 잃고 쉽게 스러졌다. 성우가 괜히 기척도 숨기고 싶은 마음에 천천히 발소리를 죽여 집 안으로 몸을 들이자, 한 켠에 놓인 침대 위에 커다란 인형을 끌어안은 채 잠든 다니엘이 보였다. 이불은 아슬아슬하게 허벅지에 걸쳐져 있었고, 침대 밖으로 뻗은 손 아래에는 떨어트린 것처럼 널부러진 휴대폰이 보였다.

 

 

 

 제게 보낸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의식을 잃듯이 잠이 든 것 같았다. 늘 세상 모르고 자던 순진무구한 표정이었는데, 아프기는 아픈 건지 표정이 심각했다. 이따금씩 앓는 소리를 내는 것도 같았다. 성우는 잠시 가만히 서서, 다니엘을 가만히 들여다 봤다. 어쩐지 수척해진 것 같았다. 괜찮은 것 같았는데. 아파서일까. 아니면 내 어리석은 바람이 만든 착각일까.

 

 

 

 무익한 고민은 길지 않았다. 어쨌든 다니엘은, 환자였다. 성우는 작은 식탁에 제가 사온 것들을 내려 두고, 잠시 고민했다. 다니엘의 병명을 알 수가 없었다. 깨어 있질 않으니 약도 먹일 수가 없었다. 환절기니까. 다니엘은 비염도 없었으니까. 아마 감기가 아닐까.

 

 

 

 약국 봉지 안에서 쿨 패치를 꺼냈다. 열이 난다면 이게 제일 좋다고 해서 산 것이었다. 쿨 패치를 들고 잠시 서성이다가, 한숨을 다시 삼키며 조심스럽게, 다니엘이 깨지 않도록 이마에 손을 대 보았다. 역시나 펄펄 끓는 것 같았다. 성우는 쿨 패치 포장을 뜯어, 반듯한 이마에 조심스럽게 쿨 패치를 붙였다.

 

 

 

 그렇게 하고 나니 어떻게 더 할 것이 없었다. 약도, 죽도 다니엘이 일어나야만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성우는 메시지를 남겨 놓고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으나, 막상 다니엘을 보고 있자니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오랜만에 이렇게 봤는데, 왜 아프고 그래.”

 

 

 

 

 

 깊게 잠든 것 같아, 속삭이듯 말을 걸었다. 너무 보고 싶었고, 너무 그리웠다. 늘 수영장이나 학교에서 볼 수 있었지만, 더는 제 것이 아닌 다니엘을 보는 건 마치 다른 사람을 보는 것처럼 괴로웠고 쓸쓸했다. 다니엘의 빈 자리는 생각보다 컸고, 공허했고, 어떤 것으로도 다시 채울 수가 없었다.

 

 

 

 

 

 나는, 다니엘. 그동안 정말, 너무나도.”

 

 

 

 

 

 잠든 사람에게 말하면서도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네가 보고 싶었어. 그리웠어. 아직도 네가 좋아. 너 없이는 못 살 것 같아. 다시 돌아가고 싶어. 그 중에서 어떤 말도, 감히 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런 말을 하는 건 성우에게 허락된 것이 아니었다. 먼저 헤어짐을 고하고, 먼저 그를 버렸다.

 

 

 

 죄는 깊었고, 성우는 죽어도 그런 말을 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 있던 성우는 결국, 고개를 떨어트리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죽이랑 약, 잘 챙겨 먹고, 빨리, 나아.”

 

 

 

 

 

 눈물이 섞인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렸다. 그럼에도, 다스릴 수가 없었다. 결국 성우는, 잠든 사람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가 없어 도망치듯 다니엘의 집을 빠져나왔다. , 가지 말아요. 어디 가요. 나가기 직전 다니엘이 그렇게 말하는 것도 같았다.

 

 

 

 물론, 착각일 것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