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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녤옹

 

 

 

페스티발

나이트

 

 

 

 

 

 

 

 

 

자리를 맡아보겠다고 먼저 오는 게 아니었다. 분명 아침 일기예보는 선선한 날씨를 예고했는데 여름의 시작이라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여름의 습도와 땀에 젖어 축 늘어진 셔츠가 합쳐져 몸을 더 지치게 했다. 시간아 흘러흘러 오후 4시가 되었고 한풀 꺾여 기울어진 따가운 햇살을 맞으며 5시에 시작될 공연을 기다렸다. 차라리 혼자가 아니었으면 수다라도 떨며 시간이 두 배는 빨리 흘렀을 텐데. 원래 함께하기로 했던 진석이는 본가에 일이 생겼다며 티켓을 어렵사리 양도했고 금방 오겠다던 상현이는 공연이 채 한 시간도 남지 않은 지금까지도 머리카락 한올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공연의 스탠딩을 포기할 수 없는 건 좋아하는 뮤지션의 너무 오랜만의 공연이었고 모처럼 부지런히 움직여 공연에 일찍 도착해 펜스까지 겨우 잡기까지 험난했던 여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미안미안. 진짜 미안해."

 

 

스마트폰을 들어 또 따지려는데 다왔다는 카톡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어디냐고, 나 왼쪽 맨 앞이라고 막 두드리고 확인을 누름과 동시에 상현이 펜스 앞쪽으로 와 금방 얼굴을 보였다. 얼굴을 보자마자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지만 만만치 않게 땀에 젖은 얼굴이라 주먹을 꽉 쥐었다 펴는 것으로 분노(?)를 대신 했다. 목을 쭉 빼 뒤를 돌아보니 시작이 얼마 남지 않아 스탠딩석의 끝이 없어 보인다.

 

 

"넌 저 뒤에서 봐야겠네. 적당히 늦어야 껴줄텐데 너무 늦었잖아."

"... 역시 그런가...?"

 

 

상현이 적당히 주변의 눈치를 봤지만 혹여나 끼어들까 경계하는 눈이 한둘이 아니었다. 끼어들기를 포기하고 주섬주섬 메고 온 가방을 열어 무언가를 꺼낸다. 막 냉장고에서 꺼낸 듯한 맥주캔이다. 상현이 건넨 것들을 두 손으로 받아 얼굴에 대니 천국이 따로 없다.

 

 

"공연 시작합니다. 자리로 돌아가 주세요."

 

 

귀엽고 동글동글 폰트로 '자원봉사'라 적힌 형광조끼를 입은 조금은 큰 덩치의 남자가 다가와 상현에게 툭 내뱉었다. 묘한 억양이라 시선을 좀 더 올리자 밝은 갈색의 뒤통수가 눈에 들어온다. 상현이 알았다고 대충 대답하고는 가방을 정리하는 시늉을 했다. 펜스에서 상체를 빼꼼 더 내밀어 상현의 가방 안을 들여다보고는 야- 부르자 상현이 아차 싶은 표정이다.

 

 

"하나 더 줘."

"싫어. 나 혼자 저 뒤에서 다 깔 거야."

"치사하게. 두개 주면 이 형님이 오늘의 지각벌금은 친히 삭감해 주도록 하겠다."

"에이씨- 나쁜 새끼."

 

 

가방에 세개 더 꿍쳐둔 건 용케 봐가지고. 상현은 뒤적뒤적 하나를 더 꺼내 건네고는 무서운(?) 자원봉사자를 피해 손인사를 건네며 돌아갔다. 상현이 떠난 자리를 확인이라도 하듯 남자가 고개를 잠시 옆으로 돌렸다.

 

, 엄청 잘생겼다. 콧대 엄청 높네. 안경 쓰면 잘 어울리겠다. 속쌍꺼풀인건가. 복숭아처럼 하얗고 보들보들한 피부다. 볼 누르면 그 자리가 핑크색으로 물들 것 같다. 턱 끝에 맺힌 땀방울을 따라 이어지는 곡선이 굴곡하나 없이 매끈해. 귀도 잘생겼네. 귓불에 박힌 실버피어싱이 제법 큰데도 잘어울리는구나.

 

왜 이제 봤지. 계속 여기 있었던 거 같은데.

 

아마도 상현이 오지 않아 내내 지루해하다 얼굴을 보고나니 마음이 풀려서인지도 모르겠다. 공연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딸깍- 치이익- 들고 있던 맥주캔 하나를 따자 등만 보이던 남자가 슬쩍 뒤를 돌아본다. 모서리에 입을 대자 목울대가 위에서 아래로 꿀렁 움직이는 게 눈에 들어왔다. 꿀꺽- 한모금을 천천히 넘기는데 눈이 마주쳐 동시에 푸흐흐 웃어버리고 남자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한모금 드실래요? 침 안뱉었는데."

 

 

남자의 손이 잠시 움찔했다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갈등하는 눈치다. 그의 시선에 걸리게 캔을 살랑살랑 흔들어 보이자 흔들리는 눈동자가 여기까지 느껴진다.

 

 

"땀도 계속 흘리는 거 같구 너무 더우니까."

"......"

"한모금만 해요. 안이를게."

"그럼-"

 

 

두 번째는 거절하지 않는다. 보는 눈이 많음에도 캔을 받아들어 바로 입으로 가져갔다. 진짜 한모금만 마시고 돌려주려는 눈치라 쭈~ ~ 입모양을 하며 위로 위로 손짓을 했다. 시키는대로 꿀꺽꿀꺽 끊김없이 쭉 들이키는데 흐뭇함에 살짝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카아- 마치 맥주 광고라도 찍는듯 시원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큭큭- 이쪽의 웃는 소리에 아차 싶었는지 죄송합니다- 하며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리고는 제법 거리가 있는 쓰레기통에 3점슛 하듯 던져 골인시키자 주변에서도 보고 있던 건지 오오 탄성이 흘러나왔다.

 

 

"자원봉사는 어떻게 하게 됐어요?"

"학교봉사 점수 겸 공연 공짜로 볼 수 있겠다 싶어서요."

"~ 학생이시구나. 대학생."

"......"

"설마 나 고딩한테 술 멕인거?"

"큭큭- 아뇨. 대학생 맞아요."

 

 

놀리는 건가. 놀리는 거 치고는 너무 눈 접고 웃는 게 아닌가 싶고. 그러고 보니 약간 말투에 억양이 느껴진다.

 

 

"집은 어디에요?"

", 고향은 부산인데 지금은 대학로 쪽에... 나 이제 서울말 완전 잘하는데 티나요?"

"안나~ ~"

"지금 복수하시는 거죠."

 

 

큭큭- 작은 복수에 뿌듯해하며 손에 남은 맥주캔도 시원하게 따 입에 가져갔다. 그러는 와중에도 살피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귀는 원래 빨간가. 어깨는 100 넘겠는걸.

 

 

"번호 알려주면 안돼요?"

"... 관객이랑 사적으로 연락하면 안된댔는데."

"그런 규칙도 있어요?"

 

 

귀여운 자원봉사자는 말과는 다르게 먼저 손을 내밀어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건넸다. 번호를 빠르게 입력하고는 다시 건네졌고 이름이라도 물어보려는 찰나 그의 허리춤에 있던 무전기가 그를 찾았다.

 

 

[공연 시작 10분 전입니다. 스탠딩 구역 입장 완료 확인해주세요.]

"A구역 입장완료 확인 됐습니다."

 

 

남자는 펜스에서 멀어져 뒤돌아 무대 바로 아래 무대를 등지고 안전요원들 사이에 섰다. 귀여운 자원봉사 조끼만 아니었으면 당연 안전요원 중 하나일거라고 생각될 정도로 피지컬이 좋았다. 이쪽을 향해 엄지를 보이고는 고마워요 라고 한다. - 웃는 얼굴이 영락없는 다설살 꼬마아이처럼 천진하고 귀여웠다. 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에는 '큐티보이'라고 입력하고 저장했다.

 

 

 

 

 

", 옹성우. 맨 앞에서 혼자 보니까 존나 재밌냐."

"당연하지. 존나 재밌었찌. 그런걸 물어보냐."

"뒤에는 완전 광란의 파티였다."

 

 

맨 앞에서, 맨 뒤에서 각자 공연 관람한 썰을 풀며 인파 사이로 천천히 걸었다. 넓은 공원에서 진행된 공연이라 여기저기 널려진 행사장비들과 버려진 쓰레기들을 정리하는 스텝들이 눈에 들어왔다.

 

 

", 너 먼저 가."

", . 늦으면 지하철 끊겨."

"오늘 2시까지 한대. 아무튼 먼저 가~ 카톡에서 보자~"

"! 옹성우!!"

 

 

상현이 애타게 불러 보지만 성우는 이미 손을 흔들며 저만치 가 보이지 않았다. 허탈하게 성우가 사라진 자리를 지키고 있던 상현은 아- 문득 떠오른 생각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지하철역 쪽으로 향했다.

 

어디 갔지.

 

부지런히 돌아갔지만 역시나 없었다. 이름도 모르니 물어볼수도 없고. 평범한 비주얼은 아니니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면 알려나. 성우는 문득 자신이 왜 이렇게 그 남자를 찾는건지 자문을 하다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스텝 아니시면 퇴장해 주세요. 분실물은 입장하신 곳 왼쪽 천막에서 확인해 주세요. 진행요원들의 재촉에 성우는 마음이 더 급해졌다. 마지막 보루였던 스마트폰에 저장해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귀염둥이야, 받아주지 않으련? 다급함에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전화 너머의 주인공을 찾았다.

 

 

", 찾았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몸을 돌리자 형광조끼가 한 손에는 계속 울리는 스마트폰을 들고만 서있는다.

 

 

"안 받아요?"

"모르는 번호는 원래 안 받거든요. 혹시나 해서 돌아다니니까 딱 계시네요?"

 

 

약간의 머쓱함에 성우는 종료버튼을 누르고는 남자와 눈을 맞추었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또 싱글벙글이다.

 

 

"아까 이름을 못 물어봐서. 이름 물어보려구요."

"한 시간 정도 더 정리하면 끝나요."

"......"

"강다니엘이에요. 내 이름. 그 쪽은요?"

"옹성우요."

"옹성우... , 옹씨가 있어요?"

", 대박."

"왜요?"

"내 이름 한 번에 알아듣는 사람 태어나서 처음이에요."

", 진짜요? 내가 좀 센스가 좋지요?"

 

 

다니엘이라고 저를 소개한 남자는 들뜬 목소리로 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성우는 그의 이야기에 빠져 웃고 호응하는 리액션을 이어갔다.

 

 

", - 농땡이 그만 피우고 이리 와서 좀 도와!"

"- ! 갑니다!! 가지 말고 출구 쪽에서 기다려요. 금방 끝나니까. 연락할게요."

 

 

다니엘은 꼭 잡고 있던 성우의 손을 놓고 저를 부르는 쪽으로 열심히 뛰어갔다. 그런데 손은 언제부터 잡고 있었지? 다니엘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을 때쯤 다리가 풀려 쪼그려 앉았다. 아아, 어떡해. 얼굴이 화끈거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는데 손에서 또 다니엘의 잔향이 느껴져 귀가 불타는 것만 같았다.

 

기다리랬는데 이따가는 어떻게 보지? 잠시 행복한 고민에 빠져보기로 했다.

 

 

 

 

 

Daniel talk

 

 

뭐가 그렇게 좋냐?

 

실성이라도 한 놈처럼 공연이 다 끝나고 정리하는 내내 다니엘이 실실거리니 결국 누군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아뇨. 저는 괜찮습니다. 대답하고는 또 실실대니 더워서 실성한 거지 고개를 저으며 멀리 가버리고 만다.

 

옹성우라니. 야옹이 옹씨인거야?

 

어제 공연은 내내 덥고 짜증나고 지루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서도 왜 이걸 신청했지. 아프다고 하고 나가지 말까? 라는 생각을 점심때까지 했었다. 일찍부터 펜스를 잡고 선 관객들 사이에서 머리 하나 삐죽 튀어나와 스마트폰을 두 손으로 꼭 쥐고 내내 짜증을 냈다 웃었다하는 남자가 눈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분명 그랬다. 그 남자를 발견하고 눈을 떼지 못하는데 눈치가 없는 건지 한 번도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자리를 옮기고 옮겨 남자의 근처에 섰고 핑계를 만들어 바로 남자의 시야에 섰다. 그러고 잠시 후, 눈길이 느껴졌지만 모르는 척 했다. 갑자기 너무 들이대면 무서워할지도 모르잖아?

 

딸깍- 치이익-

 

청각을 자극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맥주캔을 들고 있는 손 끝에 눈길이 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건네는 맥주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가까이서 본 얼굴은 더 대단했다. 사람 눈동자가 이렇게나 까만색일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까맸다. 덥수룩한 머리도, 앞머리에 가려져 슬쩍 보이는 까만 눈썹도. 웃으니까 입가에 보조개가 푹 들어간다. 얼마 전 길에서 봤던 새까만 고양이가 문득 떠올랐다.

 

 

[우리 지금 만나! 만나! 당장 만나! 당장 만나!]

 

 

전화번호를 건네고 공연시작 후, 장기하의 노래를 목 놓아 열창하는 모습에 또 눈을 떼지 못했다. 얼굴만도 열일 하는데 관객의 의무도 저렇게나 열심히다. 만나자고 소리치는 게 꼭 나에게 하는 말 같잖아. 덕분에 어떻게 일을 했는지 모르게 시간이 흘렀다.

 

 

"저 먼저 갈게요~"

 

 

정리가 끝났고 다음날 공연을 위한 준비도 얼추 끝난 듯 싶어 먼저 서둘러 가방을 챙겼다.

 

 

"오늘 회식 있는데?"

"일행이 있어서요. 내일 뵐게요~"

 

 

기다리라고는 했는데 아직 있으려나.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설렘이라 피곤함에도 발걸음이 가볍고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