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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녤옹

 

 

 

 

 

 

 

 프린트된 큼지막한 글씨가 어느새 잔뜩 구겨진 전단지를 오른손에 쥐고 도착한 곳이 이곳, 일명트로피컬 하우스되시겠다. 성우 자신이 어쩌다 이곳에 오게 되었냐 묻는다면 손에 쥐고 있는 이 전단지가 답이었다. 금요일 강의는 오전이 끝이었고, 낮 기온이 무려 34도라는 말에 빨리 집으로 피신하고 싶은 마음을 한가득 담으며 정문을 빠져나오던 도중 전단지 아르바이트생을 마주치게 된 것이다. ‘트로피컬 하우스’, 처음에는 단순히 클럽 홍보지라도 되는 줄 알았더니 이 큼지막한 일곱 글자 아래 제목보다는 작은 글씨로 문구 하나가 적혀 있었다. ‘좋은 집을 찾으십니까?’ 정말, 진짜, 대박, 리얼, 완전, , . 안 그래도 본가에서 계속 지내기에는 스스로가 눈치 보인다는 이유로 언제 한번 하숙집이라도 구해야겠다는 생각만 여러 번 하고 있었던 때인지라 완전 횡재한 기분으로 이곳에 오게 된 것이다.

 

 

 

 문을 두들겨야 하나, 초인종을 눌러야 하나, 하는 고민으로트로피컬 하우스의 대문 앞에서 한참을 우물쭈물하고 있던 성우는 결국 눈 꾹 감고 초인종 누르기를 선택했다. 띵동, 하고 울리는 소리에 곧 나오겠거니 싶던 성우는 소리의 울림이 멎은 지 꽤 됐음에도 불구하고 열리지 않는 대문에 다시 한 번 초인종을 눌렀으나 결과는 똑같았다. 뭐지? 설마 아무도 없나? 괜한 불안감이 밀려온 성우는 난타하듯 두들기던 대문이 벌컥, 열리는 바람에 하마터면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다. 다행히도 이 앞에 지키고 서 있는 큰 가슴의 사내에게 막혀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아니, 근데 잠깐. 큰 가슴의 사내, 큰 가슴, 가슴?

 

 

 

 어우, 깜짝이야!”

 

 , 뭐고. 놀라야 될 입장은 그쪽이 아이라 내그든요. 누구세요.”

 

 , , 그으……. 하숙생 구하신다고 해가지궁…….”

 

 ? 우리 집 하숙생 안 구하는데요. 잘못 보신 거 아인가.”

 

 

 

 이 땡볕에 학교에서부터트로피컬 하우스까지 걸어 온 시간 하며, 제 눈 앞에 서 있는 이가 방금 자다 일어난 꼴로 나타나지만 않았어도 성우는 이렇게까지 억울해 하진 않았을 것이다. 지금 성우 제 자신이 느끼는 열이 자신에게만 내리쬐는 햇빛 때문인 건지, 아니면 부스스한 모습으로 자신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이 남자 때문인 건지까지도 헷갈렸다. 아니, 그럼 이 전단지는 뭔데요? 처음에는 더위가 표면으로만 느껴졌는데, 점점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한 채로 다 구겨진 전단지를 제 앞의 남자에게 건네니 남자는 표정으로 물음표를 잔뜩 띄우며 거기서 잠깐 기다리고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는 대문을 닫았다. 아니, 무슨 저런 재수 없는 놈이 다 있어!

 

 

 

 처음에는 분명 반만 차지했던 것이 이제는 자신의 전체를 차지하려는 듯 점점 선을 침범하는 햇빛에 애꿎은 돌만 발로 차내며 대문 앞 같은 자리에서 남자를 기다리고 있던 성우는 이내 곧 다시금 열리는 초록빛 대문에 고개를 들었다. , 울 엄니가 들어오래요. 남자는 얼굴만 겨우 보이게끔 열어 둔 것을 성우가 원활히 들어갈 수 있게 활짝 젖힌 상태로 열었다. 재수없는 놈이라며 욕하던 이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쭈뼛거리며 대문을 지나 마당으로 발걸음을 내딛은 성우는 남자의 뒤를 따라트로피컬 하우스안으로 들어갔다.

 

 

 

 

 

 

 

 

 

트로피컬 하우스 (1)

 

네티

 

 

 

 

 

 

 

 

 

 전단지 보고 찾아오셨다고 했죠?”

 

 , …….”

 

 혹시 이름이 어떻게 돼요?”

 

 , 옹성우입니다. 공성우 아니고 옹성우구요. 홍성우 아니구 옹성우요.”

 

 , 성우 씨. 내일 주말이니까 잘됐네요. 그냥 내일부터 여기에 짐 두고 하숙하시면 돼요.”

 

 ? , , , 돈은…….”

 

 돈은 매달 10일에 주면 되고, 성우 씨는 다음 달부터 내면 돼요. 계약서는 내일 줄게요.”

 

 

 

  …… 이렇게 되는 바람에 여기서 살게 된 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갔다. 하숙집이라고 함은 본래 집에서 살고 있는 가족 외에도 하숙생들이 많이 살아 복작복작한 분위기일 줄 알았는데, 이 집에 하숙생이라고는 성우 자신밖에 없었던 것이다. 성우 외에 사는 사람이라고는트로피컬 하우스의 주인 부부와 그의 아들 하나. 이렇게가 끝이었다. 아무리 전단지 알바를 사용하면서까지 전단지를 돌려도 오는 사람이 없다나. 그런 의미에서트로피컬 하우스의 주인 부부는 유난히도 각별하게 성우를 많이 챙겼다.

 

 

 

 그렇지만 이런 성우한테도 하숙 생활 최대의 난제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주인 부부의 아들이었다. 주인 부부의 아들이라는 사람은 성우에게 여전히 어려웠고, 궁금했다. 서로 말 놓기로 한 것도 며칠 전이었지, . 집은 어찌나 넓은지, 주인 부부의 아들과 성우 자신의 방은 거의 끝과 끝이었던지라 마주칠 일도 거의 없었으며, 저렇게 먹는데도 용케 살아는 있네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밥 대신 군것질거리를 즐겨 먹기에 식사 자리에서 또한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 하지만 같이 살고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어색한 사이가 생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성우는 말이라도 붙여 보고자 먼저 말을 건넨 적도 많지만 자신과의 대화가 재미없는 건지 매번 대답만 툭툭 던지는 주인 부부 아들 탓에 이제는 말 건네는 것도 포기한 상태에 이르렀더랜다.

 

 

 

 종강 시즌의 성우는 오늘도 어김없이 거실 소파에 앉아 티비를 시청하고 있었다. 평일의 낮 시간대는 볼 만한 게 없었고, 공중파에서는 죄다 뉴스만 흘러나오는 탓에 대충 아무 채널로 돌려 놓고는 곧장 휴대폰을 꺼내 게임을 실행시켰다. 이거 내가 오늘 꼭 깨야지. 혼자 생각하며 휴대폰을 가로로 돌려 고쳐 잡은 성우는 점점 게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바로 옆, 주방에서 들리는 소리도 못 들을 정도로 집중하고 있다가.

 

 

 

 .”

 

 어우, 깜짝이야!”

 

 햄은 와 내만 보믄 놀라노. 내가 그래 무섭나.”

 

 아니이, 니가 그르케 불쑥불쑥 튀어나오니까는 당연히 놀라지!”

 

 

 

 자다 깬 지 얼마 안 된 듯 뒷통수에 한껏 둥지를 틀고선 다가온 이 덕분에 하마터면 심장이 내려앉을 뻔했더랜다. 성우는 자신이 게임을 하고 있었던 것도 까먹고 갑자기 나타난 이에게 당황스러움을 표출하던 도중, 게임 로비의 배경 음악이 성우의 귀에 꽂히니 그제서야 자신이 게임 중이었다는 것을 인지하고는 휴대폰 화면을 바라봤다. GAME OVER. 보기만 해도 절망감을 안겨 주는 영어 문구가 성우의 시야에 들어찰 때 즈음, 성우를 놀라게 한 장본인은 괜히 뒷통수를 두어 번 긁적이더니 성우에게 하는 말이.

 

 

 

 근데 햄, 혹시 냉장고에 있던 쩰리 한 봉지 몬 봤나.”

 

 젤리? 그거 어젯밤에 내가 먹었는, , 혹시…… 다니엘 니 거야?”

 

 , 내 물라고 남겨 둔 거였는데……. 됐다. 이미 뭇다니까 어쩔 수 없제.”

 

 

 

 성우의 대답에 빙글 돌며 여전히 둥지를 튼 채 자신의 방으로 향하는 뒷통수의 주인이 바로트로피컬 하우스주인 부부의 아들, 강다니엘이었다. 그는 성우보다 한 살 어렸고, 덩치가 컸으며, 주식이 젤리라고 해도 전혀 이상할 데가 없을 정도로 젤리를 좋아하고, 생일은 주인 부부에게 대충 12월 정도라고 듣긴 했던 것 같은데 자세한 날짜는 몰랐다. 성우가트로피컬 하우스에서 하숙하는 동안 다니엘과 서로 깊게 대화할 주제도, 할 만한 관계도 아니었기에 성우가 아는 다니엘의 정보는 여기까지였다. , 추가로 덧붙이자면 왼쪽 눈 밑에 점이 하나 있다는 것 정도까지.

 

 

 

 첫판을 지고 나니 그 다음부터 게임에 대한 의욕이 확 사라진 성우는 게임을 종료시킴과 동시에 휴대폰 전원 버튼을 눌러 화면을 꺼 놓고는 소파에 기대어 천장에 시선을 향했다. 그러나 할 일이 없던 탓에 천장의 벽지 보는 것도 금방 무료해진 성우는 그것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위해 휴대폰을 다시금 들어 연락처 버튼을 터치했다. 민현이는 계절 학기 나간댔구……. 연락처를 아무리 뒤적여도 자신의 무료함을 달래 줄 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성우는 소파 옆 서랍 위에 휴대폰을 아무렇게나 던져 놓고는 팔다리를 쭉쭉 뻗어 기지개를 켰다. , 진짜 심심해. 자신이 여기서 하숙 생활을 한 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가니 의미 없는 집 구경은 할 필요도 없었고, 혹시나 싶어 돌려 본 티비 채널에서는 여전히 같은 주제의 뉴스만 흘러 나오고 있었다. 결국 성우는 리모컨을 아무렇게나 던져 놓고는 제대로 집중도 안 되는 티비 화면만 뚫어져라 쳐다만 보다 서랍 위에서 울리는 진동 소리에 곧바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재환아, 네가 웬일이야? 이렇게 전화를 다 하구.”

 

 ㅡ 형, 지금 할 거 없죠?

 

 , 형 정곡을 그르케 찌르며는…….”

 

 ㅡ 형도 웬일로 전화 바로 받길래 물어봤는데 딱 맞혔네요.

 

 진짜 슬퍼 죽겠다. 근데 왜 전화했어?”

 

 ㅡ 형 지금 심심하면 나올래요? 저 진짜 가고 싶은 데 생겼는데 혼자 가기에는 뻘쭘해서…….

 

 야아, 그거를 말이라구 해? 진짜, 완전, 대박, 리얼, , 콜이지!”

 

 ㅡ 진짜요? 다행이다. , 근데 형, 혹시 형 안 되면 어떡하지 싶어서 아까 다른 애한테도 연락했거든요.

 

 

 

 걔도 올 텐데 괜찮아요? , 괜찮아. 그럼 제가 문자로 주소 찍어 줄 테니까 이따 네 시에 거기서 봐요~ 재환의 마지막 한마디에 성우는 얼굴에 웃음을 잔뜩 담은 채로 알겠다며 전화를 끊고는 바로 방으로 들어갔다. 실용음악과 17학번 김재환, 종강 후 열심히 시내에서 버스킹 하며 지냈기에 종강 전보다 연락이 조금 뜸했었는데, 그런 이와 예상치 못하게 약속이 잡힌 것에 들떠 빠르게 준비하고는 금방 방에서 나오니 오랜 시간 지어져 있었던 까치집은 어디로 가고 단정한 머리칼과 캐주얼한 복장으로 방에서 나오는 다니엘이 성우의 시야에 밟혔다.

 

 

 

 , 다니엘. 너도 나가?”

 

 , 갑자기 나갈 일이 생기가. 햄도 나가는갑제.”

 

 나도 갑자기 나갈 일이 생겨가지궁……. 어디로 가?”

 

 내는 시내. 햄은?”

 

 

 

 형도 시내인데, 잘됐다! 괜찮으며는 같이 나가자. 성우의 제안에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인 다니엘의 모습에 성우는 제 앞날을 예상하지 못한 채 신발장에서 제 운동화를 꺼내 신고는 현관문 도어락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