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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녤옹

 

 

 

 

 

 

 

2015

니농

 

 

 

 

 

 

 

 

 

 

 

 

 

 

 

 

 

 

 키우던 개도 이렇게는 안 할 거다.

 

 

 

 요란스럽게 울리는 초인종에 비척비척 침대에서 일어났다. 구태여 신원을 파악할 필요도 없다. 이 시간에 이렇게나 열정적으로 우리 집 문을 두드릴 사람은 세상에,

 

 

 

 "...."

 

 

 

 강다니엘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다니엘은 대학에 진학해 거의 처음으로 사귄 친구였다.

 

 

 

 처음 보는 이들에겐 무척 낯을 가리는 편인 내가 개강총회가 열린 술집 구석에서 우물쭈물하는 동안 다니엘은 가운데에 멀뚱히 앉아 헤헤 웃는 것만으로 이미 과내의 알 만한 사람은 모두 아는 유명인사가 되어있었는데, 그런 다니엘이 '그런데 저기 앉아있는 형 잘생기지 않았어요?' 뜬금없이 나를 지목하는 바람에 덩달아 유명인사가 되어버렸다. '강다니엘'이 관심을 보인 ''.

 

 곧바로 다니엘을 따라 선배들 근처에 끌려와 앉혀졌다.

 

 

 

 이름이 뭐야? 옹 씨는 처음 보네. 가까이서 보니 더 잘생겼다. 재수했다고, 우리랑 동갑이겠구나. 다니엘이랑 모르는 사이라고? 넌 모르는 사인데 잘생겼다고 한 거야? 웃긴다. 그런데 정말 잘생기긴 했네.

 

 

 

 사람들의 관심은 나쁘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특이한 성씨와 눈에 띄는 외모 덕분에 꾸준히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오긴 했어도, 이 시장 바닥처럼 왁자지껄한 분위기에서, 지금이야 같지 않게 여기는 치들이지만, 수십 명의 새내기 중 선배들의 눈에 띄는 하나가 된다는 게 은근히 나를 으스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날 조금 흥분했던 건지, 몇 잔 마시지 않고도 나는 금방 취해버렸다. 더 남아있으라는 선배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처음 보는 거나 마찬가지인 나를 업고 제 집까지 데려가 씻지도 않은 나를 침대에 뉘여 재우고 저는 바닥에 옹송그려 잠들었다.

 

 

 

 다음 날 일어난 나는 왠지 모를 쪽팔림에, 제 아무리 동기라지만 처음보는 남자애를 집에 데려와 재워준 친절에 해장국이라도 한 그릇 쏘지 못할망정 헐레벌떡 일어나 곧장 집으로 도망쳐오고 말았다. 하다못해 책상 위에 쪽지라도 하나 남겨두고 올 걸. 한 번 제대로 꺼내지 못한고마워’, ‘미안해는 이후로도 계속해 족쇄가 되었다.

 

 

 

 학교 정책상 1학년은 같은 학부끼리 공통으로 수강해야 하는 교양 과목이 서너 개 정도 있었다. 별 쓸모없는, 그야 말로 교양 과목들이긴 했지만 우리 학부도 예외 없이 커리큘럼을 따라야 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서른 명 단위로 분반이 달라져 나는 다니엘과 어떤 과목도 같은 반이 되지 않고 모두 다른 반에 배정되게 되었다. 동시에 그나마 신입생 OT 등에서 가까워진 친구들과도 반이 달라져, 수업도 혼자, 커피도 혼자, 밥도 혼자,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재수생활까지 도합 2년 동안 꿈꿔오던 인싸의 캠퍼스 라이프와는 조금 동떨어진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에 입학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아 섣불리 우울해졌던 것 같다. 괜히 같은 수업을 듣는 녀석들끼리 더 가까워 진 듯 보이는 마음에 눈치를 보다가 모임 등지에 나가지 않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그나마 친하던 동기들과도 거리가 멀어졌다.

 

 

 

 어쩔 수 없지, 하고 쉬이 체념하곤 근처에서 학교를 다니는 고등학교 친구들을 쪼아 틈틈이 놀러 다니는 걸로 일찌감찌 대학 생활에 실패했음을 위안 삼으려 했다.

 

 하지만 친구들이 저마다의 대학 동기와 약속이 있어 가보아야 한다고 하면 그에 더욱 더 우울해지고 마는 것이 그즈음의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3 27, 그다지 특별한 날도 아닌데 아직도 일자까지 기억 난다.

 

 

 

금요일이었고 때문인지 고등학교 동창들도 모두 각자의 모임 약속이 있다고 해, 한 주의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혼자 터덜터덜 인천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던 중이었다.

 

 

 

 아는 사람 모두에게오늘 시간 돼?’ 메시지를 돌려봤지만 아무도 대답이 없었고 그게 유난스럽게 서러워지는 하루였다는 걸 차치하고서라도, 그 날은 이상하게 좀 외로웠고 집에 들어가기 영 싫은 날이었다.

 

 

 

 가방에 주섬주섬 물건을 주워 담고 있는데 불쑥 누군가 어깨를 잡아 화들짝 놀란 마음에 순간적으로 무릎이 풀썩 꺾여 자리에 주저앉았다. 엄마야, 작은 외침도 빠뜨리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덜떨어진 내 모습에 상대는 낮은 목소리로 허허 웃어 보이고 말았다. 지금이야 다가오는 그림자나, 멀리서부터 들리는 발걸음만으로도 누구겠거니 알았겠지만 당시엔 생각조차 못했으니까.

 

 

 

 "밥 먹었어요, ? 안 먹었으면 저랑 같이 먹어요.“

 

 

 

 뒤 돌아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다리가 풀썩 꺾여 주저앉았을 때보다 그게 강다니엘이라는 걸 알았을 때 몇 십 배는 더 놀랐다.

 

 

 

 금요일 저녁이고, 모두들 약속이 있고, 나는 마침 외롭고 심심했고. 다니엘의 제안을 굳이 거절할 건 없었지만 그 얼굴을 보자 개강총회 날 만취해 그의 자취방에서 잠들었던 일이 자연스럽게 떠올라, 왠지 모를 창피함에 얼굴부터 붉어졌다. 허겁지겁 짐을 챙겨 나서며 다니엘보다 먼저 자취를 감춰보려 애썼지만 붙잡는 손을 이기지 못했다.

 

 

 

 "먹었어."

 

 "거짓말.“

 

 

 

 싱글싱글 웃는 얼굴 앞에서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새빨개졌던 것 같다. 개강총회에선 눈에 확 띄는 핑크색 머리를 하고 있던 다니엘은 물이 빠진 건지 뭔지 샛노란 탈색모를 하고 있었다.

 

 

 

 그 때 그 얼굴을 마주친 순간 느낀 감상에 대해 누군가 설명을 원한다면..., 입이 꽉 틀어 막힐 것 같다. 뭐라고 해야 할까,

 

 

 

 "3연강이였잖아, 커피도 시간 없어서 줄만 서다 그대로 수업 들어가고."

 

 

 

 다니엘을 멀리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눈매가 얄쌍하고 제법 사나운 느낌이 있어 야수 같은 사내처럼 보일 때가 있다고 한다. 가까이서 보는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폭신한 털을 부슬부슬 달고 다니는 강아지처럼 순하고 귀여운 인상이라고 한다.

 

 나에게 다니엘은 어떤 느낌인가?

 

 

 

 "어떻게 알았...."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면 내가 진짜 무서워 질 걸요?"

 

 

 

 눈빛은 사냥감을 낚아채는 맹수처럼 사납고 형형하지만,

 

 

 

 "제육볶음 먹으러 가요, 거기 계란말이가 진짜 맛있어."

 

 

 

 어깨를 감싸는 손길은 애교 많은 강아지처럼 견딜 수 없이 따뜻하고 다정하고,

 

 

 

 "저녁은 먹고 집에 가요, 앞으론. 인천이 얼마나 먼데."

 

 

 

 거기에, 결국 너는 내가 원하는 대로 될 것이라는 자신감이 무섭도록 확고한, 전략가로써의 면모마저 빼놓지 않았다.

 

 착하게 웃는 얼굴의 이면에 그런 모습을 숨긴 것이 아니라, 그런 일련의 야망마저 너무나 투명하게 드러나서, 또 그러한 야망마저도 본질은 악의 없이 순수해서 막상 그것을 마주한 사람이 아무런 말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다니엘이 먼저 강의실 문을 나섰다. 돌아선 그 뒷모습에서, 나는 자신이 가는 길을 내가 반드시 따라오리란 그의 확신에 찬 자신감을 보았고, 차마 스스로를 말릴 새도 없이 그에게,

 

 

 

 "나한테 뭐 이렇게 잘해줘?“

 

 

 

 중간고사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며칠 전부터치즈 볶음밥이 먹고 싶다며 갖은 땡깡을 부린 나를 위해 다니엘은 나를 자신의 집에 초대해 손수 치즈를 한 가득 부은 볶음밥을 해다 바쳤다. 비록 냉동 제품을 활용한 결과물이긴 했지만 이렇게 치즈를 가득 넣어서 만들어주는 곳은 인터넷 어디를 뒤져도 안 나오더라고, 하는 사족과 함께 내민 그릇은 충분히 감동적일만 했다.

 

 

 

 "뭐 얻을 것도 없잖아, 나한테."

 

 

 

 치즈와 볶음밥을 숟가락에 한 가득 쌓아 욱여넣으니 세상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볼이 미어터지도록 빵빵하게 음식을 가득 채우곤 콧노래를 부르며 밥을 먹는 날보고 다니엘은 맞은편에 앉아 그저 허허 웃기만 하며 저는 술을 홀짝홀짝 들이켰다. 안 먹어? 묻는 내게 형 다 먹어, 다정히 맞받아치기에 나는 괜히 더 신나서 들썩거렸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아마 그 즈음 다니엘이 내게 하는 모든 행동들에 섣불리 들떠있던 것 같다.

 

 

 

 "글쎄, 난 원래 모든 사람한테 다 잘 하는데?"

 

 

 

 그 때 그 말이 얼마나 상처였는지, 그리고 그 말이 상처로 다가왔다는 게 또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신나서 밥을 먹고 있던 나는 그만 사례가 들려 켈룩거렸다. 괜찮아?! 당황한 다니엘이 물을 떠나 입에 가져다 대 주었는데 손을 내저으며 괜찮다고, 괜찮다고. 그와 그가 내민 물을 밀어내었다. 조심하지 그랬어, 어디 걸린 거 아니야? 다정하게 묻는 그 말투가 얼마나 미웠는지 모른다.

 

 

 

 너야 말로 조심하지 그랬어, 네가 내 어디에 걸릴 줄 알고.

 

 

 

 한창 다니엘과 어울려 다니던 나는 그 날 이후 공통교양 수업에서 적극적으로 다른 친구들을 만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반쯤은 다니엘이 괘씸해서, 반쯤은 이렇게 하면 다니엘로부터 좀 다른 마음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싶어서.

 

 

 

 그러나 다니엘은 여전히 모두에게 공평한 관심과 친절, 미소를 베풀었고 이후로도 나를 적대하거나 특별히 더 가까이 대하지 않았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하루는 펑펑 울기도 했던 것 같다.

 

 

 

 다니엘에 대한 순간의 착각과도 같던 사랑은 그 이상 소모될 것도 없어 쉬이 불타버렸다. 재만 남은 것을 보고 안타깝기보단 다행이라 생각했다.

 

 

 

 "소개팅 시켜줄까?"

 

 "갑자기?"

 

 

 

 학기가 어찌나 빨리 끝나는 지 벌써 기말고사가 목전에 다가왔을 때, 고등학교 동창 하나가 카페에서 공부를 함께 하다 뜬금 없는 제안을 해왔다.

 

 

 

 ", 여친이 자기 친구 소개시켜 줄 사람 없녜서."

 

 ", ."

 

 "별로야? 하긴, 네가 뭐하러 여잘 소개 받겠어. 못 사귀는 게 아니라 안 사귀는 것 뿐인데. 급한 애한테 넘긴다?"

 

 

 

 주위에서야 워낙 평가를 좋게 해주긴 했지만 사실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꽤 오래 해 온 편이기도 하고, 그런 이유 때문에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기도 해서 그 때까지도 제대로 된 연애를 해 본 적이 한 번 없었다. 친구의 제안에 비록 시험이 코앞이라지만 특별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것도 없다고 생각했고 그대로 연락처를 받아 왔다.

 

 

 

 그녀는 근처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었고 친구의 허풍에 미치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꽤 예쁘장한 외모에 성격도 나쁘지 않았다. 친절하고 다정한 말씨가 진짜 모습이었는 지 알 것까진 아니지만 보여지는 모습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마침 그 애도 나를 마음에 썩 들어 했고, 시험이 끝날 무렵에 함께 저녁 식사나 간단한 술자리를 가지는 게 어떻겠냐고 약속이 오가기도 했다.

 

 

 

 그런데 시험이 두 과목 정도 남았을 즈음부터 상대의 연락이 뚝 끊기고 말았다. 정해둔 약속 날짜에도 아무런 연락조차 없었음은 당연하고, 방학이 될 때까지도 한 번 연락이 없었다. 그다지 마음을 주었던 건 아니기 때문에 크게 개의치 않았지만 이런 식으로 예의 없는 퇴짜를 맞은 건 태어나 처음이라 조금은 화가 난 채로 친구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아느냐 물으려던 찰나, 상대의 메시지 프로필 사진이 다니엘과 다정하게 찍은 사진으로 바뀌었다.

 

 

 

 순간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면 내가 진짜 무서워질 걸요?' 말하던 다니엘이 떠올랐다가, 이내 '글쎄, 난 원래 모든 사람한테 다 잘 하는데?' 하던 그가 떠올라 우연이겠지, 하고 말았다.

 

 

 

 그게 나의 기분을 크게 거스르진 않은 모양인지, 이후로도 다니엘과 나는 어울려 잘 놀았다. 오히려 전보다 더욱 잘 어울려 다녔다고 할 수 있겠다. 여자와 다니엘은 얼마 못 가 헤어졌고, 그 때문인지 더욱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여겨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 1학기 교양 수업을 들으며 친해진 친구들을 하나 둘 술자리에 데려왔고, 일전에는 다니엘의 집에서 주로 놀았다면 판을 키워 이곳저곳 단골 술집을 만들었다. 취할 때까지 마시는 일 없이 늘 나의 막차 시간까지 적당한 페이스로 한두 잔 기울이다 빠이빠이를 하곤 했던 전과 다르게 술자리는 날이 갈 수록 과격해져서, 만취한 채 귀가하는 일이 잦아졌다. 아니, 귀가를 하지 못하는 일이 전보다 잦아졌다.

 

 

 

 그 날은 중간고사가 끝난 날이었기 때문에 술자리가 평소보다 더욱 길어졌다.

 

 

 

 "나 진짜 이번 학기 학고 맞을 것 같은데 어떡해...."

 

 

 

 친하게 어울려 놀던 B가 진심으로 성적을 고민하기에 '그래도 우린 아직 1학년이잖아.' 시답잖은 위로를 건넸다. 술을 제법 마신다는 녀석들만 모인 우리 모임 중에서도 유난스러울 정도로 술을 잘 마시는 편인 C와 다니엘이, 우리가 아무리 달래도 상심에서 벗어날 줄 모르는 B를 위로하는 사이 옆 테이블에서 술 대결을 벌이고 있는 줄도 모르고, 한참을 그렇게 B를 위해 저마다 한 마디씩 하던 중이었다. 다들 진작 얼큰하게 취해있었기 때문에 서로에게 신경 쓸 겨를 조차 없었던 것이다.

 

 

 

 다니엘이 테이블 위로 조금 위험할 만큼 머리를 쿵, 박지만 않았어도 그대로 서로 무슨 일이 있었는 지도 모른 채 평소처럼 거나하게 취한 상태에서도 귀소본능에 따라 각자의 집으로 무사히 돌아갔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징징거리는 B의 투정만큼, 아니, 술 집의 모든 왁자지껄함이 일시에 멈출만큼 다니엘이 테이블에 머리를 박는 소리가 무척이나 컸기 때문에 모두가 놀라 그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누가 물었는 지 모르겠는 걸 보니 아마 내가 물었는 가보다. C는 저도 모르겠다며 난처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꽤 취해있던 나는 다니엘의 꼴을 보자마자 술이 휙 깨버리고 말았다.

 

 

 

 "어쩌지, 다니엘 집 아는 건 성우 뿐이지 않아?"

 

 

 

 굳이 그런 말을 덧붙이지 않았어도 내가 데려다줬을 텐데. 모두 어쩔 줄 모르겠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꿈뻑거리고만 있기에, '그래..., 그러마.' 비장한 인사만을 남기고 나의 두 배는 커다란 다니엘을 어찌저찌 들처맸다. 남아 있는 놈들이라고 딱히 쓸만한 덩치가 있던 것은 아니기에 그다지 서운하지도 않았다.

 

 

 

 제발 어디 넘어지거나 다치지만 말아라, 물론 그 전에 내 등에 토하는 게 제일 최악일 것 같고. 단골 술집과 다니엘의 집은 겨우 200미터 안팎이 될까말까한 거리였지만, 취해 늘어진 거구의 20대 남성을 혼자 들쳐매고 가기엔 내가 그렇게 강인한 놈이 못되어서 집으로 가기까지 말 그대로 한참이 걸렸다. 땀을 한 바가지는 흘렸던 것 같다.

 

 

 

 ", 다니엘. 문 좀 열어봐."

 

 

 

 어찌저찌 다니엘을 질질 끌고 끌어 겨우 1학기 내내 문턱이 닳도록 드다들던 그의 집으로 향했는데, 문제는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도무지 모르겠다는 점이었다. 늘 다니엘과 함께 그의 집으로 들어서곤 했으니 구태여 거기까진 알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다니엘, 다니엘."

 

 

 

 얼굴을 살살 때려보기도 하고, 정강이를 슬쩍 차보기도 했는데 꿈쩍도 않았다. 취해 본 적이 없다더니, 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 원망을 해봐야 소용이 없었다. 이미 인천으로 돌아갈 차편은 끊겼고, 술집에 돌아가봐야 이미 잔뜩 취해있는 친구들 사이에서 맨정신으로 멀뚱멀뚱 앉아있기는 걸어서 집에 가는 시늉을 하기 보다 더욱 애매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몇 번 더 그를 부르다 못해 결국 하나하나 시도를 해보기 시작했다. 강다니엘이라면 0000, 아니네, 그럼 1234, 이것도 아니고, 다니엘 생일, 전화번호 뒷자리, 언젠가 스치듯 들었던 것 같은 어머님 생신, 다섯 개를 잘못 누르고 나니 삐용삐용 도어락에서 요란스러운 소리가 났다. 새벽 두 시에 방음 상태를 알만한 원룸촌에서 도어락 경보음을 내는 것은, 이제사 또 다른 자취생으로써 목소리를 내자면 거의 준범죄다.

 

 

 

 당혹스러운 마음에 안절부절 못하는 나를 잠결에 용케 알아챈 건지, 다니엘은 그제서야 정신이 든 사람처럼 게슴츠레 눈을 떴다.

 

 

 

 "네 생일."

 

 ", ."

 

 "맞는 비밀번호 누르면 꺼진다, 그거...."

 

 

 

 비밀번호를 누르고 침대에 다니엘을 던지듯 뉘인 나는 황급히 핸드폰을 뒤져 다니엘과의 카톡 방을 거슬러 올라갔다. 8 25일 자정, 다니엘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 날이 넘어가 26일이 되어서야 '지금 롤 ㄱㄱ' 같은 성의 없는 문자나 띡 보내고 말았을 뿐이었다. 더욱이 그 때에 다니엘은 나를 퇴짜맞은 여자애와 연애 비슷한 걸 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그게 비밀번호였던 건데? 의심할 새도 없이 피곤에 쩔어 나도 어찌저찌 다니엘의 옆에 끼어 누웠다. 심장이 펄떡펄떡 뛰었다. 갑자기 고등학교 때에 홀로 열렬히 사랑했던 동급생 D가 생각나 구역질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 때처럼 또 아무 것도 아닐 걸, 왜 쓸데 없는 생각을 자꾸만 하고 그래.

 

 

 

 우리나라 남자애들은 왜 이렇게 낯간지럽도록 서로에게 다정스러운지 모르겠다. 땀으로 젖은 팔을 척, 내 배 위에 올려놓곤 등을 끌어안듯 손바닥에 힘을 주는 다니엘에게 모르는 척 끌려가선 드러난 목덜미 위에 티나지 않게 입술을 붙였다 뗐다.

 

 다니엘을 차마 마주 안지 못하고 등 위로 대충 둘러 세운 내 팔이 덜덜 떨렸다. 여름이 거의 가셨다지만 나는 거의 오한까지 느꼈다.

 

 

 

 

 

 술에 취하면 전날 있었던 일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는 말이 사실인 건지, 다니엘이 수업을 듣는 사이 도둑고양이처럼 찾아가 본 그의 집 비밀번호는 일주일이 지나도록 여전히 내 생일 네 자리였다.

 

 

 

 아주 묘한 기분이었다. 무척 마음에 드는 사실이기도, 또 아니기도 했다. 그는 그의 말대로 '모두에게 잘해주는 사람'이니까, 근래에 조금 자주 어울려 놀았다는 이유로 비밀번호를 선정하는 데에 일시적으로 내 신원을 참조한 것 뿐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러다 두어달 쯤 후에는 B의 생일로 비밀번호가 바뀌어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때 가서 괜한 실망을 하지 않으려면 처음부터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렇게 그 비밀번호 건에 대해선 아예 잊어버리려던 차였다.

 

 

 

 -오늘 술판 각이다

 

 

 

 술을 워낙에 좋아하긴 해도, 아니 워낙에 좋아해선지 오히려 자제를 해보겠답시고 먼저 술 자리를 만드는 법이 거의 없는 다니엘이 먼저 단톡방에 모임을 제안해 오자 다들 신이 나서 수업을 다 마치지도 않고 해가 벌겋게 뜬 대낮부터 술집에 모였다. 모범생처럼 여섯시까지 수업을 꼬박 채워 듣고 난 후 자리에 가보니 멀쩡한 놈이 한 놈도 없을 지경이었다. '너네 뭔데?' 토끼눈을 뜨며 들어서자 그나마 늦게 합류한 편이라는 C만이 손을 흔들어보였을 뿐이었다.

 

 

 

 "말도 마, 다니엘 때문에 죽는 줄 알았다."

 

 "쟨 원인이 뭐야."

 

 

 

 다니엘 옆에 슬쩍 자리를 잡고 앉으니 그가 자연스럽게 품을 파고 들어 가슴팍에 머리를 비비적댔다. 모르는 척 살금살금 머릿결을 쓰다듬으니 언젠가처럼 허리에 두툼한 두 팔이 둘러졌다. C가 혹시라도 이상한 낌새를 챌까 싶어 당황하지 않은 척 하려해도 자꾸 헛기침이 나왔다.

 

 

 

 "날짜 나왔대."

 

 "날짜?"

 

 "군대 말야."

 

 

 

 그 말에 진짜 사레가 들렸다. 뭐라고? 되물을 새도 없이 거나하게 취한 다니엘이 '아니라고!' 잠투정을 부려 묻혀버렸지만 어쨌건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이게 웬 말이야.

 

 

 

 그러나 술자리에 낄 틈도 없이 이미 모두들 만취상태였던 고로 더 묻지는 못하고 그저 다니엘을 얌전히 그의 집에 데려다주는 수밖엔 없었다.

 

 어린 아이를 어르고 달래듯 겨우 그를 끌고 골목길로 들어서자 겨우 일곱시가 됐을 무렵임에도 벌써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벌써 낮이 이렇게 짧아졌단말야, 푸념도 잠시 여전히 바뀌지 않은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자마자 와장창, 쏟아지듯 제 집 바닥으로 엎어져버린 다니엘에 깜짝 놀랐다.

 

 

 

 "취할 거면 좀 곱게 취해!"

 

 

 

 나도 땀이 한 바가지 쏟아질 참이 되니 짜증이 나서, 괜히 대거리를 하곤 냉장고를 열어 물을 컵에 따르지도 않고 벌컥벌컥 그대로 입을 갖다대곤 들이켰다. 집에선 아예 뭘 해먹질 않는지 냉장고엔 물과 껏해야 계란이 전부였다. 그 계란마저도 얼마나 된 것일지 괜히 의심스러울 만큼 정말 없어도 너무 아무 것도 없다. 라면은 사다놓고 사나, 싶어 찬장을 뒤적거려보려는데 다니엘이 으레 그렇듯 잠꼬대처럼 웅얼거렸다. 왠지 나를 부르는 것 같아 다가서려니 다니엘이 먼저 비척비척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 쪽으로 향했다.

 

 

 

 "너 괜찮아?"

 

 

 

 다니엘은 대답하지 않고 물만 마냥 들이켰다. 그런다고 술이 깨냐, 핀잔엔 대답도 없었다.

 

 

 

 "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

 

 

 

 고개를 기웃거리며 물어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계속해 물만 들이키는 다니엘에 나도 괜히 부아가 났다. 여기까지 업고 온 게 누군지 알고, 산만한 너를 나뭇가지 같은 내가. 툴툴대려던 차에 다니엘이 페트병을 대충 구겨 한 쪽으로 던져놓곤 내 팔을 잡아왔다. 언젠가, 모두가 짐을 챙겨 나가는 중이던 강의실 한복판에서 마주쳤던 눈이 생각났다. 뭐든 내가 원하는 대로 기필코 따라오리라 믿는 확신에 찬,

 

 

 

 "나 좋아하지?"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취한 게 아니었나봐, 아님 취해서 저런 소릴 하나.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넌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면 그만이지만 나는?

 

 옆으로 살짝 꺾인 다니엘의 고개가 천천히 내 얼굴 앞으로 다가섰다. 다니엘과 나는 사실 키 차이가 크게 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이렇게 나란히 서있을 때면 키가 한참은 차이나는 기분이다. 내 등이 워낙 굽어있는 탓도 있을 거고, 다니엘은 굽힐 등조차 없이 몸에 다리만 한가득이라 그런 탓도 있을 거고.

 

 

 

 "엄청 티 나."

 

 

 

 그리고 술 냄새가 가득한 입술이 내 입술을 비집고 들어왔다. 온몸이 덜덜 고장난 것처럼 떨렸는데 다니엘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내 허리를 제 큰 손으로 다부지게 붙잡고 계속해 나를 뒤로 밀고 또 밀었다. 등에 벽이 닿을 때까지 엉망으로 뒷걸음친 나는 벗어나려고 애 쓰는 척을 하긴 했으나 취한 다니엘의 힘엔 역부족이었다.

 

 

 

 "뭐하는 짓이야."

 

 

 

 입술이 닿은 채로 웅얼거려봐야 정말 의문이 들어 묻는 것으로 들리거나 거절할 용의로 말꼬를 트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을 거다. 다니엘은 아예 우악스럽게 내 턱을 벌려 고개를 더욱 깊이 꺾었다. 바지춤 안으로 그의 뜨거운 손이 들어왔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잘해주고,"

 

 "...."

 

 "형은 그 중 하나야."

 

 

 

 그가 웃통을 벗어 던지고 다시금 나를 거칠게 밀어부쳤다. 발버둥치는 대신 나는 아주 서럽게 울어버렸다. 다니엘은 개의치 않고 내 다리를 잡아 벌려 속옷과 바지를 벗겼다.

 

 

 

 다니엘이 생각하는 나를 위한 최선이 고작 그런 방식이라는 것에 나는 전에 비교할 수 없이 상처받고 말았다. 삽입까지는 가지 못했어도 그 날의 섹스는 분명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결코 그것을 사랑의 징표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여느 때처럼 다니엘은 '어제 일이 잘 기억나지 않는데, 형 뭐 아는 거 있어?' 괴로운 얼굴로 물어왔고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며 그의 등을 두드렸다.

 

 그리고 기말고사가 끝남과 동시에 다니엘은 훈련소에 입소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