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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녤옹

 

 

 

 

 

 

[겨울, , ]

다론

 

 

 

 

눈 위에 찍힌 발자국이 언제 완벽하게 사라지는지 알아?

 

 

 

 

 

 

-

 

 

 

 

부모님끼리 친한 사이였던 터라 형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가족처럼, 내 친 형처럼 늘 옆에 꼭 붙어있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우린 함께였고 그러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불이 붙어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

 

 

"니엘이 너는 진짜루 따뜻하다. 난로 같아. 걸어 다니는 난로. 너무너무 따뜻해. 너무 좋아."

 

 

 

여름에 태어난 형은 손발이 찬 편이었고 겨울에 태어난 나는 몸 전체가 따뜻한 편이었다. 마치 그 계절에 잘 적응하라고 누군가가 의도한 것처럼, 또 서로의 계절에는 둘이 기대어 잘 살아가라는 것처럼. 그래서 여름에 나는 형의 찬 손을 잡았고, 겨울에 형은 따뜻한 나를 안았다.

 

 

 

형은 몸이 차서 그런지 유독 감기에 잘 걸렸다. 그래, 오뉴월에는 개도 안 걸린다는 감기에도 걸렸다. 물론 형이 개만도 못하다, 그런 건 아니고. 정말 감기에 잘 걸린다는 말이다. 그리고 감기에 잘 걸리는 만큼 낫는 것도 빨랐다. 아무리 길어야 5, 평균적으로 2~3일이면 나았다. 정말 언제 감기에 걸렸었냐는 듯이 말끔하게 나아 편안해진 표정으로 나 이제 괜찮아. 건강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뜨거운 여름에도 찾아오는 감기인데, 겨울에는 그 감기가 어디 가겠나. 겨울에는 따뜻하다며 나를 안고 살았다. 내 품 안에 폭 안긴 채로 꼼지락 대는 형의 얼굴이 보고 싶어 고개를 숙이면 가까워지는 얼굴에, 입술에 입을 촉 소리 나게 맞추고 씩 웃으면 형은 내 양 볼을 잡고 뽀뽀 세례를 퍼붓는다. 그것 때문일까, 아니면 그냥 단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서 일까. 그 이유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나도 형과 그러고 있으면 감기에 걸리곤 했다.

 

 

 

형과 다르게 나는 감기가 꽤 오래간다. 그런 나를 보고 형은 장난스레 바이러스도 내가 준거라고 오래 가지고 있는 거냐고 말하며 꺄르륵 소리가 나게 웃었고 나 또한 그런 형의 말을 장난으로 받아치곤 했다.

 

 

 

"그래, 형이 준 건데 어떻게 버리겠어."

 

 

 

 

 

 

그래서일까, 나는 아직도 그 감기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

 

 

 

기침을 하는 것도 아니고 콧물이 줄줄 흐르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눈에 보이는 증상으로 판단하는 질병을 칭하는 것이라면 이미 열 달도 전에 깨끗하게 싹 나았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감기- 는 형이 내게 남기고 간 그 무언가. 뭐라고 말로 딱 정의를 내리긴 애매한 싱숭생숭한 그 느낌과 감정의 소용돌이. 지독한 그리움, 약간의 원망 같은 여러모로 아픈 마음이 결합된 형태.

 

 

 

 

아무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내가 몇 달째 앓고 있는 그것을. 나는 감기라고 칭하기로 했다.

 

 

 

그 이유를 짧게 말해보자면, 감기와 그것의 공통점은 형이 내게 남긴 것이라는 것. 그리고 앓는 동안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꽤나 지친다는 것. 다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니라는 것. 이 정도.

 

 

 

물론 시간이 지나고 나면 별것도 아니라는 것을 내가 알아챈 건 아니다. 처음엔 정말 죽을 것 같이 힘들어서, 여러 포털사이트에 검색해 본 결과였다. 흔히 사람들은 이런 것을 보고 후폭풍이라고 한다더라. 그리고 곧 지나갈 것이며, 먼 훗날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될 것이라고 하더라.

 

 

 

곧 지나간다는 말에 나는 깜빡 속아 넘어간 것일까. 후폭풍, 아니 내가 칭한 대로 하면 감기. 그것은 생각만큼 빨리 지나가는 것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많이 느리게, 어쩌면 내게서 빠져나가려는 생각조차 없어 보인다. 그래, 그게 맞다. 지금 약 열 달이 다 되도록 낫지 않고 앓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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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열이 많아도 그렇지, 그렇게 춥게 입고 다니면 안 돼. 니엘이 너 감기 걸린다구."

 

 

 

1년 전, 작년 11월 말이었던 것 같다. 겨울 치고는 그리 춥지도 않은 날씨였건만 형은 니트만 입고 형을 만나러 나온 나를 걱정했다. 나보다 감기에 잘 걸리는 사람은 형이면서도 꼭 자기보다 춥게 입고 나오면 이렇게 나에게 귀여운 잔소리를 했었다.

 

 

 

"나는 괜찮다니까, 형만 따뜻하게 입으면 돼."

 

 

 

"나도 따뜻하게 입긴 할 건 데에, 어차피 내가 감기 걸리면 너도 걸리잖아. 그니까 너두 옷 잘 챙겨 입으라고. 최대한 안 옮게."

 

 

 

한 겨울에 입는 패딩보다는 두께가 조금 얇은 패딩을 입고 목도리까지 하고서 나를 따뜻하게 해주겠다며 품에 꼬옥 안겼었는데, 붙어있으면 온도가 조금은 올라갈 것이라고. 물론 그게 그렇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내 가슴팍에 얼굴을 부비는 형이 귀여워서.

 

 

 

"알겠어. 그러고 보니까 좀 추운 것 같기도 하다."

 

 

 

갑작스럽게 춥다는 핑계를 대면서 형을 더 꼭 안아주곤 했었다.

 

 

 

-

 

 

 

그때의 11월에는 형이 내 옆에 있었는데. 작년의 겨울에도, 재작년의 겨울에도. 아니,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형은 내 옆에 있었는데. 내 스물다섯의 겨울에는 형이 없다.

 

 

 

'잘 지내. 아프지 말고.'

 

 

 

 

 

구구절절 긴 편지도 아닌, 정말 딱 해야 할 말 몇 마디만 남긴 쪽지 하나만 남겨두고, 형은 그렇게 내 곁을 떠났다. 전화를 해봐도 없는 번호라는 딱딱한 기계음만이 울렸고, 형의 집을 찾아가 보아도 이미 새로 이사를 온 사람들이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형의 친구들 중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연락을 해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모두 '성우? 나도 잘 모르겠어.'였다.

 

 

 

"엄마, 성우 형네 어디 갔대요?"

 

 

 

"어디 갔대? 성우 엄마한테 별 연락 없었는데?"

 

 

 

 

 

그리고 형뿐만 아니라 형의 가족들도 연락을 받지 않았다. 정말 형이 나에게 쓴 쪽지 하나 빼고는 흔적도 없이,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떠나버렸다.

 

 

 

처음에는 부정했다. 성우 형이 나한테 그럴 리 없어. 살아온 시간 동안 내게 가족 같은 애인이던 그 사람이. 나한테 말도 없이 나를 떠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친 듯이 형의 흔적이라면 실오라기 하나라도 좋다는 듯이 형을 찾는데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을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며칠 밤을 울며 지새우기도 했고, 아무것도 먹지 않고 멍하니 지내다 쓰러진 경험도 두 번이나 있다. 그런 고통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찾지 못하였지만. 그렇게 조금 지나서는 현실을 직시했다. 일단 지금 내 곁에 형이 없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면 왜?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아니, 그럼 형네 가족이 통째로 연락을 받지 않을 이유는 없지. 갑자기 이민을? 그것도 아닌 것 같고.... 혹시 빚 때문에 쫓긴다거나 나쁜 일에 관련된... 아니,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머릿속에 궁금증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답을 고르기 어려워졌다. 그러나 확실한 답은 아니지만, 그런 생각들이 많아질수록 또렷하게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기는 했다.

 

 

 

성우 형은 어떤 상황에서든 최선의 선택을 하는 사람이다.

 

 

 

나를 떠나는 것이.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형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늘 나는 형의 선택을 존중했었는데, 이건 아무리 최선의 선택이라고 해도 내게 너무나 가혹해서 조금은 형을 원망했었다. 진한 그리움에 빠져 허우적거리느라, 그 원망의 시간도 길진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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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간에 내게 형이 남기고 떠난 감기는. 그 지독한 마음의 병은. 내게서 떠날 줄을 몰랐다. 떨쳐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형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챘으면서도 나는.

 

 

지난겨울, 눈이 예쁘게 내리던 날. 집 근처 놀이터에서.

 

 

 

새벽이라서 놀러 나온 아이들도 없었고 소복하게 쌓인 눈들이 하얀 도화지 마냥 놀이터를 덮었던 그 날에. 형은 얌전히 내 손을 잡고 걸으며 눈에 발자국을 남기기도 하고, 천사 모양을 만들어보겠다며 눈밭에 벌러덩 누워보기도 하며 즐겁게 놀다가, 집에 들어가려고 할 때쯤 형이 꾹 밟았던 자리를 가리키며 내게 질문을 했었다.

 

 

 

 

"니엘아. 눈 위에 찍힌 발자국이 언제 완벽하게 사라지는지 알아?"

 

 

 

"그 위에 새로 눈이 쌓였을 때."

 

 

 

", 틀렸어. 잘 생각해봐."

 

 

 

"발자국이 더 많이 찍혀서 처음에 찍힌 게 가려졌을 때?"

 

 

 

"그것도 아닌데."

 

 

 

"그럼 뭔데. 모르겠는데??"

 

 

 

"눈이 다 녹았을 때. 발자국이 찍힌 그 눈이 언제 있었냐는 듯이 흔적도 없이 다 녹아서 없어졌을 때."

 

 

 

 

 

 

 

 

그때는 아무 의미 없어 보였던 그 질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형이 떠난 이후, 밖에 내리는 눈을 보다가 생각난 그 이야기. 곱씹어 생각해보니 어쩌면 이렇게 될 줄을 형은 알고 있었던 것일까.

 

 

 

 

 

성우 형. 내 마음은 아직 겨울이라 눈이 다 녹지 못했어. 그래서 형이 남긴 발자국을 아직도 지워내지 못한 걸까. 그 겨울에 멈춰있어서 나는 아직 형의 감기에서 다 벗어나지 못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