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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녤옹

 

 

 

 

 

 

 

 

고백 전야.

백설기

 

 

 

 

 

 

 

 

 

 

 

오후 610. 저녁시간이 다가왔는데도 불구하고 바깥기온이 35도를 기웃거리는 여름날씨는 미친 듯이 습하고 뜨거웠다. 나무 그늘 밑에서 기다려봤자 조금 가려진 햇빛에 피부만 덜 따가울 뿐이지, 더위가 가라앉지는 않았다. 다니엘은 매점에서 산 얼음 물을 계속 들이켰지만, 그 얼음 물 마저도 그새 뜨거운 햇빛에 녹아 내렸다. 옹성우, 맨날 늦는다니까. 다니엘은 어느새 10분이 더 지나있는 시계를 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니까, 옹성우는 제 시간에 제대로 나온 적이 없었다. 항상 늦게 오는 덕분에 다니엘이 기다리기 일수였다. 왜 늦게 나왔냐고 묻기라도 하면 꼴에 선배라고 너 지금 하늘같은 선배한테 따지는 거냐며 떽떽거리는 바람에 다니엘도 이젠 아무 말 않고 기다리는 게 습관이 돼버렸다. 그래도 이 날씨에 기다리는 건 심했다.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입고 나온 티셔츠가 벌써 땀으로 다 젖어서 축축해지는 것 같았다.

 

 

다니엘.”

왔어요?”

. 덥지?”

 

 

옹성우는 하얀 반팔 티셔츠가 참 잘 어울렸다. 하복 셔츠는 어디로 벗어 던졌는지, 안에 입고 있던 반팔 티셔츠 하나만 입고 해사하게 웃으면서 학교 밖으로 나온 옹성우가 그 예쁜 손으로 팔랑팔랑 부채질을 해주는데 이 날씨에 늦게 나왔다고 화도 못 내겠어서 다니엘은 옹성우를 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다가도 자연스럽게 옹성우가 등에 매고 있던 가방을 받아 한 손에 들고 하교를 하는 게 참 익숙한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다니엘은 옹성우를 좋아한다. 그리고 옹성우는 다니엘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니엘이 옹성우를 좋아한 건 언제부터였냐면 고등학교에 막 올라와서 부터였다. 열여섯살 꼬맹이였던 중학생 다니엘이었을 때만 해도 옹성우는 그저 옆집 사는 조금 예쁜 형아였는데, 열일곱 고등학생 다니엘이 되어 보니 옹성우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반면에 그런 성우에게 다니엘이란, 매일을 형이라고 부르며 쫓아다니던 옆집 꼬맹이였는데, 고등학생이 되자 얼마나 성장을 했는지 키는 성우보다 조금 더 커져 있었고, 어깨도 엄청 넓어서 항상 별로 라고 생각했던 헐렁한 교복 핏이 그렇게 예쁘게 맞는 사람은 처음 봤더랬다. 그렇게 청년의 모습이 나타나는 다니엘이 자신을 향해 얼굴을 붉히는 모습이 보일 때마다 성우는 생각했다. , 얘는 날 좋아하는 구나.

 

 

물론 성우도 다니엘이 좋았다. 키 크지, 어깨 넓지, 멍멍이 같은 게 말도 잘 듣고 귀엽지를 않나. 3학년 교실에서 운동장을 보고 있으면 가끔 체육 하는 다니엘이라던지, 친구들이랑 매점 가는 다니엘이 보이는데 그 때마다 성우가 짝꿍 민현에게 다니엘 잘 생겼지? 하는 바람에 민현은 질리도록 다니엘의 이름을 들어서 이미 내적 친분으로는 절친을 하고도 남았을 거다.

 

 

그러면 사귀라니까? 걔도 너 좋아한다며.”

그건 싫어.”

아니 왜?”

쟤가 아직 고백 안 했잖아.”

니가 먼저 하면 되지.”

, 황민현. 난 절대 내가 먼저 사귀자고 안 해.”

……

헤어지는 건, 내가 먼저 말할 거고.”

 

 

하여튼, 대단해 옹성우. 민현은 그런 성우를 보며 박수를 혀를 끌끌 찼지만, 성우는 그럴 때마다 어깨를 으쓱대며 아무렇지 않게 다시금 창밖으로 다니엘을 보곤 했다.

 

그리고 그렇게 자주 창밖을 통해 다니엘을 보는 성우가 다니엘이 매일 하교 시간 마다 자신을 기다린다는 것을 모를 리도 없었다. 심지어 성우네 담임은 워낙 종례를 귀찮아하는 터라 다른 반에 비해 훨씬 종례가 일찍 끝나는 편이었지만, 다니엘은 제발 빨리 나가자는 민현을 붙잡아놓고( 다니엘이 아는 성우 친구는 민현 밖에 없었다. )10분정도는 교실에서 다니엘을 바라보다가 그제서야 천천히 교실 밖을 나가는 것이었다. 그런 옹성우에게는 오늘처럼 더운 날도 예외는 없었다.

 

 

다니엘. 근데 있잖아, 넌 내 가방 안 무거워? 다니엘 옆에서 쭈쭈바를 빨아대며 묻는 성우가 얄밉지도 않은지 다니엘은 하나도 안 무거워요. 형이 뭐 책을 많이 가지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그런 다니엘의 말이 오히려 얄미운 건 성우였는지 길 가다가 걸음을 툭, 하고 멈췄다.

 

 

너 나 놀리는 거야?”

아니에요. 내가 형을 왜 놀리는데

됐어. 가방 이리 줘. 나 혼자 갈래.”

. 왜요 또. 내가 미안해요. 형 가방 완전 무겁다. 내 팔 떨어지겠다.”

하여튼. 꼬맹이가.”

내 이제 꼬맹이 아인데.”

 

 

, 뭐해. 빨리 가. 큰 키를 자랑하며 꼬맹이 아니라는 다니엘 말에 성우도 좀 머쓱했는지 괜히 성질을 내며 다니엘의 뒤에서 다시 졸졸 쫓아갔다.

쟤는 나 좋아하는 거 티 엄청 내면서 왜 고백을 안 하지? 걸어가는 다니엘 뒷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던 성우는 혹시나, 착각인가 싶은 마음에 조금 조급해지기도 하는 것이 어느새 멍을 때리고 있었는지 다니엘이 형? 하고 어깨를 손가락으로 통통 치는 바람에 놀라서 손에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떨어졌네.”

왜 길가다가 멍 때리고 있어요. 위험하게. 형 안 따라오길래 놀라서 다시 왔잖아요.”

?”

?”

내가 안 따라가는데, 니가 왜 놀라는데?”

그거야형 걱정되니까

그니까, 니가 내 걱정을 왜 하냐구.”

친한

친한 형이라서? 단지 그 거 뿐이야?”

 

 

다니엘은 아무 말 없이 바닥에 흘려져 있던 아이스크림을 주웠다. 녹아있던 아이스크림이 바닥에 새어 나왔는지 붉은 보도블록에 진하게 자국이 남아있었다.

 

성우는 불안했다. 다니엘이 자신을 짝사랑하고 있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던 1년의 시간을, 사실은 자신이 오해하고 있었던 걸 까봐. 다니엘은 전혀 고백할 생각이 없는데, 자신만 다니엘의 고백을 기다리고 있는 걸 까봐. 모래가 묻은 쭈쭈바 통을 손에 들고 있던 다니엘이 어느새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성우를 보고 있었다.

 

 

.”

……

성우 형.”

.”

 

 

, 나 좋아해요? 다니엘이 성우를 빤히 바라보더니 묻는 말이었다. 성우는 다니엘의 질문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나 좋아해요? 그럼, 넌 나 안 좋아한다는 거야? 속으로는 이런 저런, 많은 말들을 내뱉고도 남았지만, 성우는 입술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내뱉지 않았다.

 

왜 울어요. 다니엘은 발끝으로 보도블록을 툭툭 치다가 눈에 고여 있는 눈물만 또르르 흘리는 성우를 쳐다보았다.

 

 

나는, 형이 내 좋아하는지 몰랐지.”

나 너 좋아한다고 안 했어.”

그럼 지금 갑자기 왜 우는데요.”

그냥. 눈에 뭐 들어가서

나는 형 좋아하는데.”

거짓말.”

진짠데. 믿지 말던가.”

근데 왜 고백 안 해.”

, 졸업하면. 그때 할라고 했지. 형 지금 고3이다 아이가.”

 

 

그리고 형이 졸업해서 어른 되면, 그러면내가 좀 안 참아도 될 거 같아서. 다니엘은 뭐가 부끄러운지 얼굴이 조금 붉어지는 것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성우가 뻔히 알아 차릴만했다. 성우는 그런 다니엘을 향해, , 니가 성인이 안 됐는데 뭘! 하면서 소리를 빽 하고 질렀지만 다니엘이 그래도 형만 보면, 하고 싶어지는데 어떡하라고요. 라는 당당한 다니엘의 말에 같이 얼굴이 붉어진 성우였다.

 

 

모르겠다. 형 때문에, 내 손 다 끈적해졌다.”

그러게 누가 주우래 바보야. , 우리 집 가서 씻고 가던지.”

, . 진도 너무 빠른데

, 손만 씻어! 그리고 아직 사귄다고 안 했거든. 너 고백 제대로 해. 아니면 안 받아줘.”

 

 

알았다. 내 그럼 완전 크게 해줄게 크게. 다니엘이 끈적해진 손을 툭툭 털며 성우를 보고 웃었다. 무더운 한여름 날의 고백 아닌 고백은 다니엘 손에 끈적하게 묻은 아이스크림보다도 어쩌면 더 달았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