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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녤옹

 

Trigger Warning ; 근친

 

 

 

정도

좀비

 

 

 

 

 

 

 

 

1. 엉성한 회상

 

 

오늘은 단정한 옷을 준비하렴. 조식을 먹는 공간이 되기도 하고 공부를 하는 공간이 되기도 하는 곳에서 그들은 밥을 먹었다. 어제와 같았으며 내일도 같을 조식이었다. 보육원 원장이 다가와서 다니엘에게 말했다. . 순종적으로 대답하는 다니엘은 원장의 말에 담긴 숨은 뜻을 제대로 알아채지 못했다. 룸메이트 대영과 제 물건이 제멋대로 섞여 있는 방으로 들어가 서랍장에서 하얀 긴 바지와 파란 티셔츠를 꺼내 입었다. 다니엘이 가지고 있는 옷 중에서 프린팅이 가장 덜 헤진 옷이었다. 옷이 조금 구겨져 있는 것 같았지만 다니엘은 아직 다리미질을 할 수 없었다. 작은 손에 화상을 입을 수도 있어서다.

 

. 이거 좀 구겨진 것 같지 않아?”

어쩌라고.”

원장 선생님이 단정한 옷 입으래.”

 

침대에 아무렇게나 구겨져 누워 있던 대영이 일어나 정면에서 다니엘을 내려다보았다.

 

네가 알아서 해. 병신도 아니고.”

 

다니엘의 대답을 듣지 않고 대영은 문을 쾅 닫은 채로 방을 떠났다. 사뭇 다른 적대감으로 자신을 대하는 대영이 왜 저렇게 구는 지 알아채진 못해도, 그 자체를 모를 만큼 둔한 아이는 아니었다. 보육원에서 오 년을 지내며 느는 것은 눈치뿐이었다. 한참을 황망하게 문을 바라보던 다니엘은 문을 열고 나와 화장실로 가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소풍을 갈 때가 아니면 잘 오지 않는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선생님의 뒤꽁무니를 따랐다.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주차장은 적막하고 서늘했다. 검은 세단이 주차장의 입구를 거쳐 들어왔다. 주차장 계단 앞에 유려하게 정차한 세단의 뒷좌석에서 한 여자가 내렸다. 베이지색 블라우스와 같은 톤의 체크무늬 치마를 입고 있었다. 뾰족한 힐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구두 소리가 작은 주차장 사이에서 퍼졌다.

 

너구나. 내가 본 아이가.”

 

아까 형을 쳐다봤을 때보다 다니엘은 조금 더 높게 고개를 쳐들어 여자를 봐야했다. 다니엘과 눈을 맞춘 여자가 미소 지었다. 다니엘은 꼬박 허리를 굽힌 후 정확한 발성으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강다니엘이라고 합니다. 다시 눈을 맞추고 최대한 생글생글 웃었다. 이따금씩 선생님이 하는 말씀이었다. 처음 인사를 잘해야 한다. 항상 예의 바른 사람이 되어라. 너의 부모님이 될 사람에겐 더욱 더.

 

그래. 똑똑하구나.”

 

여자는 어딘가 안절부절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안 나올 거니? 차를 바라보며 여자가 말했다. 뒷좌석의 창문이 엄지손가락 길이 정도로만 열렸다 다시 닫혔다. 잠시 창문을 쳐다본 여자가 다니엘의 양손을 틈 없이 잡았다.

 

우리 성우의 친구가, 동생이, 되었으면 좋겠어.”

 

다니엘은 거절할 수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씩씩하네. 여자는 대충 말을 갈무리하고 다시 구두굽 소리를 뿜으며 앞좌석에 자리를 탔다. 뭐해. 같이 타야지. 선생님의 채근에 다니엘은 겨우 따라가 뒷자리 문을 열었다. 흰 색의 캡모자를 쓰고 고개를 숙인 채로 주먹을 꽉 쥔 자기 또래의 남자 아이가 있었다.

 

다니엘, 성우한테 인사해야지.”

, 안녕.”

 

다니엘은 여자의 말에 애써 웃었다. 안녕이라고 해야 하나? 안녕하세요가 맞나? 잠시 고민하던 다니엘은 전자를 택했다. 성우는 고개를 더더욱 묻을 뿐 인사하지 않았다. 멋쩍은 기분조차 들지 않았다. 따뜻하게 열선이 달린 차 시트에 작은 몸을 묻으며 방에서 챙겨오지 않은 몇몇 물건을 떠올렸다.

 

이렇게 바로 갈 줄 알았으면 옷을 몇 벌 챙기고, 방에 있는 가차 피규어 몇 개를 챙겨올 걸 그랬다. 이 고민이 무색하게 다니엘 앞에 펼쳐진 풍경은 낯선 것이었다.

 

 

 

 

2. 익숙한 아침

 

 

다니엘은 요란한 알람소리에 눈을 떴다. 지나치게 부드러운 침구가 발치에 모여 있었다. 오늘도 잠꼬대가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다. 머쓱 웃으며 침대에서 일어나 이불을 대강 정리했다. 오크 원목의 침대, 아무 것도 들어 있지 않은 협탁, 어제 입었던 교복만 걸려 있는 행거. 어제도 성우가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고 했다. 차라리 같이 자는 거면 또 몰라, 이렇게 옆방에서 자는 건 더 불편했다.

 

방에 딸린 화장실에서 부지런히 샤워를 했다. 아침을 먹고 등교를 하려면 시간이 촉박했다. 욕조 옆에는 다니엘이 종종 들리는 곳임에도 꿋꿋이 새 어메니티가 깔려 있었다. 이렇게 옹씨 일가는 단 한 번도 선을 무너뜨린 적이 없음에도, 아침은 같이 하도록 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다이닝 룸으로 향했다. 성우의 건너편에는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앉아 있었고 비어 있는 옆 자리에 착석했다.

 

오늘도 다니엘 왔네.”

. 제 동생이니까. 그러고 싶었어요.”

 

오늘도 왔냐는 명백한 함의가 담긴 여자의 말을 성우가 대강 쳐냈다. 딱히 대답하고 싶지 않았는데 다행이었다.

 

어머. 그랬구나. 그래, 그래야지. 역시 성우가 착해. 여자가 새삼스럽게 호들갑을 떨었다. 고기반찬을 먹을까 하다가 묘하게 먼 위치에 그저 앞에 있는 나물 몇 개를 자신의 밥에 옮겼다. 집 가서 남은 치킨 먹고 말지, 싶었다. 다니엘은 본디 포기하는 것에 익숙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소유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니엘아, 같이 갈 거지?”

 

성우는 다니엘에게 종종 이런 식으로 아무 것도 모른다는 듯이 굴었다. 다니엘이 기억하는 십 년 동안 성우는 내내 그랬다.

 

아냐. . 나 집에 뭐 두고 간 거 있어서, 집 들렸다 갈게.”

 

처음 분가를 결정했을 때, 원룸에 놀러온 성우는 자기 때문이라며, 자기 때문에 너 혼자 산다며 눈물을 죽죽 뽑고는 울었다. 나는 괜찮아, . 여기가 더 포근하고 좋아. 포근하다는 것 빼고 전부 사실이었다. 보육원 당시의 방보다 조금 더 넓기도 했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는 자유가 처음 주어진 시점이기도 했다.

 

본가에서 맞는 아침의 담화는 불편했다. 이야기를 듣던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체할 것만 같았다. 그들과 아침을 먹으면 종종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다. 물을 한 번 마시고, 또 다시 포기하고, 예삿일인 것처럼 구는 것이 그의 최선이었다.

 

 

 

3. 가끔씩 시간이 멈췄다

 

 

종이 울리자마자 다니엘은 옆 반으로 향했다. 성우와 다니엘은 한 번도 같은 반이 된 적이 없었다. 호적상으로 형제로 등록되어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둘이 형제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들의 작년과 올해 담임 네 명 뿐이었다. 다니엘과 성우는 매 학년 첫 상담 때마다 선생에게 부탁했다. 저희 형제인 거, 비밀로 해주세요. 무심하게 넘어간 사람도 있었고, 이유를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저 내놓은 자식이라서요. 따로 살아요.

 

다니엘이 이렇게 말하면 그들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옹성우 안 일어나냐, ?”

 

책상에 엎드려 있는 성우 옆에 김재환이 앉아 있었다. 그는 바지를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은 채로 대놓고 핸드폰을 확인하고 있었다. 다니엘은 혀를 찼다. 성우는 종종 병든 닭처럼 점심시간에 책상 위에 자빠져 있곤 했다. 밤에 잠을 안 자는 것도 아니면서 꼭 저렇게 꾸벅꾸벅 졸았다.

 

. 일어나.”

니엘이 왔네에.”

 

다니엘은 부러 성우의 발을 툭툭 거칠게 쳐댔다. 겨우 눈을 뜨는 성우의 목에 가방 위에 어설프게 놓여 있던 목도리를 감아 주다가 목을 조르는 시늉을 했다. 아씨, 일어날게. 잠에 아직 잔뜩 취해 있는 채로 어깨에 매달리며 안겨 온다. 무게를 버티기 위해 어깨에 두른 팔을 한 손으로 잡았다. 계단까지 갔다가 계단 앞에서 어깨를 풀었다. 굳이 싫은 말을 하지 않아도 여기서는 따로 가야하니까. 키가 비슷한 둘이 이대로 3층을 내려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오늘 수요일이면 좋겠다, 오늘도 맛있는 거 먹게. 어제 먹었잖아, 돼지 새끼야. 꿀꿀입니다~ 의미 없는 말의 핑퐁을 들으며 다니엘은 얼굴을 구기며 웃었다.

 

난 그럼 급식 먹고 라면 또 먹을래.”

아싸, 그럼 난 다니엘이랑 반띵!!”

 

다니엘이 던진 떡밥을 성우가 물었다. 재환은 그 둘이 그러거나 말거나 얼른 식당 앞에 줄을 섰다. 일 분이라도 빨리 식사를 마치고 축구를 하러 갈 생각에 몸이 바빴다. 그들의 뒤를 따르다 문득 시선이 성우와 맞았다.

 

머리는 살짝 눌려 있었고, 졸린 기운이 가득한 눈근육 끝에는 속눈썹이 길게 쳐져 있었다. 먼저 시선을 돌린 건 다니엘이었다.

 

야 김짼. 이거 봐.”

 

장난스럽게 재환의 어깨를 툭툭 쳐서 주의를 끈 다음 성우의 오른쪽 볼을 엄지로 쓸어내렸다. 쌀쌀한 겨울 날씨와 달리 그의 볼은 아직 수면 후의 미열을 머금고 있었다. 어깨를 단단하게 굳히는 그의 긴장을 풀어주려 재환에게 말을 걸었다.

 

졸라 푹 잤나봐. 자국 났어.”

, 그러게. 점 없는 쪽에 나서 더 웃겨.”

 

그제야 아, 뭔데에. 투덜대며 입꼬리를 아래로 내리며 삐친 것처럼 굴었다. 어깨를 으쓱였다가, 고개를 식당 쪽으로 까딱였다. 장난 친 사이에 줄이 꽤 줄었기 때문이었다. 다니엘은 자꾸 어깨 품이 낙낙한 마이를 입고 울 목도리를 동여맨 성우의 뒷모습을 잔상처럼 머금고 있었다. 그 아지랑이 같은 잔상엔 밤톨 머리를 하고선 지금보다 거의 두 뼘이 작았던 시절이나 지금보다 밝은 마이와 다리 모양에 맞게 통을 줄인 시절의 그의 뒷모습이 종종 겹치곤 했다. 자꾸 시선의 끝이 성우에게 머무는 것은 퍽 곤란한 일이었다.

 

 

 

4. 굴레

 

 

종례 끝나고 이십 분 정도 시간이 남았다. 청소 당번이 아닌 학생은 당번이 청소할 수 있게 그 틈새에 정당하게 교실 밖을 벗어날 수 있었다. 성우의 담임은 항상 종례가 빨랐다. 높지 않은 교실 창문을 넘어, 복도 벽에 찰싹 붙은 채로 교실 안을 쳐다보는 그의 얼굴이 보였다. 살짝 그를 보고 칠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분명 다시 그를 보면 시선이 맞을 것이다. 성우는 종종 다니엘을 쳐다보지 못해 안달이 난 것처럼 굴었다. 종례가 끝나자마자 분위기는 금세 어수선해졌다. 반 애들이 각자의 핸드폰을 찾기 바쁜 와중에 성우는 가방을 정리하는 다니엘의 앞으로 와 있었다.

 

다니엘. 나 오늘 야자 쨀 거니까 너도 째.”

폰은 폼이냐? 내 반 창문에 붙어서 나 강다니엘 기다려요, 하고 동네에 다 자랑할 일 있냐?”

네가 안 받으면 폼이지.”

 

성우의 직구에 다니엘은 잠시 말을 잃었다. 재빨리 다른 주제를 찾았다.

 

야자는 또 왜 째는데.”

하기 싫어서.”

그냥 좀 학교에 있어라, ?”

그럼 2교시만 쨀래. 끝나고 너네 집 갈 거야. 너랑 놀래.”

왜 또.”

다니엘 너 자꾸 그렇게 튕기면 집에서 밥 먹을 때 네 얘기 많이 할 거야.”

 

다니엘은 성우가 이렇게 고집을 부리면 방법이 없었다. 성우의 순진한 위악을 다니엘은 이길 수가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길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다니엘은 성우를 위해 고용된 입장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알았다고 손을 내저으며 꼬리를 내렸다. 그제야 성우는 활짝 웃으며 제안했다.

 

농구하러 가자.”

 

오늘의 다니엘은 조금 쉬고 싶었지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5. 70°

 

 

둘은 꼬박꼬박 야자를 했다. 성우는 부모의 기대를 받고 있었고, 다니엘은 공부에 취미가 없었지만 야자를 안 해가면서까지 책잡히고 싶진 않았다. 성우는 이것저것 해야할 게 많았지만, 다니엘은 보통 교과서 외에 별도로 진도를 나가는 교재 따위를 푸는 것이 끝이었다. 종이 울리기 오 분 전에 주섬주섬 가방을 쌌다. 2교시 짼다. 야자 할 때 같은 반에 배정된 친구한테 인사를 하고 정문으로 나왔다. 성우가 빨개진 손을 하고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장갑 끼라니까.”

안 돼. 그럼 좀 이따 네 손 못 잡잖아.”

 

야자가 끝나면 자신을 데리러 올 차가 있는 성우는 자신의 집에 가는 버스 번호보다 다니엘의 집으로 가는 버스 번호를 더 잘 알고 있었다. 정문에서 버스 정류장까지는 한참 거리가 있었다. 학교 밖은 적요했다. 한 블록 정도 빠져나오자 성우가 다니엘의 손가락 틈 사이로 깍지를 꼈다. 차갑게 얼어 있는 성우의 손의 온도에 잠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으나 그것이 끝이었다.

 

저번에 뚫은 맥주 아직 남아있어?”

.”

가서 그거 마시자.”

 

집에 가기 싫다는 말의 우회적 표현이었다. 승낙하니 다른 한 손으로 꼼지락대며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낸다. 오늘 집에 못 들어간다는 내용일 것이다.

 

오피스텔에 올라가기 전, 편의점에 들러 이것저것 주전부리를 샀다. 성우는 교복을 입었음에도 맥주엔 감자칩이 필요하다며 큰 소리로 허세를 부려댔다. 민망함을 감추고 대충 빈츠나 젤리 같은 것도 함께 사서 나왔다.

 

, 교복 입고 말 좀.”

 

, 맞다. 그제야 제 실수를 깨달았는지 베에 눈을 내리며 웃었다. 다니엘의 집은 약간 싸늘했다. 춥지. 잠시만. 생활감이 묻어 있지만 온기는 없는 집은 올 때마다 낯선 것이었다. 다니엘이 난방을 켤 때 성우는 옆에서 가져온 군것질거리를 정리했다. 성우가 입을 옷을 챙겨준 후 화장실 방향으로 고갯짓했다.

 

자꾸 내외할 거야?”

형 좋을 일을 내가 왜.”

넌 나랑 둘이 있으면 섹시해지더라.”

 

다니엘의 처지에서는 학교나 집에서보다 연막을 칠 것이 적어져 편하게 구는 것이었는데 성우는 그것을 이따금 자기 식으로 해석하곤 했다. 좀 묘하게 구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지만. 그 기류는 쌍방적인 것이었다. 다니엘은 어깨를 으쓱이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 안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면 성우도 이미 편한 옷차림으로 바뀌어 있었다. 냉장고 구석에 있던 맥주를 꺼내 바닥에 엉덩이를 댄 채로 침대에 허리를 받쳐 앉았다.

 

저번에 보다만 영화 보자.”

 

다니엘은 노트북에 외장하드를 연결해 저번에 보다 말았던 영화를 틀었다. 12인치의 조그마한 노트북은 남자 둘이 보기에는 턱 없이 작았지만 장스탠드의 조명에 의지한 채 맥주를 홀짝이니 나름대로 무드가 잡혔다. 영화를 보다 말고 아직 열이 오르지 않은 바닥 때문인지 흠칫 떨어대기에 의자에 아무렇게나 걸려 있던 트랙탑을 성우의 무릎께로 던졌다. 이거 덮고 봐.

 

영화는 지루했다. 뻣뻣하게 허리를 편 채로 영화를 보던 성우는 맥주가 비자 침대 끄트머리에 엎드려버렸다. 다니엘의 어깨를 팔로 두른 채로 영화를 마저 보는데 그것마저 지루한 지 성우의 손이 자꾸 다니엘의 어깨 위에서 손장난을 쳤다. 톡톡 두드리다 손끝을 세워 긁다가 슥슥 내려가다 했다. 맥주 한 잔의 여파인 지, 우울한 얼터네이티브 장르의 음악이 배경으로 깔리는 영화 때문인 지 다니엘은 자꾸 성우의 손장난마다 소름이 돋았다. . 그만해. 다니엘은 영화를 멈추고 상체를 돌려 성우의 손을 꽉 잡았다. 성우를 바라보는 다니엘의 눈빛이 형형했다.

 

. 다니엘. 나 방금 너한테 키스하고 싶었어.”

, . 제발.”

 

다니엘의 대꾸는 꽤 절박했다. 다니엘의 입꼬리는 애써 올라가 있었지만 갈색 눈동자는 중심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니다. 우리가 한 번도 안 해본 것도 아니고. 그냥 하자.”

 

이부자리에서 빠져나온 성우는 다니엘의 옆으로 다시 내려 앉아 양 볼을 감싸 쥐고 입을 맞댔다. 다니엘의 두꺼운 아랫입술에 입술을 톡톡 부딪치고는 아프지 않게 깨물었다. 혀를 넣지 않고 잘근 씹어대는 성우 때문에 애가 타 다니엘은 그의 등을 껴안고 그의 입 안을 찾았다. 스탠드의 노란 빛에 의지하면서 성우는 다니엘의 목을 감고 체중을 기댔다. 키스할 때마다 다니엘은 성우의 이마 끝에 있는 손가락 두 마디 길이의 흉터를 만졌다. 애써 앞머리를 내리고 이마를 숨기고 다녀, 이 흉터를 아는 사람은 다니엘 밖에 없었다. 마치 다니엘이 온전히 자기의 것이 된 것만 같았다. 그가 흉터를 만질 때마다 성우는 편린처럼 남아 있는 일곱 살적의 기억이 조금은 고마워졌다. 성우가 일곱 살의 몇 개월을 잃어버린 덕분에, 다니엘이 제 앞에 있었다.

 

나 옷 벗어도 돼?”

 

다니엘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은 채로 성우가 작게 속삭였다. 다니엘은 그 속삭임을 거부할 수 없었다. 마음은 이미 골백번 고쳐 도망가고 싶었어도, 육체는 온전히 그의 것이었다.

 

 

 

6. 관계의 정도

 

 

아침잠이 많은 성우보다 다니엘이 조금 일찍 일어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성우의 따듯한 맨살의 품 옆에서 다니엘은 눈을 떴다. 혼자 일어났을 때보다 따뜻한 온도였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어스름한 새벽이라 시야가 온통 컴컴했다.

 

팔을 더듬어 침대 한켠에 있을 핸드폰을 찾았다. 갑자기 눈이 부시게 켜지는 스크린에 잠시 얼굴을 찌푸렸다. 여섯 시 반. 자기도 모르게 긴장하고 잔 탓인 지 평소보다 삼십 분이나 더 일찍 일어났다. 폰뱅킹 앱을 켜 관리비를 입금했다. 요 근래 성우가 다니엘의 집에서 자고 가는 일이 늘어나면서 생활비도 점점 빠듯해져갔다. 아르바이트를 슬슬 찾아야할 것 같았다. 혼자 사는 것이 이따금 외로울 뿐 더 이상 어색하지는 않았다.

 

옹성우는 다니엘 옆에서 살짝 인상을 찌푸린 채로 몸을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한참을 꼼지락대도 성우는 일어나지 않았다. 함께 누워 있어도 결국은 강다니엘 혼자인 아침을 맞이하는 것도 다니엘에겐 나쁘지 않았다. 이 방에서는 그 모호한 관계의 정도가 통하지 않았다.

 

다니엘은 일어나 찌뿌둥한 팔을 내밀어 몸을 풀었다. 성우를 깨우고 나서 환기를 할 작정이었다. 오늘 학교에 가면 옹성우의 괜찮은 친구인 척을 하고, 주말쯤에 집에 가면 옹성우의 착한 동생인 척을 할 것이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불안한 관계의 연속이지만, 어찌 됐든 이 정도면 다니엘은 꽤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옹성우를 흔들어 깨웠다. 위선의 낮이 다시 찾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