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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녤옹

 

 

미완(未完)의 계절

하룻강아지

 

 

 

 

 

 

 

 

강다니엘과 나는 18년지기 친구였다. 엄마끼리 친구라서,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친구가 될 운명이었다. 그러니까, 강다니엘은 우리 집에 숟가락이 몇 개나 있는지도 다 아는 부랄친구였고, 나의 첫사랑이었으며, 내가 3년째 짝사랑 중인 사람이었다.

 

", 옹성우."

"."

"나 라면 끓여줘."

 

니가 끓여드세요. 나는 지금 승급전 중이잖아. 나는 지금 시험 공부 중이잖아, 이 양아치야. 아 진짜 드럽고 치사해서. 별 영양가 없는 대화 끝에 찾아온 정적이 새삼 어색해서 나는 침대에 엎드렸던 몸을 일으켜 강다니엘의 뒷모습을 보았다. 어깨 더럽게 넓네, 부러운 놈. 키보드와 마우스를 오가며 바쁘게 움직이던 손이 갑자기 멈추더니 강다니엘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본다. 아이씨 깜짝이야. 침대 매트리스가 덜컹일 정도로 놀란 나를 보고 킥킥 웃은 강다니엘이 문득 표정을 굳힌다.

 

"."

", "

""

"."

"라면 좀 끓여줘. 계란도 넣어서."

 

이런 시발. 나는 진짜 얘를 왜 좋아하지. 언제 정색했냐는 듯 해사하게 웃어보이는 얼굴에 엿을 날리고 방을 빠져나왔다.

 

강다니엘과 나는 함께 등교를 했다. 바로 옆집에 사는데다 초등학생때부터 그래 와서 나에게는 당연한 일이었지만, 내 친구들은 그 광경을 볼 때마다 신기해 했,

 

"흐아악! ! !"

"! 뭔데! 뭐야 뭐!"

 

옆에서 눈을 반쯤 감고 연신 하품을 해대며 걷던 강다니엘이 갑자기 발악을 하며 펄펄 날뛴다. 덩달아 놀란 나도 소리를 지르며 방방 뛰었다.

 

"벌이다! ! 나 뒤진다!"

 

이런 개시발나는 내가 이런 애를 좋아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신기하다. 그 이후로 등교하는 내내 그 산만한 덩치를 내 등 뒤에 구기듯 숨겨서 걷던 강다니엘이 교문을 통과하기 직전에 내 가방을 뒤로 잡아당긴다.

 

"아 왜! 또 왜!"

"앞에 학주 섰다."

"?"

"너 넥타이 안 맸잖아."

 

이거 너 해. 강다니엘이 내 손에 자기 넥타이를 턱 얹어주고 교문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얼씨구. 조끼도 없고 넥타이도 없이 등교하셨어? 왜 셔츠도 벗고 오시지?"

"죄송함다."

 

학주에게 붙잡혀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옆으로 내가 지나가자 능글맞게 웃으며 윙크를 해댄다. 그래 세상 멋있는 거 너 혼자 다 해라이래서 내가 널 좋아하지, 농약같은 놈.

 

"야 너 괜찮아?"

"? 뭐가?"

 

너 귀에서 피나. 등교하자 마자 내 귀의 안부를 물어주는 황민현에게 씩 웃어주었다. 못 볼 걸 봤다는 듯 심하게 구겨지는 황민현의 표정에도 나는 상큼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무슨 일이 생겨도 괜찮은 그런 날이야!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 아들 뭐라고?"

 

우리 엄마는 왜 아들내미 시험 2주 전에 부부 동반 해외여행을 가는 걸까. 그것도 강다니엘 부모님이랑.

 

"시험기간이었어? 괜찮아. 엄마는 우리 아들 믿어."

 

믿지 마 엄마. 제발 아들 좀 불신해줘.

 

"걱정 마세요 이모님. 성우는 제가 책임지고 있겠습니다!"

"오홍홍홍 그래. 너만 믿을게 다니엘."

 

넌 또 뭐야. 니가 뭔데 날 책임져. 그럴 거면 나랑 결혼을 해.

 

"몸 조심히 다녀오세요!"

"그래, 너희도 밥 잘 챙겨 먹고 있어."

 

기어이 강다니엘 부모님과 우리 부모님은 11시 태국행 밤비행기를 위해 떠나버렸다. 배웅을 한답시고 나를 끌고 1층 주차장까지 내려온 강다니엘은 떠나는 차 뒤에 대고 붕붕 손을 흔들었다. 점점 멀어지는 엔진 소리에 강다니엘이 뒤에 멀뚱히 서있던 내 쪽으로 서서히 몸을 돌린다. 나 이 표정 알아

 

"자 그럼."

 

안 돼. 날 책임진다며. 걱정 말라며.

 

"It's party time."

 

이런 염병. 사와디 캅 엄마 나도 데려가

 

우리 엄마는 애주가였고, 유독 맥주를 좋아했다. 강다니엘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냉장고 한 켠에는 항상 맥주 한 팩이 놓여있었다. 우리 집 맥주 한 팩. 강다니엘네 맥주 한 팩. 총 맥주가 열두 캔. 불금, 불금하더니 이게 진짜 미쳤나.

 

"난 안 마실거야."

"에에, 찌질이."

"찌질한 게 아니라 올바른 거야. 게다가 우린 시험기간,"

"."

"."

"그냥 쫄리면 쫄린다고 해."

 

옹성우. 남자 18. 사나이는 쫄지 않는다. 강다니엘의 도발에 욱해서 맥주캔을 잡았고, 정신을 차려보니 아침이었다. 나는 내 방 침대에 혼자 누워 있었다. 안주와 찌그러진 맥주캔으로 난장판이었던 거실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지만 거실에도 강다니엘은 없었다. 뭐지, 자기 집에 갔나. 소파에 드러누워 가물가물한 어젯밤의 기억을 되짚었다. 짤막하게 남아있던 기억의 단편들이 몰려들었다.

 

술에 취한 내가 어지러워진 머리를 소파에 기댄다. 소파에 머리를 부비고 있는 나를 본 강다니엘이 킥킥 웃는다.

 

", 취했냐?"

"취하긴 누가 취해"

 

강다니엘이 안주 삼아 펼쳐둔 과자 봉지들을 넘어 내 쪽으로 온다. 내 옆에 앉은 강다니엘이 눈 앞으로 손을 펼쳐보인다.

 

"몇 개?"

"두 개?"

"취했네."

"아 그래. 취했다 취했어. 됐냐?"

 

가뜩이나 어지러운데 옆에서 놀려대는 강다니엘에게 손을 휙휙 젓는다. 팔랑거리던 손이 턱 붙잡힌다.

 

"너 취했으니까 내일 아침에 아무것도 기억 하면 안 돼."

", 쫄리냐?"

"지랄너나 쫄지 마."

 

어이가 없다는 듯 웃어보인 강다니엘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진다. 내가 당황해서 몸을 뒤로 빼자 강다니엘은 잡힌 손을 제 쪽으로 당겨 내 뒷목을 잡아쥔다. 그리고, 그 다음에.

 

"말도 안 돼."

 

나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가 다시 주저앉았다. 강다니엘이 나한테 키스했다. 거기에 나는 또 좋다고 강다니엘 목에 팔까지 감고 매달렸다. 이게 뭐야, 강다니엘이 왜? 타이밍 좋게 초인종이 울린다. 나는 허둥지둥 달려나가 문을 열었다. 직접 물어보자. 취해서 그랬을 거야. 우리 엄마도 술만 마시면 나한테 뽀뽀하고 그러니까. 강다니엘도 취해서.

 

", 일어났네."

"

 

씩 웃고 있던 강다니엘의 얼굴이 내 표정을 살피더니 차츰 굳어진다. 나는 그제서야 내 표정이 어떤지 생각했다. 보나마나 가관이겠지.

 

"기억하지 말라니까."

"."

"

"너 왜 나한테"

 

억지로 올린 듯 파르르 떨리던 강다니엘의 입꼬리가 다시 내려간다. 강다니엘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한숨을 쉬었다.

 

"좋아해."

"?"

"내가 너, 좋아해."

 

그건 난생 처음 보는 강다니엘의 표정이었다. 평소처럼 허허실실 웃고 있지도 않았고, 화가 났을 때처럼 정색을 하고 있지도 않았다. 진심이야. 덧붙이는 말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하지, 나도 그렇다고? 나도 3년이나 너를 좋아해 왔다고?

 

'왜 이렇게 질척거려. 진짜 질린다 너.'

 

그 순간 강다니엘이 헤어지고도 계속 찾아오던 전 여친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때 강다니엘이 지었던 그 경멸 어린 표정도. 그리고 찬물을 끼얹은 듯 정신이 돌아왔다. 내가 너에게 친구조차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릴까봐 불안해서. 그래서.

 

", 나는."

"괜찮아."

"그러니까, 내 말은."

"가 볼게. 해장국 챙겨 먹어."

 

강다니엘은 내내 쥐고 있던 비닐 봉지를 내 손에 쥐어주고 나가버렸다. 한참을 멍하게 서있다가 묵직하게 잡힌 비닐 봉지를 보았다. 전주 콩나물 해장국, 비닐에 쓰인 글씨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제서야 모든 일이 실감이 났다.

 

그 뒤로는, 뻔했다. 강다니엘은 나를 피했고, 나는 강다니엘이 없는 등교길을 맞이했다. 일주일만에 돌아온 엄마는 너 다니엘이랑 싸웠니, 네가 먼저 사과해 따위의 말로 나를 더 심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중간고사를 말아먹었다. 시험이 모두 끝난 다음 날 담임이 나를 교무실로 불러낼 만큼 대차게.

 

"왔니? 이번에 성적이"

 

담임이 입을 여는 순간 자기 반 담임 앞에 서서 잔소리를 듣고 있는 강다니엘이 눈에 들어왔다. 2주 만에 보는 얼굴이 해쓱했다.

 

"그래서 성우야, 듣고 있니?"

"? 아 네."

 

담임의 말에 간간히 호응을 해가며 눈으로는 강다니엘을 좇았다. 강다니엘이 제 담임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보이고는 문쪽으로 몸을 튼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움찔하는 나와는 달리 강다니엘은 그대로 시선을 거두고 교무실을 나가버린다. 모르는 사람처럼. 모르는,

 

"어머 성우야, 너 울어?"

""

 

담임은 호들갑을 떨며 내게 휴지를 내밀었고, 나는 눈물은 닦을 생각도 않고 소리 내어 울음을 터트렸다.

 

"그래, 네가 제일 속상할 텐데. 심화반은 다음에 또 들면 되니까."

"."

 

담임은 측은한 표정으로 겨우 이성을 찾고 훌쩍이는 나를 쳐다보았다. 담임은 기어이 내 손에 빈츠를 쥐어주고 나서야 나를 놓아주었고, 나는 교무실을 나서는 순간까지 선생들의 안쓰러운 눈길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쪽팔려서 진짜나는 빈츠를 입에 넣고 힘차게 씹었다. 강다니엘이고 뭐고 다 좆까라 그래.

 

"성우야! 너무 오랜만이다."

"안녕하셨어요, 혹시 다니엘 집에 있어요?"

"걔는 아직 안 들어왔는데난 요즘 아주 미치겠다. 걔 대체 왜 그런다니!"

 

저때문에요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 이후로 장장 10분동안 이어진 강다니엘 엄마의 하소연을 듣고 밖으로 나와 자리를 잡았다. 설마 외박을 하지는 않겠지.

 

"이 새끼 외박하나..."

 

희미한 가로등 불빛 하나에 의지해서 놀이터 앞 벤치에 앉은 지 2시간 30. 아무 것도 안 하고 앉아만 있으려니 몸이 덜덜 떨려왔다. 이미 자정은 30분 전에 넘겼고, 기어이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 엄마."

- 너 어디야?

"나 지금... 강다니엘 기다리는데."

-아 그래? 그럼 됐어.

 

수백가지 변명을 생각하던 나는 순식간에 허탈해졌다. 왜 우리 엄마는 강다니엘, 네 글자만 나오면 모든 게 다 괜찮아지지. 보온성이라고는 1도 없는 교복 마이를 붙잡고 몸을 부르르 떠는데 저만치에서 듬직한 떡대 하나가 걸어온다. 강다니엘도 나를 본 건지 몸을 돌리려 하기에 얼른 소리를 질렀다.

 

"!"

""

"다 봤어, 빨리 와."

 

무슨 동네 양아치같아. 어찌 됐든 강다니엘은 다시 몸을 돌려 내가 앉은 벤치 앞에 섰다. 나를 내려다보는 무표정한 그 얼굴이 제법 살벌했지만 나는 교무실에서 대성통곡도 한 놈, 무서울 게 없다.

 

"너 계속 나랑 이렇게 지낼 거야?"

"

"아무 사이도 아닌 것처럼 이렇게?"

"

", 이제 정말 나랑 친구 안 할 거야?"

 

강다니엘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강다니엘은 몸으로 하는 건 참 잘 하는 데 조금 머리가 딸리는 편이었다. 그래서 내가 하려는 말을 이해할 지 걱정이 되었지만 일단 입을 열었다.

 

"그럼 그냥 키스해."

"?"

"나랑 키스하자고."

 

. 강다니엘이 헛웃음을 짓더니 다시 얼굴을 굳힌다. , 이번엔 진짜 좀 무서운데. 한 대 팰 거 같아.

 

". 옹성우"

"

"그러니까 너는 나랑 친구 계속 하려면 키스 정도는 해줄 수 있다 뭐 그런 거야?"

"아니, ."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입술 한 번 부벼볼 걸 그랬어? 옹성우 되게 오픈마인드였네."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그럼 내가 키스만으로 안 된다 그러면? 그 때는 어쩔 건데? 나랑 섹스라도 할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강다니엘을 노려보았다. 강다니엘도 물러서지 않고 살벌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등신, 내가 이럴 줄 알았어.

 

". 너 진짜 병신이냐?"

"?"

"넌 친구랑 키스해? 너는 키스하는 사이가 친구냐? 나도 너 좋다는 거 아니야! 아 좋아한다고! 무슨 애가 머리도 안 좋은 게 눈치도 없어!"

", 무슨."

"그리고 뭐? 섹스? 시발 섹스? 내가 진짜 어이가 없어서. 니가 일본 야동 스고이 외칠 때도 꿈에 너 나와서 몽정한 사람이에요 내가!"

"?"

 

, 이건 무덤까지 가져갈 탑시크릿이었는데. 강다니엘의 표정이 순식간에 무너져내린다. 어벙한 표정으로 입까지 벌어져서 나를 보는데, 그제야 내가 아는 강다니엘 같아서 마음이 조금 풀어졌다.

 

", 그러니까. 내가 너를, 아니. 니가 나를..."

"좋아한다고."

 

강다니엘은 멍하게 나를 보다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뒤로 물러서는데 그 틈으로 뭔가 반짝이는 게 보여서 나도 모르게 강다니엘 손을 잡아챘다.

 

", 울어?"

"쪽팔리게."

". 진짜 울어?"

 

강다니엘 우는 건 8살때 짝꿍이 바지 내렸던 날 이후로 처음 보는 거 같은데. 내가 당황해서 허둥대는 데 강다니엘이 제 손목을 잡고 있던 내 손을 깍지껴 잡는다.

 

"키스해도 돼?"

"여기 cctv 있어!"

 

순식간에 얼굴이 가까워져서 급한 마음에 강다니엘 입술을 잡히지 않은 손으로 막았는데, 강다니엘이 실실 웃으며 내 손가락마다 소리나게 입을 맞춘다. 연달아 울리는 민망한 소리에 귀가 화끈거렸다. 강다니엘이 내 손을 끌고 불빛도 제대로 닿지 않는 놀이터 안으로 들어가 미끄럼틀 계단 앞에서 멈춰섰다.

 

"키스해도 돼?"

"또 나 피해다닐거야?"

 

절대 아니지. 강다니엘이 해사하게 웃어보인다. 아직 눈물이 그렁그렁 달린 눈매가 휘어지는 모양이 숨막히게 황홀했다. 눈물에 젖어 질척해진 입술이 맞물렸다.

 

강다니엘이 나한테 키스했다. 거기에 나는 좋다고 강다니엘 목에 팔을 감고 매달렸다. 길고 길었던, 짝사랑의 끝이었다.